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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26일 二十六日 새벽에 바로 행상(行喪)48)하여 그대로 호행(護行)하였는데, 장지에 이르니 이조동(吏曹洞) 뒤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서남(西南)으로 끝없이 확 트여 있어 보통 사람의 안목과 식견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사시(巳時)에 하관(下棺)하고 그길로 유둔(油芚) 시장 근처로 가니, 내가 내려왔다는 기별을 듣고 노소(老少)의 문원(門員)들이 모두 와서 모여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서울에서 썼던 돈 100여 냥을 각파(各派)에 나누어 기록하였다.오후에 역소(役所)로 돌아와 제사를 지낸 뒤에 즉시 반혼(返魂)49)49) 반혼(返魂) : 장례 후에 신주를 모시고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오는 의례를 말한다. 이를 '반우(返虞)', '흉제(凶祭)'라고도 한다.하고 곧바로 초우(初虞)50)를 지냈다. 지정(池亭)에서 머물렀다. 曉卽行喪, 仍爲護行, 而及至葬所, 則吏曹洞後最高峯, 西南滉瀁無涯, 以凡眼姑未可知也。 巳時下棺, 仍行油屯市邊, 則老少門員, 聞余下來之奇皆來會, 相與敍話後, 分錄京中所用百餘兩錢於各派。 午後還來役所, 行祭後, 仍卽返魂, 卽行初虞, 留池亭。 행상(行喪) 시신을 상여에 실어서 산소로 나르는 일을 말한다. 초우(初虞) 산소(山所)에서 장례(葬禮)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혼령(魂靈)을 위안(慰安)하기 위해 장사 당일을 넘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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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아침 전에 길을 나서 치등(峙登)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은진(恩津) 삼거리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다음, 길을 나서 몇 리를 채 못 가서 앞에 큰 내를 만났다. 내를 건널 때에 김노(金奴)가 발을 헛디뎌 등에 짊어졌던 짐이 반이나 물에 떠내려가 버렸다. 가까스로 천변으로 나와 손으로 젖은 옷을 짜서 볕에 말리고 행낭(行囊)에 있던 남은 바지로 갈아입었으니, 그간의 실상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간신히 연산(連山) 중개태(中開泰)에 이르러서 묵었다. 50리를 갔다. 朝前發程, 抵峙登酒幕朝飯。 抵恩津三巨里中火, 仍爲發行, 未數里前當大川。 越川之時, 金奴失足, 背上負卜爲水半流。 艱出川邊, 笮手燎衣, 而換着行橐之留袴, 其間實狀, 不可盡詳。 艱抵連山 中開泰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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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일찍 출발하여 미태정(米太亭)에서 아침을 먹고, 벌교(筏橋)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백정자(柏亭子) 어귀에 이르러 동행과 헤어지고, 나는 사촌(社村)에 들어가 잠시 쉰 뒤에 사교(四橋)의 가교(柯橋) 댁에 들렀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재동(齋洞) 동면(東面)의 형님 장사지낸 일이 내일이라고 하므로 미옥(美玉)과 그길로 마륜(馬輪)에 갔다. 동편의 성윤(聖允) 집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재동 종가에 들어가 가묘에 배알하고, 궤연(几筵)에 절하고 곡한 뒤에 말할 수 없이 피곤하여 잠깐 눈을 붙였다. 早發至米太亭朝飯, 抵筏橋午飯。 抵柏亭子前, 與同行分路, 余則入社村, 暫憩後, 入四橋 柯橋宅。 敍話後, 言齋洞 東面兄主葬事明日云, 故與美玉, 仍往馬輪。 入東邊聖允家夕飯。 入齋洞宗家, 祗謁家廟, 拜哭几筵後, 困憊難狀, 暫爲接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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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一日 무안(茂安) 형님, 문대(文大)씨와 유둔(油芚) 시장 근처에 갔더니, 문중의 노소(老少) 몇몇 사람이 와서 모였는데, 사환(使喚, 잔심부름꾼)을 얻을 수가 없어 매우 걱정스러웠다. 마침 양리(楊里)의 석사 이계영(李啓榮)과 이순영(李淳榮) 종형제를 만났는데, 서울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달리 동행이 없어 적막하던 중에 이처럼 동향(同鄕)의 친지를 만났으니 다행이었다. 내일 동행하기로 약속한 뒤에 사교(四橋)로 돌아와서 머물렀다. 與茂安兄主及文大氏, 往油屯市邊, 則門中老少略干來會, 而使喚不得, 可悶可悶。 適逢楊里 李碩士、啓榮、淳榮從兄弟, 作京行之人, 別無同行寂寞之中, 得此同鄕親知之人, 可幸, 而以明日同行之意相約後, 還來四橋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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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아침에 북문 밖에 가서 송약수(宋若洙) 씨를 만난 다음, 그의 아우인 송민수(宋民洙) 네 작은집을 찾아 갔는데 외출하였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결국 가랑비 때문에 막혀서 그대로 머물렀다. ○朝前往北門外, 見宋若洙氏, 尋其弟民洙小家, 則出外故不見, 而還來主人家。 是日終爲微雨所阻仍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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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종일 비가 내려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답답하였다. 저녁을 먹을 때에 길손 한 명이 들어와서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바로 연산(連山)에 사는 이 석사(李碩士)인데 순찰사의 일가라고 하였으며, 그의 이름은 이종수(李宗洙)였다. 건넌방에 보은(報恩) 손님이 며칠을 머물러 있었는데, 밥을 먹은 뒤에 마침 우리가 머무는 곳에 왔다. 그래서 그 성명을 물어 보니 윤제대(尹濟大)라는 이름의 사람이었으며, 그의 나이를 물으니 나와 갑생(甲生)이었다. 그가 온 연유를 물었더니, 역천(櫟泉) 선생의 서원을 건립하는 일과 각 고을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규례대로 돈을 수합하는 일을 순상(巡相)에게 청탁하려고3) 이 주막에 와서 머물러 있다고 하였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묵었다. ○終日雨不得出外, 悶悶。 夕食時, 有一客入來, 故與之相話, 則乃連山居李碩士, 而與巡相一家云, 其名則宗洙矣。 越房有報恩客留連, 而食後適來吾留處, 故問其姓名, 則尹濟大爲名人, 問其年, 則與吾甲生。 問其來由, 則以櫟泉先生建院事, 各邑校院例付錢收合事, 稱念於巡相之意, 來留此幕云。 與之談話, 仍爲同宿。 청탁하려는 원문의 '칭념(稱念)'은 관원이 외방에 나아갈 적에 고관들이 사적으로 은근히 부탁하는 것을 말한다. 《성종실록(成宗實錄)》 9년 4월 8일 조에 "수령이 부임할 적에 그 지방 출신의 공경대부들이 그를 알든 모르든 간에 모두 술과 고기를 가지고 와서 전별하며 자기 노비들을 잘 봐 달라고 청하는 것이 상하 간에 풍속을 이루었는데, 이를 일러 칭념이라고 하였다.[凡守令之赴任也, 公卿大夫, 知與不知, 皆持酒肉而餞之, 請其奴婢完護, 上下成俗, 名之曰稱念.]"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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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진위(振威, 경기도 평택) 고을 앞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흥양의 지자(持者, 문서를 전하는 사람) 신우당(申于堂)이라는 녀석을 만나, 그편에 아들 편지를 받았다. 집을 떠난 후 처음으로 받은 편지였다. 집안에 별다른 우환이 없다고 하니 매우 다행이었다. 경기와 충청, 두 도는 가뭄이 극심해 보리농사를 흉작으로 치부한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런 데다 14일 내린 비는 겨우 쟁기질이나 할 정도의 비에 불과하여 모내기할 길이 만무하다고 하였다. 남쪽의 소식은 그간에 몇 차례 비가 내려 보리농사와 모내기는 윗지방보다는 그나마 넉넉하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소사(素沙)46)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직산(稷山) 삼거리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80리를 갔다. ○早朝發程, 抵振威邑前酒店朝飯。 逢興陽持者申亍堂上京之漢, 其便得見家兒書。 離家後初見書也。 家中別無憂故云, 幸幸。 京畿、忠淸兩道, 則旱乾太甚, 麥凶辦之已久。 而雖十四日雨, 不過犁雨, 萬無移秧之道云。 南中消息, 則間有數次雨, 麥事與移種, 稍贍於上道云, 可幸可幸。 抵素沙療飢。 抵稷山三巨里留宿。 行八十里。 소사(素沙)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이다. 삼남대로는 소사동 북쪽에서 당산을 넘어 소사원을 지나 소사교를 건넌 뒤 소사벌을 지나 곧장 남쪽으로 내려갔다. 소사원은 삼남대로 경기도 구간의 마지막 원으로 충청도에서 넘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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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길을 나서 과역(過驛)에 이르렀다. 잠시 쉬고 나서 구룡정(九龍亭)에 들어가니 남양(南陽)의 종친들이 마침 많이 모여 있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에 사교(四橋) 댁에 이르러 묵었다. ○九月二十五日。 發程抵過驛, 暫憩後, 入九龍亭, 則南陽諸宗, 適多會暫話, 暮抵四橋宅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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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길을 나서 천평(泉坪)1)에 이르러 묵었다. ○發程抵泉坪留宿。 천평(泉坪)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 천평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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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길을 나서 용계점(龍溪店)에서 점심을 먹었다. 곡성(谷城) 교촌(校村) 오익(吳熤)의 집에 이르러 묵었는데, 오익은 바로 천평(泉坪) 고창진(高昌鎭)의 사돈집이다. 고창진의 아들이 현재 처가에 있기 때문에 만나 보려고 왔다. 이날 날씨가 매우 좋지 않아서 몹시 괴로웠다. ○發程抵龍溪店中火。 抵谷城 校村 吳熤家留宿, 吳熤卽泉坪 高昌鎭査家也。 昌鎭之子, 方在其妻家, 故欲見而來矣。 是日風日極不佳, 苦哉苦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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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아침 전에 박영규(朴營奎)가 내려가므로 집에 편지를 써서 부쳤다. 밥을 먹기 전에 정동으로 가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밥을 먹은 뒤 회동으로 가서 송 장성을 만나, 그 삼촌 송익정(宋翼廷) 씨를 위문하고, 또 그 독자(獨子)의 상을 조문하였다. 송지순의 집으로 내려와 잠시 얘기를 하고 왔다. ○朝前, 朴營奎下去, 故修付家書。 食前, 往貞洞, 暫話而來。 食後, 往晦洞見宋長城, 慰其三寸翼廷氏, 又吊其獨子喪。 下來持淳家, 暫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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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이른 아침 일행과 동구안 약방으로 가서 구경하였는데, 소전(小殿, 세자(世子))이 경우궁(慶祐宮)28)의 하향 대제(夏享大祭)에 거동한 것이었다.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경주인(京主人)29) 집에 들러 주인을 만나서 흥양(興陽, 고흥)에 대해 상세히 듣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쉬었다가 용동으로 갔다. 저물녘에 돌아오니 정동의 이 석사가 찾아왔다고 하였다. ○早朝, 與同行往洞口內藥房觀光, 而小殿以慶祐宮夏享大祭擧動也。 觀光後, 來路入京主人家, 見主人, 詳聞興陽, 而還主人家。 少憩後, 往龍洞。 乘暮還, 則貞洞李碩士來訪云矣。 경우궁(慶祐宮)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있는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 박씨(1770~1822)의 사당이다. 1824년에 창건하였다. 경주인(京主人) 경저리(京邸吏)이다. 벼슬아치나 서민으로 서울에 머물러 지방 관청의 사무를 연락하고 대행하던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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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이른 새벽에 출발하였지만, 비 온 뒤라 길이 질척거려 가는 길이 몹시 힘겨웠다. 사근천(肆覲川)43)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지지현(遲遲峴)44)을 넘어 화성 북문 밖에 이르러 술을 사서 마셨다. 북문으로 들어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동장대(東將臺), 소라각(小羅閣), 창용문(蒼龍門)을 구경하였다. 큰길에서 남문 밖으로 나와 요기를 하였다. 오매(烏梅)45) 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80리를 갔다. ○曉頭發程, 而雨餘路泥, 行路甚艱。 抵肆覲川朝飯。 越遲遲峴, 抵華城北門外, 沽酒以飮。 入北門, 尋玩訪花隨柳亭、東將臺、小羅閣、蒼龍門。 自大道出南門外療飢。 抵烏梅留宿。 行八十里。 사근천(肆覲川) 경기도 안양시이다. 지지현(遲遲峴) '지지대고개'라고 불리는 곳이며 의왕에서 수원으로 넘어오는 길목이다. 지지현(遲遲峴)이라고 표기하는 곳이지만 본래는 '사근현(沙斤峴)' , '미륵현(彌勒峴)' 등으로 불렸다. 오매(烏梅) 경기도 수원시 오산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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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 전, 공서가 내려가는 김에 김노와 고부의 김 생원을 데리고 출발하였다. 밥을 먹은 뒤 10냥을 가지고 개간소로 가서 냈다. 오후에 나와서 창동의 배진환(裵珍煥)이 머무는 곳에 들렀더니, 배진환은 출타하였다. 남문으로 나와 차동(車洞)115)으로 가니 주인이 출타하였다. 이에 아랫사랑으로 가서 주인 민치명(閔致明)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도로 창동으로 왔는데 배진환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로 남문으로 나와 율지와 함께 주인집으로 왔다. ○朝前, 公瑞下去次, 率金奴與古阜金生員發程。 食後, 持十兩錢往刊所納錢。 午後出來, 歷訪倉洞裵珍煥所住處, 則裵也出他。 出南門, 往車洞, 則主人出他。 仍往下舍廊, 與主人閔致明暫話, 還來倉洞, 則裵也不來。 還出南門, 與聿之出來主人家。 차동(車洞) 중구 의주로1가ㆍ순화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수렛골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추모동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태어난 터에 비석을 세우고 그를 추모했던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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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여독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주인집에 머물렀다. 오후에 대로변으로 나가 요기를 하고, 그길로 관정동(冠井洞)으로 향하였다. 중도에 박상현(朴祥顯)과 공서(公瑞)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헤어져 돌아왔다. ○以路憊不能運動, 留主人家。 午後出去大路邊療飢。 仍向冠井洞矣。 中路逢朴祥顯及公瑞, 談話後, 相分還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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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였다. 공주 감영에 들어가 산성의 남문으로 들어가서 북문으로 나왔다. 곧바로 나루를 건너기 위해서였다. 모로원(慕露院)103)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광정(廣亭)104)에 이르러 나는 송상철(宋相哲) 집에 들어갔으나, 길보(吉甫)가 마침 집에 없어서 곧바로 나와 주막에서 점심을 먹었다. 차령(車嶺)105)에 못 미쳐서 중도에 길보를 만났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그길로 헤어졌다. 차령을 넘어 덕평(德坪)106)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曉發。 歷公州監營, 入山城南門出北門。 卽爲越津。 抵慕露院朝飯。 抵廣亭, 余則入宋相哲家, 吉甫適不在, 卽爲出來, 酒幕午飯。 未及車嶺, 逢吉甫於中路。 移時談話, 仍爲分袂。 越車嶺, 抵德坪留宿行。 六十里。 모로원(慕露院)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오인리 양달 마을에 있었다. 원래 명칭은 '모로원(毛老院)이다. 광정(廣亭)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이다. 차령(車嶺)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仁豊里)와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院德里)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덕평(德坪)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덕평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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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새벽에 출발하여 도토치(道吐峙) 아래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실음소(失音所)107)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칠원(柒原)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100리를 갔다. ○曉發, 抵道吐峙下店朝飯。 抵失音所午飯。 抵柒原留宿。 行百里。 실음소(失音所)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수헐리이다. 성환에서 국도와 갈라졌던 옛길이 국도와 다시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마을로 한자 이름은 수헐리인데,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수헐원(愁歇院)'으로 되어 있고, 속칭 '실음소(悉音所)'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곳은 동쪽으로 5리 가면 직산 고을이 나타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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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영변(寧邊)에 이르렀다. 철옹성(鉄甕城)63) 만노문(萬弩門)64)으로 들어가 곧바로 관문에 이르러 통자(通刺, 명함을 내놓고 면회를 청함)하고, 곧바로 대아(大衙)에 들어갔다. 그 성지(城池)를 보니, 참으로 천참(天塹, 천연의 요충지)의 관사(官舍)이며 웅장한 고을이었다. 早發行四十里, 抵寧邊。 入鉄瓮城萬弩門, 直至官門通刺, 卽入大衙。 觀其城池, 儘天塹官舍, 眞雄府也。 철옹성(鐵甕城) 고구려 때 처음 쌓은 본성·약산성과 조선 시대 때 쌓은 신성·북성 등 4개의 부분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구려 때 처음 쌓은 이래 조선 시대까지 서북 방위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였다. 네 방향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로, 항아리 입구와 같이 생긴 까닭에 철옹성(鐵甕城)이란 이름이 붙었다. 만노문(萬弩門) 영변 철옹성의 정문인 남문으로, 완월문, 고연주성문, 은주루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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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아침 전에 관아에서 사람과 말을 보내왔다. 아침을 먹은 뒤에 동대(東臺)72)에 올라 좌우를 두루 살펴보았다. 대개 장대(將臺)73)와 다름이 없었는데, 그 석벽이 우뚝 솟아 대를 깎아 만든 것 같으니 그 빼어난 경치를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다만 천지가 온통 눈밭이고 날씨마저 추워서 오래 앉아 끝까지 구경할 수가 없으니 안타까웠다. 마침내 천주사로 내려갔다가 그길로 돌아왔다. 朝前自衙中送人馬。 食後登東臺, 周觀左右, 盖與將臺無異, 而其石壁斗起, 奄成削臺, 其勝槩不可盡言, 而但雪滿乾坤, 日氣又寒, 不得久坐終遊, 可歎。 遂下天柱寺, 因爲下來。 동대(東臺) 영변의 약산(藥山)에 있다. 약산은 철옹성의 진산(鎭山)으로 주위의 다른 산에 비하여 가장 험준하며 경관이 뛰어난 승지(勝地)이다. 약산 제일봉을 중심으로 동쪽에 기암괴석이 층층이 쌓여 있는 가운데 5m가량 높은 곳에 주위가 20여m 정도의 반석이 마치 대(臺)와 같이 되어 약산동대(藥山東臺)라 이름한다.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이다. 장대(將臺) 산성이나 성곽 등의 동쪽에 만들어 놓은 대(臺)를 말한다. 산성에는 대체로 동서남북의 네 군데에 장대(將臺)가 있고, 장수들은 각 장대에서 자기 휘하의 군사들을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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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일찍 송현(松峴)29)으로 가서 안 교리(安校理)를 조문하고, 그길로 민 진사 집에 갔더니 부재중이었다. 그래서 예조에 갔는데 안리(安吏)는 궐에 들어가서 만나지 못했다. 다시 호동(壺洞)30)으로 갔으나 자직(子直)이 선산에 성묘를 가서 만나지 못하고, 그 아들만 보고서 돌아왔다. 다시 예조에 들어가 안리(安吏)를 만났는데, 다시 의논할 일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하니 가탄스럽다. 곧바로 나와 버렸다. 早往松峴, 吊安校理, 因往閔進士家, 則不在, 故往禮曹, 則安吏入闕不遇。 轉往壺洞則子直作楸行未遇, 只見其子, 因爲回來。 更入禮曹見安吏, 則決無更議之擧云, 可歎。 卽爲出來。 송현(松峴)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사와 건너편 종로문화원 사이에 있던 고개로서, 소나무가 울창하여 솔재라 하고 한자명으로 송현이라고 하였다. 호동(壺洞) 종로구 원남동에 있던 마을로서, 황참의다리 동북쪽에 있는데 모양이 호리병과 같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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