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乾隆六十一年乙卯三月十五日 筆墨契員前明文右明文事段 當此凶年 書齊契員 生道爲難仍于 不得而縣地淸溪面大云洞伏在 請字畓一斗落只二夜 負數一卜庫果 壯財坪悲字返畓一斗落只二夜味負數一卜五束庫乙 價折錢文四兩以交易 依數捧上爲遣 右人前永永放賣爲乎矣 本文記段 他田畓幷付仍于 不得出給爲▣…▣契中 若有雜談 則此文卞正事畓主 書齊契執綱 幼學 崔福鉉[着名]證 幼學 崔夢盛[着名]筆 幼學 朴宗休[着名](背面)筆墨契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乾隆五十六年壬寅十月初六日 幼學金兌宗明文右明文事段 祖上給得耕食是去在茶山坪崗字垈田四斗落只 卜數四卜四束庫乙 價折錢文三兩五戔 依數捧上爲遣 右人本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門中子孫中 若有雜談是去等 以此文告官卞呈事田主 寡婦 金氏[右掌]長子 李潤證人 田主從兄 李孝玉證筆 幼學 朴能[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95년 필묵계원(筆墨契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福鉉 筆墨契員 崔福鉉<着名>, 崔夢盛<着名>, 朴宗休<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5년 3월 15일에 서제계(書齊契) 집강 최복현이 필묵계원에게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795년 3월 15일에 서제계(書齊契) 집강 최복현이 필묵계원에게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명문을 작성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흉년이 들어 서제계원들이 살아갈 방도가 어려우므로 부득이 해남현 청계면(淸溪面) 대운동(大云洞)에 있는 청자답(請字畓) 1두락 2배미[夜], 부수(負數)로 1복인 곳과 장재평(壯財坪) 비자반답(悲字返畓) 1두락 2배미, 부수로 1복 5속인 곳을 전문 4냥으로 값을 쳐서 받고 영구히 방매하는데, 본문기(本文記)는 다른 전답도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내어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명문은 주로 매매 등의 거래 내역을 작성하여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발급한 조선시대의 계약서를 말한다. 명문에 기재된 매매 관련 사항은 명문의 작성일, 매수인의 신분과 성명,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 매매 이유, 매매목적물의 표시, 지불수단의 종류 및 액수, 본문기의 교부 여부 등이 있다. 마지막에는 거래에 참여한 매도인, 매매 시 참여한 증인, 명문을 작성한 필집의 성명과 서명 등을 한다. 매매 계약이 성립한 후에는 새롭게 작성한 매매 명문인 신문기(新文記)와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가 적힌 구문기(舊文記)를 매수인에게 함께 양도해야 했다. 구문기로는 주로 분재기와 명문이 사용되었으며, 이들을 본문기(本文記)라고 한다. 명문에서 쓰이는 용어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두락(斗落)은 '마지기'로 한 말[斗]의 씨앗을 파종할 수 있는 면적의 단위이다. 배미[夜味]는 밭이나 논의 두렁을 기준으로 한 지형적인 경계 구분이다. 앞에 수효가 붙어서 같은 지번 내의 토지의 구획이 몇 곳인지를 표시한다. 복(卜)은 수확량을 기준으로 하는 전답 면적 표기 방식으로, 지게로 한 번 질 수 있는 양이다. 곡식의 수확량은 토지면적의 단위로 쓰이면서도 동시에 수확량에 근거한 과세 단위로도 사용되었다. 양자(染字)는 토지를 측량할 때 붙이는 구분 순번이다. 천자문의 글자를 차례대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자호(字號)라고 하였고, 하위 단위로 지번(地番)을 사용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明治四拾三年庚戌十二月十八日明文右明文事襟得田累年捧禾是如多可移買次伏在懷德面白岩洞可良坪餘字田一片二斗落負數四負八束㐣價折錢文捌拾伍兩依數捧上是遣右前新文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弊則持此文記憑考事田主孫在春[着名]證人金良淑[印]里長李此化[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張雲衢爲通政大夫者康熙四十六年三月初三日年九十 進宴後 推恩加資事承傳[施命之寶]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장효지(張孝智)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張孝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440_001 전라도 보성군 정곡면 은치촌에 사는 호주 장효지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하여 제출한 호구단자 전라도 보성군(寶城郡) 정곡면(井谷面) 은치촌(隱峙村)에 사는 호주(戶主) 장효지(張孝智)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하여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장효지의 직역은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이고, 나이는 84세 신미생(辛未生)이며, 본관은 흥덕(興德)이다. 그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치언(致彦), 할아버지 통정대부 운구(雲衢), 증조 장사랑 행정의훈도(行旌義訓導) 경한(景翰), 외조(外祖) 통정대부 송정언(宋廷彦)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장성용의 아내 허씨(許氏)는 나이 74세 신사생이고 본적은 김해이다. 허씨의 사조는 아버지 통덕랑 세신(世臣), 할아버지 통훈대부 행예빈시주부(行禮賔寺主簿) 정기(廷起), 증조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승류(承柳), 외조 학생 이명남(李命楠) 본관은 완산(完山)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인 한신(漢臣) 나이 55세 경자생과 한익(漢翊) 나이 50세 을사생이 있다. 소유 하고 있는 여종은 예선(礼善)이고 나이 51세 을사생으로, 그녀의 어머니는 수영개(水营介), 아버지는 지부(之夫)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井谷面第 里隱峙村第二綂第 戶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張孝智年八十四辛未 本興父學生 致彦祖通政大夫 雲衢曾祖將仕郎行旗〖旌〗義訓導 景翰外祖通政大夫宋廷彦 本礪山妻許氏年七十四辛巳 籍金海父通德郞 世臣祖通訓大夫行禮賔寺主簿 廷起曾祖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承柳外祖學生李命楠本完山率子漢臣年五十五庚子子漢翊年五十乙巳賤口秩婢礼善年五十一乙巳母水营介父之夫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46년 장정규(張珽奎)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張珽奎 行縣監[着押] *周挾無改印, 1顆(墨印, 17.5×5.5)*1顆(6.0×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458_001 1846년 동복현(同福縣)에서 유학(幼學) 장정규(張珽奎, 53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47년 장한신(張漢臣)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張漢臣 行縣監[着押] *周挾無改印, 1顆(墨印, 18.3×5.8)*1顆(7.3×7.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459_001 1847년 동복현(同福縣)에서 유학(幼學) 장한신(張漢臣, 67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서신·통지류

(葉書_後面)除煩 向約郡地枉臨云 苦待掃榻坐矣 向鳳開則姑未出入云 故弟爲□心耳弟族叔司諫公敎旨講□與往復書類持來兄示 適因出他未得如意耳 從速日間(葉書_前面)枉臨于車洞鳴鶴亭千萬伏望耳幸勿等閒見之 千萬伏望耳丁亥三月五日 戚弟 李秉黙 上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77년 조봉환(曺鳳煥)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曺鳳煥 康津縣監 <書押> 3顆(6.8×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7년(고종14) 11월에 화순에 사는 조봉환이 강진현감에게 엄동설한에 아사의 지경에 처한 유배죄인 아버지를 도와달라고 청한 상서 1877년(고종14) 11월에 화순(和順)에 사는 조봉환(曺鳳煥)이 강진현감(康津縣監)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부친께서 지난 을해년(1875) 6월에 사림이 대궐 문 앞에 엎드려 상소할 때 소두(疏頭)로서 참여하였다가 강진 고금도에 유배되었는데, 그 후 흉년을 당해 수 백 냥에 이르게 빚을 지고 있는 와중에 500냥을 베풀어 주셨다며 감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엄동설한에 아버지가 아사(餓死)의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본읍(本邑)의 사림(士林)과 종족(宗族)을 뒤에 적을 것이니 이들로 하여금 도와주도록 해달라고 청한 내용이다. 후록(後錄)에는 대구면(大口面) 계치(桂峙)의 조씨(曺氏) 문중과 본읍의 강진향교, 귤동(橘洞)의 윤진사(尹進士) 문중이 적시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관에서는 가엾다고 탄식 한 후 '해당 진(鎭)이 어찌 이리 괄시하는지 모르겠다', '잘 지내는 방법은 자기에게 달려 있다.'라는 내용으로 20일에 제사(題辭)를 내렸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和順居民 曺鳳煥 頓首百拜 泣血上書右謹言 伏以情到極天 不得無爲親之乞 而負米懷橘 是爲古人之錫類也 民之父親 以乙亥六月伏 閤多士疏頭事 被恩譴 而安置于古今島是乎所 本第窮寒 而無支供之路 乙亥秋冬 則以 營邑間顧助之澤 得爲圖生是白加尼 自其後經大無之歲 三年間食債與救病之債 積至數百餘兩 而調過之望 束手沒策 今番 恤問 及於顑頷之中至 惠以五百銅葉 飽德銘 恩 至今感祝萬萬 而仁恤之 澤 海與俱深 山與俱重 盖此久客情勢 雖平身有難支保 而以一介寒士 居於絶島之安置 坐席未旋 而四顧無親 獨掌難鳴 爲子侍湯之情 益復如何哉 嚴冬風雨 淚見病親之饑寒到骨 而不可坐俟奄奄 勢無捨路之山之理 而以其情地 則宗族稍饒之中 所當顧助 以其事理 則自以道內事 萬人之罪 萃於一身 境內士林中 先可問助 而自上處分减死罪人 俾免饑死之境 是爲施德好義也 玆以本邑士林與宗族中後錄 冒悚仰稟爲去乎 伏乞洞燭敎是後 依後錄 嚴明分付官下人 于其所開示道理 俾有優助而得爲圖生之地 蒙受河海之 澤 千萬伏祝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康津城主 處分 丁丑十一月 日 後錄大口面桂峙曺氏門中本邑鄕校中橘洞尹進士門中官[署押](題辭)觀此所訴 矜慘矜慘 徃陣情境 則似不無斗水之惠 而該鎭豈如是恝然乎 奠保之方 惟在自己事二十日[官印] 3箇處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71년 조병만(曺秉萬) 단자(單子)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曺秉萬 和順縣監 <書押> 3顆(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1년(고종8) 5월에 조병만(曺秉萬)이 화순현감에게 자신의 교임 차출을 사양하며 교체해 줄 것을 청한 단자 1871년(고종8) 5월에 조병만(曺秉萬)이 화순현감(和順縣監)에게 올린 단자(單子)이다. 자신을 교임(校任)으로 차출하였는데, 대성전을 숭봉하는 일을 자신처럼 우매한 자가 담당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달라고 부탁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화순군수는 8일에 '산에서 나무하고 물에서 고기 잡으면서 아침저녁으로 강습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을 것 같다고 답하며 교체를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화순현감은 남학희(南學熙, 1833~미상)가 맡고 있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03년 김육란(金六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弼宗 金六蘭 金弼宗<着名>, 金亨宗<着名>, 李再聃<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3년 11월 22일에 장형(長兄) 김필종이 사제(舍弟) 육란에게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03년 11월 22일에 장형 김필종이 사제 육란에게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명문을 작성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자기 몫으로 받은 전답을 경작해 오다가 긴요히 쓸 곳이 있어 해남현 옥비안구평(玉妃案口坪) 관자답(闕字畓) 5두락 3배미, 부수(負數) 15복 5속인 땅을 전문 30냥으로 값을 쳐서 받고 방매하되 본문기(本文記)는 분실하여 줄 수 없다고 하였다. 추후 자손 중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명문으로써 증빙하라고 하였다. 명문은 주로 매매 등의 거래 내역을 작성하여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발급한 조선시대의 계약서를 말한다. 명문에 기재된 매매 관련 사항은 명문의 작성일, 매수인의 신분과 성명,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 매매 이유, 매매목적물의 표시, 지불수단의 종류 및 액수, 본문기의 교부 여부 등이 있다. 마지막에는 거래에 참여한 매도인, 매매 시 참여한 증인, 명문을 작성한 필집의 성명과 서명 등을 한다. 매매 계약이 성립한 후에는 새롭게 작성한 매매 명문인 신문기(新文記)와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가 적힌 구문기(舊文記)를 매수인에게 함께 양도해야 했다. 구문기로는 주로 분재기와 명문이 사용되었으며, 이들을 본문기(本文記)라고 한다. 명문에서 쓰이는 용어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두락(斗落)은 '마지기'로 한 말[斗]의 씨앗을 파종할 수 있는 면적의 단위이다. 배미[夜味]는 밭이나 논의 두렁을 기준으로 한 지형적인 경계 구분이다. 앞에 수효가 붙어서 같은 지번 내의 토지의 구획이 몇 곳인지를 표시한다. 복(卜)은 수확량을 기준으로 하는 전답 면적 표기 방식으로, 지게로 한 번 질 수 있는 양이다. 곡식의 수확량은 토지면적의 단위로 쓰이면서도 동시에 수확량에 근거한 과세 단위로도 사용되었다. 양자(染字)는 토지를 측량할 때 붙이는 구분 순번이다. 천자문의 글자를 차례대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자호(字號)라고 하였고, 하위 단위로 지번(地番)을 사용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己卯式同福縣內西面第五寶巖里第卄八統第一戶幼學鰥夫羅得儉年五十一己丑本錦城父通德郞 舜佐祖學生 景瞻曾祖學生 載挺外祖學生房啓亨本南陽奉母房氏歲八十六甲寅率子幼學廷說年三十二戊申外祖學生金萬錠本光山賤口逃亡婢福丹年五十庚寅母戶婢甲辰父良人談伊丙子戶口相準印行縣監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97년 나대운(羅大運)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大運 同福縣監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983_001 1897년 나대운이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여 동복군에 제출한 호구단자 1897년 동복군 내서면 학탄리에 거주하는 나대운이 31세 때에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여 동복군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이 호구단자는 기존 조선시대 구호적의 양식으로 작성되었으나 세부 내용은 신호적(新戶籍)의 기재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1896년 「호구조사규칙」과 「호구조사세칙」이 시행된 이후, 인쇄된 호적표에 기입하여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 문서는 신호적의 기재요소는 기입하되 작성방식은 구 호구단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우선 열서(列書)로 작성한 것은 구 호구단자의 방식이지만, 신호적의 기입 요소를 충실히 기재하고 있다. 먼저 호주(戶主)의 사조를 적도록 한 것은 구 호적과 변함이 없었으므로 그대로 기재하였고, 기존 직역을 신호적에서는 '직업(職業)'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나대운은 자신의 직업을 '사업(士業)'이라고 적었다. 처(妻)의 사조(四祖)를 적지 않은 것은 신호적의 양식대로 따른 것이고, 어머니 송씨(宋氏)부터 처 임씨(林氏), 아우 뇌운(雷雲)과 제수 이씨(李氏), 그리고 아우 차운(且雲)은 실제 '동거친속(同居親屬)'을 기입한 것이다. 구 호적의 노비 대신 신호적에서는 '고용(雇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이 문서에서도 역시 '고용' 항목에 노 갑봉(奴 甲奉)을 적었다. 신호적에서는 실제 동거하고 있는 사람을 '현존인구(現存人口)' 항목에 남녀로 구분하여 적도록 하였는데 이 문서에서도 그에 따라 남녀를 나누어 남자 셋, 여자 셋으로 구분하여 기재하였다. 신호적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가택(家宅)이 기유(己有)인지 차유(借有)인지, 그리고 가택의 형태가 기와인지, 초가인지, 또 칸수는 몇 칸인지를 구분 기재하도록 한 점인데, 이 문서에서는 '초가 5칸'이라고 적혀 있다. 이외에 신호적에는 어느 지역에서 이곳으로 이거(移居)했는지를 표기하도록 한 '전거지(前居地)'와 '이거연월(移居年月)'의 항목이 있는데 이 문서에서는 이거를 하지 않고 해당 지역에 그대로 살고 있다는 뜻으로 '전거(前居)'라고 기재하였다. 구 호적이 3년마다 한 번 작성하도록 하였으나 「호구조사세칙」에 따르면 매년 1월에 호적표를 작성하도록 하였는데, 이 나대운의 8건의 호구문서는 모두 1년마다 작성된 것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冷川昌順名下稅米二斗, 代黃租五斗,收家于本里戶首處留置, 不日內舂整倉納之地, 幸甚.丙戌二月二十日, 馬浦將吏 姜[着名]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