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綾州儒生金鍾常李致鎬梁其煥 謹齋沐上書于巡相閤下 伏以文學德行賢能才藝 人事之所當爲 似不當褒而勸之 然民稟不同 人心有蔽 則不可不嘗之勸之 後人有所向賢才蔚興 國以致治矣 固國家有擧賢之詔刺史守相 有薦賢之政 因以成規也 但今之文學賢士 不及於古 而文學賢士之報 猥多於古 其間固不無虛實之可言 在上君子 當察其虛實 公私之分措 其所之擧 其所擧而薦進 則虛僞自戢 實行自著 薦不失當矣 大抵本州士人鄭義林 系出光山古觀察使諱麟晋十八世孫 弘文應敎諱熊十三世孫 戶曹判書諱演十一世孫 完山縣監諱斆七世孫也 素有卓異之行 受學於蘆沙奇先生之門 事親極其孝敬 鄕里稱賞 親沒哭泣哀毁 幾至滅性 而至於樵者不歌 商者撤市 居廬三年 其至行至德 傳爲里巷誦說者多矣 及其從學 四子六經性理群書 貫通浹洽 而深得蘆沙之宗旨樣轍 逍遙林邱 不以貪窮動心易操 惟以義理 自娛自適所講者 孔顔之道 程朱之書 而於天人性命之原 禮義儀則之節 博洽貫通 遠近學者 逐日踵門 問難萬變 酬答如洪鍾之應響 賢愚不齊 敎育如化工之無遺 此非特今日南服之矜式 名聲大著於畿湖嶺海之間 在前石塘鄭先生 世安堂金先生 全齋任先生 相與講論 在今淵齋宋先生 勉庵崔先生 仁山蘇先生 重庵金先生通書相講 而惟朝廷不聞名聲 鄕報道報 及前等城主之薦報頻仍 尙未蒙褒揚之典 其爲士林之抑鬱何如哉 伏願閤下 特採鄭義林之文學實行 薦進朝堂 以蒙褒典 則非特勵風敎勸後學 其爲國家之器用何如哉 生等不避猥越 摭實仰稟爲去乎 伏俟處分 千萬顒祝行下向敎是事巡相閤下 處分 戊子三月 日 儒生 金鍾常 李致鎬 朴基繪 梁其煥 李贄鎬 文極煥 梁會一 金時豊 鄭在淑 魯錫采 閔致魯 朴海鴻 安澈煥 文永祚 鄭在勳 李文洙 尹滋郁 吳秉祚 安澤煥 金鍾湖 閔啓鎬 崔相翊 文泰煥 朴璟煥 宋錘 洪珽謀 梁在鎬 朴在源 金源錫 安檃 李章茂 李相鎬 具桂勳 金鍾龍 閔泳東 梁益煥 鄭英錫 吳在鴻 等(題辭)若此道義之學非徒一省之華亦是邦國任(背面)道之器 孰不起欽 於此如有獎美之梯 當存念向事十八日都巡使[着押][全羅道觀察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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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양회락(梁會洛)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梁會洛 全羅都觀察使 使<押> 綾州牧使之印((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74_001 1888년 4월에 양회락 등 38명이 능주목에 올린 상서 1888년 4월에 양회락 등 38명이 능주목에 올린 상서이다. 양회락 등 능주의 유생들은 1885년부터 지난 1888년 3월까지 정의묵의 효행과 학행을 조정에 알리고 그가 관직에 등용되기를 여러 번 청원하였지만, 여전히 합당한 처분이 내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시한번 감영에 상서를 올린 것이다. 김종상 등의 상서에 대하여 능주목에서는 마땅히 전라감영에 보고하겠다는 처분을 내렸다. 상서(上書)란 백성들이 관에 청원이나 탄원할 일이 있을 때 제출했던 소지류(所志類) 문서의 일종이다. 소지류 문서에는 상서 외에도 단자(單子)·발괄(白活)·의송(議送)·등장(等狀) 등이 포함되었고 각 문서들은 발급 주체나 수취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서식적 차이가 있었다. 상서의 경우 기두어에 '上書'라는 문구가 기재된다는 특징이 있다. 관에서는 이러한 소지류 문서의 여백에 제사(題辭) 혹은 뎨김[題音]이라고 부르는 처분을 내렸다. 제사가 기재되었다는 것은 관의 공증을 거쳤다는 의미이므로, 백성들은 제사가 기재된 문서를 소송 자료 또는 권리나 재산 등을 증빙하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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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양회갑(梁會甲)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雙峰永慕齋門會所 梁會甲 □…□(3.3×3.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10월 18일에 쌍봉영모재문회에서 양회갑을 학포선생문집중간 사업의 교정으로 임명하는 망기 1940년 10월 18일에 쌍봉영모재문회소(雙峰永慕齋門會所)에서 양회갑(梁會甲, 1884~1961)을 학포선생문집중간(學圃先生文集重刊) 사업의 교정(校正)으로 임명하는 망기(望記)이다. 학포는 정훤(鄭暄, 1588~1647)의 호로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언승(彦昇)이다. 포은 정몽주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겠다는 의미로 지은 호이며, 임진왜란 중에는 가야산으로 어머니와 피신하여 전화를 피했다. 광해군이 실정을 하자 시국을 판단하여 고산정(孤山亭)을 짓고 은거하였으며 인조 즉위 후 여러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응하지 않고 성리학을 궁구하며 여생을 보냈다. 문집으로 『학포선생문집(學圃先生文集)』 5권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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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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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梁 會 甲今月二十九日丁丑春享祭官薦定乙亥三月十五日[道林祠章]道林祠掌議奇東奭色掌柳寅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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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44년 기종섭(奇琮燮) 위장(慰狀) 고문서-서간통고류-위장 奇琮燮 梁會甲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4년 11월 2일에 기종섭이 상주 양회갑에게 그의 아버지 소상을 위문하는 내용으로 보낸 위장 1944년 11월 2일에 기종섭(奇琮燮)이 상주(喪主) 양회갑(梁會甲, 1884~1961)에게 보낸 위장이다. 양회갑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느덧 소상(小祥)을 치른데 대한 슬픔을 위문하는 내용이다. 기종섭 자신은 질병이 생기고 길도 멀어 끝내 직접 가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기종섭의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종방(宗邦), 호는 연암(然庵)이다. 정무공(貞武公) 건(虔)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동규(東奎)이다. 품성이 강직하고 의용이 단아하여 공부를 잘했고, 예학(禮學)을 탐구하여 절문(節文)이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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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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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_前面)和順郡梨陽面草坊里梁會甲 孝廬 入納(皮封_後面)光山郡林谷面廣谷里奇琮燮謹慰疏(重封)疏上梁斯文大孝哀前 奇琮燮謹封(內紙_慰狀)琮燮頓首言 不意凶變先府君奄違色養 承訃驚怛不能已已 緬惟孝心純至 思慕號絶 何可堪居 日月流邁 遽經小祥哀痛奈何 罔極奈何 不審自罹茶毒氣力何似 唯冀强加疏食 俯從禮制 琮燮疾病相仍 塗途稍遠 末由奉慰 悲係增深 謹奉疏 不宣謹疏甲申十一月二日 奇琮燮 疏上梁斯文大孝哀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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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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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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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922년 강록(講錄)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술(壬戌), 계해(癸亥), 갑자(甲子), 을축(乙丑), 병인(丙寅), 정묘(丁卯), 무진년(戊辰年)까지 7년 동안 기록한 유가서(儒家書)를 강경(講經)한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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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조봉환(曺鳳煥) 등 상서(上書)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4일 曺鳳煥 等 和順郡守 <書押> 1顆(7.2×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362_001 1896년(고종33) 9월에 운곡정사 죄민 조봉환과 강생 화민 장원봉·권정직 등이 화순군수에게 호역의 감면을 청한 상서 1896년(고종33) 9월에 운곡정사(雲谷精舍) 죄민(罪民) 조봉환(曺鳳煥)과 강생(講生) 장원봉(張源鳳)·권정직(權正植) 등이 화순군수(和順郡守)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운곡정사는 죽림고사(竹林故事)에 의거하여 성현(聖賢)의 화상(畵像)을 봉안하고 봄가을로 제향하는 강당(講堂)이라 전부터 의례 호역(戶役)을 면제받았었고, 작년 가을에 호구수를 정할 때에 말이 있기에 정단(呈單)하고 제사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한 와중에 이번 가을에 호역이 몇 집 견감된다는 말이 있으니 그때 운곡정사의 호역을 면제해 주어 성인을 사모하고 스승을 존중하는 의리를 보존하게 해달라고 부탁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화순군수는 자세히 조사하여 고례(古例)에 의거하여 탈급(頉給)해주라고 4일에 해색(該色)에게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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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圃先生文集重刊校正望梁 會 甲庚辰十月十八日[印]雙峰永慕齋門會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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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通伏惟春暮僉體萬安 竊伏惟我先師松沙先生之棄後學 今十有二年矣 嗚呼 先生在道在先生 先生歿道在遺書 使後生小子 講明斯道 獨不在遺書之役乎 此及門諸子之固未嘗一日忘于心也 然而藏之篋笥 少須臾待時者 實斯文鄭重之義 而今亦有不可膠守而任其泯沒也 曩時編錄頗欠情密 槩多闕漏 斷不可以此登梓 若復因循差緩 不爲汲汲改圖 則世風益渝 臨機順成 恐無其日 窃欲更稡淨瀉 取次設刊 而編輯之役 又難以時月 可就伏願僉尊及時致委 無有後悔 千萬千萬一. 文字自四月至八月晦內 一一爭先輸納事一. 前者謄葺 恐有訛誤之慮 必以本稿對訂事一. 通到卽日 各自傳示傍近士友 無或不知地事一. 編輯所以長城珍原面珍原里澹對軒爲定事丁卯三月 日發文曺悳承 金箕錫 康熙鎭安鍾基 梁會甲 李淳範李宏奎 李鍾遠 朴興圭安吉煥 奇老善 吳東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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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銜前面)晉東欽任實邑(名銜背面)領收證白米壹斗五升 正히受取也[印]九年八月二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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姉兄學生梁公 以今月二日得疾 不幸於十六日申時棄世 葬禮將以二十日 行於草坊里秋峙 當日啓殯 謹專人書訃啓癸未 四月 十六日 護喪 安圭壹 上趙生員 座前(皮封)康津郡 鵲川面 帶月里趙 東 㵿 氏和順郡 梨陽面 草坊里 梁會甲親喪 訃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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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 이둔흥(李䜳興)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䜳興 等 光州牧使 牧使<書押> 2顆(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2년(철종3) 6월에 능주목(綾州牧) 후동(後洞)에 사는 이둔흥(李䜳興)과 유인철(劉仁哲)이 산송에 관한 일로 광주목사(光州牧使)에게 올린 소지 1852년(철종3) 6월에 능주목(綾州牧) 후동(後洞)에 사는 이둔흥(李䜳興)과 유인철(劉仁哲)이 산송에 관한 일로 광주목사(光州牧使)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자신들이 몇 년 전 화순(和順) 남면(南面) 대동평(大洞坪)에 있는 토지를 각 성씨들에게서 샀는데, 작년 화순 마산리(馬山里)에 사는 조가(曺哥) 양반이 근거 없이 자기 산소 근처의 땅이라고 주장하며 본관에 무소(誣訴)를 하였다는 것, 관가에서는 이에 대하여 별도로 좌수(座首)를 보내 적간(摘奸)한 후에 이미 한번 엄히 혼을 냈는데, 또 얼마 전에 사또가 관(官)을 비운 틈을 타서 겸사(兼使)에게 무소를 했고 이에 제음(題音: 관의 처분)이 유향소에 도부(到付)되어 패(牌)를 내어 반대편을 가두고, 문권이 있고 주인이 있는 땅을 공연히 빼앗김에 이르렀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그러므로 조반(曺班)을 법정에 잡아다 놓고 관(官)에 무소(誣訴)를 하고, 남의 전토를 빼앗은 죄를 엄히 다스려 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대해 광주목사는 14일 유향소에 '관의 판결과 매매문기가 확실하니 가둔 자는 즉시 풀어주고 이후부터는 다시 소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조씨 양반을 엄히 신칙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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綾州後洞李䜳興劉仁哲等右謹陳萬萬寃痛事段 矣等屢年前和順南面大同坪田土之地乙 買得於各姓人處 而文蹟昭然是乎所 不意昨年 和順馬山里居曺哥兩班 濫生無據之慾 稱以渠之山所近處是如 本官 案前時誣呈 官家 別遣座首 昭然摘奸後 曺班旣被 案前主嚴嘖之處分 而且有立旨嚴題是白加尼 忽於日昨曺班 際此空官 誣訴於兼 使主 題音到付於留鄕 星火出牌 被捉嚴囚爲遣 田土永爲陳地云云 有文券有主之田公然見奪 徹天極地之寃 控訴於何處乎 若如曺班之臆慾 則人間萬物寧有定主乎 文券實無遵行之路 窮民難保殘命之地 故冒死仰訴於 仁政之下爲去乎參商敎是后 特下嚴題 上項曺班 特發猛差 捉致 法庭 誣官奪人田土之罪 別般嚴治 以杜日后生臆作梗之端 千萬望良只爲行下向敎是事光州使道主 處分壬子六月 日行官[署押](題辭)官題與文記昭然牢囚者▣哥卽爲放▣ 此後則更(背面)勿起鬧之意曺班處嚴飭向事 十四日留鄕[官印] 1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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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조대순(曺大淳)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曺大淳 城主 <書押> 3課(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오년 11월에 조대순이 성주에게 아들이 천가에게서 빼앗아 간 돈을 자신이 갚겠으니 갇힌 몸을 풀어 달라고 청한 소지 무오년 11월에 조대순(曺大淳)이 성주(城主)에게 자신을 풀어달라고 청한 소지(所志)이다. 자신이 3일전 읍내에 사는 천가(千哥)가 자신의 아들에게 전문(錢文)을 횡징(橫懲) 당한 일로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 자신의 종손(從孫)인 기열(基烈)이가 어제 와서 소지를 올렸는데 그 제음(題音: 관의 처분)에 횡징 당한 물건을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의논할 수 없는 것이니 소송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 그런데 자신의 아들은 도망가서 간 곳을 모르고 집에는 관리할 동자(童子)하나 없다며 한 푼의 돈도 줄 수 없는데 어찌하느냐며 자신을 풀어주면 그 돈을 비납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관(官)에서는 2일에 속히 비납(備納)하여 아들이 강도(强盜)의 이름을 얻게 하지 말라고 처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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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惟辰下尊體保重 嗚呼人事與世道相促蘆沙奇先生四世主鬯 已踰終祥 天何嗇仁壽於吾先生之後承 若是迅乎 揆諸常禮 先生祠板 當祧當遷 而竊伏惟念先生紹前繼後之崇德廣業 宜乎享百世之祀 而以時法不類 遽行祧遷 實有所未安者矣 繼念在昔先正諸賢 亦有未蒙朝家之特許 則裒收在下之淸議立廟而得伸尊奉之義 盖出於反經合道之微意也况今文與時異典禮寄在儒林 從儒林 庶不害於時義 秋丁釋菜 旣不無多士商確 而事係鄭重 不可不廣謀廣詢 庚辰正月十七日丁酉 本家吉祭也 前十五日乙未 一番儒會于澹對軒以待公議 而欲完縟禮 玆敢擧梗槩 仰諗尊聽 使不悖於情禮 而使先生之道益尊 則世道幸甚 斯文幸甚己卯十二月二十日高山書院金鍾學 柳相哲李鍾宅 金顯奎曺悳承 李宏奎金度中 朴興圭柳羲迪 李喜敬高禮鎭 吳用根梁會甲 李光秀奇雲度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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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김동섭(金東燮) 엽서(葉書) 고문서-서간통고류-엽서 金東燮 梁會甲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10월 18일에 서울에 사는 김동섭이 화순 죽림재에 사는 양회갑에게 자신이 구하고 싶은 책과 그 책값을 누군가에게 보내줄 일을 언급하며 보낸 안부 엽서 1929년 10월 18일에 서울에 사는 김동섭(金東燮)이 화순 죽림재에 사는 양회갑(梁會甲, 1884~1961)에게 보낸 안부 엽서이다. 지난번에 보낸 편지는 잘 읽었느냐는 인사를 시작으로 현재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현재 병이 나았다고 했다. 송보대집(松爺大集)을 꼭 구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며 그 책값을 이달 20일 후에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에 사는 김우림(金佑林)에게 꼭 부쳐 주어서 자신의 군색함을 면하게 해 달라는 부탁을 전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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