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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돈 문제가 급하므로 일찍 일어나 서둘러 묘동(廟洞)으로 찾아가서 공서(公瑞)와 상의하였더니, 말하기를, "구례(求禮) 이 석사(李碩士)와 상의해 보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통지하여 불러와 상세히 의논하였더니, 조금은 도모할 만한 형편이 되어 매우 다행이었다. 내일은 바로 선고의 기일인데, 집안에서 과연 별 탈이 없이 제사를 잘 지내런지 모르겠다.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워 묘동(廟洞)에서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동향(同鄕)의 여러 친구들과 함께 머물렀다. 早起以錢事之急, 促尋往廟洞, 與公瑞相議, 則云"以與求禮 李碩士相議"云, 故通奇請來詳議, 則稍有可圖之勢, 幸幸。 明日卽先考諱日, 而未知家中其果無故安行祀事耶。 心懷難抑, 自廟洞還來主人家, 與同鄕諸益同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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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밤에 비가 내렸다. 동틀 녘에 길을 나서 광정(廣亭)12)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공주(公州) 신점(新店)에서 말에게 꼴을 먹였다. 금강(錦江)의 물이 불어나 강을 건너기가 쉽지 않다고 하니, 매우 염려스럽다. 길을 재촉하여 나루터에 이르자 배가 이미 도착해 있어서 다행이었다. 즉시 배에 올라 중류(中流)에 이르자 풍랑이 크게 일어 파도가 배 안으로 들이쳤는데, 배가 썩고 낡아서 사방으로 물이 새니 그 두려운 상황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가까스로 강을 건넌 뒤 서둘러 채찍질하여 효포(孝浦)에 이르러 술을 사 마시고 요기를 하였다. 중도에 고읍(古邑)의 김 생원(金生員)을 만나 흥양(興陽)의 소식을 물었으나, 전혀 알지 못하니 한탄스럽다. 판치(板峙)에 이르러 해의 형세로는 정천(定川)까지 갈 수 있지만, 그곳은 시기(時氣)13) 때문에 정결한 집이 없다고 하므로 어쩔 수 없이 판치(板峙)에 머물렀다. 밤에 위 아랫집들을 보니 모두 등불을 밝히고 한밤중에 죽을 끓이고 있었는데, 모두 병을 앓고 있는 집들이었다. 이날 90리를 갔다. 夜雨。 平明發程, 至廣亭朝飯, 公州 新店秣馬。 聞錦江水漲, 渡江未易云, 極可慮也。 催行至津頭, 則船已到泊, 可幸。 卽卽上船, 至中流, 風浪大作, 波濤跳入船中, 而船且朽傷, 四邊水漏, 其悚惧之狀, 不可言。 艱辛利涉, 促鞭至孝浦, 沽酒療飢。 中路逢古邑 金生員, 問興陽消息, 則專然不知, 可歎。 至板峙, 日勢則能進定川, 而時氣無一家乾淨云, 故不得已, 留板峙矣。 夜見上下家, 皆明燈中夜煎粥, 俱是方痛之家也。 是日行九十里。 광정(廣亭)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정안면(正安面)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시기(時氣) 때에 따라 유행하는 상한이나 전염성 질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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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동틀 무렵에 출발하여 저교(楮橋)까지 70리를 가서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삼례(參禮)까지 60리를 가서 묵었다. 이날 밤에 각 관(官)의 내행(內行)이 이 점(店)에 와서 머물고 있었기에 부득이 피폐한 막사로 들어갔다. 방문(房門)에 지창(紙窓)이 없는데다가 행인(行人)들이 많이 들어와 어수선하고 근심스러운데 병을 앓고 있는 사람마저 들어오니 위태롭고 두려운 상황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開東發行, 至楮橋七十里, 朝飯秣馬, 至參禮六十里留宿。 是夜以各官內行, 來留此店, 不得已入疲廢之幕。 房無紙窓, 且行人多入, 紛擾憂惱中, 方痛者亦入, 危悚之狀, 何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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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주동(鑄洞)에 가서 송별하였는데, 용강(龍岡) 아객(衙客)42)이 내려오고 여러 사람들이 왔다. 往鑄洞送別, 龍岡衙客之下來, 諸人而來。 아객(衙客) 고을 수령을 찾아와 지방관아에 묵고 있는 손님을 이르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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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아침을 먹기 전에 청배(靑排) 상원(尙元)의 집에 갔는데, 흥양의 소식을 알고 싶어서 온 것이다. 밥을 먹은 뒤에 죽사(竹寺) 신종재(申宗才)가 지방군[鄕軍]으로 어제 들어와 가서(家書)를 전해 주었는데, 별 탈 없이 무사하다는 소식이어서 여러 달의 근심스럽던 마음을 조금 풀 수 있었다. 食前往靑排 尙元家, 欲探興陽消息而來矣。 食後竹寺 申宗才, 以鄕軍昨日入來, 來傳家書, 卽平信也, 稍解累月愁悶之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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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일찍 출발하여 삼례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부내(府內)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한여해(韓汝海)를 만나 영문(營門)에 소장을 올리는 일로 동행했던 사람을 몹시 기다렸다. 예조에 제출할 소장을 옷 보따리 속에 넣어 두었기 때문이었는데, 날이 저물 무렵 강문명(姜文明) 부자가 그의 일가 사람과 짐을 지고 왔다. 문서를 가지고 급히 남문(南門) 밖 주막에 가서 서장(書狀)의 초본을 썼으나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영(營)에 제출하지 못하고 서문(西門) 밖에 가서 강(姜)과 함께 머물렀다. 早發抵參禮朝飯, 入府內午飯。 逢韓汝海, 以呈營門事, 苦待同行者, 禮曹呈狀入衣褓中故也。 日暮時, 姜文明父子與其一家人, 負卜而來, 故持文書, 急往南門外酒幕書狀草, 而以日暮之致, 不得呈營, 往西門外, 與姜也同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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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일찍 출발하여 여해와 신곡(新谷)의 종인(宗人) 연규(延奎)씨의 집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여해가 나의 양식이 떨어졌다고 주인에게 말하였더니, 돈 한 냥을 내주었는데, 양식이 떨어진 끝이라 매우 감사하였다. 곧바로 출발하여 도마교(逃馬橋)42) 근처에 이르러서 여해와 작별하였다. 이어 곽평중(郭平仲), 평당(坪塘)의 종인 연영(延英)과 함께 굴암(屈岩)43)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평당(坪塘)44) 주막에 이르러 평중(平仲)과 작별하고 연영(延英)과 그 집에 들어가 묵었다. 50리를 갔다. 早發與汝海入新谷宗人延奎氏家朝飯。 汝海以吾絶粮之由言及主人, 則以一兩錢出給, 絶粮之餘, 多感多感。 卽發至逃馬橋邊, 與汝海作別。 仍與郭平仲 坪塘宗人延英, 至屈岩午飯。 抵坪塘酒幕, 與平仲作別, 與延英入其家留宿。 行五十里。 도마교(逃馬橋)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에서 내려온 시내에 놓인 나무다리로, 말이 건너다녔다 하여 도마교(道馬橋)라고 했다. 굴암(屈岩)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평당(坪塘)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앞들이 넓고 연못이 있다 하여 지형을 따라 들땡이라고 부르다가 한자로 '평당(坪塘)'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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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새벽밥을 먹고 동틀 무렵에 길을 떠났다. 순자강(蓴子江)을 건너 불노치(不老峙)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영귀정(咏歸亭) 마을 뒤편에 이르러 영귀정(咏歸亭)에 들어가려고 할 때 마침 길에서 송국필(宋國弼)을 만나 몇 마디 말을 나누다가 영귀정에 들어가지 않고 곧장 광청(廣淸)에 이르렀다. 마침 원동(院洞)의 이 석사(李碩士)를 만나 몇 마디 말을 나누다가 이 석사는 그의 집에 들어가고, 나는 공서(公瑞)와 주막(酒幕)에 머물렀다. 주막에는 먼저 들어온 염상(鹽商) 한 사람이 있었다. 함께 이 석사 집 앞에서 머물렀다. 90리를 갔다. 仍曉飯平明發程, 越蓴子江, 至不老峙午飯。 抵咏歸亭村後, 欲入歸亭之際, 適逢國弼於路次, 數語而不入歸亭, 直抵廣淸, 適逢院洞 李碩士數語, 而李碩士入其家。 余則與公瑞留酒幕。 幕則有先入鹽商一人矣。 同留李之家前也。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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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문대(文大) 씨, 미옥(美玉)과 유둔(油屯) 시장 근처에 갔더니 문중(門中)의 노소(老少)들이 내가 내려왔다는 기별을 듣고 몇몇이 모여 있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요기한 뒤에 짐을 지고 들어와 과역(過驛)에 이르자 날이 이미 저물었다. 밤을 틈타 집으로 돌아오니 밤은 이미 3경이었다. 與文大氏及美玉, 往油屯市邊, 則門中老少, 聞余下來之奇, 略干來會, 仍與移時談話, 療飢後, 負卜入來, 至過驛, 則日已暮矣。 乘夜還家, 夜已三更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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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반송등(盤松登)에 가서 구관(舊官) 교리 남이형(南履炯)을 만났다. 동행과 함께 모화관(慕華館)15) 영은문(迎恩門)16)으로 갔다가 오는 길에 추문(秋門)17)에 올라 잠시 쉰 뒤에, 나는 대묘동(大廟洞)에 가서 공서(公瑞)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사(金使)와 지종현(池宗玄)을 만나려고 기보(基甫)의 집에 갔으나, 두 사람 모두 부재중이라 만나지 못했다. 오는 길에 서울의 주인집에 들어가니 경주인(京主人)도 부재중이라 만나지 못하고 주인집으로 왔다. ○食後往盤松登, 見舊官南校理 履炯。 與同行往慕華館 迎恩門, 來路登秋門暫憩後, 余則往大廟洞, 與公瑞暫話。 欲見金使及池宗玄, 往基甫家, 則兩人皆不在不見, 而來路入京主人家, 則京主人亦不在不見, 而來主人家。 모화관(慕華館)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었던 객관(客館)으로, 조선 시대에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었다. 《궁궐지(宮闕志)》에는 태종 8년(1408)에 개경의 영빈관을 본 따 모화루를 건립하였다고 쓰여 있다. 그 후 세종 12년(1430)에 확장, 개수하여 모화관이라 개칭하였다. 영은문(迎恩門) 모화관(慕華館) 앞에 세웠던 문이다. 현재 독립문이 있는 곳의 바로 앞에 있었다. 새 임금이 즉위하여 중국사신이 조칙을 가지고 오면 임금이 친히 모화관까지 나오는 것이 상례였다. 추문(秋門) 경복궁 영추문(景福宮迎秋門)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서쪽에 있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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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여 희도원(希到院)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성환(成歡)34)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천안 신(新)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100리를 갔다. 曉發至希到院朝飯, 抵成歡午飯。 抵天安新酒幕留宿。 行百十里。 성환(成歡)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에 있는 읍명으로, 성환읍 성환리에 성환역(成歡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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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새벽에 출발하여 보성 대곡(大谷)의 이 석사(李碩士), 율촌(栗村)의 종인(宗人)과 동행하여 왈천(曰川)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부내(府內)의 서문(西門) 밖 전성철(全聖哲) 집에 이르자 진사 정여흠(丁汝欠)이 먼저 와서 이 집에 머물고 있었다.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여흠이 먼저 떠났다. 나는 공서와 북문 밖의 종인(宗人) 송민수(宋民洙) 집을 찾아가 제각통문(祭閣通文)을 전하고 유숙한 것은 영문(營門)의 《사원록(祠院錄)》에 재록하기 위해서였다. 서재(書齋)에서 묵고 있는데, 주인 송약수(宋若洙)의 백씨(伯氏)가 백대(百代)의 정의(情誼)로 반기며 우리 두 사람과 함께 술집에 직접 가서 술을 사 마시다가 주객이 모두 취해서 돌아왔으니 그 마음이 매우 살뜰하였다. 曉發與寶城 大谷 李碩士及栗村宗人同行, 抵曰川朝飯。 至府內 西門外全聖哲家, 丁進士 汝欠先來, 而留在此家, 而數時談話, 汝欠則發行, 而余則與公瑞, 訪于北門外宗人民洙家, 傳祭閣通文留宿, 欲爲營門《祠院錄》中載錄之意也。 留宿書齋, 而主人若洙之伯氏, 而忻然有百代之誼, 偕吾二人親往酒家, 沽酒相飮, 主客醉而歸, 其意最爲慰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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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日 새벽에 출발하여 소로(小路)로 들어가자 임실(任室) 방동(房洞)의 동종(同宗)인 송염(宋濂) 집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길을 나서려고 하니 주인이 한사코 만류하였다. 하늘에서도 가랑비가 내려 그 집에 그대로 머물렀는데, 통문 1건을 베껴서 맡겨 두고 차차로 전해 달라는 부탁의 말을 하였다. ]曉發入小路, 抵任實 房洞同宗濂家朝飯。 欲爲發程, 則主人固挽。 天又細雨, 仍留其家, 而通文一件謄出留置, 次次飛傳之意言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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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문적의 수정(修正) 때문에 주인집에 남아있었다. 오후에 정동(貞洞)21)에 갔는데 이 석사가 없었다. 다만 그의 아우 이훈(李壎)하고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니, 석사 이혜길(李惠吉)이 혼자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이혜길이 집으로 가자고 청하기에 그와 함께 가서 그대로 유숙하였다. ○以文蹟之修正留主人家。 午後往貞洞, 李碩士不在。 只與其弟壎, 暫話而來, 則李碩士惠吉專訪來待矣。 夕飯後, 惠吉請往其家, 故與之偕往, 仍留。 정동(貞洞)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이 현재 정동 4번지에 있던 데서 '정릉동'이라 하였던 것을 줄여 정동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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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밥은 안채에서 음식을 내와서 몹시 고마웠다. 오후에 일행과 영추문(迎秋門)22) 안으로 가서 궐문 밖을 지나, 그길로 유동(油洞)23)으로 갔다. 도중에 일행을 남겨두고, 나는 조문하기 위해 아전 안인성의 집을 찾아갔는데 아전 안인성의 아들이 출타하였으므로 만나지 못하였다. 일행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와서, 함께 종각 근처로 왔다. 마침 공서을 만나 그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朝飯自內間出饋, 感荷感荷。 午後與同行往秋門內, 過闕門外, 仍向油洞。 留同行於中路, 余則吊問次, 尋安吏寅成家, 則安吏之子出他, 故不見。 而還同行所留處, 與之偕來鍾閣邊。 適逢公瑞, 與之暫話而來。 영추문(迎秋門) 경복궁의 서문(西門)이며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문무백관들이 주로 출입했던 문이다. 유동(油洞)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1가에 있던 마을로, 기름을 파는 기름전이 있었으므로 기름전골이라 하고, 이를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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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밥을 먹은 뒤 출발하였다. 북문 밖으로 가 잠시 송약수 씨를 만났는데 서울로 보내는 편지를 주었다. 그길로 출발하여 장대(將臺) 앞에 이르자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남문 밖에 사는 류하석(柳夏錫) 영윤(令倫)이었다. 내가 이미 부내에 들어섰으니 찾아가지 못할 것도 없는데, 갈 길이 바쁜 관계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왔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 무척 기뻤다. 그길로 동행하여 삼례(參禮)83)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물녘에 능측(陵側)84) 객점에 이르러 함께 유숙하였다. 50리를 갔다. ○食後發程。 往北門外, 暫見若洙氏, 則付京簡矣。 仍發, 抵將臺前, 則有呼我之人 。 故顧見, 則乃南門外居柳夏錫令倫也。 余旣入府, 則非不爲尋訪, 而以行忙之致, 未果而來矣。 忽於此地意外相面, 其喜可掬。 仍與同行, 抵參禮午飯。 暮抵陵側店, 同留宿。 行五十里。 삼례(參禮)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이다. 능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익산 쌍릉으로 보인다. 마한(馬韓)의 무강왕 및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고, 백제 무왕과 왕비의 능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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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밥을 먹은 뒤 길을 떠날 무렵, 마침 암자 아래를 지나는 상선(商船)이 있어서 어디로 가는지 물으니 공주로 간다고 하였다. 뱃사공을 불러 급히 배에 올랐다. 배를 띄운 지 몇 리 못 가서, 바람과 일기가 순조롭지 못해 도로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올랐다. 선덕(先德) 객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삼거리 객점을 지나 발치(發峙)100)를 넘어 이인(里仁)101) 객점에 이르렀다. 잠시 쉬고 나서 우금치(于今峙)102)를 넘어 공주 화산교(花山橋)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食後, 離發之際, 適有商船之過菴下, 故問其所向, 則往于公州云也。 招津夫急登船。 浮江數里, 以風日之不順, 還下船登陸。 抵先德店午飯。 歷三巨里店, 越發峙, 抵里仁店。 暫憩後, 越于今峙, 抵公州花山橋店留宿。 行七十里。 발치(發峙) 충청북도 충주시의 직동과 살미면 재오개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옛날 삼남대로로 통하는 대로의 첫 고개였다고 한다. 이인(里仁)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이다. 우금치(于今峙) 우금치(牛禁峙)를 말한다. 공주 분지의 남쪽 끝에 낮은 안부를 이루어 형성된 고개로 높이가 약 100m이며, 부여에서 공주 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다. 동학운동 때 관군과 싸워 동학 농민군 10만 명이 전사한 역사적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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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밥을 먹은 뒤 일행과 용동(龍洞)19)의 이 참봉 집으로 가서 《명현록(名賢錄)》 개간(開刊) 일을 보고 돌아왔다. ○食後, 與同行往龍洞李參奉家, 見《名賢錄》開刊事而還。 용동(龍洞) 서울 노원구 하계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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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밥을 먹은 뒤 하서와 야당(野塘)으로 와서 송필동(宋弼東) 씨를 만났다. 이에 점심을 먹고 동행하여 계동(桂洞)80)의 송화(宋燁)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은 뒤 그 마을 종인(宗人, 먼 일가)인 상향(象亨), 상풍(象豊), 상정(象貞), 상의(象義), 상태(象台)가 다 같이 찾아왔다. ○食後, 與夏瑞偕來野塘, 見宋弼東氏。 仍爲午飯, 而同行來桂洞宋燁家。 夕食後, 其村宗人象亨、象豊、象貞、象義、象台, 皆來見。 계동(桂洞)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계수리 계동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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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주인이 극구 만류하여 그대로 머물렀다. 낮에 김노가 다리 통증으로 아파서 드러누워 있으니 몹시 걱정되었다. 거처 앞에는 시내가, 뒤에는 소나무가 있어 아주 고즈넉하였다. 절구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개울물 소리는 밤새도록 울리고(澗有通宵響)둥글고 깊다라니 진종일 그늘 드네(圓深盡日陰)거처하는 곳이 시내 저자 주변이건만(攸居城市邊)혹 속인이 찾아오는 건 싫어하네(倘嫌俗人尋) ○以主人之堅挽, 仍留。 午間, 金奴以脚病痛臥, 悶悶。 所居前溪後松甚幽寂。 吟一絶曰: "澗有通宵響, 圓深盡日陰。 攸居城市邊, 倘嫌俗人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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