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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일찍 출발하여 은산(殷山)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소로(小路)로 들어가서 험준한 고개 하나를 넘어 도산(道山)의 족질(族姪)인 송필흥(宋弼興)의 집에 찾아갔다.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는데 주인이 한사코 만류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머물렀다. 30리를 갔다. 닭을 잡아 잘 대우해 주니 매우 기뻤다. 早發抵殷山朝飯。 入小路, 越一峻嶺, 訪道山族姪弼興家。 午飯欲爲離發, 則主人堅挽, 故仍留宿。 行三十里。 殺鷄以善待, 可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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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아침을 먹기 전에 정동(貞洞)의 이 석사(李碩士)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 아침을 먹은 뒤에 율지와 용동(龍洞)의 이 참봉(李參奉) 집에 갔더니, 참봉 경화(景華)가 순강원(順康園)18) 참봉(參奉)으로 이제 막 입번(入番)하였다. 그 아들 용준(龍俊)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명현록(名賢錄)》 개간(開刊)하는 일을 의논하였다. 이어 명례동(明禮洞, 지금의 명동(明洞))의 참판(參判) 박종정(朴宗正)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오니 공서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공서(公瑞)와 송 판서의 집에 들어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에 공서는 그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가고, 나는 주인집으로 나오니 옹포(甕浦)의 송격(宋格)이 내일 아침에 내려간다고 하므로 가서(家書)를 써서 부쳤다. ○食前往貞洞 李碩士家, 暫話而來。 食後與聿之往龍洞 李參奉家, 則參奉 景華, 以順康園 參奉, 才入番矣。 只與其子龍俊暫敍後, 仍議《名賢錄》開刊事, 仍往明禮洞 朴參判 宗正家, 暫話而來, 則公瑞來待矣。 暫話後, 與公瑞入宋判書家, 移時談話後, 公瑞往其所住處, 余則出來主人家, 則甕浦 宋格, 明朝下去云, 故修付家書。 순강원(順康園) 선조의 후궁으로 원종(元宗)의 생모인 인빈(仁嬪) 김씨(金氏)의 무덤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에 있다. 영조 대에 마련된 궁원제(宮園制)에 입각해 영조 31년 순강원의 명칭을 얻었다. 《光海君日記 5年 10月 29日》 《英祖實錄 31年 6月 23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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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밥을 먹은 뒤, 일행과 대묘동(大廟洞)20)으로 가서 공서(公瑞)을 불러 종묘 문밖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원록(祠院錄)》을 다시 부탁할 생각으로 그길로 예조의 당직 부서로 가니 아전 배광옥(裵光玉)은 마침 출타하였고, 아전 안인성(安寅成)은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다. 그래서 다른 아전과 상의해보니, 배광옥이 없어 《사원록(祠院錄)》의 소재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食後, 與同行往大廟洞, 要公瑞暫話於宗廟門外。 以《祠院錄》更付之意, 仍往禮曹直府, 則裵吏光玉適出他, 安吏寅成昨年身故云。 故與他吏相議, 則裵吏不在, 不知《祠院錄》之在, 故還來主人家。 대묘동(大廟洞) 서울 종로구 훈정동ㆍ묘동ㆍ봉익동ㆍ종로3가ㆍ종로4가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대묘인 종묘가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대묫골ㆍ대뭇골ㆍ대묘동ㆍ묘동'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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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먼저 출발하여 소사(素沙)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성환(成歡)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천안(天安) 삼거리(三巨里)에 이르러 해남(海南) 최진욱(崔震煜)을 만나 함께 머물렀다. 90리를 갔다. 先發抵素沙朝飯, 抵成歡中火。 抵天安三巨里, 逢海南 崔震煜同留。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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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일찍 출발하여 용계(龍溪)75)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곡성(谷城) 읍내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남원 자생(者省)76)의 원산(圓山) 필흥(弼興) 집에 들어가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早發, 抵龍溪朝飯, 抵谷城邑內療飢。 入南原者省圓山弼興家留宿。 行七十里。 용계(龍溪)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근처이다. 자생(者省)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근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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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새벽에 출발하여 금강(錦江)을 건너려는데, 하늘이 아직 밝지 않아 달빛이 희미하고 듬성듬성 별빛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사공을 불러 금강을 건너와 판치(板峙)에서 아침을 먹었다. 초포(草浦)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올목(兀木)에 이르러 묵었다. 90리를 갔다. 曉發越錦江, 天未曉而月色依微, 疏星錯落。 呼船工渡來, 而至板峙朝飯。 至草浦中火, 至兀木留宿。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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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아침을 먹기 전에 백운동(白雲洞)에 사는 주서(注書) 이인필(李寅弼) 숙질(叔侄)에게 갔다가 주인집으로 나왔다. 낮에 행장을 꾸려 김노(金奴)를 보내면서 집에 보낼 편지를 써서 부쳤다. 오후에 동행과 문내(門內)에 들어가서 나는 정동(貞洞)의 이 석사(李碩士, 이희(李))집에 갔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가 술과 떡을 사서 권하니 매우 감사하였다. 이어 주인집으로 나왔다. ○朝前往白雲洞 李注書 寅弼叔侄, 出來主人家。 午間治送金奴, 修付家書。 午後與同行入門內, 余則往貞洞 李碩士家。 而仍與之相話, 買酒餠以勸, 多感多感。 仍爲出來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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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가랑비가 내렸다. 정오 무렵에 길가에 나가 요기한 다음, 나는 차동(車洞)에 들어갔다. 잠시 쉬고 나서 서소문(西小門)으로 들어가 관정동(館井洞)의 우 참봉(禹參奉) 집에 갔더니 참봉이 시골에서 막 들어왔다고 하므로 함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대(永大)의 집이 좁은 탓에 이곳으로 옮겨와 머물겠다고 말하였더니 참봉 또한 그리하라 답해 주었다. 유달부(柳達夫)와 정 진사(丁進士)의 서간을 전하고 영대(永大)의 집으로 나왔다. ○微雨。 午間出去路邊療飢, 余則入車洞。 暫憩後, 入西小門, 往館井洞 禹參奉家, 則參奉自鄕俄纔入來云, 故與暫話, 以永大家陜隘之致, 移留此處之意言及, 則參奉亦以答之矣。 傳柳達夫 丁進士書答, 而出來永大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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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사미정(四美亭)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광천(廣川)74)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귀정(歸亭)에 들러 잠시 외종 형수를 보고, 대초정(大抄亭)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早發, 抵四美亭朝飯。 抵廣川療飢。 入歸亭暫見外從嫂, 抵大抄亭留宿。 行七十里。 광천(廣川)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광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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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밥을 먹은 뒤 송상오를 조문하고 출발하였다. 만마동(萬馬洞)을 지나면서 다음과 같이 절구 한 구절을 읊었다.만마동 산골에 나뭇잎 떨어지는 가을(萬馬關山落木秋)기암괴석은 길가에 우뚝우뚝 솟아있네(奇岩怪石路頭頭)무성한 신록은 단풍 든 계절만 못하니(繁陰不若丹楓節)누가 나보다 먼저 이 누정을 읊었을까(先我何人詠此樓)정자동(亭子洞)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부내(府內)의 전성철(全聖哲)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저녁참에 북문 밖으로 가서 송약수(宋若洙) 씨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는 길에 그 아우 송민수(宋民洙) 씨 집에 들렀다. 그와 함께 주인집으로 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갔다. ○食後, 吊宋象五而發。 過萬馬洞, 吟一絶曰: "萬馬關山落木秋, 奇岩怪石路頭頭。 繁陰不若丹楓節, 先我何人詠此樓。" 抵亭子洞午飯。 抵府內全聖哲家留宿。 行六十里。 夕間, 往北門外, 見宋若洙氏暫話。 來路入其弟民洙氏家。 與之偕來主人家, 暫話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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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새벽에 출발하여 여산 읍내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삼례(參禮)128)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물녘 전주부(全州府) 서쪽의 전성철(全聖哲) 집에 이르렀다. ○曉發, 抵礪山邑內朝飯。 抵參禮午飯。 暮抵府西全聖哲家。 삼례(參禮)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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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여 신안서원(新安書院)130)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슬치(瑟峙)131)에 이르러 떡을 사서 요기를 하였다. 두치(斗峙)132)를 넘어 평당(坪塘)에 들러 잠시 필동(弼東) 일가붙이를 보고 저물녘에 국평의 하서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90리를 갔다. ○曉發, 抵新院朝飯。 抵瑟峙賣餠療飢。 越斗峙, 入坪塘, 暫見弼東宗人。 暮抵菊坪夏瑞家留宿。 行九十里。 신안서원(新安書院)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리에 있는 서원이다. 선조 21년(1588)에 주희와 한호겸(韓好謙)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슬치(瑟峙)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과 완주군 상관면의 경계가 되는 고개이다. 두치(斗峙) 전라북도 임실과 오수를 잇는 고개로 '말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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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일찍 밥을 먹고 길을 나서 영정(咏亭)에 이르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3) 그 모습이 너무 가련해서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즉시 길을 돌려 지신천변(智申川邊)에 이르러 언갑(彦甲)을 만나 길에서 옷 보따리를 전해 주었다. 채찍을 재촉하여 용계(龍溪)4)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나니 해가 이미 저물었다. 동막(東幕)마을5) 어귀에서 최장선(崔長善)과 박성헌(朴成憲)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채찍을 재촉하여 역동(驛洞)에 이르니 이미 해가 지고 어스름할 때였는데, 마구간이 없었기 때문에 어둠을 무릅쓰고 곡성(谷城)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60리를 갔다. 早飯登程, 至咏亭暫話, 而見其景象, 極爲可憐, 寧不忍見。 卽爲回程, 至智申川邊, 逢彦甲, 路中傳給其衣褓。 促鞭至龍溪中火, 日已夕矣。 至東幕村前, 逢崔長善、朴成憲, 立談後, 促鞭至驛洞, 已黃昏時分, 而無馬廐, 故冒昏至谷城邑內留宿。 是日行六十里。 영정(咏亭)에……나누었는데 영정은 영귀정(詠歸亭)으로 순천시 주암면의 영귀마을에 있다. 이곳에 사매(舍妹)가 살고 있었는데 당시 온 가족이 병을 앓아 고통 받고 있어 이에 대한 이야기를 사매와 나누며 마음 아파한 것 같다. 용계(龍溪)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용계리이다. 동막(東幕)마을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서계리를 말한다. 서계리는 읍의 제일 위쪽에 있다하여 동막(東幕) 마을이라 하였는데, 서쪽에 계곡이 있다하여 서계리로 바뀌었다. 동막은 마을 서편의 형제봉(兄弟峰)이 동쪽을 향하여 장막을 쳐 놓은 듯한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지형이 형제장군이 군막을 치고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유래 되었다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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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날이 채 밝기 전에 길을 나서 정천(定川)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였다. 비가 올 것 같아 걱정스럽다. 효포(孝浦)11) 어귀에서 흥양(興陽) 김형갑(金衡甲)을 만났다. 서울에서 온 자들이 지나가는 편에 구두로 소식을 전했다. 채찍을 재촉하여 금강(錦江)을 건너 신점(新店)에서 묵었다. 이날 100리를 갔다. 未明登程, 至定川秣馬, 而似有雨意, 可悶。 至孝浦前路, 逢興陽 金衡甲。 自京來者, 口傳消息於過去便。 促鞭渡錦江留新店。 是日行百里。 효포(孝浦)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신기동이다. 신라 경덕왕 때의 효자 향덕(向德)이 살았던 마을이 계룡면 신기리인데, '효포' 또는 '효가리(孝家理)'라고 불리게 된 것은 향덕이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그의 허벅지 살을 베어낸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이곳 효포에서부터 남쪽으로 널티, 경천역, 노성으로 이르는 길은 전통시대의 역제가 폐기될 즈음에 발발한 동학농민전쟁을 치른 역사적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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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파루(破漏)8)를 칠 때에 길을 나서 삼례(參禮)에 이르니 동쪽이 비로소 밝아 왔다. 능측(陵側)9)까지 50리를 가서 말에게 꼴을 먹였다. 은진(恩津)10)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100리를 갔다. 破漏時登程, 至參禮, 東方始明。 至陵側五十里秣馬。 至恩津留宿。 是日行百里。 파루(破漏) 오경 삼점(五更三點)에 종각의 종을 33번 치던 일을 말한다. 이 쇠북을 치고 나면 도성(都城) 안의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능측(陵側) 삼례와 여산의 중간지점인 것으로 보아 위에서 말한 능은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백제시대 무덤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으로 보인다. 이 능은 마한(馬韓)의 무강왕(武康王)과 그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며, 백제 무왕(武王)과 선화비(善花妃)의 능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은진(恩津)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옛 지명으로, 은진이라는 지명은 덕은(德恩)과 시진(市津)의 두 현이 합쳐서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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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동틀 무렵에 출발하여 전주(全州) 부내(府內) 주인집에 이르니 관가의 내행(內行)이 행차하여 머무르고 있었다. 또 성주(城主)가 막 들어왔기 때문에 매우 시끌벅적하였다. 그래서 남문(南門) 밖 강진(康津) 집 여막(旅幕)으로 나가 잠시 말에게 꼴을 먹이고 아침을 먹었다. 노고암(老古巖)까지 70리를 가서 말에게 꼴을 먹이고 오후에 임실(任實)의 굴암(窟巖)까지 30리를 돌아가서 묵었다. 開東發行, 至全州府內主人家, 則官家內行次來留。 且城主方入來, 故極爲紛聒, 故出南門外康津家旅幕, 暫爲秣馬朝飯。 至老古巖七十里秣馬, 午後至任實 窟巖回三十里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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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벗들과 또 화류(花柳)의 봄 경치를 구경하려고 육각치(六角峙)에서 필운대(弼雲臺)43)를 소요하다가 절구 한 수를 읊었다.지난번 진경 찾아 이 산에 올랐을 때(向日尋眞上此山)향기로운 꽃 여린 가지 사이로 어우러졌는데(香葩交暎嫰枝間)지금 오니 꽃은 떨어지고 유람객도 얼마 없어(今來花落遊人少)때에 따라 골짜기도 잠시 한가롭기만 하여라(溪壑隨時亦暫閑)옥류동(玉流洞)44)으로 갔다가 필운대(弼雲臺)로 돌아와서 요기를 한 뒤에 석양 무렵 내려왔다. 이날 밤에 상당한 비가 내렸다. 봄이 된 뒤에 처음으로 내린 비라서 자못 보리를 파종하는 기쁨이 있었는데, 많이 내리지 않고 금세 갠 것이 흠이었다. 與諸友, 又作花柳之行, 自六角峙, 倘佯於弼雲臺, 吟一絶, "向日尋眞上此山, 香葩交暎嫰枝間。 今來花落遊人少, 溪壑隨時亦暫閑。" 因往玉流洞, 還來弼雲臺, 療飢後, 乘夕陽而來。 是夜頗雨, 盖入春後初雨也, 頗有長麥播種之喜, 而不多卽晴, 可欠。 필운대(弼雲臺) 경복궁 서쪽 인왕산의 필운동에 있던 명승지로,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필운동 배화여고 뒤뜰에 있는 높은 암벽이다. 필운대 근처에 특히 살구나무가 많아서 예로부터 도성의 시인묵객들이 봄에 찾는 명소 중 하나였다고 한다. 옥류동(玉流洞) 종로구 옥인동・통인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글자 그대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도성지도>에는 인왕산 아래의 수원처로 표시되어 있었다. 옥동・옥골이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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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공생(孔生) 두 사람이 찾아와서 만나고 석아(錫兒)의 편지를 전하고 갔다. 오후부터 눈이 오다가 비가 내렸다. 병세가 점점 위중해지는데 간병(看病)할 사람이 없으니, 비록 하루아침에 죽게 되더라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천노(千奴)는 애초에 내려 보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스스로 편하고자 하는 말로 인하여 내려 보낸 것이었는데, 이처럼 뜻밖의 위급한 병이 생겼으니, 이를 장차 어찌한단 말인가. 孔生兩人來見, 傳兒書而去。 自午後雪作而雨下。 病勢漸重, 看病無人, 雖一朝奄然, 何以知之? 千奴初不欲下送矣。 因人自便之言下送, 而有此意外危病, 此將奈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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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닭이 울 때부터 눈이 내려 한 자가 넘게 쌓이더니, 아침을 먹을 때가 되어서야 눈이 그쳤다. 이에 아침을 먹은 다음 오수(獒樹)의 천변(川邊)에 이르러 우연히 도화(道化)의 김이록(金履祿)을 만나서 동행하였다. 사곡(蛇谷)에 이르렀는데 말을 먹이는 도구가 없으므로 증산(甑山)의 주막 사내를 찾아갔으나, 모두 다 아파 누워서는 계속 거절하였다. 결국 사망당점(事亡唐店)까지 70리를 가서 간신히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를 하였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채찍을 재촉하여 주포(周浦)까지 10리를 가서 묵었다. 自鷄鳴時雪下深尺雪, 朝飯時始霽, 故因爲朝飯, 至獒樹川邊, 偶逢道化 金生 履祿, 因與同行。 至蛇谷, 無秣馬之具, 前進甑山幕漢, 盡皆痛臥, 揮却不已, 故遂至事亡唐店七十里, 艱辛秣馬療飢。 日已夕矣, 催鞭至周浦十里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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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낙안(樂安) 백현(栢峴)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오는 길에 매곡(梅谷)에 들어가 창문(昌文) 종내(宗內)를 조문한 다음 어렵사리 광주(光州) 댁(宅)에 왔다. 곡강상사(曲江上舍)는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간천 상사(艮川上舍)가 종일토록 오지 않으니 괴이한 일이다. 往樂安 栢峴中火。 來路入梅谷, 吊昌文宗內。 艱來光州宅, 曲江上舍已來待, 而艮川上舍, 終日不來, 可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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