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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十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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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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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눈보라 치고 추웠다. 송산(松山)과 윤생(尹生) 두 사람이 와서 보고 갔다. 雪風寒。 松山 尹生兩人來見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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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매우 추웠다. 윤생이 또 왔으므로 함께 청배(靑排)에 가서 상원(尙元)을 보고 왔다. 極寒。 尹生又來, 故同往靑排, 見尙元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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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매우 추웠다. 極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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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또 추웠다. 又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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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차동으로 갔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 객지생활의 고충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往車洞而日氣甚寒, 客苦不可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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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추웠다. 예조에 가서 낙안(樂安)의 예사문서(禮斜文書)를 찾아오는 길에 주동(注洞)에 들어가 일 처리가 부실한 이유를 크게 꾸짖고 왔다. 寒。 往禮曹, 推尋樂安禮斜文書, 而來路入注洞, 大責處事不實之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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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창동(倉洞)에 가서 박 승지(朴承旨)를 만나고 왔다. 往倉洞見朴承旨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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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至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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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맑다. 광청(廣淸)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용계(龍溪)에서 묵었다. 晴。 至廣淸中火, 宿龍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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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서원장51) 新安書院狀 전라도 유생 유학(幼學) 최관현(崔寬賢) 등이 삼가 목욕재계하고 재배 후에 대종백(大宗閣, 예조판서를 달리 일컫는 말) 합하(閤下)께 글을 올립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임실현(任實縣) 신안사(新安祠)는 바로 주 부자(朱夫子)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제사를 지낸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향사(鄕祠)52)와 사액(賜額)53)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선후의 다름이 있지만, 현인을 높이 받들고 도를 사모하는 정성만은 같습니다. 이미 현인을 높이 받들고 도를 사모함은 조정의 고관(高官)과 사림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액(賜額)을 요청하는 문제는 일단 앞날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지만 숭봉(崇奉)하는 일의 체모와 거행하는 의절(儀節) 같은 경우는 원래 피차의 구별이 없습니다. 더구나 주부자(朱夫子)의 사우(祠宇)는 우리나라의 제현과 더욱 달라서 천성(千聖)의 적통(嫡統)이 이에 빛나고 만세의 사도(師道)가 매우 엄하니, 특히나 십분 더 공경을 다하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이번 신안서원의 사례(事例)는 전부터 함평(咸平)의 자양사(紫陽祠)54)와 대략 엇비슷하므로 제반 의문(儀文, 의례에 관한 법도)을 견주어 동일하게 하였습니다. 봄가을의 제수(祭需)는 이미 본도(本道)의 순영(巡營)에서 많은 선비들의 정문(呈文)55)으로 인하여 본손(本孫)에게 관문(關文)56)을 보내 신칙하였는데, 자양사(紫陽祠)의 예에 의거하여 관(官)에서 제물을 갖추어 보내고, 원생(院生, 서원의 생도)과 보노(保奴)57)의 무리도 조치한 바가 있었습니다. 이는 모두 영읍(營邑)에서 정도(正道)를 지키는 성대한 뜻인데, 본원의 모양새가 조금 이루어져 규모와 제향 의례58)에 정성과 공경을 다하였으니, 삼가 사문(斯文)의 다행스러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다만 삼가 생각건대, 팔도의 사원(祠院)은 모두 예조 관할입니다. 그리고 예조에 《사원록(祠院錄)》이 있으니 이미 사액(賜額)하고 사액하지 않은 것을 막론하고 각각 부책(簿冊, 장부)이 있고, 그 중요한 도원(道院)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은 돌보고 보호하는 것이 각별하니, 대개 또한 우리나라가 유학을 중시하고 도를 숭상하는 상전(常典)을 우러러 본받았기 때문입니다.저희들은 이에 감히 우러러 호소하노니, 삼가 바라건대 공의(公議)를 굽어 살피시어 임실(任實)의 신안사(新安祠)를 본조(本曹)의 《사원록》에 실어 일의 체모를 중히 하고 사림을 빛내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임오년(1822, 순조22) 10월. 全羅道儒生幼學崔寬賢等, 謹齋沐再拜, 上書于大宗伯閤下。 伏以任實縣 新安祠, 卽朱夫子影幀奉安之所, 而俎豆之享之有年矣。 鄕祠與賜額, 有公私先後之別, 而其爲尊賢慕道之誠則一也。 旣有尊賢慕道, 則縉紳與士林亦一也。 是以請額一款, 不得不姑俟來頭, 而至若崇奉之事體, 擧行之儀節, 元無彼此之區別矣。 況朱夫子祠宇, 尤異於我東諸賢, 千聖之嫡統斯光, 萬世之師道至嚴, 尤當十分致敬, 不容疎忽處也。 今此新安事例, 自前與咸平紫陽祠, 略相髣髴, 故諸般儀文, 比而同之。 春秋祭需, 已自本道巡營, 因多士呈文, 關飭本孫, 依紫陽祠例, 自官備送, 而院生保奴之屬, 亦有所措置者, 是皆營邑衛道之盛意, 而院樣稍成, 規模享儀, 庶盡誠敬, 竊不勝斯文之幸。 第伏念八路祠院, 俱是春曹所管, 而春曹有《祠院錄》, 無論已賜額未賜額, 各有簿冊, 其重道院所重, 則顧護自別, 盖亦仰體我國家重儒崇道之常典也。 生等玆敢仰籲, 伏願俯察公議, 以任實新安祠, 載入於本曹《祠院錄》, 以重事面, 以光士林, 幸甚。壬午十月。 신안서원(新安書院)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리에 있는 서원. 1588년(선조21)에 한호겸(韓好謙)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제자가 신안사(新安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669년(현종10)에 중건하였으며, 1788년(정조12)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송경원(宋慶元)·한필성(韓必聖)·한명유(韓鳴愈)·강백진(康伯珍)·송시태(宋時態)를 추가 배향(配享)하였다. 1819년(순조19)에는 함평의 자양서원(紫陽書院)에 안치된 주희(朱熹)의 영정을 이곳으로 옮겨와 주벽(主壁)으로 봉안함과 동시에 '신안(新安)'이라고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향사(鄕祠) 이름난 학자, 충신 등의 공적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집을 세우고 제사지내는 사당(祠堂)을 말한다. 조선 중기에 학문의 권장을 위하여 지방에 서원과 정사(精舍)가 생겨나고 자기 조상들을 위하여 사우(祠宇)가 많이 건립될 때 생겨난 특징 있는 주민들의 사당이다. 사액(賜額) 임금이 사당(祠堂)이나 서원(書院), 누문(樓門)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扁額)을 내리던 일이다. 자양사(紫陽祠) 전남 함평에 있었던 사당으로, 주희(朱熹)를 향사(享祀)한 사당이다. 1783년에는 송시열(宋時烈)의 영정도 봉안했었다. 정문(呈文) 백성이 관청에, 또는 하급 기관에서 상급 기관에 제출하는 문서를 말한다. 관문(關文) 원문의 '관칙(關飭)'은 관문(關文)으로, 상급 관아에서 하급 관아에 보내는 공문(公文)이다. 감결(甘結), 예칙(禮飭)이라고도 한다. 보노(保奴) 조선 시대 병영이나 관아 또는 서원 등에 딸리어 잡역에 종사하던 하례(下隷)를 말한다. 제향의 의례 원문의 '향의(享儀)'는 제향(祭享) 후 음식을 대접하는 의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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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八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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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3일 初三日 면교(面橋)의 용전(龍田)에 머물렀다. 이는 대개 삼정(森亭)의 이종(姨從)형님 형제와 함께 가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에 일부러 우회하여 기다리려는 생각에서였다. 留面橋 龍田, 盖以森亭姨兄主昆季, 約與同行, 故故爲逶迤留待之意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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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6일 初六日 비가 오다. 불우치(不憂峙)에 이르자 비가 내렸다. 이에 점심을 먹고 곡성 읍내에서 묵었다. 雨。 至不憂峙雨作, 因爲中火, 宿谷城邑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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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24일 二十四日 새벽에 출발하여 묘치(峙)를 넘어 아침을 먹고, 석곡(石谷)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무동정(舞童亭)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曉發踰峙朝飯, 抵石谷酒幕午飯。 抵舞童亭酒幕留宿。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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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문회계 文會稧 송흠문 성안 경인 은진사람 청주 거주안동형 경통 정유 순흥사람 해주 거주김재봉 의지 계묘 광산사람 공주 거주홍기영 사춘 남양사람 연기 거주박치환 은문 을사 면천사람 회천 거주김재대 건지 무신 광산사람 공주 거주김이현 성서 무신 광산사람 공주 거주박재병 남중 무신 밀양사람 청주 거주임주례 성기 정사 상주사람 충주 거주김석현 성규 기미 광산사람 회천 거주성영석 원로 신축 창원사람 대흥 거주송재옥 사형 갑자 본관 여산 천안 거주정현석 군범 을묘 본관 광주 임천 거주안성흠 성태 병진 본관 순흥 옥천 거주고상의 유중 정미 본관 청주 음성 거주권중건 사극 임술 본관 안동 서울 거주금석로 영수 병진 본관 봉성 옥천 거주정재팔 순거 계해 본관 의성 용담 거주한경복 백원 갑신 본관 청주 회천 거주송수각 자신 본관 은진 회천 거주김방기 중경 정사 태인 거주박정일 윤겸 을미 본관 상주 광양 거주서택인 맹거 임자 본관 달성 대구 거주서영래 대여 경술 은진 거주송흠태 국언 계묘 태인 거주최광악 응오 정해 본관 전주 금구 거주송노전 백도 신해 본관 덕수 해주 거주최달민 인첨 정미 본관 전주 김제 거주송연영 국형 신해 본관 여산 임실 거주이주재 임신 본관 한산 해주 거주송석년 수이 무술 본관 여산 흥양 거주신재술 본관 평산 안동 거주 宋欽文 聖安 庚寅 恩津人 居淸州安東亨 敬通 丁酉 順興人 居海州金在鳳 儀之 癸卯 光山人 居公州洪沂泳 士春 南陽人 居燕歧朴致煥 誾文 乙巳 沔川人 居懷川金在大 健之 戊申 光山人 居公州金彛鉉 聖瑞 戊申 光山人 居公州朴載丙 南仲 戊申 密陽人 居淸州林周豊 聖基 丁巳 尙州人 居忠州金錫玄 聖圭 己未 光山人 居懷川成永錫 元老 辛丑 昌原人 居大興宋在玉 士衡 甲子 礪山人 居天安鄭玄錫 君範 乙卯 光州人 居林泉安聖欽 聖泰 丙辰 順興人 居沃川高尙義 由中 丁未 淸州人 居陰城權中建 士極 壬戌 安東人 居京琴錫老 永叟 丙辰 鳳城人 居沃川丁載八 舜擧 癸亥 義城人 居龍潭韓慶福 伯源 甲申 淸州人 居懷川宋秀覺 子臣 恩津人 居懷川金邦基 仲璟 丁巳 居泰仁朴楨一 允謙 乙未 尙州人 居光陽徐宅仁 孟居 壬子 達城人 居大邱徐榮來 大汝 庚戌 居恩津宋欽泰 國彦 癸卯 居泰人崔光岳 膺五 丁亥 全州人 居金溝宋魯傳 伯道 辛亥 德水人 居海州崔達旻 仁瞻 丁未 全州人 居金堤李周載 壬申 韓山人 居海州宋延英 國馨 辛亥 礪山人 居任實宋錫年 壽而 戊戌 礪山人 居興陽申在述 平山人 居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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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일찍 출발하여 차령(車嶺)을 넘을 때에 여심(汝心)이 먼저 읊었다.둥글고 네모난 천지의 험한 길 건너(涉險止方圓)누각에 오르니 마음이 더욱 넉넉하여라(登閣意益寬)참 공부는 가는 곳마다 있으니(眞工行處在)평안히 앉아 있을 것 뭐 있겠나(何必坐平安)여백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천 리 길 떠나온 영주의 나그네(瀛洲千里客)고개를 넘으니 마음이 여유롭네(越嶺以爲寬)계곡물 흐르는 소리 웃는 듯 성내는 듯(溪聲笑有怒)산세는 가도 가도 편안하구나(山勢行且安)경오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길동무하며 떠나온 천릿길(作伴千里路)동행하여 마음이 참으로 여유롭구나(同行意盡寬)어젯밤엔 공주의 길손이더니(昨夜公州客)오늘 아침엔 천안에 도착하였네(今朝到天安)내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부끄러워라 나의 시정의 졸렬함이여(愧我詩情拙)넉넉한 그대들 주량이 부럽기만 하여라(羨君酒戶寬)험난한 여행길 가도 가도 그치지 않으니(間關行不止)어느 곳이 장안이란 말인가(何處是長安)여심이 또 읊었다.괴이한 바위 위태로운 듯 벼랑에 달려 있고(怪石懸如危)단풍은 연지를 찍어놓은 듯 붉게 단장하였네(丹楓色欲脂)우리들이 구경하는 곳에도(吾人覽物處)중양절65) 아니 잊고 누런 국화가 피었어라(重九黃花時)내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기암괴석은 꼭대기마다 솟아있고(怪石頭頭在)단풍은 곳곳마다 붉게 물든 연지로다(丹楓面面脂)느긋하게 지팡이 짚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아(緩笻看不厭)날이 저물어 가는 지도 몰랐어라(不覺夕陽時)두엽(斗燁) 명이관(明以寬)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대여섯 사람 함께 부대끼며 떠나온 길(五六人相與)걷고 또 걸으며 마음이 느긋해졌네(行行意有寬)돌아가는 길 어드메에 있으랴(歸程何處在)해 떨어지는 곳 바로 장안이라오(日下是長安)덕평(德坪)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천안 읍내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직산(稷山) 삼거리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早發越車嶺之際, 汝心先吟曰: "涉險止方圓, 登閣意益寬。 眞工行處在, 何必坐平安。" 汝伯次曰: "瀛洲千里客, 越嶺以爲寬。 溪聲笑有怒, 山勢行且安。" 敬五次曰: "作伴千里路, 同行意盡寬。 昨夜公州客, 今朝到天安。" 余次曰: "愧我詩情拙, 羨君酒戶寬。 間關行不止, 何處是長安。" 汝心又吟曰: "怪石懸如危, 丹楓色欲脂。 吾人覽物處, 重九黃花時。" 余次曰: "怪石頭頭在, 丹楓面面脂。 緩笻看不厭, 不覺夕陽時。" 明斗燁 以寬次曰: "五六人相與, 行行意有寬。 歸程何處在, 日下是長安。" 抵德坪朝飯, 抵天安邑內中火。 抵稷山三巨里留宿。 行七十里。 중구 원문의 '중구(重九)'는 음력 9월 9일로 곧 중양절(重陽節)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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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일찌감치 판치(板峙)를 넘어 효포(孝浦)에서 아침을 먹었다. 금강(錦江)을 건너 모로원(慕露院)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는 먼저 떠나 광정(廣亭)63)의 송상철(宋相喆) 집에 들어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출발하려고 할 때에 한사코 만류하였다. 그러나 동행과 떨어지기가 어렵기 때문에 곧바로 출발하여 주인과 길가에 도착하였더니, 동행이 뒤처져 광정(廣亭)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길 가에서 동행을 만났다. 저녁에 팔풍정(八風亭)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저녁을 먹은 뒤에 계순(啓淳) 이여백(李汝伯)이 먼저 절구 한 수를 지었다.달을 보니 더욱더 고향 생각나는데(見月倍鄕思)푸른 하늘에 달 뜬 지 얼마나 되었던고(靑天來幾時)한밤중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中夜眠無暇)애오라지 짤막한 시를 지어보네(聊將短律詩)순근(順根) 경오(敬五)가 다음과 같이 차운(次韻)하였다.뗏목 타고 천리 먼 길 온 나그네(浮槎千里客)구월의 용산64)이 생각나는구나(九月龍山思)경성이 어디 있느냐 묻노니(京城問何在)큰 깃발 북쪽으로 돌아가네(大旆北歸時)계영(啓榮) 여심(汝心)이 다음과 같이 차운(次韻)하였다.공주로 향하는 길 나그네 생각이 많은데(公州歸路客多思)오늘밤 달이 뜨니 더욱더 간절해지네(倍切今宵且月時)회포를 풀기 위해 담소를 나누다가(爲遣心懷談且笑)술과 시로 호걸스런 흥취 즐겨보네(正耽豪興酒還詩)내가 다음과 같이 차운(次韻)하였다.맑은 밤 달빛에 걸으니 더욱 고향 생각나는데(淸宵步月倍鄕思)더구나 누런 국화 한창인 중양절이로다(況又重陽黃菊時)억지로 술잔 잡고 두세 잔을 마신 뒤(强把數三盃酒後)취한 끝에 호방한 흥취 일어 부질없이 시를 읊네(醉餘豪興浪吟詩) 早發越板峙, 至孝浦朝飯。 越錦江, 抵慕露院中火。 余則先行, 入壙亭 宋相喆家。 暫話欲發則堅挽, 而以同行難離之致, 卽發與主人來路邊, 則同行落後, 廣亭稍待, 路邊逢同行。 暮抵八風亭留宿。 行七十里。 夕飯後, 李啓淳 汝伯先吟一絶曰: "見月倍鄕思, 靑天來幾時。 中夜眠無暇, 聊將短律詩。" 順根 敬五次曰: "浮槎千里客, 九月龍山思。 京城問何在, 大旆北歸時。" 啓榮 汝心次曰: "公州歸路客多思, 倍切今宵且月時。 爲遣心懷談且笑, 正耽豪興酒還詩。" 余次曰: "淸宵步月倍鄕思, 況又重陽黃菊時。 强把數三盃酒後, 醉餘豪興浪吟詩。" 광정(廣亭)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 소재지의 마을이다. 삼남길이 통과하는 길목이고 서울로 가던 인마가 차령을 넘기 전에 한숨 돌리던 곳이다. 때문에 광정역(廣亭驛)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용산 진(晉)나라 맹가(孟嘉)가 일찍이 정서 장군(征西將軍) 환온(桓溫)의 참군(參軍)이 되었을 때, 한번은 중양일(重陽日)에 환온이 용산에서 연회를 베풀어 그의 막료들이 모두 모여서 술을 마시며 즐겁게 놀았다. 그때 마침 바람이 불어서 맹가의 모자가 날려갔으나 맹가는 미처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풍류를 한껏 발휘했던 데서 온 말이다. 후에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 모임을 갖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로 쓰였다. 《晉書 卷98 孟嘉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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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서반(西泮) 김재광(金再光)의 집에 들어갔다. 오후에 다시 예조에 갔다가 신시(申時, 오후 3시~5시까지) 무렵에 과장(科場)으로 들어가 밤을 새웠다. 入西泮 金再光家, 午後復來禮曹, 申時量入場中達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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