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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이군거(李君擧) 산지매매명문(山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汝文 李君擧 朴汝文<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고종10) 3월 29일에 표종 박여문이 내종 이군거에게 영광군 후증도 오항 뒤쪽 산지를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산지매매명문 1873년(고종10) 3월 29일에 표종(表從) 박여문(朴汝文)이 내종(內從) 이군거(李君擧)에게 산지(山地)를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산지매매명문이다. 박여문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산지를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산지는 영광군(靈光郡) 후증도(後甑島) 오항(鰲項)의 뒤쪽 대로(大路)의 위쪽에 있는 금양(禁養)산지라고 하였다. 방매 가격은 전문(錢文) 3냥5전이다.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에 대한 언급이 없고 필집과 증인이 별도로 없는 문서 첫줄에는 명문(明文)이라고 쓰고 마지막 줄에는 표주(標主)라고 쓴 매매문서이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영광군 염소면 후증도는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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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一年癸酉三月卄九日 內從君擧前明文右明文事段 捄命所關 郡地後甑島鰲項後大路上禁養乙 錢文參兩伍戔捧上是遣 右處永永出給 日後以此憑考事標主 表從 朴汝文[着名]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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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이백언(李白彦) 시장문기(柴場文記) 1 고문서-명문문기류-시장문기 曺京彬 李白彦 炳業<指章> 曺京彬信(1.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09_001 1909년(순종3) 9월 9일에 시장주 조경빈(曺京彬)이 이백언(李白彦)에게 지도군 사옥면 후증도의 시장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시장매매명문 1909년(순종3) 9월 9일에 시장주(柴場主) 조경빈(曺京彬)이 이백언(李白彦)에게 후증도의 시장을 방매하면서 시장매매명문이다. 조경빈은 자신이 물려받아 풀을 베던 곳을 쓸데가 있어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시장은 지도군(智島郡) 사옥면(沙玉面) 후증도(後曾島) 외장성동(外長城洞)에 있는 시장 내 이백언 조부모 묘지 금양(禁養) 한계에서 위로 10파(把), 좌·우·앞쪽으로 각 5파씩 되는 땅이다. 파(把)는 주먹 쥔 손을 의미하는데 얼마 만큼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곳을 전문(錢文) 12냥을 받고 팔았으며, 신문기(新文記: 본 매매명문) 1장으로 거래한다고 하였다.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도문기(都文記: 재산 전체를 기록한 분재기) 안에 적혀 있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시장주 조경빈과 필(筆: 문서작성) 차자(次子) 조병업(曺炳業)이다. 조경빈은 원형 주인(朱印)을 찍었고 조병업은 지장(指章)을 찍었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지도군 사옥면 후증도 장성동은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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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백일인(白日寅)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白日寅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734_001 임술년 12월 29일, 외생 백일인이 장인에게 자신의 무사 귀가를 전한 편지. 임술년 12월 29일, 외생(外甥) 백일인(白日寅)이 장인에게 자신의 무사 귀가를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밤사이 장인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무사히 귀가했으며 집에 돌아와 보니 집도 별일 없이 전과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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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위계반(魏啓泮)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魏啓泮 16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10월 16일 문회소에서 위계반 등 16인이 선산의 제각을 고쳐 짓기 위해 돈을 모금하는 내용으로 지어 돌린 통문. 1929년 10월 16일 문회소에서 위계반(魏啓泮) 등 16인이 선산(先山)의 제각(祭閣)을 고쳐 짓기 위해 돈을 모금하는 내용으로 지어 돌린 통문(通文)이다. 경하동(烴霞洞)에 있는 우리 위씨(魏氏) 남북(南北) 도선산(都先山)의 제각을 새로 6칸으로 짓고, 대문을 3칸으로 하여 기와를 얹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문(五門)이 가난하여 돈을 모으기가 힘들어서 가관전(加冠錢)을 매 원(員)당 3냥으로 정한다고 하며 그 외 의연금을 내어 준공(竣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하였다. 또한 장흥(長興)의 윤통(輪通) 유사(有司)로 계충(啓忠)과 상(相), 계관(啓寬) 3원을 정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문서 끝 문회소의 연명자 이름자 아래에 찍힌 원형의 도장을 통해 문서의 작성시기가 1929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상기의 제각은 장흥에 지어진 장흥위씨 문중 재실인 백산재로 보인다. 이 건물은 장흥위씨 문중의 사우인 하산사(霞山祠)의 강당으로 함께 활용되고 있는 건물로 조선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었고, 대문은 3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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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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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通文右通喩事墓而有閣爲後承者爲先奉祀之道也夫煙霞洞吾魏南北都先山而祭閣須甚草草傾圯狹隘其在瞻視頗欠體皃居常慨歎何幸今年墓祭時自南中先爲發論營建祭閣六間及大門三間皆盖瓦爲料豫筭所入則可至萬有餘金而但五門素貧鳩財無路故加冠錢每員三兩式爲定加冠金以外各隨家力盡心出義以爲竣事之地幸甚再出議員各啣不拘年行以其金之多寡爲序入鐫愚拔以爲永世傳示之資以此須諒焉長興輪通有司以啓忠相啓寬三員爲定己巳十月十六日門會所魏啓泮[印] 啓忠[印] 啓信[印] 啓成[印] 啓昌[印] 準植[印]啓又[印] 啓仲[印] 錫祉[印] 啓龍[印] 相[印]啓林[印] 元良[印] 其良[印] 啓寬[印] 日煥[印]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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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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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임술년 백영희(白永熺)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白永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734_001 임술년 12월 5일, 백영희가 신부댁에 신랑의 사주를 적어 올리면서 보낸 예장. 임술년 12월 5일, 백영희(白永熺)가 신랑을 장가들이면서 신부댁에 신랑의 사주를 적어 올리면서 보낸 예장(禮狀)이다. 상대 어른의 안부를 묻고 혼인 허락에 따라 말씀하신 경첩(庚帖)을 적어 올린다는 예식 편지이다. 신랑댁에서 신랑의 사주를 신부댁에 보내면 신부 집에서 신부 사주와 비교하여 혼례일자를 잡아 신랑측에 전하는 혼인의 과정에서 작성된 예장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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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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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28년 이동헌(李東憲)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東憲 咸平縣監 官[着押] 3顆(7.0×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794_001 1828년 이동헌이 함평 현감에게 김진성(金振聲)과의 소송에서 패소한 일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의 소지 1828년 함평현 평릉면 사산에 거주하는 이동헌이 함평 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동헌은 신광면 장산에 거주하는 김진성과 산송을 진행하던 중에 대질 신문을 거쳐 패소하였는데, 이 일이 매우 억울하다는 내용이다. 패소에 이르게 된 것은 자신의 효성이 부족하고 성품이 우매하기 때문이지만 법의(法意)의 측면에서 따져보면 김진성이 계장(繼葬)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상놈의 신분으로 양반가 분산(墳山)의 묘소 뒤쪽으로 40여 보(步)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범장(犯葬)을 한 것은 이미 분수를 모르는 짓이고 사대부가의 분산이 침탈을 당한 것이니 매우 억울하다는 것이다. 김진성이 가지고 있는 도형(圖形)을 환수하여 효주(爻周)해서 무효화함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하였다. 이에 대해 함평 현감은 도형에 잘못이 있다고 의심된다면 직접 친심(親審)하여 적간(摘奸)한 뒤에 처결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체차되어 돌아가니 뜻이 있어도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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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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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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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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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平陵面射山居罪民李東憲右謹言日昨罪民以山事呈訴則 題音內從公議許葬是乎矣第伏念用山與否在於法理是在果惟彼朴帶春朴孟甲以境內常漢率婦女老少一邊詬辱一邊毆曳▣…▣喪身罔有紀極甚至於朴帶春及孟甲之母跟到罪民之家肆惡於內庭詬辱於外舍▣…▣聞同朴帶春朴孟甲兩漢爲先猛差捉致嚴囚依律洞繩使此化外之民以懲犯分之罪千萬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癸酉三月 日〈題辭〉兩朴所爲痛惡嚴治次■■■當刻捉來宜事 二十■■〔面任〕 主人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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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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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仁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8년(철종9) 12월 7일에 답주 유학 정인철이 순천부 황전면 삽치 산령촌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58년(철종9) 12월 7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정인철(鄭仁喆)이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인철은 자신이 사서 여러 해 갈아먹다가 부득이하게 유용하게 쓸 곳이 있어서 논을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산령촌(山嶺村) 비라평(飛羅坪)에 있는 등자(登字) 답(畓) 2마지기(결부수: 5부 6속)이다 노(奴) 역만(刀萬)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기재된 곳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37냥이며, 본문기도 함께 준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정인철 1인으로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삽치 산령촌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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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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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6년 최연석(崔演錫), 최치형(崔致亨) 산지매매명문(山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演錫 崔演錫<着名>, [崔]致亨<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513_001 1886년 10월 초2일에 유학 최연석(崔演錫), 최치형(崔致亨)이 발급한 산지매매명문 1886년 10월 초2일에 유학 최연석과 그의 종형 최치형이 발급한 산지매매명문이다. 이 산지는 최연석과 최치형의 가문에서 대대로 보호하고 지켜온 것으로 순천부 황전면 산령촌에 있었다. 이 산지를 부득이하게 팔아야 하는 사정이 생겨 전문 5냥을 받고 판매하였다. 구문기(舊文記)는 예전에 잊어버렸으므로 줄 수 없지만, 만약 이 산지에 대해 시비를 다투는 일이 생기면 지금 발급하는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명문은 주로 매매 등의 거래 내역을 작성하여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발급한 조선시대의 계약서를 말한다. 명문에 기재된 매매 관련 사항은 명문의 작성일, 매수인의 신분과 성명,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 매매 이유, 매매목적물의 표시, 지불수단의 종류 및 액수, 본문기의 교부 여부 등이 있다. 마지막에는 거래에 참여한 매도인, 매매 시 참여한 증인, 명문을 작성한 필집의 성명과 서명 등을 한다. 매매 계약이 성립한 후에는 새롭게 작성한 매매 명문인 신문기(新文記)와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가 적힌 구문기(舊文記)를 매수인에게 함께 양도해야 했다. 구문기로는 주로 분재기와 명문이 사용되었으며, 이들을 본문기(本文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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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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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緖十二年乙酉十月初二日 前明文右明文事段 傳來養山 累年守護是多可 勢不得已 府地黃田面山令村後一嶝價折錢文伍兩 依數捧上爲遣 右前新文一丈 永永放賣爲遣 舊文中年已失 故未得出給 今後若有是罪 則以此文記相考自筆山主 幼學 崔演錫[着名]從兄 致亨[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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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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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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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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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치부(置簿) 1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 6顆(7.0x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치부(置簿) [순천부 황전면] 산령(山影)지역 예화(禮化) 등 5명의 세금 납부 관련 기록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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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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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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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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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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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치부(置簿) 2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치부(置簿) [순천부 황전면] 산령(山令)의 奴 예화(禮化) 등 4명의 세금 납부내역을 기록한 문서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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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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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백문옥(白文玉) 증서(証書) 고문서-증빙류-수표 白文玉 鄭翊朝 白文玉 3顆(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553_001 1921년 음력 2월 25일에 백문옥이 정익조에게 구례군 구례면 신월리 후록의 분묘를 파내가겠다는 내용으로 작성해 준 증서 1921년 음력 2월 25일에 백문옥(白文玉)이 정익조(鄭翊朝)에게 분묘를 파내가겠다는 내용으로 작성해 준 증서(証書)이다. 분묘의 소재지는 전라도 구례군 구례면 신월리 후록(後麓)으로 음력 1921년 2월 28일까지 옮기기로 하고, 만일 정해진 날짜에 분묘를 옮기지 않으면 손해액 5원을 백문옥 본인이 전부 부담하기로 한다는 내용이다. 이두 부분을 한글로 작성한 국한문혼용체이다. 추기에는 정리해줄 분묘의 범위를 광중(壙中)의 바깥 층 이하로 9자씩 되는 땅으로 정한다고 적었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증서의 주인인 백문옥과 보증인 이용선(李龍善)이다. 조선시대 수표(手標)나 다짐의 문서가 증서(証書)로 양식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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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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証求禮面新月里後 本人의 墳墓을 本年旧貳月貳拾八日에 掘去ᄒᆞ기로 玆에 成証이되 萬一右定日에 掘去치 아니ᄒᆞ면一切損害金五円은 本人이 全部負担ᄒᆞ기로 玆에 成証ᄒᆞᆷ大正拾年旧貳月貳拾五日求禮面新月里証主 白文玉[印: 白文玉]仝 仝保証人 李龍善鄭翊朝 殿追而林野은 壙中外階以下로 九尺式完定ᄒᆞ야 貴殿에 賣渡ᄒᆞ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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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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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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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22년 이춘발(李春發)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光郡守 李春發 行郡守<押> 靈光郡戶口, □…□ (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569_001 1822년에 영광군(靈光郡)에서 한량(閑良) 이춘발(李春發, 53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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