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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太守書【庚寅】 竊伏聞日者十室無祿。五馬經旋。棄卑湫入。淸淑此行。無異昇仙。而況桐鄕遺愛。當與流峙竝傳。在吾明府何憾。而但顧此呱呱之生。如乳在口。奪之可憐。奈之何奈之何。山陰一錢。情所不容已。而病不能諧。私心缺然。無以容喩。伏不審氣體萬寗。啓行在那日耶。秪切仰慕。毅坤羸悴之狀。薰沐是賴。牛刀莫施。烏頭力去。怒如可量。只祝行駕寗謐。謹拜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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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安上舍【重燮】書【癸酉】 謹再拜覆月初。自下沙歸下。書已在丌上。開緘乃去月十九日書也。伏審伊時調養諸節。慰感多矣。兼獲次韻詩一首。如拱重璧。珍謝何旣。況詩中寓意。令人提撕處多。朗吟數廻。便覺胸次灑然。牙舌生香。但所謂東塢主人者。非其人奈何。繼以騂愧。更伏惟此間愼體候。無至添損。慕仰且祝。胤友想開鉛槧之役。而同接必多坌集。佳句華篇往往有警耳處。尊長過夏之計。綽有餘也。艶慕不些。毅坤湯患非細。日事刀圭。煼悶何狀。卽未修復。職此由也。罪負深矣。敢望善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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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奇松沙【丙戌】 省禮言。前月安襄。殊極可慰。今日縷紲。聞甚駭然。大抵此事顚末。何如至此之境耶。不勝憤鬱。凡橫逆之來。雖聖賢所不免。而但當順受而已。外此何術。況復因此。動心忍性。德日益進。業日益修。安知不爲他日之福也。千萬勉旃。坦懷寬胸。勿生過慮。如何如何。弟今方發去。而再明似當抵完。諒下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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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 崔琡民 沙上一再面。熲熲在心曲。資稟儘厚深。天然去邊幅。隱几工夫大。承緖早有的。皓首遙相望。詎意歸駕促。人生故如許。衰老盡同浴。生芻爲君采。願言置一束。雞絮隔關山。嗟晩薤歌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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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유고(大谷遺稿) 6권 3책 大谷遺稿 大谷遺稿 고서-집부-별집류 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문집 표점영인 大谷遺稿 序: 上之三十八年歲次辛丑 序: 上之三十八年歲次辛丑 [1901] 金錫龜 목활자본 『대곡유고(大谷遺稿)』 3 10行22字 註雙行 한자 花口 內向2葉花紋魚尾 전남대학교도서관_불명처2 전남대학교도서관 1901년(광무 5)에 간행한 대곡 김석구(金錫龜, 1835∼1885)의 시문집, 6권 3책(목활자본)이며 김석구의 친족이자 영남의 노사학파 동문인 김현옥 등이 편찬하였다. 『대곡유고(大谷遺稿 』 해제 1. 생애 김석구(金錫龜, 1835∼1885)의 자는 경범(景範)이고, 호는 대곡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6대조 재록(載祿) 때 남원으로 들어와 자손들이 대대로 그곳에서 살았다. 5대조의 휘는 석빈(碩彬), 고조의 휘는 수채(受彩), 증조의 휘는 정삼(鼎三), 조부의 휘는 재곤(再坤)이다. 부친은 국현(國賢)이며, 모친은 경주김씨로 김창운(金昌雲)의 딸이다. 1835년(헌종 1년) 2월에 전북 남원 세산리(細山里, 현 전북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김석구의 뜻을 이뤄주기 위해 곡성(谷城)으로 이사하였다가 사문(師門)과 가까운 광주의 대치(大峙) 금곡(金谷 현 전남 담양군 대전면)으로 이거하였다. 이후 김석구는 스스로 호를 대곡이라고 하였다. 김석구의 부인은 경주이씨로, 이광순(李光淳)의 딸이고, 슬하에 아들 항순(恒淳) 하나를 두었다. 10세 전후로 이웃 동네 서당에서 『소학 』을 배웠는데 서당 선생이 옛사람의 행실을 오늘날 사람은 행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서당에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서당에 나가지 않은 일을 꾸짖자 서당에서 있었던 일을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더니, 아버지는 그가 원대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기고 고을 내 훌륭한 선생에게 가서 공부하라고 했다. 이후 『맹자 』를 읽고 스스로 맹자가 되기를 기약하였다. 사람들에게 김맹자로 불렸다. 1852년(철종 3) 18세에 도를 구하는 데 뜻을 두고 기정진의 문하에 입문하였다. 이때부터 27년 동안 기정진에게 수학하면서 정재규(鄭載圭, 1843~1911)와 정의림(鄭義林, 1845~1910)과 가장 친하게 지내면서 성리설부터 일상생활의 예법에 이르기까지 연구하고 강론하였다. 1875년(고종 12) 10월 정재규, 정의림과 함께 이일분수(理一分殊)에 대한 기정진의 사상적 정수가 담긴 「납량사의(納凉私議)」를 받아 읽었다. 김석구는 「납량사의」에 대해 질의하여 열 가지 중 아홉은 옳다는 인정을 받을 정도로 기정진의 학문적 신뢰가 두터웠다. 1876년(고종 13) 4월에도 세 사람은 기정진을 찾아가 「태극도설(太極圖說)」과 「납량사의」를 강론하였다. 기정진 사후 1880년(고종 17) 정의림과 함께 기우만(奇宇萬, 1846~1916)에게 『답문류편 』의 간행을 논의하였다. 『답문류편 』은 정재규의 주도로 김현옥(金顯玉)의 교감을 거처 1887년(고종 24) 간행되었다. 그러나 김석구는 『답문류편 』의 간행을 보지 못하고 1885년(고종 22) 8월 8일 5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문병을 간 기우만에게 김석구는 모친상을 끝마치지 못하고 스승의 가르침에 부응하지 못한 점이 죄스럽다며 기우만에게는 가학(家學)에 힘쓰라 하고 스승의 도를 계승하라는 말을 정재규와 정의림에게 전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김석구는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노사 기정진이 김석구에게 언제 과거시험에 응시할 것이냐고 묻자 김석구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도를 가슴속에 가지고 있지 않기에 과거를 볼 계획을 없다고 답변하였다. 기정진은 빙그레 웃으며 공자가 칠조개(漆雕開)에게 벼슬을 하라고 권했을 때 칠조개가 아직 벼슬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한 답변과 비슷하다고 하면서 사군자(士君子)가 이러한 뜻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격려하였다. 김석구의 집안은 가난했지만, 부모님과 처자들까지 아무런 불평 없이 청빈한 삶에 만족했다. 기정진의 손자인 기우만이 쓴 김석구의 「행장(行狀)」에 "어떤 사람이 기정진에게 제자 가운데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물으니, 기정진은 가난하면서도 독서를 좋아하고 조수(操守)가 있다며 김석구를 지칭하였다. 질문한 사람도 반드시 대곡(大谷)이 그런 사람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최익현(崔益鉉)이 쓴 「대곡유고서」에서 김석구를 '노옹(蘆翁)의 적전(嫡傳)'이라고 극찬하였다. 기정진에게 「납량사의」를 전수 받은 것을 수제자로서의 학술상 위치를 주돈이(周敦頤)에게 「태극도설」을 전수(傳受)한 정명도와 정이천 형제에 비유하였다. 고산서원[현 전남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소재]에 처음에는 배향되지 못하였다. 처음 서원이 개설되면서 진행된 배향 인물 선정과정에서 배향되어야 할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문인 중 6인[이최선, 조의곤, 기우만, 조성가, 김녹휴, 정재규]만 선정되고 김석구와 정의림이 빠지게 되었다. 1983년 7월에 김석구와 정의림이 추배(追配)되어 현재는 8인의 제자가 배향되어 있다. 2. 문집 구성과 내용 『대곡유고(大谷遺稿) 』는 대곡 김석구의 시문집으로 6권 3책의 목활자본이다. 김석구의 친족이자 영남의 노사학파 동문인 김현옥이 김석구가 남긴 글을 모으고, 김석구의 아들 김항순(金恒淳)이 보관하던 유문을 편집하여 친족 김창우(金昌宇), 김창민(金昌珉), 문인 기동노(奇東老), 이학순(李學淳)과 함께 출간하면서 최익현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김항순은 최숙민에게 발문을 부탁하였다. 최익현이 서문을, 기우만이 「행장(行狀)」을, 정재규가 「묘지명」을, 정의림이 「전(傳)」을 짓고, 최숙민(崔琡民)이 발문을 찬술한 것으로 보아 그의 학문적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권1은 시(詩)인데 모두 102제 113수가 수록되어 있다. 「우음(偶吟)」부터 「독좌(獨坐)」까지는 오언절구이고, 「상노사선생(上蘆沙先生)」부터 「경차하곡(敬次荷谷)」는 오언율시이다. 「근보기회일정동국연구(謹步奇會一鄭東國聯句)」, 「보월송제우연구(步月松諸友聯句)」는 연구시(聯句詩)이다. 「춘한(春閒)」부터 「우심(憂深)」까지는 칠언절구이고, 「성재여화기한서족형(惺齋餘話寄漢瑞族兄)」부터 마지막 작품 「우득능자(偶得能字)」까지는 칠언절구와 칠언율시가 섞여 있다. 김석구의 시는 제목이 2글자나 3글자~4글자로 짧은 것이 많고, 제목이 같은 시도 상당수 보인다. 내용 면에서 궁핍한 삶을 자족하면서 부족한 자신의 학문에 대한 나태함을 자책하고 면려하거나, 자연경관을 읊조리며 자연 속의 도를 추구하였으며 천리(天理)의 유행을 관조한 시가 많다. 「점운득사자(占韻得斜字)」,「야(夜)」, 「송풍(松風)」, 「즉사(卽事)」, 「청야(淸夜)」 등은 평범한 일상의 풍경에서 천리의 유행을 관조한 시이고, 「부앙(俯仰)」, 「우음(偶吟)」, 「관태허(觀太虛)」 등은 우주의 원리를 설명한 시이다. 「자고(自顧)」, 「자회(自悔)」, 「자탄음(自歎吟)」 등은 자신을 성찰하고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진전이 없는 자신의 공부에 대해 반성한 시이다. 「지주(砥柱)」, 「대하(大河)」 등은 물을 보면서 그 가운데 느껴지는 굳건한 절조를 노래하고 있다. 「차정주윤증별(次鄭周允贈別)」, 「차정후윤정계방계합시(次鄭厚允鄭季方契合詩)」, 「차권자후증별(次權子厚贈別)」 「송종인풍오귀제천(送宗人豐五歸堤川)」 등은 정면규(鄭冕圭), 정재규, 권기덕(權基德), 김현옥 등 영남 노사학파 문인과의 교유가 긴밀하였음을 알 수 있는 시이다. 「상노사선생(上蘆沙先生)」 2수, 「탈쇄(脫灑)」 등은 스승 기정진에 관한 시인데 그 중 「탈쇄」라는 시는 김석구에게 특별한 사연이 있다. 스승 기정진에게 학문의 방법에 관해 묻자, 학문하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을 테니 답변할 필요가 없고 다만 '탈쇄'가 매우 어려워 달리 방법이 없으니 다만 스스로 힘쓰는 것밖에 없다고 답해주었다. 김석구의 질의와 기정진의 답변이 『대곡유고 』 권4 「사문문답(師門問答)」에 보인다. 기정진은 「탈쇄설(脫灑說)」을 지어 김석구에게 주었는데, 『노사집(蘆沙集) 』 권16 잡저 「탈쇄설-증김경범(贈金景範)-」이 실려 있다. 권2는 서(書) 49편, 서(序) 5편, 기(記) 2편, 발(跋) 1편, 제문(祭文)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書)에는 노사 기정진을 비롯하여 이곤수(李崑壽), 민기용, 김한섭(金漢燮), 정시림(鄭時林), 정재규, 정의림, 기우만, 오상봉(吳相鳳), 김한기(金漢驥), 정봉현(鄭鳳鉉), 오우인(吳愚仁), 정면규, 권운환, 진박(陳樸), 정학인(鄭學仁), 심노종(沈魯綜), 권기덕, 권형중(權衡仲), 김현옥, 김국택(金國澤), 김제휴(金濟休), 박준기(朴準基)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첫 번째 편지는 스승인 기정진에게 올린 편지 1편과 기정진의 답서(答書)가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아마도 두 사람 간의 학문에 대한 문답이 「사문문답(師門問答)」으로 잡저(雜著)에 별도로 실려 있어서 서(書)에서는 1편만 실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김석구의 편지 내용은 주자가 언급한 '두서(頭緖)'와 '입로(入路)'를 가지고 『성학십도 』의 10도(圖)와 『격몽요결 』의 10장(章)에 대입해 각각 그 의미를 서술하고, 원래 임금과 어린아이로 저술 목적 대상자가 각각 다르지만, 선후와 차례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자신의 견해에 대해 질의하였다. 기정진은 주자가 말한 '두서'와 '입로'의 의미를 설명하고 『성학십도 』나 『격몽요결 』은 시장에서 보물을 찾는 것처럼 막막하여 서로 같지 않다고 답하였다. 다음은 「상이심재(上李心齋)」, 「답이심재(答李心齋)」로, 심재 이곤수(李崑壽)에게 올린 편지 5편이 실려 있다. 첫 번째 편지는 자신의 근황과 어머니의 병환을 전하고 재작년 봄에 아들이 고을의 이씨 집안과 혼인을 했는데 기골은 장대하지만, 공부를 안 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또 스승 기정진이 세상을 떠난 데에 깊은 애도를 표하였다. 그 밖의 편지에서는 독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고 어진 사우(師友)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근황을 전하기도 하였다. 습관과 기질을 변화시키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성현이 되는 공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고 탄식하였다. 예전 김석구가 기정진에게 배운 가르침과 이곤수의 견해를 파악하며 학문에 도움을 청하였다. 이를테면 기정진은 범씨(范氏)의 학설이 주자가 호남(湖南) 제공(諸公)에게 보낸 편지에서 논한 '중화초설(中和初說)'의 의미라는 말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하였다. 이 밖에 호남과 영남의 노사 문인들과 왕래한 편지를 수록하였는데, 강진에 사는 오남(吾南) 김한섭(金漢燮)에게는 부족한 재주로 학문을 궁구하지 못하고 존양(存養)·성찰(省察) 공부를 게을리하고 있으니, 가르침을 달라고 부탁하였다. 「여정월파(與鄭月坡)」 등 정시림에게 보낸 편지가 3편, 「여정일신계방(與鄭日新季方)」 정의림에게 보낸 편지 1편이 실려 있다. 「여정애산(與鄭艾山」 등 정재규에게 보낸 편지가 8편이 실려 있는데, 편지 중 정재규에게 보낸 편지가 가장 많다. 일상생활의 근황과 안부, 스승 기정진 사후 사문(斯文)에 대한 걱정, 또한 정재규가 편찬을 담당하고 있는 『답문류편(答問類編) 』을 비롯하여 스승의 문집 발간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거나 성리설과 예학에 대해 문답으로 견해를 밝힌 내용 등이다. 송사 기우만에게 보낸 편지는 「여기송사회일(與寄松沙會一)」 1편이 실려 있는데, 어린 시절 스승 기정진을 뵐 때 남파(南坡) 이희석 어른이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칭찬해주었던 일화를 회상하면서 어느덧 50세가 된 자신의 현재 모습을 탄식하였다. 그리고 『논어 』 「위령공(衛靈公)」에 "군자로구나, 거백옥(蘧伯玉)이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을 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거두어 감출 수 있겠구나."라는 구절의 주석과 『춘추좌씨전 』 양공(襄公) 14년에 거백옥이 난리가 일어날까 걱정해서 가장 가까운 국경의 관문을 통해 나라를 빠져나갔다는 일화를 대조하여 거백옥의 출처관을 질의하였다. 「답권순경(答權舜卿)」 등 권운환에게 보낸 편지 5편이 실려 있다. 권운환이 자신의 학문을 높인 발언에 대해 부끄럽고 현재 기억력이 너무 감퇴하여 전혀 공부를 못하는 근황을 전하였다. 그리고 공부에 있어 속세의 마음을 떨쳐 버리고, 확고하게 도에 용감하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직 '강(剛)'해야 하는데, 강은 '지경(持敬)' 공부에 달려있다고 강조하였다. 먼저 이를 위한 경(敬) 공부는 마음을 주일(主一)해야 하니,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 4글자에 공력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 스승의 상(喪)에 조정에서 제관을 보내어 조문하여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다는 내용, 자신이 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는 내용, 기우만이 막내 상을 당한 것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기도 하였다. 마지막 실린 편지에는 김석구가 권운환에게 보낸 것으로 성현의 천만 권 책 내용은 모두 자기의 신상(身上)에 관계되기에 진실로 좋아하기를 추환(蒭豢)과 같이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추환은 맛있는 고기 음식을 뜻한다. 「답진중문(答陳仲文)」 2편이 실려 있는데, 첫 번째 편지는 진박에게 스승 사후 소상(小祥)이 어느덧 지났건만 슬픔은 갈수록 크다며 자신의 근황을 답하였다. 두 번째 편지는 진박이 자신이 과도하게 칭찬한 것에 대해 곤란하다는 말을 먼저 언급하고 나서 자질이 좋고 나이가 젊은 진박에게 큰 기대를 한다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답종인산석풍오(答宗人山石豊五)」는 김현옥에게 보낸 답장으로, 먼저 『답문류편 』을 베껴서 보내주어 감사하다는 내용과 제천의 민기용 어른에게 보낸 문록(文錄)이 전달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노사집 』 간행에 대한 것과 자신이 학질이 들어 쇠약해진 상태를 전하고 있다. 이 밖에 정학인(鄭學仁), 심노종(沈魯綜) 등 같은 동문이나 박준기 등의 문인 등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데, 주로 안부를 묻거나 독서를 권면하는 내용이다. 서(序)는 총 5편으로 전송하거나 작별할 때 써준 송서(送序)이다. 첫 번째 「송김추사서(送金秋槎序)」는 영남에서 왔다가 떠나는 김추사(金秋槎)와 작별하면서 써준 글이다. 김추사는 김휘대(金輝大, 1803~1872)로,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성망(聖望)이다. 향산(香山) 이만도(李晩燾, 1842~1910)의 친형인 이만교(李晩嶠)의 장인이다. 김석구는 김휘대를 고인(古人)의 풍모를 지닌 분이라고 칭하였다. 송서 내용 중 천운정(天雲亭)이 나오는데, 경북 영주군 이산면 석포리 안마마을에 있는 시내인 내성천 주위에 김륵(金玏, 1540~1616)이 세운 정자이다. 「송안행오서(送安行五序)」는 제주도에서 바다를 건너 공부하러 온 안행오(安行五)를 전송하며 써준 글이다. 행오는 안달삼(安達三)의 자(字)이다. 「송민장중호서(送閔丈仲浩序)」는 제천으로 가는 민기용에게 써준 글이다. 「봉별명동주인서(奉別明洞主人序)」는 명동주인(明洞主人) 집에서 머물다가 작별하며 써준 글이다. 다음으로 기문(記文)인데 「쌍괴당기(雙槐堂記)」는 쌍괴당(雙槐堂) 국태환(鞠台煥, 1846~1914)을 위해 지은 기문이다. 국태환의 자는 경삼(景三),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비봉면(飛鳳面)에서 살았다. 회나무의 특성과 쌍괴당 선생이 천성을 잘 보존한 점이 비슷하다는 내용이다. 「호광재기(湖狂齋記)」는 호광자(湖狂子)와 취몽자(醉夢子)의 문답 대화를 설정하여 지은 우화(寓話) 형식의 기문이다. 다음 발문으로는 「서양정기우설후(書兩鄭奇遇說後)」 1편이 있는데, 영남의 정재규와 호남의 정의림이 같은 정(鄭)씨로, 마을 이름도 같은 묵동(墨洞)에서 똑같이 고인(古人)의 학문을 배우겠다고 기정진을 찾아온 사연이 기이하여 기정진이 가상하게 여겼다. 같은 것은 오랜 동문이라는 것밖에 없는 자신이 글을 지어주니 두 사람이 서로 면려하여 지극한 의미를 잊지 말라는 내용이다. 제문은 「제선사노사선생문(祭先師蘆沙先生文)」 3편과 「제김장여문(祭金章汝文)」 1편이 실려 있다. 「제선사노사선생문」은 기정진 사후 스승의 높은 도학과 행실을 마음 깊이 추모하는 제문이다. 그리고 「제김장여문」은 동문으로 선배인 김치희(金致熙)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문이다. 김치희는 호는 애일당(愛日堂)이고, 본관은 광주이며, 거주지는 낙안(樂安)이다. 권3부터 권5까지는 잡저(雜著)이다. 권3은 「자경설(自警說)」이 실려 있다. 「자경설」은 김석구가 36세 때인 1870년(고종 7) 11월 6일에 쓴 글로, 18세부터 고인의 학문에 뜻을 두고 지금까지 십수 년을 공부하였지만 별다른 진척 없이 초심은 거의 사라져 버린 것을 자책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할 각오를 다지며 쓴 글이다. 학문에 대한 면려, 자신의 처신과 언행, 자신의 마음가짐에 대한 경계하는 내용 외 김석구의 구체적인 학문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기질(氣質)을 변화시키는 것은 수기(修己) 공부에 있으며, 철저히 자기반성하고 그 반성을 통해서 새로운 학문의 경지로 나아갈 것을 언급하였다. 「자경설」은 『자경편(自警篇) 』이라는 이름으로, 대곡 김선생 금곡사(金谷祠) 유허비문 등 부록을 합하여 1988년 3월에 번역문(나갑주 번역)과 함께 발간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자경설」은 대곡 김석구의 삶의 자세와 사상을 잘 알려주는 자료이다. 권4는 「사문문답(師門問答)」으로 총 125개 문목(問目)에 대해 기정진이 답한 내용이다. 태극(太極)·동정(動靜)을 비롯하여 이기(理氣), 음양(陰陽), 도기(道器), 인심·도심, 미발과 이발,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등 성리설을 비롯해서 상례(喪禮)나 제례(祭禮) 등 예학에 걸쳐 많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노사 기정진과 대곡 김석구의 성리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김석구는 노사 기정진의 제자들 가운데 특히 도학(道學)으로 스승의 인정을 받았고, 그가 질의한 성리학 질문들 대부분에 대해 기정진은 그의 정확함을 높이 평가하였다. 대체로 김석구의 성리설에 대한 견해는 기정진의 성리설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아래 인용문은 「사문문답(師門問答)」의 맨 처음 대목이다. "(문) 김석구 : 태극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고 정(靜)하여 음(陰)을 낳는다고 하니, 태극은 리이고 음양은 기입니다. 기는 동정하지만, 리는 동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리가 동정이 있으므로 기가 동정이 있는 것이니, 태극에 동정이 있는 것은 천명이 주재한 것입니까? (답) 기정진 : 견해가 정밀하다." 권5는 「지구문답(知舊問答)」과 「사상어록(沙上語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구문답」은 정재규, 정의림, 정시림 등 동문 간에 유학 전반에 관해 논한 자료로, 노사학파의 성리학이나 예학 등의 학문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정재규와의 심성(心性), 이기(理氣), 상복(喪服)에 관한 논의가 가장 많고, 그다음은 정의림과 정시림 사이에 논한 내용도 수록되어 있다. 「사상어록」의 '사상'은 노사 기정진이 장성 황룡 강변 하사(下沙)에서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1852년(철종 3) 기정진을 뵙고 수학하기 시작한 때부터 27년 동안 기정진에게서 성리학과 예학 등에 대해 문답하면서 가르침을 받았던 내용을 간략하게 적어 둔 것이다. 권6은 김석구의 글이 아니라 김석구와 관련된 스승과 동문의 글을 모은 것이다. 기정진이 지은 「탈쇄설(脫灑說)」은 제목만 있는데, 그 세주(細註)에 의하면, 『대곡유고 』 4권 13장에 실려 있어 6권에서는 생략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음으로 기우만이 지은 「대곡기(大谷記)」가 있다. 김석구가 작은 골짜기에 은거하면서 스스로 호를 '대곡(大谷)'이라고 명명하자 그것을 소재로 삼아 지어 준 기문이다. 「정애산답권순경서(鄭艾山答權舜卿書)」는 정재규가 권운환에게 답한 편지로, 김석구의 문집을 편찬하기 위하여 기우만, 김현옥과 협력하자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김석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영․호남의 동문이나 제자들의 만사(挽辭)가 수록되어 있다. 만사를 쓴 인물은 이영수(李暎秀), 류도균(柳道均), 김정규(金正奎), 여봉섭(呂鳳燮), 문인 박준기(朴準基), 이진명(李鎭明), 기우만, 정면규, 정학인(鄭學仁), 정재규, 조용연(趙鏞淵), 정의림, 권기덕, 김현옥, 진박, 권운환, 이진만(李鎭萬), 문인 류인섭(柳寅燮), 문인 이학순 등이다. 다음으로는 기우만의 행장, 정재규의 묘지명, 정의림의 전(傳), 1895년(고종 32) 9월 9일에 쓴 최숙민의 발문, 그리고 맨 마지막에 문집 출간에 노력한 김창우가 1902년(광무 6) 3월에 쓴 글로 구성되어 있다. 3. 세부목차 序 : 崔益鉉 撰, 1901年 卷 1 詩 : 偶吟, 夜 偶吟, 春行, 淸夜, 偶題, 自顧, 占韻得斜字, 松風, 卽 物生, 無事, 雨後, 砥柱, 大河, 自悔四首, 月女, 少年, 悲奎燁, 有客, 送友人奇允左, 次鄭周允贈別, 聽蟬, 歲晏, 有感, 偶吟, 閑中, 悲判錫, 世事, 窮達, 時年三十二見鬢髮白莖, 次鄭厚允鄭季方契合詩, 隨石澗入洞中, 次權子厚贈別, 送宗人豊五四首, 上蘆沙先生, 閒吟, 靜觀, 上蘆沙先生, 冬至, 次何北山王魯齋迷途時, 俯仰, 偶吟, 偶吟, 獨坐, 挽崔上舍, 上心齋李先生, 吾生, 素志,脫灑, 有感, 敬次荷谷, 謹步奇鄭聯句, 步月松提友聯句, 春閒, 淸夜, 聽澗, 霧, 觀太虛, 所業未就, 縣燈, 幽居, 困字吟, 挽李公穉涵, 夜月, 慰寂, 客中逢晬日, 寄族兄漢瑞, 厖髮兒, 太山吟, 春行, 閒與, 憂深, 惺齋餘話寄漢瑞族兄, 我行, 三十書懷, 族生敬善昌宇有詩, 悔字吟, 閒中, 春晩, 暮春對雨, 謹次雙槐李丈壽席韻, 奉和宋友仲平, 閑民, 偶吟四首, 梧村月夜, 題西山精舍,憂深, 梧桐園與諸益吟, 山居, 答朴景有五難韻, 微凉, 感興二首, 無事, 自悟, 新元與諸益共賦, 歲暮吟, 下沙與諸益共賦, 肅字韻, 贈鄭友厚允, 偶得能字 卷 2 書 : 上蘆沙先生, 答閔鳳谷仲浩驥容, 與鄭月坡伯彦時林三, 答鄭日新季方義林, 上李心齋崑壽○五, 答金吾南致容漢燮, 與鄭艾山厚允載圭八, 與寄松沙會一字萬, 答吳止巢相鳳, 與鄭東國鳳鉉, 答鄭周允, 答陳仲文模二, 與沈致敎魯綜三, 答權衡仲, 答族丈觀湖, 答朴景有準墓, 與金樂三漢驥, 與吳愚仁, 答權舜卿雲煥五, 答鄭道麟學仁三, 答權子厚基德, 答宗人山石豊五顯玉, 答族兄漢瑞濟□二 序 : 送金秋槎序, 送安行五序, 送潬西南秀才序, 送閔丈仲浩序, 奉別明湖主人序 記 : 雙槐堂記, 湖狂齋記 跋 : 書兩鄭奇遇說後 祭文 : 祭先師蘆沙先生文三, 祭金章汝文 卷 3 雜著 : 自警篇 卷 4 雜著 : 師門問答 卷 5 雜著 : 知舊問答, 沙上語錄 卷 6 附錄 : 脫灑說, 大谷記, 鄭艾山答權舜卿書, 挽詞, 祭文, 行狀(奇宇萬), 墓誌銘(鄭載圭), 伝(鄭義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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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錄 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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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狀 府君諱毅坤。字士弘。號東塢。曺氏系出昌寧。始祖諱繼龍。尙新羅眞平王公主。封昌城君。因籍昌寧。在麗朝八平章五小監。代有偉人。至諱庶號淸澗。野隱田先生門人。當我太祖更化之初。承命書洪範以進。太宗朝奉使天朝。高皇帝嘉其知禮。賜桃核盃。名揚上國。詩登箕雅。累官至直提學禮曹參議。歷直長諱潤。司直諱碩。生生員諱承祖。至部將諱琛。遯于牟陽。子孫家焉。生諱仁俊參奉。生諱憲副護軍。生諱汝欽贈掌樂院正。生諱沆贈工曹參議。生諱漢明贈刑曹參判。無嗣。取季諱漢翊子彦徵子之。孝友根天。自號三吾堂。蓋昆季三人。卽吾一身。呼爲兄弟。嫌有彼此也。以壽階嘉善行同樞。於府君五世也。高祖諱守亮階通德郞。曾祖諱永華。祖諱啓聖。考諱炫瑋。皆篤厚克家。妣竹山安氏。諱光暎女。閨範備至。有貞靜之行。以純祖三十二年壬辰五月六日壬子。生府君於儉巖里第。生而姿質淸粹。稟氣聰明。孝愛天植。未嘗須臾離於父母。年纔出宿。受學于鰲川高公。喜讀書不煩督課。不命之止不止。言笑以時。動止自重。不曾渾諸兒嬉娛。屹然有大人之象。公嘗愛重之曰。羣兒石也。石也玉也。石乃府君小字也。幼有至性。親側怡愉。便身畢給。以至菜果新味。不先入口。進飯燃突不委於人。値天寒風猛。突燃不入。府君引被先臥。人問其故。曰衾褥欲以身溫之。年未成童。孝奉已如此。旣冠贄謁于蘆沙先生。時年十六矣。自此謝絶公車。專修爲己。博攷經子。深玩極繹。篤信聖賢。講其義理。凡先生訓誨談古及看書會心語句。皆爲箚記曰。聰明不如鈍筆。積成卷帙。府君見義之精深。析理之分明。淸淡攻苦。博雅微密。皆載此書。而其剛健正大。諄謹和厚之體。亦可得以傍覰矣。先生著詩以勸勉。記楣而獎許。其於師生知遇至矣。丁丑祖考疾篤證在痢。憂形於色行不能正履。藥餌煎粥。厠牏澣濯。必躬親之。不使家人代勞。至四五朔不交睫。日夜扶持。靡不用盡其誠。祖考病中作賦曰。以吾子之至誠。未假父之逝日。及丁憂。躄踊幾絶。三日不飮水漿。三年不解絰帶。終三年如一日。嘗營兆宿於峽店。店人供諸客以魚肉。進蔬菜於府君。諸客奇其事而問其故。曰見其欒灓。知其不御肉矣。哀慕積中。孚于人有如此者。服闋每月朔望。必謁廟省墳。臨忌祭。悲號哽咽。涕淚沾襟。與祭者莫不盡哀。有庶弟河坤漢坤安護接濟。罔不用極。至若一味一縷。必分喫着然後。安於心。盡其友道。推及族戚鄕黨。罔不敬服。所居峽俗。漸變有禮讓之風。以至婢僕。恩先於威。莫不悅服。亦莫之敢欺誕焉。丙子冬。府君侍先生於澹對軒。夜間先生起歌夢詞。府君曰。厭世之意。發於宵歌。先生殆將病矣。趨而人。先生曰。疇昔之夜夢得歌謠。此吾命詞。足成一闋。子其識之。府君出而悲痛曰。哲人其萎。吾將安放。己卯先生易簀。府君自殯斂至窀穸。誠愼將事。著詞述哀。操文告靈。環絰朞服。値忌必齊。素自治任而歸。卜築東岡之上。以簞瓢自樂。不求聞達于世。時有請學者。輒辭以非己任。不甚拒之。見爲人子弟者。勸之以孝弟。見讀書者。勸之以窮理正心。見農桑者。勸之以勤業勿惰。敎誨之方。無所不適。各因其地以遂其業。守宰要相見。非道義相孚者。輒稱疾不見。鄕人累應剡薦。必致書以尼之。府君雖在田畝。終不有忘斯世之心。至於水旱饑饉民命札瘥。則爲之憫惻。若恫在己。往往丙戌。寇攘大熾。都鄙甚擾。特著止盜論。以見施措之方。逮于辛卯。邪說恣行。晝宵隱憂。對人語到。先布扶正之義。家素淸寒。服食菲惡。人所不堪。而處之晏如。凡日用什物。取其完樸曰。此吾雅好。才涉奇玩。不經於目。裁衣必軟衷而梗表曰。外美有何益於身乎。人以學問來者。開顔賜欸。誨諭誾誾。與其不義。則逡巡相見。秖敍寒暄。以故門外無雜賓。而所從遊者。皆同門宿德。同志友生。每値風淸月白之辰。徜徉於山深林密之間。不知老之將至。而世間芬華爵祿。不入於心。有逈出塵曰氣像。嘗獨處書室。書策器用安頓有常。終日端坐。未嘗有傾倚。夜分就寢。亦不至於昏倒。居家務正。倫理篤恩。誼吉凶之需。稱家有無。不以贍貧介意。而隨事應當。綽綽有餘裕矣。府君受氣淸弱。自少愼護。年邁耳順。肌膚愈盎。氣力益健焉。當宁二十九年壬辰之臘。與同門諸勝。過除于先生古宅。同月二十九日。乃先生夫日也。因寢患候。不肖聞報而至請還。府君曰。以吾則死於先生之宅無憾矣。以汝則理宜舁還。任汝也。精神愈勵。扶坐談古昔無遺忘。沈昏讝語。不越乎經傳史家。旣歸疾甚。言語精神。自同平日曰。吾行忙矣。義不絶婦人之手。令婦女不得近。戒內外安靜。於是門族諸生侍坐。諸生請賜言。曰。吾何言。堯舜之道。孝悌而已。夫子之道。忠恕而已。捨此何求。命不肖曰。斂用時服。古人有行之者。無或過度。以重吾累也。因曰庾黔婁之斂。只有四隅衾。怡然顧諸生曰。諸君在座。死亦策矣。侍者進藥。儼然曰。死生有常理。飮此可延年乎。更無進也。命正枕而臥。考終于石汀之正寢。乃癸巳正月二十二日寅時也。享年六十二。嗚呼痛矣。昊天罔極。士林悼惜。鄕里戚嗟。于時老先生之孫松沙徵君。臨而哭之。銘于旌曰。東塢處士。知舊門人加麻致祭者數十人。同年三月十五日。克葬于長城府北北一面金良洞先塋左坐壬之原。配光山金氏諱文珣女。先府君三年而生。後府君一年而沒。生一男一女。男不肖錫休。女適高興柳允錫。不肖有一男三女。男悳承。女長適河東鄭淳榮。次幼。柳壻男濟學。餘幼。嗚呼。府君儀形端正。神彩精明。望之溫仁。自然近道。性度眞率。祛其邊福。早承師訓。門路得正。以淸潔雅粹之質。加勤敏確實之工。的知實踐。不爲貧窮所奪。消聲落華。不爲富貴所移。見人好學。親愛之不已。聞人善行。取之若不及。看書切忌放過。而必要精熟。以求踐履之方。著文不尙剽竊。而止於辭達。自無華藻之飾。嘗語學者曰。今人讀書。都不理會。專務記誦。雖讀萬卷。何益於吾身。又曰。多乎哉。一號文人。餘不足觀。先師嘗稱之。又曰。早寐晏起。人事廢矣。且恒居與妻孥混處。則雖有粹質。因循汨溺。世間萬事。一無可做矣。又曰。人於出處不得其當。則雖有細行。不足論也。士於毁譽以動其心。則雖有操守。不能堅也。是以老先生嘗許以質實君子。鄕人有言曰。入東塢之堂。對其儀形。聽其言論。則放逸之心。偸惰之氣。自不敢萌于中。府君平日至行卓操。於此可見其梗槪矣。嗚呼。以府君孝友之純篤。仁愛之資質。克享遐壽。以施措於時。有足作程於後世。而隱淪巖穴。抱道而終。是不能無所憾於天地之大也。嗚呼痛矣。藐玆不肖。無聞于學。府君之道之德。無以形容。秖收趨庭間若干見聞。揜涕謹構。以供立言君子採擇之一二云爾。不肖孤錫休。泣血謹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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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公諱毅坤。字士弘。東塢號也。曺氏系昌城。昌城。諱繼龍。尙新羅眞平王公主。封昌城。因籍昌寧。後奕甚。有八平章五小監。直學士諱庶。名揚上國。詩選箕雅。歷三世而諱琛遯于牟陽。子孫家焉。參奉諱仁俊。護軍諱憲。贈樂正諱汝欽。贈參議諱沆。入牟後四世。參議生諱漢明贈參判無子。子同樞彦徵。季漢翊生也。號三吾。蓋曰昆季三人。卽吾一身也。於公五世。高祖諱守亮。曾祖諱永華。祖諱啓聖考諱炫瑋。皆篤厚克家。妣竹山安氏。光暎其考。有閨範以純祖壬辰五月壬子。生公于儉巖第。端潔淸粹。衆中遊嬉。長老相謂曰。羣兒石也。石也玉也。石公小字。幼有至性。親側怡愉。便身畢給。飯進突燃。不委於人。嘗天寒風猛。突燃不入。公引被先臥。傍人怪問之。公曰。衾褥欲其身溫之。十歲內外。孝奉已如此。十四五文識優長。治功令有藝聲。旣冠。贄謁于吾先子。始至。鞍馬衣冠頗侈。及見先生。衣僅蔽體。廳事前不能旋馬。凝塵滿室。坐如泥塑。欿然自失曰用心於內。故如此。歸則舍馬。服儉而至。凝定近裏。大非前日人。起居畢。退入弟子列。灑掃謹。晨昏起居。一如事親。先子晩年。多居蕭寺靜僻。公常從之。有公在傍。則家人不以離違爲難也。先生亦曰。士弘孝於親。故事我如此。以厲家少後生。客至將命。客退講質。晨夕孜孜。不得不措。故聞諸子所未聞。先生訓誨談古。凡看書會心語句。皆有箚記曰。聰明不如鈍筆。積成卷帙。宇萬嘗刪去繁冗。以遺其家巾衍。公見義之精深。析理之分明。淸淡攻苦。博雅微密。皆載此卷。而其剛毅正大。諄謹和厚之體。亦得以傍覰矣。親癠憂形於色。行不能正履。藥餌煎粥。厠牏澣濯。必躬親之。或至四五朔。不交睫。丁憂。哀毁幾絶。水漿不入口。宇萬以糜粥進曰。君子毁不滅性。公曰。余過矣。始數嚥焉。三年不脫絰帶。不御酒肉。嘗偕公宿峽店。食有魚而蔬菜於公。余奇其事。聞其故。答曰。見其欒欒。知其不肉矣。哀慕積中。孚于人有如此者。服闋。望朔必上冢。忌日齋素。如見所爲齋。庶弟二。喫着與同。盡其友道。推以至於族戚鄕黨。內外婢僕。恩誼備洽。疎遠輸款。强暴致恭。所居峽俗。幾幾乎化醇矣。丙子冬。侍先生于澹對軒。夜間先生起歌夢詞。公曰。厭世之意。發於宵歌。先生殆將病矣。趨而入。先生曰。子來何遲。疇昔之夜。夢得歌謠。此吾命詞。足成一闋。子其識之。公出而悲痛曰。哲人其萎。吾將安放。己卯先生易簀。公若喪父。殯殮葬祭。誠信兩摯。著詞述哀。操文述行。心喪三年。治任而歸。卜築東岡。不求聞達。簞瓢自樂。同門推先進。後生學者欲聞先生之道者。求之於公。庠舍不能容。而公推明先生之道。庸能使西河之民不疑於夫子。雖在草野。不忘憂國。所著止盜論。槪見其施措。嘗邪說大熾。公以扶正爲己任。言議所及。及公門者。皆潔淨自守。而公居舊宅。獨超然於風埃。非公所存之正大。烏能使匪類知戢乎身後也。家淸貧。菲衣惡食。人所不堪。而不以屑意。凡日用什物。取其完樸曰。此吾雅好。才涉奇玩。不經於目。見人好學。親愛之無己。其疎外者。必鄕里之不恒子弟也。以故門無雜賓。所往訪皆同門宿德。同志友生。相與諷詠於山深林密之間風淸月白之辰。不知老之將至。而世間芬華爵祿。不入於心。故鄕人每以公應剡薦。致書尼之。邑宰聞公名相邀。引疾不見。此其志行大槪。歲壬辰。是公回甲。往參先生忌祀。因與同門友生。守歲於先生古宅。因寢疾數日。病已不可爲矣。公怡然執余手曰。吾死於先生之宅幸矣。精神冞厲。扶坐談古昔無遺忘。沈昏譫讏。不越乎經傳史家。時或呼余曰。吾心神炯若燈火。凡少時所得。老而忘失者。目前若貫珠然。少日有此成就。定不如今落下。子錫休。孫悳承。得病報而至。堅請舁還。公曰。以吾則死此無傷。以汝輩則理宜舁還。任汝也。旣歸疾益篤。婦人出成公志也。諸生請賜言。公曰。吾何言。堯舜之道。孝悌而已。夫子之道。忠恕而已。命錫休曰。斂用時服。有無稱家。無以重吾累也。進藥不飮曰。死生有命。藥不能延吾生。命悳承正枕而臥。從容而逝。乃癸巳正月二十二日也。嗚呼。先子及門先進。零落將盡。後輩之仰於公者。巋然如靈光。而遽棄後學。痛惜無及。及門加麻。亦若而人。以是年三月十五日。克葬于長城北一面金良洞先塋負壬原。配光山金氏考文珣。後公一年均。一男卽錫休。一女適高興柳允錫。錫休一男卽悳承。三女長適河東鄭淳榮。次幼。柳壻男濟學。餘幼。嗚呼。公早得依歸。門路得正。以淸明雅粹之質。加勤敏精實之工。不爲富貴所移。不爲貧賤所撓。篤學力行。淸修苦節。先師許公爲君子。後進推公爲長德。看書不務乎涉獵。而必求爲實得。爲文不尙乎華藻。而僅足於辭達。竟日端拱。未嘗見歌側。待朝疾書。亦不忘妙契。几案整勅。以至果木成列。堂室灑掃。亦須微塵不起。夙興夜寐。雅言以厲。後生妻孥混處。據禮以戒少輩。常曰。入於出處。未得其當。則雖有細行。不足論也。士於毁譽以動其心。則雖有操守。不能堅也。是以鄕人有言曰。入公之室。接公之言。承公之顔。則放逸之心。偸惰之氣。自不敢萌。可見公色辭之感於人也。公自及吾先子門。於吾伯仲莫逆。宇萬以故人稚弟。忘年而從逐焉。公言行細微。罔有不知。而以不得安且成三字受托。今二載而未及筆焉。顧不可以苟簡塞責。而時事罔極。妄進丐章。嶺海斧鉞。在分儻來。恐不得自力於狀行。以負幽明。姑擧其梗槪。以竢知公者增刪焉。歲丙申三陽月。幸州奇宇萬謹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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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中逢晬日 遙憶老人倚閭望。那堪遊子陟岵情。眼前物物皆春意。何事窮廬惱不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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霧 夕霧濛濛壓地飛。山齋靜聽雨聲微。須臾變態成雲去。太古靑山依舊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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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沈致敎【魯綜】 二月初間封謝書。附昇平金君去。竊計已入關聽矣。過去浩劫。不必更煩。伏問際玆。祝融按節。靜餘起居。更若何。增試在前。百戰餘胸。算必優優。爲賀得意。而亦爲老將慮。更生一敵國也。生老慈氣力常凜綴。私悶。賤軀自經瘴瘧後。若干魂魄都消落了。圉圉之形殼尙存。而坐在世故之纏縛。坐地不遷。始知世間自有眞蹩躄。而蹩躄二字。非特脚不伸底人也。然苟蒙不我遐。則千載亦朝暮遇也。見不見何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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鳳山齋龍齋宋丈見枉 琴朋棋伴日相呼瓢飮寒泉代酒沽院落春歸花結子澗田麥熟鳥將雛深山巖壁晴還潤極浦雲霞遠却無杖屨飄然乘興至新詩淸絶總奇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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閒居【二首】 陰陰嘉木滿長堤午睡初醒簾箔低稚鹿習人來野食幽禽慣客上欄啼剌花聊泛濁醪飮柿葉更宜佳句題野老來言山外事早秧晩麥綠相齊終日坐山齋晴光無際涯泉聲撼小戶樹影轉空階燕子新年語杜宇故國懷更荷諸友至蔬菜與之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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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族兄漢瑞【濟休】 問君讀易室。快意有誰同。知應自得處。方寸動和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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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太虛 太虛之體一渾然。沖漠圓融萬化儲。人能識得大虛後。始信吾心有太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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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道麟 遠地寒日。此書無恙爲賀。心力過人示中云云。弟本無濟人手段。不惟不能濟人。自濟不得。何暇矜人之不能也。然進道入德。須用已力。難仰他人。熟讀古人書切近處。精思實體。則處事接物之方。自我得之。不待人之矜我也。願勉旃。弟狀不足仰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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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道麟 凡物留置中路。少焉尋覓。則有得有不得。而留書明湖。至周年之久。兼新簡無恙入吾廬。非心力然乎哉。歎仰無已。冬夏侍湯奉老之人。烏得免乎奔走風埃。尋數無緖。未知來示之誠否。而以我臆料。兄之汨沒勞攘。似與古之躬耕行傭者有間。躬耕行傭。猶有能讀書窮理。況不至此者耶。但恐志不及古人。弟懶惰成痼。平生不能成誦一卷。安敢與議於尋數事。因來書。語不知裁。還切愧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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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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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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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丈席回甲韻【戊午】 幾年使我坐春風。興感非惟此歲窮。恨深未睹仁躋域。心切偏荷雨化功。咏來莪句情私切。陪去蘭庭喜懼同。拜獻筵前無彊壽。壽星增耀耀南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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