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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9월 九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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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3일 十三日 새벽에 출발하여 남태령(南泰嶺)66)을 넘었다. 승방점(僧房店)67)에 이르러 떡을 사서 요기한 다음, 강을 건너 수청거리점(水淸巨里店)에 이르렀다. 아침을 먹은 뒤에 청파(靑坡)의 길가에 이르러 동행과 서로 헤어지고, 나는 박영대(朴永大)의 집에 들어갔다. 이어 주인과 요기하고 잠시 쉬었다가 서소문(西小門) 밖 이희(李)의 집에 갔으나 주인은 부재중이었다. 그런데 어떤 모르는 조관(朝官) 한 사람이 내게 묻기를, "흥양에 사십니까?"라고 하므로 내가 답하기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하자 이어 말하기를,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바로 회덕(懷德)68)에 사는 장소(長小) 송명규(宋明圭)인데, 주인과 친사돈 관계인 사람이었다. 가지고 온 민어(民魚)를 노비에게 들여보내니 안채에서 말을 전하였는데 전일의 정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예조의 서리 안인성(安寅成)을 만나기 위해 예조에 갔더니 예조의 직방(直房)69)으로 들어갔다고 하므로 그길로 직방(直房)으로 갔다. 나는 문 밖에 서서 주인에게 통지하게 했더니 곧바로 나왔다. 선 채로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나서, 먼저 재록(載錄)했는지의 여부를 묻자 곧바로 재록하였다고 하였다. 술집에 함께 나가자고 청하자 옷을 입고 나왔는데, 곧바로 나오면서 《사원록(祠院錄)》을 가지고 나왔다. 직접 보니 과연 재록되어 있어 매우 다행스러웠다. 대개 이번 여행길은 전적으로 이 일을 보기 위하여 왔기 때문에, 이 일이 이처럼 재록(載錄)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그길로 함께 술집으로 나와 술을 사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액(賜額)을 청한 일에 대해 언급하였더니, 이 일은 큰일이라서 수령이 쉽사리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유생의 상소가 있더라도 마침내 이루어진다는 기약을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또 첩미(帖尾)에 대한 일도 언급하니, 그가 관계된 바가 아니어서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관장하는 사람과 상의해 보겠다고 하기에 내일 다시 오기로 약속을 하고 나왔다. 광교(廣橋) 경주인(京主人) 집에 들어가 잠시 쉬다가 저물녘에 주인집으로 나왔다. 曉發越南泰嶺, 抵僧房店, 買餠療飢, 仍爲越江, 抵水淸巨里店。 朝飯後, 抵靑坡路邊, 與同行相分, 余入朴永大家。 仍爲主人療飢, 暫憩後, 往西小門外李家, 則主人不在, 而有不知朝官一人, 而問余曰: "在興陽?"云, 故答曰: "何以知之?" 仍曰: "有知之道"云, 故仍與敍話, 則乃懷德居宋長小 明圭, 而與主人親査人也。 持來民魚, 使奴婢入送, 則內間傳語出來, 不忘前日之意。 爲見禮吏 安寅成 往 禮曹, 則入去禮曹 直房云, 故仍往直房。 余則立門外, 使主人通奇, 則卽爲出來。 立談數語, 先問載錄與否, 則卽爲載錄云, 請與出去酒家, 則着衣出來矣。 卽爲出來, 而《祠院錄》持來, 親見則果爲載錄, 幸幸。 盖此行專以爲見此事而來矣, 此事若此載錄, 可幸可幸。 仍與出來酒家, 買酒相飮敍話, 仍說請額事, 則此事大事也, 倅難易成, 雖有儒疏, 畢成難期云矣。 又論帖尾事, 則渠非所關, 不可詳知, 與所掌之人相議云云, 故以明日更來爲約而出。 入廣橋 京主人家暫憩, 乘暮出來主人家。 남태령(南泰嶺)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에서 과천시 과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경계가 되는 고개이다. 승방점(僧房店) 승방평(僧房坪)에 있었던 객점을 말한다. 승방평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있던 마을로서, 마을 뒷산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고, 그 절 앞들에 있던 마을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승방뚤・심방뜰이라고도 불렀다. 회덕(懷德) 대전광역시 대덕구 회덕지역의 옛 지명이다. 직방(直房) 조방(朝房)이라고도 하는데, 조정의 신하들이 조회(朝會) 때를 기다리느라고 모여 있던 방이다. 대궐문 밖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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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여 황화정(皇華亭)에 이르자, 새벽빛이 이제 막 밝아왔다. 전라도의 첫 경계에 들어섰으므로 각각 시 한편을 지었는데, 공서가 먼저 읊었다. 시는 다음과 같다.이제야 전라도 경내로 들어오니(始入全羅境)때마침 새벽빛이 막 밝아오누나(時當曉色新)우리 전라도 길이라 하니(道吾之道也)정신이 한층 더 상쾌해졌네(快活更精神)내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경내로 들어서니 내 마음 한결 기쁘고(入境吾心喜)먼동이 트니 날이 점차 새로워지네(開東日漸新)오늘 아침 두 가지의 아름다움 함께하니(今朝兼二美)이제야 정신이 상쾌해지는구나(方覺爽精神)최진욱(崔震煜)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이른 새벽 우리 경내로 들어오니(凌晨入我境)고향의 맛 차츰차츰 생겨나 새롭네(鄕味漸生新)하늘이 어리석은 생각 한이 될 줄 알아(天知恨迷意)아침 햇살 비춰 정신을 맑게 하네(初日照精神)이어 대추(大棗)와 떡을 사 먹고, 최진욱과 작별하였다. 소로(小路)에 들어가 여산(礪山)의 심천(深川)에 이르러 일가인 송함보(宋涵甫)와 아침을 먹고, 이어 〈제각중건통문(祭閣重建通文)〉을 전하였다. 새벽에 출발하여 여산읍(礪山邑)에 이르러 호산춘(壺山春)79)을 사서 마시고 신점(新店)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삼례(參禮)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曉發至皇華亭, 曙色初明, 全羅初境, 故各作一聯, 公瑞先吟曰: "始入全羅境, 時當曉色新。 道吾之道也, 快活更精神。" 余次曰: "入境吾心喜, 開東日漸新。 今朝兼二美, 方覺爽精神。" 崔震煜次曰: "凌晨入我境, 節味漸生新。 天知恨迷意, 初日照精神。" 仍買棗餠相食, 與崔作別。 入小路至礪山 深川, 與宋涵甫同宗朝飯, 仍傳致《祭閣重建通文》。 曉發抵礪山邑, 買飮壺山春, 至新店中火, 至參禮留宿。 行七十里。 호산춘(壺山春) 찹쌀과 멥쌀로 세 번 빚은 술이다. 전라북도 여산(礪山)의 특주로서 여산의 별호가 호산(壺山)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술의 특징은 밑술을 두 번 담그고 다시 덧술을 하여 세 번을 담그는 데 있다. 조선 중엽 이후의 《산림경제》·《주방문(酒方文)》 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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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29일 二十九日 아침을 먹기 전에 출발하려고 하니 송민수(宋民洙)가 돈 1전 5푼으로 아침밥을 사먹으라고 주었다. 노자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다시 동(銅) 1관(貫)을 빌려 쓰기를 청하니, 송약수(宋若洙)가 한 젊은 종인(宗人)을 불러와 돈 2전을 가지고 오라 하면서 한 자리의 술값이나 하라며 도움을 주었다. 아침에 전성철(全聖哲)의 집에 이르러 아침을 먹은 뒤에, 유석하(柳錫夏)와 영윤(永允)을 데리고 함께 서문(西門) 안의 송덕진(宋德瑨) 집에 갔다. 그 사람은 바로 여산송씨(礪山宋氏)로 부내(府內)에 살고 있을 때 나주(羅州) 주인이 되었는데, 영저(營底)에서도 권세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예방 영리(禮房營吏)80)인 정읍(井邑) 이동환(李東煥)과 주객(主客) 사이의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몇 자 써주기를 청하자, 송덕진이 그의 가동(家僮, 어린 사내 종)을 불러 우리 두 사람을 영청(營廳)에 데리고 가서 예리(禮吏)에게 편지를 전하니 아전이 찾아내었다. 지난번 상경했을 때에 육충사(六忠祠) 열록(列錄)을 기록해 두었다가 《사원록(祠院錄)》에 재록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위의 기록은 아직도 선화당(宣化堂)에 있고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예리가, "안에서 나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착실히 기록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기록을 직접 보지 못하고 돌아오니 마음이 매우 답답하였다.장흥(長興) 벽사(碧沙)의 역리(驛吏) 김방업(金邦業)은 재작년 오촌(鰲村)으로 가는 길에 마침 낙안 도중에서 만나 그대로 길동무하며 간 영저(營底)의 사람이다. 나와 정이 있어 육충사(六忠祠) 재록하는 일을 편지로 부탁하였는데, 그 조용한 때를 이용해서 예리(禮吏)에게 부탁해 줄 것을 신신당부하여 말했다. 돌아올 때 또 송덕진(宋德瑨)을 만나 다시 편지로 부탁하고는 그대로 출발하여 남문 밖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정자동(亭子洞)에 이르러 묵었다. 25리를 갔다. 食前欲爲離發, 則民洙以一戔五分錢, 買食朝飯之意給之。 路貰不足, 故更請一貫銅貸用, 若洙招來一少宗人, 二戔錢持來云, 而惠以一時之酒債矣。 朝到聖哲家朝飯後, 與携錫夏、永允, 偕往西門內宋德瑨家。 其人卽礪山之宋, 而居在府內時, 爲羅州主人, 而營底之有權者也。 其人與禮房營吏 井邑 李東煥, 主客相親之間, 故請以數字書, 則其人呼其家僮, 陪我二人往于營廳, 傳書于禮吏, 吏搜出。 頃者上京時, 書托六忠祠列錄, 欲載《祠院錄》矣。 右錄尙在宣化堂, 姑未出來, 故其吏言, "內待後出來之日, 着實載錄。"云, 故未得親見載錄而歸, 心甚㭗㭗。 與長興 碧沙驛吏金邦業, 卽再昨年鰲村之行, 適逢樂安路中, 仍爲作伴於營底之人也。 與我有情故, 書托六忠祠載錄事, 而乘其從容時, 言屬禮吏之意, 申申言之。 來時又見宋德瑨, 更爲書托, 而仍以發行, 抵南門外中火, 抵亭子洞留宿。 行二十五里。 예방 영리(禮房營吏) 예방은 조선 시대 지방관서에서 예전(禮典) 관계의 실무를 맡아보던 부서 또는 그 일에 종사하던 향리를 말하고, 영리(營吏)는 행정 실무에 종사하던 말단 관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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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8일 初八日 아침 전에 임실 종인(宗人) 연영(延英)이 찾아왔는데, 기쁜 나머지 절구 한 수를 읊었다.천 리 먼 길에서 백대의 친척 만나(千里相逢百代親)처음 만나 기쁜 마음은 천륜에서 나온 것이리(逢初心喜自天倫)더구나 또 이번 길에 고락을 함께하니(況又今行同甘苦)그 누가 우리 세 사람의 깊은 정 만하랴(深情其孰我三人)남원(南原)의 문욱(文旭)도 찾아왔다. 이에 아침을 먹고 나서 문욱은 용산(龍山)으로 가고, 나는 낙안 형님, 임실(任實) 종인(宗人)과 묘동(廟洞)에 임실(任實) 사관(舍館)에 갔다. 한용(韓溶)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한우(韓友)와 진사 오우상(吳羽常) 집에 가서 예조에 소장 올릴 일을 논의하였는데, 실기(實記) 제장(製狀)을 보겠다고 하여 실기(實記) 한 권을 그의 집에 남겨 두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남계(南溪) 정민채(丁敏采)의 안부(安否)를 물었더니, 서간(書簡)을 가지고 왔는데 다른 곳에서 오는 바람에 가져오지 못했다고 하였다. 내일 가지고 다시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니 답하기를,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하였다.곧바로 출발하여 신 승지(愼承旨)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종묘동(宗廟洞)의 조 지사(趙知事) 집에 갔다. 보성(寶城)의 종인(宗人) 귀환(龜煥)을 찾아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의 형 두환(斗煥)이 어제 도성에 들어왔다고 하기에 곧바로 만나 예조에 올리는 일을 말하였더니 그도 좋다고 하였다. 나는, "들어가는 것이 적지 않다는데 빚을 얻을 길이 없으니 여기에서 만약 주선할 방도가 있으면 변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길로 성균관으로 가서 관인을 찍은 다음 날이 저물어서야 주인집에 돌아오니 오위장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박인수(朴寅洙)도 와서 함께 묵었다. 朝前任實宗人延英來見, 忻喜之餘, 吟一絶曰: "千里相逢百代親, 逢初心喜自天倫。 況又今行同甘苦, 深情其孰我三人。 " 南原 文旭亦來。 仍朝飯, 文旭往龍山, 余則與樂安兄主及任實宗人, 往廟洞 任實舍館。 與韓溶暫話後, 與韓友往吳進士 羽常家, 論其呈禮曹事。 見實記製狀之意, 置實記一卷於其家, 暫話後, 問南溪 丁敏采安否, 故書簡持來, 而自他處來到, 故未袖而來, 則明日袖, 而更來如何。 答曰: "明日更來而出。" 卽發入愼承旨家, 暫話後, 往宗廟洞 趙知事家。 訪寶城宗人龜煥暫敍, 則其兄斗煥, 昨日入城云, 故卽爲相面, 說及呈禮曹事, 則亦曰好矣。 余曰: "所入不小, 而得債之道無路, 自此若有周旋之道, 則變通爲可。" 仍往成均館打印, 乘暮還主人家, 則五衛將來待矣。 朴寅洙亦來同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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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四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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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비가 내렸다. 종일토록 비가 그치지 않으니 출입할 수가 없어 주인집에서 누워 있었다. 雨。 終日不止, 不得出入, 臥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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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오후에 임실의 여해(汝梅)와 종인(宗人) 연영(延英)이 찾아왔기에 예조에 소장 올리는 일을 부탁하였더니 대답하기를, "들어가는 바가 없지 않으니 미리 변통하여 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낙안(樂安) 형님과 차동(車洞)12)의 민치항(閔致恒) 집에 가서 그 형제와 잠시 격조했던 회포를 풀고는 실기(實紀) 한 권을 주었다. 이어 서소문(西小門) 밖 이희(李)의 집으로 갔더니, 기쁘게 맞이하고 정성스레 대접하여 옛일을 회상하며 상심하는 기운이 많이 있었는데, 주인이나 객이나 마찬가지였다. 잠시 회포를 푼 뒤에 참봉(參奉) 우종렴(禹宗濂) 집에 가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신(申)과 박(朴) 두 벗은 모두 별 탈이 없었다. 그길로 정 진사(丁進士)가 머물고 있는 사관(舍館)으로 갔더니, 동행했던 이들 모두 아무 병 없이 올라왔고 서울에 들어온 뒤로 처음 만나니 그 기쁨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잠시 쉰 뒤에 남대문 안 경주인(京主人) 집에 가서 김계한(金啓漢)·김이준(金履俊) 부자를 찾아가 만났다. 또한 서울에 들어온 뒤에 처음 본 것이다. 잠시 쉰 뒤에 그대로 약고개[藥峴]의 송 오위장(宋五衛將, 송인서(宋璘瑞))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 해 동안 오래도록 격조했던 끝에 보는 것이니 그 기쁨을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저물녘에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午後任實 汝梅與宗延英來訪, 故托以呈禮曹之事, 則答曰: "不無所入, 而預爲變通而去。" 與樂安兄主, 往車洞 閔致恒家, 與其兄弟, 暫敍阻懷, 仍給實紀一卷。 仍往西小門外李家, 則忻迎款待, 多有感古傷心之氣, 主客一般。 暫敍後, 往禹參奉 宗濂家暫敍, 而申、朴兩友皆無故。 仍往丁進士舍館, 則同行皆無病上來, 而入京後初面也, 其喜可斗。 暫憩後, 往南大門內京主人家, 訪見金啓漢、金履俊父子, 亦爲入京後初見也。 暫憩後, 仍往藥峴 宋五衛將家暫敍, 累年久阻之餘, 其喜可言。 暫敍後, 乘暮出來主人家。 차동(車洞) 서울특별시 중구 의주로1가・순화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수렛골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추모동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태어난 터에 비석을 세우고 그를 추모했던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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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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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몸조리하였다. 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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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이른 아침에 가서 영감(令監)을 만나고 곧 나와 말 몇 마리를 팔았다. 早朝往見令監, 卽爲出來賣馬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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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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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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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죽동(竹洞)에 가서 종인(宗人)을 만나고 왔다. 옥당 서리와 하인에게 각각 돈 3냥을 나누어 주었다. 往竹洞, 見宗人而來。 玉堂 書吏及下人處, 錢各三兩處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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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바로 정시(庭試)를 보는 날이다. 닭이 울 때 아침을 먹고 동접(同接)들과 월근문(月覲門)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에 동이 트자 전좌(殿座)14)하는 곳과 과장(科場)을 설치한 길을 바라보니, 모두 백포장(白布帳)으로 둘러놓았다. 처음에는 왕이 친림한다는 말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옥련(玉輦, 임금의 수레)만 나왔는데 군병과 기치(旗幟)와 창검(槍劍)은 왕이 거둥할 때와 다름이 없으니 평생에 한번 보는 장관(壯觀)이었다.묘시(卯時)에 출제(出題)하였으니, 바로 '흠명문사안안(欽明文思安安)'15)이었다. 문욱 동접들과 이어 초안을 작성하였으나, 납번(納番, 답안지 제출)할 때에 혹 선비들이 밟혀 죽을까 하는 근심이 있어 마음이 몹시 두려웠다. 나 또한 납번하는 차례에 직접 들고 갔으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함께 온 동접 중에 소년을 시켜 납번하게 하였다. 낙안(樂安) 형님의 정초(正草)는 내가 가서 제출했는데, 그때에는 조금 덜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주인집으로 와서 잠시 쉰 뒤에 문욱을 기다리는데 끝내 나오지 않으므로 먼저 나와 정 진사(丁進士)의 주인집으로 가서 잠시 쉬다가 경주인 집으로 돌아왔다. 김계한(金啓漢)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같은 고향 사람들이 모두 모레 출발하겠다고 말하였다. 卽庭試日也。 鷄鳴時仍朝飯, 與同接入月覲門。 良久開東, 望見殿座處與設場之道, 則皆以周設, 而初有親臨之言矣。 末乃只出玉輦, 而軍兵與旗幟槍劍, 無異擧動時也, 平生一壯觀也。 卯時出題, 卽'欽明文思安安'。 與文旭同接, 仍爲構草, 而納番之時, 或有士子踏死之患, 心甚悚然。 余亦納番次躬往矣, 不得前進, 來接中使少年納番。 樂安兄主正草, 則余往納之, 其時則稍歇故也。 卽爲出來主人家, 暫憩後待文旭, 則終不出來, 故先爲出來丁進士主人暫憩, 來入京主人家。 與金啓漢暫話, 而同鄕之人, 皆以再明日發程爲言耳。 전좌(殿座) 과거를 시행하거나 하례(賀禮)를 받는 것처럼 공식 행사가 있을 때 임금이 그곳에 마련된 어좌(御座)에 나와 앉는 것을 말한다. 흠명문사안안(欽明文思安安) 《서경》 〈우서(虞書) 요전(堯典)〉에 나오는 말로, 요 임금의 덕을 찬양하면서 "공경하고 밝고 빛나고 사려가 깊은 것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왔다.[欽明文思安安]"라고 하였다. 일부러 힘쓰지 않아도 그 덕성(德性)의 아름다움이 다 자연스러운 속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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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아침을 먹은 뒤에 정 진사(丁進士)의 사관(舍館)에 가서 잠시 쉬었다가 구리개동(九里介洞)의 박영수(朴永壽) 집에 갔다. 문욱(文旭)과 과장(科場)에 함께 들어가기로 약속한 뒤에 종묘동(宗廟洞)에 가서 구환(龜煥) 형제를 방문하였으나 출타하여 만나지 못했다. 오는 길에 구례(求禮)의 이지문(李志文)을 만나 빚 얻을 방도를 의논하였는데, 물어볼 만한 곳이 없다 하니 장차 어찌 한단 말인가. 해 진 뒤에 다시 오겠다 말하고 헤어졌다.성균관 앞에 가서 문욱을 만나 함께 관주인(館主人)인 이쾌철(李快哲) 집에 들어갔다. 신시(申時)에 문을 열기 때문에 저녁을 먹은 뒤에 과장에 들어갔다. 문욱의 동접(同接)13)과 정 진사(丁進士)의 동접(同接)을 찾아갔는데,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않았다. 초저녁 때에 동접들마다 등을 걸었다. 춘당대(春塘臺)의 백포장(白布帳) 안에 한 조각의 공지(空地)도 없이 등을 달고 등불을 밝힌 것이 끝이 없어 하나의 큰 장관이었다. 과거를 보는 유생의 모임은 전후로 처음인데, 경신년에 비해 더 많다고 하였다.밤이 깊은 뒤에 문욱과 함께 월근문(月覲門)으로 나와 이쾌철(李快哲) 집에 머물렀는데, 과거에 응시하는 유생들이 많이 모여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食後往丁進士舍館, 暫憩後, 往九里介洞 朴永壽家。 與文旭同入場中之意相約後, 往宗廟洞, 訪龜煥兄弟, 則出他不得相見。 路逢求禮 李志文, 議得債之路, 則無問處, 此將奈何。 斜後更來爲言, 而相分往成均館前, 逢文旭同入館主人李快哲家。 申時開門, 故夕飯後入場中, 推尋文旭接與丁進士接, 則相去不遠也。 初昏時, 各接懸燈, 春塘臺白布帳內, 無一片空地, 懸燈觀燈無恨, 一大壯觀也。 科儒之會, 前後初度云矣, 比庚申年尤多云。 深夜後, 與文旭同爲出來月覲門, 留李快哲家, 而科儒多會, 不得就睡。 동접(同接) 과거 응시를 앞두고 선비들이 한곳에 모여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만든 동아리 또는 그 구성원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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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종일토록 병을 조리하였다. 이날부터 날씨가 조금 풀렸다. 終日調病。 自是日日氣稍解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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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9일 初九日 이른 아침에 칠패(七牌)에 가서 윤 생원(尹生員)을 만나 대략을 말한 뒤에 곧장 팔선의 집에 와서 머물렀다. 早朝往七牌見尹生員, 略言大槩後, 卽爲來留於八仙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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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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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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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2일 十二日 아침에 흐리고 저녁에 온화하였다. 어제 행차할 때에 요통(腰痛)이 나아진 듯하였기 때문에 온종일 차가운 곳에 머물렀는데, 밤이 되자 또 심하게 아팠다. 이에 온돌방에서 몸조리하였다. 朝陰晩和。 昨日之行, 腰痛似向差, 故終日所處無非冷突, 夜又大痛, 遂溫突調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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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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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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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8일 初八日 종일 비가 왔다. 아침 전에 사헌(士憲)이 파주(坡州)로 길을 떠났는데, 비가 그치지 않아 중도에서 낭패를 당했을 것이 뻔하니 매우 염려스럽다. 終日雨。 朝前士憲作坡州之行, 而雨勢不止, 中路見敗必矣, 爲慮萬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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