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전주향교(全州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孔夫子誕降二千四百八十年己巳四月日 李錫龍 朴榮來 金在洪 등 大成敎僉座下 孔夫子誕降二千四百八十年己巳四月日 李錫龍 全州鄕校 전라북도 전주시 1개(흑색, 방형), 1개(적색, 정방형) 전주역사박물관_불명처3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6_03_A00001_001 1929년 전주향교(全州鄕校)의 유림(儒林) 이석룡(李錫龍) 등이 각 고을의 유림들에게 보낸 통문(通文). 1929년 4월에 전주향교(全州鄕校)의 유림(儒林) 이석용(李錫龍) 박숭래(朴崇來) 김재홍(金在洪) 등이 대성교(大成敎), 즉 각 고을의 모든 유림들에게 보낸 통문(通文)으로, 전(前) 참봉(叅奉) 진재홍(陳在洪)의 효행(孝行)을 표창하는데 함께 나설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전주군(全州郡)에 세거하던 양산진씨(梁山陳氏) 진양수(陳陽隨)의 아들인 진재홍은 7, 8세 어린 나이인데도 성품이 정직하고 신중하였으며, 좋지 않은 행동이나 말은 가까이 하지 않고 오직 효우(孝友)에만 힘썼다. 장성하여서는 부모를 공양함에 지극정성이었으며, 돌아가신 후에는 부모가 소지하였던 물건을 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며 또한 부모의 가르침을 잃지 않고 따랐다. 부모의 기일에도 지극 정성을 다하고 자손들을 의롭게 가르치며, 주변에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사재를 털어서 기부를 하며 살피니 주변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에 그의 인물 됨됨이를 잘 알고 있는 동리 주민과 유림들은 각 고을의 유림들에게 통문을 올려 그의 효행과 선행을 표창하고 비각(碑閣)을 세워 그의 아름다운 행실이 오래도록 후세에 전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동참할 것을 요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