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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이춘발(李春發)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光郡守 李春發 行郡守<押> 靈光郡戶口, 靈光郡守之印(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569_001 1828년에 영광군(靈光郡)에서 한량(閑良) 이춘발(李春發, 59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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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 강중태(姜重泰)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重泰 行郡守<押> □…□ (7.0×7.0),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47_001 1747년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첨지(僉知) 강중태(姜重泰, 56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호주 강중태(姜重泰)와 妻 최씨(崔氏)의 생년이 계유생(癸酉生)으로 기재되었으나 임신생(壬申生)으로 수정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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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 강중태(姜重泰)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重泰 行郡守<押> □…□ (7.0×7.0),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47_001 1750년에 영암군(靈巖郡)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 강중태(姜重泰, 59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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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강지백(姜之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之伯 行郡守<押> □…□ (7.0×7.0),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66_001 1807년 1월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유학(幼學) 강지백(姜之伯, 45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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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이생원(李生員) 등 완문(完文) 고문서-증빙류-완문 韓宗默 李生員 韓宗默<着名>, 金翊魯<着名>, 金顯澤<着名>, 林成春<着名>, 河永祿<着名>, 吉有宗<着名>, 尹守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미년 10월에 이생원이 관아에 토지를 기부하고 받은 완문. 기미년 10월 28일에 영암군 관아의 刑房인 韓宗默 등이 발급한 완문이다. 발급한 고을은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본 문서가 포함된 문서군이 영암 지역에 소재한 이씨 집안 문서이므로 영암군 관아에서 발급한 문서일 가능성이 크다. 작성된 서기연도는 알 수 없다. 완문의 본문은 고을 관아의 刑房에서 사용할 재정이 부족하여 여러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차에 望湖亭에 사는 李生員이 토지를 재원으로 내어주었으므로, 이 사실을 기록해 두고 그 덕을 칭송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방의 재정이 부족한 이유는 본문에서 본 읍이 큰 도로의 옆에 위치하는 바람에 兵營과 水營 사이에서 겪는 폐해가 다른 읍에 비해 몇 곱절은 된다고 하고 있다. 즉 도로를 지나는 관리에게 지급하는 식량과 역참을 들고나는 人馬에 들어가는 비용이 전체 고을 중에 가장 많아서, 이를 개선하고자 하지만 재원을 염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생원이 이러한 실상을 통촉하여 내놓은 토지는 黎字 자호의 논 3마지기이고 負數로는 11부 6속이었다. 이에 대해 형방에서는 고마움을 표현하길, "높은 은혜가 태산과 같아 그 問喪하는 도리에 있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원문은 "匍匐之道"라는 문구를 사용하였는데, 이생원댁에서 喪禮내지 葬禮에 대한 일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그 보답으로 "이 댁의 산소를 禁養하는 절도와 그 밖에 보답하는 방안을 (수령의) 처분에 따라 힘을 모아 보답하길 도모한다."라고 하고 있다. 이 완문이 포함된 문서군에는 '신해년 이규호(李圭浩) 단자(單子)' 등 영암군에 올린 상송 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하는 '산소의 禁養'은 이생원 집안에서 겪고 있는 산송 문제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추측을 해 본다면, 이생원댁이 진행하고 있는 산송을 잘 처리해 주는 대가로 고을 관아에 토지를 기부하고 이에 대한 증명서를 완문의 형식으로 발급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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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흘첩(照訖帖) 2 고문서-증빙류-조흘첩 珍島府使 使<押> 珍島府使之印(8.0×8.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755_001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이다. 문서의 결락이 심한 편이며 이 때문에 수취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조흘(照訖)이란 '대조하여 확인을 마쳤다.'는 뜻으로 과거 응시에 결격 사유가 없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소학』을 고강(考講)하여, 과거에 응시할 수 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녹명(錄名)하고 과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 실시하는 『소학』에 대한 고강을 조흘강이라고 하는데, 이를 통과하였다는 증명서가 조흘첩이었다. 조흘첩은 과거장에 입장할 때 필요하였던 것은 물론이고 입장한 후나 퇴장할 때에도 그 소지 여부를 점검하였다. 조흘첩의 서식은 ⓛ발급자와 발급 목적[某爲照訖事], ②수취자의 성명·연령·거주지 등 정보, ③고강 통과 사실 통지[小學入格爲有置] ④종결어 [帖文成給爲遣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 ⑤작성연월 및 발급자의 착명(着名)으로 이루어진다. 조흘첩은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서식상의 큰 차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수량을 필요로 했던 만큼 그 서식을 목판에 새겨 인출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 즉 목판에 기본 서식을 새겨 인출한 뒤 공란에 수취자의 정보를 채워넣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문서의 경우는 직접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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珍島 爲照訖事 ▣▣(幼學)年 居 面 小學入格▣▣(爲有)▣(置) 帖文成給爲遣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準此使[着押][珍島府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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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平陵面射山居罪民李東憲右謹言日昨罪民以山事呈訴則 題音內從公議許葬是乎矣第伏念用山與否在於法理是在果惟彼朴帶春朴孟甲以境內常漢率婦女老少一邊詬辱一邊毆曳▣…▣喪身罔有紀極甚至於朴帶春及孟甲之母跟到罪民之家肆惡於內庭詬辱於外舍▣…▣聞同朴帶春朴孟甲兩漢爲先猛差捉致嚴囚依律洞繩使此化外之民以懲犯分之罪千萬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癸酉三月 日〈題辭〉兩朴所爲痛惡嚴治次■■■當刻捉來宜事 二十■■〔面任〕 主人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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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이규호(李圭浩) 단자(單子)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圭浩 靈巖郡守 官<押> 靈巖郡守之印 5顆(7.2x7.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93_001 신해년 4월에 이규호가 영암군수에게 올린 산송 단자. 신해년 5월에 이규호(李圭浩)가 영암군(靈巖郡) 관아에 올린 단자(單子)이다. 이규호는 같은해 4월에 선산인 군종면(郡終面)에 아버지 무덤을 투장(偸葬)한 하성조(河聖祚)를 영암군 관아에 고발하고 무덤을 즉각 파내달라고 요청하였고, 같은 달 2일에 도형을 그려온 후에 파내도록 독촉하겠다는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본 소지에서 이규호는 하성조가 여전히 무덤을 파가지 않자, 그의 어머니를 잡아 놓고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는 어머니를 인질로 잡은 것을 원망하고 글을 써서 협박하고 있다. 이에 이규호는 그 글을 적은 자를 찾아서 처벌하고 무덤을 파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암군 관아는 초5일에 "그 아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으니 그 패악한 버릇을 알만하다. 천만 가지 나쁜 말을 하더라도 어찌 꺼릴 일인가. 우선 무덤을 파내도록 독촉할 것이니 사소한 안정(顔情)으로 가볍게 정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잠시 물러가 기다려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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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郭德用 三書一枉。未謝未奉。勤慢懸矣。先丈狀草。言行甚高。文瀾洋溢。何成得若是耶。狀行貴簡嚴六偉文。倣表箋。非拙者所能。況頭緖猥多要領莫尋。而勿令遺漏。故擬面商而一顧非易奈何。孔子世家孟子列傳。不過幾行道德自著。朱子又刪定。今人爲狀畢書細行此已不及古人處。且子撰父狀不宜有贊。只合敍事以待立言可耳。甲本無文兄間年賜顔。故有言必遵。何獨於先丈恝然哉。敢刪煩取約。幷偉文以呈妄陳瞽說休誅。一枉相商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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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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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梁炳賢【會晳】 東溪翁門下。少實心從學者。高明移接。戶下晨昏薰陶。在溪翁。亦幸高明。非翁無淑身之方。無徒修飾外而。期躬行實踐可矣。甲離親不得。只合獨善尊能憂已甚。故發憂世言耶。承吾無勸勉語爲咎。尤見相與之盛。能不浮世風。守分自修。則無勸勉者乃所以恃而無恐。苟有勸勉者。吾何惜一語也。知怠惰爲病。則下勤篤之工。無造詣爲憂。則撿墮落之志。如此做去而已。若將此等語。作尋常話頭。不自驚省。則非言行相顧之義也。聖人庸言。必愼庸行。必謹勉之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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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梁炳賢 公明宣居曾者之門三年。以事親待賓爲悅。若讀書則尤美矣。吾從今日之學。悅古人之悅。而學之則美矣。爲弟子之職。而不學文。先儒已詳言之。子夏未學謂學不免有弊。溪翁之爲堂。爲開後進。繼先模也。升此堂者不勤學。而負父兄。背先謨。則非矣。吾從宜不有此。而相愛之深過。慮及此不妨。與佑承同照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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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宋聲五 蒼葭露白。不禁道長之歎。際蒙辱覆。一年往復洋溢盈箱。竊惟念今年。是先人贄謁定師之六十有三朞。而墓銘出流光易邁存沒難期。然自先祖大碑後。先祖禮儀公。府使公。祖考嘯巖公。三世不朽之文。傍先諸公文。多得伯叔子筆。皆先人及門後事。且先人名行。賴執事壽傳。私門光耀孰大焉。銘詞依敎以南服共崇。諸句遵用。而蔚然爲南服高士。七字旣出于執事立言之筆。可謂一字一金。豈以已改而置之乎。當書入于頭辭中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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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宋聲五 六月作金東江。弔行于大田。竊意晉拜高軒。而多數伴行。故將回路造門承誨矣。逢沈友權淳聞駕者。先已御水城覯行。悵然虛還。不勝紆菀。年前光山之行。今夏貝州之臨。百年好期會兩在。而顧跧蟄窮山。每違杖策隨後。所居雖僻陋。無聞先生杖屢。池臺如故。尊生庭先公追躡。則執事車過道林驛。若有指草坊山水者。亦豈吝一弓步武哉。會値有行。專賜辱臨。先生講道遺韻。亦可追述故事矣。未知有期否。先生遺躅所在。願成一件事追償先志。已達于尊庭。而未知能得成否。只切興歎。安文康公大碑。登刊拾遺。執事之助爲多。斯文世道之復明。豈非碩果消息歟。感歎深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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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宋聲五 覆書穩達。不留一日。卽賜惠答。德義之勤厚。手法之敏速。可繼先業。實爲世道。賀願一如所敎。朝兢夕惕。藏器於身。千萬顒祝。憑審德候。當暑保重。懋學日隆。景仰深遠。會甲棲身隴畝。書冊備不暇溫。白首窮廬。悔尤日積悶悶。先銘重荷修正。感幸先人服事。老先生十有九年。先生沒先人歸侍後七年。先生家孫銘墓。百世榮感。會甲十五歲。以童子謁先生于家。及解灑掃之役。山頹靡仰。中年雖二三瞻拜眞像于遠溪之堂。尙無以得淵源家學。一分緖餘。豈曰人乎哉。竊願卜宅南山淡谷間。與執事講聖賢父師之道。而甕裏醢鷄。安可學鵬搏之翼也。自憐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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