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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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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통지류

1932년 김노수(金魯洙) 엽서(葉書) 고문서-서간통고류-엽서 金魯洙 梁會甲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2년 2월 17일에 세제 김노수(金魯洙)가 양회갑(梁會甲)에게 보내온 편지에 답하고, 다시 한 번 글을 부탁한 엽서 1932년 2월 17일에 세제(世弟) 김노수(金魯洙)가 양회갑(梁會甲, 1884~1961)에게 보내온 편지에 답하고, 다시 한 번 글을 부탁한 엽서이다. 상대가 편지를 주신데 대한 감사를 전하고 상대의 현재 안부를 물은 후 자신은 힘들게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편지로 말씀하신 것은 잘 알았으며 기회를 보아 잘 도모해 보겠다고 한 뒤 자신이 부탁드렸던 기문(記文)은 잘 써주시고 자신의 운(韻)에 맞추어 차운해 주시어 보내주시면 매우 영광이겠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김노수는 현재 경성시 외창 천리 80 김상헌(金商憲) 집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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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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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酉式同福縣內西面第五寶巖里第 統第四戶幼學羅得儉年三十三己丑本錦城父通德郞 舜佐祖學生 景瞻曾祖學生 載挺外祖學生房啓亨本南陽▣▣▣▣▣〔奉母房氏歲〕六十八甲寅妻金氏歲三十三己丑籍光山父學生 萬錠祖學生 㶅曾祖學生漢鳴外祖學生金應夏本金海賤口秩婢林尙年三十六丙戌母戶婢順每父良人林哥名不知順每二所生婢甲辰年五十五丁卯父良人太萬甲辰一所生奴卜同年三十六丙戌二所生婢卜丹年三十二庚寅父良人談伊戊午戶口相準印行縣監[署押] [周挾無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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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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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甲子式同福縣內西面第五寶巖里第 統第 戶幼學羅得儉年三十六己丑本錦城父通德郞 舜佐祖學生 景瞻曾祖學生 載挺外祖學生房啓亨本南陽奉母房氏歲七十一甲寅妻金氏歲三十六己丑籍光山父學生 萬錠祖學生 㶅曾祖學生漢鳴外祖學生金應夏本金海率子廷權年十七戊申賤口秩婢林尙年三十九丙戌母戶婢順每父良人林哥名不知順每二所生婢甲辰年五十八丁卯父良人太萬甲辰一所生奴䃼同年三十九丙戌二所生婢䃼丹年三十五庚寅父良人談伊辛酉戶口相準印行縣監[署押] [周挾無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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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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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丁卯式同福縣內西面第五寶巖里第卄九統第五戶幼學羅得儉年三十九己丑本錦城父通德郞 舜佐祖學生 景瞻曾祖學生 載挺外祖學生房啓亨本南陽奉母房氏歲七十四甲寅妻金氏歲三十九己丑籍光山父學生 萬錠祖學生 㶅曾祖學生漢鳴外祖學生金應夏本金海率子廷權改名廷說年二十戊申賤口秩逃亡婢林尙年四十二丙戌母戶婢順每父良人林哥名不知順每一所生婢甲辰年六十一丁卯父良人太萬甲辰一所生奴卜同年四二丙戌二所生婢卜丹年三十八庚寅父良人談伊甲子戶口相準印行縣監[署押] [周挾無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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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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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省禮拜言.王夫人喪事, 出於夢寐之外, 驚愕何言. 更懇春丈哀體度連日攀擗之餘, 無至傷孝之戒乎. 兄必以寬抑之道, 數數達之矣. 伏惟服中起居候, 以時毖重,而省退之暇, 所工無至全廢, 以硏究何經書,爲仰頌且慮, 無任區區.弟客屑眎昔, 無足奉凂, 而近以荊憂委苦, 爲抽身無暇, 謹未卽躬進仰慰, 是豈情誼之攸在. 玆先替伸, 庶望亮恕. 漏万, 不備狀禮.甲辰四月念四, 弟 金楨澤 再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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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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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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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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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頃奉尙慰, 仰問比令堂上壽體候椒栢保健, 曁定省暇塤箎湛翕印昔益裕, 寶覃枚休,而秧事方張也否. 攢祝慥慥, 不以複嶺疊水有間也. 弟謭陋日甚, 無足奉聞, 而但家口免何, 是可曰此日昇平也耶. 就悚令姪女生年月時, 或可示及, 如何. 昏主命烈之也同學友, 而素不主昏家理氣然于時俗例例以生克論之今日時態面接後止之者, 又不尠矣. 憎之無益, 奈何. 第竢秧了後一番先見無妨, 則往鎭安郡廳問柳在瑛者于農産係如何, 且柳氏我國巨族, 而此家則自谷城入龍城五六代云, 而其文獻也, 人物也, 無讓于某某氏族耳. 絶不是仁溪之權門類, 而傪敵八德姜者也. 日本人已所有九斗落而序居四云耳. 餘爲此, 不備. 統希 頫亮.甲寅午月三日, 申元植 拜拜.再告全州姜某朴某, 俱云傪良柱星已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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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피봉)仁川 倉洞 座下.邑南 謹候狀.謹封.(簡紙)向懷榮千撓百, 而不能一辭穩宜, 旋別於一夜之間, 悚悵曷已. 伏未審冬候宜雪, 而連雨玆際,體候萬安, 閤節如常, 旣溯且慰, 不任區區之至. 而在此諸節, 唯以省事粗安, 兄主之(배면)客安頻承伏幸耳.第婚緣卽是人之一平生大因緣, 安可以人力所及也. 旣結於不易之大因緣, 又何長提說也. 但入婚翌日遽然發程, 雖隔在邑,事勢情理則甚薄,奉問以此爲罪, 若何若何.當有善措處之道, 又不及於非人情不可近之地矣. 餘在日間考品是那時當拜語, 不備.甲寅十一月卄六日, 許錝 拜拜.新曆一件送呈, 考納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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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鎭敦抆淚言. 仲奇君之寃折, 何其慘也. 以此惡景,切非種德家所有之變也. 惟傷虎者知之不覺神色獨變, 况惟慈覆情鍾慘燬傷惻之懷, 種種有觸境, 而發者其何以循理, 自抑俯鉄一室也. 破鏡難圓覆水難收, 庶幾不以無盖客有益否. 兄有是遭弟之無一言, 卽慰拖至今日, 實非合做這道理, 則至情之, 反爲路人者,寃窮吾準備語也, 悲愧何言. 長哥之來, 憑審服棣體起靖支衛,玩府隆候神護康寗, 閤位若庇致勻頗阻餘慰昻. 弟功服人 家禍荐酷, 仲秋奄當大宅從叔母喪,且家間大小喪故, 後先荐疊, 日事悲憂而已耳.年形旣已辦歉, 則可謂大同之憂, 而聞貴邊偏被云, 是所謂雪上加霜, 亦何以按住濟接也. 只切無道之慮而已也. 餘萬, 臨紙意塞, 都留不具. 惟在此兒口達, 統領焉.戊辰至月卄一朝, 服弟 鄭鎭敦 二拜.(背面)狀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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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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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敎旨鄭濟玄爲通政大夫者光緖五年正月 日年九十一加資事承 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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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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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敎旨鄭濟玄爲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者光緖陸年九月 日[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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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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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行牧使爲成給事小帖成給爲遣合下仰照驗施行須至帖者右下松戶面通政大夫鄭濟玄準此己卯六月 日成給行牧使[帖][署押][官印] 3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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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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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85년 양상보(梁相輔)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梁相輔 綾州牧使 使<押> 綾州牧使之印 3顆(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2274_001 1885년 7월에 양상보 등 13명이 능주목에 올린 상서 1885년 7월에 양상보 등 13명이 능주목에 올린 상서이다. 능주 송석면(松石面) 묵곡(墨谷)에 사는 정의림(鄭義林)은 관찰사공(觀察使公) 정인진(鄭麟晋)의 18세손일 뿐만 아니라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선생의 고제(高弟)인데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를 공경할 줄 알았고 학문적 자질 또한 훌륭하여 경서와 역사서를 두루 섭렵하였다. 처음에는 석당(石塘) 정구석(鄭龜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가 약관이 되었을 때 기정진에게 배웠는데 20여 년쯤 되자 선생의 학문을 계승했다고 여겨졌다. 많은 선비들이 그를 따랐으나 단지 공자의 도를 실천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으며 이익을 쫒지 않고 탐욕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처럼 정의묵은 효행과 학행이 뛰어난 인물이지만 아직까지 벼슬에 천거된 적이 없으므로 그를 조정에 천거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 양상보 등의 상서에 대해 능주목에서는 효행과 탁행은 진실로 흠모할 만하나 지금은 감영에 보고할 시점이 아니므로 우선 후일을 기다리라는 처분을 내렸다. 상서(上書)란 백성들이 관에 청원이나 탄원할 일이 있을 때 제출했던 소지류(所志類) 문서의 일종이다. 소지류 문서에는 상서 외에도 단자(單子)·발괄(白活)·의송(議送)·등장(等狀) 등이 포함되었고 각 문서들은 발급 주체나 수취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서식적 차이가 있었다. 상서의 경우 기두어에 '上書'라는 문구가 기재된다는 특징이 있다. 관에서는 이러한 소지류 문서의 여백에 제사(題辭) 혹은 뎨김[題音]이라고 부르는 처분을 내렸다. 제사가 기재되었다는 것은 관의 공증을 거쳤다는 의미이므로, 백성들은 제사가 기재된 문서를 소송 자료 또는 권리나 재산 등을 증빙하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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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28년 양회갑(梁會甲) 망기(望記) 3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德陽書院 梁會甲 □…□(6.0×4.9)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8월에 덕양서원에서 양회갑을 본원 봉안제의 제관으로 임명하는 망기 1928년 8월에 덕양서원(德陽書院)에서 양회갑(梁會甲, 1884~1961)을 본원 봉안제(奉安祭)의 제관으로 임명하는 망기(望記)이다. 덕양서원에서 8월 19일에 행하는 봉안제의 제관으로 임명한 내용이다. 덕양서원은 전라남도 고흥군 동일면 덕흥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으로 희빈 장씨의 아들인 경종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였다가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사사된 좌의정 이건명(李健命)을 주향으로 하는 서원이다.1 725년(영조1) 이건명의 넋을 기리고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고, 1768년에 송연악·박유석 등을 비롯한 사림에서 주창하여 유허비를 세웠다. 1868년(고종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83년에 중건되었다. 그뒤 유허비가 퇴락하자 1928년 이건명의 후손인 이정호와 관내 사림에서 협력하여 비각을 다시 세우고 서원을 중건하였다. 이때 당시 중건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선조, 즉 이의천(李倚天)·정동후(鄭東後)·이인기·오광생·노주관(魯周觀)·문약연(文躍淵)·정소송·정난파(鄭蘭坡)·명중화(明重華) 등 9위를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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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望祭官 本院奉安今月十九日梁會甲戊辰八月 日[德陽書院]德陽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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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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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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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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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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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568년 이황(李滉) 계초(啓抄) 고문서-치부기록류-역사기록 李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568년(선조1) 8월 1일, 퇴계 이황이 석강에서 조광조의 증직에 관한 선조의 질문에 대답하여 아뢴 말을 후대에 발췌해 놓은 기록 1568년(선조1) 8월 1일, 퇴계 이황이 석강(夕講)에서 조광조의 증직(贈職)에 관한 선조의 질문에 대답하여 아뢴 말을 후대에 발췌해 놓은 기록이다. 이 발언은 ?선조실록? 및 ?정암선생문집(靜庵先生文集)?, ?덕양유고(德陽遺稿)?, ?춘당선생문집(春堂先生文集)? 등에 실려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조광조가 중종의 요청에 부응하여 김정, 김식, 기준, 한충 등과 함께 협심하여 성리학을 크게 경장시킨 것, ?소학(小學)?을 교육의 표준으로 삼고, 여씨향약(呂氏鄕約)을 실현해 보려고 노력했다는 것, 당시 사류(士類)들이 좋은 정치를 실현하려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구신(舊臣)을 돌보지 못하여 실직(失職)한 구신들이 불평을 품어 망극한 화를 만들어 냈고 그 화가 만연된 나머지 지금까지도 학행(學行)에 뜻을 두는 사람을 미워하여 기묘년의 부류라고 하니 때문에 명유(名儒)가 배출되고 있지 않다며 조광조를 포증(褒贈)하고 남곤을 추죄(推罪)하여야 시비가 분명해질 것이라고 하였다. 문건의 종이가 세로로 긴데 이황의 발언 뒷부분 일부가 기록되지 않고 잘려 나갔다. 이 초록의 뒷면에는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가 지은 '답육학정문목(答陸學正問目)'의 일부를 베껴 놓았고 이어 퇴계 이황 선생이 도연명의 음주 시에 답하여 쓴 시의 제16번째 수(首)를 베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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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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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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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前面)請褒崇啓 戊辰九月 退溪先生 啓趙光祖天禀秀出 早有志於性理 居家孝友 中庙求治如渴 將興三代之治 光祖亦以爲不世之愚 擧金淨金湜奇遵韓忠等 相與協力同心大有更張 設立條法 以小學爲敎人之方 且欲擧行呂氏鄕約 四方風動 若久不廢 治道不難行也 但當時年少之輩 急於致治 不無欲速之弊 旧臣之見擯者 失職怏怏 百計伺隙 構成罔極之讒 一時士類 或竄或死 餘禍蔓延 至今士林之間 有志學行者 輒指爲己卯之類 人心孰不畏禍 士風大▣…(背面)金宏弼 黃海道湍興府人 窮經三十年 深知義理 以道學自任 學者稱爲寒暄堂先生 弘治中擧遺逸 官至刑曹佐郞 正德間 恭僖王加贈右議政 仍命有司 於講道之所 立祠祀 【見孔孟心學對和陶詩吾東號鄒魯 儒者誦六經 豈無如好之何人 始有成矯之 鄭烏川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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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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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學堂居化民張欑右謹言憤迫事段民之祖父母與父母山在於內北面熊谷是如乎以 勢殘班僅護龍虎內數十步之地者積有年矣不意今者上多村居時任風憲宋榮國爲名者恃其權力威脅民之山直漢使不得告急於矣民是遣肆然暗埋其外祖母於民之親山十餘步之地是如乎雖以常漢猶能保局內一斧之地况以班民遭此山変之莫大者乎同榮國方以 官下任役之人應知法文而侮此殘班敢爲偸埋者究其心曲果如何哉玆敢掩泣號籲於明政執法之下參商敎是後即爲摘奸刻期掘移千萬伏祝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 癸亥閏二月 日〈題辭〉摘奸圖形以來事十三■■(風憲)告何鎭律將校[官印]官[署押]○ 관련자료1795년 장찬(張欑)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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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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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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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73년 장동식(張東植) 단자(單子)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東植 同福縣監 官[着押] 1顆(5.7×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 2월에 동복현에 사는 장동식이 동복현감에게 자신은 용렬하여 향교의 직임을 감당하지 못할 듯하므로 체직시켜 줄 것을 청원한 단자 1873년(고종 10) 2월에 동복현(同福縣)에 사는 장동식(張東植)이 동복현감에게 자신은 용렬하여 향교의 직임을 감당하지 못할 듯하므로 체직(遞職)시켜 줄 것을 청원한 단자이다. 이 단자를 접수한 동복현감은 2월 24일에 '청원한 내용 대로 시행할 것'을 처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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