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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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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통지류

(葉書_前面)全南 和順郡 道林面 草坊里梁正齋會甲省制座京城市 外滄 川里 八0 金商憲方 留金魯洙[右便日附印: 西大門 7.3.24, 后4-8](葉書_後面)不有古人何以千里飛書問此寒窓棲遲之一厝大耶 感荷無射 從審春寒省餘制軆万扶尤叶日夕仰禱之摯 世弟一入苦海 登岸無期 滄浪奈何 笑儂儀疇狀 而嶺友又有同硏者 未邀金友耳 示事曷敢不竭力也 當隨機圖之矣 仰托記文 此非詩詞之比 而 尊敎如是 謹當惟命 而關制之後 幷次鄙韻以 惠 俾窮巷生輝切仰 紙窄言長 惟冀照亮 二月旬七日世弟 金魯洙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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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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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77년 조병만(曺秉萬) 단자(單子) 초(抄)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曺秉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7년(고종14) 11월에 고금도 진안에 위리안치 된 소두죄인 조병만이 아들 조봉환을 보내어 자신의 힘든 유배지 생활을 전하고 관대하게 해 줄 이를 모색하면서 수령에게 올린 단자의 초본 1877년(고종14) 11월에 고금도(古今島) 진안(鎭安)에 위리안치 된 소두죄인(疏頭罪人) 조병만( 曺秉萬)이 아들 조봉환(曺鳳煥)을 보내어 인근 고을 수령에게 올리는 청원 단자(單子)의 등본(謄本)이다. 자신이 세자에게 을해년(1875) 소두(疏頭)가 되어 사정을 개달(開達)한 일로 인해 귀양을 왔는데, 그 후로 흉년이 들어서 3년 동안의 밥값과 병 치료비가 수백 냥에 이르렀으나 갚을 길이 없는데다 병을 앓고 있으니, 아들의 심정이 어떠하겠느냐고 하면서 이에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 인후하고 관홍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아들 봉환(鳳煥)이 한 번 찾아뵙고자 하니 받아들여주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본 문서는 초본(抄本)으로 실제 문서가 상대에게 올려 졌는지는 알 수 없다. 본 단자에서는 수취자를 '엄중절월(嚴重節鉞)'로 칭하였는데, 절월(節鉞)은 지방에 관찰사(觀察使)·유수(留守)·병사(兵使)·수사(水使)·대장(大將)·통제사(統制使) 등이 부임할 때 임금이 내어 주던 절(節)과 부월(斧鉞)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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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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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古今島鎭安置疏頭罪人 曺秉萬 謹譴迷兒鳳煥 仰稟單子誠惶恐鑑 伏以開達情事於世好之地 古今無間罪人 以乙亥六月道內章甫 呌閽時 敢參疏頭事 被恩譴 而與畿嶺疏頭 同時安置于古今島鎭 乙亥秋冬 則以 都巡使厚恤之澤 親知守令間 問助之力 得爲圖生 而自其後經大無之歲 三年間食債 與救病之債 積至數百餘兩 萬無備報之方 而調過且爲束手沒策 重以沉綿之身 病呻囈中 慷慨有詩曰 辟糓經旬八海年 旅窓非爲學成仙 人間孰使烟無價 天上惟聞月不錢 雪後陽和醫病樹 波頭神助濟危船 須看井上兒匍匐 惻隱心端出自然 盖此久客情勢雖平身有難支保 而居於絶島安置 四顧無親 獨掌難鳴 爲子侍湯之情 益復如何哉 嚴冬海風 淚見病親之饑寒逼骨一縷奄奄之中 渠之情狀 亦所不忍見也 環顧道內 別無知舊間佩符之所 而得聞 仁厚之風度 寬弘之宇量 鎭於近境 仰若山斗 而比隣居停李學士 亦娓娓說到 不勝栢悅之情 迷兒鳳煥 思欲一晉面陳 而 嚴重節鉞之下 慮有齟齬之端 故玆以冒悚仰達其情之戚 幸有以 恕諒 千萬伏望丁丑十一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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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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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조병만(曺秉萬) 등 상언(上言) 초(草)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曺秉萬 等 高宗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5년(고종12) 6월에 전라도유생 유학 조병만(曺秉萬)이 임금에게 올린 상언의 초본 1875년(고종12) 6월에 전라도유생(全羅道儒生) 유학(幼學) 조병만(曺秉萬)이 임금에게 올린 상언(上言)의 초본(草本)이다. 대원위(大院位) 합하(閤下)가 사가로 나가신지 거의 1년이 되가니, 이제는 본궁으로 돌아오시게 해달라고 청원한 내용이다. 이 일로 조병만은 전라도 강진현 고금도에 위리안치 되어 9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정성들여 쓴 글자에 고친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아 완본을 만들기 전의 초안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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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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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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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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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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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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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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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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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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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蹲柿旣蒙 勤念緊感緊感価本一緡奉呈耳 京便尙阻 曆書未得 此便送上以致節晩 可歎可歎 聖九甫亦平安否 今不得一曆表情 可悵可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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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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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涓吉郞丙寅火 乾离同配閨甲戌火 可期初男送單 八月二十日辛巳加冠奠鴈日朝 西南向坐奠鴈十一月十一日(陽十二月十六日)辛丑巳時 自午前十時 至仝十一時訖于歸同日 交拜宜南北相向納幣 亦同日先行迎郞閨座次 皆西南向周堂在堂 則廳中行禮忌之 行新婚式則不忌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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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單子玄一纁一壬戌正月初八日 羅州后人羅又祿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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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28년 양회갑(梁會甲) 망기(望記) 1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農巖先生文集重刊所 梁會甲 農巖先生文集重刊所之印(3.5×3.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2월에 농암선생문집중간소에서 양회갑을 유사로 임명하는 망기 1928년 2월에 농암선생문집중간소(農巖先生文集重刊所)에서 양회갑(梁會甲, 1884~1961)을 유사(有司)로 임명하는 망기(望記)이다. 농암은 김창협(金昌協, 1561~1708)의 호(號)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 삼주(三洲)이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로 1669년(현종10) 진사가 되고 1682년(숙종8)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집의, 헌납, 대사간, 동부승지, 대사성, 청풍부사 등을 역임했지만 그는 벼슬보다 문학과 유학(儒學)의 대가로서 이름이 높았고, 당대의 문장가이자 서예가였다. 학설은 이기설(理氣說)로 이이(李珥) 보다는 이황(李滉)에 가까웠으며 호론(湖論)을 지지하였다. 숙종의 묘정(墓庭)에 배향되고, 양주(楊州)의 석실서원(石室書院), 영암(靈巖)의 녹동서원(鹿洞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문집에 『농암집(農巖集)』, 저서에 『농압잡지(農巖雜識)』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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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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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元淑尊兄省經下 入納 道林草坊夫春龍湖謹拜書上 [敬]拜納元淑尊兄衡泌之下 現采几下不足見齒於人 而好德之彛性 尊賢之良心 不後於人 尊兄曷敢忘哉 尊兄曷敢忘哉 於兄面交 積有年所 而講討規警 未有半分者 抑何素無就正之資故也 謙遜自牧 和敬待人 目擊於几床之躬挹矣 才器挺豪 知見高明 耳熟於師友之傳誦矣 每欲一書 請敎求益 而不惟語筆短澁 固陋空空 猥托友朋之例 有所不敢爾也 今者致書 非曰能之 自念于心 而若不事賢友仁觀善效益 則終是無聞 未免見惡而然也 然則惟兄矜此質懦才疎而勿以毋友不如 惟兄矜此不憤不悱 而勿以三隅不反 噫大土潑墨斯道陽九 以名爲士林之領袖者 或視儒者之道 如烏喙之不可嚌 亦以孔孟之敎爲迂闊而不能循 淊淊相趨於風聲功利之末 而猶恐不及也彼釋氏者 以父母爲前生寄宿 以其身爲水漚虛殼 以其髮爲煩惱無用 只尙虛滅之道而已 今所謂開化者 未知怎麽樣法敎 而亦追釋氏之餘糟死燼歟 年少才俊 日以下喬入幽 叛父背君 以行其洋洋自得之事 嗚乎其不救矣 紇雀寧凍 而不出於山 新菊至枯 而不謝於枝 在物猶然 矧伊人而不如惟吾 尊兄有見於此 而矻立頹波之中 獨立不惧 使吾林不孤寂 使斯道不泯滅 爲晩進末才之迷途指南 其賜至大矣 其惠難忘矣 然剝膚日甚 聰敏之儒 亦且不保 况其不如現采者依保主人邊人乎 所望惟知舊如尊兄印而置之胸抱之間 時惠以切劘之益 則現采於是得爲完人 而平生志業 庶有依倣之歸也 偶得身病 數旬重痛 近僅見效 未出戶庭 私心鬱懷 不啻在籠之雲翼而已 平日所爲得罪于天造物者 每年一次戱我於灔澦之中耶 但呌其痛 不悔其過 奈何奈何 做業一着不須言也 不病時 以懶自繞 不能推究於內面肯綮之奧 含含糊糊 所得者皮毛 所弄者虛影 十餘年文房 陪師質友 不過一場酣夢 可笑 况在病枕乎 医身病者 扁華也 不足爲憂 心病不病之病 而雜藥之證 則甚爲憂惧 然溯問治救之方者 惟師友也 惟兄肘下 必有狄梁公之行針妙術 使富兒鼻端之贅 爲腦下針 應手而落者 勿靳而示及焉 千萬至望 餘祝益加乾惕 以扶窮泉 一線之雷 令從亨範兄家食乎僑居乎 受業于鄭丈雲藍脚下之說依俙入耳 畔者久矣 果爾否 願聞願聞 力疾握管 意思不領 語失倫脊 伏希吾兄加點竄而鑑察焉甲寅五月旬二日 損弟鄭現采再拜地未一舍 信息無階 耿悵不已 伏問比天春府主萬安 大小閤內 別無見故兄經候連得崇福 區區懷仰 昕宵不任 損弟庭候安省 家眷亦保前樣 是幸是幸 身病如右 餘何煩浼 所納書幅 一不成說 但希垂敎之一端而付呈 一覽而丙丁之 千萬幸甚 現采又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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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김을수(金乙洙)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乙洙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5년 김을수(金乙洙)가 초방리(草坊里) 장촌댁(獐村宅)에 인심도심(人心道心)과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해 질문하는 내용의 간찰 1915년 4월 1일에 김을수(金乙洙)가 초방리(草坊里) 장촌댁(獐村宅)에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어른 모시며 그럭저럭 지내고 있지만 공부가 진전이 없다고 겸손한 인사로 시작하였다. 논변이 있는 부분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아 질문한다고 하면서 혹자와의 답변 내용을 직접 적고 있는데, 혹자가 '도심(道心)은 의리에서 나오는 것이고 인심(人心)은 몸뚱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인심과 도심이 두 가지 마음인가? 또 주자(朱子)가 도심을 일신(一身)의 주인이 되게 하여 인심이 그 명을 듣게 만든다고 말한 것으로 보면 두 가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어째서 안 되는가?'라고 질문하기에, 자신이 '인심과 도심을 두 가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불가하다. 대개 이 마음이 식색(食色)을 위해 발동하면 인심이 되고 또 그 발동을 헤아려보아 도리에 합당한 것을 도심이라고 한다. 식색을 위해 발동한 것도 이 마음이고 그 발동을 헤아려 보는 것도 이 마음인데 어찌 두 가지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주자가 운운하였다. 어찌 일신의 주재가 된 것도 한 마음이고 명을 듣는 것도 한 마음인데 두 가지 마음이 있다고 하면 되겠는가. 또 물에 비유하자면 모래와 돌 위로 흘러가면 맑고 진흙 위로 흘러가면 탁하다고 해서 두 가지 물이라고 하면 되겠는가.'라고 답했고, 또 혹자가 질문하기를 '사단(四端)은 이(理)인데 그 탄[乘] 것을 말하면 기(氣)이고, 칠정(七情)은 기(氣)인데 그 말미암은 바로 말하면 이인가?'라고 묻기에 자신이 '사단과 칠정은 두 가지 정(情)이 아니고 사단은 칠정 가운데 선(善) 한 쪽[一邊]만을 지칭하여 말한 것이며 칠정은 사단의 총회(總會)이다.'라고 답했다고 하였다. 인심도심(人心道心)과 사단칠정(四端七情) 두 가지에 대해 질문하면서 문장(文丈)께서 한 마디 말씀을 내려주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풀어주기를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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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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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戌二月一日馬浦冷川里稅米貳斗捧上 印都監[着押][北倉都監圖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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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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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酉十一月十四日馬浦冷川丙戌稅米貳石捧上 印官[着押][北倉都監圖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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