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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일찍 밥을 먹은 뒤에 두치(斗峙)20)를 넘어 신거(信居)에 이르자 비로소 대로(大路)가 나왔다. 봉상(封上)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전주(全州) 부내(府內)로 들어가 곧장 서문 밖 여점(旅店)으로 갔으나, 삼정(森亭) 일행을 그림자도 찾을 수 없으니 이상하였다. 남문 밖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로 만났다. 곧바로 김 동지(金同知)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항선(缸鐥)을 찾아 가지고 왔다. 早食後, 踰斗峙, 至信居, 卽始得大路。 至封上秣馬, 入全州府內, 直往西門外旅店, 則森亭一行, 寂無影響, 可怪。 行至南門外, 始與相逢。 卽往金同知家, 暫話後, 推尋缸鐥而來。 두치(斗峙)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대곡리로 넘어가는 재 이름이다. 말치 또는 마치(馬峙)로 불리우기도 하며 옛 국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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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화옥과 함께 장성(長城) 김직휴(金直休) 여관(旅館)에 갔으나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고, 남원(南原) 박 석사(朴碩士)만 만나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동부(東部)로 들어가서 민 남평(閔南平)을 만나려 했으나 입직하였다. 한참 뒤에 또 옛 동부(東部)에 들어가 안 만호(安萬戶)를 찾아갔는데, 또한 입직하여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與華玉同往長城 金直休旅館, 則出他不逢, 只見南原 朴碩士。 來路入東部, 見閔南平入直。 移時又入舊東部, 尋訪安萬戶, 則亦入直, 未逢而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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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이른 아침에 화옥(華玉)이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 그 숙모의 부음을 전하였다. 일찍부터 염려하던 일이었지만, 갑자기 이 기별을 듣게 되어 너무 놀랍고 슬펐다. 날마다 남쪽의 소식을 들으니 감기가 매우 심각하다고 하는데, 노복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아서 그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 早朝華玉送人寄書, 傳其叔母之訃。 是所夙慮, 而忽聞此奇, 極爲驚悼。 日聞南中消息, 感氣極惡云, 奴者尙不來到, 其爲悶慮, 不可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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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새벽에 반촌(泮村)에 들어가 화옥(華玉)을 위로하였다. 아침을 먹고 나와 옛 동부(東部) 안 만호(安萬戶)의 집에 들렀으나, 안 만호가 또 입직하였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였다. 이에 주동(注洞)에 들렀더니, 치회(穉會)가 그 손자와 제수씨를 잃었으므로 위로하고 왔다. 曉頭入泮中, 致慰華玉。 朝飯後出來, 歷入舊東部 安萬戶家, 則安也又爲入直, 故不得相面。 仍入注洞, 則穉會喪其孫及弟嫂, 故致慰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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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이종형과 길을 나섰는데, 나는 먼저 가서 정천(定川)에서 송양조(宋讓祚) 일행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산(連山) 사슬치점(沙瑟峙店)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잠시 포정동(匏井洞)의 이 서방(李書房) 집에 들어가 장선(長善)마을14) 이름과 노차(路次)를 물었다. 서둘러 가서 연산(連山) 읍내와 거사리(居士里)15), 인천(仁川)16)을 지나 장선(長善)의 사헌(士憲) 집에 이르니 날은 저물어 저녁이 되었다. 주객(主客)이 서로 만나니 그 기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與姨從兄作行, 余則先行, 至定川, 逢宋讓祚一行暫話。 至連山 沙瑟峙店秣馬, 暫入匏井洞 李書房家, 問長善村名及路次。 促行過連山邑內、居士里、仁川, 至長善 士憲家, 日已夕矣。 主客相逢, 喜不可言。 장선(長善)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장선리이다. 장선(長善) 마을은 산등성이가 길게 뻗어있어 긴산→장산(長山)→장선(長善)으로 변했다고도 하고, 산등성이가 마치 긴 뱀과 같다고 해 장사(長蛇)→장산→장선(長善)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지형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긴 산등성이에서 나온 말이다. 거사리(居士里)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거사리이다. 인천(仁川)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이다. 옛 이름은 '인내'라 하며 현재도 인내 뚝, 인내 장터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조선지지자료》(연산)에 '인내[仁川]'이라는 지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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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아침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서 말치를 넘어 평당(平塘)의 종인(宗人)인 송계천(宋啓天)의 집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여기에 들어오게 된 것은 이곳의 종인(宗人)인 필동(弼東)씨 형제가 서울에서 내려와 오촌(鰲村)으로 들어왔다고 하므로 장석(丈席)의 소식을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아직 내려오지 않았기에 오후에 곧바로 출발하여 사동점(蛇洞店)에 이르러 묵었다. 60리를 갔다. 밤중에 방구들이 얼음장 같아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몹시 화가 났다. 새벽에 절구 한 수를 읊었다.먼동이 트자 닭이 막 울어대고(曉色鷄初唱)찬 새벽 시내물 소리 요란하네(寒聲澗有鳴)객창의 방구들 얼음장 같아 잠 못 이루니(旅窓睡未穩)손가락 꼽으며 앞길을 헤아려 보네(屈指計前程)공서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조룡산 내려가는 길에(鳥龍山下路)새벽부터 눈 내리고 거센 바람 이는데(晨發雪風鳴)동종과 길동무하며 함께 오니(同宗同作伴)기나긴 여정의 지루함도 잊었어라(忘却步長程) 仍朝飯後發程, 越斗峙, 至坪塘宗人啓天家中火, 而入此之意, 此處宗人弼東氏兄弟, 自京下來, 入于鰲村云, 故欲探其丈席之消息矣。 尙未下來, 故午後卽發, 至蛇洞店留宿。 行六十里。 夜間以突冷之致, 不得秪寢, 可憤可憤。 曉間吟成一絶曰: "曉色鷄初唱, 寒聲澗有鳴。 旅窓睡之穩, 屈指計前程。" 公瑞次曰: "鳥龍山下路, 晨發雪風鳴。 同宗同作伴, 忘却步長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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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새벽에 출발하여 덕평(德平)35)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모로원(慕露院)36)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판치(板峙)37) 아래 소월(小越)에 이르러 묵었다. 110리를 갔다. 曉發抵德平朝飯, 抵慕露院午飯。 抵板峙下小越留宿。 行百十里。 덕평(德平) 충청도 청주목(淸州牧)과 전의현(全義縣)의 경계에 있었던 마을 이름이다.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군(燕歧郡) 전의면(全義面) 소정리(小井里)와 운당리(雲堂里) 지역에 해당한다. 모로원(慕露院)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상용리 양달 마을에 있었던 역원(驛院)이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공주에서 북쪽으로 1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하며, 원래 명칭은 '모로원(毛老院)이다. 판치(板峙)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봉면리에 있는 고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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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새벽에 출발하여 노성(魯城)38) 읍내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황화정(皇華亭)39)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치등(峙登) 주막 어귀에 이르러 나는 성묘하기 위해 시조의 묘소에 들어갔다. 동행은 먼저 능측(陵側)으로 가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에 성묘한 뒤 성묘록(省墓錄)에 이름을 쓰고 급히 능측으로 갔다. 동행이 오지 않아서 몹시 기다리던 중에 날이 저어서야 강(姜)과 송(宋) 두 벗이 왔다. 다른 동행은 마병(馬病)으로 오지 못해서, 두 벗과 묵었다. 100리를 갔다. 曉發抵魯城邑內朝飯。 抵皇華亭午飯。 至峙登酒幕前, 余則省墓次, 入始祖墓所, 同行則先行約以陵側, 故省墓後, 書名《省墓錄》, 急往陵側, 則同行不來, 故苦待中, 暮時姜、宋兩友來。 他同行則以馬病不來, 只與兩友留宿。 行百里。 노성(魯城)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옛 지명이다. 지명 유래는 이산현의 지형이 공자가 탄생한 중국 노나라 이구산(尼丘山)의 지형과 비슷하다 하여 '노'(魯)자를 따고 이산(尼山)의 성을 상징하는 '성'자를 따서 노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황화정(皇華亭) 지금의 충남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해당한다. 조선 시대에는 충청도 땅이 아니라 전라도 여산읍(익산의 옛 지명) 소속이었는데, 임금으로부터 전라도관찰사로 제수받으면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 지역인 여산 황화정에서 신·구 임무교대식인 교귀식(交龜式)을 치르고 전주 조경묘에 숙배(肅拜)하는 것이 순서였다. 때로는 활터로도 이용했으며 현재는 비석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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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새벽에 출발하여 덕평(德坪)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차령(車嶺)을 넘어 광정(廣亭) 송상철(宋相喆)의 집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객점으로 나와 점심을 먹었다. 일신역(日新驛)78)에 이르러 묵었다. 90리를 갔다. 曉發抵德坪朝飯。 越車嶺, 入廣亭 宋相喆家暫話, 而來于店中火。 抵日新驛留宿。 行九十里。 일신역(日新驛)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에 위치한 중앙선의 철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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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二月 금년 봄 2월에 충강공(忠剛公) 선조 행록(先祖行錄)을 개간(開刊)하는 일로 오촌(鰲村, 송치규) 장석(長席)에게 서문(序文)을 청하기 위해 이찬(而贊), 윤익(允益)과 동행하여 오촌에 갔었다. 당시 장석이 마침 병환 중이라서 글을 받지 못하고 가을을 기약하고 돌아왔다. 이번 겨울 종중의 협의에서 또 나에게 갔다 오라고 하였으므로 11월 19일에 길을 나서 석촌(石村) 송계석(宋啓錫)의 집에 이르러 묵었다. 20리를 갔다. 今年春二月, 以忠剛公先祖行錄開刊事, 請序文於鰲村 丈席之意, 與而贊及允益, 同行往鰲村矣。 其時丈席, 適患身, 不得受文, 秋以爲期而來矣。 今冬宗議, 又以余往還, 故乃於十一月十九日發程, 抵石村 宋啓錫家留宿。 行二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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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아침 전에 이찬(而贊)이 오촌(鰲村)에게 부칠 서간(書簡)을 가지고 왔다. 형님들과 증아(曾兒)와 함께 유둔(油芚) 시장 근처로 가서 행장을 꾸리고 문중의 제종(諸宗)들과 작별한 다음 길을 나섰다. 낙안(樂安)의 평촌(平村) 주점에 이르러 묵었다. 20리를 갔다. 朝前而贊來付鰲村書簡。 與諸兄主及曾兒, 往油芚市邊治行, 與門中諸宗, 作別發程。 抵樂安平村酒店留宿。 行二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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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일찍 출발하여 직산(稷山) 삼거리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소사(素沙) 주막9)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주막에 들어갈 때 보성(寶城)의 정영각(鄭永殼)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막으로 들어갔는데,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을 때 도중에 다시 만났다. 그길로 동행하여 수원(水原) 오산(烏山) 시장 근처에 이르러서 묵었다. 100리를 갔다. 어제 신은(新恩) 주막에 머물고 있을 때, 말을 탄 두 명의 길손과 함께 위아래 방에 머물렀는데, 오늘도 동행하여 위아래 방에 머물렀다. 早發至稷山三街酒幕朝飯。 抵素沙酒幕, 中火秣馬。 入幕之際, 逢寶城 鄭永殼, 暫話入幕, 中火後發程, 中路更逢。 仍爲同行, 抵水原 烏山市邊留宿。 行百里。 昨日留新恩酒幕時, 與馬上二客, 留上下房, 亦爲同行, 留上下房。 소사(素沙) 주막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 소사마을에 있었던 객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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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아침 전에 박종수(朴宗洙)가 와서 만나고 갔다. 오위장(五衛將)과 가교(柯橋)의 장우한(張羽漢)이 찾아왔기에 두 벗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 장우한은 무과(武科) 초시(初試)에 참여하였으나 회시(會試)를 보러 갈 방도가 없어서 나를 보고 말을 청하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말을 내어 주었다. 아침을 먹은 뒤에 낙안(樂安)의 형님과 서소문(西小門)의 이 석사(李碩士) 집에 갔다가 잠시 쉬고 있는데, 안채에서 전하는 말에, 옛날을 생각해 보노라니 슬픈 마음을 견딜 수 없다고 하였다. 주인과 서소문(西小門) 안의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정 진사(丁進士)의 사관(舍館)에 가서 잠시 쉬었다가 오후에 주인집에 돌아왔다. 朝前朴宗洙來見而去。 五衛將與柯橋 張羽漢來見, 兩友仍朝飯。 張也參武科初試, 而見會試之道無路, 故見我請馬匹, 故不得已許給。 食後與樂安兄主, 往西小門 李碩士家暫憩, 自內間有傳語, 推念疇昔, 不勝悲懷。 與主人入西小門內酒家, 沽酒以飮, 往丁進士舍館暫憩, 午後出來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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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밥을 먹은 뒤 송화(宋燁) 군찬(君贊), 송낙의(宋樂義) 내직(乃直)과 나와 광암(廣岩) 객점에서 하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있으니 하서가 과연 왔길래 술을 사서 함께 마시고 군찬과 내직 두 송씨와 작별하였다. 하서와 동행하여 첩치(箑峙)를 넘어 굴암(屈岩) 아래 객점에 이르러 작별하였다. 도마교(逃馬橋)81) 주변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방동(芳洞)82)의 송렴(宋濂)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이 마을에 들어온 것은 송상오(宋象五), 송재환(宋在煥) 두 사람의 유고에 조문하기 위해서였다. 30리를 갔다. ○食後, 與宋燁君贊、宋樂義乃直出來, 廣岩店待夏瑞來矣。 移時夏瑞果來, 沽酒相飮, 與君贊乃直兩宋作別。 與夏瑞同行, 越箑峙, 抵屈岩下店作別。 抵逃馬橋邊午飯。 抵芳洞宋濂家留宿。 入此洞者, 吊宋象五、宋在煥兩人之故也。 行三十里。 도마교(逃馬橋) 임실군 임실읍에서 내려온 시내에 놓인 나무다리로, 말이 건너다녔다 하여 도마교(道馬橋)라고 했다. 원문 '逃'는 저본의 오류로 보이나 확실치 않다. 방동(芳洞)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방수리 방동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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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일찍 출발하여 은산(殷山)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소로(小路)로 들어가서 험준한 고개 하나를 넘어 도산(道山)의 족질(族姪)인 송필흥(宋弼興)의 집에 찾아갔다.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는데 주인이 한사코 만류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머물렀다. 30리를 갔다. 닭을 잡아 잘 대우해 주니 매우 기뻤다. 早發抵殷山朝飯。 入小路, 越一峻嶺, 訪道山族姪弼興家。 午飯欲爲離發, 則主人堅挽, 故仍留宿。 行三十里。 殺鷄以善待, 可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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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아침을 먹기 전에 정동(貞洞)의 이 석사(李碩士)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 아침을 먹은 뒤에 율지와 용동(龍洞)의 이 참봉(李參奉) 집에 갔더니, 참봉 경화(景華)가 순강원(順康園)18) 참봉(參奉)으로 이제 막 입번(入番)하였다. 그 아들 용준(龍俊)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명현록(名賢錄)》 개간(開刊)하는 일을 의논하였다. 이어 명례동(明禮洞, 지금의 명동(明洞))의 참판(參判) 박종정(朴宗正)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오니 공서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공서(公瑞)와 송 판서의 집에 들어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에 공서는 그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가고, 나는 주인집으로 나오니 옹포(甕浦)의 송격(宋格)이 내일 아침에 내려간다고 하므로 가서(家書)를 써서 부쳤다. ○食前往貞洞 李碩士家, 暫話而來。 食後與聿之往龍洞 李參奉家, 則參奉 景華, 以順康園 參奉, 才入番矣。 只與其子龍俊暫敍後, 仍議《名賢錄》開刊事, 仍往明禮洞 朴參判 宗正家, 暫話而來, 則公瑞來待矣。 暫話後, 與公瑞入宋判書家, 移時談話後, 公瑞往其所住處, 余則出來主人家, 則甕浦 宋格, 明朝下去云, 故修付家書。 순강원(順康園) 선조의 후궁으로 원종(元宗)의 생모인 인빈(仁嬪) 김씨(金氏)의 무덤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에 있다. 영조 대에 마련된 궁원제(宮園制)에 입각해 영조 31년 순강원의 명칭을 얻었다. 《光海君日記 5年 10月 29日》 《英祖實錄 31年 6月 23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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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밥을 먹은 뒤, 일행과 대묘동(大廟洞)20)으로 가서 공서(公瑞)을 불러 종묘 문밖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원록(祠院錄)》을 다시 부탁할 생각으로 그길로 예조의 당직 부서로 가니 아전 배광옥(裵光玉)은 마침 출타하였고, 아전 안인성(安寅成)은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다. 그래서 다른 아전과 상의해보니, 배광옥이 없어 《사원록(祠院錄)》의 소재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食後, 與同行往大廟洞, 要公瑞暫話於宗廟門外。 以《祠院錄》更付之意, 仍往禮曹直府, 則裵吏光玉適出他, 安吏寅成昨年身故云。 故與他吏相議, 則裵吏不在, 不知《祠院錄》之在, 故還來主人家。 대묘동(大廟洞) 서울 종로구 훈정동ㆍ묘동ㆍ봉익동ㆍ종로3가ㆍ종로4가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대묘인 종묘가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대묫골ㆍ대뭇골ㆍ대묘동ㆍ묘동'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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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먼저 출발하여 소사(素沙)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성환(成歡)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천안(天安) 삼거리(三巨里)에 이르러 해남(海南) 최진욱(崔震煜)을 만나 함께 머물렀다. 90리를 갔다. 先發抵素沙朝飯, 抵成歡中火。 抵天安三巨里, 逢海南 崔震煜同留。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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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일찍 출발하여 용계(龍溪)75)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곡성(谷城) 읍내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남원 자생(者省)76)의 원산(圓山) 필흥(弼興) 집에 들어가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早發, 抵龍溪朝飯, 抵谷城邑內療飢。 入南原者省圓山弼興家留宿。 行七十里。 용계(龍溪)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근처이다. 자생(者省)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근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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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새벽에 출발하여 금강(錦江)을 건너려는데, 하늘이 아직 밝지 않아 달빛이 희미하고 듬성듬성 별빛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사공을 불러 금강을 건너와 판치(板峙)에서 아침을 먹었다. 초포(草浦)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올목(兀木)에 이르러 묵었다. 90리를 갔다. 曉發越錦江, 天未曉而月色依微, 疏星錯落。 呼船工渡來, 而至板峙朝飯。 至草浦中火, 至兀木留宿。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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