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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추웠다. 병세가 점점 위중해졌다. 보는 사람들은 변고를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이것이 참으로 운명이라 한들 어찌하겠는가. 다만 천노(千奴)를 보내 버린 한 가지 일만이 마음속에 원통하게 맺혀 있다. 사람이 죽은 뒤에는 만사가 모두 재가 되겠지만, 다만 우둔한 자식 하나가 생계를 꾸려 가지 못하게 될까 이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송동(宋洞)의 종인(宗人)과 향객(鄕客)이 두서너 번 찾아와서 보고 갔다. 寒。 病勢漸重, 觀者意其逢變, 吾亦末由, 此眞命也, 奈何? 但送奴一事, 寃結心頭。 人生身後, 則萬事皆灰, 而但愚魯一子, 使不得料生, 是所恨也。 宋洞宗人及鄕客數三來見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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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아침을 먹은 뒤에 청파(靑坡)로 갔으나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오는 길에 합동(蛤洞)의 윤 장령(尹掌令) 집에 들렀으나 병 때문에 만나지 못하였다. 또 근동(芹洞)에 들어가 중순(仲順)을 보고 왔다. 食後往靑坡, 不聞消息, 故來路入蛤洞 尹掌令家, 以病故不得相見。 又入芹洞見仲順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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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행장을 꾸려 서울로 출발하였다. 대개 지난해에 연시(延諡)한 뒤로 처음 길을 나선 것인데, 시호(諡號)를 내려 줄 때의 예관(禮官)에게 사례(謝禮)를 할 생각이다. 과역(過驛)에 이르니 봉동(鳳洞)의 송 도감(宋都監)과 지정(池亭)의 신생(申生)이 요로(要路)에서 전송하였다. 이어서 말에게 꼴을 먹이고 탄포(炭浦)에 이르렀다. 남원(南原)의 생아(甥兒)가 도중에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병동(屛洞)에 와서 묵었다. 治發京行, 盖爲年前延諡後初行也, 爲謝宣諡時禮官之意也。 至過驛, 鳳洞 宋都監、池亭 申生, 要路餞行。 因爲秣馬, 至炭浦。 南原甥兒留待路中, 故暫話後, 來宿屛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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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오후에 연아(年兒, 아들 석년)와 조카 호(豪)를 돌려보내고 종인(宗人)인 지각(之珏)과 동행하여 낙안(樂安)에 이르렀다. 상중(喪中)에 있는 낙승(樂承) 박씨 집에서 묵었다. 午後還送年兒及豪姪, 與宗人之珏同行, 至樂安。 樂承 朴哀家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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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일찍 밥을 먹은 뒤에 서면로(西面路)에 이르러 이 좌수(李座首) 형제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동정(茂童亭)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순천(順天) 천평(泉坪)에 와서 머물렀다. 早食後, 至西面路, 逢李座首兄弟暫話。 至茂童亭中火, 來留順天 泉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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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경유(景猷)와 함께 동부(東部)에 갔다가 경모궁(景慕宮)으로 가서 화옥(華玉)을 만났다. 말을 사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소식이 없으므로 해질 무렵에 도로 나왔다. 與景猷同往東部, 因向景慕宮見華玉。 待其買馬, 而終無消息, 日暮時, 還爲出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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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싸늘하였다. 북기막(北機幕)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원터(院垈)에 이르러 묵었다. 남쪽 지방 관행(官行)의 행차에 상일(喪日)을 네다섯 번이나 만났으니, 금년의 운기(運氣)가 참혹함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陰冷。 至北機幕, 中火秣馬。 至院垈留宿。 盖南中官行之行, 喪日逢四五, 今年運氣之慘毒, 從此可知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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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공주(公州)의 신막(新幕)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정천(定川)에서 묵었다. 해가 남아있는 동안 이성(尼城)에 갈 수는 있지만 전주의 마부 때문에 이곳 신막에 머물려는 것이다. 至公州 新幕中火 留宿於定川。 日力則可往尼城, 而全州 馬夫故, 欲留於此幕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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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일찍 출발하여 동산동(東山洞)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직산(稷山, 충남 천안지역 옛 지명) 읍내를 지나 개치(皆峙)7)를 넘어 두거리(豆巨里) 시장 근처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진령(鎭嶺) 읍내를 지나 유성(油城) 시장 근처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공주(公州) 땅이다. 早發至東山洞朝飯, 歷稷山邑內越皆峙, 至豆巨里市邊中火。 歷鎭岺邑內, 抵油城市邊留宿。 行八十里。 公州地也。 개치(皆峙)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원덕리 개치골과 공주시 정안면 태성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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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새벽에 출발하여 능측(陵側)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여산(礪山)에 이르러 시조(始祖) 산소(山所)에 들어가 성묘한 뒤에 내려왔다. 산지기 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산지기 김복손(金福孫)이 술을 사 와서 올렸다. 이어 점심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서 소로(小路)로 들어가 기용(機舂)을 지났다. 호동(狐洞) 주점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연산(連山)6) 땅이다. 曉發至陵側朝飯。 至礪山入始祖山, 所省拜後下來。 山直家仍爲中火, 山直者金福孫 沽酒以進。 仍爲午飯後發程, 入小路歷機舂, 抵狐洞酒店留宿。 行七十里。 連山地也。 연산(連山)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옛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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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추울 때는 감당할 수 없이 춥고 사지(四肢)는 마비되기 때문에 즉시 팔선(八仙)의 집으로 나가 불을 지피고 온돌을 따뜻하게 했지만 구토와 설사가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식후에 다시 사랑(舍廊)에 들어가 문을 닫고 누웠지만 추위를 버틸 수 없어 또다시 팔선의 집으로 가야 했다. 寒不可當, 四體麻木, 故卽出八仙家, 爇火溫突, 而吐瀉不止, 故食後復入舍廊, 閉門而臥, 寒不敢支, 當復出八仙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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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전날부터 정기산(正氣散)을 연이어 쓰고 소합환(蘇合丸)을 함께 썼으나 끝내 뚜렷한 효험이 없으니 초조하고 근심스러운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달인 약[煎藥]을 계속 쓰고 있으나 식음을 전폐(專廢)하고 있으니 비록 보약을 쓴들 병이 곧바로 차도를 보이지 않고, 먹어도 원기를 도울 수 없다. 그런데도 소용되는 돈이 하루에 7, 8전(戔)이니 이를 장차 어찌해야 하겠는가.영동(永洞)의 이신효(李信孝)와 배생(裵生)이 와서 보고 간 후 집안 소식을 대강 들었다. 그런데 여아(女兒)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입으로는 전해 들었지만 편지에는 없으니 의심스럽고 괴이하였다. 섣달 17일 밤에 꿈이 흉하더니, 그 병이 마침 발병한 것이 그때에 생긴 것이라면 다행이다. 自前日連用正氣散兼用蘇合丸, 終無顯效, 焦悶不可言。 連用煎藥, 而又食飮專廢, 故雖用補製, 病不卽差, 食不補中, 而所用一日七八戔, 此將奈何。 永洞 李信孝及裵生來見而去, 略聞家信, 而女兒病奇, 口傳有之, 而書則無之, 可疑可怪。 臘月十七日夜夢凶矣。 其病適發, 其時生則幸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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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새벽녘에 군휘(君徽)와 작별하고, 노구암(老狗巖)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오수(獒樹)에 이르러 또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전석치(磚石峙)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110리를 갔다. 曉頭與君徽作別, 至老狗巖, 朝飯秣馬。 至獒樹又秣馬, 至磚石峙留宿。 是日行百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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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차동(車洞)의 내행차(內行次, 부인의 행차)가 해영(海營, 황해도 감영)으로 출발하였는데, 궐문 밖 지척에서 머물고 있으면서 경욱(景旭), 현숙(顯叔)과 작별을 하지 못하였으니, 그 병의 위중함을 알 수 있다. 車洞內行次 發向海營, 而留在門外咫尺之地, 不得與景旭、顯叔作別, 其病之重, 可知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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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귀남(龜南) 김생(金生)이 발병 때문에 계속 고마(雇馬)20)를 타고 왔는데, 지금은 동행할 수 없다고 하니 가엾고 걱정스럽다. 팔선(八仙)과 헤어지고 곧바로 금산(錦山)으로 향하였다. 몇 달 동안 그의 집에서 손님으로 있었던 데다가 또 정성을 다해 병을 치료해 준 사람인데, 중도에서 서로 헤어지게 되니 섭섭한 심사를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김생(金生)은 마을 앞에서 뒤처졌다. 그 또한 노자가 적다고 하니 몹시 가련하였다.이성(尼城)에 이르러 요기하고 초고(草稿)에 도착하였다. 권 서방(權書房)이 수삼 일 동안 길을 재촉하여 갔으나 끝내 이·공의 일행을 만나지 못하고, 사교(沙橋)에서 이춘영(李春英)을 만나서 데리고 왔다. 그러므로 시기를 어긴 잘못이라 책망하고는 함께 데리고 왔다. 은진(恩津)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점심을 먹었다. 능촌(陵村)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90리를 갔다. 龜南 金生, 以足病連騎雇馬矣, 今則不得同行云, 可矜可悶。 與八仙分路, 直向錦山。 累月作客於渠家, 又是盡誠救病之漢, 中路分張, 情事悵缺, 不可言。 金生於村前落後, 渠又行資之小云, 極可矜憐。 至尼城療飢, 行到草稿, 則權書房者, 數三日促行, 終不及李、孔之行, 逢李春英於沙橋, 因爲領來, 故責以違期之失, 因與率來。 至恩津, 秣馬中火。 至陵村留宿。 是日行九十里。 고마(雇馬) 조선조에 지방 관아에서 백성으로부터 고용하여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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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새벽에 동구(洞口)에 가서 안일득(安一得)을 만나 거둥을 뒤로 미루게 된 기별을 상세히 듣고, 오는 길에 신문(新門) 안의 송 진사(宋進士) 집에 들어가 서로 작별하였다. 오는 길에 대차동(大車洞) 김 참봉의 집에 들어가서 참봉 김윤추(金允樞)를 만나고 왔다. 曉頭往洞口內見安一得, 詳聞停退擧動之奇。 來路入新門內宋進士家, 相與作別, 而來路入大車洞 金奉參家, 見金參奉 允樞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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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길을 나서 과역(過驛) 시장 근처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남양(南陽)에 이르러 이찬(而贊), 강동(江洞) 윤익(允益)과 내일 함께 출발하기로 약속하였다. 저물녘에 재동(齋洞)에 이르러 묵었다. 發程至過驛市邊療飢。 抵南陽, 與而贊及江洞 允益, 明日發程爲約, 暮抵齋洞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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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일찍 출발하여 무동정(舞童亭)3)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영귀정(詠歸亭)4)에 이르러 주점(酒店)에서 동행을 기다리다가 잠시 영귀정에 들어가 외종수(外從嫂, 외삼촌의 며느리)를 만나 요기하였다. 용계(龍溪)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곡성 땅이다. 早發至舞童亭朝飯。 至詠歸亭, 留同行於酒店, 暫入歸亭, 見外從嫂, 仍爲療飢。 抵龍溪留宿。 行七十里, 谷城地也。 무동정(舞童亭)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덕산리 소재 죽산 마을로, 지금은 주암댐으로 인해 수몰되었다. 죽산 마을은 풍수지리상 정자 밑에서 아이가 춤을 추는 형국이라 하여 개촌 당시 무동정(舞童亭)이라 불리었는데, 서울 가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영귀정(詠歸亭) 순천시 주암면 마전리 영귀마을 마천 양수장 자리에 있었던 영귀당(詠歸堂)으로, 삼탄(三灘) 조태망(趙泰望, 1678~?)의 별장이다. 말년에 화순에서 활동했던 양거안(梁居安, 1652~1731) 등이 남긴 차운시[次趙泰望詠歸亭韻]가 있다. 정자는 이후 사라졌다가 구한말에 중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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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새벽에 출발하여 야당 주점에 이르러 방업(房業)과 동행하였다. 말치(末峙)를 넘고 두곡(杜谷)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애치(艾峙)에 이르러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전주(全州) 부내(府內)에 이르렀다. 방업(房業)을 따라 벽사(碧沙)의 주인인 장영손(張永孫) 집에 머물렀는데, 영손은 영문(營門)의 도사령(都使令)이었다. 80리를 갔다. 曉發至野塘酒店, 與同行房業。 越末峙, 抵杜谷朝飯。 抵艾峙中火, 暮抵全州府內。 因房業留碧沙主人張永孫家, 永孫卽營門都使令人也。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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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 전에 다시 비장소(裨將所)로 갔으나 찰방이 선화당(宣化堂)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였다. 김노(金奴)는 발을 치료하기 위해 그대로 주인집에 머물렀다. 김방업(金房業)과 이별할 때 방업이 말하기를, "제가 도모한 일이 만약 성사된다면 오래 머무를 것이고 성사되지 않는다면 내일 내려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아침 전에 사람을 사서 짐을 지우고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서지만, 객지에서 종과 주인이 서로 헤어지게 되어 심난한 마음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이에 출발하여 용산교(龍山橋)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통천등(通泉登)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여산(礪山)의 산지기 집에 도착하였다. 이날 종과 주인이 서로 떨어져서 이곳에 이른 것은 내일 시조(始祖) 산소(山所)에서 있을 동지향사(冬至享祀)에 참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제종(諸宗)들과 산지기의 집에서 머물렀다. 朝前更往裨將所, 則察訪入去宣化堂, 故不見。 金奴則治療次, 仍留主人家。 與金房業相別之際, 房業曰: "吾之所營事, 若成則久留, 不成則明日下去云矣。" 食前雇人負卜, 不得已發程, 客中奴主相分, 憒亂心懷, 難可堪抑。 仍發抵龍山橋朝飯, 抵通泉登中火。 暮抵礪山山直家。 是日奴主相離, 得達此處者, 欲參明日冬至享祀於始祖山所故也。 與諸宗留山直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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