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강공 유정○바로 선생의 장손이다 이 외재에게 보낸 편지 병오년(1666년, 현종7) 鳳崗公【有禎○卽先生長孫】與畏齋書【丙午】 근래 초여름에 삼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존체는 어떠하신지요. 삼가 어른을 존모하는 못난 저는 미천한 정성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유정(有禎) 등은 젊었을 때부터 먼 지방을 떠돌면서 집사(執事)의 성대한 명성을 들은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까지 찾아뵙지 못하고 다만 스스로 사모할 따름입니다.지금 어른께서 조부(祖父)의 옛날 삭방(朔方)의 공을 뒤미처 포상하여 이전의 공로에 보답해달라고 청하신 것은 저희들은 생각지도 못한 것인데, 상소한 말과 사지(祠志)를 받들어 보니 더욱 마음속으로 탄복합니다. 또 선 상국(先相國) 택당공(澤堂公, 李植)께서 평사(評事)가 되었을 때 조부가 창의한 일을 기록한 것과 및 감영한 한 절구25)를 보니 더욱 지극한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선 상국(先相國)은 조부와 일찍이 한 번도 서로 만나본 교분이 없었는데 이미 공적을 기록하였고 또 충성이 있다고 시로 읊으셨으니, 어찌 조부의 충성이 무고를 당한 것을 슬퍼하고 조부의 공을 보답하지 않는 것을 애석히 여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집사께서는 조부를 이어 50년이나 지난 뒤에 평사가 되었는데, 선친께서 슬퍼하고 애석하게 여긴 것에 느낌이 일어 능히 장사(壯士)의 숙원을 충실히 따라 방백(方伯)에게 말하여 사당을 세울 것을 허락하게 하였고, 조정에 알려서 소급하여 포상하여 줄 단서를 드러내도록 청하였습니다. 조정으로 소환되자 공은 제 조부 공이 큰데도 보답하지 못하며 원통함을 품고 죽었는데 신원 받지 못한 상황을 극진히 말하였으므로 대신이 이로 인하여 임금 앞에서 자세히 진달하였으며 이에 주상께서 특별히 높은 벼슬을 추증해서 뒤미처 포상하게 하였습니다. 1백 년 동안 이미 방치된 공적을 하루아침에 문득 지하에서 보답을 받게 되었으니, 임금의 은덕이 망극하여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 만분의 일도 보답할 수 없으니, 다만 스스로 감읍할 따름입니다.만약 집사가 방백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방백이 어디에서 들어서 조정에 알렸겠습니까? 또 만약 집사의 봉소(封疏)가 전하에게 진달되지 않았으면 대신이 어떻게 임금에게 진달하였겠으며, 전하께서 어찌 밝게 알 수 있겠습니까? 집사가 소급하여 포상하도록 강력하게 청한 것이 비록 국가가 보답하는 의리라고 할지라도 우리 자손의 입장에서는 그 감격한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이미 지나간 것은 사람이 잊어버리기 쉬운 것이고 앞으로 다가올 변고는 사람이 생각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 충의와 공렬이 사라질까 애석히 여겨 그 일이 이미 지나간 것이라고 방치하지 않고 반드시 찬양하고자 하는 것은 덕의가 지극히 두터운 것이며, 국가의 변고가 때로 있을 것이니 앞으로 올 것을 미연에 방비할 것을 생각하여 반드시 사람들의 마음을 고무시키려고 한 것은 생각이 심원한 것입니다. 그 중대한 것을 알아서 이 급무를 앞서 처리하니, 집사는 국사에 대해여 참으로 먼저 할 바를 알았다고 할 만합니다.사람이 일을 할 적에 의도한 바가 있어서 그것을 하는 자가 많거늘 집사의 이런 행위는 다만 사리에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니, 어찌 의도한 바가 있어서 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장남헌(張南軒)이 말하기를 "의도한 바가 있어서 그것을 하는 것은 이(利)요, 의도한 바가 없는데 하는 것은 의(義)이다."26)라고 하였습니다. 집사가 이 일을 함은 오직 의(義)를 위해서입니다. 공(公)이란 한 글자는 군자를 만드는 틀입니다. 집사께서 충의를 널리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공심(公心)이요, 국가를 위하여 뒷날을 염려하는 것도 공심(公心)입니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공변되면 즉 하나가 된다.'27)라 하였으니, 집사의 마음가짐이 이미 공(公)입니다. 집사께서 학문하실 때 세상의 이치를 하나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니, 타인 보기를 자신 같이 하여 이 마음을 다하는 것은 군자의 충서(忠恕)요,28) 남이 억울함을 당한 것을 듣고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서 걱정해 주지 않는 것은 속인의 상정(常情)인 것입니다. 옛날에 증자가 남을 위하여 도모하면서 충심을 다하는 것을 날로 성찰하는 공부로 삼았으니,29) 그가 남을 위하는 데 마음을 다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집사께서 이러한 마음을 평소 알지 못하던 사람에게 다 하셔서 그 무고 받은 것을 밝혀 주었고 그 공을 드러내었으니, 집사가 이런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남을 위해 도모하기를 충심으로 하는 공부가 있기 때문입니다.남을 관찰하는 자는 다만 그 마음 쓰는 곳을 보기 때문에 한 가지 일만 보아도 족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한 가지 일에서 삼가 집사의 마음 쓰는 곳을 보니 어찌도 이와 같이 허다한 선(善)을 지니고 있습니까. 또한 집사께서 저의 조부를 뒤미처 드날린 것은 저의 조부에게 사사로운 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성대한 의열(義烈)을 알고 나서 있는 힘을 다해 말한 것입니다. 제가 성대하게 집사를 칭송하는 것은 다만 저의 조부의 의열을 찬양해 준 때문만이 아니라 집사의 이와 같은 선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칭송한 것입니다. 지금 만약 저의 조부를 찬양하는 것에 혐의를 두어서 집사의 선을 칭송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성인이 칭송하기를 즐기라는 훈계가 없고 군자가 선을 좋아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로 혐의를 피하려는 사사로운 생각일 따름이니, 어찌 공심과 직론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누누이 칭송하면서 스스로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집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전부터 우러러 존모하는 마음을 지녔으며 또 거듭 오늘날 탄복하는 진심이 우러나는데, 어찌 집사의 집에 한번 나아가 친히 안색을 받들고 말씀을 듣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부친의 연세가 높고 숙환이 위중하여 조금도 곁을 떠날 수 없어서 이에 봉함한 한통의 편지를 올려 에오라지 이 정성을 표하면서 천리를 바라보니, 다만 간절하게 정신만 달려갈 뿐입니다. 집사께서는 바라건대 모름지기 살펴주소서. 卽者初夏, 伏不審尊體若何。伏慕區區, 不任賤誠。有禎等自少時, 流落遐鄕, 竊聞執事之盛名, 久矣, 而尙未得登龍門也, 只自慕仰而已。今此請追褒祖父昔日朔方之功, 以酬其旣往之勞者, 出於意所未料, 奉見疏辭若祠志, 益切歎服于中, 而仍又得見先相國澤堂公爲評事時所記祖父倡義事蹟及感詠一絶, 則尤不勝感歎之至。先相國之於祖父, 曾無一識之分, 而旣記以功, 又詠以忠者, 豈非慨其忠而見誣, 惜其功不見酬之故也。執事繼爲評事於五十年之久, 而有感先人之慨惜, 克從壯士之宿願, 言于方伯, 許其立祠, 請聞于朝, 以發追褒之端。逮夫召還, 極言其功大莫酬抱冤莫伸之狀, 大臣因備陳於榻前, 而自上特贈崇秩以追褒之, 百年旣置之功, 一朝奄酬於泉下, 天恩罔極, 非隕結之所可報其萬一也。只自感泣而已。若非執事言於方伯, 則方伯何從而聞於朝也, 若非執事封疏以達於宸聽, 則大臣何以陳, 白聖明何以燭之乎。執事之固請追褒, 雖是爲國家酬報之義, 而在吾子孫之心, 其爲感激, 當作何如情也。夫旣往者, 人之所易忘者也, 將來者, 人之所難慮者也。惜其忠義功烈之泯滅, 不以其事在旣往, 而必欲追揚之者, 德義之至厚也。念夫國家邊患之有時, 慮未然於將來, 必欲聳動人心者, 意慮之深遠也。知其大者, 先此急務, 執事之於國事, 眞可謂知所先矣。人之作事也, 有所爲而爲之者, 多矣, 執事此擧, 只以其事理之當然而已, 豈謂其有所爲而爲之。張南軒曰: "有所爲而爲之者, 利也。無所爲而爲之者, 義也。" 執事之制是事也, 其惟以義乎。公之一字, 做君子樣子也。執事之欲表章忠義者, 公心也, 而爲國家後慮者, 公心也。程子曰: "公則一。" 執事之存心也, 其已公矣。執事之進學也, 其將惟一乎。視人猶己, 能盡此心者, 君子之忠恕也。聞人被枉, 恝視不顧者, 俗人之常情也。昔者, 曾子以爲人謀忠, 爲日省工夫, 其盡心於爲人, 可見矣。今執事盡此心於素不識之人, 明其被誣, 彰厥功烈, 執事之能盡此心者, 其必有謀忠工夫乎。夫觀人者, 只觀其心用之之處, 故見一事而足以決矣。今於此一事, 竊見執事之心用之之處, 是何有如此許多之善也。且執事之追揚吾祖者, 非私於吾祖也, 知其義烈之盛而極言之也。某之盛稱執事者, 非獨以揚吾祖之義烈也, 見執事如許之善而樂道之耳。今若嫌於揚吾祖, 而不稱道執事之善, 則是聖人無樂道之訓, 而君子無好善之心也。此固避嫌之私意而已, 亦豈公心與直論哉。故稱道縷縷, 不知自止, 執事以爲何如哉。夫以其向來慕仰之心, 而又重以今日歎服之誠, 豈不欲一進軒下, 親承顔色, 奉聞緖言乎。親年極高, 宿疾添重, 不能少離, 玆緘一書, 聊寓此誠, 瞻望千里, 只切馳神, 執事幸須垂察焉。 창의한……절구 창의한 일을 기록한 것은 〈북관지(北關志)〉를 가리키며, 감영한 한 절구는 《택당선생집》 권1의 〈경성십절(鏡城十絶)〉 가운데 제5수를 가리킨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신공이 활을 한 번 쏘아 겹겹의 포위 풀었고, 정자가 세 번 진경하여 왜적을 물리쳐 돌려보냈네. 관외의 두 충신은 해와 달처럼 우뚝하니, 부질없이 장사로 하여금 눈물 흐르게 하네.[申公一箭解重圍, 鄭子三麾破敵歸. 關外雙忠懸日月, 空令壯士涕交揮.]" 장남헌이……의이다 《근사록(近思錄)》 권7 〈출처류(出處類) 맹자변순척지분(孟子辨舜跖之分)〉의 주(註)에 "사적인 목적이 없이 하는 것이 의이고, 사적인 목적을 위하여 하는 것은 이이다.[無所爲而爲之者義也 有所爲而爲之者利也]"라는 남헌 장씨의 말이 나온다. 남헌 장씨는 주희(朱熹)의 절친한 벗으로, 주희ㆍ여조겸(呂祖謙)과 함께 동남(東南)의 삼현(三賢)으로 일컬어진 장식(張栻)을 가리킨다. 학자들이 그를 존경하여 남헌 선생이라고 불렀다. 자(字)는 경부(敬夫)이다. 정자가……된다 《근사록집해》 권1 〈도체(道體)〉에 "공정하면 하나가 되고 사사로우면 만 가지로 달라지니, 인심이 사람의 얼굴처럼 각기 다른 것은 다만 사심 때문이다.[公則一 私則萬殊 人心不同如面 只是私心]"라고 한 이천(伊川) 선생의 말이 보인다. 학문하실……충서요 일지(一之)은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준말이다. 공자(孔子)가 제자 증삼(曾參)을 불러서 "나의 도는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일을 꿰뚫고 있다.[吾道一以貫之]"라고 하자, 증삼이 "예, 그렇습니다.[唯]"라고 곧장 대답하고는, 다른 문인에게 "부자의 도는 바로 충서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설명해 준 내용이 《논어》 〈이인(里仁)〉에 나온다. 증자가……삼았으니 증자(曾子)가 자신은 하루에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한다고 하였는데 그 중에 첫 번째가 "남을 위해 도모함에 충성스럽지 않았던가?.[爲人謀而不忠乎]"라고 하였다. 《論語 學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