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석(除夕)에 감회를 쓰며 스스로 슬퍼하다 除夕書懷自悼 인간 세상에서 오늘은 마음 아파할 만하니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것이 이 날이라네하늘은 하룻밤을 가지고 을(乙)과 병(丙)을 나누고187)땅은 삼경(三更)의 밤을 따라 겨울과 봄을 구분 짓네들판의 뽕나무188)에 온화한 양기가 이르는 것을 차마 보겠는가촌초(寸草)189)에 계절이 새로워지는 것을 견디기 어렵네세 가지 즐거움190)에 대해 누가 감회가 없을 수 있겠는가화락한 형제가 함께 부모를 모셨으면【선생은 돌아가신 부모에 대해 평생의 그리움191)이 있었고 의지할 형제192)가 없었으며 30세가 넘도록 대를 이을 자손도 없었다. 그러므로 시의 뜻이 이처럼 슬픈 것이다. '천향(天向)'은 어떤 본에는 '연향(年向)'으로 되어 있고, '지종(地從)'은 어떤 본에는 '시종(時從)'으로 되어 있다.】 人間今日可傷神送往迎來在此辰天向一宵分乙丙地從三夜限冬春原桑忍見陽和至寸草難堪節序新三樂誰能無所感怡怡兄弟共親親【先生桑梓永感。棣花無依。年踰三十。且無血胤。故詩意如此悲悼。天向一作年向。地從一作時從。】 을(乙)과 병(丙)을 나누고 이날이 '을(乙)' 자년에서 '병(丙)' 자년, 즉 을미년(1655, 32세)에서 병신년으로 넘어가는 때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듯하다. 들판의 뽕나무 '뽕나무'는 부모가 살던 고향 또는 고향의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뜻한다. 《시경》 〈소반(小弁)〉에, "부모가 심은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공경한다.[維桑與梓 必恭敬止]"라 하였는데, 그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에 "선대에서 심은 것이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촌초(寸草) 한 치의 작은 풀로,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심을 이르는 말이다. 당(唐)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유자음(游子吟)〉에, "한 치의 풀과 같은 자식의 마음을 가지고서, 봄날의 햇볕 같은 어머니의 사랑을 보답하기 어려워라.[難將寸草心 報得三春暉]"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세 가지 즐거움 원문은 '삼락(三樂)'이다. 군자(君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에 왕 노릇하는 것은 여기에 끼지 않는다. 부모가 모두 생존해 계시며 형제가 무고(無故)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으며 아래로는 사람에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英才)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평생의 그리움 원문은 '영감(永感)'이다. 부모(父母)를 모두 여의어 길이 감모(感慕)한다는 뜻이다. 옛날에 부모 모두 생존 시에는 구경(具慶), 부친만 생존 시에는 엄시(嚴侍), 모친만 생존 시에는 자시(慈侍), 부모 모두 여의었을 때에는 영감이라고 하였다. 형제 원문은 '체화(棣花)'다. 곧 상체화(常棣花)로, 꽃이 서로 뭉쳐 피므로 흔히 형제에 비유한다. 《시경》 〈상체(常棣)〉에, "아가위꽃 그 꽃송이 울긋불긋 아름답네. 오늘의 모든 사람 중에 형제보다 좋은 건 없네.[常棣之華 卾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