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100) 신사 상량문 道民新舍上梁文 사람이 땅에서 살다가 병이 들고 나무에서 살다가 떨어지기도 하자, 선성(先聖)이 궁실(宮室)의 제도를 세웠고,101) 해를 헤아리고 그림자를 측정하여 후생(後生)들이 띠 집의 법식을 모방하였다. 시(詩)에서는 서우(胥宇)102)의 장(章)을 말하고 예(禮)에서는 정침(正寢)의 법을 두었다. 주인은 농포(農圃) 가운데 우활한 학자요 시주(詩酒) 간에 취옹(醉翁)103)이다. 뜻이 씩씩하여 용을 그렸으나 화룡점정(畫龍點睛)의 묘술은 터득하지 못하였고, 매독(買櫝)의 마음이 있었으나 한갓 환주(還珠)104)의 장탄식만 일으켰다. 서하에서 쓸쓸히 살던 일105)은 알려지지 않았고 북해에서 변화하려던 날개도 들지 못했다.106) 원생(原生)처럼 빈천107)했지만 지락한 곡굉(曲肱)의 삶108)을 사모했고, 원량(元亮)처럼 가난하지만 어찌 편안한 용슬(容膝)109)이야 없겠는가?이에 남촌(南村)110)에 터 잡은 집을 본받고 북산(北山)111)의 그윽한 거처를 모방했다. 바다 밖의 명승은 육오(六鰲)112)의 등에 근접하고 호수 북쪽 승경은 삼신산(三神山) 물가의 물을 마주하고 있다. 새 도시인 영평(永平)의 남쪽이요 옛 현(縣)인 도민(道民)의 부곡(部曲)이다. 산이 서리고 계곡은 굽이져 이원(李愿)113)의 거처를 떠올릴 만하고, 물이 감돌고 들판은 평평하여 사람들은 중장통(仲長統)114)의 집으로 부른다. 때가 좋고 날짜도 길하니, 수동(竪棟)과 횡량(橫樑)을 가설하고 애오라지 단정한 붓을 휘둘러 상량의 공적(工績)을 돕는다.들보 동쪽에 떡을 던져라바다 밖 단구115)와 통할 듯하다여기에서 청학동116)이 바로 보이고하늘과 땅 낮과 밤이 환중117)에 떠있다들보 서쪽에 떡을 던져라금악과 영탄118)의 빼어난 기운이 나란하다교외는 백년토록 안개 낀 달밤 같은데호미질 하고 봄 비 속에 긴 내를 지난다들보 남쪽에 떡을 던져라달이 청산에서 솟아 푸른 기운을 가른다산 밖으로 영주119)를 접할 듯하고바다의 해와 하늘 땅 셋이 모두 잠긴다들보 북쪽에 떡을 던져라천주120)와 북극성이 북극을 향하도다양보121)를 크게 읊으니 읊을 때마다 쓰라린데뭇별들이 어지러이 남쪽 사막으로 이어진다들보 위로 떡을 던져라구만리 긴 하늘에 쌓인 기운이 출렁인다얼굴 젖히니 내 정신 몹시 상쾌하게 하고밝은 해와 달이 내 이마에 임하도다들보 아래로 떡을 던져라만고토록 곤유122)에 빈마123)를 멍에 하라길한 징조를 펴서 아름다운 상서 만드니한 구역의 화기는 천년토록 이어지리라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뒤로는 재앙이 영원히 그치고 원포(園圃)에는 길이 봄만 있으며, 시서를 읊고 외워 집에는 추로(鄒魯)의 군자124)가 가득 차고, 가정에서 충효를 전하여 방에는 하락(河洛)125)의 순수한 기풍이 있으며, 꿈에 웅비(熊羆)126)를 꾸어 길이 〈종사(螽斯)〉127)의 경사를 받으며, 거북과 시초의 점괘가 길하여 실로 풍년128)의 상서를 누리고, 그 시작을 이제부터 하여 끝없이 전할지어다. 土而病木而顚。 先聖起宮室之制。 規之日測之景。 後生倣茅茨之儀。 詩稱胥宇之章。 禮有正寢之則。 主人農圃中迂學。 詩酒間醉翁。 志壯畫龍。 未得點睛之妙術。 心存買櫝。 徒起還珠之浩嘆。 西河之索居無聞。 北海之化羽未擧。 原生貧賤。 縱慕至樂之曲肱。 元亮屢空。 寧無可安之容膝? 玆効南村卜宅。 竊倣北山幽居。 海外名區。 近接六鰲之背。 湖陽勝塏。 平挹三山之濱。 新都永平之南。 舊縣道民之曲。 山盤谷轉。 足數李愿之居。 水迴郊平。 人稱仲長之宅。 辰旣良兮日吉。 架竪棟兮橫樑。 聊揮端毫。 用贊工績。 抛梁東。 海外丹邱若可通。 從此直望靑鶴洞。 乾坤日夜泛環中。 抛梁西。 錦岳靈灘秀氣齊。 郊外百年烟月夕。 一鋤春雨渡長溪。 抛梁南。 月出靑峯割碧嵐。 山外瀛洲如可接。 海光天地尙涵三。 抛梁北。 天柱北辰拱北極。 梁甫大吟吟正苦。 衆星錯落連南漠。 抛梁上。 九萬長天積氣蕩。 仰面不堪爽我神。 分明日月臨吾顙。 抛梁下。 萬古坤維駕牝馬。 能發休徵作嘉祥。 一區和氣千春夏。 伏願上梁之後。 災殃永息。 園圃長春。 絃誦詩書。 戶充鄒魯君子。 家傳忠孝。 室有河洛純風。 夢叶熊羆。 永服螽斯之慶。 卜吉龜蓍。 允享魚矣之祥。 其始自今。 用傳無極。 도민(道民) 김만영이 우거하던 고을이다. 땅에서……세웠고 한유(韓愈)의 〈원도(原道)〉에 "옛 시절에 사람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성인이 나오신 연후에 서로 살려주고 길러주는 도리를 가르치셨다.……나무에서 살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땅에서 살다가 병이 나자 그 후에 궁실을 짓게 했다.[古之時, 人之害多矣, 有聖人者立然後, 敎之以相生養之道.……木處而顚, 土處而病也, 然後爲之宮室.]" 하였다. 서우(胥宇) 집터를 살펴보아 잡는다는 뜻이다. 《시경》 〈면(綿)〉에 "고공단보가 아침에 말을 달려와서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 아래에 이르니 이에 강녀와 함께 와서 집터를 보아 잡았도다.[古公亶父, 來朝走馬. 率西水滸, 至于岐下. 爰及姜女, 聿來胥宇.]" 하였다. 취옹(醉翁) 북송(北宋)의 구양수(歐陽脩)이다. 그는 〈취옹정기(醉翁亭記)〉를 지어 자신이 '취옹(醉翁)'인 이유를 설명하였다. 매독(買櫝)의……환주(還珠) 근본은 버리고 지말(枝末)만 좇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초(楚)나라 사람이 목란(木蘭) 상자에 주옥을 담아 정(鄭)나라 사람에게 팔자, 그 정나라 사람이 상자만 사고 구슬은 돌려주었다는 우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韓非子 外儲說左上》 서하에서……일 벗들과 떨어져 홀로 지낸 일을 가리킨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서하(西河)에서 노년을 보내던 중에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시력을 잃고는 증자(曾子)의 꾸지람을 받자, "내가 벗들을 떠나 혼자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吾離群而索居.]"라고 사과했던 고사가 있다. 《禮記 檀弓上》 북해에서……못했다 높은 뜻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북해(北海)에 사는 곤(鯤)이란 물고기가 붕새로 변화하여 구만리(九萬里)를 난다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원생(原生)처럼 빈천 '원생'은 공자(孔子)의 제자인 원헌(原憲)을 말한다. 그는 청고(淸高)하고 빈한(貧寒)하게 사는 선비의 대명사로 쓰인다. 《莊子 讓王》 곡굉(曲肱)의 삶 빈한한 생활 속에서도 도를 누리는 삶을 말한다. 공자가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서 베더라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하였다. 《論語 述而》 원량(元亮)처럼……용슬(容膝) '원량'은 동진(東晋)의 시인인 도잠(陶潛)의 자이다. '용슬(容膝)'은 작은 집을 의미한다. 도잠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남쪽 창가에 기대어 교오한 마음을 부치니, 무릎만 겨우 들여놓을 작은 집도 편안한 줄을 알겠네.[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 하였다. 남촌(南村) 도잠(陶潛)이 살던 곳인 율리(栗里)를 가리킨다. 도잠의 〈이거(移居)〉에 "예전부터 남촌에 살고 싶었으니, 좋은 집터 찾아서가 아니라오. 들으니 깨끗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 많아, 즐거이 아침저녁으로 자주 만나려고 해서라오.[昔欲居南村, 非爲卜其宅. 聞多素心人, 樂與數晨夕.]" 하였다. 북산(北山) 은자의 처소를 의미한다. 남제(南齊) 때 공치규(孔稚圭)가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북산에 은거하다가 변절하여 벼슬길에 나간 주옹(周顒)을 몹시 책망하는 뜻을 서술했다. 육오(六鰲) 바다의 삼신산을 비유한 것이다. 본래 '육오'는 바다의 신산(神山)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는 6마리 큰 자라를 가리킨다. 《列子 湯問》 이원(李愿) 당나라 때의 은사(隱士)이다. 이원(李愿)이 벼슬을 사직하고 물러나 반곡(盤谷)에 은거할 때 한유(韓愈)가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를 지어 그를 칭찬했다. 중장통(仲長統) 원문의 '중장(仲長)'으로, 후한(後漢) 때의 명사인데 조정에서 벼슬로 부를 때마다 병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後漢書 권49 仲長統列傳》 단구(丹邱):밤이나 낮이나 항상 밝은 땅으로, 우인(羽人)이 죽지 않고 산다는 선경(仙境)이다.《초사(楚辭)》 〈원유(遠游)〉에 "우인을 따라 단구로 나아감이여, 죽지 않는 옛 고장에 머물련다.[仍羽人於丹丘兮, 留不死之舊鄕]." 하였는데 왕일(王逸)의 주에 "단구(丹丘)는 밤이나 낮이나 항상 밝다.[丹丘晝夜常明也.]" 하였다. 청학동(靑鶴洞) 지리산(智異山) 속에 있다는 선경인데, 아직까지 아무도 그곳을 찾지는 못했다고 한다. 환중(環中) 절대적인 경지를 말한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피와 차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을 도추(道樞)라고 한다. 문의 지도리는 환중을 얻어야 무궁한 것에 응할 수 있으니 시란 하나의 무궁한 것이며 비 또한 하나의 무궁한 것이다.[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樞始得其環中, 而應無窮, 是一無窮, 非亦一窮.]" 하였다. 금악과 영탄 '금악(錦岳)'은 전라도 나주(羅州)의 금성산을, '영탄(靈灘)'은 영산강을 말한다. 영주(瀛洲) 신선이 살았다는 삼신산(三神山) 중의 하나이다. 천주(天柱)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이른다. 《列子 湯問》 양보(梁甫) 양보음(梁甫吟)으로 악부(樂府)의 곡명이다. 지금 전해지고 있는 제갈량(諸葛亮)의 〈양보음〉은 춘추 시대 제(齊)나라 재상 안평중(晏平仲)이 도량이 좁아 세 명의 용사를 죽이고야 만 일을 한탄하는 내용이며, 이백(李白)의 〈양보음〉은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지 못한 울분을 서술한 것이다. 곤유(坤維) 곤유(坤維)는 지유(地維)를 가리키는 듯하다. 지유는 대지(大地)를 유지하는 동아줄을 말한다. 《列子 湯問》 빈마(牝馬) 암말이다. 《주역》에서 땅을 암말에 비유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주역》 〈곤괘(坤卦)〉에 "곤은 크게 형통하고 암말의 정함이 이롭다.[坤, 元亨, 利牝馬之貞.]" 하였다. 추로(鄒魯)의 군자 '추로(鄒魯)'는 공자가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이었고, 맹자가 전국 시대 추(鄒) 땅 사람이었던 데에서 온 말이고, 여기서는 유학을 하는 선비를 가리킨다. 하락(河洛) 하수(河水)와 낙수(洛水)의 병칭으로 낙양(洛陽)을 가리키는바, 북송(北宋)의 정자(程子) 형제가 거처하던 곳이기 때문에 이들을 지칭하며, 정주학을 통칭하는 단어로 쓰인다. 웅비(熊羆) 남자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시경》 〈사간(斯干)〉에 "대인이 점을 치니 곰과 큰곰은 남자를 낳을 상서요, 살무사와 뱀은 여자를 낳을 상서로다.[大人占之, 維熊維羆, 男子之祥, 維虺維蛇, 女子之祥.]" 하였다. 종사(螽斯)의 경사 〈종사(螽斯)〉는 《시경》의 편명으로, 자식을 많이 두는 경사를 의미한다. 그 시에 "수많은 메뚜기가 화목하게 모여들듯, 마땅히 그대의 자손 번성하리라.[螽斯羽, 詵詵兮, 宜爾子孫, 振振兮.]" 하였다. 풍년 원문의 '어의(魚矣)'로,《시경》 〈무양(無羊)〉에 "목인이 꿈을 꾸니, 사람들이 물고기로 보였는데……사람들이 물고기로 보이는 것은, 실로 풍년이 들 조짐이다.[牧人乃夢, 衆維魚矣,……衆維魚矣, 實維豊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