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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아침에 나와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애초 일찌감치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궂은 날씨 탓에 그대로 아침을 먹었다. 종일 비가 그치지 않았다. 오랜 가뭄 끝에 이렇게 단비가 내리니 매우 기쁘고 다행이다. ○朝出, 來主人家。 初以早發爲定矣, 以雨戱之致, 仍朝飯。 終日雨不止。 久旱之餘, 得此好雨, 忻幸忻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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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문적의 수정(修正) 때문에 주인집에 남아있었다. 오후에 정동(貞洞)21)에 갔는데 이 석사가 없었다. 다만 그의 아우 이훈(李壎)하고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니, 석사 이혜길(李惠吉)이 혼자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이혜길이 집으로 가자고 청하기에 그와 함께 가서 그대로 유숙하였다. ○以文蹟之修正留主人家。 午後往貞洞, 李碩士不在。 只與其弟壎, 暫話而來, 則李碩士惠吉專訪來待矣。 夕飯後, 惠吉請往其家, 故與之偕往, 仍留。 정동(貞洞)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이 현재 정동 4번지에 있던 데서 '정릉동'이라 하였던 것을 줄여 정동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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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밥은 안채에서 음식을 내와서 몹시 고마웠다. 오후에 일행과 영추문(迎秋門)22) 안으로 가서 궐문 밖을 지나, 그길로 유동(油洞)23)으로 갔다. 도중에 일행을 남겨두고, 나는 조문하기 위해 아전 안인성의 집을 찾아갔는데 아전 안인성의 아들이 출타하였으므로 만나지 못하였다. 일행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와서, 함께 종각 근처로 왔다. 마침 공서을 만나 그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朝飯自內間出饋, 感荷感荷。 午後與同行往秋門內, 過闕門外, 仍向油洞。 留同行於中路, 余則吊問次, 尋安吏寅成家, 則安吏之子出他, 故不見。 而還同行所留處, 與之偕來鍾閣邊。 適逢公瑞, 與之暫話而來。 영추문(迎秋門) 경복궁의 서문(西門)이며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문무백관들이 주로 출입했던 문이다. 유동(油洞)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1가에 있던 마을로, 기름을 파는 기름전이 있었으므로 기름전골이라 하고, 이를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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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밥을 먹은 뒤 송화(宋燁) 군찬(君贊), 송낙의(宋樂義) 내직(乃直)과 나와 광암(廣岩) 객점에서 하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있으니 하서가 과연 왔길래 술을 사서 함께 마시고 군찬과 내직 두 송씨와 작별하였다. 하서와 동행하여 첩치(箑峙)를 넘어 굴암(屈岩) 아래 객점에 이르러 작별하였다. 도마교(逃馬橋)81) 주변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방동(芳洞)82)의 송렴(宋濂)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이 마을에 들어온 것은 송상오(宋象五), 송재환(宋在煥) 두 사람의 유고에 조문하기 위해서였다. 30리를 갔다. ○食後, 與宋燁君贊、宋樂義乃直出來, 廣岩店待夏瑞來矣。 移時夏瑞果來, 沽酒相飮, 與君贊乃直兩宋作別。 與夏瑞同行, 越箑峙, 抵屈岩下店作別。 抵逃馬橋邊午飯。 抵芳洞宋濂家留宿。 入此洞者, 吊宋象五、宋在煥兩人之故也。 行三十里。 도마교(逃馬橋) 임실군 임실읍에서 내려온 시내에 놓인 나무다리로, 말이 건너다녔다 하여 도마교(道馬橋)라고 했다. 원문 '逃'는 저본의 오류로 보이나 확실치 않다. 방동(芳洞)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방수리 방동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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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주인이 극구 만류하여 그대로 머물렀다. 낮에 김노가 다리 통증으로 아파서 드러누워 있으니 몹시 걱정되었다. 거처 앞에는 시내가, 뒤에는 소나무가 있어 아주 고즈넉하였다. 절구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개울물 소리는 밤새도록 울리고(澗有通宵響)둥글고 깊다라니 진종일 그늘 드네(圓深盡日陰)거처하는 곳이 시내 저자 주변이건만(攸居城市邊)혹 속인이 찾아오는 건 싫어하네(倘嫌俗人尋) ○以主人之堅挽, 仍留。 午間, 金奴以脚病痛臥, 悶悶。 所居前溪後松甚幽寂。 吟一絶曰: "澗有通宵響, 圓深盡日陰。 攸居城市邊, 倘嫌俗人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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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밥을 먹은 뒤 길을 떠날 무렵, 마침 암자 아래를 지나는 상선(商船)이 있어서 어디로 가는지 물으니 공주로 간다고 하였다. 뱃사공을 불러 급히 배에 올랐다. 배를 띄운 지 몇 리 못 가서, 바람과 일기가 순조롭지 못해 도로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올랐다. 선덕(先德) 객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삼거리 객점을 지나 발치(發峙)100)를 넘어 이인(里仁)101) 객점에 이르렀다. 잠시 쉬고 나서 우금치(于今峙)102)를 넘어 공주 화산교(花山橋)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食後, 離發之際, 適有商船之過菴下, 故問其所向, 則往于公州云也。 招津夫急登船。 浮江數里, 以風日之不順, 還下船登陸。 抵先德店午飯。 歷三巨里店, 越發峙, 抵里仁店。 暫憩後, 越于今峙, 抵公州花山橋店留宿。 行七十里。 발치(發峙) 충청북도 충주시의 직동과 살미면 재오개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옛날 삼남대로로 통하는 대로의 첫 고개였다고 한다. 이인(里仁)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이다. 우금치(于今峙) 우금치(牛禁峙)를 말한다. 공주 분지의 남쪽 끝에 낮은 안부를 이루어 형성된 고개로 높이가 약 100m이며, 부여에서 공주 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다. 동학운동 때 관군과 싸워 동학 농민군 10만 명이 전사한 역사적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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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밥을 먹은 뒤 류 서방, 안(安) 서방과 동행하여 주로치(周魯峙)를 넘었다. 벌교에 이르니 율지가 과연 일찍 와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요기하고 나서 출발하였는데 날이 이미 저물었다. 율지는 곧바로 마륜으로 들어가고 나는 안 서방, 류 서방 두 친구와 함께 용전(龍田)으로 들어가 유숙하였다. 저녁을 먹은 뒤 증손자가 가교(柯橋) 댁으로 올라왔다. 내가 내려온다는 기별을 듣고 오늘 나온 것이다. ○食後, 與柳書房、安書房作伴, 越周魯峙。 抵筏橋, 則聿之果如早來, 尙今企待矣。 療飢後, 登程。 日已暮矣。 聿之直入馬輪, 余則與安、柳兩友, 入龍田留。 夕食後, 曾兒自柯橋宅上來。 聞6)吾下來之奇, 今日出來矣。 聞 저본은 '問'으로 되어있으나 문맥상 '聞'으로 보고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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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나는 밥을 먹기 전에 사교로 내려가 먼저 문옥(文玉)을 만나고, 가교 댁으로 내려와 아침을 먹고 출발하였다. 구룡정(九龍亭)에 들러 잠시 경수(敬叟) 씨를 만났다. 탄포(炭浦)135) 객점을 나오니 율지가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 박상현을 만나 동행하여 과역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문등(門登)에 이르러 율지와 박상현은 곧바로 간촌(看村)으로 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집안의 사당에 공경히 배알하였다. 안으로 들어가 손자를 보니 그 기쁨이 한량없었다. 그러나 산모가 유종(乳腫, 젖멍울)이 점점 더해지는 듯하니 이 또한 걱정되는 부분이다. ○余則食前下去四橋先見文玉, 下來柯橋宅, 朝飯發程。 入九龍亭, 暫見敬叟氏。 出炭浦店, 則聿之早來待矣。 又逢朴祥顯與之同行, 抵過驛午飯。 抵門登, 聿之與朴祥顯直向看村, 余則還家, 祗謁家廟。 入內見孫兒, 其喜不可量。 而産母似有乳腫之漸, 此亦悶慮處也。 탄포(炭浦)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탄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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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새벽에 일어나 일찍 불을 지펴 밥을 먹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으나 惠吉은 오지 않았다. 해가 점점 높아지도록 끝내 오지 않았다. 저녁 먹을 때까지 끝내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몹시 괴로웠다. 주인 영대(永大) 또한 같이 가자고 끊임없이 재촉해댔다. 그래서 너무 늦어지고 나서 어쩔 수 없이 출발하였다. 안주인에게 정동의 이 생원이 꼭 올 테니, 서둘러 쫓아오면 수청거리(需廳巨里)에서 기다렸다가 출발하겠다고 말해두었다.수소거리(需所巨里)에 이르러 한참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그길로 나루를 건너 승방점(勝房店)에 이르러 기다렸으나 끝내 오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서 사근천(肆覲川)120)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으나 끝내 오지 않아 몹시 괴이쩍었다. 50리를 갔다. ○曉起, 早炊仍食。 平明以待而不來。 日漸高而終不來。 至於晩食時, 終無影形。 可悶可悶。 主人永大亦爲同行, 而摧促不已。 故最晩後。 不得已發程。 而言於內主人貞洞李生員必來, 急急追來, 則待之需廳巨里而發。 抵需所巨里, 移時待之, 而不來。 仍爲越津, 抵勝房店待之, 而終不來。 徐徐緩步, 抵肆覲川店留宿, 而終不來。 可怪可怪。 行五十里。 사근천(肆覲川) 경기도 안양시에 있으며 '사근내'라고도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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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일찍 출발하여 사교(沙橋)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수월점(水越店)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판치(板峙)를 넘어 효포(孝浦)에 채 못가서, 마침 성찬(聖燦)과 이 석사(李碩士)를 만났다. 이들은 신파(新波)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로 도중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에 고대도(高大道)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밥값으로 한 냥을 냈다.- ○早發抵沙橋朝飯, 抵水越店中火。 越板峙, 未及孝浦, 適逢聖燦及李碩士。 自新波下來之人, 路中暫話, 暮抵高大道留宿。 行八十里【飯錢一兩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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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록 同行錄 정효영 율지 계사년(1773) 본관 영광박상현 사원 기축년(1769) 본관 창원송석년 수이 무술년(1778) 본관 여산송 격 내원 신유년(1801) 본관 남양송 호 여옥 을묘년(1795) 본관 남양박종운 병오년(1786) 본관 창원신희록 자윤 을축년(1805) 본관 고령조성령 무진년(1808) -임피(臨陂) 서면(西面)67) 상동촌(尙洞村)에 거주-박영규 여경 계해년(1803) 본관 밀양 丁孝榮聿之, 癸巳, 靈光人。朴祥顯士元, 己丑, 昌原人。宋錫年壽而, 戊戌, 礪山人。宋 格 乃元, 辛酉, 南陽人。宋 琥汝玉, 乙卯, 南陽人。朴宗運, 丙午, 昌原人。申希祿子胤, 乙丑, 高靈人。趙成靈, 戊辰, 人。 【居臨陂西面尙洞村。】朴榮珪汝卿, 癸亥, 密陽人。 서면(西面)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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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올여름 4월에 《성원현보(姓苑賢譜)》 발간 관련 일로 친구들과 상경하였다. 다만 단자(單子, 명단)만 받고, 예물(例物)은 받지 않아, 가을을 기약하고 돌아왔다. 올해 곡식이 비록 익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서 보는 것이 좋겠기에 율지(聿之) 형과 동행하였다. 是年之夏四月, 以《姓苑賢譜》事, 與諸益上京。 只納單子, 不納例物, 故以秋爲期而來矣。 今年穡事, 雖云不登, 不得已往觀爲可, 故與聿之兄作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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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어제 혜길이 이른 아침에 나온다고 하였으므로 아침밥을 일찍 짓게 해서 일찍이 먹고 기다렸지만, 해가 이미 정오가 되었는데도 아직 오지 않아 몹시 괴로웠다. 오전에 직접 정동으로 가 보니, 혜길이 밤새 갑자기 몸에 병이 나서 출발할 수가 없었다며 내일은 일찍 출발하자고 약속하고 나왔다. 오후에 혜길이 나와서 말하기를 "내일 새벽에 나오면, 이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이라 이 집을 찾기 어려울 듯해서 그저 집을 알아둘 생각으로 나왔습니다."라고 하였다. 내일 새벽 일찍이 나올 생각이라며 누누이 말하고 갔다. ○昨日惠吉早朝出來云。 故朝飯使之早作早食以待, 而日已午矣, 而尙不出來, 苦悶苦悶。 午前躬往貞洞, 則惠吉夜間, 猝發身病不得發程, 明日則早發爲言。 故相約而出來矣。 午後惠吉出來曰: "明曉出來, 此村人未起之前, 尋此家似難, 故專爲知家之意出來。"云。 明曉早早出來之意, 累累言托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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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아들을 데리고 추동으로 오니 율지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동(壽洞)에서 아들을 돌려보내고, 나는 그길로 출발하여 정문등(旌門登)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50리를 갔다. ○率家兒出來楸洞, 則聿之來待矣。 送家兒于壽洞, 余則仍爲登程, 抵旌門登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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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새벽에 출발하여 덕평(德坪)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차령을 넘어 광정(廣亭)에 이르렀다. 상철(相喆)의 집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로원(慕露院) 아래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85리를 갔다. ○曉發, 抵德坪朝飯。 越車嶺。 抵廣亭入相喆家暫話。 抵慕露院下店留宿。 行八十五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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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새벽에 출발하여 금강(錦江)을 건너니 막 동이 터 올랐다. 널티[板峙]125)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노성(魯城)126) 읍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사교(沙橋)127)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90리를 갔다. ○曉發, 越錦江, 則始開東矣。 抵板峙朝飯。 抵魯城邑午飯。 抵沙橋留宿。 行九十里。 널티[板峙]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야트막한 고개이다. 노성(魯城)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이다. 사교(沙橋)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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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새벽녘에 아침을 먹고 낙안(樂安) 읍내에 이르러 약노(若老) 씨를 만난 다음 곧바로 길을 나서 유점(鍮店)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천평(泉坪)2)에 이르니 이미 해가 저물었다. 이날 70리를 갔다. 曉頭朝飯, 至樂安邑內, 見若老氏, 卽爲上程, 至鍮店酒幕中火。 至泉坪, 已黃昏矣。 是日行七十里。 천평(泉坪)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있는 천평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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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맑았다. 아침 전에 군배(君培)와 윤급(允乃) 씨가 찾아와서 만났다. 아침을 먹은 뒤에는 덕철(德哲)도 왔다 갔다. 오후에 죽동(竹洞)에 이르러 묵었다. 晴。 朝前君培及允乃氏來見。 食後德哲亦來見而去。 午後至竹洞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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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아침을 먹은 뒤에 전동(磚洞)으로 갔으나, 이조 판서가 궐내로 들어가 또 만나지 못했다. 곧장 안현(安峴)에 가서 예조판서를 만나보고, 다시 예조로 갔는데 안리(安吏)를 만나지 못하여 곧바로 경모궁(景慕宮)으로 향했다. 사람을 시켜 화옥(華玉)을 오라고 하여 도포(道袍)로 갈아입도록 하고, 호동(壺洞)으로 가서 진 판관(陳判官)을 만났다. 또 호동(壺洞)으로 가서 박 곡성(朴谷城)에게 조문하였다. 또 죽동(竹洞)으로 향하였으나 사수를 만나지 못하고 왔다. 食後往磚洞, 則吏判入闕內又未見。 直往安峴見禮判, 轉往禮曹, 則不見安吏, 直向景慕宮。 使人要華玉, 換着服道袍, 往壺洞見陳判官。 又向壺洞, 吊朴谷城。 又向竹洞, 不遇士洙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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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또 입골(笠骨)을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내간(內間)과 영감(令監)이 모두 한사코 만류하였으나, 돌아가고픈 마음이 화살과 같았다. 또 흥양(興陽)의 내행(內行)이 출발하였기 때문에 함께 동행하고 싶어 낙안(樂安) 최가(崔哥)의 고마(雇馬)11)를 얻고 도화(道化, 고흥의 옛 지명)의 해의(海衣) 상인을 데려와 그에게 말을 몰게 하였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출발하여 강에 이르니 말이 야위고 병들어 앞으로 나가지를 않았다. 천 리 길을 갈 가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도로 들어오지 못하였고, 복가(卜家) 상원(尙元)의 집으로 내려가 차동(車洞)으로 들어갔더니 막 술상을 차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대로 묵었다. 又設笠骨, 故內間及令監皆强挽, 而以歸心之如矢。 且興陽內行離發, 故欲與同行, 得樂安 崔哥雇馬, 率道化海衣賈人, 使之驅馬。 作別發行至江, 則此馬瘦病不前, 萬無千里致身之慮, 故不得還爲入來, 下卜家尙元家, 入去車洞, 則方設盃盤矣。 遂因爲留宿。 고마(雇馬) 시골 관아(官衙)에서 민간으로부터 징발하여 쓰던 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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