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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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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꼭두새벽에 밥을 먹고 궐문 밖에 갔다. 박씨 척족(戚族)도 모두 와서 모였는데 오늘은 바로 삼일제(三日製)17)가 있는 날이다. 동이 틀 무렵 돈화문(敦化門, 창덕궁 정문)으로 들어가 진선문(進善門)18)에서 숙장문(肅章門)19) 앞까지 장막을 설치하고 좌정(坐定)하였다. 잠시 뒤에 인정전(仁政殿)20)으로 들어오라는 명이 있었기에 인정문(仁政門)21)으로 들어갔다. 동편의 인정전 월랑(仁政殿月廊)22)에 앉아 '근원이 있는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 밤낮으로 흘러서 구덩이를 채우고 난 뒤에 나아가 사해에 이른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23)라는 부제(賦題)24)로 부(賦)를 지어 올렸다. 대개 경과(慶科)25)를 치르는 날이라서, 팔도의 과유(科儒)들이 모두 전정(殿庭)에 모였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曉頭食飯, 往闕門外。 朴戚亦皆來會, 而是日乃三日製也。 平明入敦化門, 自進善門, 至肅章前, 設幕坐定。 有頃有入仁政殿之命, 故入仁政門。 坐東邊月廊製進, '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進, 放乎四海'賦, 而盖當慶科之日, 八道科儒, 咸集殿庭, 其數夥多, 不可言矣。 삼일제(三日製) 유생의 학문을 장려하기 위하여 성균관에서 실시하는 제술 시험으로, 절일제(節日製)의 하나이다. 의정부(議政府)와 육조(六曹), 관각(館閣)의 여러 당상관이 성균관에 모여 거재생(居齋生)과 지방 유생에게 제술(製述)만으로 시험을 보인다. 진선문(進善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錦川橋)를 건너면 나오는 중문(中門)이고 창덕궁 창건 무렵에 세워졌으며 1908년 인정전 개수공사 때 헐렸다가 1999년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숙장문(肅章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을 통과하여 금천교(錦川橋)와 진선문(進善門)을 지나면 진선문 맞은편에 나오는 중문(中門)이다. 숙장문은 성종 6년(1475) 좌찬성 서거정이 지어 올린 이름을 성종이 낙점하여 사용된 이름으로, 일제에 의해 헐렸다가 1996년 시작된 복원공사를 통해 재건되었다. 인정전(仁政殿)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 조정의 각종 의식이나 외국 사신의 접견을 하던 곳이다. 인정문(仁政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에 이르는 정문으로, 국왕 즉위식이 거행된다. 인정문은 태종 5년 창덕궁의 창건 때 다른 전각들과 함께 지어졌다.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인정전 월랑(仁政殿月廊) 월랑(月廊)은 궁궐이나 사찰과 같이 규모 있는 건물에서 앞이나 좌우에 줄지어 만든 건물을 지칭한다. 비슷한 의미의 말로는 행랑, 행각, 상방이 있다. 기둥과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는 복도 모양의 형식을 갖춘 것도 있고, 건물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종묘의 월랑은 익실의 끝에서 직각 방향으로 연접한 건물을 말한다. 근원이……이른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나오는 구절로, "근원 있는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 밤낮으로 흘러서 구덩이를 채우고 난 뒤에 나아가 사해에 이른다. 학문에 근본이 있는 자가 이와 같은지라 이 때문에 취한 것이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 하였다. 이는 사람이 실제 행실이 있으면 그만두지 않고 점차 진보하여 지극한 경지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일성록》 정조 18년 갑인(1794) 2월 21일(기묘)에 "인정전에 나아가 삼일제를 행하였다."라는 기사가 보인다. 부제(賦題) 과거를 보일 때 과문(科文)의 부(賦)를 지으라고 내는 글제목이다. 경과(慶科)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임시로 보이는 과거이다. 이는 특별히 대궐 뜰에서 보이므로 정시(庭試)라 하며 문무과(文武科)에 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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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차동에 머물렀다. 동향 여러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므로 약간의 글을 써서 집에 소식을 부쳐 보냈다. 아침을 먹은 뒤에 근동(芹洞)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留車洞。 同鄕諸人皆下去, 故付送家信若干字。 食後往芹洞, 暫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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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일찍 황해 감사가 머물고 있는 곳에 갔으나 어수선하여 얼굴을 보지 못하고 왔다. 이날은 황해 감사가 떠났다. 早往海伯所住處, 撓不能相面而來。 是日海伯出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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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비가 내렸다. 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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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행장을 꾸려 천노(千奴)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는데 마음이 매우 편치 않았다. 治送千奴還鄕, 而情懷頗不安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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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흥양이 와서 천노가 올라온다고 기별해 주었는데, 여산(礪山)에서 뒤처졌다고 하였다. 고대하던 끝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興陽來言千奴上來之奇, 而礪山落後云, 苦待之餘, 稍可寬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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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주동(注洞)에 가서 정오(正午)에 돌아오니 천노가 왔다. 집안 소식을 상세히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책값이 태반이나 오지 않았으니 이를 장차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往注洞向午出來, 千奴來矣。 詳聞家信可幸, 而但冊價錢太半不來, 此將奈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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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정시(庭試)를 보는 날이다. 꼭두새벽에 동접(同接)들과 과장에 들어가려고 관문(關門) 밖에 갔더니, 날이 밝기 전이라서 연달아 매달아 놓은 등(燈)이 하나의 큰 장관이었다. 이어 성균관 아래 집춘문(集春門)71)으로 가서 간신히 문에 들어서니 동이 트기 시작했다. 과거보는 유생들이 모인 것은 봄에 열린 과거에 견주어 못하지 않았다.진시(辰時)가 되어 출제(出題)되었다. 표제(表題)는, '주(周) 나라 신하들이 하례하였는데, 우(虞)와 예(芮)가 송사하러 왔다가 국경에 들어오는 날에 밭갈이를 하는 자가 밭을 양보하고 길 가는 자가 길을 양보하자 물러나 다투던 밭을 한전(閑田)으로 삼았다는 것을 두고 의작(擬作)하라[擬周群臣賀虞芮來訟入境之日耕者讓畔行者讓路退以所爭之田爲閒田]'72)였다. 그런데 우리 동접들뿐만 아니라 과장 안의 거의 절반이 백지를 내고 나왔다. 우리도 백지를 내고 저물녘에 나왔다. 오는 길에 차동 우 참봉(禹參奉)의 집에 들어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인집으로 나왔다. 乃庭試日也。 曉頭與同接入場次, 往關門外, 則日未明, 而接接懸燈, 一大壯觀也。 仍往成均館下集春門, 艱辛入門, 始開東矣。 科儒之會, 比春科不下矣。 辰時良出題, 而乃表題題則'擬周群臣賀虞芮來訟入境之日耕者讓畔行者讓路退以所爭之田爲閒田' 而非但吾接也, 場中居半, 曳白而出, 吾亦曳白, 乘暮出來。 來路入車洞 禹參奉家暫話, 出來主人家。 집춘문(集春門) 창경궁 동북쪽 담장에 있는 궁문으로, 문묘가 마주 바라보이는 곳에 있다.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이 문은 후원의 동문으로, 태학(太學) 서쪽 반교(泮橋)와 제일 가까워 역대 임금들이 태학으로 나갈 때에는 이 문을 경유하였다고 한다. 주(周) 나라……의작하라 주 문왕(周文王)이 서백(西伯)이 되어 덕을 쌓자 사방에서 귀의하였는데, 그때 우(虞)와 예(芮) 두 나라에서 서로 국경의 전답을 다투어 오래도록 결정하지 못하였다. 이에 판결을 받고자 주 문왕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가는 도중에 주나라 백성들이 밭두둑을 서로 양보하고 행인들이 어른에게 길을 양보하는 광경을 보고 크게 감화되어 그 길로 돌아와 다투던 전답을 묵히고 평화스럽게 지냈다는 고사를 가리킨다. 《詩經 大雅 緜》 《史略 卷1 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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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정 진사(丁進士)가 오늘 내려간다고 말하였는데, 나는 정장(呈狀) 때문에 동행하지 못하여 아쉬웠다. 이른 아침에 대묘동(大廟洞)에 가서 공서(公瑞)와 그 아들 참(參)을 만나서 돈 문제를 상의하였는데, 다만 20관뿐이라 했다. 돈을 가지고 예조 직방(直房) 앞의 술집으로 가서 안인성(安寅成)을 기다렸다. 한참 지나도 오지 않아서 그 까닭을 물었더니 예조 본부에 일이 있어서 현재 본부에 있다기에 급히 갔다. 안리(安吏)와 함께 직방(直房)으로 와서 정장(呈狀)을 찾아보았더니, 제사(題辭)가 과연 뜻대로 되어 있어 다행스러웠다. 이어 약간의 물건을 주고 급히 대묘동(大廟洞)으로 가서 공서와 내일 동행하기로 약속하였다.회동(晦洞)76)에 갔더니 여산(礪山) 제각(祭閣)에 관한 일로 통문(通文)을 주어서 가지고 왔다. 오는 길에 차동(車洞)의 이희(李) 집에 들렀으나 주인이 부재중이라서 작별하지 못하였다. 민치항(閔致恒)의 집에 들러 작별 인사한 다음, 그의 아우 민치명(閔致明) 집에 들어갔으나 마침 출타하여 작별하지 못하였으니, 한탄스럽다.저녁에 주인집에 이르니 공서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밥을 먹은 뒤에 명생(明生, 명두엽(明斗燁))도 와서 그대로 함께 묵었다. 대개 내일 동행하여 고향에 내려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丁進士今日下去爲言, 而余則以呈狀之致, 不得同行, 欠事欠事。 早朝往大廟洞, 見公瑞與其子參, 以錢相議, 只以二十貫云, 故持去禮曹 直房前酒家, 待安寅成矣。 稍久不來, 故問其故, 則有事於禮曹本府, 方在本府云, 故急往。 與安吏偕來直房, 推尋呈狀, 則題辭果爲如意, 可幸。 仍給略干物, 急往大廟洞, 與公瑞約以明日同行。 往晦洞, 則以礪山祭閣事通文以給, 故持來。 來路入車洞 李家, 則主人不在, 不得作別。 入閔致恒家, 仍爲作別。 入其弟致明家, 適出他, 不得作別, 可歎耳。 暮抵主人家, 則公瑞來待矣。 夕飯後, 明生亦來, 仍爲同宿。 盖明日同行, 下鄕之意也。 회동(晦洞)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4가・인현동1가・인현동2가에 걸쳐 있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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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경모궁(景慕宮) 앞에 가서 고향 사람을 만나고 왔다. 往景慕宮前, 見鄕人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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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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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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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보슬비가 내렸다. 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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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일찍 출발하여 이천(泥川) 중저(中底) 주막에 이르러 임실의 한용(韓瑢)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아침을 먹었다. 화성읍(華城邑)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갈산(葛山) 어귀에서 어떤 한 사람이 부르기에 돌아보니 바로 남원(南原)의 현대(顯大) 이문욱(李文旭)이었다. 이어 말에서 내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욱에게 말을 타게 했다. 과천(果川) 읍내에 이르러 잠시 쉬다가 남태령(南泰嶺)10) 아래에 이르러 당동(唐洞) 신준(申俊) 종형제를 만났는데, 과거에 응시하였다가 낙방하고 고향에 내려가는 길이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피차의 갈 길이 바쁘기에 집에 편지를 써서 보내지는 못하고, 단지 무사히 올라왔다는 소식만 말로 전하고 서로 헤어졌다.고개를 넘을 때 동행하는 마상객(馬上客)에게 살고 있는 곳과 성명을 물었더니, 한 사람은 충청도 문의(文義)11)의 덕지(德地)에 사는 범석(範錫) 오성홍(吳聖洪)이며, 또 한 사람은 금구(金溝) 백일(白日)에 사는 위팔(渭八) 강원달(姜元達)이라 하였다. 이에 통성명을 하고 보니 오 석사도 오촌(鰲村)으로 들어가는 집안사람이었다. 나중에 서로 찾아가기로 약속하고서 그대로 동행하였다. 승방(僧房) 주막에 이르러 임실(任實) 동행과 두 길손은 뒤쳐지고, 나는 길을 재촉하여 나루터에 이르러 즉시 나루를 건넜다.저녁에 청파(靑坡)의 박영대(朴永大) 집에 이르니 낙안 형님이 오늘 오전에 먼저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무사히 올라왔으니 다행스럽고 다행스러웠다. 주인 내외(內外) 모두 별 탈이 없고, 동향(同鄕)에서 함께 온 이들도 별 탈 없이 올라와 성안으로 들어갔다고 하였는데, 즉시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그대로 묵었다. 110리를 갔다. 밤에 비가 내렸다. 早發抵泥川 中底酒幕, 逢任實 韓瑢, 暫話朝飯。 抵華城邑中火。 抵葛山前, 有一人呼之故顧見, 則乃南原 李顯大 文旭也, 仍爲下馬暫話, 使文旭騎馬, 至果川邑內暫憩, 至南泰嶺下, 逢唐洞 申俊從兄弟, 以落榜擧子下鄕人也。 暫話彼此行色忙迫, 故不得付書於家中, 只以無事上來之意, 口傳相分。 越嶺之際, 與同行以馬上客, 問其所居與姓名, 則一則忠淸道 文義 德地居吳範錫 聖洪也, 一則金溝 白日居姜渭八 元達也。 仍爲通姓名, 吳碩士亦爲入鰲村門庭之人也。 有後日相訪之約, 仍爲同行。 抵僧房酒幕, 任實同行與二客落後, 余則促行抵津頭, 卽爲越津。 暮抵靑坡 朴永大家, 則樂安兄主, 今日午前先爲入來留待矣。 亦爲無事上來, 幸幸。 主人內外俱無故, 同鄕同行, 亦爲無故上來, 入去城內云, 不卽相面, 可歎耳。 仍爲留宿。 行百十里。 夜雨。 남태령(南泰嶺) 서울에서 과천을 지나 수원으로 가던 길로서 삼남대로의 첫 번째 큰 고개이다. 이 고개의 원래 이름은 호현(狐峴 여우재)이다. 정조대왕이 사도세자 묘를 참배하러 가는 도중에 이 고개 이름을 물었을 때 '여우고개'라는 이름을 거명하지 못했는데, 과천 아전이 '남태령'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하여 '남태령'으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문의(文義)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구 청원군 문의면) 지역의 옛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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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보책(譜冊) 두 질(秩)을 흥양(興陽) 하인 편에 보냈다. 送二秩譜冊於興陽下人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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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비가 갤 기미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화옥(華玉)이 필시 출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대로 천평에 머물렀다. 雨意不霽, 故意謂華玉必不發行。 因留泉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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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저교(楮橋)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능측(陵側)에서 묵었다. 至楮橋中火, 留宿於陵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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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경신) 1800年(庚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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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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