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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류경준(柳敬俊)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參年丁丑正月二十六日 金尙奉 柳敬俊 光緖參年丁丑正月二十六日 金尙奉 柳敬俊 金尙奉[着名], 柳永學[着名]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7년에 金尙奉이 柳敬俊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문서. 1877년(고종 14) 정월 26일에 金尙奉이 柳敬俊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문서이다. 당시 토지의 매매사유는 흉년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운 탓이라고 밝히고 있다. 방매한 토지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邑內面 石峴村 앞 重山坪에 있는 來字丁 2마지기이다. 거래 가격으로 錢文 20兩을 받고 류경준에게 팔았다. 거래당사자 외 증인 및 필집으로 柳永學이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매입자인 류경준(柳敬浚)은 자가 乃欽, 본관이 고흥이다. 1855년에 태어나 1935년에 사망하였다. 배우자는 礪山宋氏이다. 당시 고흥에 살고 있었으며, 고려때 정승을 지낸 류청신(1257~1329)의 후손이다. 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흔히 토지와 노비, 가옥 등을 매매하는 문서명으로 쓰인다. 토지매매명문은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 연월일과 買受者, 賣渡事由, 賣渡物의 소재지, 量案上의 字 ․ 番, 結負[卜]束과 斗落, 배미[夜味]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賣渡人[財主], 筆執, 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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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류영시(柳永蒔)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六年庚辰二月初三日 柳永華 柳永蒔 光緖六年庚辰二月初三日 柳永華 柳永蒔 柳永華[喪不着], 柳永學[着名]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0년에 柳永華가 柳永蒔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문서. 1880년(정조 24) 2월 초3일에 柳永華가 柳永蒔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토지를 소유하게 된 경위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매매사유는 移買次 즉, 다른 곳의 토지를 구입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매매한 밭의 위치와 면적은 邑內面 虎東 松峴坪에 있는 暑字丁 7마지기[斗落只] 부수 7卜 3束인 곳이다. 거래금액은 錢文19냥이다. 밭주인 류영화는 거래당시 喪中이었기 때문에 서명할 수 없다는 의미로 喪不着이라고 기재하였다. 일반적으로 부모나 승중 조부모의 喪中인 사람은 喪不着이라고 표기하고 着名을 하지 않았다. 거래 당사자 외 증인 및 필집으로 柳永學이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였다. 류영화가 류영시에게 판 이 밭은 1868년 12월에 柳玉錫이 張漢得으로부터 錢文17냥에 구입한 곳으로 관련 문서가 남아있다. 류영시(柳永蒔)는 자가 子汝, 호가 竹窩, 본관은 高興이다. 1833년에 태어나 1918년에 사망하였다. 배우자는 靈光丁氏이다. 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흔히 토지와 노비, 가옥 등을 매매하는 문서명으로 쓰인다. 토지매매명문은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 연월일과 買受者, 賣渡事由, 賣渡物의 소재지, 量案上의 字 ․ 番, 結負[卜]束과 斗落, 배미[夜味]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賣渡人[財主], 筆執, 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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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六年庚辰二月初三日幼學柳永蒔前明文右明文事段流來田移買次伏在邑內面虎東松峴坪暑字丁七斗落只負數七卜三束庫乙價折錢文十九兩依數捧上爲遣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支捂之端是去等將此文憑考事田主 幼學 柳永華喪不着訂筆 幼學 柳永學[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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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고흥향교(高興鄕校)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乙未七月 日 高興鄕校 幼學 柳大錫 乙未七月 日 高興鄕校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5년 7월에 고흥향교(高興鄕校)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 1955년 7월에 고흥향교(高興鄕校)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이다. 류대석을 장의(掌議)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망기는 어느 한 직책에 합당한 인물을 천거할 때 사용하는 문서로 서두에 망(望) 혹은 천망(薦望)을 기입하였다. 망첩(望帖) 또는 망단자(望單子)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 직책에 세 사람을 후보자로 열거하는 3 망이 원칙이었으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고흥향교는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에 있는 향교이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1441년(세종 2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고흥현 서문(西門) 밖에 창건되었다.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되었다가 1695년 유생 강익무(姜翊武)·치무(致武) 형제가 향교의 재건을 상소하고 신규(申樛)·송만징(宋萬澄) 등이 발의하여 1700년 교궁(校宮)을 중건하였다. 광복 뒤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쳤으며 1955년 홍살문을 세웠다. 류대석은 1900년(광무 4) 8월 18일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알 수 없다. 초명(初名)은 기석(基錫)이다. 자(字)는 계언(桂彥)이고, 호(號)는 송은(松隱)이다. 부인은 박영진(朴璟鎭)의 딸인 진원박씨(珍原朴氏)이다. 장의는 조선시대 성균관유생들의 자치기구인 재회(齋會)의 임원이다. 동재(東齋)와 서재(西齋)에 각 1인씩 있었는데, 선출방법은 현임의 장의가 후임장의를 천거하도록 하되 전임장의들의 완전 합의가 있어야만 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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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충강사(忠剛祠)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壬寅正月 日 忠剛祠 祝 柳大錫 壬寅正月 日 忠剛祠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2년 1월에 충강사(忠剛祠)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 1962년 1월에 충강사(忠剛祠)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이다. 류대석을 다음 달 15일에 시행하는 춘향제(春享祭) 헌관(獻官)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망기는 어느 한 직책에 합당한 인물을 천거할 때 사용하는 문서로 서두에 망(望) 혹은 천망(薦望)을 기입하였다. 망첩(望帖) 또는 망단자(望單子)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 직책에 세 사람을 후보자로 열거하는 3 망이 원칙이었으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충강사는 고흥군 대서면(大西面) 화산리에 있다. 충강사는 재동서원(齋洞書院)의 명칭 중 하나였다. 재동서원은 여산 송씨 충강공(忠剛公) 서재(西齋) 송간(宋侃)을 주벽으로 송대립, 송심, 송순례, 송희립, 송건과 김시습 등 15위를 향사하는 곳이다. 처음 1785년 송간, 유탁, 정운희, 송대립, 송침 5위를 향사하여 운곡사로 시작되었다. 10년 뒤 위차 문제가 있었으나 송간에게 시호가 내려졌기에 단독사우로 재동사라 칭했다. 그 이후 육충사(1801년)·세충사(1833년)·충강사(1956년)·재동서원(1965년)내에 창효사(1980년)의 추가건립까지 배향인물 변경과 명칭변경이 있었다. 류대석은 1900년(광무 4) 8월 18일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알 수 없다. 초명(初名)은 기석(基錫)이다. 자(字)는 계언(桂彥)이고, 호(號)는 송은(松隱)이다. 부인은 박영진(朴璟鎭)의 딸인 진원박씨(珍原朴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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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변시연(邊時淵)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未至月九日 生 邊時淵 丁未至月九日 邊時淵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7년에 장성의 邊時淵이 고흥의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1967년에 장성의 邊時淵이 고흥의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원문: 虎山虎山聞已熟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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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변시연(邊時淵)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未十二月四日 生 邊時淵 丁未十二月四日 邊時淵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7년에 장성의 邊時淵이 고흥의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1967년에 장성의 邊時淵이 고흥의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원문: 卒有事急于京費累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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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박영직(朴永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乙丑四月旬之二 朴弟永直 乙丑四月旬之二 朴永直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 4월에 박영직(朴永直)이 보내는 간찰(簡札) 1925년 4월 12일 弟 朴永直이 松峴에 사는 이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편지의 내용을 보면 박영직은 먼저 편지를 받는 이가 사는 松峴이 사람이 傑出하다고 하면서 당신 형제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 아니겠는가라며 상대방을 칭찬하였다. 이어서 부모와 함께 형제가 살아있으니 독서가 참 즐거움이 된다고 하면서 맹자의 이른바 三樂에 대해 林氏가 그것을 설명하여 말하길 '하나는 하늘에 달려있고, 하나는 남에게 달려있으며 스스로 다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인간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 뿐이다'라고 ?맹자?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며 행동거지를 잘 살펴보고 주의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또 자신은 족하(足下)께서 들으신 것으로 알고 반드시 책임으로 여길 것이므로 말하지 않았으나 책임은 이미 무겁고 앞길은 이미 머니 그릇이 큼직하고 뜻이 굳세다면 옛사람들이 말한 '의리는 계속하기 어렵고, 공부는 중단하기 쉽다[義理難繼續 工夫易問斷]'는 戒示를 유념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면서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이 편지의 발신인인 박영직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편지 첫머리에 나오는 德山은 그가 살던 곳으로 짐작된다. 同名人으로 1897년에 출생하여 1989년에 사망한 호가 鶴算이고, 본관이 珍原인 박영직이 있으나 편지 발신인과 동일 인물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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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정인택(鄭仁澤) 간찰(簡札)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辛丑三月初十日 査弟 鄭仁澤 辛丑三月初十日 鄭仁澤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3월에 査弟 鄭仁澤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신축년 3월 10일에 査弟 鄭仁澤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家兒가 집으로 돌아와서 상대방이 보낸 편지를 전해주어 잘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가 된다고 하고, 자신은 어제 집으로 돌아와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며 안부를 전했다. 新婦의 아름다운 몸가짐이 아직도 눈앞에 삼삼하여 잊을 수 없다고 하면서 禮物이 좋은 모양을 이루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다며 미안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발신인이 이름 앞에 자신을 査弟라고 쓴 것과 편지의 내용을 봤을 때 사돈에게 보낸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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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류영덕(柳永德)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辛未十二月日 柳永德 等 3名 掌松官 辛未十二月日 柳永德 呂官[押] ▣…▣ 3顆(6.5×6.5)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1년 12월에 柳永德 등이 興陽縣 呂島 掌松官에게 제각 보수에 필요한 材木의 사용허가를 요청하기 위해 올린 所志 1871년(고종 8) 12월에 本縣 邑內面 虎山 사는 儒生 柳永德, 柳新錫, 柳師浩가 興陽縣 呂島 掌松官에게 제각 보수에 필요한 材木의 사용허가를 요청하기 위해 올린 所志이다. 이 소지를 올린 이유는 자신들의 17대조인 柳淸臣의 묘가 본 현에 있다고 하면서 이곳의 祭閣이 무너져 이를 改建하고자 하는데 들어가는 材木은 묘소에 이미 자란 소나무와 잡목이 알맞으니 掌松官에게 재목으로 쓸 수 있도록 立旨를 成給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 요청에 따라 15일에 장송관은 松禁의 法意가 비단 松山을 봉한 것이나 묘소이고 이미 자란 소나무와 잡목을 작벌하여 개건한다고 하니 자손의 遠誠 매우 가상함을 들었으며 더욱이 재상의 묘각이 지금 이미 세워진 것이니 특별히 작벌을 허락한다는 처분을 내렸다. 연결문서로 蛇渡僉節制使(1871), 興陽縣監(1871), 水相國(1872)에게 올린 소지 3점이 있다. 소지(所志)는 관부(官府)에 올리는 소장(訴狀)·청원서·진정서. 발괄〔白活〕이라고도 한다. 소지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 일어난 일 중에서 관부의 결정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민원에 관한 문서이므로 그 내용은 아주 다양하다. 또한 소지는 소지를 올린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 가문에서 소중히 보관해, 현존하는 고문서 가운데 토지문기(土地文記) 다음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소지를 수령이나 관계 관부에 올리면 해당관원은 소지의 내용을 살펴본 뒤 그 소지에 대한 판결을 내리게 되는데, 이를 '뎨김〔題音〕' 또는 '제사(題辭)'라고 한다. 뎨김은 소지의 왼쪽 아래 여백에 쓰며, 그 여백이 모자라면 뒷면에 계속해서 쓰기도 하고 별지를 붙여 쓰기도 하였다. 뎨김을 적은 소지는 그 소지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주어 그 판결에 대한 증거자료로서 소중히 보관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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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縣邑內面虎山居儒生柳永德柳新錫柳師浩等右謹言等狀事段生等十七代祖相公墓在於本縣地方矣祭閣頹圮方營改建是乎所所入材木當用墓所已養松與雜木允合可材是乎矣掌松 官前例受立旨以爲取用乙仍于玆以仰龥爲去乎參商成給之地千萬望良爲只爲行下向敎是事掌松官 處分辛未十二月 日呂官<押><題辭>松禁之法意非特封私山而墓而已養松與雜木斫伐改建云者子孫之遠誠聞甚嘉尙況相公之墓閣乎今旣成建是喩特爲許斫憑考向事十五日[官印] 3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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邑內面虎山東邊里乙卯式戶籍單子戶幼學柳徹浩年六十三癸丑本高興父學生 日榮祖學生 坰曾祖學生 希綻外祖學生宋昌懿本礪山妻宋氏年六十一乙卯籍礪山父學生 禹臣祖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 晊曾祖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 ▣…▣摠管 東錫外祖學生羅文杓本羅州子幼學 永蒔年二十三癸巳婦丁氏年二十四壬辰賤口婢淂業五十八一所生奴春金年二十七婢正今故行縣監押[周挾改印][官印] 1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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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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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82년 경필운동임시유회소(京弼雲洞臨時儒會所) 통고문(通告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壬戌十二月二十二日 京弼雲洞臨時儒會所 壬戌十二月二十二日 京弼雲洞臨時儒會所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82년 12월 22일에 京弼雲洞臨時儒會所에서 보낸 通告文 1982년 12월 22일에 京弼雲洞臨時儒會所에서 보낸 通告文. 내년1월 20일에 경성 필운동 130번지 9호 宋桂憲 집에 모여 華陽書院에 대해 논의하자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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