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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박경진(朴璟鎭)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癸未 朴璟鎭 癸未 朴璟鎭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3년 歲除에 朴璟鎭이 松峴草堂의 柳重憲에게 새해 인사와 함께 혼사 관련 소식을 묻기 위해 보낸 간찰 1943년 歲除에 馬輪의 朴璟鎭이 松峴草堂의 柳重憲에게 새해 인사와 함께 혼사 관련 소식을 묻기 위해 보낸 간찰이다. 연결문서로 피봉 1건이 있다. 가을에 만나고 헤어진 후 소식이 없어 서글프던 중 당신의 손자[令抱]가 와서 건강하시고 가족들 모두 잘 지낸다는 안부를 전해 듣고 기쁘다고 하였다. 이어서 자신은 섣달그믐날 밤에 이르러 家鉉翁의 志操로 창자가 어찌 끊어지지 않고, 눈물이 어찌 흐르지 않겠냐고 하면서 다만 식구들이 별 일이 없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전에 令胤의 말에 혼사에 이르렀다고 하였는데 근래 과연 議定하였는지 묻고, 자신이 사는 곳의 申氏는 끝내 믿고 따르지 않으니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 아닌 것 같으므로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면서 새해에도 건강하시길 바란다고 하였다. 박경진(朴璟鎭, 1884~1956)은 자가 사일(士一)이고, 호가 남죽(南竹)이며, 본관은 진원(珍原) 이다. 아버지 박중언(朴重彦)과 어머니 고령신씨 사이에서 고흥군 산양에서 태어났다. 송사 기우만(松沙 奇宇萬), 단운 민병승(丹雲 閔丙承), 석농 오진영(石農 吳震泳), 회봉 안규용(晦峰 安圭容), 극재 송병관(克齋 宋炳瓘), 동강 김영한(東江 金甯漢) 등과 교유하였다. 문집으로 ?남죽유고?3권2책(1958년간)이 있다. 野山 柳重憲과는 사돈관계이며, 柳重憲의 아들인 류대석이 그의 사위이고, 손자는 柳濟洪이다. 류중헌(柳重憲, 1873~1952)은 자가 사집(士執), 호가 야산(野山), 본관이 고흥이다. 배우자는 南陽 宋冑僖의 딸이다. 품성이 영민하고 효성스러웠으며, 經史와 義理에 밝았다. 고조부 류일영이 편찬한 ?信庵實記?를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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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류대석(柳大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未正月十九日 族從 大錫 丁未正月十九日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7년 정월 19일에 族從 大錫이 보내는 간찰 1967년 정월 19일에 族從 大錫이 보내는 간찰. *국한문혼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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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亭首夏雅集 白酒紅亭不動塵坐來曲檻眼花新入山徑路纔三里閉戶巾笻負五春藜藿何辭蘇子醉竹林咸集阮家隣堪憐夏木黃鸝語喚醒茆廬嗜睡人皷琴歌鋏共吾遊俱是騷家第一流竹葦微風吹里落蕪葭細雨滿汀洲脚腰尙健有涯日鬚髮頻驚無數秋莫道辛酸方寸累不妨藜藿久淹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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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吟 竹藏村落細流回留客投車欲把盃如夢郡齋嗚皷角相望鄕里好樓臺時將嘗薦秋初熟世未淸平老已來晩景暗消烟雨裡莊蘭深處一亭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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疏文碑文及序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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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嗚呼此篇卽我先君子遺稿也殘膏剩馥藏在巾笥手澤猶新若承警咳揮淚奉閱不啻蓼莪之不忍讀也先君子自弱冠早闡嵬科歷剔淸顯天眷甚優物望有屬宜其有經綸之可施而不幸遭百六之會低回下僚未展蘊抱之一半時論惜之及僞約之成抗疏而痛陳諸賊賣國之罪請亟加鋤治竟不見省仍掛冠歸鄕堅臥綠泉之亭與賓朋宗族詩酒暢懷淡笑披胷永矢自靖不知亭外風雲之朝暮變幻也屋杜之後風泉結恨不耐悲憤每春秋以山巾野服從容命駕探勝披奇聊以自適湖嶺關箕之名山勝界無不遍覽覽必有詠詠必寓懷識者皆比擬於顧亭林載書四方之義也噫先君子以和盎之德容明亮之才學從當世之名宰名士游者盖久矣唱酬之諷詠之多有麗澤之相資進而朝著之所劄錄退而燕居之所著作必盈箱累牘而性不喜抄藏故太半散亡今者所存僅數卷遺墨而止耳盖平日事行必已詳在於史氏之採錄今遺編之所載特一班之窺也况其詩文又先君子之餘事也烏可以卷帙之不得繁衍爲慊歎乎然而猶惧夫斷爛草稿久復散佚幽光潛德隨以湮沒故遂就正於有識而將付剞劂雖不禁泰山毫芒之歎然隋珠崑玉豈必多而爲珍於世耶小子學淺不敢與知於此而但紹述之願寔出於彜性不欲斯須緩也况流年不貸齒逾六旬若未述志遽爾衰懶則小子之罪恨無地可仲遂使兒侄輩亟爲讐印其德行義締則諸宿德所撰狀文若輓誄亦已備矣因收大略飮泣而爲之識歲丙戍秋九月日不肖男光駿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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晴崗詩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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偶吟 碧瓦相連間草廬隣隣耕讀世古居子孫當就千鍾祿父祖須傳萬卷書澗畔顏怡松翠晩籬邊手摘菊黄疏沈吟半夜詩還拙恨未當年學有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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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山萬物肖 亂峰峍帆翠屛開羽盖相望仙若來壺裡有天懸日月壁間無地起樓臺槎牙啣露三分畫瘦骨經霖半是苔幽景不敎落人世藏山林靄幾重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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楡帖寺 行挹山光踏水聲怳如慣面又知名焚香寂寂同僧坐啄木時時聽客行五十佛靈占地美萬千石骨揷天淸峯頭聞有仙人鶴白足應多羽化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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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安寺 亂山環寺水侵門幽鳥相呼百族暄羅濟舊風人斷夢釋迦遺道佛遊魂千林雨積蒼苔髮萬壑雲生白石根此地也應羽仙在峯頭靑鶴立軒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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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潭適至 城上凉雲枕簞侵詩笻多謝遠相尋數畦黃落秋將暮一燭靑熒夜已深東國黍離當此日西山薇蕨在何林回首靑年杳如夢衰容無改舊聲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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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한(柳重漢) 등 단자(單子) 초(草)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柳重漢 等 2名 僉尊 柳重漢 僉尊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德林齋 小生 柳重漢 등이 耆社僉尊座下에게 琴湖齋에서 여는 잔치의 술과 음식을 보내주기를 요청하는 單子 草本 德林齋 小生 柳重漢, 柳誼鎭이 耆社僉尊座下에게 琴湖齋에서 여는 잔치의 술과 음식을 보내주기를 요청하며 올린 單子 草本이다. 德林齋는 고흥읍 호동리에 있었던 서당이다. 단자의 내용에 따르면 무릇 나무는 뿌리를 북돋은 뒤에 가지에 이르러 棟樑이 이루어지고, 모는 김을 맨 뒤에 이삭이 자라서 곳간에 쌓이는 것이며, 선비를 양성한 연후에 학문이 완성되고 經濟가 생겨나므로 윗사람이 孤兒를 보살펴 주면 백성이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또한 絜矩之道라고 서두를 열었다. 이어서 草草하고 추운 서당에서 아침에는 부추를 먹고 저녁에는 소금국을 먹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는 자신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僉尊丈께서 竹林故事를 본받아 玉峯 아래에 모여 琴湖齋(고흥읍 간천리에 있던 서당)를 넓히고 큰 잔치를 벌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僉尊丈께서 특별히 饍宰에게 명하시어 자신들에게 술과 떡, 魚肉의 음식을 보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 문서는 초본으로 내용이 중복되고, 글자를 첨가하거나 수정한 부분이 있다. 류중한은 본관이 고흥으로 아버지는 柳桂浚이며 1901년에 태어났다. 배우자는 金寧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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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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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양림(梁霖) 등 상서(上書) 초(抄)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未四月日 梁霖 等 34名 大宗伯 癸未四月日 梁霖 等 大宗伯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3년 4월 梁霖 等이 六忠祠와 관련하여 大宗伯[禮曹判書]과 巡相合下에게 올린 上書 抄 1823년 4월 進士 梁霖 等 전라도 유생 34명이 大宗伯[禮曹判書]과 巡相合下에게 올린 上書를 抄해 놓은 문서이다. 문서에 필사된 상서 2건은 全羅道 興陽縣에 있는 六忠祠와 관련된 내용이다. 첫 번째 문서는 예조판서에게 올린 상서로 문서의 내용에 따르면 六忠祠는 단종조 忠臣 忠剛公 宋侃을 모시는 곳이다. 충간공은 도진무사(都鎭撫使)로 호남을 순시하던 중 단종이 영월로 쫓겨갔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영월에 가서 복명하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 여산으로 돌아가 두문불출하다가 興陽에 은거하였다. 스스로 호를 서재(西齋)라고 하였으며, 충의와 높은 절개가 해와 별같이 빛났다. 또 충간공의 후손 중 임진•병자의 난에 殉烈한 자들이 많아 모두 추증되는 은전을 입었다. 이에 흥양에 사우인 六忠祠를 세워 忠剛公과 그 자손 중 충절을 세운 자를 제사 지낸지가 이미 여러 해가 지났다. 비록 아직 恩額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一世之公議와 百代之名節과 관계되므로 事體 또한 매우 정중하다며 특별히 채납(採納)하시어 本曹에서 각도 祠院錄에 載錄을 명하여 사방의 사인들이 모두 흥양의 송씨 가문 육충신의 사당이 있음을 알 수 있도록 해 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이에 예조에서는 육충사는 아직 宣額하는 欠典이 아니므로 祠院錄에 마땅히 들이라고 하는 제사를 내렸다. 두 번째 문서는 巡相에게 올린 상서이다. 이 문서는 예조의 처분을 받은 이후에 올린 것이다. 문서 말미에 자신들이 예조에 載錄의 뜻을 알려 이미 특별히 허락하는 제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이에 本營에서 祠院錄에 載錄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에 전라감영에서는 사원록에 들이라는 제사를 내렸다. 六忠祠는 현재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에 자리한 재동서원을 이른다. 재동서원은 여산 송씨 충강공 송간을 주벽으로 송대립, 송심, 송순례, 송희립, 송건과 김시습 등 15위를 향사하는 곳이다. 본래 고흥 운곡사에 봉안되어 있던 宋侃에게 1793년 내려지자 1796년 宣諡를 위하여 송간의 유거지인 동강면 마륜리 서재동에 사우를 짓고 재동사라 하였다. 1801년 송건, 송순례, 송희립을 추배하고 육충사라 하였다. 1833년 송상보, 송득운, 효자 송석융을 추배하고 世忠祠라 하였고, 1846년 매월당 김시습을 합설배향하고, 1848년에 세충사에서 西洞祠로 개칭하였다. 1868년에 서원 서우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56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지으면서 재동서원(齋洞書院)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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