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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정유년 정흠만(鄭欽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欽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유년 11월 26일에 사제 정흠만이 자신의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장 일자를 전하고 자신의 종씨와 치르는 혼담에 대하여 올해 내로 결혼식을 할 수 있는지 묻는 내용으로 사돈댁에 보낸 편지의 초안(前面)과 편지(後面). 정유년 11월 26일에 사제(査弟) 정흥만(鄭欽萬)이 자신의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장(移葬) 일자를 전하고 올해 내로 혼례 일자를 잡아도 괜찮은지 물어보는 내용으로 사돈에게 보낸 편지 초안이다. 그동안 그리운 마음과 정체(靜體)께서 잘 계신지와 아드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면례(緬禮) 일자를 이달 28일로 잡았다고 전했다. 혼설(婚說, 혼담)에 대해서는 지난번 편지에서 돌아오는 봄으로 말했지만, 우리 종씨(宗氏)가 올해 내로도 치를 뜻이 있다며 형님의 뜻이 어떠한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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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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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前面)麗澤契中雲際天冠益縹緲 而不見景仰之心 無日不憧憧 謹未審陽復靜棣體候連護萬相 允玉處侍 一勤課否 幷溸不任區區頂祝 査弟 王考丈緬事 年久經營 而未遂情禮矣 今得高眼 今二十八日窀窆卜吉 事多拘掣 未得抽身 私悶何喩 就婚說頃書以開春言之矣 昨聞鄙宗之言 則雖歲內亦有請期之意 則於 兄意何如耶下諒處之企仰耳 餘掛漏 不備狀禮丁酉至月念六日 査弟 鄭欽萬 頓(後面)雲際天冠 益縹緲而不見憧憧 無日於心矣 謹未審陽復靜體候連護萬相 允玉安侍 一勤課否 幷仰溸不任區區頂祝 査弟 王考緬事 年久經營 而未遂情禮矣 今得高眼 今二十八日窀窆卜吉 事多拘掣 未得抽身 私悶何喩 就婚事頃書明開春言之矣 昨聞鄙宗之言 則雖歲內亦有請期之意 則於 兄意何如耶 下諒處之企仰耳 餘掛漏 不備狀禮丁酉十一月二十六日 査弟 鄭欽萬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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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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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조흘첩(照訖帖) 1 고문서-증빙류-조흘첩 珍島府使 <押> 帖字印,珍島府使之印(8.0×8.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755_001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이다. 문서의 결락이 심한 편이며 이 때문에 수취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조흘(照訖)이란 '대조하여 확인을 마쳤다.'는 뜻으로 과거 응시에 결격 사유가 없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소학』을 고강(考講)하여, 과거에 응시할 수 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녹명(錄名)하고 과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 실시하는 『소학』에 대한 고강을 조흘강이라고 하는데, 이를 통과하였다는 증명서가 조흘첩이었다. 조흘첩은 과거장에 입장할 때 필요하였던 것은 물론이고 입장한 후나 퇴장할 때에도 그 소지 여부를 점검하였다. 조흘첩의 서식은 ⓛ발급자와 발급 목적[某爲照訖事], ②수취자의 성명·연령·거주지 등 정보, ③고강 통과 사실 통지[小學入格爲有置] ④종결어 [帖文成給爲遣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 ⑤작성연월 및 발급자의 착명(着名)으로 이루어진다. 조흘첩은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서식상의 큰 차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수량을 필요로 했던 만큼 그 서식을 목판에 새겨 인출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 즉 목판에 기본 서식을 새겨 인출한 뒤 공란에 수취자의 정보를 채워넣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문서의 경우는 직접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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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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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珍島府使爲照訖事 ▣▣(幼學)年 居 面 小學入格▣▣(爲有)▣(置) 帖文成給爲遣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準此▣…▣ [着押] [帖][珍島府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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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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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1938년 이경용(李景容) 등기명의인 표시경정 등기신청서(登記名義人表示更正登記申請書) 고문서-소차계장류-근현대문서 李景容 光州地方法院珍島出張所 崔永俊 4顆, 光州地方法院珍島出張所(6.0×6.0), 司法書士朴容淳 (1.5×1.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 12월 5일에 이경용(李景容)이 최영준(崔永俊)을 대리인으로 하여 광주지방법원 진도출장소(光州地方法院珍島出張所)에 등기명의인 표시경정등기(登記名義人表示更正登記)를 신청한 문서 대상: 진도군 임회면 봉상리(珍島郡 臨淮面 鳳翔里) 812番地 田390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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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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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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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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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16년 이동헌(李東憲)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東憲 咸平縣監 官[着押] 1顆(6.4×6.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794_001 1816년에 이동헌이 함평 현감에게 망모(亡母)의 무덤에 아주 가깝게 무덤을 쓴 국사봉의 행위를 고발하며 무덤을 파 옮겨줄 것을 청하는 내용의 소지 1816년에 이동헌의 망모(亡母) 산소가 대동면 가구지촌의 서쪽 등성이에 있는데, 어제 이른 아침에 산지기가 와서 산 아래에 사는 국사봉(鞠士奉)이란 자가 자신의 산소 아래에 망형(亡兄)의 장사를 지내려고 한다고 하여 바로 가보니 과연 산소 계하(堦下)에서 10보(步) 안쪽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 관을 내리고 흙을 덮어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이동헌은 일반 사서(士庶)의 무덤이라고 해도 같은 고을의 상놈이라면 매우 가까운 곳에 몰래 무덤을 쓰는 것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더구나 관작(官爵)이 있는 무덤과 매우 가까운 곳에 무덤을 쓴 행위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호소하였다. 즉시 차사(差使)를 보내 국사봉이란 자를 붙잡아 제 분수를 모르는 죄를 엄히 다스리고 무덤도 즉시 파서 옮기라는 처분을 내려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대해 제 분수를 모르고 법을 범한 행위는 매우 놀라우니 각별히 적간(摘奸)하여 도형(圖形)을 그려서 보고하라는 처분을 형리(刑吏)에게 내렸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개인적인 안면이 있다는 이유로 가까운 곳을 멀다고 했다가 훗날 탄로 나게 되면 무덤을 파 옮기게 됨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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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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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平陵化▣〔民〕李東憲右謹言情由段民之■■〔先妣〕亡母山所在於大洞面加九池村白虎嶝矣昨日早朝山直來告曰山下居鞠士奉欲葬其亡兄於宅山所堦下云故急往見之則果是外堦下十步內至近之地已爲下棺掩土是乎所雖凡他士庶之塚以一鄕常漢不可暗葬於至近之地是去乙▣…▣有官爵之塚乎不勝悶迫玆敢仰訴爲去乎參商敎是後上項鞠士奉發差捉來 嚴治其昧分犯法之罪後卽刻掘移事 處分爲只爲行下向敎事城主 處分丙子二月 日〈題辭〉蔑分犯法極爲可痛各別摘奸圖形以(背面)報是矣若拘偸葬▣人顔私指近爲遠是如可日後現▣則難免査掘事刑吏鄕所卄一日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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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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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咸豊八年戊午十二月初七日 前明文右明事段 自己買得 累年耕食是如可 不得 要用所致 府地黃田面霅峙山嶺村飛羅坪伏在 登字畓貳斗落只負數伍負六束奴刀萬帳庫乙 價折錢文三十柒兩 依數捧上爲去乎右前本文記幷 永永放賣爲遣 日後若有雜談是去等 將此文記告官 卞正事自筆 畓主 幼學 鄭仁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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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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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安浩 鄭安浩<着名>, 李圭馥<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8년(철종9) 12월 28일에 답주 유학 정안호가 순천시 황전면 삽치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58년(철종9) 12월 28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정안호(鄭安浩)가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안호는 자신이 사서 여러 해 갈아먹다가 형편상 부득이 유용하게 쓸 곳이 있어서 논을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송라상평(松羅上坪)에 있는 등자(登字) 답(畓) 3마지기(결부수: 9부 3속) 노(奴) 설업(雪業)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기재된 곳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45냥이며, 신문기와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를 모두 준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유학 정안호와 문서 작성을 맡은 필주(筆主) 유학 이규복(李圭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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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咸豊八年十二月卄八日 前明文右明文事段 自起買得畓 累年耕食是多可 勢不而 要用所致 府地黃田面霅峙松羅上坪登字畓參斗落只負數九負三束奴雪業帳庫乙價折錢文四拾伍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新旧文記 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是非之端是去所 持此文記相告事畓主 幼學 鄭安浩[着名]筆主 幼學 李圭馥[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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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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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朱八百 朱八百<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7년(고종24) 1월 21일에 전답주 유학 주팔백이 순천부 황전면 산령촌에 있는 전답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87년(고종24) 1월 21일에 전답주(田畓主) 유학(幼學) 주팔백(朱八百)이 전답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주팔백은 자신이 사서 여러 해 세금을 거둬들였던 땅을 부득이하여 방매하고자 한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산령(山令) 금암평(錦岩坪)에 있는 가경답(加耕畓) 7승락지와 전(田) 1두락지이다. 이 땅을 전문(錢文) 10냥을 받고 판다고 하였으며 신문기와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도 함께 준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전답주 주팔백 1인이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 마을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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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緖拾三年丁亥正月二十一日 前明文右明文事 自己買得畓累年收稅是多可 不得已 放賣次 府地黃田面霅峙山令錦岩坪加耕畓七升落果田壹斗落 價折錢文拾兩 依數捧上是遣 右前新旧文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是非則 以此文記憑考事田畓主 朱八百[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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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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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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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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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치부(置簿) 3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 2顆(7.0x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치부(置簿) [순천부 황전면] 산령(山令)의 奴 예화(禮化) 등 4명의 세금 납부내역을 기록한 문서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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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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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치부(置簿) 4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 3顆(7.0x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치부(置簿) [순천부 황전면] 산령(山令)의 奴 예화(禮化) 등 7명의 세금 납부액을 기록한 문서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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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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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69년 이군거(李君擧)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李君擧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558_001 1869년(고종6) 9월에 이군거를 소위장군(정4품하) 훈련원첨정(종4품)에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 1869년(고종6) 9월에 이군거(李君擧)를 소위장군(昭威將軍)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者)에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이다. 4품 이상 고신은 첫머리가 교지(敎旨)로 시작하며 국왕이 직접 임명하는 양식으로 작성된다. 소위장군은 조선시대 무관 정4품 하의 관계이다. 훈련원은 조선시대 군사의 시재(試才), 무예의 훈련 및 병서(兵書)의 습독(習讀)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이며, 첨정은 종4품직이다. 문서 발급일자 오른쪽에 기록된 방서(傍書)에는 '전라우수영장관(全羅右水營將官) 사만예수(仕滿例授)'라고 적혀 있어 그가 전라우수영장관의 직에서 사만(仕滿)이 되어 받은 관직임을 알 수 있다. 병조 무선사에서 문서의 작성과 발급을 담당하였으며 인장은 어보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안보(安寶)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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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李君擧爲昭威將軍訓鍊院僉正者全羅右水營將官仕滿例授同治八年九月 日[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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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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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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