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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아침 전에 문대(文大)씨와 종친들이 찾아와서 만났다. 아침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서 구룡정(九龍亭)에 들렀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길을 나서 과역(過驛) 시장 근처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대곡(大谷)의 형님과 천노(千奴)를 만나 집안 소식을 처음 들었는데, 증아(曾兒)가 순종(唇腫, 입술이 붓는 것)이 아주 심하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으니 걱정스러운 마음을 견딜 수가 없어 그길로 동행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朝前文大氏與諸宗來見。 食後發程, 入九龍亭。 暫敍後登程, 抵過驛市邊中火。 逢大谷兄主及千奴, 始聞家信, 則曾兒以唇腫大端云。 聞不勝悶慮, 仍爲同行歸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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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일찍 출발하여 전석치(磚石峙)를 넘어 오수(鰲樹)에 이르렀다. 나는 소로(小路)로 들어가 평당(坪塘)의 송연영(宋延英) 집에 이르렀으나 주인 부자가 모두 출타하여 만나지 못했다. 주막으로 나와서 점심을 먹고 있으니 뒤따라 당도하여서 다행이었다. 송연영(宋延英) 종형제를 마침 이 주막에서 만난 것은 요행이었다. 이어 작별하고 말치60)를 넘어 굴암(屈岩)에 이르러 묵었다. 早發越磚石峙, 抵鰲樹。 余則入小路, 抵坪塘 宋延英家, 則主人父子皆出他, 不得相面, 出來酒幕, 仍爲中火, 追後來到, 可幸。 延英從兄弟, 適逢此幕乃幸。 仍爲作別, 越斗峙, 抵屈岩留宿。 行七十里。 말치 원문의 '두치(斗峙)'는 전북 완주군 상관면과 임실군 관촌면과 진안군 성수면 사이의 고개이다. 말치 또는 마치(馬峙)로 불리우기도 하는데, 진안 마령 사람들이 말을 타고 가던 길목이어서 '마치'라 칭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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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일찍 출발하여 오원(烏院)61)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한참 밥을 먹고 있을 때에 보성(寶城)의 공서(公瑞) 종인(宗人)이 왔다. 만나서 쉬었다가 그길로 동행하여 쌍정자(雙亭子)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부내(府內)에 도달하여 전성철(全聖哲)의 집에 머물렀다. 70리를 갔다. 早發抵烏院朝飯。 方食之際, 寶城 公瑞宗人來, 相逢息後, 仍爲同行, 抵雙亭子中火。 得達府內, 留全聖哲家。 行七十里。 오원(烏院) 관촌(館村)의 옛 지명이다. 고문헌에 관촌(館村)은 등장하지 않고, 임실의 북쪽 경계 지점에 있었던 상북면·하북면과 '오원역(烏原驛)' 또는 '오원(烏院)'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지리지》에 오원이 임실의 역으로 수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驛)이 2이니, 오원(烏原)·갈담(葛潭)이다. "라고 하였다. 관촌은 객지에서 묵는 숙소라는 뜻인 객관(客館)의 뒷 글자에서 유래가 됐으며, 원(院)이나 역(驛)은 상당히 큰 규모의 국립 여행자 숙소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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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아침을 먹은 뒤에 선화당(宣化堂)에 들어갔더니 순상(巡相)이 내아(內衙, 지방관아에 있던 안채)에 들어갔다고 하여 책방(冊房)으로 들어가 각처의 책객(冊客)8)과 이야기하였다. 오후에 순상(巡相)이 선화당(宣化堂)에 나왔으므로 선화당(宣化堂)에 들어가 남겨 둔 서간(書簡)과 《충효록(忠孝錄)》을 찾은 다음 하직하고 나오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길을 나서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렀다. ○食後入宣化堂, 則巡相入內衙云, 入冊房與各處冊客談話。 午後巡相出宣化堂, 故入宣化堂, 推尋所留簡牘與《忠孝錄》, 仍爲下直而出來, 日已夕矣。 不得發程仍留。 책객(冊客) 고을 수령의 비서(秘書) 사무를 맡아보던 사람으로 관제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사로이 임용하였다. 책방(冊房)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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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밤에 비가 내렸다. 순상(巡相) 내행(內行)이 들어왔다고 하였다. 아침을 먹은 뒤에 보은(報恩) 윤 석사(尹碩士, 윤제대(尹濟大)), 연산(連山)의 이 석사(李碩士)와 공북루(拱北樓)7) 아래에 가서 구경하고 왔다. ○夜雨。 巡相內行入來云, 故食後與報恩 尹碩士及連山 李碩士, 往拱北樓下, 觀光而來。 공북루(拱北樓)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었던 누각을 말한다. 조정에서 조령(朝令)을 받들고 사람이 내려올 때 부윤(府尹)이 나가 맞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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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밥을 먹은 뒤 사헌(士憲)과 각교(㰌橋)로 갔다. 송 판서를 만나니, 여산(礪山)의 석회 채굴을 금지하는 일로 전주 부윤에게 서간을 보냈다고 하였다. 또 장단(長湍)의 산소에 떼를 바꾸는 일로 나중에 통문을 보내겠다고 하였다. 그길로 반송방(盤松坊)으로 가서 구관(舊官) 남이형(南履炯)118)을 만나 그 형의 궤연에 조문하였다. 오는 길에 차동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결락- 남묘(南廟)119)에 들러 둘러보고 왔다. ○食後, 與士憲往㰌橋。 見宋判書, 則以礪山禁灰掘事, 折簡於完伯云。 又言長湍山所 改莎草事。 從後發通云矣。 仍往盤松坊。 見舊官南履炯, 吊其兄几筵。 來路入車洞暫話, 而入【缺】 南廟, 周玩而來。 남이형(南履炯) 1780~1854. 자는 광보(光甫)이고,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1813년(순조 13) 증광시에 입격하였다. 의주 부윤을 지냈다. 남묘(南廟) 서울 용산구 도동 남대문(南大門) 밖에 있는 관우(關羽)를 제사지내는 곳으로 '남관왕묘(南關王廟)'라고도 한다. 선조(宣祖) 31년(1598)에 세웠으며, 광무(光武) 3년(1889)에 불에 타 버렸다가 3년 뒤에 다시 지었으나, 6ㆍ25 전쟁(戰爭) 때 불타서 1957년에 다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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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밥을 먹은 뒤 여러 벗과 관정동으로 가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그길로 종루(鍾樓)로 가서 둘러보았다. 그길로 구 광화문 밖으로 가서 잠시 안희로(安希老)를 만났다. 나는 백운동의 이정하(李正夏)에게 갔으나, 숙부와 조카가 모두 없어서 만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정동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교로 들어갔는데 판서가 대궐에 들어간 바람에 그 아들 지학(持學)하고만 작별하였다. 저물녘에야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食後, 與諸益往冠井洞暫話。 仍往鍾樓周玩。 仍向舊光化門外, 暫見安希老。 余則往白雲洞李正夏, 叔侄皆不在, 不得相面。 來路入貞洞暫話。 入㰌橋, 則判書入內, 只與其子持學作別。 乘暮還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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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율지와 함께 종루에 갔다. 나는 《사원록》을 다시 부탁할 생각으로 예조로 가서 아전 배광옥에게 말하였는데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묘동(廟洞)의 장번(長番) 집에 들어가 그 본가로 가는 편지를 받았다. 그길로 정동에 가니 혜길이 말하길 "내일 아침 전에 율지와 들어오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차동으로 들어가니 감찰(민치원)도 왔다. 그길로 그 종형과 작별하고 주인집으로 오니 박상현이 내려가려고 행장을 꾸려서 나왔다. 그와 함께 유숙하였다. ○與聿之往鍾樓。 余則往禮曹《祠院錄》更附4)之意, 言及於裵吏光玉, 則不聽。 故入廟洞長番家, 受其本家所去書簡。 仍往貞洞則惠吉曰: "明日朝前, 與聿之入來。"云 。 入車洞, 則監察亦來。 仍與其從兄作別, 而來主人家, 則朴祥顯下去次, 治裝出來。 與之同留。 附 저본의 '附'는 앞 '5월 3일' 자에는 '付'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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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아침 전 율지와 정동으로 가서 거기서 아침을 먹고 오후에 나왔다. 박 상인이 밥을 먹은 뒤 출발하였다. 동향 사람들은 날마다 내려가는데, 나와 율지는 혜길이 함께 가자고 하는 통에 발이 묶여, 함께 가지 못해 몹시 괴로웠다. 혜길은 내일 새벽에 나온다는 뜻으로 약속하고 나왔다. 오전에 정동에 있을 때 안채에서 음식을 한 상 내와서 배불리 먹었다. 참으로 고마웠다. ○朝前, 與聿之往貞洞, 仍爲朝飯, 午後出來。 朴喪人食後發去。 同鄕之人日日下去, 而余與聿之拘於惠吉之同行, 未得同行, 悶悶。 惠吉則明曉出來之意相約而出來。 午前在貞洞時, 自內間食物一床出送, 故飽喫。 可感可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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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합격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입시하라는 명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른 아침에 궐문 밖에 나아가니 입격한 300명이 모두 와서 모였다. 돈화문(敦化門), 진선문(進善門), 숙장문(肅章門)으로 들어가 머물며 기다렸다. 차례로 추창(趨蹌)하여26) 협양문(協陽門)27)으로 들어가 장문(莊門) 세 곳을 지나서 편전(便殿)에 들어가 부복(俯伏)하였다. 지척에서 성상의 얼굴을 보게 되니 그 영광스러움과 행운은 더 말할 것이 없고, 그러한 장관(壯觀) 또한 평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차상(次上)28)한 100인에게는 상을 나누어 주었는데, 나의 이름도 상을 받는 명단 안에 들어 있어서 조금 씁쓸하였다. 상을 받은 뒤 사배례(四拜禮 네 번 절하는 예)를 행하고 물러갔다. 出榜入格, 因有入侍之命, 故早朝進詣闕門外, 入格三百數, 皆來會矣。 入敦化、進善、肅章門留待。 次第趨入協陽門, 歷莊門三處, 入便殿俯伏, 則咫尺天顔, 其爲榮幸, 已無可言, 而其壯觀, 亦平生初見也。 限次上百人頒賞, 而吾名亦參賜賞中, 頗爲落莫矣。 受賞後, 行四拜禮而退。 추창(趨蹌)하여 예도에 맞게 허리를 굽히고 종종걸음을 치며 걷는 것을 말한다. 임금을 알현할 때나 높은 사람에게 나아갈 때 갖추는 예법이다. 협양문(協陽門) 창덕궁에 있는 왕의 침전인 희정당과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大造殿) 영역으로 드나드는 정문이다. 창덕궁이 창건되던 1405년(태종5)경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이괄의 난 등으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어 유지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창덕궁을 개조하던 때에 훼철되어 현재는 존재하지 않고 빈 터만 남아 있다. 차상(次上) 시권(試券)의 성적을 평가하는 등급 가운데 차상은 등수에 들지 못한 것 중에 가장 높은 등급이다. 시권의 성적을 평가하는 등급은 상상(上上)·상중(上中)·상하(上下), 이상(二上)·이중(二中)·이하(二下), 삼상(三上)·삼중(三中)·삼하(三下), 차상(次上)·차중(次中)·차하(次下)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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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벗 백건이 이조 정랑 윤기에게 통언(通言)하여 답한 내용이 자못 의향이 있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다만 나의 병이 이와 같아 가서 얼굴을 보지 못하고, 저들이 생각하는 것이 어떠한지를 모르겠으니, 이것이 유감스럽지만 어찌하겠는가. 健友通言於尹吏郞, 所答頗向意云, 可幸。 但吾病如此, 不得往見面, 請彼之所料, 未知何如, 是可恨也, 奈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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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날이 밝기 전에 길을 나서 노구암(老狗巖)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잠시 말에게 꼴을 먹였다. 임실(任實) 굴암(窟巖)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증산(甑山)에 이르러 묵었다. 未明登程, 至老狗巖朝飯, 暫爲秣馬。 至任實 窟巖秣馬, 至甑山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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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아침에 맑았다가 저녁에 눈이 내렸다. 일찍 밥을 먹고 길에 올랐다. 백정(白亭)에 이르러 약노(若魯) 씨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즉시 출발하여 추동(楸洞)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하였다. 눈바람이 크게 일어났지만 눈을 맞으며 길을 나서 가까스로 무동정(茂童亭)에 이르니,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 이날 60리 길을 갔다. 朝晴暮雪。 早飯登程, 至白亭, 與若魯氏暫話, 卽發至楸洞, 秣馬療飢。 風雪大作, 冒雪登道, 艱到茂童亭, 日已昏矣。 是日行六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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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맑았다. 이른 새벽에 사람을 고용해 우산(牛山)1)의 안덕로(安德老) 집에 보내 서간(書簡)을 전하게 하고 돌아오는 편을 기다렸다가 길에 올랐는데, 날이 이미 저물었다. 천평(泉坪)2)에 이르러 묵었다. 노잣돈 1냥이 들어왔다. 이날 30리 길을 갔다. 晴。 凌晨雇人, 送牛山 安德老家傳書簡, 待回便上程, 日已晩矣。 至泉坪留宿。 路資錢一兩入。 是日行三十里。 우산(牛山)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우산리이다. 천평(泉坪)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천평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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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송현(松峴)에 가서 안 교리(安校理)를 만났는데, 화옥도 왔다. 함께 민 진사(閔進士)의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다시 예조(禮曹)에 가서 안리(安吏)와 상세히 논의하여 상사(上舍) 형님의 효행에 관한 회계(回啓)37)를 올렸다. 오는 길에 안현(安峴)에 들렀으나 예판이 궐에 들어갔으므로 진사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 곧장 죽동(竹洞)으로 왔는데 종인(宗人)이 부재중이었다. 이에 그길로 주동(鑄洞) 교리(校理) 종인에게 갔으나, 이미 용강(龍岡)으로 떠나고 없어서 단지 치회(穉會) 형제와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왔다. 往松峴見安校理, 華玉亦來矣。 同往閔進士家, 暫話後, 回往禮曹, 與安吏詳論, 上舍兄主孝行回啓。 來路入安峴, 則禮判入闕內, 故只與進士暫話, 直來竹洞, 則宗人不在, 故卽往鑄洞 校理宗, 已去龍岡, 只與穉會兄弟, 暫話而來。 회계(回啓) 임금의 하문에 대하여 심의(審議)하여 보고를 하던 일이다. 회달(回達)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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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鑄洞)에 가서 작별을 고하고 왔다. 이날 번철(燔鐵)10)을 설치하여 음식을 제공하였다. 나의 생일에 다행스럽기도 하고 감사하였다. 食後往鑄洞, 告別而來。 是日設煮鐵爲餉, 吾晬日, 可幸可感。 번철(燔鐵) 원문의 '자철(煮鐵)'은 번철(燔鐵)을 달리 이르는 말로, 전이나 고기 따위의 여러 가지 음식을 지지거나 볶을 때 쓰는, 솥뚜껑처럼 생긴 둥글넓적한 무쇠 그릇이다. 전번(煎盤), 전철(煎鐵)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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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오늘은 영감(令監)의 생신(生辰)이다. 저동(苧洞)의 참판 이의행(李義行), 냉정동(冷井洞)의 민 첨지(閔僉知), 고동(雇洞)의 승지 이사렴(李承濂), 그 밖에 조관(朝官)들이 많이 왔다. 종일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고 파하였다. 是日令監生辰也。 苧洞 李參判 義行, 冷井洞 閔僉知, 雇洞 李承旨 思濂, 其他朝官多來矣。 終日醉飽而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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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밥을 먹은 뒤 개간소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사헌과 회동으로 갔다. 송 장성을 만나 전주로 가는 편지를 받았다. 잠시 송지순의 집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食後, 往刊所暫話後, 與士憲往晦洞。 見宋長城, 受全州所去書簡。 暫訪持淳家, 相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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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신도(新都)를 둘러볼 생각으로 곧 아침을 먹고 고개 둘을 넘어 신도에 이르렀다. 대궐터를 둘러보니 기둥과 주춧돌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상세히 두루 구경하기도 전에 비가 쏟아졌다. 백암동(白巖洞) 앞 주막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한참 있다가 비가 조금 잦아들면서 갤 기미가 있는 듯하였으므로 비를 무릅쓰고 출발하였다. 개태(開泰) 객점에 못 미쳐 들에서 모내기하는 곳을 만나 모내기 밥을 얻어먹었다. 연산(連山) 고을 앞에 이르러 개태정(開泰鼎)54)을 구경하였다. 둘레는 5~6파(把) 정도이고, 깊이는 1장(丈 10척)쯤이었다. 구경을 다하고 나서 출발하였다. 중도에 소나기를 만나 의관이 흠뻑 젖어 몹시 괴로웠다. 간신히 대천(大川)을 건너 은진(恩津) 삼거리에 이르러 잠시 쉬고 나서, 저물녘에 시암(杮岩)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欲玩新都之意, 仍朝飯, 越二嶺, 抵新都。 翫大闕基址, 則列置柱礎石。 未詳周翫之際, 雨作。 入白巖洞前酒店避雨。 移時少選後。 似有開霽之望, 故冒雨發程。 未及開泰店, 野中逢移秧處, 得食秧飯。 抵連山邑前, 翫開泰鼎。 周可五六把、深可一丈。 翫後登程。 中路驟雨, 衣冠盡濕, 悶悶。 艱越大川, 抵恩津三巨里暫憩後, 暮抵杮岩留宿。 行七十里。 개태정(開泰鼎)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에 있는 '개태사 철확(鐵鑊)'을 말한다. 이 솥은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개국사찰로서 개태사를 창건하였을 때 주방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1호로 직경은 289㎝이고, 높이는 96㎝이며, 둘레는 91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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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일찍 출발하여 여산(礪山)55) 새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능측(陵側)56)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용산교(龍山橋)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객방(客房)에 빈대[蝎]가 많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에 일어나니 주인이 정주간에 자리를 깔아 주었다. 그래도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해 몹시 짜증이 났다. ○早發, 抵礪山新店朝飯。 抵陵側午飯。 抵龍山橋店留宿。 行七十里。 店房多蝎, 夜不秪睡。 夜起, 主人鋪席廚間。 仍不秪眠達曉, 可憤可憤。 여산(礪山)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이다. 능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익산 쌍릉으로 보인다. 마한(馬韓)의 무강왕 및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고, 백제 무왕과 왕비의 능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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