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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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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경인년 김상현(金翔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翔鉉 李應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인년 4월 17일, 제 김상현이 상대 집의 결미 중 15두를 지금 가는 사람에게 내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이응만 형 집으로 보낸 서간. 경인년 4월 17일, 제(弟) 김상현(金翔鉉)이 상대 집의 결미(結米) 중 15두(斗)를 지금 가는 사람에게 내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이응만(李應晩) 형 집으로 보낸 편지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적조했다며 요즈음의 상대 안부를 묻고 자신은 전과 같이 지낸다고 했다. 주요 내용은 이번에 가는 사람에게 귀하의 댁에 있는 결미(結米) 중 15말을 내어 주길 바란다고 적었다. 발신자 김상현은 자신의 소재지를 부남(府南)이라고 적었다. 수신자 이응만은 송월(松月)에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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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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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久阻茹悵. 恪詢此來靜候連衛万安, 慰溸不淺. 弟 依前,此外何聞. 就 貴宅結米中拾五斗,今去人出給伏望耳.庚人四月十七日, 弟 金翔鉉 拜拜.(背面)松月 李 碩士 應万兄宅 入納府南 謹候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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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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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1939년 이주용(李主容) 등 토지소유권 이전 등기신청서(土地所有權移轉登記申請) 고문서-소차계장류-근현대문서 李主容 光州地方法院珍島出張所 司法書士梁正源 2顆(1.3×1.3)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9년에 7월 27일에 매주(賣主) 이주용(李主容)과 매주(買主) 이정용(李正容)이 양정원(梁正源)을 대리인으로 하여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전 등기를 광주지방법원 진도출장소(光州地方法院珍島出張所)에 신청한 문서 대상: 진도군 임회면 봉상리(珍島郡 臨淮面 鳳翔里) 1339번지 林野 1188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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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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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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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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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39년 이홍필(李弘苾) 토지대장등본(土地臺帳謄本)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木浦稅務署 李弘苾 朴齊衡印, 木浦稅務署 (3.5×3.5), 山口寄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9년 8월 2일에 목포 세무서(木浦稅務署)에서 이홍필(李弘苾)에게 발급한 토지대장등본(土地臺帳謄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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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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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기사년 함평현 전령(傳令)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大洞面任 3顆(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사년 함평현에서 대동면 면임과 갈구자동 동장에게 내린 전령 기사년 8월 8일에 대동면(大洞面) 면임(面任)과 갈구지동(葛九池洞) 동장(洞長)에게 내린 전령이다. 평릉면(平陵面) 사산(射山)에 사는 이계욱(李啓郁)이 올린 정장(呈狀)에 의하면, 그들의 조모 묘가 대동면 갈구지 산기슭에 있는데 매월촌(梅月村)에 사는 김가(金哥)와 임가(任哥) 두 놈이 무단으로 나무를 베고 있으니 엄히 다스려달라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이 산은 관작(官爵)이 있는 집안의 묘소이므로 이를 용납할 수 없으니 이들을 모두 조사하여 처벌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함평현에서는 부근 각 마을의 사람들 가운데 혹 함부로 나무를 베는 자가 있으면 법전에 따라 처벌할 것이고, 이를 잘 신칙하지 못한 면임과 동장의 경우에는 곱절의 형률을 적용할 것이니 각별히 유념하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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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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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傳令大洞面任及葛九池洞長卽接平陵面射山李啓郁呈狀則以爲民之祖母淑夫人墓所在於大洞面葛九池右麓而劃界禁養內松楸與柴草梅月村居金任兩漢輩無難斫伐嚴治禁斷亦爲置雖凡人私山所養松楸不可任意斫伐而况有官爵禁護之墓所乎犯斫之諸漢不可尋常處之同犯斫諸漢不止於金任兩漢而已是如乎一倂査實嚴處次指名捉待爲㫆亦以此意嚴飭於附近各村民人無或犯斫是矣若或有犯斫者則犯者之依法典嚴勘已無可論而不善操飭之面任與洞長斷當有加倍之律除尋常惕念擧行無至抵罪後悔之地宜當向事己巳八月初八日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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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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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潤相 趙潤相<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8년(고종15) 1월 25일에 답주 유학 조윤상이 순천부 황전면 산령리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8년(고종15) 1월 25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조윤상(趙潤相)이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조윤상은 자신이 물려받아 여러 해 세금을 받았던 논을 자신이 이사 간 후에 땅을 옮겨 사기 위해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리(山令里) 송정평(松亭坪) 등자(登字) 정답(丁畓) 위쪽 3마지기(결부수: 10부 8속) 노(奴) 명진(命辰)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등재된 곳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62냥 5전이며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다른 전답과 함께 붙어 있어 내어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으로 거래한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조윤상 1인으로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리는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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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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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良俊 朴良俊<着名>, 李宗儀<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3년(철종4) 1월 26일에 전주(田主) 박양준(朴良俊)이 영광군 후증도 밭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53년(철종4) 1월 26일에 전주 박양준이 밭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양준은 자신이 물려받아 경작해 먹다가 형세 상 부득이하여 밭을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영광군(靈光郡) 후증도(後甑島) 소지명(召地名) 내의 소을등(所乙墱) 밭[田] 미모(米牟) 1두5도락지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4냥을 받고 팔았다.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잃어버려서 내어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문서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박양준과 증인 이종의(李宗儀) 2인이며 답주가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영광군 후증도는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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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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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咸豊參年癸丑正月二十六日 前明文右明文事段 流來畊食是如可 勢不得已 郡地後甑島召地名內所乙墱伏在田米牟賣斗伍刀落所畊 庫叱 價折錢文肆兩 依數捧上爲遣 右人處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如有紛紜之弊則 以此文記憑考 印此亦中 本文記段閪失 故未得出給印自筆 田主 朴良俊[着名]證人 李宗儀[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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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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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1911년 이남걸(李南杰) 세보서(世譜序) 고문서-시문류-서 李南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1년 1월에 이남걸이 작성한 세보서(世譜序) 1911년 1월에 이남걸이 작성한 세보서(世譜序)이다. 경주이씨의 시조인 이알평(李謁平)으로부터 이어지는 계보가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게 되었던 경위와 선조들의 업적을 간략히 서술하고, 이어서 세보(世譜)를 재간행하는 까닭에 대해 썼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경주이씨세보(慶州李氏世譜)를 중간하며 작성한 서문 혹은 발문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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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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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昔漢元帝時 新羅佐命功臣諱謁平 貫慶州 二傳而至金硯載牒未詳 國朝鎭川宗人鶴齡以奏聞 使八瀋於一士人家 得見慶李之乘 蓋東人而居中州者也 撮取失傳卄許伐 以纘謁平以下申祐以上語 雖甚詳而事不可信矣乎否也 自中祖十三傳而得乙桂 佐我太宗 封原州伯墳墓也 昏媾也 子孫也 實岳之馬浦 金陵之金輿 光陽之?浦詳矣 自是以來 文武相襲 圭組彈赫 文章道學 足爲冠冕之望 折衝禦侮 足爲干城之翰 忠孝與烈 可謂淵藪而不爲過語矣 九傳而有諱浚歸來其號 當仁廟北虜之亂 則天飜地覆 而下喬八幽之日也 勤王敵愾之忠 扶正斥知之論 竪綱常於旣晦 立人紀於已蔑 軒天地曜日月而易與三學士 諸先生同其功高矣 三傳而有諱得明克肖歸來祖麗 墻明奴之義 自光陽首山 重蹈筽城 深海混跡 漁樵不樂 其仕師襄高足而魯連流亞也 嚴光淸標而陶令儔匹也 噫 門寒族微 學荒文蔑與海上編民 同其上下者 逮吾身洽爲八葉矣 馬浦金輿 ?浦則吾家之一大家 而區區埋沒於筽城之後湖者 杞宋之足徵幸矣 世譜一呇五十板 斯爲後湖李氏家藏而印出 旣經七十 禩皓首之或死者 黃口之或生者 盡不與牒矣 謀所以再印 則其情慽矣若萬緣財贍力厚 則合譜者不日矣 嗚呼 邦崩家摧 人神無主 則敦宗講孝 果何事耶 淚記腔血 一門諸宗 長少共之 以寓不忘本之義云 歲辛亥正月 日 不肖孫南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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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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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0년 이명호(李明浩)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明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0년 2월 8일, 상중의 사제 이명호가 사돈댁에 새해 새봄의 안부를 묻고 사위를 보고 싶은 마음을 전한 편지. 1920년 2월 8일, 상중인 사제(査弟) 이명호(李明浩)가 사돈댁에 새해 새봄의 안부를 묻고 사위를 보고 싶은 마음을 전한 편지이다. 새해 새봄을 맞이하여 사돈어른 및 집안 식구의 안부를 물었다. 상중에 있는 자신 쪽은 식솔들이 잘 있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사위가 잘 지내고 있는지 물으며 항상 눈에 그리워 오래도록 보지 않을 수 없으니 자신 쪽으로 보내주실 수 있느냐고 묻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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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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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39년 이주용(李主容) 등 위임장(委任狀)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李主容 梁正源 李主容,李正容司法書士梁正源 2顆(1.3×1.3)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9년 7월 27일에 매주(賣主) 이주용(李主容)과 매주(買主) 이정용(李正容)이 양정원(梁正源)에게 부동산 등기신청과 관련한 사항을 위임하는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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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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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52년 이□헌(李□憲)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憲 全羅道觀察使 使[着押] 1顆(8.3×8.3)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2년 12월에 이□헌, 이일헌 등이 전라도관찰사에게 사산사와 모양사에 대한 환모작전(還耗作錢)의 배분을 철회해줄 것을 요청하며 올린 상서 1852년 12월에 이□헌, 이일헌 등이 전라도관찰사에게 올린 상서이다. 함평에 있는 사산사(射山祠)와 모양사(牟陽祠)는 함평이씨의 문중사우이다. 이 두 사우 아래에 사는 백성 15호의 요역과 환곡을 모두 면제받은 것이 원래 규례였는데, 작년에 먹지도 않은 환모작전(還耗作錢)을 내라고 독촉을 받아 정소(呈訴)하여 면제를 받았다. 그런데 올해 겨울에 또 작전(作錢)이 분배되었기 때문에 함평현에 정소했고, 이때 절반을 견감 받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우에 대한 규정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사림의 공의에 어긋나는 점이 있으며, 애초에 분급 받지 않은 환곡에 대해 작전을 배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이 두 사우에 대한 민호 15호의 작전을 옛 규례에 따라 즉시 탈급(頉給)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전라도 관찰사는 다시는 번거롭게 정소하지 말라는 처분을 내림으로써 들어주지 않았다. 환모작전은 환곡의 모곡(耗穀), 즉 환곡을 받을 때 곡식을 쌓아둘 동안 축이 날 것을 미리 짐작하여 한 섬에 몇 되씩을 덧붙여 받던 곡식인데 이를 돈으로 환산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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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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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咸平儒生李▣憲李一憲李啓▣等謹齋沐上書于巡相閤下伏以崇德衆賢 國家之令典建祠妥靈鄕人之美風從古而然于今可徵本邑射山牟陽兩院卽生等先祖俎豆之所也記功昭載於太常公議不泯於百世▣▣與後孫建祠侑享已爲二百餘年院下民人各十五戶式徭役與還分俱爲頉免自是已例而不意去年以不食之還耗作錢出督故呈訴頉下矣今年冬又以作錢分排故呈訴於 本官則折半蠲減▣爲上京累百年院規一朝毁壞有違士林之公議而初不分給之還穀似不當以作錢排徵玆敢仰訴上項兩院院底民各十五戶作錢依舊例卽爲頉給以存院貌之地千萬祈恳之至行下向敎是事巡相閤下 處分壬子十二月 日〈題辭〉更勿煩訴事初八日行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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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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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齊淳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고종13) 11월 2일에 답주 유학 박제순이 구례현 간전면 산정촌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6년(고종13) 11월 2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박제순(朴齊淳)이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제순은 자신이 물려받은 논을 여러 해 지어먹다가 형편상 부득이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구례현(求禮縣) 간전면(艮田面) 산정리(山亭里) 마을 뒤쪽 덕거리평(德巨里坪)에 있는 주자(周字) 정답(丁畓) 5마지기 중 남쪽 2마지기(결부수: 8부 2속)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50냥을 받고 팔았으며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와 아울러 함께 판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박제순 1인으로 증인 없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간전면 산정리는 현재 전라남도 구례군 간전면 삼산리 산정마을이다. 박제순은 동년 1월에는 같은 5마지 중 북쪽 3마지기를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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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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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緖四年戊寅正月二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 傳來畓 累年收稅是多可 移居後 移買次 府地黃田面山令松亭坪登字丁上便三斗落卜數十負八束奴命辰帳㐣 價折錢文六十二兩五戔 依數捧上是遣舊文記段 他畓倂付 故以新文記一丈 右前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是非則 以此文記告官卞正事自笔 畓主 幼學 趙潤相[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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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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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1896] 梁昌洙 鄭永奎<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6년(고종33) 10월 3일에 답주 양창수가 순천 황전면 산령촌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96년(고종33) 10월 3일에 답주(畓主) 상인(喪人) 양창수(梁昌洙)가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양창수는 자신이 물려받은 논을 여러 해 세(稅)를 거두다가 옮겨 사기 위해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順天) 황전면(黃田面) 산령촌(山令村) 전평(前坪) 섭자(攝字) 정답(丁畓) 1마지기(결부수: 3부 9속) 노(奴) 예덕(禮德)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등재된 곳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25냥이며 신문기와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를 모두 준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양창수와 증인 유학 정영규(鄭永奎)이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촌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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