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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1일 十一日 ○밥을 먹은 뒤 여러 벗과 개간소로 가니, 주인 이호준(李琥俊)이 말하기를 "마침 좋지 않은 조짐이 있으므로 중지하였습니다. '좋지 않은 조짐'이란 고부(古阜)의 김성은(金性溵)117)이 유사를 보내 스스로 그 일을 주관한 것을 말합니다. 자못 좋지 않은 단서가 있다면 중지하는 것만 못하니, 그런 분위기가 잠잠해지고 나서 다시 설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그 일의 형국을 보니, 포기하고 가는 것만 못하였기에 곧장 나와 주인집으로 왔다. ○食後, 與諸益往刊所, 則主人李琥俊曰: "適有爻象, 故中止云。 爻象, 則古阜金性溵, 稱以送有司, 自主其事。 頗有不好之端, 不如停止, 風色寢息, 然後更設爲可。"云。 聽其言觀其事機, 則不如罷意而去, 故卽爲出來主人家。 김성은(金性溵) 자는 성연(聖淵)이고, 호는 인일정(引逸亭)이며, 본관은 광산이다. 전라도 고창 출신으로 황윤석(黃胤錫)ㆍ이직보(李直輔)의 문인이다. 『해동삼강록(海東三綱錄)』을 간행하였고, 『동국문헌록(東國文獻錄)』을 저술하였으며, 『임병창의록(壬丙倡義錄)』을 만들었다. 저서로 『인일정유고(引逸亭遺稿)』 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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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팔도의 문중 모임이 있는 날이다.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鑄洞) 보소(譜所)35)에 가니 동종(同宗)들이 일제히 모여 있었다. 납부하지 않은 명전(名錢)36)을 모두가 책임지기로 하였기에 견책당할 뻔한 것을 다행히 면할 수 있었다. 다음 달 20일까지로 기한을 정하여 간행하기로 하였다. 문경(文經)도 와서 모였다. 乃八道門會日也。 食後往鑄洞譜所, 則同宗齊會矣。 擧皆□責名錢之不納, 幾乎見責, 幸而得免, 以來月念日定限入梓。 文經亦來會矣。 보소(譜所) 족보를 만들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한 사무소를 말한다. 명전(名錢) 족보를 간행할 때 종중(宗中) 남자 사람의 이름에 붙이는 돈으로, 대개 수단(收單)과 편집, 간행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명전으로 충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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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이른 아침에 흥양(興陽)의 본댁(本宅)에 갔는데, 사랑은 모두 봉하여 닫혀 있고 인적이 없이 고요하였으므로 하인을 불러 물어보았더니, 온 집안 식구들이 벽제(碧蹄)로 갔다고 하기에 즉시 내려왔다. 얼마 뒤에 영감이 풀려났다. 早朝往興陽本宅, 則舍廊盡封閉, 而寂無人跡, 故呼僮問之, 則渾眷往碧蹄云, 故卽爲下來。 移時餘令監蒙放出來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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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대가(大駕)가 수원(水原)의 원소(園所)5)에 행차하였다. 이날 주동(鑄洞)에 가서 상언(上言)6)할 내용을 정서(正書)7)하였는데, 미처 다 베껴 쓰지 못하여 남겨 두고 왔다. 大駕幸水原園所。 是日往鑄洞, 正書上言, 而未及盡寫, 故留置而來。 수원(水原)의 원소(園所) 장조(莊祖: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릉원을 가리킨다. 장조의 장지는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시의 배봉산(拜峰山)에 있었던 영우원(永祐園)이었다. 정조가 즉위 후 수원 화산(花山)으로 이장하여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고, 그 뒤 융릉(隆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상언(上言) 위로는 관원으로부터 아래로는 공사천(公私賤)에 이르는 모든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문서이다. 상언의 내용은 효자·충신·열녀의 정려·정문과 효자·충신·학행자(學行者)의 증직(贈職)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상언은 사림들이 하는 경우도 있고, 자손들이 조상을 위하여 올리는 경우도 있다. 정서(正書) 초잡았던 글을 정식으로 베껴 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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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출제한 "문무 겸비한 길보여.[文武吉甫]"33)를 지어 올렸는데, 오늘은 바로 알성일(謁聖日)34)이다. 날이 저물었을 때 출방(出榜)하였고 과장(科場)에서 나와 즉시 차동(車洞)으로 와서 묵었다. 出題製進"文武吉甫", 是日乃謁聖日也。 日暮時出榜, 出場卽來車洞留宿。 문무 겸비한 길보(吉甫)여 《시경》 〈유월(六月)〉에 나오는 구절로, "잠깐 험윤을 정벌하여 태원에 이르도다. 문무 겸비한 길보여, 만방이 법으로 삼도다.[薄伐玁狁, 至于大原. 文武吉甫, 萬邦爲憲.]" 하였다. 이 시는 주(周)나라 왕실이 쇠미해진 틈을 타서 험윤(玁狁)이 서울까지 쳐들어오자 선왕(宣王)이 윤길보(尹吉甫)에게 험윤을 정벌하도록 명하여, 윤길보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공을 세우고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알성일(謁聖日) 임금이 문묘에 참배하는 날을 말한다. 《일성록》 정조 18년 갑인(1794) 2월 26일(갑신)의 기사에, "춘당대(春塘臺)에 나아가 알성시 문무과를 시취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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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바로 한식일(寒食日)38)이다. 객지살이 중의 한식이라 마음이 갑절이나 근심스럽다. 백건(伯健)이 만나자고 하기에 잠깐 근동(芹洞)39)에 갔더니 술과 떡을 대접하였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에 고령(高嶺)에 올라왔다. 화류(花柳)를 보고 싶었는데 아직은 꽃 소식이 까마득하였다. 내려와서 차동(車洞)으로 곧장 왔다. 卽寒食日也。 客中冷節, 懷思倍切悶悶。 伯健要見, 故暫往芹洞, 則饋以酒餠矣。 移時談話後, 上登高嶺, 欲觀花柳, 而尙杳然矣。 卽爲下來, 直來車洞。 한식일(寒食日) 원문의 '냉절(冷節)'은 한식(寒食)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근동(芹洞) 중구 을지로5가에 있던 마을로서, 미나리를 재배하는 논이 넓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을 미나릿골로 불렀으며, 이를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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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이조에서 숙직하던 중에 급보(急報)하기를, "2일은 또한 국기일(國忌日, 군주나 왕후의 제삿날)이므로 감히 입계(入啓, 계장을 왕에게 올림)할 수 없으니 급히 고쳐 택일하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4일로 다시 택하여 들여보냈더니 또 와서 "이날도 또 국기일이다."라고 하므로 다시 택일할 예정이다. 自吏曹直中急報 "初二日亦國忌, 不敢入啓, 急急改擇"云, 故以初四日, 改擇入送, 則又來云 "又是國忌", 故更擇爲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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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추웠다. 아침을 먹기 전에 칠패(七牌)에 가서 생원 윤열(尹烈)을 만나 우리 집안의 세덕(世德)을 언급하고, 오는 길에 곧바로 근동(芹洞)으로 가서 벗 이건(李健)〮·이순(李順) 형제를 만났다. 또 이 흥양(李興陽)을 만나고 왔다. 寒。 食前往七牌見尹生員 烈, 言及吾家世德, 而來路直向芹洞, 見李友健順伯仲。 又見李興陽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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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요통(腰痛)이 매우 심했으나 가까스로 근동(芹洞)에 가서 이 흥양(李興陽)을 만났다. 또 칠패(七牌)에 갔으나 윤 생원(尹生員)을 만나지 못하고 왔다. 이날은 몹시 추웠다. 腰痛大發, 艱往芹洞見李興陽。 又往七牌, 不見尹生員而來。 是日極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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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또 몹시 추웠다. 대체로 금년의 추위에 대해 모두들 근래에 처음 있는 추위라고 했다. 요통이 그치지 않았는데, 또 감기까지 겹쳐 몸이 오한으로 심하게 떨렸다. 이에 어쩔 수 없이 팔선(八仙)의 집을 청해 얻어서 불을 많이 때고 땀을 흘리자 한기는 조금 줄어들었으나 허리 병은 그대로였다. 又極寒。 大抵今年之寒, 皆云近來初有云。 腰痛不止, 又患感氣大寒戰, 故不得已, 請得八仙家, 多爇取汗, 寒氣小減, 而腰病自如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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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아침에 날씨가 매우 따뜻하였다. 이른 아침에 천노(千奴)를 동지(同知) 김지행(金之行)의 집에 보냈더니, 즉시 그 아들을 보내왔기에 돈 2냥을 내주어 참빗을 사 오게 하였다. 아침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섰는데 날이 이미 늦었다. 삼례(三禮)까지 30리를 가서 점심을 먹었다. 채찍을 재촉하여 능측(陵側) 객점에 이르자 눈이 마구 쏟아져 잠깐 사이에 한 자나 쌓였으니, 객지 생활의 울적한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이날 50리 길을 갔다. 朝日甚溫和矣。 早朝送千奴於金同知 之行家矣。 卽送其子, 故出給錢二兩, 使之買眞梳而來。 朝飯後登程, 日已晩矣。 至參禮三十里中火, 催鞭至陵側店, 雪已大作, 頃刻盈尺, 客中愁鬱, 不可言。 是日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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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흐렸다. 동틀 무렵 길을 떠나 여산(礪山)에 이르렀는데, 선산(先山)에 투장한 자가 파서 옮기겠다는 기별을 듣고 곧장 서울로 향했다. 은진(恩津) 읍내까지 50리를 가서 점심을 먹었다. 우연히 서울 손님 심 석사(沈碩士)를 만나서 동행하여 정천(定川)까지 40리를 가서 묵었다. 이날 90리를 갔다. 그저께 만마동(萬馬洞, 전주시 만마동)에서 율시 한 수를 읊었다.말을 재촉하여 만마동으로 달리는데(匹馬催驅萬馬洞)먹구름 풀리지 않고 북풍이 일어나네(頑陰不解朔風生)이처럼 강산의 기운이 매섭기만 하니(是時粟烈江山氣)언제쯤 천지에 따스한 봄기운 오려나(何日陽和天地精)눈을 밟고 겨우 삼백 리 길을 왔지만(踏雪纔行三百里)얼음 밟으며 반 천 리 여정 어찌 가려나(踐氷那到半千程)- 1, 2자 원문 결락 -5) 옛 친구 응당 내 생각할 터이니(□□故舊應思我)서쪽 먼 하늘 바라보며 멀리 정만 보내네(西望長天遠送情) 陰。 平明登程, 至礪山, 聞先山偸葬者, 掘移之奇, 直向京路, 至恩津邑內五十里中火, 而偶逢京客沈碩士, 因與同行, 到定川四十里留宿。 是日行九十里。 再昨萬馬洞, 咏一律曰: "匹馬催驅萬馬洞, 頑陰不解朔風生。 是時粟烈江山氣, 何日陽和天地精。 踏雪纔行三百里, 踐氷那到半千程。 □□故舊應思我, 西望長天遠送情。 " 1, 2자 원문 결락 원문은 '□□故舊'인데, '故舊'와 결자의 관계를 알 수 없어 결락된 부분을 번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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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이른 아침에 이조(吏曹)의 서리(書吏)와 방직사령(房直使令)13)들이 어보를 찍은 관고(官誥)를 받들고 와서는 예채(例債)14)를 요구하니, 각각의 요구에 수응하여 통례원(通禮院)15)으로 보냈다. 서원(書員)16)이 왔기에 거행규례(擧行規例)를 상세히 물어 조목조목 열거하여 써오게 하여 흥양(興陽)으로 전송(傳送)하도록 하였다. 해영(海營)의 서간(書簡)이 도착하였고 돈도 올라왔다. 이 선달(李先達)에게서 돈이 또한 도착하였는데, 바라던 바와 크게 어긋나니 탄식할 만하다. 早朝吏曹書吏及房直使令輩, 奉監官誥安寶, 因索例債, 各各酬應, 以送通禮院。 書員來見, 故詳問擧行規例, 使之條列書來, 以爲傳送興陽之地。 海營書簡來到, 而錢亦上來。 李先達處錢亦來到, 大違所望, 可歎。 방직 사령(房直使令) 방직은 관아의 심부름꾼의 하나인 방지기이며, 사령은 여러 관사(官司)에서 잡무를 보는 하급 관원 혹은 심부름꾼을 말한다. 예채(例債) 전례(前例)에 따라 바치는 돈이나 물품으로, 의례적으로 요구하는 수고비를 말한다. 통례원(通禮院) 국가의 의례(儀禮)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관아를 말한다. 서원(書員) 조선 시대에 각 관청에서 사환잡역(使喚雜役) 및 문서, 회계, 공사전달(公事傳達) 등을 맡았던 향리(鄕吏)를 가리킨다. 주로 서리(書吏)가 없는 관청에 배속된 아전의 하나로서 서리(胥吏)보다 격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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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몹시 추웠다. 병세가 조금 나아졌으나 끝내 완쾌될 기약이 없으니 걱정스럽다. 전해 듣기로는 이러한 병증은 양서(兩西) 지방에서 두루 퍼져서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고, 또 사망자가 많아 큰 고을의 경우는 하룻밤에 4, 5십 명이 죽었다고 하니 매우 두려운 일이다. 極寒。 病勢稍減, 而終無快完之期, 可悶。 傳聞此症, 自兩西彌墁, 無人不痛, 又多死亡, 至於大邑府, 則一夜所亡四五十云, 極可懍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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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날씨가 매우 사나워서 떠날 수가 없었다. 또 이조 낭청이 하번(下番, 당직)한다고 들었지만 가서 전혀 만날 길이 없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정오 무렵에 색구(色驅)가 또 급히 와서 내달 1일도 국기일(國忌日)이므로 입계할 수 없다고 하기에 부득이 전에 정한 29일로 정하여 해질녘에 이조에 써서 보냈다. 급히 약고개[藥峴]로 가서 윤 좌랑(尹佐郞)을 만나 병으로 만나 보지 못한 뜻을 말하고는 이어 청배(靑排)에 가서 묵었다. 風日極惡, 不得發行, 又聞吏郞之下番, 而萬無往見之道, 奈何奈何? 午間色驅, 又急來初一日, 又是國忌, 不可入啓云, 不得已以前定卄九日, 乘昏書送於吏曹。 急往藥峴見尹郞, 以謝病未相見之意, 因向靑排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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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건(健)·순(順) 두 형, 경욱(景旭)의 형제들과 등고치(登高峙)에 올라가 종일토록 화류(花柳)를 구경하며 회포를 풀었다. 조카 희(希)의 병이 끝내 쾌차되지 않았으니 고민스러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저녁에 술에 취해 돌아왔다. 與健、順兩兄及景旭昆季, 上登高峙, 終日花柳暢懷, 而希侄之病, 終不快差, 悶悶不可言。 夕間乘醉而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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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아침을 먹기 전에 몹시 추웠다. 다만 날씨가 매우 맑아서 일단 기록해 두었다. 아침을 먹은 뒤에 청파(靑坡) 상원(尙元)의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는데, 그 집안사람 모두가 현재 앓고 있다고 하였다. 朝前甚寒烈, 而但日氣甚淸烈姑記之。 食後往靑坡 尙元家, 暫話而來, 其家擧皆方痛云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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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점차 화창해졌다. 감기가 크게 기승을 부려 사망자가 잇따르고 심지어 경상(卿相)의 집에서도 관을 다스리지 못하여 7, 8일이 지났는데도 성빈(成殯)1)하지 못하는 경우가 간간이 많이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팔도가 다 그렇다고 하니, 몹시 두려운 일이다. 漸和。 感氣大熾, 死亡相因, 至於卿相之家, 不得治棺, 過七八日, 不得成殯者, 間多有之。 傳聞八路同然云, 極可畏也。 성빈(成殯) 장사를 지내기 전에 빈소를 차리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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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비로소 주동(鑄洞)에 갔더니, 상하의 집안 노인들이 병을 앓고 있다고 하였다. 오는 길에 창동(倉洞)에 들어가 박 승지(朴承旨)를 만나보니, 또한 병이 심하여 이불을 안고 누워 있으므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 始往鑄洞, 則上下家老人, 方痛云矣。 來路入倉洞見朴承旨, 則亦方痛而擁衾, 暫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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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밥을 먹은 뒤에 아이들을 경모궁(景慕宮)에 보내고 나는 피곤해 누워 있었다. 낙안(樂安)의 강 서방(姜書房)이 찾아와 종일토록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녁에는 등고치(登高峙)에 올라가서 잠시 회포를 풀고 왔다. 食後送兒輩於景慕宮, 余則困臥矣。 樂安 姜書房來見, 終日相話, 而夕間登登高峙, 暫暢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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