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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만(曺秉萬) 시권(試券) 2 고문서-증빙류-시권 曺秉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384_001 조병만(曺秉萬)이 제출한 시권(試券)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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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만(曺秉萬) 시권(試券) 3 고문서-증빙류-시권 曺秉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384_001 조병만(曺秉萬)이 제출한 시권(試券)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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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88년 김종상(金鍾常)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金鍾常 全羅都觀察使 都使<押> □…□ 5顆(9.5×9.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74_001 1888년 3월에 김종상 등 38명이 전라감영에 올린 상서 1888년 3월에 김종상 등 38명이 전라감영에 올린 상서이다. 능주에 사는 정의림(鄭義林)은 호조판서(戶曹判書) 정연(鄭演)의 11세손, 완산현감(完山縣監) 정효(鄭斆)의 7세손이다. 김종상 등은 1885년부터 지난 1888년 2월까지 정의묵의 효행과 학행을 조정에 알리고 그가 관직에 등용되기를 여러 번 청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전 능주목사가 정의림의 행실을 감영에 보고한 것이 비일비재한데도 여전히 합당한 처분이 내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시한번 감영에 상서를 올린 것이다. 김종상 등의 상서에 대하여 전라감영에서는 이와 같이 도의(道義)에 힘쓰는 학자는 전라도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도(道)를 맡길 만한 그릇이니 누군들 감탄하지 않겠냐고 하였다. 이어서 그 아름다움을 장려할 만한 직책이 있다면 고려해 보겠다고 하였다. 상서(上書)란 백성들이 관에 청원이나 탄원할 일이 있을 때 제출했던 소지류(所志類) 문서의 일종이다. 소지류 문서에는 상서 외에도 단자(單子)·발괄(白活)·의송(議送)·등장(等狀) 등이 포함되었고 각 문서들은 발급 주체나 수취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서식적 차이가 있었다. 상서의 경우 기두어에 '上書'라는 문구가 기재된다는 특징이 있다. 관에서는 이러한 소지류 문서의 여백에 제사(題辭) 혹은 뎨김[題音]이라고 부르는 처분을 내렸다. 제사가 기재되었다는 것은 관의 공증을 거쳤다는 의미이므로, 백성들은 제사가 기재된 문서를 소송 자료 또는 권리나 재산 등을 증빙하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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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양회갑(梁會甲) 망기(望記) 2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弦窩先生遺稿刊所 梁會甲 □…□(4.4×4.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3월에 현와선생유고간소에서 양회갑을 간소의 교정으로 임명하는 망기 1935년 3월에 현와선생유고간소(弦窩先生遺稿刊所)에서 양회갑(梁會甲, 1884~1961)을 간소의 교정(校正)으로 임명하는 망기(望記)이다. 교정은 판이 완성되었을 때, 교정쇄를 내어 원고를 대조하여 정정하는 일을 말한다. 현와(弦窩)는 이도(李蒤, 1593~1668)의 호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소(子韶)이다. 26세인 1618년(광해군10)에 생원에 입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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弦窩先生遺稿刊所校 正望梁 斯文 會甲原乙亥三月 日[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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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박두주(朴斗柱) 부의단자(賻儀單子) 고문서-치부기록류-부의록 朴斗柱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박두주(朴斗柱)이 양회갑(梁會甲)에게 보낸 부의단자(賻儀單子) 촛대 一兩을 보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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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通告文右通古事 日往則月來 寒往暑來 故天道恒久而不息久掘則必伸旣塞則復通 故人事回淳而無窮 夫屈者往而歸也 伸者來而亨也 天人感通之理焉可誣乎 吾綾之道山文康公牛山安先生書院遺墟也 書院撤而儒賢之高景 何地士林之依歸 何處近百年立碑設壇春秋釋菜去今年是豈偶爾哉 况自文敎部現有優施將隨役捐助先生之德入人深而天使之然也 凡爲先生後學者同心合力 殫誠重建 非我一二人私言 乃一世公議也 吾輩豈可讓 仁於本部袖手默示而止哉 以本部言之 必觀吾鄕風義 而揮廓力獎勸矣 雖然必有一席爛商後衆志可一羣心可聳 玆先發言以今月六日齊集道山之意 輪詔于一鄕僉執事與先生本孫 覽後胥喩同志無漏 賁然之地 敬要檀紀四二九三庚子四月六日[道山書院重建之印]道山書院重建期成會發起人 梁會甲 閔弘基 吳弘燮 李承福 李基允 金東植 朴魯宗 洪圭植 尹定燮 金煥圭 曺境燁 朱洪錫 金呈容 徐廷彩文中煥 鄭淳龍 裴錫冕 朴道東 曺圭泰 金福熙 高昌柱 具敬完 李弘信 鄭翔鎭 奇龍鎬 朴炳容 朴學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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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化民梁會洛朴準基尹相麟等 謹齋沐再拜上書于城主閤下 伏以古之國家將興 必用賢士 故堯有進善之旌 周有握髮之禮 而又至於漢唐 用以孝廉 賢良身言書判 而是爲四科也 自下不能薦 則自上不聞名聲 而當今之世 林下修道 忍飢讀書者 卽民等之師門鄭義林是也 世襲簪纓 學有淵源 而故觀察使諱麟晋十八世孫 弘文應敎諱熊十三世孫 戶判諱演十一世孫 縣監諱斆七世孫 蘆沙奇先生之高弟也 素有卓異之行 事親至孝 無不周至 及其親終哭泣哀毁 人莫不感泣 而三年居廬 身不釋纕 朝夕省墳 草不長於淚下膝跪 則此非秉彛之天乎 十歲就黃處事之門 敬受學業 趣向已正 十五負從于石塘鄭先生之門 四子六經性理等書 無不貫通 而十九石塘遂沒 乃就學于蘆沙奇先生之門 先生與之講論 大加稱歎曰 古詩有沙彌來扣病僧扉 眉眸通明可學機之語 今子然矣 乃授以天人性命之學儀 則禮義之文服事 數十年深得 師門丈尺 婆娑林衖 不以貪窮易操 所樂者 孔顔之道 所講者 程朱之書也 其氣像 則屹然若中流之砥柱 特然若大冬之孤松 其發揮 則粹然如潤玉之含輝 炯然如良金之自躍 而至若存養省察 海涵萬斛 未見底側 而推比仁義 春生秋肅 自然代序 揆以襟懷 光風霽月 逈然出塵 而遠近學者 踵門問難 酬答如洪鍾之應響 賢愚不齊 敎導如化工之無遺 則非徒南服之冠冕 名聲蔚然於畿湖嶺海之間者久矣 在先世安堂金先生 全齋任先生 相與講道 在今淵齋宋先生 勉庵崔先參判 仁山蘇持平 重庵金監役 相與講學 惟朝廷不聞名聲 鄕狀道報 及前等城主之報營頻仍 尙未蒙朝家拔第之典 其爲抑鬱已久於一鄕一道之士林 而在民等服事 十數年尤不勝悶鬱之情 故玆敢冒昧仰籲於孝理文治之下 伏願特採民等之師門 文學實行 薦報營門 俾達天聽之地 千萬伏祝 伏惟藻鑑戊子四月 日 化民 梁會洛 朴準基 尹相麟 閔寬鎬 梁理默 尹相祿 尹魯永 高光雲 裵學舜 吳昌鎬 金在奎 鄭尙仁 閔泳冑 洪祐三 梁時默 洪承煥 鄭桂昊 李箕休 金亨培 魏龍奎 曹錫柱 高濟錫 朴孝東 金弘基 朴容東 林東弼 朴準憲 邢學奎 文載善 梁相鯉 趙學浨 吳命鎬 朴準會 閔泳頎 朴鼎鉉 洪承源 朴準福 文麒煥 等(題辭)從當報營向事十一日使[着押][綾州牧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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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7년 이만방(李萬邦)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俊鳳 李萬邦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7년 음력 4월 11일에 답주 이준봉(李俊鳳)이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백암리에 있는 논을 이만방(李萬邦)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7년 음력 4월 11일에 답주(畓主) 이준봉(李俊鳳)이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능주면(綾州面) 백암리(白岩里)에 있는 논을 이만방(李萬邦)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준봉은 자신이 매득한 논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옮겨 사기 위하여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하는 전답은 백암리의 가량평(可良坪) 1배미 5승락지이며, 결부수로는 5부 5속의 땅이다. 거래 가격은 전문(錢文) 120냥이며,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한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논을 파는 매주(賣主) 이준봉과 매주(買主) 이만방, 증필(證筆: 증인과 문서 작성자) 김재보(金在甫)이다. 토지소재지인 화순군 능주면 백암리는 현재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백암1리 백암동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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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大正六年丁巳陰四月十一日 前明文右明文事언 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 移買次로 伏在和順郡綾州面白岩里後谷可良坪一夜味五升落負數五負五束庫乙 價折錢文壹百貳拾兩으로 依數捧上是遣 右前此新文一丈 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斷則 持此文記憑考事賣畓主 李俊鳳[印: 李俊鳳信]買主 李萬邦證筆 金在甫[印: 金在甫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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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樞府事兼五衛將者同治九年三月 日[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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