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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5일 十五日 밤에 눈이 내렸다. 새벽에 출발하여 임실(任實) 읍내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고개를 넘어 간신히 현동(玄洞) 송기렴(宋基濂)의 집을 찾아갔으나 기렴은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고, 그 아들 전(椣)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돈학문적(遯壑文蹟)》을 보고자 하였다. 그 문적이 모두 신안서원(新安書院)61)에 있다고 하므로 신안서원(新安書院)에 이르렀다.신실(神室)은 동서로 나누어 만들었는데, 서실(西室)은 주부자(朱夫子)의 영정(影幀)을 걸어 쌍창(雙窓)으로 여닫게 되어 있고, 동실은 돈학(遯壑) 송경원(宋慶元, 1419~1510)·신재(新齋) 한호겸(韓好謙, 1535~1579)·만회당(晩晦堂) 한필성(韓必聖, 1625~1691)·홍운정(鴻雲亭) 한명유(韓鳴愈)·거묵당(巨墨堂) 송시태(宋時態) 등 6현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신실(神室)은 새로 만들어 깨끗하였지만 서원의 사당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어진 이를 사모하는 도리가 매우 개탄스럽고 애석하였다. 참배하고 봉심(奉審)한 뒤에, 송연영(宋延英)과 한원택(韓元宅)에게 요구하여 문적(文蹟)을 보여 달라고 하였더니, 전주의 이 생원(李生員)이 지난번에 가지고 갔다고 하였다. 문적을 볼 수 없으니, 한탄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대로 길을 나서 대곡(大谷)의 송낙철(宋洛哲) 집에 이르러 묵었다. 20리를 갔다. 夜雪。 曉發抵任實邑內朝飯, 越嶺艱尋玄洞 宋基濂家, 則基濂出他, 不得相面, 只與其子椣暫敍, 欲見《遯壑文蹟》矣。 其文蹟盡在新安書院云, 故抵新安書院, 則神室分作東西, 而西室則掛朱夫子影幀, 以雙窓開閉, 東室則宋遯壑、韓新齋、晩晦堂、鴻雲亭、宋巨墨堂六賢妥靈之所也。 神室則新創鮮明, 而院貌尙未成樣, 其於慕賢之道, 甚爲慨惜。 參謁奉審後, 要宋延英及韓元宅, 欲見文蹟, 則全州 李生員, 頃來持去云, 故不得尋見, 可歎耳。 仍爲發程, 抵大谷 宋洛哲家留宿。 行二十里。 신안서원(新安書院)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리에 있는 서원으로, 1588년(선조21)에 신재(新齋) 한호겸(韓好謙)의 문하들이 스승을 위해 세웠으며, 정유재란으로 불탄 것을 1669년(현종10)에 다시 복립하였다. 처음에는 이서(李舒, 1332~1410)와 한호겸만을 봉안하였으나, 1788년(정조12)에 사림들의 결의에 따라 돈학(遯壑) 송경원(宋慶元), 만회당(晩晦堂) 한필성(韓必聖), 홍운정(鴻雲亭) 한명유(韓鳴愈), 거묵당(距墨堂) 송시태(宋時態)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훗날 김수(金洙)·강백진(康伯珍)을 추가하여 모두 8현을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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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十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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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아침을 먹은 뒤에 가교(柯橋) 댁에 갔다가 머물다 가라 붙잡았기 때문에 그대로 머물렀다. 食後往柯橋宅, 以挽留之致, 仍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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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정해) 1827年(丁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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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五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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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五月 정해년(1827, 순조27) 5월 순찰사(巡察使)가 먼저 서신으로 안부를 물었으므로 감사의 뜻을 표하려고 하였다. 丁亥五月, 巡相以書先問, 故以回謝之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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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아침을 먹고 일찍 출발할 때 눈이 내렸다. 이에 눈을 맞으며 유치(峙)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지척을 분간할 수 없기에 가까스로 영귀정(咏歸亭)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仍朝飯早發時雪作, 仍爲冒雪, 抵峙中火。 大雪作咫尺不辨, 艱抵咏歸亭留宿。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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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계미) 1823年(癸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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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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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서 순자강(蓴子江)을 건너고, 주포(周浦)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돈 1전(錢)을 주인집 사내에게 주며 《서재실기(西齋實記)》를 도산(道山)의 송필흥(宋弼興) 집에 전해 달라고 하였다. 길을 떠나 남원읍(南原邑)에 이르러서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나는 먼저 향교(鄕校)로 출발하여 실기(實記) 한 권을 전한 뒤 곧바로 출발하여 전석치(磚石峙)2)를 넘어 임실(任實) 야당(野塘)에 이르렀다. 동행은 먼저 주막으로 가고, 나는 송필동(宋弼東) 씨의 집에 들러 실기 한 권을 신안서원(新安書院)에 전하게 하였는데, 예조에 재록(載錄)했는지에 대해 묻기에 아직 재록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서원을 세운 지가 이미 오래인데 어째서 재록하지 않았느냐며, 신안서원(新安書院)은 작년에 실었는데 들어가는 것이 적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장계의 초고를 청하여 주막으로 가지고 와서 여환(汝煥)에게 베껴 오도록 하였는데, 이는 나도 예조에 소장을 올리려는 계획에서였다.-등서한 장본(狀本)은 뒤에 붙였다.-저녁을 먹은 뒤에 주막으로 나와 동행들과 함께 머물렀다. 90리를 갔다. 낮에 남원 길에서 시 한 수를 읊었다.천릿길 동행한 열세 사람(千里同行十有三)호남에서 북쪽 여행길 떠나 왔네(北征行色自湖南)며칠이나 걸려야 경성에 도착할꼬(間開幾日京城到)훗날 고생한 만큼 즐거움도 볼 수 있으리(可見他時苦盡甘)정 진사(丁進士)가 화답하였다.늦봄 삼월 서쪽으로 떠나는 천릿길(西行千里暮春三)산색은 푸르르고 물은 남쪽으로 흘러가네(山色蒼蒼水盡南)천 자나 높은 용문 계수나무 잡은 곳에서(千尺龍門攀桂地)오늘 함께한 고초와 즐거움 떠오르리(却思今日共辛甘)신윤보(申允甫)가 화답하였다.곤륜의 한 줄기 빼어난 삼각산(崑崙一脈三角秀)천지간에 정신 온통 남쪽에 있네(天地精神盡在南)천릿길 떠나온 노고 도리어 잊어버리고(千里還忘勞苦我)어사화 어주가인 듯 술동이 가득 달기만 하네(賜花御酒滿樽甘)정 진사(丁進士)가 또 읊었다.밤새 비는 강남에 쏟아져 다리가 잠기고(夜雨江南水沒橋)푸른 회화나무 길을 막고 보리는 허리까지 잠겼네(靑槐擁路麥齊腰)이번 길 용꿈을 꾼 나그네 누구인가(此行誰是龍夢客)들새가 노래하는 것도 비웃는 것도 같구나(野鳥如歌又似嘲)내가 화답하였다.짚신 신고 지팡이 끌며 오작교3)를 걷노라니(竹杖芒鞋步鵲橋)잘록한 허리의 미인들 성에 가득하네(盈城美女盡纖腰)이번 길 봄을 만끽하기 위해 온 게 아니건만(此行不是貪春客)혹여 옆 사람 비웃을까 두렵구나(或恐傍人有笑嘲) 早朝發程, 越蓴子江, 至周浦酒幕朝飯。 傳《西齋實記》於道山 宋弼興家之意, 出給錢一戔主漢。 發行抵南原邑, 乃中火秣馬。 余則先發鄕校, 傳實記一卷, 卽發越磚石峙, 抵任實 野塘。 同行則先去酒幕, 余則入宋弼東氏家, 傳實記一卷于新安書院, 問禮曹載錄, 故姑未載錄云爾, 則建院已久, 而何其不載乎? 新安書院則昨年載, 而所入不小云, 故請其狀草, 持來酒幕, 使汝煥謄書以來者, 余亦欲呈禮曹計耳【謄書狀本附後】。 夕飯後, 出來酒幕, 與同行同留。 行九十里。 午間南原路上, 咏一律曰: "千里同行十有三, 北征行色自湖南。 間關幾日京城到, 可見他時苦盡甘。" 丁進士和曰: "西行千里暮春三, 山色蒼蒼水盡南。 千尺龍門攀桂地, 却思今日共辛甘。" 申允甫和曰: "崑崙一脈三角秀, 天地精神盡在南。 千里還忘勞苦我, 賜花御酒滿樽甘。" 丁進士又號曰: "崑崙一脈三角秀, 天地精神盡在南。 千里還忘勞苦我, 賜花御酒滿樽甘。" 余和曰: "竹杖芒鞋步鵲橋, 盈城美女盡纖腰。 此行不是貪春客, 或恐傍人有笑嘲。" 전석치(磚石峙) 일명 '박석고개'로 전라북도 남원시 광치동과 사매면 대율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박석치는 비포장 시절에 고갯마루가 지표 유출에 의한 토양침식으로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얇고 넓적한 돌을 깔아 놓은 데서 유래하였다. 오작교 원문의 '작교(鵲橋)'는 남원 광한루(廣寒樓)에 있는 오작교(烏鵲橋)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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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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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30일 晦日 아침을 먹은 뒤에 빗줄기가 약간 누그러졌기에 길을 나서 정오에 오촌(鰲村)으로 들어갔다. 장석(丈席)을 들어가 뵙고 그 내부인(內夫人)의 상(喪)을 위로한 뒤 물러나 상제(喪制)7)에게도 또한 위로하였다. 장석(丈席)의 건강이 근래에 더욱 악화되어 몇 년 사이에 모습이 더욱 쇠약해지니 걱정스러웠다.잠시 쉬고 나서 행랑으로 나와 점심을 먹은 뒤에 실기(實記) 한 권과 가지고 온 약간의 물건을 드렸다. 장석(丈席)이 먼저 세충사(世忠祠)8)에 관한 일을 말씀하셨다. 지난번 흥양(興陽)의 송원(宋)이 왔을 때 한 말이 있었는데, 육(六)자를 세자(世字)로 고치라는 뜻의 편지였다고 하였다. 내가 "출발하기 며칠 전에 편지를 살펴보았습니다."라고 답하자 장석께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육충사(六忠祠)로 하지 않는 것이 좋겠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교하신 대로 시행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대로 묵었다.저녁을 먹은 뒤에 임실(任實) 종인 두 사람도 왔다. 행랑에 한 객이 머물고 있기에 거주하는 곳을 물었더니 같은 도에 사는 광양(光陽)의 박정일(朴楨一)이라 하였다. 그를 만난 반가움은 다른 사람을 만난 반가움과 달리 더욱 컸다. 그대로 함께 머물렀다. 30리를 갔다. 食後雨勢稍歇, 故發程午時入鰲村, 入謁丈席, 致慰其內夫人喪, 退與喪人亦致慰, 丈席氣候近以添重, 數年之間, 衰象漸甚悶悶。 暫憩後, 出來廊底, 午飯後, 入納實記一卷與持來略干物。 丈席先言以世忠祠之事, 頃者興陽 宋來到, 有云云說話, 以六字改世字之意折簡矣, 故余答曰: "臨發前數日奉覽矣。" 丈席曰: "與人相話, 不可以六忠祠爲可"云, 故答曰: "依敎施行矣。" 仍爲留宿。 夕飯後, 任實宗二人亦來。 廊底留一客, 故問其所居, 則乃同道光陽 朴楨一也。 其喜與他有別, 幸幸。 仍爲同留。 行三十里。 상제(喪制) 부모나 조부모가 세상을 떠나 상중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세충사(世忠祠)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에 여산송씨 송간(宋侃)을 주벽으로 송대립(宋大立), 송심(宋諶), 김시습(金時習) 등 11위를 향사하는 사우(祠宇)인 서동사(西洞祠)의 이전 명칭으로, 1785년 최초 건립 당시 운곡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이후 1796년 송간의 유거지인 동강면 마륜리 서대동에 운곡사 강당을 옮겨 세충사로 개칭하였으며, 1801년(순조1) 송건, 송순례, 송희립을 추배하여 일문 육충사(一門 六忠祠)라 이름하였다. 이후 1833년 세충사, 1846년(헌종12)에 매월당 김시습을 함께 봉안하면서 서동사로 칭하였고, 1868년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다가 1956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지으면서 재동서원(齋洞書院)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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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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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4일 初四日 비가 내렸다. 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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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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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28일 二十九日 차동에 머물렀다. 동향 여러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므로 약간의 글을 써서 집에 소식을 부쳐 보냈다. 아침을 먹은 뒤에 근동(芹洞)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自曉頭雨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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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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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8일 初八日 이른 새벽에 말에게 꼴을 먹이고 길을 나서 10리 임진강에 이르니 날이 비로소 밝았다. 말 위에서 시 한 절구를 읊었다.파평관 밖 새벽 닭 우는 소리에(坡平館外聽晨鷄)첫 새벽 찬 서리 밟고 십리 길 갔네(冥踏寒霜十里蹊)채찍질하며 곧장 임진강을 건너는데(鳴鞭直渡臨津水)고개 돌려 고향 바라보니 시야가 아득하네(回首鄕關望眼迷)또 한 수를 읊었다.왕성을 보장37)하는 백 리 고을(保障王城百里州)서쪽 경기에 진을 쳐 거대한 요새로세38)(西畿鎭作大咽喉)하늘은 뜻이 있어 기이한 형세 늘어놓았는데(天應有意排奇勢)땅은 어찌 무심히 명승지를 묻는가(地豈無心問勝區)어지러운 세상엔 산하가 나라의 보배요(世亂山河爲國寶)화평한 시절엔 풍물이 사람을 노닐게 하네(時和風物供人遊)긴 강은 참호요 바위는 성가퀴가 되니(長江爲塹巖爲堞)북쪽 오랑캐 황금 채찍 던지지 못하노라(北虜金鞭不敢投)동파(東坡)를 지나 장단(長端)에 이르렀다. 대개 그 산천의 기세가 매우 밝고 고와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치가 뛰어난 고장이니 정승 집안의 분묘가 곳곳에 있었다. 덕수(德水)39)와 도라(道羅),40) 진봉(進鳳)41)의 산을 바라보니, 여러 백악이 모두 완만하고 부드러워 사랑스러웠다. 멀리 송악산(松嶽山)을 바라보니 웅려하고 삼엄하여 하늘을 찌를 기세가 삼각산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장대하고 원대한 기운은 나은 듯하였다. 오산(烏山)에 이르니 안개가 주막에서 50리까지 짙게 깔려 있었다.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인 다음 판문(板門) 취적교(吹笛橋)와 탁타교(橐駞橋)를 건너 남대문으로 들어갔다. 인가가 즐비하였으나 집들이 매우 좁았다. 주막집에 들어가 탁주 한 사발을 마시고 바로 만월대(滿月臺)42)에 올랐는데, 그 무너진 담과 부서진 주춧돌 등 보이는 것마다 온통 황량하였다. 마침내 절구 한 수를 읊었다.오백년 전 고려의 궁궐 만월대에(五百前朝滿月臺)풀 시든 저물녘 멀리서 지팡이 짚고 왔네(夕陽衰草遠笻來)백마 타고 주나라로 조회 가는 길 아니지만(雖非白馬朝周路)가던 길 멈추고 옛 슬픔에 젖어보네(留作行人感古哀)채찍을 재촉하여 청석동(靑石洞)43)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100리를 갔다. 凌晨秣馬登程, 至十里臨津江, 日始開東矣。 馬上口占一絶, "坡平館外聽晨鷄, 冥踏寒霜十里蹊。 鳴鞭直渡臨津水, 回首鄕關望眼迷。" 又吟一律, "保障王城百里州, 西畿鎭作大咽喉。 天應有意排奇勢, 地豈無心問勝區。 世亂山河爲國寶, 時和風物供人遊。 長江爲塹巖爲堞, 北虜金鞭不敢投。" 過東坡, 至長端。 盖其山川氣勢, 極甚明麗, 爲吾東之第一勝鄕, 相家墳墓, 處處有之。 望見德水、道羅、進鳳, 諸白岳諸婉軟, 可愛。 遙見松嶽, 雄麗森嚴, 其揷天氣勢, 似不及三角, 而長遠之氣似勝矣。 至烏山, 交烟撥所幕五十里。 朝飯秣馬, 過板門, 至吹笛橋橐駞橋, 入南大門。 人家雖擳比, 而但其家舍制度, 甚狹窄矣。 入酒家飮一盃濁醪, 直上滿月臺, 見其類垣敗礎, 滿目荒凉矣。 遂吟一絶, "五百前朝滿月臺, 夕陽衰草遠笻來。 雖非白馬朝周路, 留作行人感古哀。" 催鞭至靑石洞留宿。 是日行百里。 보장 '보장(保障)'은 국가를 보위(保衛)하는 성벽이나 기반이 되는 지역이란 뜻으로, 위정자가 백성을 잘 보호함으로써 백성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든든한 울타리로 삼을 수 있게 하는 공적을 가리킨다. 거대한 요새로세 원문의 '인후(咽喉)'는 목구멍과 같은 곳으로, 매우 중요한 요새(要塞)의 땅인 요충지를 말한다. 덕수(德水)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과 대화면에 걸쳐 있는 덕수산을 말한다. 도라(道羅) 옛 장단군 중서면(中西面), 진남면(津南面)에 있는 도라산을 말한다. 임진강을 경계로 북한지역이며 고려 왕조의 수도 개경(開京)과 이웃하는 곳에 위치해 고려문화권에 속한 지역이다. 도라산에 대한 명칭은 《신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리(東國輿地志)》등의 문헌상에는 '都羅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道羅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도라산과 관련된 구전 기록에, 고려 충렬왕이 때때로 이 산에 올라가 놀이를 즐겼는데 그 때마다 꼭 궁인(宮人) 무비(無比)를 데리고 갔으므로 사람들은 무비를 가리켜 '도라산(都羅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진봉(進鳳) 개성의 동남쪽에 있는 진봉산을 말한다. 저본의 '封'은 '鳳'의 오기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만월대(滿月臺) 경기도 개성시 송악산(松嶽山)에 있는 고려 시대의 궁궐터이다. 919년(태조2) 정월에 태조가 송악산 남쪽 기슭에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창건한 이래 1361년(공민왕10)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될 때까지 고려 왕들의 주된 거처였다. 청석동(靑石洞) 황해도 금천군(金川郡) 고동면(古東面)에 있는 청석골[靑石峴]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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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梧峙訪鄭斯文浩黙 軟沙衰草過迷津小店停鞭問主人菱芡古渠歌白鄭竹林深巷話朱陳千年山色長留雪一夜郊容忽失春十畝桑麻居自得愛君能似葛天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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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宿角化兒家 老衛慵頑未敢奔支離一堠易黃昏樵車欲歇烟生店牧笛纔收月入村霜後忽驚楡柳瘦風前堪愛黍梁喧歸來妥帖松燈下坐敎呼翁抱穉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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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鄭斯文性黙聞香齊韻【龍珠村塾】 小屋書香遠遠聞縱橫木屐印苔紋騷朋似蜨肩應舞蒙士如蜂舌以耘庭豁芭蕉常得月路纖楊柳自成雲四時花氣生無已可怪東風獨厚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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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江享役歸路口占【正月初八日】 去年宗正漢江臯禱雨炎天汗綠袍五日騎郞何苦劇一春王事獨賢勞金冠照耀爭星燭玉珮琳琅和月濤此夜臺銜猶聖渥風稜鶚立更淸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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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昌墓寒食享節謹賡御製【二月十九日】 賡歌鶴禁頌遐齡往事如雲八十蓂棲悵今宵工祝禮還非雷肆舊橫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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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小柳林 短草披疎狹逕斜秋光牽動老詩家溪灘落落空留鷺木杪蕭蕭未掩鴉收斂野仍寬世界拮据材不淡生涯人間遞謝何容易禿髮臨風悵歲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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