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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西靣學堂里居化民張允文右謹言所志事段去初一日良中民以山訟事呈訴是乎則 城主題音內秋以納侤冬猶不掘者曺哥所爲萬萬痛懲後督掘次捉來事云云敎是乎所以此 題音即付於曺敬源家則渠之堂叔漢鉉言內堂侄出他未還云云是遣累次辭托逃避 官令彼何人心如許㐫頑是喩不可含默見欺故緣由仰訴伏乞參商敎是後同曺敬源發牌捉來痛懲其謀避 官令之罪而督掘所訟之塚千萬望良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戊子十二月 日〈題辭〉迯在何處知在此邑卽爲捉來事十一 狀民[官印]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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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장윤문(張允文) 소지(所志) 5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允文 同福縣監 官[着押] 3顆(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425_001 1828년 12월에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리에 거주하는 장윤문이 동복현감에게 겨울이 됐는데도 관령을 따르지 않고 있는 조경원을 엄히 형벌하고 독굴해줄 것'을 청원한 소지 1828년(순조 28) 12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리(學堂里)에 거주하는 장윤문(張允文)이 동복현감에게 겨울이 됐는데도 관령을 따르지 않고 있는 조경원(曺敬源)을 엄히 형벌하고 독굴(督掘)해줄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장윤문이 지난 1827년부터 내북면(內北面) 웅곡(熊谷)에 사는 조경원과 산송(山訟)으로 여러 차례 소송하였는데 동복현감이 연이어 '속히 조경원의 투총(偸塚)을 파내라'는 뜻으로 분부하고, 마지막에 또 특별히 '만약 또 전처럼 완강히 거부한다면 단연코 관에서 엄히 형벌하고 독굴하라'는 판결문을 내렸다. 조경원의 당숙 조한현(曺漢鉉)은 평소 속임수를 많이 쓰고 지혜를 농간하는 자로 당질인 조경원을 비호하고 멋대로 비밀스런 꾀를 내어 '농사일이 시급하다'는 뜻으로 관에 누누이 간청하였다. 이에 동복현감이 특별히 농사를 권장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은택을 더하여 다시 판결하기를 '추수한 뒤에 파 옮기라'고 뎨김하였다. 이러한 관령(官令) 때문에 장윤문은 마음이 초조했지만 다시 청원하지 못하고 우선 추수철을 기다렸다. 그런데 지금 추운 겨울이 왔는데도 투총을 옮기라는 관령을 따를 뜻이 영 없어, 이에 장윤문은 앞의 소지(所志)를 점련하여 '조경원의 투총을 앞 판결문 대로 관에서 엄히 형벌하고 독굴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소지를 접수한 동복현감은 12월 1일 장윤문에게 '가을에 다짐을 바쳤는데 겨울에도 투총을 파 옮기지 않았으니 조 가(曺哥)의 소행을 매우 엄하게 징계한 다음 독굴하기 위해 함께 잡아오라'는 판결문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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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証書右証事는 任實郡 聖壽面 三峯里 壹五九番地畓外六筆를 貴殿에 賣却신 바 此 代金은 貳佰五拾員으로 結定하고 所有權移轉에 付한 手續費用은 本人이 負擔하기로 誓約候也若 追后 其土地永小作權 及抵當權設定에 對하야告障이 有한 時는 其責任을 一切負擔하기로 홈昭和七年 陰四月 十四日契約人 崔京烈[印]李虎 殿証書一金 壹百捌拾員也右邊土地賣渡代金 中 正히 領收爲也昭和七年 陰四月 十四日 崔京烈[印]李虎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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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乾隆伍十伍年庚戌十月十九日幼 學張漢臣前明文右明文爲事段 衿得耕食是如可移賣次 伏在同福內西面滄浪坪陽字畓二斗落只二夜味負數六卜九束庫乙 價折錢文四十二兩 依數交易奉上爲遣 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 本文記段 他田畓幷付 故不得出給爲去乎 日後如有雜談則 持此文記 告 官卞呈事畓主自筆幼學金在元[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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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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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부동산(不動産)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金相永 李虎 全州地方法院任實出張所印(3.6×3.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6월 4일, 매도인(賣渡人) 김상영(金相永)이 매수인(買受人) 이호(李虎) 앞으로 토지를 매매하고 발급한 매도 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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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 영수증(領收證)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崔命錫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해년(乙亥年) 2월 27일 최명석이 전답과 대지에 대한 매매대금 금액 450조(條)를 영수하였다는 사실을 증빙하는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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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90년 장한신(張漢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在元 張漢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0년(정조14) 10월 19일에 답주 유학 김재원(金在元)이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창랑평에 있는 논을 유학 장한신(張漢臣)에게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790년(정조14) 10월 19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김재원(金在元)이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창랑평(滄浪坪)에 있는 논을 유학 장한신(張漢臣)에게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재원은 자기 몫으로 분재 받아 갈아 먹던 논을 다른 땅으로 옮겨 사기 위하여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창랑평에 있는 양자(陽字) 답(畓) 2배미 2마지기(결부수로는 6卜 9束)되는 땅이다. 이 논을 전문(錢文) 42냥을 받고 팔았다.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다른 전답과 함께 붙어 있어내 주지 못한다고 명시했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김재원 1인이다. 답주가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창랑평은 현재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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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西靣學堂里居化民張允文右謹言㦖迫事民以山訟事自去年以來與內北靣熊谷居曺敬源累次呈訟是乎所 城主以其當當訟理連下嚴題斯速掘去曺塚之意特爲 分付是白遣終末又下特 題云若又如前頑拒則斷當自 官嚴刑督掘事云云敎是乎所同曺敬源堂叔曺漢鉉素以多詐舞智之人斗護渠之堂侄而肆發秘謀以其農務時急之意累累恳乞是去乙 城主特加勸農愛民之澤更 題下秋成後掘移事云云敎白乎所民雖切懆㦖之狀 官令之下不敢更呈■■(更呈)而姑待秋成矣方此冬寒而永無移塚遵 令之意彼何人斯如許㐫頑是喩玆敢前所志貼連緣由仰訴伏乞參商敎是後細細洞燭民之情狀而同曺敬源之塚依前 題自官嚴刑督掘千萬望良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戊子十二月 日〈題辭〉秋以納侤冬猶不掘者曺哥所爲萬萬痛懲後督掘次眼同捉來事初一 狀民[官印]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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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西靣學堂里化民張允文右謹言所志事段民以山訟事去初一日良中呈訴是乎所 城主題音內秋以納侤冬猶不掘者曺哥所爲萬萬痛懲後督掘次捉來事云云敎是乎所以此嚴題到付渠家則出他謀避故緣由再呈矣又題音內知在此邑即爲捉來事下題敎是後同曺敬源雖還渠家而畧無畏 官遵令之■(意)心專有拒逆 官題之意如許無官無法之法民不可含默看過故前所志貼連緣由仰呈伏乞參商敎是後先治其無 官無法之罪而後應其前題訟理之道千萬望良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戊子十二月 日〈題辭〉不爲捉來而何爲煩訴耶今則歲已㒲矣待春眼同捉來事卄五 狀民[官印]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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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 장동식(張東栻)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東栻 同福縣監 官[着押] 4顆(6.5×6.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432_001 1850년 2월에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리에 거주하는 장동식이 동복현감에게 영구히 위토로 만드는 자신의 2마지기 논을 친족들이 멋대로 팔지 못하도록 입지해 주고, 문전을 납부하는 일로 갇혀있는 병든 아버지를 석방시켜줄 것을 청원한 소지 1850년(철종 1) 2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리(學堂里)에 거주하는 장동식(張東栻)이 동복현감에게 영구히 위토(位土)로 만드는 자신의 2마지기 논을 친족들이 멋대로 팔지 못하도록 입지(立旨)해 주고, 문전(門錢)을 납부하는 일로 갇혀있는 병든 아버지를 석방시켜줄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장동식은 자신의 아버지가 문전을 마련해 납부하는 일로 여러 날 동안 갇혀 있어 매우 걱정스러워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돈을 마련하지 못하고, 약간 소유하고 있는 논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이 문전으로 기어코 위토를 사야 하므로 자신의 논 문서로 납부한 문전의 수효가 55냥인데 전에 족조(族祖)의 정장(呈狀) 중에는 72냥으로, 55냥보다 그 수가 늘어났다. 그 이유는 족조가 몇 년 동안 다른 지역에서 떠돌아 살았기 때문에 그 동안 종중(宗中)의 지출을 감지하지 못해서이다. 55냥과 72냥의 차액 17냥 중 12냥은 『보첩(譜牒)』을 수정하는 일에 들어갔고, 2냥은 화순(和順)에 있는 선산(先山)의 소송에 지출되었으며, 3냥은 선산의 송추(松楸)를 팔 때 송청(松廳)에서 속전(贖錢)으로 거두었다. 따라서 전후로 쓴 돈을 따져 보면 종사(宗事)와 공속(公贖)이니 실제 남은 돈은 55냥이므로 장동식의 2마지기 논을 시가(時價)로 계산해서 문서를 작성하여 이 논을 영구히 위토(位土)로 만들되 친족들이 멋대로 팔지 못하도록 입지해 주고, 병든 아버지를 석방시켜줄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이 소지를 접수한 동복현감은 2월 13일에 '원고(元告)를 데리고 오라'는 판결문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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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장찬(張欑)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張欑 行縣監[着押] *周挾無改印, 1顆(墨印, 17.7×5.6)*1顆(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440_001 1801년에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리에 사는 호주 장찬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01년(순조 1)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리(學堂里)에 사는 호주(戶主) 장찬(張欑)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장찬의 직역은 유학이고, 나이는 38세 갑신생(甲申生)이며, 본관은 흥덕(興德)이다. 그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한신(漢臣), 할아버지 통정대부 동지중추부사 효지(孝智), 증조 학생 치언(致彦), 외조(外祖) 학생 김진채(金振採)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장찬의 아내 이씨(李氏)는 나이 33세 기축생이고 본적은 전주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필달(苾達), 할아버지 학생 갑훈(甲勳), 증조 성균생원(成均生員) 상회(相檜), 외조 학생 이택후(李宅垕) 본관은 공주이다. 소유하고 있는 여종은 예선(禮先)이고 나이 51세 신미생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사노(私奴) 돌이(乭伊), 어머니는 반비(班婢) 수영개(水永介)이다. 문서에 '호적단자(戶籍單子)'와 작성년인 '신유식(辛酉式)'이 적혀 있고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동복현감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무오년(1798) 호구와 대조를 마쳤다는 내용 등이 기재되어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장찬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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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十一〖二〗年十月日同福縣考丁卯成籍戶口帳內內西面第七學堂里第卅九統第四戶幼學改名張旭年四十四甲申本興德父學生漢臣祖通政大夫同知中樞府事孝智曾祖學生致彦外祖學生金振彩本光山妻李氏歲三十九己丑籍全州父學生苾達祖學生甲勳曾祖成均生員相檜外祖學生李宅垕本公州賤口秩婢禮先年五十三辛未母班婢水永介父私奴乭潤 甲子戶口相凖印[同福縣監之印]行縣監[署押][周挾無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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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장성용(張聲容)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郡守 張聲容 *同福郡印, 1顆(4.0×4.2)*同福郡守之章, 1顆(2.5×2.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468_001 1905년 1월 동복군(同福郡)에서 유학(幼學) 장성용(張聲容, 62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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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十年庚子四月二十三日 前手記右手記段 盈字陳田所耕三卜 以爲村弊 故錢二兩五戔 付於村契 長爲立本 而年年恩利 年年當稅 以無日後更督之意 成送手記 日後或有更懲之弊 則以此憑考次同德宅 金[着名]卜男宅 金[着名]老金宅 李[着名]分化宅 崔[着名]月今宅 尹[着名]億金宅 尹[着名]保金宅 金[着名]銀德宅 崔[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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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三年甲子八月二十六日 朴勉洙前文記爲手記事 本里後麓山訟事 癸亥年分捧手記是如尼 中間遺失而私和之日同手記不得傳受 只以圖形紙與原狀洞中員傳授爲去乎 以此手記 日後憑考事蓋山洞中洞首 張成翼[着名]執綱 金聖燁[着名]證保 劉宗九[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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