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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나 고읍(古邑)의 마을 앞에 이르렀다. 양언(良彦)의 집에 노복을 보내어 화옥(華玉)이 머물며 기다리는지 살펴보게 했는데, 박우(朴友)가 오라고 하였으므로 고읍(古邑)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병동(屛洞)의 송지각(宋之珏) 집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돌아오는 길에 신기(新基)로 가서 약노(若魯) 씨의 궤연(几筵)에 조문하고 한참을 위로하다가 면교(面橋)로 방향을 바꾸어 나주 형님의 상(喪)에 조문하였다. 早朝登程, 至古邑村前。 送奴於良彦家, 探知華玉留待, 而朴友要之, 故入古邑朝飯。 至屛洞 宋之珏家, 中火秣馬。 來路往新基, 吊若魯氏几筵, 移時致慰, 轉向面橋, 吊羅州兄主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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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일찍 밥을 먹은 뒤에 차동(車洞)에 갔더니, 주인은 때마침 도승지(都承旨)가 되어 입직하여 경모궁(景慕宮) 거둥할 때에 배종하였으므로 다만 진사 욱여(旭汝)와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퇴근한 뒤에 잠시 주인을 만나고 곧바로 내려와서 청파(靑坡)에서 묵었다. 밤에 비가 왔다. 早食後往車洞, 則主人時爲都承旨入直, 陪景慕宮擧動, 故只與進士 旭汝, 終日談話。 申退後, 暫見主人, 卽爲下來, 靑坡留宿, 夜點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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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경유(景猷)가 와서 보았다. 종일토록 편안히 잠을 잤다. 낮에 꿈속에 천노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그 기쁜 마음을 말로 다 할 수 없었는데, 한참 뒤에 잠에서 깨어나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상원이 주동(注洞)에 가서 돈 62냥을 납부하고 왔다. 주동(注洞)에서 온 편지에 연시지(延諡紙)를 물리었다는 기별이 있었다. 이렇게 시급한 때에 이 일을 장차 어찌해야 좋겠는가. 나의 병이 이와 같아서 궐문 밖에 출입하지도 못하고 오로지 주동(注洞) 사람을 시켜 대신 수고로이 마련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힘을 다하였으니, 매우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약간의 근력(筋力)이 며칠 설사를 하느라 모두 소진되어 말이 소리를 이루지 못하고 소리가 목에서 나오지 않아 숨이 곧 넘어갈 지경이라 아침에 저녁 일을 보장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저녁 무렵에 김 주부(金主簿)가 찾아와서 보고는 설사로 계고를 이미 중지했으니 오래지 않아 저절로 낫겠지만 남은 열이 여전히 오락가락하니, 인동차(忍冬茶)를 쓰면 좋을 듯하다고 하였다. 저녁 무렵 백건(伯健)이 와서 보고 갔다. 景猷來見。 終日安枕。 午夢千奴忽來現, 喜不可言, 移時睡覺, 回顧無有。 尙元往注洞, 納錢六十二兩而來。 注洞之書, 有延諡紙退托之奇, 當此急時, 此將奈何? 吾病如此, 不得出入門外, 專使注洞之人, 代勞措備矣。 其處不殫勞苦, 多方宣力, 極爲感幸。 若干筋力, 都消於數日泄瀉, 言不成聲, 聲不出喉, 氣息奄奄, 若不保朝夕矣。 夕間金主簿來見, 泄瀉鷄膏旣止, 不久自差, 餘熱尙有往來, 又用忍冬茶則好矣云。 夕間伯健來見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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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이른 아침 이 흥양(李興陽)이 삼노(三奴)에게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게 하였다. 날이 저문 뒤에는 이(李)·공(孔) 등 여러 사람과 김각(金珏), 최생(崔生)이 찾아와서 보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갔다. 早朝李興陽, 使三奴書問。 晩後李、孔諸人及金珏、崔生來見, 移時談話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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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일찍 출발하여 금강(錦江) 모래톱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광정(廣亭)까지 50리를 가서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우연히 광주(光州) 평장동(平章洞) 김 참봉(金參奉)과 서울 사람을 만났다. 순귀(順歸)하는 말1)을 사헌(士憲)이 세내어 타고 왔다. 천안(天安)까지 50리를 가서 묵었다. 早發至錦江沙頭療飢。 至廣亭五十里, 朝飯秣馬。 偶逢光州 平章洞 金參奉及京人。 順歸馬士憲貰馬騎來。 至天安五十里留宿。 순귀(順歸)하는 말 돌아가거나 돌아오는 사람의 인편에 따라 오는 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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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김 참봉과 동행했다. 일찍 출발하여 성환(成歡)까지 40리를 가서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진위(振威)까지 50리를 가서 요기하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중저(中底)까지 20리를 가서 묵었다. 因與金參奉同行。 早發至成歡四十里, 朝飯秣馬。 至振威五十里, 療飢秣馬。 至中底二十里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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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새벽에 출발하여 용산교(龍山橋)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부내(府內)의 장영손(張永孫) 집에 도착하였다. 잠시 쉰 뒤에 서산서원(西山書院)60)에 가서 최수일(崔洙一)을 만났다. 대개 오촌(鰲村)에서 서로 작별할 때, 내려가는 길에 찾아가겠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니, 그 기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주인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에 주인을 데리고 가서 이 찰방을 만났더니, 사또(使道)가 감기에 걸린 데다 온갖 업무로 복잡하여 뵐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난번에 두고 간 책자를 사또께 드렸더니 사또가 한 편을 다 열람하시고는, "일찍이 《장릉지(莊陵誌)》를 교정(校正)한 적이 있다."했다고 하였다. 《서재실기(西齋實記)》를 두고 전에 남겨 둔 책자(冊子, 《서재행록(西齋行錄)》을 말함)는 가지고 나와 주인집에서 묵었다. 曉發抵龍山橋朝飯, 得達府內 張永孫家。 小憩後, 往西山書院, 訪見崔洙一。 蓋鰲村相別時, 有下去路尋訪之約故也, 其忻喜何可盡言? 還來主人家, 夕飯後, 率主人往見李察訪, 則使道非但感氣, 百務多端, 不得見謁云, 而頃留冊子, 納于使道, 則使道盡覽一篇, 而曰: "曾已校正於《莊陵誌》"云矣。 留《西齋實記》, 前留冊子, 則持而出來, 主人家留宿。 서산서원(西山書院) 조선 인조(仁祖) 때 전주(全州)에 건립한 사우(祠宇)로, 최양(崔瀁)·최덕지(崔德之)·송영구(宋英耉)·이계맹(李繼孟)·이흥발(李興浡)·이기발(李起浡) 등을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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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일찍 출발하여 현치(玄峙)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용산(龍山登) 주막에서 점심을 먹고, 진촌(陳村)을 채 못 가서 김 대비(金大妃)35)의 부음(訃音)을 들었다. 진촌(陳村)에 도착하여 묵었다. 100리를 갔다. 죽산(竹山, 경기도 안성지역 옛 지명) 땅이다. 早發至玄峙朝飯, 抵龍山登酒幕中火, 未及陳村, 聞金大妃喪訃音, 抵陳村留宿。 行百里, 竹山地也。 김 대비(金大妃) 정조의 비(妃)인 효의왕후(孝懿王后, 1753~1821)를 말한다. 1762년(영조38) 10세 때 세손빈(世孫嬪)에 책봉되고,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천성이 온후하고 청렴하여 일생을 검소하게 보냈으며, 생전에 여러 차례 존호(尊號)를 올렸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1821년 3 월 9일에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예경자수효의왕후(睿敬慈粹孝懿王后)이고, 능호는 건릉(健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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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새벽에 출발하여 좌전(坐箭)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양지(陽地)36) 신주막(新酒幕)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용인(龍仁)37) 어후내에 이르러 묵었다. 100리를 갔다. 曉發至坐箭朝飯, 抵陽地新酒幕中火。 抵龍仁 어후내留宿。 行百里。 양지(陽地)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용인(龍仁) 지금의 용인시로, 한반도 및 경기도의 중심에 있으며, 동쪽은 이천시, 서쪽은 수원시와 화성시, 남쪽은 안성시·평택시, 북쪽은 성남시·광주시와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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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아침을 먹고 새벽에 출발하였다. 은진(恩津) 삼거리(三巨里) 주막에 이르러 시내를 건널 때에 대석(臺石)이 얼어 있어 있는 바람에 발이 미끄러져 물에 빠졌는데, 물이 무릎 위까지 차올라 옷이 모두 젖어버렸다. 겨우 냇가로 나왔으나 땅도 얼어 있었다. 이런 혹한에 해도 뜨기 전에 이런 변고를 만났으니, 어찌하여 이번 길에 나와 노복으로 하여금 왕래함에 이처럼 낭패의 지경에 이르게 한단 말인가. 간신히 1리를 갔는데, 젖은 옷이 굳어가고 발이 너무 시려서 걸을 수 없기에 버선을 벗으려고 하니 손가락이 굳어 벗을 수가 없었다. 노복을 시켜 간신히 벗고 얼어버린 버선을 새 버선으로 바꾸어 신었으니, 행로의 어려운 실상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시암(杮岩) 주점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가 요기를 하고 전주 삼례(參禮)에 이르러 묵었다. 90리를 갔다. 仍朝飯曉發, 抵恩津三巨里酒幕後。 越川之際, 臺石凍滑, 失足立水, 水過膝上, 衣下盡濕。 才出川邊, 卽地旋凍, 當此極寒, 朝前逢此變, 如何此行使我奴主往來, 致敗至於此境耶?艱行一里, 濕衣堅動, 脚足甚寒, 不能行步, 故欲脫襪子, 則指直不得脫。 使奴者艱脫, 凍襪換着新襪, 則行路之艱狀, 不可言。 抵杮岩酒店, 暫憩療飢, 抵全州 參禮留宿。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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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날이 밝기 전에 길을 나서 삼례(參禮)에 이르렀다. 찰방(察訪, 김척)을 만나고자 하였으나 병사(兵使) 부임하는 행차가 도착하여서 만날 수가 없었다. 병천(幷川)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전주에 이르니 비가 내렸다. 빗속을 뚫고 신원(新院)에 이르러 묵었다. 未明登程, 至參禮。 欲見察訪, 而兵使赴任之行來到, 故不得相面。 至幷川秣馬, 至全州雨作。 冒雨行至新院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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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밤에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아서 늦게야 비를 맞으며 길을 떠났다. 우연히 세마(貰馬)를 얻어 노구암(老狗巖)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아침을 먹었다. 굴암(窟巖)에 이르러 화옥(華玉)을 막중(幕中)에 기다리게 하고 읍내로 들어갔다. 곧바로 주관(主官)을 만나고 나서 화옥을 오게 하여 함께 머물렀다. 夜雨不止, 晩後冒雨登程。 偶得貰馬, 至老狗巖, 秣馬朝飯。 至窟巖, 留華玉於幕中, 往邑內, 卽見主官, 因要華玉同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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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서둘러 밥을 먹고 길에 올랐다. 야당(野塘)에 이르러 우연히 김득성(金得成)의 아우를 만나 비로소 흥양(興陽)의 소식을 들었다. 그 말을 타고 오수(獒樹)에 이르러 곧장 증산(甑山)에 와서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하였다. 비가 계속 쏟아지니 한참을 머물며 쉰 뒤에 비를 맞으며 길을 떠났다. 원산(圓山) 방 서방(房書房) 집에 이르러 묵었다. 의복이 비에 다 젖었다. 促飯登程。 至野塘, 偶逢金得成之弟, 始聞興陽消息。 大槩騎其馬, 至獒樹, 直來甑山, 秣馬療飢。 雨作連注, 移時留歇後, 冒雨作行, 至圓山 房書房家留宿。 衣服眞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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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일찍 출발하여 신탄(新灘) 시장 근처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오촌(鰲村)8)에 도착하였다. 40리를 갔다.행랑에서 잠시 쉬면서 통자(通刺, 면회를 청하던 일)한 다음, 곧바로 들어가 장석(丈席)을 뵙고 올라온 연유를 말씀드렸다. 행랑으로 물러나와 용담(龍潭) 정재팔(丁載八)·황간(黃澗) 신협진(愼協眞)과 함께 묵었다. 早發至新灘市邊中火, 得達鰲村。 行四十里。小憩廊底通刺, 卽爲入謁丈席, 仍敍上來之由。 退來廊底, 與龍潭 丁載八、黃澗 愼協眞同留宿。 오촌(鰲村)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마을 앞에 있는 바위가 자라 모양이라 하여 자라울이라 부르다가 일제 강점기에 오촌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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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장석(丈席)께서 비록 허락하지 않았지만 친히 행록(行錄)을 상고하여 자세하게 논평하였는데, 편차(篇次)가 뒤죽박죽이고 지운 글자가 꽤 있어서 긴요하지 않은 뜻이 있는 듯하였다. 이에 교정(校正)을 청했더니 《돈학집(遯壑集)》9)을 내보이시며, "이것은 바로 충강공(忠剛公, 송간(宋侃))의 왕복 서간인데, 비록 몇 편에 불과하나 오히려 행록 한 권보다 낫네."라고 말씀하셨다. 대략 산정(刪正)10)은 하였으나 아직 허락을 받지 못하였으니 걱정스럽다. 丈席雖爲不許, 親考行錄, 仔細評論, 以篇次之渾雜, 文字之頗鎖, 似有不緊之意。 故請以校正, 則出示《遯壑集》曰: "此是忠剛公往復書, 則雖數篇猶勝於行錄一卷云云。" 而略爲正刪, 然尙未蒙許, 悶悶。 둔학집(遯壑集) 조선 전기의 문신 송경원(宋慶元, 1419~1510)의 시문집으로 상·하 2권 1책이다. 1826년(순조26)에 초간본이 나왔고, 1921년에 중간본이 나왔다. 중간본의 책머리에 1920년에 쓴 김영한의 중간서문과 1826년에 쓴 송치규의 〈돈학실적서(遯壑實蹟序)〉가 있고, 책 끝에 윤태일의 발문과 송증헌의 중간발문이 있다. 상편에 시·서·논·기 등과 하편에 전·가장·행장·묘지 등이 실려 있다. 산정(刪正) 글의 쓸데없는 자구를 없애고 다듬어서 글을 잘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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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사환이 끝내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으니 걱정스럽다. 아침을 먹은 뒤에 만복(萬卜)이란 자를 얻어 짐을 지게하고 길을 떠났다. 사촌(社村)에 이르러 오위장(五衛將)을 조문한 뒤에 이 석사(李碩士)와 길을 떠나 벌교(筏橋)에서 점심을 먹었다. 서령(西嶺)을 넘어 기동(基洞)의 좌수(座首) 이형립(李亨立)의 집에 이르러 묵었다. 30리를 갔다. 使喚終未完定, 可悶矣。 食後得萬卜者, 負卜發程。 抵社村吊五衛將後, 與李碩士發程, 抵筏橋中火。 越西嶺, 抵基洞 李座首 亨立家留宿。 行三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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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아침을 먹은 뒤에 이 석사(李碩士)와 남문 밖의 주점(酒店)에 가서 관아의 한 사람을 기다렸다. 끝내 오지 않았으므로 나는 영문(營門) 밖에 가서 마두 영리(馬頭營吏)를 불러 면회를 요청하도록 분부하였더니, "매우 어렵습니다."라고 답하였다. 두서너 번 부탁의 말을 하였으나 끝내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인집으로 돌아왔다.저녁을 먹은 뒤에 임실(任實)의 하서(夏瑞)가 들어왔다. 올라올 때 서로 약속하였는데, 기일에 맞추어 도착하였으니 다행이었다. 그대로 함께 머물렀다. ○食後與李碩士, 往南門外酒店, 待衙家一人矣。 終不來故, 余則往營門外, 招馬頭 營吏, 以通刺之意分付, 則答曰: "極難"云。 數三言托, 而終無聽從, 故不得已還來主人家。 夕飯後, 任實 夏瑞入來, 上來時相約矣, 及期來到, 可幸。 仍與同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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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하서가 노복과 말을 거느리고 김제(金堤)5)에 갔다. 오후에 비 때문에 막혀서 영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주인집에 머물렀다. ○夏瑞仍率奴馬往金堤。 午後爲雨所阻, 不得入去營門, 仍留主人家。 김제(金堤) 저본의 '食堤'은 문맥상 지명으로, '金堤'의 오기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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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八月 봄에 상경하였을 때 재동(齋洞)의 육충사(六忠祠)를 예조에 재록(載錄)하는 일로 예조에 소장을 올렸으나 육충사(六忠祠)가 아직도 사액(賜額)되지 않은 것이 은전(恩典)의 흠이었다.《사원록(祠院錄)》에 삼가 마땅히 써서 들여야 하니 이전에 받은 제사(題辭)를 재록(載錄)하기위해 장방(長房)59)으로 들어갔는데, 서리 배광옥(裵光玉)이 말하기를, "《사원록》 중 전라도권이 규장각(奎章閣)에 들어있으니 지금 바로 재록하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올 시기를 묻자 "조만간에는 기약할 수 없다"라고 하므로 직접 보지 못하고 돌아왔었다.이번 가을 문중에서 또 나더러 가서 만나라고 했기 때문에 8월 그믐날에 길을 나섰다. 가아(家兒, 아들)를 데리고 천노(千奴)에게 짐을 지게 하여 과역(過驛) 시장 근처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노송정(老松亭)에 이르자, 천노(千奴)가 다리 병이 난 탓에 도로 들여보내고 우연히 사교(四橋)의 상덕(尙德)을 얻어 짐을 지게 했다. 탄포(炭浦)에 이르자 비가 내려 가아(家兒)는 마륜(馬輪)으로 가고, 나는 곧 비를 무릅쓰고 사교(四橋)의 가교(柯橋) 댁에 이르러 묵었다. 春間上京時, 以齋洞 六忠祠 春曹載錄事, 呈于禮曹, 六忠祠之尙未宣額欠典也。 《祠院錄》, 謹當書入, 向事之題, 載錄次入長房, 則書吏 裵光玉曰: "《祠院錄》 全羅道卷, 入奎章閣, 則今方載錄, 無可奈何"云, 故問于出來之, "早晩無期"云, 故不得親見而來矣。 今秋門中, 又以余往見, 故八月晦日發程, 而率家兒, 使千奴負, 至過驛市邊療飢。 抵老松亭, 千奴以脚病之致, 還爲入送, 偶得四橋 尙德負卜, 至炭浦雨作, 家兒往馬輪, 余卽冒雨, 抵四橋 柯橋宅留宿。 장방(長房) 조선시대 각 관청에서 서리가 쓰던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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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대곡(大谷) 형님, 동재(洞哉)와 함께 남계(南溪) 정내성(丁乃成)을 찾아갔으나 내성은 서재(書齋)에 갔기에 잠시 정사문(丁思文) 씨를 만나 보았다. 서재(書齋)에 이르러 신 승지(愼承旨)의 서간(書簡)을 내성에게 전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물녘에 재동(齋洞)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은 뒤에 호치(虎峙)에 가서 대옥(大玉) 부모의 병환을 묻고, 그대로 머물렀다. 食後與大谷兄主及洞哉, 訪南溪 丁乃成, 則乃成去書齋, 故暫見丁思文氏。 抵書齋, 傳愼承旨書簡於乃成, 移時敍話, 乘暮入齋洞。 夕飯後往虎峙, 問大玉親患, 仍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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