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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일찍 청리(靑梨)로 가서 한 마리의 말을 구하여 값을 치르기로 약속하고서 도로 차동(車洞)으로 돌아왔다. 말 값 20동(銅)을 변통하여 오는 길에 황장계(黃長溪)와 백현(柏峴)의 김선달(金先達)을 만나 잠시 길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즉시 말을 사서 출발하여 오산(烏山)까지 40리를 가서 묵었다. 早往靑梨, 求得一馬, 決價相約, 還爲入去車洞。 推移二十銅馬價, 而來路逢黃長溪及栢峴 金先達, 暫與相話於路次。 卽爲買馬發行, 至烏山四十里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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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아침을 먹은 뒤에 건(健)·순(順) 형제, 욱여(旭汝)와 함께 송현(松峴)으로 갔다. 이어 육각치(六角峙)의 필운대(弼雲臺)에 올라 종일토록 꽃을 감상하였는데, 저녁 무렵에 송현(松峴)에서 차를 보내왔다. 그러므로 실컷 마시고 배불리 먹고 왔다. 食後與健、順兄弟旭汝往松峴。 因上六角峙 弼雲臺, 終日賞花, 而夕間茶饋自松峴來, 故醉飽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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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온화하였다. 이른 아침에 영감(令監)을 만나고 나와서 아침밥을 먹은 뒤에 주동(注洞)으로 가서 종일토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는 길에 다시 칠패(七牌)로 가서 윤 생원(尹生員)을 만나 한참 동안 정담을 나누고 왔다. 溫和。 早朝見令監, 因爲出來, 朝飯後往注洞, 終日談話, 而來路轉往七牌見尹生員, 移時穩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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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일찌감치 가서 황해 감사를 여점(旅店)에서 만났다. 이어서 근동(芹洞)에 가서 이 흥양(李興陽)과 이 석사(李碩士)를 만나 보았다. 또 칠패(七牌)에 가서 윤 생원(尹生員)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춘백(春伯)이 말을 도로 물렸기 때문에 천노(千奴)로 하여금 청배(靑排)로 견송(牽送)하게 하였다. 早往見海伯於旅店, 因往芹洞見李興陽及李碩士。 又往七牌見尹生員, ▣談而來。 春伯者還退馬匹, 故使千奴牽送靑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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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일찍 주동(注洞)에 갔으나 보지 못하고 오는 길에 청배의 상원 집에 들렀다. 마침 흥양(興陽) 사람이 왔기에 집에 보낼 편지를 부치고 왔다. 早往注洞不見, 而回路入靑排 尙元家。 興陽之人適來, 自其處付家書而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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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이른 아침에 조카를 윤랑(尹郞)에게 보내어 말을 전하고 오게 하였다. 창동(倉洞)에 천노(千奴)를 보내어 박 령(朴令)에게 전갈(傳喝)하게 하였는데, 박 령(朴令)이 입궐하였다고 하였다. 아침을 먹은 뒤에 팔선(八仙)과 김 객(金客)이 모두 와서 모이고, 오득(五得) 형제도 모두 찾아왔다.길을 나서 강가에 이르자 사나운 바람이 크게 일어났다. 간신히 강을 건너 과천(果川)에 이르렀을 때 바람이 그치지 않았고 자못 한기(寒氣)까지 있었는데 채찍을 재촉하여 갈산(葛山)까지 40리를 갔다. 요기를 한 다음 미륵당(彌勒堂)까지 20리를 가서 유숙하였는데, 연시(延諡)하는 날짜를 앞당겨 정한 뜻을 김 객(金客)에게 써 주고 먼저 가게 하였다. 그러나 발병[足病]으로 서둘러 갈 수 없어서 권 서방(權書房)을 갈산(葛山)에 먼저 보내어 어제 떠난 이·공 두 사람 편에 급히 가서 편지를 전하게 하였다. 早朝送姪客於尹郞, 使傳馬而來。 送千奴於倉洞, 傳喝朴令, 而朴令入闕云。 食後八仙及金客皆來會, 五得兄弟皆來見。 登程至江頭, 盲風大作。 艱辛渡江, 至果川, 風吹不止, 頗有寒氣, 促鞭至葛山四十里。 療飢至彌勒堂二十里留宿, 而以延諡日進定之意, 書給金客, 使之先去云矣。 以足病不得急往, 故已於葛山先送權書房, 急往傳書於昨去李、孔兩人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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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밤사이 편안히 잠을 이루고, 또 별다른 증세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해가 뜨자 길을 나서 화성(華城)에 이르러 요기를 한 다음, 오산(烏山)까지 50리를 가서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점심을 먹었다. 소사(素沙)까지 40리를 가서 묵었다. 夜間安寢, 又無別症之作, 可幸。 日出登程, 至華城療飢, 至烏山五十里, 秣馬中火。 至素沙四十里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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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日 이찬(而贊)을 중주원(中周院)에서 기다리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에 나루 어귀에 이르렀다. 한낮[日中]에 이찬을 기다리다가 절구 한 수를 지었다.동행이 좋은 줄 알지 못했는데 不識同行好지금 뒤처져 보니 알겠어라 今因落後知강변을 서성이다 생각하노니 徘徊江上意어제 아침의 기약 잊었을까 걱정이네 恐負昨朝期오후에 도착하였으므로 바로 길을 나서 곡성(谷城) 유치(峙)에 이르러 묵었다. 50리를 갔다. 與而贊約以中周院留待, 故到津頭。 日中待而贊, 吟一絶曰: "不識同行好, 今因落後知。 徘徊江上意, 恐負昨朝期。" 午後來到, 故仍爲發程, 抵谷城 峙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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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날씨가 조금 풀렸다. 식후에 청파(靑坡) 상원(尙元)의 집에 가서 흥양(興陽)의 제태(祭駄, 제수(祭需)를 실은 짐바리) 하인으로 온 자를 보고자 하였는데 없다고 하니, 괴이하다. 감기가 가는 곳마다 크게 기승을 부리니 중도에 아파 눕는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 한성부(漢城府)2)에서 초보(抄報, 뽑아 보고함)하였다. 오부(五部)3)에서 죽은 자가 4만 8000여 명이라고 하는데, 남쪽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어 답답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 日氣稍解。 食後往靑坡 尙元家, 欲見興陽祭駄下人來者而無之云, 可怪。 感氣到處熾盛, 無奈中路痛臥而然耶? 今日自漢城府抄報, 死亡於五部者, 乃爲四萬八千餘名云, 而南中消息, 寂然無聞, 悶菀不可言。 한성부(漢城府) 조선왕조 수도의 행정구역 또는 조선왕조 수도를 관할하는 관청의 명칭이다. 오부(五部) 조선 시대 한성부에 설치한 중(中)·동(東)·남(南)·서(西)·북(北)의 부의 종5품 아문으로 오부 관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위법 사항과 교량·도로·반화(頒火, 매년 병조에서 써 오던 불씨를 버리고 새로운 불씨를 만들던 의식)·금화(禁火)·가대타량(家垈打量, 집터 측량),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검시하는 일 등을 관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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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온화하고 청명하다. 오늘은 바로 기일(忌日)이다. 마음이 안 좋은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하다. 아침을 먹은 뒤에 경욱(景旭)과 냉동(冷洞)의 김 찰방(金察訪)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노닐다가 월암(月巖)에 가서 심 도정(沈都正)을 만나 한참 동안 머물며 이야기하고 왔다. 溫和淸明。 今日則卽忌日也。 心懷之惡, 不堪言不堪言。 食後與景旭, 往冷洞 金察訪家暫話, 聽琴而遊, 因往月巖見沈都正, 移時留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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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또 벗들과 종루(鐘樓)로 가서 길에서 등죽(燈竹)과 등불을 파는 등의 여러 가지 놀이를 보고 왔다. 이날 밤에 비가 왔다. 사희(士希)가 서울에 들어온 뒤부터 시종 건강이 좋지 않고, 병세가 심했다 덜했다12)를 반복하며 말끔히 낫지를 않았다. 돌아갈 기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어 매우 염려스러웠는데 어제부터 점차 회복될 가망이 있으니 기쁘고 다행스럽다. 又與諸友往鍾樓, 路上見燈竹及賣燈雜戱而來。 是夜雨。 士希自入京後, 終始不健, 苦歇異常, 病不快差。 歸期漸迫, 深以爲慮, 自昨日現有漸蘇之望, 可喜。 병이 심했다 덜했다 원문의 고헐(苦歇)은 병을 오래 앓는 중에 병이 더했다 덜했다 하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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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아침 전에 잠깐 비가 내리다가 곧바로 개었다. 아침을 먹은 후에 비가 내리더니 종일토록 부슬비가 내렸다. 저녁에 비가 조금 덜해지자 성안에서는 조금씩 등을 달았다. 집 아이들은 등고치(登高峙)에 올라 관등(觀燈)하고, 나는 경욱(景旭)과 사랑(舍廊)에 머물렀다. 朝前乍雨旋晴。 食後雨作, 終日霏微。 夕間少歇, 城中稍稍懸燈, 家兒輩上登高峙觀燈, 余則與景旭留舍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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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이른 아침에 대묘동(大廟洞)의 공서가 거처하는 곳으로 갔으나 공서가 부재중이었다. 또 구례(求禮) 이지문(李志文)을 만나 돈 문제를 상의하려고 했는데, 이지문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홀로 직방(直房)에 가서 정장(呈狀) 문자(文字)를 부치고 내일 다시 오기로 약속하였다. 난동(蘭洞)의 승지 이광문(李光文)의 집에 갔으나 도승지가 입궐하여서 만나지 못했다. 낙동(駱洞)75)의 참판 광정(光貞) 집에 가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서재실기(西齋實記)》 한권을 주고, 그에게 큰 형인 승지 댁에 전달해 달라고 말한 뒤에 그의 종씨(從氏)인 보덕(輔德) 광헌(光憲)의 집으로 내려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주인집으로 나왔다. 우 참봉 집에 들어가니 주인은 출타하였고, 정 진사와 함께 머물렀다. 早朝往大廟洞 公瑞所住處, 則公瑞不在。 且見求禮 李志文相議錢事矣, 李亦不在, 不得已獨往直房, 付呈狀文字, 而明日更來爲約, 而往蘭洞 李承旨 光文家, 則以都承旨入闕, 不得相面。 往駱洞 參判 光貞家, 敍話後, 仍納《西齋實記》一卷, 使之傳致於其伯氏 承旨宅之意言及後, 下來其從氏輔德 光憲家。 暫話後, 以日暮之致, 不得出來主人家。 入禹參奉家, 則主人出他, 與丁進士同留。 낙동(駱洞)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3가・충무로1가・명동2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타락(우유)을 파는 집이 있었으므로 타락골이라고 했으며, 한자명으로 타락동(駝駱洞, 駝酪洞), 줄여서 낙동(駱洞)이라 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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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일찍 출발하여 용계(龍溪)51)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귀정(歸亭, 영귀정을 말함)에 이르러 잠시 외종수(外從嫂, 외삼촌의 며느리)를 만난 다음, 그길로 출발하여 광천(廣川)52)에 이르러서 점심을 먹었다. 낙안(樂安) 사미정(四美亭)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早發至龍溪朝飯。 抵歸亭暫見外從嫂, 仍發抵廣川中火。 抵樂安 四美亭留宿。 行八十里。 용계(龍溪)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근처의 마을 이름이다. 광천(廣川)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광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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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임실(任實) 종인(宗人)이 끝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출발하여 은진(恩津)의 기촌(機村)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연산읍(連山邑) 상개태(上開泰) 주막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점심을 먹었다. 주막 문밖을 나서자마자 마침 한 소년을 만났는데, 살고 있는 곳을 물었더니 회덕(懷德) 죽림(竹林)에 사는 익환(益煥) 송치응(宋致應)이라고 하였다. 이에 이야기를 나누며 개태령(開泰嶺) 윗주막을 넘어 대추와 떡을 사서 먹고, 두거리(豆巨里) 저잣거리에 이르러 약주(藥酒)를 사서 마셨다. 송 석사(碩士)는 일이 있어 시장 인근에서 조금 뒤처지고 나 홀로 가다가 저녁에 공주(公州) 유성(油城) 시장 근처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100리를 갔다. 밤에 절구 한 수를 읊었다.유성의 객점에 홀로 머물러 있자니(獨宿油城店)마음을 끝내 진정시킬 수가 없구나(心懷竟未收)어찌하여 밤 깊도록 비는 내리는지(如何深夜雨)객지살이 나의 근심 더해만 가네(添我客中愁)밤새 비가 내려 흐릿하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그치지 않았다.6) 任實宗人, 終不來到, 故不得已早發, 至恩津 機村酒幕朝飯。 抵連山邑上開泰酒幕, 秣馬中火。 纔出幕們外, 適逢一少年, 問其所居, 則懷德 竹林居宋益煥 致應也。 仍爲談話, 越開泰嶺上酒幕, 賣棗餠相喫, 抵豆巨里市邊, 賣藥酒相飮。 宋碩士有事市邊落後, 余則獨行, 暮抵公州 油城市邊酒幕留宿。 行百里。 夜吟一絶曰: "獨宿油城店, 心懷竟未收。 如何深夜雨, 添我客中愁。" 夜雨晦晦, 朝起視之, 雨不止。 밤새……않았다 내용상 29일의 기록이 아니라 다음날 아침의 기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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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일찍 출발하여 돌치고개 아래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직산(稷山) 삼거리(三巨里)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성환(成歡)에 이르러 김노(金奴)가 짐이 무거운 탓에 그대로 뒤처지기에 동행과 짐을 나누어 소사(素沙)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밥값으로 돈 한 냥을 내었다.- 내일은 왕고(王考) 제삿날인데, 집에 별 탈이 없이 편안히 지내는지 모르겠다. 서글픈 마음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早發抵乭峙嶺下店朝飯, 抵稷山三巨里中火。 抵成歡 金奴以卜重之致, 仍爲落後, 故分卜於同行, 抵素沙留宿。 行八十里【飯錢一兩出】。 明日卽王考諱日也, 未知家中無故安行耶。 心懷之愴然, 何可盡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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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지지대 고개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과천(果川) 읍내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남태령(南泰嶺)을 넘고 강을 건너 청파동(靑波洞) 박영대(朴永大)의 집에 이르렀다. 영대는 입번(入番)하였는데, 별탈이 없었다. ○抵遲遲峴朝飯, 抵果川邑內中火。 越南泰嶺越江, 至靑波洞 永大家, 則永大入番, 而別無故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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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출발하여 과역(過驛)68)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율지는 마륜(馬輪)69)으로 들어가고, 나는 침교(沈橋)70)로 들어가 경우(敬祐) 씨 집에서 유숙하였다. ○發程, 抵過驛中火。 聿之入馬輪, 余則入沈橋, 留敬祐氏家。 과역(過驛) 전라남도 고흥군 과역면이다. 마륜(馬輪)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이다. 침교(沈橋) 전라남도 고흥군 남양면 침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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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경우 씨와 함께 사교(四橋)로 가니 문중 형편 때문에 올해는 거듭 여장을 꾸리는 것이 안 된다고 하여 고민이었다. 그대로 유숙하였다. 율지는 먼저 낙안 동림(同林)71)으로 갔다. ○與敬祐氏同往四橋, 則門中物情以如今之年, 再次治行不可云云, 悶悶。 仍留。 聿之先去樂安同林。 동림(同林)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신기리 동림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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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새벽에 출발하여 화성(華城)에 이르니 막 동이 텄다. 대황교(大皇橋)121)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오매(烏梅)122)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진위(振威) 읍내를 지나 소동(蘇洞)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曉發, 抵華城, 則始開東矣。 抵大皇橋朝飯, 抵烏梅午飯。 過振威邑內, 抵蘇洞留宿。 行七十里。 대황교(大皇橋) 수원시 권선구 대황교동을 말한다. 대황교는 융릉(隆陵)으로 들어가는 다리인데 대황교 근처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오매(烏梅) 경기도 수원시 오산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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