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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밥을 먹은 후에 민 상사(閔上舍)와 여러 동접(同接)들과 함께 성균관에 들어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이소(二所)7)의 과거 시험장에 들어가니 시험장은 협소한데 사자(士子)들이 너무 많아 세 곳으로 통설하기에 이르렀다. 노숙하며 밤을 새웠다. 食後與閔上舍及諸同接, 入成均館。 中火後, 因入二所場中, 則場中狹少, 士子甚多, 至以三所通設矣。 夜間經宿露處。 이소(二所) 문과 초시와 회시 때의 시험장의 하나로, 시험장을 각각 둘로 나누어 제1시험장은 일소(一所), 제2시험장은 이소(二所)라고 불렀다. 일소는 예조에, 이소는 성균관에 설치하였다. 《無名子集 文稿 册14 記丙戌別試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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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일찍 출발하여 실음소(失音所)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직산(稷山, 천안 옛 지명) 삼거리에 이르러 길에서 장달소(張達紹)를 만났다. 그가 집에서 온 편지를 전했는데, 집안에 별 탈 없는 것이 다행스럽고, 집을 떠난 지 30일 만에 소식을 듣게 되니 몹시 기뻤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별하여 천안읍(天安邑) 어귀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김제역촌(金堤驛村)48)의 주막에 이르러 회덕(懷德)의 노차(路次)49)를 묻고, 이어 소로(小路)로 길을 잡아 고동령(高東嶺)을 넘어 전의(全義)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90리를 갔다. 早發至失音所朝飯。 抵稷山三巨理, 路上逢張達紹。 乃給家信, 而家中別無故幸喜, 離家三十日, 始見消息忻喜。 暫話作別, 抵天安邑前中火。 到金堤驛村酒幕, 問懷德路次, 仍爲小路作行, 越高東嶺, 抵全義邑內留宿。 行九十里。 김제역촌(金堤驛村) 충청남도 연기군 소정면 대곡리 역말마을이다. 노차(路次) 길 가는 중 잠시 쉬기 위해 길가에 마련하는 임시 거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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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아침을 먹기 전에 박 진사(朴進士)가 반궁(泮宮)에서 찾아왔는데, 몹시 아팠던 곡절을 자세히 말해주었으니 그 위태로움이 심하였다. 다만 각각의 병으로 인사를 살피지 못하여 생사를 모르고 있다가 지금 얼굴을 마주하니 기쁘고 다행스러운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 朝前朴進士, 自泮宮來見, 而備說其大痛之由, 危凜甚矣。 但各病不省, 不知存沒矣, 今而相面, 喜幸不可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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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이종형님, 후장(厚長) 등 여러 사람과 함께 종각(鍾閣) 행랑(行廊)에 가서 술을 마시고 요기를 하였다. 나는 주동(注洞)으로 가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오는 길에 창동(倉洞)의 박 감사(朴監司) 집에 들러 그때 들어온 기별을 물어보고 왔다. 이종형님의 참방(參榜)11)은 축하할 만하였다. 與姨兄主及厚長諸人, 同往鍾閣行廊後, 飮酒療飢。 余則往注洞, 移時談話, 來路入倉洞 朴監司家, 問其時入來之奇而來。 姨兄主參榜, 可賀。 참방(參榜) 과거의 합격자 명단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과거 합격자의 명단을 적어 게시하는 것을 방목(榜目) 또는 방(榜)이라 하고 여기에 참여되는 것을 참방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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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주동(注洞)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는 길에 종현(鍾峴) 갑산(甲山)의 집에 들렀으나 주인은 보지 못하고, 이 도사(李都事)가 그의 집안 하인[家僮]을 거느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장흥동(長興洞)으로 들어가 이 충주(李忠州)를 만나고 왔다. 往注洞暫話。 來路入鍾峴 甲山家, 不見主人, 因見李都事率其家僮。 入長興洞見李忠州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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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一日 창동(倉洞)에 가서 박 감사(朴監司)를 만나고, 이어 독송정(獨松亭)에 가서 문중 어른의 상(喪)을 조문하였다. 다시 주동(注洞)으로 돌아갔다가 마침 군회(君會)와 주인을 만나 종일토록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이날 화옥(華玉)이 떠났다. 往倉洞見朴監司, 因往獨松亭, 弔門長之喪。 轉往注洞, 適逢君會與主人, 終日談話而來。 是日華玉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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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직산(稷山) 삼거리에서 아침을 먹고, 여산(礪山)의 삼치(三峙)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전주 삼례(參禮)의 대천(大川)에 이르러 묵었다. 110리를 갔다. 早發抵稷山三巨里朝飯, 抵礪山之三峙中火。 抵全州 參禮 大川留宿。 行百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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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일찍 출발하였다. 노자(路資)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부내(府內) 영주인(營主人) 집에 들러 변통할 요량으로 주인집에 들어갔으나 주인이 부재중이라서 곧바로 길을 나섰다. 신외(新隈)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뒤 임실(任實)의 방동(方洞) 송연규(宋延奎) 집에 가서 묵었다. 80리를 갔다. 주인은 돈학공(遯壑公)50)의 자손이다. 早發。 以路資之不足, 入府內營主人家, 辨通意專, 入主人家, 則主人不在, 故卽爲發程抵新隈中火, 卽到任實 房洞 宋延奎家留宿。 行八十里。 主人則遯壑公子孫也。 돈학공(遯壑公) 송경원(宋慶元, 1419∼1510)으로, 본관은 여산(礪山), 호는 돈학이다. 김종직·남효온 등과 교유하였다. 1455년 음보로 전라도사에 임명되었다. 1457년(세조3) 단종이 영월에 유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재종형 송간(宋侃)과 함께 영월로 달려가 문밖에서 복명하고 돌아왔다. 단종이 사사되자 송간과 함께 계룡산으로 들어가 2년간 복상하였다. 그 뒤 출세를 단념하고 임실 백이산(伯夷山)에 은거하고,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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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계미) 十五日 癸未 흐리고 큰 비가 내려 계곡물이 불어났다. 陰大雨。 溪水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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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갑신) 十六日 甲申 갬. 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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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계미) 十六日 癸未 갬. 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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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갑신) 十七日 甲申 맑음. 하서선생(河西先生)이 경범(景范)51)과 중명(仲明)52)에게 준 시를 기록한다.정통과 편색으로 사람과 물이 나뉘고,(正通偏塞分人物)청수하면 현인이 되고 탁박하면 우인이 된다네.(淸粹爲賢濁駁愚)천리도 기질에 구애됨이 없을 수 없으니,(天理不無拘氣質)인심은 이를 따라 형구의 누가 된다네.(人心從此累形軀)온갖 사특함이 함께 온전히 밝은 본체를 가리지만,(羣邪共蔽全明體)한번 깨우치면 옛 더러움을 새롭게 할 수 있네.(一覺能新舊染汚)샘이 흐르고 불이 타듯이 내면을 길러가면,(泉達火燃充養去)이치는 밝아지고 마음은 전일해져 순의 무리 되리라.(理明心一舜爲徒) 陽。記河西先生示景范仲明詩。正通偏塞分人物。淸粹爲賢濁駁愚.天理不無拘氣質。人心從此累形軀.羣邪共蔽全明體。一覺能新舊染汚.泉達火燃充養去。理明心一舜爲徒. 경범(景范) 조희문(趙希文, 1527~1578)의 자이다. 조희문의 호는 월계(月溪),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김인후(金麟厚)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556년 승문원정자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성균관 전적(典籍)·사예(司藝)·사성, 사헌부장령·사간원헌납·이조좌랑, 홍문관수찬·교리, 장흥부사(長興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당시 기대승(奇大升)·정철(鄭澈) 등과 교유하였다. 문집으로 ≪월계유집≫을 남겼다. 중명(仲明) 양자징(梁子徵, 1523~1594)의 자이다. 양자징의 호는 고암(鼓巖)이고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담양에 소쇄원(瀟灑園)을 창건한 양산보(梁山甫)의 아들이며, 김인후(金麟厚)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효행(孝行)으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올랐으며, 거창현감(居昌縣監)과 석성현감(石城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은진의 갈산사(葛山祠)와 장성의 필암서원(筆巖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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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임신) 六日 壬申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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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임오) 十五日 壬午 흐리고 밤에 비. 이날 밤에 셋째 손자가 태어났다.이두봉(李斗奉)은 호(號)가 양재(養齋)로, 고향에서부터 장동을 방문하여서 성수(星數)39)와 침법(針法)을 꺼내 보여주기에 그것을 기록한다.〈침법(針法)〉 - 원보방사법(圓補方瀉法)40)으로 중침(中針)41)을 4관(四關)42)에 놓는다.먼저 사법(瀉法)43)을 3회 하는데, 상괄(上括)을 3회, 침두(打針) 때리기 3회 한 후에 청룡파미(靑龍破尾)44)한다. 이때는 침두를 엄지손가락으로 흔들며 침두를 3번 넣었다 뺐다 하는 것이 좋다. 백호요두(白虎撓頭)45)는 침두를 잡고 보사법(補瀉法)46)과 같이한다. 영구탐혈(靈龜探穴)47)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적봉영원(赤鳳迎源)48)은 사법(瀉法)과 같이하는 것이 옳다.- 침술을 행할 때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놓는데, 남자는 아침에는 손에 침을 놓고 석양에는 발에 침을 놓는다. 여자는 아침에는 발에 침을 놓고 석양에는 손에 침을 놓는다. 병이 위에 있으면 침은 아래에 놓고, 병이 아래에 있으면 침은 위에 놓는다. 병이 왼쪽에 있으면 침은 오른쪽에 놓고 병이 오른쪽에 있으면 침은 왼쪽에 놓는다. 병이 뱃속에 있고 병이 온몸에 있으면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놓으며, 4관(四關)에 모두 놓는다. -- 침법을 놓는 것은 금귀일(金鬼日)이 좋다. 납음(納音)49)에 금(金) 아래가 귀성(鬼星)50)이란 것이 이것이다.- 陰夜雨。是夜生三孫。李斗奉。 號養齋。 自故園來訪章洞。 出示星數針法。 記之。針法。圓補方瀉法。中針四關。先瀉三次。 上括三次。 打針頭三次後。 靑龍破尾。 針頭手大指撓。 針頭三次浮沉可。白虎撓頭。 執針頭。 如補瀉法。靈龜探穴。 指東西南北。赤鳳迎源。 如瀉法行之可也。【行針男左女右。 男子朝日行針手。 夕陽行針足。女子朝日行針足。 夕陽行針手。病在上針下。 病在下則針上。病在左則針右。 病在右針左。病在腹中。 病在全身。 男左女右。 通四關。】【作針法。 金鬼日可也。納音金下鬼星是也。】 성수(星數) 사주 보는 것을 가리킨다. 원보방사법(圓補方瀉法) 침을 놓을 때 손가락 모양이 원(圓) 모양이 되면 보법(補法), 펴지면 사법(瀉法)이라 한다. 중침(中針) 그리 굵지도 가늘지도 않은 중치의 바늘이다. 4관(四關) 곽란(癨亂)이 되었을 때에 통기(通氣)시키기 위하여 손과 발의 네 군데 관절(關節)에 침을 놓는 곳. 곧 손의 두 합곡(合谷)과 발의 두 태충(太衝)을 가리킨다. 사법(瀉法) 병증(病症)을 깎아 내리고 쳐내는 방법을 말한다. 청룡파미(靑龍破尾) 보법(補法)의 일종으로, 침을 놓고 엄지손가락을 한번은 좌측으로 돌리고 한번은 우측으로 돌리는 방법이다. 백호요두(白虎撓頭) 사법(瀉法)의 일종으로, 침봉(針峯)을 한번은 좌측으로 기울어지게 하여 돌리고 한번은 우측으로 기울어지게 하여 돌리면서 침을 놓는 방법이다. 보사법(補瀉法) 부족한 것은 더해주고 남는 것은 덜어주는 치료법이다. 영구탐혈(靈龜探穴) 보법(補法)의 일종으로, 땅속으로 들어가는 거북이가 3진 1퇴(三進一退)하는 방식이다. 상하 좌우(上下左右)로 들어간다. 적봉영원(赤鳳迎源) 사법(瀉法)의 일종으로, 봉황이 날개를 펴는 것과 같이 침을 놓는 수기법으로 상하좌우로 회전한다. 납음(納音)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오음(五音)과 십이율(十二律)에 맞추는 것으로, 갑자(甲子)를 황종(黃鐘)의 상(商)이라 하고 을축(乙丑)을 대려(大呂)의 상이라 하며, 상은 금(金)에 속하므로 갑자와 을축을 바닷속의 금[海中金]이라 하는 따위를 이른다. 귀성(鬼星) 28수 가운데 스물셋째 별자리의 별들로, 대한(大寒) 때, 해가 뜨고 질 때에 정남쪽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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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신미) 五日 辛未 흐림. 금년의 장마 비는 오월부터 달을 이어서 개지 않아 간간히 (홍수가) 산을 삼키고 언덕을 넘는[懷山襄陵]71)때가 많았다. 때문에 여러 곳을 왕복할 때 '회양(懷襄)'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陰。今年霖雨。 自五月。 連月不開。 間多懷山襄陵之時。 故諸處往復。 多用懷襄之辭。 산을 삼키고 언덕을 넘는[懷山襄陵] ≪서경≫ 〈요전(堯典)〉에 "넘실넘실 홍수가 바야흐로 터져서, 끝없이 산을 에워싸고 언덕을 넘어서, 질펀하게 하늘까지 잇닿았으므로, 백성들이 탄식하고 있다.[湯湯洪水方割, 蕩蕩懷山襄陵, 浩浩滔天, 下民其咨.]"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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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일찍 출발하여 ᄀᆞᆯ길리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연기(燕岐) 삼거리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용정(龍亭) 나루를 지나 오촌(鰲村)에 도착하였다. 80리 길을 갔다.장석(丈席)의 환후는 아직 쾌차하지 않았고, 또 근래 일어난 국상(國喪)으로 곡반(哭班)에 참여하느라 읍내를 왕래하고 있는 데다 조섭을 잘못하는 일이 있으니 매우 걱정스러웠다. 우리들이 상경한 뒤로 요청했던 문자를 지어 두었으리라 생각하였는데, 계속 겨를이 없어 유념하지 못했다고 하니 걱정스러웠다. 早發至ᄀᆞᆯ길리酒幕朝飯, 抵燕岐三巨里中火。 到龍亭津, 得達鰲村, 行八十里。 丈席患候未快, 且近以國恤哭班往來邑內, 又有失攝之道, 可悶可悶。 意謂吾等上京後, 所請文字製置矣。 連汨無暇, 不得留念云悶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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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재록하는 일로 일찌감치 가서 유석하(柳錫夏)를 만나 상의하였다. 그길로 함께 김제(金堤) 송상실(宋相實)이 머물고 있는 주인집에 가서 상의하였더니, 아침을 먹은 뒤에 들어오라고 하였다. 도로 주인집으로 나와 아침을 먹고 나서 다시 들어갔으나 요청한 영리가 오지 않았다. 게다가 동행이 길을 재촉하므로 내려올 때 하기로 서로 약속하고 정오에 길을 나섰다. 삼례(參禮)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능측에 이르러 묵었다. 50리를 갔다. 以載錄事, 早往見柳錫夏相議, 仍爲同往金堤 宋相實所旅主人家相議, 則食後入來爲言, 故還爲出來主人家朝飯, 更爲入去, 則所請營吏不來。 且同行促行, 故以下來時相約, 午時登程。 抵參禮中火, 抵陵側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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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새벽에 출발하여 여산(礪山) 읍내에 이르자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어 요기하고 사교(沙橋)62)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소월(小越) 주막에 가서 묵었다. 100리를 갔다. 曉發抵礪山邑內, 始開東矣。 仍爲療飢, 抵沙橋中火。 暮抵小越酒幕留宿。 行百里。 사교(沙橋) 논산 은진면과 부적면의 논산천을 건너던 다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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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오촌(鰲村) 동방록(同房錄)송석년 무술생 수이 여산 사람 흥양에 거주송흠영 임술생 자량 은진 사람 회덕에 거주정현석 갑인생 군범 광주 사람 임천에 거주정재팔 계해생 순거 의성 사람 용담에 거주금석로 병진생 영수 봉성 사람 옥천에 거주 鰲村同房錄宋錫年 戊戌 壽而 礪山人 居興陽宋欽悅 壬戌 子良 恩津人 居懷德鄭玄錫 甲寅 君範 光州人 居林川丁載八 癸亥 舜擧 義城人 居龍潭琴錫老 丙辰 永叟 鳳城人 居沃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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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길을 나설 때에 문등(門登)의 종인(宗人)이 그 족계(族契)의 돈 10냥을 신행(贐行)1)으로 주고, 성리(城里)의 종인 사달(士達)이 돈 3전(三戔)을 신행으로 주었다. 윤일(允日)은 돈 1전(一戔)을 신행으로 주고, 망동(望洞)의 종인은 돈 2전(二戔)을 신행으로 주었으며, 김희서(金喜瑞)는 돈 1전(一戔)을 신행으로 주었다.대곡(大谷) 형님, 가아(家兒)와 길을 나서 석촌(石村)의 송계석(宋啓錫) 집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탄포(炭浦)에 이르러 곧장 종과 말을 사교(四橋)로 보내고 나는 송창(松倉)에 가서 도감(都監) 송경렬(宋敬烈)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도감이 술을 사서 주고, 또 돈 5전(五戔)을 신행으로 주었다. 저녁에 재동(齋洞)에 이르러 묵었다. 發程之際, 門登宗人以其族契錢一兩贐行, 城里宗人士達以三戔錢贐行, 允日以一戔錢贐行, 望洞宗人以二戔錢贐行, 金喜瑞以一戔錢贐行。 與大谷兄主及家兒發行, 抵石村 宋啓錫家中火。 至炭浦, 直送奴馬於四橋, 余則往松倉, 與都監 宋敬烈暫話, 沽酒以進, 又以五戔錢贐行。 暮抵齋洞留宿。 신행(贐行) 여행하는 자에게 주는 돈과 물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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