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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宿契之餘, 猥忝姻誼, 豈非感幸之俱極耶? 伏承華函, 仍審玆者,靜候棣體万衛, 區區不任之至. 親事利成, 而新人儀範, 猶在阿睹. 迨覺人情之固如是矣. 具外也,下浮於所望, 還切未安耳. 不備, 伏惟尊照. 謹拜謝狀.乙丑十二月念一日, 査弟 宣泳完 二拜謝.(皮封)謹拜謝狀,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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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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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신○년 윤재업(尹在業)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尹在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년 2월 22일, 윤재업이 혼인의 성사를 위하여 형님의 뜻을 물으며 형의 말씀대로 책임지고 혼인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신○년 2월 22일, 제(弟) 윤재업(尹在業)이 혼담에 대한 형님의 뜻을 물으며 자신은 형님의 말씀에 따라 먼저 정했던 곳을 물리었으므로 책임지시고 혼담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보낸 편지이다. 지난 편지를 쓴 후 2일이 지났다며 어버이 모시고 잘 계신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제 들어왔다고 한 후 혼인은 사람 사는 세상의 큰일로 우리들이 서로 편지로 증거 하였던 것을 형께서는 편지로 보여주려고 하지 않으니 형님의 뜻이 어떠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평소 형님을 믿었기에 먼저 정했던 혼처를 물리었으니 형이 책임을 지시고 혼인이 깨지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청했다. 또한 상대의 어머니 잃은 삼종(三從) 형님은 어찌 지내는지 물으며 직접 편지 쓰지 못하니 안부를 전해주기를 청했다. 상대의 막내 동생을 되는대로 이곳으로 보내주기를 청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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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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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信後夜二紫. 未審侍餘啓居晏相, 仰㴑仰㴑. 弟昨日入耳. 大抵人間大事婚也. 吾儕相憑書也. 而兄不欲以書示之, 菀然茫然. 未知意下之何如耳. 雖然素服盛名,不無樹生薑之可信. 故先定處退却.兄旣左袒於無狀者之大事, 則俾無俗所謂失蟹失筐之譏, 如何如何?令三從哀兄何以支扶耶? 似聞此兄亦□憐無狀者, 善爲之說云, 感不容喩. 事在末梢成否如何耳.擬以專人書告, 恐有兩戱, 仍便更候. 幸須無金玉其德音, 令季氏從近得命送此, 如何如何. 預爲企望耳.令三從哀兄前, 忙未各候, 雷照爲好耳.辛二念二日, 弟 尹在業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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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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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조흘첩(照訖帖) 2 고문서-증빙류-조흘첩 珍島府使 使<押> 珍島府使之印(8.0×8.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755_001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이다. 문서의 결락이 심한 편이며 이 때문에 수취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조흘(照訖)이란 '대조하여 확인을 마쳤다.'는 뜻으로 과거 응시에 결격 사유가 없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소학』을 고강(考講)하여, 과거에 응시할 수 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녹명(錄名)하고 과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 실시하는 『소학』에 대한 고강을 조흘강이라고 하는데, 이를 통과하였다는 증명서가 조흘첩이었다. 조흘첩은 과거장에 입장할 때 필요하였던 것은 물론이고 입장한 후나 퇴장할 때에도 그 소지 여부를 점검하였다. 조흘첩의 서식은 ⓛ발급자와 발급 목적[某爲照訖事], ②수취자의 성명·연령·거주지 등 정보, ③고강 통과 사실 통지[小學入格爲有置] ④종결어 [帖文成給爲遣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 ⑤작성연월 및 발급자의 착명(着名)으로 이루어진다. 조흘첩은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서식상의 큰 차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수량을 필요로 했던 만큼 그 서식을 목판에 새겨 인출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 즉 목판에 기본 서식을 새겨 인출한 뒤 공란에 수취자의 정보를 채워넣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문서의 경우는 직접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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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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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珍島 爲照訖事 ▣▣(幼學)年 居 面 小學入格▣▣(爲有)▣(置) 帖文成給爲遣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準此使[着押][珍島府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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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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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1938년 이봉진(李奉珍) 등기명의인 표시경정 등기신청서(登記名義人表示更正登記申請書) 고문서-소차계장류-근현대문서 李奉珍 光州地方法院珍島出張所 崔永俊 4顆, 光州地方法院珍島出張所(6.0×6.0), 司法書士朴容淳 4顆(1.5×1.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 12월 5일에 이봉진(李奉珍)이 최영준(崔永俊)을 대리인으로 하여 토지에 대한 등기명의인 표시경정등기(登記名義人表示更正登記)를 광주지방법원 진도출장소(光州地方法院珍島出張所)에 신청한 문서 대상: 진도군 임회면 봉상리(珍島郡 臨淮面 鳳翔里) 873番地 畓142坪, 1373番地 畓560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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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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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全羅道羅州 幼學朴弘壽等 謹齋沐上書于大宗伯閤下 伏以 崇節而旌善 朝家之盛典也 尙德而揚賢 士林之公議也 苟有卓異之行湮滅而無聞者 則勿論年代之久近 齊聲仰籲 期欲闡揚 其來舊矣 道內靈巖郡故僉正李仁傑益齋文忠公諱齊賢後裔 監司晴湖公諱暿嗣孫 本以儒雅之家 有弓馬之才 投筆擧武 初仕宣傳 旋移僉正 大有將來之望 而本性骯髒 見忤當路 歸臥鄕廬 若終其身 逮至壬辰之邊 遽決殉國之志 遂隸於元帥權公幕下 贊畫軍務 動中機宜 不幸幸州之敗 與申汝樑朴遂良諸人 同時殉節 招魂歸葬 錄宣武原從勛 而故尙書李公寅燁 實銘其墓 其曾孫故宣傳廷弼 孝友之性 根於天賦 備物養親供爲子職 而登科筮仕之後 每以不能榮養久離親側爲恨 遂棄本職 歸侍庭闈 上堂起居 入廚甘旨 庶幾乎王祥之叩氷黃香之扇枕 及其遭憂 枕苫廬墓 任情過毁 不下於子羔之泣血顔丁之悲哀 鄕人稱之以泣髮孝子 故御史權公尙游 特爲啓聞 給復終身矣 夫以二公忠孝之行 宜有 朝家旌褒之典 而天地猶有所憾 日月不照覆盆 忠臣之閭 村落蕭條 孝子之墓 守護無人 故老相傳行路指點者 徒以後孫零替不能鳴寃故也 百歲之下 公論不泯 玆敢相率仰籲 伏乞 細細垂察故僉正李仁傑故宣傳李廷弼忠孝之行 特爲上徹 俾蒙褒贈棹楔之典 而墓奴各一人山直各二人等軍役 永爲頉給 其所居本郡望湖亭一村 亦令頉下雜役 以爲表厥宅里樹之風聲 千萬祈懇之至禮曹堂上 處分丁巳六月 日 羅州 幼學 朴弘壽 羅用集 鄭國豊 靈巖 幼學 崔寬永 愼在殷 曺榮昊 光州 幼學 李之燮 朴海豊 鄭性黙 綾州 幼學 梁進永 曺錫昇 宣基亨 海南 幼學 尹圭昇 閔基顯 李仁黙 康津 幼學 吳壽海 尹鍾豪 李淳永 長興 幼學 金箕錫 丁昌運 尹學采 長城 幼學 金敬粲 邊鼎基 奇行衍等覽此齊籲 忠孝若是卓異 雖在年久之後 孰不欽歎 褒揚之典 係是啓聞 以待式年更擧 烟戶襍役 永永勿侵 俾樹風聲向事卄二日[堂上] [署押][禮曹堂上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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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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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射山化民李東憲右謹言民四月分以親山山訟事與新光面長山金振聲對卞而竟致落科之境民自知誠孝淺薄性品愚騃致此寃迫矣原其法意則渠雖繼葬以民漢犯葬於兩班家墳山壓腦四十餘步之地者已是犯分是白遣民雖殘劣以大夫墳山見奪於壓脉至近之地者豈不痛刻乎今伏聞咸民無祿賦歸在卽云民之私心痛恨與他自異玆不得已冒沒仰籲伏乞 特恕民之至寃情勢厥漢處所在圖形還收爻周以解民之至寃情私千萬祝手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戊子六月 日〈題辭〉疑有圖刑之誤錯擬爲親審摘奸後決處矣今爲遞歸可(背面)謂有意莫遂事 十六[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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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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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安浩 鄭安浩<着名>, 崔孟德<着名>, 李基甫<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0년(철종11) 11월 27일에 답주 유학 정안호가 순천부 황전면 산령촌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60년(철종11) 11월 27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정안호(鄭安浩)가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안호는 자신이 사서 여러 해 경작하다가 형편상 부득이 유용하게 쓸 곳이 있어서 논을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촌(山嶺村) 금암교(錦岩郊)에 있는 등자(登字) 답(畓) 2마지기(결부수: 5부 6속) 노(奴) 설엽(雪葉)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기재된 곳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30냥이며, 신문기 1장으로 거래한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유학 정안호와 증인 최맹덕(崔孟德)과 이기보(李基甫) 총 3인이다. 답주가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촌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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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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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咸豊十年庚申十一月二十七日 前明文右明事段 自起買得畓 累年耕食是如多可 勢不得是 要用所致 順天黃面山嶺村伏在 錦岩郊登字畓 貳斗落只負數伍負陸束 奴雪葉帳㐣價折錢文參什兩依數捧上是遣 右前新■(旧)文記■■(幷以)〔一丈〕 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是非之端去等 以此文記告官卞定事畓主 自筆 幼學 鄭安浩[着名]證人 崔孟德[着名]證 李基甫[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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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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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浚良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8년(고종25) 1월 25일에 답주 유학 조준양이 순천부 황전면 삽치 구계평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88년(고종25) 1월 25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조준양(趙浚良)이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조준양은 자신이 물려받은 논을 여러 해 세를 거두다가 이사하고자 논을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구계평(九溪坪)에 있는 종자(從字) 정답(丁畓) 4마지기(결부수: 10부) 노(奴) 세상(世尙)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등재된 곳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130냥을 받고 팔았으며 신문기와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도 함께 준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조준양 1인으로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삽치는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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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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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緖十四年戊子正月二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 傳來畓 累年收稅是多可 移居次 府地黃田面霅峙九溪坪伏在 從字丁四斗落只負數十卜奴■(永)世尙帳㐣 價折錢文一百三十兩 依數捧上爲遣 新旧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如有是非則 以此文記告 官卞呈事 自笔 畓主 幼學 趙浚良 喪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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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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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9년 토지매매명문(土地放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德一 金德一<着名>, 梁顯昫<着名>, 鄭文甲<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9년(고종 6) 10월 27일에 무계주 유학 김덕일이 구례현 간전면 산령동에 있는 자신의 황무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69년(고종 6) 10월 27일에 무계주(茂界主) 유학(幼學) 김덕일(金德一)이 자신의 산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덕일은 자신이 물려받은 무계를 여러 해 갈아 먹다가 부득이하게 긴히 쓸 곳이 있어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산지는 구례현(求禮縣) 간전면(艮田面) 산령동(山令洞) 산의 동쪽 편에 있는 무계(茂界)로 동쪽으로는 장등(長登), 남쪽으로는 장등(長嶝)의 중앙로 윗부분을 한계로 삼은 곳이다. 이를 전문(錢文) 1냥을 받고 신문기(新文記) 1장을 주고 영원히 판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주인 김덕일 외에 증인 유학 양현구(梁顯昫)와 정문갑(鄭文甲) 총3인이다. 주인 김덕일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간전면 산령동은 현재 전라남도 구례군 간전면 금산리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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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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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同治八年己巳十月卄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 矣傳來無界 累年耕食是多可 不得已要用所致 府地艮田面山令洞山東便茂界東便長等南便長登中路上爲限 價折錢文壹兩 依數捧上爲遣 右前新文記一丈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子孫中 若有是非之端是去等 以此文記相考事自筆 茂界主 幼學 金德一[着名]證 幼學 梁顯抱[着名]幼學 鄭文甲[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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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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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浚福 等 3名 趙浚福<着名>, 梁致敎<着名>, 梁致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9년(고종26) 12월 1일에 계중의 조준복 등 3인이 순천부 황전면 산령리 일대 산지의 밭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89년(고종26) 12월 1일에 계중(禊中)의 조준복(趙浚福) 등 3인이 산지에 있는 밭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계중 회원인 유학 조준복, 양치교, 양치옥 등 3인은 계중에서 매입하여 여러 해 세금을 거두었던 논을 팔게 되었다고 하였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山嶺) 구계평(九界坪)에 있는 직자(職字) 정답(丁畓)의 위쪽 동남쪽에 있는 무계진지(茂界陳地) 2편전(片田)이다. 정씨(鄭氏)가 경계를 이어 금양(禁養)하고자 말하기에 전문(錢文) 8전을 받고 신문기 1장으로 영원히 판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계중의 산지에 있는 전주(田主) 3인으로 문서 작성자와 증인 등을 세우지 않았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 마을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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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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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緖十五年己丑十二月日 前明文右明文事段 自稧中買得畓累年收稅是多可 放賣次 黃田面山嶺九界坪職字丁畓之上東南便茂界陳地與二片田鄭氏以連界禁養之意言及 故價折錢文捌戔 依數捧上是遣 新文一丈 右前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相左之端則 以此文記相考事稧中 幼學 趙浚福[着名]幼學 梁致敎[着名]幼學 梁致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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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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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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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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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장택기(葬擇記) 4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장례(葬禮)를 치르기 위해 택일(擇日)한 문서 안장일은 9월 2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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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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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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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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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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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치부(置簿) 5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 2顆(7.5x7.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치부(置簿) [순천부 황전면] 산령(山令)의 奴 예화(禮化) 등 5명의 세금 납부액을 기록한 문서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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