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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일찍 출발하여 미정지천(尾亭地川)에 이르렀다. 내를 건너 청주(淸州)의 조천원(朝天院)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전의(全義) 읍내 시장 근처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가 덕평(德平)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천안 신은(新恩)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90리를 갔다. 早發至尾亭地川越川, 抵淸州 朝天院酒幕朝飯。 至全義邑內市邊暫憩, 抵德平酒幕, 中火秣馬。 天安 新恩酒幕留宿。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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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새벽에 출발하여 화성(華城)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이침(泥砧)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진위(振威, 경기도 평택 옛 지명)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曉發抵華城朝飯, 抵泥砧中火, 抵振威留宿。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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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여독(旅毒) 때문에 일찍 출발하지 못했다. 오후에 차동(車洞) 민 석사(閔碩士)에게 갔으나 날이 밝을 무렵 마침 고향으로 떠나서 그 아들만 잠시 만나 보았다. 아래 사랑 주인(舍廊主人)인 치항(致恒)이 마침 있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서소문(西小門)으로 들어갔다. 정동(貞洞)의 석사 이희(李) 집에 갔으나 주인이 부재중이어서 만나지 못하고, 찾아온 율지와 확교(確橋)14)에 들어가 진사 유영도(柳榮度)의 집에 방문하였더니, 어서각동(御書閣洞)으로 이사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의 집으로 찾아가 달부(達夫)씨의 서간(書簡)을 전달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以路憊不得早發。 午後往車洞 閔碩士, 被明適作鄕行, 只有其子暫見。 往下舍廊主人致恒果在, 暫話後。 入西小門。 往貞洞 李碩士 家, 主人不在故不見, 而來訪與聿之入確橋, 訪柳進士 榮度家, 則移居于御書閣洞云, 故尋往其家, 傳達夫氏書簡, 還來主人家。 확교(確橋)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과 신창동(새창골) 북쪽에 있던 다리이다. 1966년 발간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이 고을에 학다리가 있어 마을 이름이 학교동(鶴橋洞)이 되었다고 하며, 일명 확교(確橋)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이 일대를 학다리골이라 하였는데, 성리학자 퇴계 이황이 살았던 곳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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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아침을 먹은 뒤에 동행과 서소문(西小門)으로 들어가 확교(確橋)에 갔다. 나는 송 판서(宋判書)의 집에 들러 판서(判書) 부자(父子)를 만나고 종각 쪽으로 돌아오니 동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 대묘동(大廟洞)으로 가서 보성(寶城)의 종인(宗人) 귀환(龜煥)을 방문하였으나 마침 부재중이어서 통지하고, 지난해에 머물렀던 파정동(波井洞)의 기보(基甫) 집에 오니 주인은 일단 무고하였다. 한참 있으니 귀환이 마침 나와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올라온 연유를 이야기하였다. 그 먼저 서울에 도착하여 일의 기미를 살펴보았는데, 서울의 여론이 혹은 가하고 혹은 불가하다는 논의가 있으니 끝에 가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길로 술집으로 나와 술을 사 마시다가 나는 남동(南洞)에 가서 잠시 마전(麻田) 김민계(金民桂)를 만나고 주인집으로 왔다. ○食後與同行入西小門往礭橋。 余則入宋判書家, 見判書父子, 還來于鍾閣邊, 則同行留待矣。 仍往大廟洞, 訪寶城宗人龜煥, 適不在故通奇, 而來于前年所住波井洞 基甫家, 主人姑無故矣。 移時龜煥果爲出來, 與之相話, 仍說上來之由, 則渠則先到京中, 探知事機, 則京中物議, 或可或不可之論, 未知末稍之如何云。 仍爲出來酒家, 沽酒相飲, 余則往南洞, 暫見金麻田 民桂, 而來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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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아들이 김노(金奴)를 데리고 나왔다. 재동(齋洞)72) 귀산(龜山)73)의 제족들에게 모이라고 통지하여, 개인 문중의 제수는 대략 형편에 맞게 정하고, 8냥 7전으로 여장을 꾸리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김노를 율지에게 보냈다. 내일 추동(楸洞)에서 만날 생각으로 그대로 유숙하였다. ○家兒率金奴出來。 通奇于齋洞ㆍ龜山諸族來會, 私門中祭駄, 略略的定, 以八兩七戔錢 治行爲言。 故送金奴於聿之。 以明日相會于楸洞之意, 而仍留。 재동(齋洞)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에 있는 재동서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산 송씨 파족을 말한다. 재동파는 고흥 대서의 귀산파, 두원의 금성파, 동강의 대강파가 있다. 귀산(龜山)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 귀산 마을이다. 여산 송씨 재동 귀산파의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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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상삼례(上參禮)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여산(礪山) 읍내에 이르러 신동(新洞)의 백교귀(伯交歸)를 만나 그대로 점심을 먹었다. 작천(鵲川)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早發抵上參禮朝飯, 抵礪山邑內, 見新洞 伯交歸, 仍爲中火。 抵鵲川留宿。 行七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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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아침을 먹은 뒤에 북문 밖의 송약수(宋若洙) 집에 갔으나, 마침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고 왔다. 영문(營門)으로 가서 순상(巡相)을 보고자 하였는데, 마두(馬頭)가 통자(通刺)하지 못해서 만나지 못하고 주인의 집으로 돌아오니, 간촌(看村) 박상현(朴祥炫)과 옹포(甕浦) 송격(宋格)이 도착하였다. 오후에 출발하여 삼례 천변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30리를 갔다. -밥값으로 두 냥을 냈다.- ○食後往北門外宋若洙家, 則適出他不見而來, 往營門欲見巡相矣。 以馬頭不得通刺, 不見而還來主人家, 則看村 朴祥炫及甕浦 宋格來到。 午後而發, 抵參禮川邊酒幕留宿。 行三十里【飯錢二兩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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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一日 날이 밝기 전에 길을 나섰다. 곡성(谷城) 읍내(邑內)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불로치(不老峙)까지 50리를 가서 말에게 꼴을 먹였다. 영귀정(咏歸亭)에 이르러 먼저 소식을 물어보려고 온 집안이 병을 앓고 있는 상황이지만 사매(舍妹)를 나오라고 했다. 잠시 울타리 밖에서 보니 오래지 않아 굶어 죽을 것이 분명한 데다 어린아이도 병이 들어 낫지 않고 있으니, 그 광경이 근심스럽고 답답하였다. 천평(泉坪)의 소식을 물었는데, 그도 지금 병을 앓고 있다고 하므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곧장 낙수(洛水)에 이르니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 이날 100리를 갔다. 未明登程。 至谷城邑內朝飯, 至不老峙五十里秣馬。 至咏歸亭, 先問消息, 擧家方痛, 而舍妹要出。 暫見於籬外, 則非久餓死丁寧, 而且兒少沒痛未蘇, 景色愁阻矣。 問泉坪消息, 則亦方痛云, 故不爲入去, 直驅至洛水, 日已黑矣。 是日行百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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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새벽에 길을 나서 중진원(中津院)6)에 이르렀는데 수해가 크게 일어나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증산(甑山) 주막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점심을 먹었다. 올 여름의 물난리 때문에 길이 몹시 험악해져서 주포(周浦)에서 오수(獒樹)7)까지 종일토록 걸어갔는데, 길 좌우로 보이는 수해의 참상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농사 작황도 좋지 않아 흉년을 면치 못한 것처럼 보이니 백성들의 사정이 가련하였다. 임실(任實)의 야당리(野塘里)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80리를 갔다. 曉頭登程, 至中津院, 水瘴大發, 咫尺不辨矣。 至甑山酒幕, 秣馬中火。 以今夏水破之故, 道路極惡, 自周浦終日徒步, 至獒樹, 則沿路水破之狀不可言。 且農形不登, 所見未免歉歲, 民事可憐。 至任實 野塘留宿。 是日行八十里。 중진원(中津院) 중진(中津)은 순자진(鶉子津)으로, 곡성군 북쪽으로 10리 되는 남원(南原)경계의 대로(大路)에 있었고, 순자원(鶉子院)은 순자진(鶉子津) 언덕 위에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섬진강을 건널 수 있게 설치된 중진원교(中津院橋)가 있었다. 오수(獒樹)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으로, 과거 역참이 있던 지역이다. 역참일 당시 오수역은 남원, 구례, 광양, 순천 등 호남 지역의 역참을 관할하던 대형 역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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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날이 채 밝기 전에 길을 나서 노고소회(奴古所回)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전주(全州) 부내(府內)의 주인집에 이르니 주인은 마마로 손녀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온 집안이 경황이 없으므로 서문 밖 여점에 가서 머물기로 했다. 가는 길에 우연히 경성(京城)의 이 석사(李碩士)를 만나 동행하기로 약속하고 이에 그가 머무는 객점으로 가서 묵었다. 집안에 보낼 편지를 집주인에게 써서 주고, 인편을 기다려 부치게 하였다. 이날 80리를 갔다. 未明登程, 至奴古所回, 中火秣馬。 至全州府內主人家, 主人以其孫女之逝於西神, 擧家無況, 故往留於西門外旅店。 盖於中路偶逢京城 李碩士, 相約同行, 故往尋其所留店留宿, 而書給家書於主人, 使之待便付送。 是日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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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鑄洞)18)에 가서 종친들을 만나고 왔다. 朝飯後, 往鑄洞, 見僉宗而來。 주동(鑄洞) 서울특별시 중구 남학동・예장동・주자동・충무로2가・충무로3가・필동1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이곳에 조선시대에 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어 내던 주자소(鑄字所)가 있었기 때문에 주잣골이라 하고, 한자명으로 주자동이라 하였으며 줄여서 鑄洞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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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다시 예조로 가서 곡절을 상세히 묻고, 다시 논의가 있었는가를 재차 물었으나, "없었습니다."라고 답하기에 곧바로 돌아왔다. 종인(宗人) 사수(士洙)가 아침 일찍 와서 보고 갔다. 밤에 비가 왔다. 밥을 먹은 뒤에 복룡(卜龍)이 비로소 와서, "내일 내려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復往禮曹, 詳問委折, 復問有更議云否, 答曰: "無之。" 故卽爲回來。 宗人士洙, 早朝來見而去。 夜雨。 食後卜龍始來云, "以明日下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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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卄四日 날이 밝을 무렵 길을 나서 동점(銅店)에서 아침을 먹었다. 우산(牛山)에 들어가 안형중(安衡仲) 형을 조문하고는 이어 점심을 먹었다. 대개 성경이 먼저 이곳에 도착하여 상중인 종매(從妹) 임가(林家) 집에 머물렀기 때문에 함께 길을 나섰다. 낙수(洛水)에 이르러 화옥 숙질과 헤어지고, 천평(泉坪)으로 들어가 묵었다. 平明登程, 至銅店朝飯。 入牛山吊安兄衡仲, 因爲中火。 盖誠卿先來到此, 留其從妹林哀家, 故同與登程。 至洛水, 與華玉叔姪分路, 入泉坪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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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卄五日 궁호(弓湖)에 이르자 화옥(華玉)이 와서 머물며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지신(智信)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곡성(谷城)의 동막(東幕)에 이르러 묵었다. 至弓湖, 華玉來留留待矣。 暫話後, 至智信中火, 至谷城 東幕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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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이른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김이록(金履祿)이 찾아와서 만나고 갔다. 아침을 먹은 뒤에 창동(倉洞)에 가서 박 참의(朴參議)를 만나고, 이어 주동(鑄洞)에 가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죽동(竹洞)으로 가서 사수(士壽)를 만나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명동(明洞)의 순창(淳昌) 집에 들렀으나, 진사(進士)가 없었으므로 곧장 나와서 잠깐 곽교(廓橋)의 주서(注書) 집에 들렀다가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가 왔다. 早朝未起, 金履祿來見而去。 食後往倉洞見朴參議, 因往鑄洞, 移時相話, 轉向竹洞見士壽。 來路入明洞 淳昌家, 則進士不在, 故卽爲出來, 暫入廓橋 注書家, 小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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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一日 아침을 먹은 뒤에 송현(松峴)의 안 교리(安校理) 집에 갔더니 화옥(華玉)이 벌써 도착해 있었는데, 전에 이미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어 안현(安峴)에 가서 예판(禮判)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다시 호동(壺洞)으로 향하여 박 상인(朴喪人)을 만나고, 지나는 길에 진 판관(陳判官)을 잠깐 만났다. 또 유동(楡洞)에 가서 석사(碩士) 유자일(兪子一)을 만나고, 조점(趙店)에 갔더니 화옥도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함께 요기하고 왔다. 食後往松峴 安校理家, 則華玉已來到, 盖前已有約會話矣。 因往安峴見禮判, 小話後, 轉向壺洞見朴喪人, 歷路暫見陳判官。 又往楡洞見兪碩士 子一, 又往趙店, 則華玉亦來待矣。 因與療飢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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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닭이 울 때부터 비가 내렸다. 돌아가고픈 마음이 화살과 같은데, 비가 다시 내리니 고민스러움을 말할 수가 없다. 늦은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서 추동(楸洞)까지 40리를 가서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하였다. 사교(四橋)에 이르러 묵었다. 自鷄鳴時雨作。 歸心如矢, 而雨意更作, 悶不可言。 向晩因朝飯登程, 至楸洞四十里, 秣馬療飢, 至四橋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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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참찬(參贊) 선조에게 선시(宣諡)한다는 기별을 듣고 곡강상사(曲江上舍) 척형(戚兄)과 간천상사(艮川上舍)와 날을 약속하여 동행하기로 했는데, 두 상사는 뒤처지고 나는 아침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섰다. 양강(楊江)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용전(龍田) 나주댁에서 머물렀다. 聞參贊先祖宣諡之奇, 與曲江上舍戚兄及艮川上舍, 約日同行, 而兩上舍則落後, 余則朝飯後登程。 至楊江中火, 留龍田 羅州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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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아침을 먹은 뒤에 경모궁(景慕宮)의 조가(趙哥) 집에 갔더니, 조한(趙汗)과 아한(兒汗)이 모두 부재중이었다. 그래서 반촌(泮村)의 재광(再光) 집에 가서 화옥(華玉)을 보러 가자고 하였더니, 화옥(華玉)은 어제 미음(渼陰)45)에 갔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현(梨峴) 내사거리(內四渠里)에 와서 흥양 지방군의 주인을 찾아갔는데, 수표교(水摽橋)46) 앞인 것을 알지 못하였다. 우연히 이리(李吏)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죽동(竹洞)으로 왔는데, 사수(士壽)가 부재중이어서 잠시 쉬었다가 주동(鑄洞)으로 왔다. 치회(穉會)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에 차동(車洞)으로 왔다. 食後往景慕宮 趙哥家, 則趙汗及兒汗皆不在, 故往泮村 再光家, 要見華玉爲言, 則華玉昨日出去渼陰云, 故來梨峴內四渠里, 尋訪興陽鄕軍主人, 而不知水摽橋頭。 偶逢李吏, 暫話來竹洞, 則士壽不在, 故暫憩後來鑄洞。 暫與穉會相話, 夕間來車洞。 미음(渼陰) 강동구 암사동의 광나루 동쪽 한강이 꺾여 흐르는 곳을 가리키는 이름으로서, 노수포, 독포라고도 하였다. 수표교(水標橋) 수표교는 현재 장충공원 내에 있다. 원래는 청계천에 있었던 것을 1959년 청계천 복개하면서 현재 위치로 옮겨 왔다. 세종 23년(1441년) 물 높이를 재는 '수표(水標)'를 다리 옆에 세워 홍수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세종 때 나무로 만든 수표는 썩는 문제가 발생하여 성종 때 돌로 만들어 다시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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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일찍 일어나 경기 감영의 중영(中營)에 가서 주인령(主人令)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 아침을 먹은 뒤에 건(健)·순(順), 여러 젊은이들과 함께 남산(南山)에 가서 꽃을 구경하고 왔다. 早起往京畿監營 中營, 與主人令, 移時談話而來。 食後與健、順及諸年少, 同往南山, 看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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