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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여독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주인집에 머물렀다. 오후에 대로변으로 나가 요기를 하고, 그길로 관정동(冠井洞)으로 향하였다. 중도에 박상현(朴祥顯)과 공서(公瑞)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헤어져 돌아왔다. ○以路憊不能運動, 留主人家。 午後出去大路邊療飢。 仍向冠井洞矣。 中路逢朴祥顯及公瑞, 談話後, 相分還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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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였다. 공주 감영에 들어가 산성의 남문으로 들어가서 북문으로 나왔다. 곧바로 나루를 건너기 위해서였다. 모로원(慕露院)103)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광정(廣亭)104)에 이르러 나는 송상철(宋相哲) 집에 들어갔으나, 길보(吉甫)가 마침 집에 없어서 곧바로 나와 주막에서 점심을 먹었다. 차령(車嶺)105)에 못 미쳐서 중도에 길보를 만났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그길로 헤어졌다. 차령을 넘어 덕평(德坪)106)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曉發。 歷公州監營, 入山城南門出北門。 卽爲越津。 抵慕露院朝飯。 抵廣亭, 余則入宋相哲家, 吉甫適不在, 卽爲出來, 酒幕午飯。 未及車嶺, 逢吉甫於中路。 移時談話, 仍爲分袂。 越車嶺, 抵德坪留宿行。 六十里。 모로원(慕露院)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오인리 양달 마을에 있었다. 원래 명칭은 '모로원(毛老院)이다. 광정(廣亭)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이다. 차령(車嶺)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仁豊里)와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院德里)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덕평(德坪)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덕평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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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새벽에 출발하여 도토치(道吐峙) 아래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실음소(失音所)107)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칠원(柒原)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100리를 갔다. ○曉發, 抵道吐峙下店朝飯。 抵失音所午飯。 抵柒原留宿。 行百里。 실음소(失音所)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수헐리이다. 성환에서 국도와 갈라졌던 옛길이 국도와 다시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마을로 한자 이름은 수헐리인데,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수헐원(愁歇院)'으로 되어 있고, 속칭 '실음소(悉音所)'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곳은 동쪽으로 5리 가면 직산 고을이 나타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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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영변(寧邊)에 이르렀다. 철옹성(鉄甕城)63) 만노문(萬弩門)64)으로 들어가 곧바로 관문에 이르러 통자(通刺, 명함을 내놓고 면회를 청함)하고, 곧바로 대아(大衙)에 들어갔다. 그 성지(城池)를 보니, 참으로 천참(天塹, 천연의 요충지)의 관사(官舍)이며 웅장한 고을이었다. 早發行四十里, 抵寧邊。 入鉄瓮城萬弩門, 直至官門通刺, 卽入大衙。 觀其城池, 儘天塹官舍, 眞雄府也。 철옹성(鐵甕城) 고구려 때 처음 쌓은 본성·약산성과 조선 시대 때 쌓은 신성·북성 등 4개의 부분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구려 때 처음 쌓은 이래 조선 시대까지 서북 방위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였다. 네 방향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로, 항아리 입구와 같이 생긴 까닭에 철옹성(鐵甕城)이란 이름이 붙었다. 만노문(萬弩門) 영변 철옹성의 정문인 남문으로, 완월문, 고연주성문, 은주루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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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아침 전에 관아에서 사람과 말을 보내왔다. 아침을 먹은 뒤에 동대(東臺)72)에 올라 좌우를 두루 살펴보았다. 대개 장대(將臺)73)와 다름이 없었는데, 그 석벽이 우뚝 솟아 대를 깎아 만든 것 같으니 그 빼어난 경치를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다만 천지가 온통 눈밭이고 날씨마저 추워서 오래 앉아 끝까지 구경할 수가 없으니 안타까웠다. 마침내 천주사로 내려갔다가 그길로 돌아왔다. 朝前自衙中送人馬。 食後登東臺, 周觀左右, 盖與將臺無異, 而其石壁斗起, 奄成削臺, 其勝槩不可盡言, 而但雪滿乾坤, 日氣又寒, 不得久坐終遊, 可歎。 遂下天柱寺, 因爲下來。 동대(東臺) 영변의 약산(藥山)에 있다. 약산은 철옹성의 진산(鎭山)으로 주위의 다른 산에 비하여 가장 험준하며 경관이 뛰어난 승지(勝地)이다. 약산 제일봉을 중심으로 동쪽에 기암괴석이 층층이 쌓여 있는 가운데 5m가량 높은 곳에 주위가 20여m 정도의 반석이 마치 대(臺)와 같이 되어 약산동대(藥山東臺)라 이름한다.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이다. 장대(將臺) 산성이나 성곽 등의 동쪽에 만들어 놓은 대(臺)를 말한다. 산성에는 대체로 동서남북의 네 군데에 장대(將臺)가 있고, 장수들은 각 장대에서 자기 휘하의 군사들을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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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일찍 송현(松峴)29)으로 가서 안 교리(安校理)를 조문하고, 그길로 민 진사 집에 갔더니 부재중이었다. 그래서 예조에 갔는데 안리(安吏)는 궐에 들어가서 만나지 못했다. 다시 호동(壺洞)30)으로 갔으나 자직(子直)이 선산에 성묘를 가서 만나지 못하고, 그 아들만 보고서 돌아왔다. 다시 예조에 들어가 안리(安吏)를 만났는데, 다시 의논할 일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하니 가탄스럽다. 곧바로 나와 버렸다. 早往松峴, 吊安校理, 因往閔進士家, 則不在, 故往禮曹, 則安吏入闕不遇。 轉往壺洞則子直作楸行未遇, 只見其子, 因爲回來。 更入禮曹見安吏, 則決無更議之擧云, 可歎。 卽爲出來。 송현(松峴)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사와 건너편 종로문화원 사이에 있던 고개로서, 소나무가 울창하여 솔재라 하고 한자명으로 송현이라고 하였다. 호동(壺洞) 종로구 원남동에 있던 마을로서, 황참의다리 동북쪽에 있는데 모양이 호리병과 같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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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먼 길에 지치고 동상례(東床禮)14)도 치렀기 때문에 이날 마침내 차동(車洞)에서 사도(蛇渡) 하인 편에 집으로 보낼 편지를 써서 부쳤다. 以路困及設東床禮, 故是日終車洞書付家信於蛇渡下人便。 동상례(東牀禮) 혼례를 치른 뒤에 신랑이 신부집에서 마을 사람이나 친구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로, 동상례(東床禮)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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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鑄洞)에 가니 교리가 입직하여 만나지 못하고, 치회(穉會) 형제만 만났다. 돌아오는 길에 곧장 이문동(里門洞)15)의 장우(張友, 장씨 성의 벗)에게 갔으나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 또 팔패(八牌)에 가서 송상원(宋尙元)을 만나고 왔다. 食後往鑄洞, 校理入直不遇, 只見穉會兄弟。 來路直往里門洞 張友, 尙不來矣。 又往八牌, 見宋尙元而來。 이문동(里門洞)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던 마을로서, 마을에 이문이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우리말로 '이문골', '이문안'이라고 하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것이다. 서울에 이문이 설치된 것은 조선 세조 때로 도적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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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귀남(龜南) 종객(宗客)과 흥양(興陽) 사람이 내려왔으므로 같이 청파(靑坡)로 가서 송별하고 왔다. 오전에 화옥(華玉)이 와서 보고 갔다. 마필(馬匹)을 샀다. 龜南宗客及興陽人下來, 故同往靑坡送別而來。 午前華玉來見而去。 買馬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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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동틀 무렵 길을 나서 수원(水原)을 지나가는데 그 성역(城役)의 번거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석재(石材)로 길이 막혀 대로(大路)를 경유할 수 없으니 시내를 따라 우회하여 간신히 나와 중저점(中底店)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소사(素沙)에 이르자 바람이 크게 일어나 날리는 먼지가 눈앞을 가리므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미 100여 리 길을 왔으니 말에게 병이 생길까 걱정되어 이에 머물러 묵었다. 平明登程, 過水原, 其城役之煩巨, 不可勝言。 石材塞路, 不得由大路, 沿溪迂回, 艱辛出來, 至中底店中火。 至素沙, 風氣大作, 飛塵溢目, 不得前進, 且已行百餘里, 則恐馬生病, 因爲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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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주동(注洞)의 종인(宗人)이 찾아와서 말하기를, "주자장인(鑄字匠人)을 다른 곳에 빼앗겨 사람을 시켜 그 기계(器械)를 빼앗아 오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환전(換錢)을 아직 손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어긋날 염려가 있으니 한탄스럽다.고향 사람 여러 명이 모두 찾아와서 보고 갔다. 전해 듣기로, 산양(山陽)의 안사강(安士剛)이 여점(旅店)에 와서 머물고 있다고 하는데, 병 때문에 가서 볼 방도가 없으니 서글프고 한탄스러운 마음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注洞宗人來見爲言, "鑄字匠人之見奪於他處, 使人往奪其器械"云, 而以換錢之尙未入手, 故事有違之慮, 可歎。 鄕人數輩, 皆來見而去, 傳聞山陽 安士剛, 來留於旅店云, 而病無往見之道, 悵歎何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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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사동(沙洞)의 최생(崔生)이 찾아와서 만났다. 상원(尙元)이 주동(注洞)으로부터 와서 말하기를, "한창 간행(刊行) 중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는데, 가서 만날 길이 전혀 없으니, 한탄스럽다. 沙洞 崔生來見, 而尙元自注洞來言, "方張刊役"云, 而萬無往見之道, 可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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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卄六日 새벽에 일어나 말에게 꼴을 먹였으나 말이 먹지 않아 일찍 출발하지 못하고, 아침을 먹은 뒤에 여정을 시작하여 원천(源川)1)에 이르렀다. 화옥(華玉)과 헤어질 때 나는 원천(源川)으로 향하고, 화옥(華玉)은 수종(水宗)으로 향하여 내일 오수(獒樹)에서 모이기로 약속하였다. 천천히 걸어 주포(周浦)의 여막(旅幕)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는데 전혀 먹지 않으니 괴이하고 걱정스럽다. 즉시 길을 나서 10여 리를 가다가 우연히 매형 제언씨(濟彦氏)와 노우(盧友, 노씨 성의 벗)를 만나 도중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내려와 고룡서원(古龍書院)2)에 머물렀다. 曉起秣馬, 則鬣者不食, 故不得早發, 因爲朝飯後啓行, 至源川。 與華玉分路, 余向源川, 華玉向水宗, 約以明日會于獒樹。 緩行至周浦旅幕, 秣馬則全不食, 可怪可慮。 卽爲登程行十餘里, 偶逢妹兄濟彦氏及盧友, 暫話路次, 同爲下來, 留古龍書院。 원천(源川) 원문은 '□川'인데, 결락된 1자는 여정의 동선으로 보았을 때 다음 도착지인 '원천(源川)'으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고룡서원(古龍書院)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창주서원(滄洲書院)'을 말한다. 옥계(玉溪) 노진(盧禛, 1518~1578)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는데, 정유재란으로 대부분 소실되고 사우(祠宇)만 보존되어오다가 1600(선조33)년에 '창주(滄洲)'라 사액되어 '창주서원'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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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卄七日 풍설(風雪)이 매우 심했다. 말이 먹으려 들지 않기에 걸어서 오수(獒樹)에 이르렀다. 화옥(華玉)이 오지 않았는데, 행인(行人)들의 말을 전해 들으니 전석치(磚石峙)에서 머물며 기다린다고 하여서 인편을 통해 기별을 부치고 그대로 오수(獒樹)에 머물렀다. 風雪極惡。 以馬之不食, 徒步至獒樹, 則華玉不來, 而傳聞行人之言, 則留待於磚石峙云, 故因便付奇, 因留獒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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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을 먹은 뒤에 아현(阿峴)에 가서 민 낭청(閔廊廳)을 방문하였으나 만나지 못하였다. 다시 근동(芹洞)으로 와서 건(健)·순(順) 형제와 한동(翰洞)으로 가서 종일토록 글을 논하고 왔다. 食後往阿峴, 訪閔廊廳不遇。 還來芹洞, 與健、順兄弟往翰洞, 終日論文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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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비가 내렸다. 오후에 비가 그치자 어깨의 통증 때문에 한동(翰洞)에 가서 이 흥양(李興陽)에게 침을 맞고 왔다. 길을 따라 걸어둔 관등(觀燈)49)이 가히 장관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주인령(主人令)과 함께 동산(東山)에 올라가 관등을 구경하고, 또 남평(南平)과 노상(路上)으로 가서 관등을 보고 돌아왔는데 밤이 이미 깊었다. 이에 잠자리에 들었다. 雨。 午後雨歇, 往翰洞, 以肩臂之痛, 受針李興陽而來。 沿路觀燈, 可謂壯觀, 夕飯與主人令, 上東山觀燈, 又與南平往路上, 觀燈而歸, 夜已深矣。 因爲就睡。 관등(觀燈) 음력 4월 초 8일, 즉 석존(釋尊)의 탄일(誕日)을 기념하는 일로서 집집마다 등(燈)을 다는 등의 행사를 말하고, 법사(法事)는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공양(供養) 등의 행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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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어제부터 마음에 번민스러운 증세가 있어서 이른 아침에 팔선(八仙)을 김 주부(金主簿) 집에 보냈더니, 답하기를, "간병(看病)하기 위해 나갔다가 3일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라고 하므로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왔으니 한탄스럽다. 우선 소생(蘇生)과 강생(姜生) 두 사람이 돌아가겠다고 고하였기 때문에 가서(家書)를 부쳐 보냈다. 自昨日中焦似有煩悶之症, 故早朝送八仙於金主簿家, 則答云 "看病次出去, 已三日 不來云," 故不得已空還, 可歎。 姑蘇、姜兩生告歸, 故付家書以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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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주동(注洞)에 가서 참판 조윤형(曺允亨)2)에게 재동서원(齋洞書院)3)의 편액을 받아 왔다. 往注洞, 受來齋洞院額於曺參判允亨。 조윤형(曺允亨) 1725~1799.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치행(穉行), 호는 송하옹(松下翁)이다. 그림과 글씨에 능하였는데, 풀·대나무 등의 묵화를 잘 그렸다. 글씨는 초서·예서를 잘 써서 일찍이 서사관(書寫官)을 역임하였으며, 위로는 대신들로부터 아래로 조례(皁隷)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그의 글을 얻으려 하였다. 재동서원(齋洞書院) 여산 송씨 충강공 송간(宋侃)을 주벽으로 송대립(宋大立), 송심(宋諶), 송순례(宋純禮), 송희립(宋希立), 송건(宋建)과 김시습(金時習) 등 15위를 향사하는 곳이다. 1785년(정조9) 최초 건립 당시 여산 송씨 송간(宋侃), 송대립(宋大立), 송심(宋諶)과 고흥 유씨 유탁(柳濯), 영광 정씨 정연희 등을 봉안하기 위해 두원면 운곡리에 운곡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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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27일 二十三日四日五日六日七日 그믐날까지 연일 혹 주동(注洞)으로 가고, 혹 청파(靑坡)에 가서 보책(譜冊)을 추심(推尋)하여 부쳐 보낼 계획을 세웠는데, 장황(粧䌙)4)하는 것이 쉽지 않아 고민스럽다. 至晦日連日, 或往注洞, 或往靑坡, 以爲推尋譜冊付送之計, 而粧䌙未易, 悶悶。 장황(粧䌙) 장황(裝潢)이라고도 하며, 비단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서 책이나 화첩(畫帖), 족자 따위를 만드는 것, 혹은 만든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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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온종일 비가 쏟아졌다. 아침을 먹은 뒤 느즈막에 잠깐 비가 갰으므로 즉시 비를 무릅쓰고 길에 올랐다. 오리치(五里峙)에 이르자 비가 크게 내려 의복이 모두 젖고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였다. 부득이 무동정(茂東亭)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하였다. 화옥이 어제 지나갔다는 것을 물어서 알고는, 곧바로 비를 맞으며 출발하였다. 여암막(餘巖幕)에 이르니 여암막 기둥에, '화옥(華玉)은 어제 그 여암막에 머물고 있다가 고읍(古邑)에 있는 벗 박양언(朴良彦)의 집으로 출발하였다'라고 써서 걸어 두었는데, 날이 이미 저물었다. 어쩔 수 없이 이 좌수(李座首)의 집에 들어가니 이생(李生)이 정성스레 대접해 주었다. 온돌(溫突)에 약간이라도 의복을 말릴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終日雨注。 朝飯後, 向晩乍霽, 故卽爲冒雨登程。 至五里峙雨大作, 衣服盡濕, 進退維谷。 不得已至茂東亭, 秣馬療飢。 問知華玉昨日過去, 因卽冒雨發行。 至餘巖幕, 則幕柱書揭華玉昨留其幕, 發向古邑 朴友 良彦家云, 而日已夕矣。 不得已入李座首家, 則李生款接。 溫突略燥衣服, 可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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