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8년 처암(處菴) 최계성(崔繼成) 묘갈문(墓碣文)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崇禎紀元後三戊子 大提學徐命膺謹撰 崇禎紀元後三戊子 徐命膺 崔繼成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828년(순조 28)에 서명응이 작성한 처암선생 최계성의 묘갈문 병서의 초안 1828년(순조 28)에 서명응(徐命膺)이 처암(處菴) 최계성(崔繼成)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문(墓碣文) 병서(幷序)의 초안(草案)이다. 최계성의 자는 소선(紹先)이며, 처암은 그의 호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중종 초의 조정에서는 앞에서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이 도학을 창도하고, 뒤에서는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가 도를 실천해나가면서 많은 뛰어난 선비들이 영남과 호남에서 출현하였다. 전주최씨 문중에서도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호조참의(戶曹參議) 집현전제학(集賢殿提學)을 지낸 월당(月塘) 담(霮)은 아들 광지(匡之)를 낳았다. 집현전제학을 지낸 광지의 아들은 생명(生明)으로, 관직은 경시전직(京市殿直)을 지냈다. 그의 호는 옹암(甕菴)이다. 도덕이 심원하여 부안(扶安) 옹정사(甕井祠)에 배향되었다고 ?여지승람(輿地勝覺)?에 실려 있다. 생명은 수손(秀孫)을 낳았는데 진사(進士)에 들었으나 관직에는 오르지 않았고 호를 고궁당(固窮堂)이라고 하였다. 그는 학행으로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사당에 배향되었다. 고궁당의 전배(前配)는 사직(司直) 오백형(吳伯亨)의 딸 의인(宜人) 오씨(吳氏)이고, 후배(後配)는 사정(司正) 최효로(崔孝老)의 딸 의인 최씨(崔氏)이다. 고궁당은 후배(後配)와의 사이에서 아들 6명을 낳았다. 첫째는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사성을 지낸 순성(順成)이며, 둘째는 성균진사 처헌(處軒) 필성(弼成)이고, 셋째는 문과자 예문관검열 겸 춘추관사 극성(克成)이고, 넷째가 바로 처암이다, 그 다음이 생원 참봉 경성(竟成)이고, 다음으로 요절한 만성(晩成)이 있다. 그 중에서도 둘째 처헌과 넷째 처암은 우애가 매우 깊어서 중종과 명종대에 정려가 내려져 그 이름이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실려있다. 처암은 홍치(弘治) 무신년(1488) 정월에 태어나 가정(嘉靖) 병진년(1556)에 향년 69세로 사망하여 부안 석동산(席洞山)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