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조덕승(曺悳承)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曺悳承 1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조덕승(曺悳承) 등이 기우만(奇宇萬)의 문집 간행을 알리는 내용의 통문 1927년 3월에 조덕승(曺悳承), 양회갑(梁會甲) 등이 보낸 간찰이다. 양회갑을 필두로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 문집을 간행해야 하는 필요성과 간행을 위해 결정된 사항을 알리는 내용이다. 선생의 도가 선생이 남긴 글에 있으므로 이를 간행하는 일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것과 지난번에 편집했던 것은 정밀함이 부족하고 누락된 것이 많아서 그 상태로는 간행할 수 없거니와 다시 시일을 끌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결정된 사항은 첫째 글을 4월부터 8월 말까지 빨리 보내달라는 것, 둘째 이전에 베껴둔 것은 잘못될 우려가 있으므로 반드시 본고(本稿)와 대조할 것, 셋째 통문이 도착하는 당일에 주변 사우(士友)들에게 보여줘서 혹시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게 할 것, 넷째 편집소(編輯所)는 장성 진원면 진원리 담대헌(澹對軒)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담대헌은 기우만의 조부인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이 장성 월송리(月松里)에 지은 정사로, 많은 문인들과 거처하며 강론했던 곳이고, 기우만이 이곳에서 《노사집》을 간행한 곳이기도 하다. 기우만은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회일(會一), 호는 송사(松沙)이다. 전남 화순(和順)에서 태어났으며, 의병과 독립운동을 하였다. 양회갑의 《정재집(正齋集)》 〈사상록(沙上錄)〉과 가장(家狀) 등에 《송사집(松沙集)》 간행과 관련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문집 간행은 1930년에 착수되어 1931년에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