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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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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28년 양회갑(梁會甲) 망기(望記) 2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筆巖書院 梁會甲 筆巖書院(2顆, 5.4×5.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8월 1일에 필암서원에서 양회갑을 본원 추향 대축으로 임명하는 망기 1928년 8월 1일에 필암서원(筆巖書院)에서 양회갑(梁會甲, 1884~1961)을 본원 추향(秋享) 대축(大祝)으로 임명하는 망기(望記)이다. 필암서원에서 8월 11일에 진행되는 추향대제에서 화순군 도림면 방축리에 거주하는 양회갑을 대축으로 임명하였다. 필암서원은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황룡면(黃龍面) 필암리(筆岩里)에 있는 서원으로, 1590년(선조23)에 장성읍 기산리에 설립하였고, 정유재란 때에 소실되자 1624년(인조2)에 복원하였으며, 1662년(현종3)에 사액(賜額)되었고, 동왕 13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조선의 김인후(金麟厚)·양자징(梁子澂)을 봉향(奉享)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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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化民 曺秉萬單子恐鑑 伏以校任差出民之名是乎所 竊伏念聖朝崇奉 何等重地 而如民愚魯者 恐不克擔荷 以且章句之迂 未得講俎豆揖讓之禮 交遊盡在於笠簑 聞見不出於漁樵 揆諸私分 極涉不安 緣由仰稟許遞民校任之地 無任惶悚之至辛未五月日官[署押](題辭)山樵水漁之餘 朝講暮習 恐無相妨向事初八日[官印] 3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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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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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22년 조석윤(曺錫胤)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曺錫胤 行縣監 *1顆(6.1×6.2)*吉挾無改印(墨印, 14.1×5.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368_001 1822년 화순현에서 환부(鰥夫) 유학(幼學) 조석윤(曺錫胤, 47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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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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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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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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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25년 조석량(曺錫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曺錫良 行縣監 *1顆(6.0×6.5)*吉挾無改印(墨印, 14.0×5.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372_001 1825년 화순현에서 유학(幼學) 조석량(曺錫良, 44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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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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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孟奇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1년(고종38) 1월 21일에 답주 유학 김맹기(金孟奇)가 전라남도 동복군 내남면 도마동에 있는 율자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1년(고종38) 1월 21일에 답주(畓主) 유학(儒學) 김맹기(金孟奇)가 전라남도 동복군(同福郡) 내남면(內南面) 도마동(刀磨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맹기는 전해 받은 논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빚이 많은데 갚을 길이 없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방매 토지는 도마동의 촌하평(村下坪)에 있는 율자(律字) 답(畓) 7도락로 부수(결부수)는 1부 5속과 묵히고 있는 1속이며 배미로는 7배미의 땅이다. 거래 가격은 전문(錢文) 20냥이며,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한다고 밝혔다. 문서 발급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김맹기와 증인 유학 김원서(金元瑞), 필집(筆執) 김재화(金在化)이다. 토지소재지인 동복 내남면 도마동은 현재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다산리 도마동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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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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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大韓光武五年辛丑正月二十一日 前明文爲明文事段 傳來畓累年耕食是多可 債錢許多 出處無路 故伏在同福內南面刀磨洞村下坪 律字畓七刀落負數一卜五束 陳一束 夜味七夜味㐣 價折錢文二十兩 右前依受捧上 新文一丈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相左之端 則持此文記告 官 卞呈事畓主 幼學 金孟奇[着名]證人 幼學 金元瑞[着名]筆執 幼學 金在化[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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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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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梅城棣座下 允洪氏亢陽爲咎 不審棣體益衛 春間令允巹禮 想必利行 而閤節均穩耶 爲溸區區者 摯情下長時泄痢 專沒佳况 苦憐奈何 第俟一者奉攄 而各在貧病 亦不能得 或可從速惠然耶 病甚不備候禮壬申六月卄日 情下高光善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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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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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曩書如得尺蔡拱璧 至今摩娑 自不覺弊丌頓富也 未審花煦棣體益衛 大覃均禧 旣溯且仰之至 令咸以此妙齡 多有所進就底望可愛 但恐以此病昏多負其所以來之意 奈何 眩昏忒甚剗蔓 不備追謝儀戊午二月卄四日 病生高光善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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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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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答李允洪 柄聖曩書如得尺蔡拱璧 至今摩娑 自不覺弊丌頓侈也 仍審棣體益衛 旣溯且仰 令咸以此妙齡 多有所進就底望可愛 但恐以此病昏 恐負所以來之意 奈何 第俟一者奉攄 而各在貧病 亦不能 或可從速惠然耶 拙句搆去詩云乎哉 笑領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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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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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伏未審日來再從兄主氣體候康寧 少大各節俱在平泰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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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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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中에게 異議가 發生하야 知面損傷할ᄲᅮᆫ아니該木價格도 必至折高登할 憂慮가 有之云이라ᄒᆞ시니 弟以思料則價格之高下은 勿論ᄒᆞ고 相視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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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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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27년 양회갑(梁會甲) 망기(望記) 3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集成祠玉振堂 梁會甲 集成祠印(4.4×4.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8월 20일에 나주 집성사 옥진당에서 양회갑을 본사의 추향 대축으로 임명한 망기 1927년 8월 20일에 집성사(集成祠) 옥진당(玉振堂)에서 양회갑(梁會甲, 1884~1961)을 본사의 추향(秋享) 대축(大祝)으로 임명한 망기(望記)이다. 집성사 옥진당의 장의(掌議) 나병집(羅秉集)과 임언재(任漹宰)가 유학(幼學) 양회갑을 9월 5일에 있는 본사의 추향 대축(大祝)으로 추천받아 정했음을 양회갑에게 알렸다. 집성사는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와우리 559번지에 있는 사당으로, 공자·주자·안향을 배향하는 사당이다. 1924년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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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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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皮封)梁 斯文 回甲氏望(內紙)望九月初五日本祠秋享大祝薦定幼學梁會甲丁卯八月二十日[集成祠章]集成祠玉振堂掌議羅秉集任漹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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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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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13년 양회락(梁會洛)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梁會洛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303_001 1913년 3월 26일에 족종 양회락이 보낸 간찰로 수신인 미상인 간찰첩의 낙장 1913년 3월 26일에 족종(族從) 양회락(梁會洛 1862~1935)이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 적힌 간찰첩의 낙장이다. 좌우에는 오침선장(五針線裝)을 한 것으로 보이는 구멍 5개가 보이고 중앙에는 양쪽을 접어 색이 진해진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번 지재(芝齋)에서 작별한 것이 꿈속만 같고 당시 자신에게 해준 말이 도탑고 정다웠는데 또 서신을 보내주니 병을 앓고 있는 중에 몹시 감사하다고 인사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것이 여러 달이라 아직도 원기가 소진되어 병을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자신이 병 때문에 간행하는 일을 함께 할 수 없지만 널리 배우고 체험한 공력이 바로 여기에 있으니 모쪼록 좌우를 응대할 때 근원을 취하여 배운 바를 잃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독서한 것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우리 가문의 자제들 가운데 상대방이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며 독려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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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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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통지류

(葉書_前面)京城府 益善洞 一六六ノ三一宋佐顯方梁 會 甲 氏光州 泉町梁會極上[右便日附印: 光州, 13.6.13, 前8-12](葉書_後面)伏承下書 下情慰感 更伏詢數辰旅中氣力無損 伏慕不任 再從弟侍率無頉耳 梅丈日前 下駕時招我翌日赴晋則已發駕耳下示二十紙 近日自此無能力 聞不勝悚憫然 鳳洞兄已爲取用爲言則 甚便利方法也 以此 下諒若何 餘不備謝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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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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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皮封_前面)和順郡道林面草坊里梁 斯文 會甲 座下(皮封_後面)[華岩書院] 花巖書院(內紙)今月十一日丁卯本員秋享大 祝望梁會甲戊辰八月一日[華岩書院]華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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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14년 정현채(鄭現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現采 梁會甲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4년 5월 12일 정현채가 원숙 양회갑에게 보낸 간찰 1914년 5월 12일에 손제(損弟) 정현채(鄭現采 1890~?)가 원숙(元淑) 양회갑(梁會甲 1884~1961)에게 보낸 간찰이다. 정현채(鄭現采)는 자(字)가 원실(元實),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일신재집(日新齋集)》 문인록에 실린 인물로 확인된다. 원숙은 양회갑(梁會甲 1884~1961)의 자이다. 본관은 제주(濟州), 호는 정재(正齋), 아버지는 양재덕(梁在德)이고 어머니는 죽산안씨(竹山安氏) 안평환(安平煥)의 딸이며,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정현채는 평소 얼굴만 알고 지낸지는 몇 년 되었지만 학문적 토론이나 가르침을 받지 못해 아쉬움을 표하는 것으로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공맹(孔孟)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세태를 한탄하고 불교의 교리를 비판하였으며 오늘날 이른바 개화라는 것이 어떠한 법교인지 알 수 없거니와 젊은이들이 날로 조상을 등 돌리고 스승을 배반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한탄하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원숙 형이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홀로 우뚝 서서 유학이 없어지지 않게 하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고 계신다면서 칭송하는 말을 하였다. 근래 몸에 병을 얻어 바깥출입을 못하고 지낸다는 소식을 전하였고, 자신의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적 양공(狄梁公)이 침술을 써서 부잣집 아이 코끝의 혹을 치료했던 것처럼 자신에게 가르침을 보내줄 것을 청하였다. 간찰 말미에는 춘부장의 안부 및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도 전하면서 보시고 불에 태워 없애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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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서신·통지류

1938년 양회극(梁會極) 엽서(葉書) 고문서-서간통고류-엽서 梁會極 梁會甲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소화13) 6월 13일에 광주 사는 재종제 양회극(梁會極)이 서울에 머물고 있는 양회갑(梁會甲)에게 보낸 안부 엽서 1938년(소화13) 6월 13일에 광주(光州)에 사는 재종제(再從弟) 양회극(梁會極)이 서울에 머물고 있는 양회갑(梁會甲, 1884~1961)에게 보낸 안부 엽서이다. 편지를 받고 위로되었다는 것, 여러 날 동안 잘 계시냐는 물음, 자신은 어른 모시고 가족 데리고 무탈하게 지낸다는 것, 매장(梅丈)께서 일전에 내려오셨을 때 나를 초대하여 다음날에 진(晋)에 갈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미 출발하였다는 것, 말씀하신 20 종이는 최근에 자신이 무능력하여 죄송하다는 것, 봉동(鳳洞)의 형이 이미 취하여 쓰고 있다고 말했는데 매우 편리한 방법이라는 것 등의 내용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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