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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金氏贈淑夫人者康熙五十八年十二月初三日嘉善大夫加設同知中樞府事姜德尙祖妣依法典追 贈[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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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閑良姜億只贈通訓大夫禮賓寺正者康熙五十八年十二月初三日嘉善大夫加設同知中樞府事姜德尙曾祖考依法典追 贈[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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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강홍복(姜弘福)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弘福 行郡守<押> □…□ (7.5×7.5),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50_001 1774년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유학(幼學) 강홍복(姜弘福, 34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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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강우백(姜遇伯) 처 순창조씨(淳昌趙氏)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遇伯 妻 淳昌趙氏 行郡守<押> □…□ (7.0×7.0), 周挾改字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51_001 1816년에 영암군(靈巖郡)에서 강우백(姜遇伯) 妻 순창조씨(淳昌趙氏, 59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남편 강우백(姜遇伯)이 죽고 妻 순창조씨(淳昌趙氏)가 대신 호주가 된 것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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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再拜上候疏稽顙言. 奉拜積月之懷, 恒庸伏悵,而向前晉拜次躬往矣. 交違未拜, 心甚咄歎以歸, 尙今未已. 謹未審寒令,叔母主氣力連享康旺, 而侍中棣候益復萬安, 諸節均宜否? 幷伏哀溸區區之忱. 罪從弟頑縷堇支, 而幼兒善長, 惟是爲幸耳. 就悚, 向晋時伏聞,叔母主敎意則, 婢子畔出, 不付於家內, 莫可持托云. 大抵弟亦留連三日未見其樣則, 何以用之乎? 卽今符合於上典盡渠之心力矣. 畢境作夫之境, 有所隱匿, 有所欺罔, 而或有徒走之患矣. 至今未得服心則, 何待作夫之境乎? 已出之子, 不服父母, 而畔外則, 有所招引之人, 至於見失. 況此等之類, 尤無可論. 弟亦爲慮, 而叔母主分付內, 得其賣買處放賣, 而從當求他更買云故, 默念 敎意則果爲良策矣. 姑存則永失之患, 似在於歲前, 而雖不失畔出不在則,何異於永失乎? 自其時以來, 左右極力, 幸得一處矣. 事在時急, 若爲曠日, 從他決買矣. 不得已兄主行次, 與弟爛議, 可爲好道矣. 若失此機則,在於 兄主之處地, 以賣婢之說, 何以覓求乎? 玆以仰告, 掃萬明日枉臨, 千萬伏企伏企耳. 弟爲躬往槩言後陪行而來無防矣. 弟亦有大關之事, 莫可出身, 故如是矣. 弟雖躬往矣.兄主旣爲行次矣. 勿爲 下譴, 而卽爲命駕專仰專仰耳. 或者 兄主有大拘未得出身之端, 則季從命送似好, 而不如 兄主之行次矣. 深諒爲之若何. 餘忙草, 謹不備, 伏惟 答疎.壬申陽月旬一日, 罪內弟 李炳顯 拜疏上.舍廊鄭秀才亦爲安支否? 忙未修疎, 以此雷照, 伏企伏企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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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년 백영온(白永瑥)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白永瑥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축년 2월 25일, 백영온이 사돈댁에 새해 새봄의 안부를 물은 편지. 계축년 2월 25일, 백영온(白永瑥)이 사돈댁에 새해 새봄의 안부를 물은 편지이다. 그동안 그리웠던 마음, 화창한 봄 날씨에 잘 계신지에 대한 물음, 우리 가문을 잘 살펴달라는 부탁 등의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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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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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楣誼罙篤, 來頭源源, 從此可期也. 未審春和,尊體候萬衛百福, 㴑仰區區, 下誠不任. 豈期托照下門. 謹差百福而呈,倘無俗礙, 則幸可以待肯否? 餘不備, 伏惟下鑑. 上狀.癸丑二月二十五日, 白永瑥 拜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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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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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溪祠行薦禮險夷之世, 衣冠之會, 此非易事. 不可遽散, 再宿于梅陽齋, 用諸友韵, 呈湖南二友.自料生來百不能, 欣逢心友章層層, 正好深深梅下屋, 情輸蕉疊剪紅灯.友生 柳遠重. 号西崗.二月尙寒春未能, 庭枝□角見層層,相逢此日同憐誼, 難盡東風一夜灯. 源齋.白首先生敎術能, 冠經童史讀層層,長夜滔滔風雨誼, 梅齋獨守講磨灯.居昌郡 神院面 菰亭里 宋周翼. 字相洛, 号梧山.■■(名勝)〔我欲〕湖行久未能, 惠然■■(携手)〔今日〕誼層層, 春雨■■■■■(梅陽情未洽)〔霏霏梅下含〕 酒詩相和■(更)〔坐〕排灯. 金永玉. 字白明, 号德隱.居昌郡 神院面 大峴里難行事事主翁能, 想得人灵各有層層, 世皆馳入昏衢域, 林谷儒林獨惺灯. 雲泉.嶺右今行借此能, 肅瞻廟宇意層層,相逢白髮聞知已, 更對梅陽一夜灯.道谷.自古人皆有一能, 終看處事百千層層, 登灵今日輸誠語, 認得湖南篤苦灯.崔尙植. 号黙軒.玉溪書院傳鉢藏追慕吟野恨程冠擊蒙訣, 淵源肇自石潭開, 沙尤遂久相傳後, 吾祖茅廬敬授耒. 崔國煥.(背面)慶南 陜川郡 鳳山面 魯坡里金文鎬, 字聖武.金熙哲, 字聖□.金長植, 字士益.金士根, 字晦彦.金永▣, 字學夫.崔鍾璇, 字和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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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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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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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864년 전라도 관찰사 하체(下帖) 고문서-첩관통보류-첩 牟陽祠 5顆(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4년 전라도 관찰사가 평릉면(平陵面) 모양사(牟陽祠)에 보내는 하체 1864년 5월 7일에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의 하교를 모양사(牟陽祠)에 알리는 하체이다. 대왕대비전의 하교는 《고종실록》 고종1년 4월 22일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각 고을에 있는 서원(書院), 향현사(鄕賢祠), 생사당(生祠堂)과 그 원(院)이나 사(祠)들에 소속되어 있는 결총(結總)과 보액(保額)을 상세히 기록하여 낱낱이 등문(登聞)하는 일을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팔도(八道)와 사도(四都)에 행회(行會)하여 누락이 없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이 하교가 삼현령(三懸鈴)으로 순영(巡營)에 하달되었고, 순영에서 함평현에 감결(甘結)로 지시하였으며 이 하교를 모양원(牟陽院)에 전달하는 문서인 것이다. 사액서원의 경우에는 획급해야 할 결총(結摠)과 보액(保額) 규정이 있지만 근래에는 규정을 벗어나 범람하는 폐단이 있고, 향현사나 생사당의 경우는 애초에 결총과 보액 규정이 없는데도 빙자하여 만들어내는 폐해가 발생하고 있으므로 이를 시정하기 위해 샅샅이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모양사는 주벽(主壁)과 배향(配享) 대상, 창건 연대, 복결(復結)과 보정(保丁), 보액(保額)과 액인(額人)의 성명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성책(成冊)하여 빨리 보고하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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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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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巡營門甘結內節到付▣…▣府關內節 啓 下敎今四月▣…大王大妃殿以司謁口傳 下敎曰各邑所在書院鄕賢祠生祠堂及每院司所屬結摠與保額消詳懸錄一一登聞事令 廟堂行會於八道四都俾無遺漏之意三懸鈴知委事 傳敎敎是置賜額書院之劃付結摠▣…保額自有法典定數而挽近證例多有科外濫觴鄕賢祠生祠堂則初無結與保之可論而憑托刱行之弊難保必無本邑所在書院某年 賜額元劃復結幾許保額幾許一一區別鄕賢祠生祠堂亦必有結摠保額之憑托刱行之弊到底覈實並爲消詳開錄另修成冊今初七日及良星火馳報亦敎是置 甘飭若是截嚴本院主璧某與配享某刱建年條復結幾許保丁幾許保額幾許額人姓名一一開錄修成冊今初六日及良▣▣稟報無至 營邑間遲滯生頉之地宜當者 額人保額保丁刱建條星火馳報次照驗施行須至帖者右下平陵牟陽院準此甲子五月初七日下帖 此亦中到付狀先卽修報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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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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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石禮 金石禮<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7년(고종14) 8월 25일에 무계주 유학 김석례가 구례현 간전면 산지 일부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7년(고종14) 8월 25일에 무계주(茂界主) 유학(幼學) 김석례(金石禮)가 산지(山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석례는 자신이 물려받은 무계를 여러 해 기경(起耕)하다가 다른 곳을 사기 위해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구례현(求禮縣) 간전면(艮田面) 용지동(龍池洞)의 안산(眼山)인 곤배산(坤輩山)에 있는 무계(茂界) 2곡(谷) 3등(登)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2냥 5전에 받고 팔았으며, 신문기(新文記) 1장만으로 거래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산지 주인 김석례 1인으로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그가 작성하지 않은 것은 그의 착명이 동그라미인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토지소재지인 간전면 용지동은 현재 전라남도 구례군 간전면 금산리 용지동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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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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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潤相 趙潤相<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0년(고종17) 12월 17일에 산주 유학 조윤상이 순천부 황전면 산령촌 후록 산지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80년(고종17) 12월 17일에 산주(山主) 유학(幼學) 조윤상(趙潤相)이 산지(山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조윤상은 물려받은 산지를 몇 대를 금양(禁養) 수호(守護)하다가 이장(移葬)을 하기 위해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촌(山令村) 후록(後麓) 응봉(鷹峰) 아래쪽 3등(嶝) 2곡(谷)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50냥에 거래하였으며,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를 함께 준다고 적었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산주 조윤상 1인으로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촌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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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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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緖陸年庚辰十二月十七日 明文右明文事 由來禁養 累世守護是多可 緬禮次 府地黃田面山令邨後麓鷹峰下三嶝二谷 價折錢文伍拾兩 依數捧上爲遣 右前旧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如有爻象是去等 以此告 官卞正事自筆 養山主 幼學 趙潤相[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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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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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8년 시장문기(柴場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시장문기 李彦宇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8년(고종25) 1월 24일에 산주 유학 이언우가 순천부 황전면 산령촌 뒤쪽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시장매매명문 1888년(고종25) 1월 24일에 산주(山主) 유학(幼學) 이언우(李彦宇)가 순천부 황전면 산령촌 뒤쪽 산지(山地)를 팔면서 작성한 시장매매명문이다. 이언우는 자신이 물려받은 회산(灰山)을 수년간 수확하다가 형세 상 부득이하여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산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촌(山嶺村) 뒤편의 천황치(天皇峙) 3등(嶝)2곡(谷)이다. 거래 가격은 전문(錢文) 1냥으로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한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회산주인 이언우와 증인 유학 문병원(文秉元), 이병춘(李丙春) 3인이다. 필집을 명시하지 않아서 누가 작성했는지 알 수 없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촌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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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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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緖拾四年戊子正月二十四日 前明文右明文事 由來炭山 數年收護是多可 勢不得已 黃田面山嶺村後天皇峙三嶝貳谷等地 價折錢文壹兩依數捧上是遣 右前新文一丈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他說則 以此文記憑考事炭山主 幼學 李彦宇 喪不着證人 幼學 文秉元李丙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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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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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13년 정익조(鄭翊朝) 산지(山地) 매매계약서(賣買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李起馥 鄭翊朝 李起馥信,鄭翊朝信,尹秉錫信, 鄭璣鎔信(원형, 1.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3년 6월 2일에 산지 주인 이기복이 정익조에게 순천군 황전면 도원리 내동에 있는 산지를 팔면서 발급한 매매계약서 1913년 6월 2일에 이기복(李起馥)이 정익조(鄭翊朝)에게 산지(山地)를 팔면서 발급한 매매계약서(賣買契約書)이다. 거래 대상 토지는 전라남도(全羅南道) 순천군(順天郡) 황전면(黃田面) 도원리(道元里) 내동(內洞) 대곡평(大谷坪)에 있는 양산(養山) 1등(嶝) 2곡(谷)이다. 면적은 생략되어 있고, 토지의 경계를 사표(四標)하여 기록하였고, 매매가격은 24엔이다. 일제 강점기 변화된 매매계약서 양식으로 작성되었으며 이두 부분을 한글로 작성하였다. 이기복의 주소지는 순천군 황전면 도원리 2통 2호이며, 매수인 정익조는 순천군 황전면 산령리(山令里) 1통 2호에서 살았다. 매도인과 매수인, 보증인 윤병석(尹秉錫), 이장(里長) 정기용(鄭璣鎔)이 문서 작성에 참여하였다. 참여자의 이름 뒤에 붓으로 기입하였던 착명(着名) 대신 이름자를 새긴 원형 주인(朱印)으로 바꾸어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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