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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承寵牘感荷益切謹審新元尊棣體候迓新增祉仰賀區區不任勞祝 第親事旣至涓吉果無所碍喜幸良深餘萬不備伏惟尊照 謹謝上狀庚寅元月七日生柳永蒔徘拜피봉謹拜謝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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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고흥향교(高興鄕校)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戊申正月 日 高興鄕校 李鐘永 戊申正月 日 [1968] 高興鄕校 李鐘永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8년 1월 고흥향교(高興鄕校)에서 이종영(李鐘永)에게 보낸 망기(望記). 1968년 1월 고흥향교(高興鄕校)에서 이종영(李鐘永)에게 보낸 망기(望記)이다. 망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종영을 오는 10월 석전제(釋奠祭)의 진설(陳設)로 임명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망기는 어느 한 직책에 합당한 인물을 천거할 때 사용하는 문서로 서두에 망(望) 혹은 천망(薦望)을 기입하였다. 망첩(望帖) 또는 망단자(望單子)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 직책에 세 사람을 후보자로 열거하는 3 망이 원칙이었으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고흥향교는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에 있는 향교이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1441년(세종 2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고흥현 서문(西門) 밖에 창건되었다.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되었다가 1695년 유생 강익무(姜翊武)·치무(致武) 형제가 향교의 재건을 상소하고 신규(申樛)·송만징(宋萬澄) 등이 발의하여 1700년 교궁(校宮)을 중건하였다. 광복 뒤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쳤으며 1955년 홍살문을 세웠다. 이종영은 1945년 8월 27일 결성된 고흥 건국준비위원회에 속해 평의원으로 참여하였다. 석전제는 석채(釋菜), 상정제(上丁祭), 정제(丁祭)라고도 한다. 공자(孔子)를 모신 문묘(文廟)에서 선성(先聖)·선사(先師)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행해졌으며, 이로 인해 상정제(上丁祭)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주대(周代)이래 순(舜)·우(禹)·탕(湯)·문왕(文王)등 여러 성인에게 석전을 올렸으며, 한(漢)나라 이후 유교(儒敎)를 숭상하면서 동자를 제사하는 의식으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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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류호석(柳浩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辰 □月旬一朝 族弟 浩錫 甲辰 □月旬一朝 柳浩錫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4년 4월에 族弟 浩錫이 柳大錫에게 보내는 간찰 1964년 4월에 族弟 浩錫이 柳大錫에게 보내는 간찰. *春事方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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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고흥류씨종중대표(高興柳氏宗中代表)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午年十月日 高興柳氏宗中代表 丙午年十月日 高興柳氏宗中代表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6년 10월 高興柳氏宗中代表가 보내는 간찰 1966년 10월 高興柳氏宗中代表가 보내는 간찰. 英密公遺墟碑 제막식 관련 안내 내용 *국한문혼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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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류병헌(柳秉憲)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1982.3.28 1982.3.28 柳秉憲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82년에 柳秉憲이 고흥의 족인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1982년에 柳秉憲이 고흥의 족인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국한문혼용, 편지지 2장에 연결, 가로 필기 *원문: 謹啓 陽春佳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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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류영시(柳永蒔) 준호구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戊午 幼學 柳永蒔 戊午 興陽縣監 柳永蒔 行縣監[押] ▣…▣ 1顆, 周挾改印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8년 幼學 柳永蒔 준호구. 1858년(철종 9)에 전라도 興陽縣 邑內面 虎山東邊里에 거주하는 幼學 柳永蒔의 준호구. 柳永蒔의 당시 아버지 柳徹浩이 죽음으로 인해 호주가 되었으며 나이는 26세이다. 四祖사항에 대해서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柳徹浩이고, 조부는 學生 柳日榮이고, 증조부는 學生 柳坰이며, 외조부는 學生 宋禹臣로 본관은 礪山이다. 가족구성원으로는 돌아가신 어머니 宋氏와 처 靈光丁氏가 기재되어 있다. 처 영광정씨는 27세로 임진(1832)생이다. 처 丁氏의 부친은 學生 丁斗亨, 조부는 學生 丁式祚, 증조부는 學生 丁孝彬, 외조부는 學生 宋壽龜로 본관은 礪山이다. 소유하고 있는 노비는 모두 2口로 남자종 1구(30세)와 여자종 1구(61세)가 있다. 당시 류영시의 거주지인 전라도 흥양현 읍내면 호산동변리는 현재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호동리이다. 문서를 보면 호에 실제 거주하는 인원이 기재된 행의 첫 머리에 朱墨을 찍고, 亡者의 경우 아래에 길게 줄을 그어 표시하였다. 또 문서 오른쪽 하단에 朱墨으로 '准', 黑墨으로 '書'가 추기되어 있다. 이는 류영시가 작성하여 제출한 호구단자를 관에서 이전의 호구와 대조하고 확인하였다는 표시이다. 문서 좌측에 行縣監이 기재되고 그 아래 署押, 오른쪽 하단에 周挾改印과 관인이 겹쳐서 찍혀있다. 호구단자는 국가에서 戶口臺帳을 3년마다 改修하기 위하여 各戶에서 호구상황을 적어 3년에 한차례 제출하는 것을 말한다. 주요 기재사항은 각호의 주소, 戶首의 직업·성명·생년·본관·四祖, 그 처의 성명·생년·본관·四祖, 率居子女의 성명·생년, 노비와 雇工의 성명·생년 등이다. 戶主가 호구단자 2부를 작성하여 올리면 里任․面任의 검사를 거쳐 州郡에 보내지고, 주군에서는 구 대장 또는 관계서류를 대조하여 誤錯여부를 확인한다. 이후 1부는 단자를 제출한 호주에게 환부하여 각 집안에 보관케 하고, 1부는 장적을 개수하는데 자료로 이용한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2부를 작성하여 제출하던 호구단자를 1부만 작성하고 거기에 곧바로 준호구에 찍던 周挾改字印을 찍어 돌려주게 된다. 이는 이전에 제출용 호구단자와 증명용 준호구가 공존하던 것이 이제는 호구단자만으로 준호구의 역할을 포괄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서 하단 여백에 대조ㆍ확인을 했다는 '准'을 쓰고 관인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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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류영시(柳永蒔) 준호구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辛酉 幼學 柳永蒔 辛酉 興陽縣監 柳永蒔 行縣監[押] 周挾改印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1년에 幼學 柳永蒔가 興陽縣에 제출한 준호구. 1861년(철종 12)에 전라도 興陽縣 邑內面 虎山東邊里에 거주하는 幼學 柳永蒔가 興陽縣에 제출한 준호구이다. 柳永蒔의 본관은 高興이며, 당시 나이는 29세로 계사(1833)생이다. 사조사항에 대해서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柳徹浩이고, 조부는 學生 柳日榮이고, 증조부는 學生 柳坰이며, 외조부는 學生 宋禹臣로 본관은 礪山이다. 가족구성원으로는 처 靈光丁氏가 있다. 영광정씨는 30세로 임진(1832)생이다. 부인 丁氏의 부친은 學生 丁斗亨, 조부는 學生 丁式祚, 증조부는 學生 丁孝彬, 외조부는 學生 宋壽龜로 본관은 礪山이다. 소유하고 있는 노비는 모두 2口로 남자종 1구와 여자종 1구가 있다. 당시 류영시의 거주지인 전라도 흥양현 읍내면 호산동변리는 현재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호동리이다. 문서를 보면 호에 실제 거주하는 인원이 기재된 행의 첫 머리에 朱墨을 찍었다. 또 문서 오른쪽 하단에 朱墨으로 '准', 黑墨으로 '書'가 추기되어 있다. 이는 류영시가 작성하여 제출한 호구단자를 관에서 이전의 호구와 대조하고 확인하였다는 표시이다. 문서 좌측에 行縣監이 기재되고 그 아래 署押, 오른쪽 하단에 周挾改印이 찍혀 있다. 호구단자는 국가에서 戶口臺帳을 3년마다 改修하기 위하여 各戶에서 호구상황을 적어 3년에 한차례 제출하는 것을 말한다. 주요 기재사항은 각호의 주소, 戶首의 직업·성명·생년·본관·四祖, 그 처의 성명·생년·본관·四祖, 率居子女의 성명·생년, 노비와 雇工의 성명·생년 등이다. 戶主가 호구단자 2부를 작성하여 올리면 里任․面任의 검사를 거쳐 州郡에 보내지고, 주군에서는 구 대장 또는 관계서류를 대조하여 誤錯여부를 확인한다. 이후 1부는 단자를 제출한 호주에게 환부하여 각 집안에 보관케 하고, 1부는 장적을 개수하는데 자료로 이용한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2부를 작성하여 제출하던 호구단자를 1부만 작성하고 거기에 곧바로 준호구에 찍던 周挾改字印을 찍어 돌려주게 된다. 이는 이전에 제출용 호구단자와 증명용 준호구가 공존하던 것이 이제는 호구단자만으로 준호구의 역할을 포괄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서 하단 여백에 대조ㆍ확인을 했다는 '准'을 쓰고 관인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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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6년 류지호(柳志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戌四月晦日 子 志浩 父主前 上白是 丙戌四月晦日 柳志浩 柳日榮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6년 柳志浩가 아버지 柳日榮에게 보낸 간찰 1826년 柳志浩가 아버지 柳日榮에게 보낸 간찰. *상태: 배면에 柳志浩가 아버지께 보낸 다른 편지가 필사, 윗면에 일부 찢김 *원문: 三月晦間仍營主人便上書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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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所志) 초(草)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관에 소지를 올리기 전 미리 작성한 소지(所志)의 초(草) 두원면(豆原面) 내송리 후록에 있는 증 동몽교관(贈 童蒙敎官) 공의 묘에 8월 20일 밤에 투장한 투장주 신용구(申龍求)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이다. 투장한 신용구는 관직을 산 사족이며 9월 18일 투장한 것에 이유를 힐문하여 묻고 치표(置表;증명서)를 받았으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관에 고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여기서 적혀있는 동몽교관은 류형호(柳馨浩, 1796~1822)를 뜻하며 자는 향오(香五), 호는 가암(可菴)이다. 어릴 때부터 성현들의 이치를 깨달았으며 주역과 팔괘의 기운을 총론하여 30여설의 천지전설의 규문예범을 총람한 가암집(可菴集)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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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구(黃龍九) 백일장(白日場) 시권(試券)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黃龍九 黃龍九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고흥군 錦山面 錦津里에 사는 黃龍九가 작성한 백일장 試券. 고흥군 錦山面 錦津里에 사는 黃龍九가 작성한 백일장 試券이다. 백일장의 詩題는 '깊은 산속이라 4월이 되어 비로소 꾀꼬리 소리를 듣는다[山深四月始聞鶯]'이며, 科目은 小古風이다. 이 시제는 남송의 시인 육유(陸游, 1125~1210)의 시 "新夏感事"중에서 한 구절을 차용한 것이다. 소고풍은 無韻詩 가운데 오언의 짧은 시편을 말한다. 황용구는 백일장에 참여하여 次下의 점수를 받았다. 답안지 우측에 이 시권의 字號가 八鱗이라고 쓰여 있다. 자호는 시권의 제출 순서를 말한다. 과거 시험에서 시권을 다 거두면 제출 순서대로 묶어 千字文의 순서에 따라 字號를 매겼다. 이를 作軸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天軸, 地軸, 玄軸 등으로 나아간다. 天軸의 첫 번째 시권은 一天, 두 번째 시권은 二天이라고 한다. 이 문서는 鱗軸의 여덟 번째 시권인 것이다. 이 문서의 작성 시기는 1900년대로 추정되며 정확한 시기는 파악할 수 없다. 백일장은 유생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해 실시하는 시험으로 대낮에 詩才를 겨룬다는 의미이다. 1414년(태종14)에 국왕이 성균관에 가서 옛 성인과 스승에게 獻爵禮를 실시한 이후 유생들에게 時務策을 논의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후기 지방에서 실시되는 백일장은 관찰사와 수령 등 관 주도로 이루어지거나, 향교나 서원의 지방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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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광주포충사유회(光州褒忠祠儒會)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癸卯陰正月十五日 光州褒忠祠儒會 柳大錫 癸卯陰正月十五日 光州褒忠祠儒會 柳大錫 ▣…▣(3×3)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3년 1월 15일에 광주포충사유회(光州褒忠祠儒會)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 1963년 1월 15일에 광주포충사유회(光州褒忠祠儒會)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이다. 류대석을 춘향제(春享祭) 제관(祭官)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망기는 어느 한 직책에 합당한 인물을 천거할 때 사용하는 문서로 서두에 망(望) 혹은 천망(薦望)을 기입하였다. 망첩(望帖) 또는 망단자(望單子)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 직책에 세 사람을 후보자로 열거하는 3 망이 원칙이었으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호남의병을 이끌고 금산(錦山)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高敬命,1533~1592) · 종후(從厚,1554~1593) · 인후(因厚,1561~1592) 3부자와 유팽로(柳彭老,1554~1592) · 안영(安瑛,1564~1592)을 모신 곳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헐리지 않았던 전남지역 2대 서원 중 하나이다. 이 건물은 왜란 후 호남유생들이 충의로운 인물을 기리고자 세웠는데 1603년 고경명의 후손과 제자인 박지효(朴之孝)등이 임금에게 청하여 '포충(褒忠)'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980년에 새로운 사당과 유물전시관(正氣館) · 내외삼문 · 정화비 및 관리사무소 등을 세웠고 이때 옛 사당을 보수하면서 충효당(忠孝堂) · 청사영당(晴沙影堂) · 전사청(典祀廳) · 고직사(庫直舍)등을 철거하였다. 그러나 옛 사당과 동 ·서재는 본래의 위치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채로 남아있다. 포충사에 소장되어 있는 문적(文籍) 4종9점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1호로 지정되어 있다. 류대석은 1900년(광무 4) 8월 18일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알 수 없다. 초명(初名)은 기석(基錫)이다. 자(字)는 계언(桂彥)이고, 호(號)는 송은(松隱)이다. 부인은 박영진(朴璟鎭)의 딸인 진원박씨(珍原朴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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