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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조 범옹의 시에 삼가 차운하다 홍성보 敬次族祖泛翁韻【洪聖輔】 여러 공이 공렬 드러낸 곳에모두 한 사당에 영령 모셨네사액의 은전에 처마 빛나고향긋한 술잔 해마다 올리네대의는 일월처럼 밝게 빛나고풍성과 권면 먼 고을에 높네남조의 선비들에 부끄러우니오직 이 시랑이 있을 뿐이네113) 諸公彰烈地一體妥靈堂簷耀恩頒額椒香歲薦觴日星昭大義風礪聳遐鄕堪愧南朝士惟存李侍郞 남조의……뿐이네 남조는 송나라를, 이 시랑(李侍郞)은 북송의 이약수(李若水, 1093~1127)를 가리킨다. 1126년 북송이 금나라에 항복한 뒤에 휘종과 흠종 등이 볼모로 잡혀갔는데, 이부 시랑(吏部侍郞) 이약수도 흠종을 따라 금나라에 갔다. 금나라에서 흠종에게 황제의 복장을 뺏으려고 핍박할 때 이약수가 안 된다고 간하였고, 금나라 장수를 꾸짖다가 구금되어 끝까지 굴하지 않고 죽었다. 그 뒤 북방에서 도망해 돌아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금나라 사람들이 서로 말하기를, '요(遼)나라가 망할 때는 절의를 지켜 죽은 자가 10여 명이었는데, 남조에는 오직 이 시랑 한 사람뿐이었다.[遼國之亡, 死義者十數, 南朝惟李侍郞一人.]'라고 하였다." 하였다. 《宋史 卷446 李若水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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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그루 버들에 봄이 온 줄도 모르다343) 십운으로 월과이다. 不知五柳春 十韻月課 오류선생은 어떤 사람인가기노344)의 천지에서 진나라 유민으로 지냈네.세상의 그물에 걸려 형역을 힘들게 함을 부끄럽게 여기고서전원으로 돌아와 지내며 속진을 피했어라.세상에 중산왕345)이 없어 당시 지우를 받지 못하였고자는 제갈량을 따랐으나346) 뜻은 펼치지 못하였구나.생애는 무릎이나 들어갈 세 간의 집좋은 물건은 농 위의 일각건이라네.만년에 술과 벗을 맺고서여생은 오랫동안 취향과 이웃하였어라.옥산이 무너진 곳347)에 시간을 보낼 수 있고달이 뜬 은빛 바다에서 밤중에 문득 봄을 감상하누나.문득 술잔 속에 황국의 계절임을 알았는데어찌 문밖에 녹양의 때인 줄 알겠는가.노란 버들눈 터트리고 푸른 가지 늘어뜨려도 아무도 관심두지 않는데이슬 지니며 이내 머금고 절로 새롭구나.맘대로 날리는 버들솜 거센 바람에 떨어지건 말건교태로운 앵무새는 무슨 일로 자주 와서 우짖는가.날이 추워지면 따로 마음을 아는 곳이 있으리니-원문 6자 결락- 대. 五柳先生何許人寄奴天地晉遺民羞從世網勞形役歸臥田園避俗塵世乏中山時未遇字追諸葛志難伸生涯容膝三間屋長物籠頭一角巾末契且將歡伯友餘生長與醉鄕鄰玉山倒處堪消景銀海昏時便賞春但覺杯中黃菊節寧知門外綠楊辰拖黃拂翠無人管帶露含烟自在新狂絮任他飄落盡嬌鶯何事喚來頻歲寒別有知心處【六字缺】筠 다섯……모르다 이백(李白)의 〈희증정율양(戱贈鄭溧陽)〉 시에 "도령은 날마다 취하여, 다섯 그루 버들에 봄이 온 것도 몰랐네. 소박한 거문고는 본래 줄이 없었고, 술을 거르는 덴 갈건을 사용했네. 맑은 바람 불어오는 북창 아래서, 스스로 희황상인이라 일컬었지. 그 언제나 율리에 가서, 평생의 친구를 한번 만나 볼거나.[陶令日日醉, 不知五柳春. 素琴本無絃, 漉酒用葛巾. 淸風北窓下, 自謂羲皇人. 何時到栗里, 一見平生親.]"라고 하였다. 기노 진(晉)나라를 멸하고 남조 송(宋)나라를 세운 고조(高祖) 유유(劉裕)의 어릴 때 이름이다. 중산왕 유비는 중산왕 유승(劉勝)의 후손이다. 자는 제갈량을 따랐으나 도연명의 자는 원량(元亮)이다. 옥산이 무너진 곳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서도 진(晉)나라 산간(山簡)을 두고 읊기를 "맑은 바람 밝은 달은 한 푼 돈이라도 들여 살 것 없고, 옥산은 스스로 무너졌지 남이 민 게 아니로다.[淸風明月不用一錢買, 玉山自倒非人推.]"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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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공 유정○바로 선생의 장손이다 이 외재에게 보낸 편지 병오년(1666년, 현종7) 鳳崗公【有禎○卽先生長孫】與畏齋書【丙午】 근래 초여름에 삼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존체는 어떠하신지요. 삼가 어른을 존모하는 못난 저는 미천한 정성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유정(有禎) 등은 젊었을 때부터 먼 지방을 떠돌면서 집사(執事)의 성대한 명성을 들은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까지 찾아뵙지 못하고 다만 스스로 사모할 따름입니다.지금 어른께서 조부(祖父)의 옛날 삭방(朔方)의 공을 뒤미처 포상하여 이전의 공로에 보답해달라고 청하신 것은 저희들은 생각지도 못한 것인데, 상소한 말과 사지(祠志)를 받들어 보니 더욱 마음속으로 탄복합니다. 또 선 상국(先相國) 택당공(澤堂公, 李植)께서 평사(評事)가 되었을 때 조부가 창의한 일을 기록한 것과 및 감영한 한 절구25)를 보니 더욱 지극한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선 상국(先相國)은 조부와 일찍이 한 번도 서로 만나본 교분이 없었는데 이미 공적을 기록하였고 또 충성이 있다고 시로 읊으셨으니, 어찌 조부의 충성이 무고를 당한 것을 슬퍼하고 조부의 공을 보답하지 않는 것을 애석히 여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집사께서는 조부를 이어 50년이나 지난 뒤에 평사가 되었는데, 선친께서 슬퍼하고 애석하게 여긴 것에 느낌이 일어 능히 장사(壯士)의 숙원을 충실히 따라 방백(方伯)에게 말하여 사당을 세울 것을 허락하게 하였고, 조정에 알려서 소급하여 포상하여 줄 단서를 드러내도록 청하였습니다. 조정으로 소환되자 공은 제 조부 공이 큰데도 보답하지 못하며 원통함을 품고 죽었는데 신원 받지 못한 상황을 극진히 말하였으므로 대신이 이로 인하여 임금 앞에서 자세히 진달하였으며 이에 주상께서 특별히 높은 벼슬을 추증해서 뒤미처 포상하게 하였습니다. 1백 년 동안 이미 방치된 공적을 하루아침에 문득 지하에서 보답을 받게 되었으니, 임금의 은덕이 망극하여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 만분의 일도 보답할 수 없으니, 다만 스스로 감읍할 따름입니다.만약 집사가 방백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방백이 어디에서 들어서 조정에 알렸겠습니까? 또 만약 집사의 봉소(封疏)가 전하에게 진달되지 않았으면 대신이 어떻게 임금에게 진달하였겠으며, 전하께서 어찌 밝게 알 수 있겠습니까? 집사가 소급하여 포상하도록 강력하게 청한 것이 비록 국가가 보답하는 의리라고 할지라도 우리 자손의 입장에서는 그 감격한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이미 지나간 것은 사람이 잊어버리기 쉬운 것이고 앞으로 다가올 변고는 사람이 생각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 충의와 공렬이 사라질까 애석히 여겨 그 일이 이미 지나간 것이라고 방치하지 않고 반드시 찬양하고자 하는 것은 덕의가 지극히 두터운 것이며, 국가의 변고가 때로 있을 것이니 앞으로 올 것을 미연에 방비할 것을 생각하여 반드시 사람들의 마음을 고무시키려고 한 것은 생각이 심원한 것입니다. 그 중대한 것을 알아서 이 급무를 앞서 처리하니, 집사는 국사에 대해여 참으로 먼저 할 바를 알았다고 할 만합니다.사람이 일을 할 적에 의도한 바가 있어서 그것을 하는 자가 많거늘 집사의 이런 행위는 다만 사리에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니, 어찌 의도한 바가 있어서 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장남헌(張南軒)이 말하기를 "의도한 바가 있어서 그것을 하는 것은 이(利)요, 의도한 바가 없는데 하는 것은 의(義)이다."26)라고 하였습니다. 집사가 이 일을 함은 오직 의(義)를 위해서입니다. 공(公)이란 한 글자는 군자를 만드는 틀입니다. 집사께서 충의를 널리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공심(公心)이요, 국가를 위하여 뒷날을 염려하는 것도 공심(公心)입니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공변되면 즉 하나가 된다.'27)라 하였으니, 집사의 마음가짐이 이미 공(公)입니다. 집사께서 학문하실 때 세상의 이치를 하나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니, 타인 보기를 자신 같이 하여 이 마음을 다하는 것은 군자의 충서(忠恕)요,28) 남이 억울함을 당한 것을 듣고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서 걱정해 주지 않는 것은 속인의 상정(常情)인 것입니다. 옛날에 증자가 남을 위하여 도모하면서 충심을 다하는 것을 날로 성찰하는 공부로 삼았으니,29) 그가 남을 위하는 데 마음을 다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집사께서 이러한 마음을 평소 알지 못하던 사람에게 다 하셔서 그 무고 받은 것을 밝혀 주었고 그 공을 드러내었으니, 집사가 이런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남을 위해 도모하기를 충심으로 하는 공부가 있기 때문입니다.남을 관찰하는 자는 다만 그 마음 쓰는 곳을 보기 때문에 한 가지 일만 보아도 족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한 가지 일에서 삼가 집사의 마음 쓰는 곳을 보니 어찌도 이와 같이 허다한 선(善)을 지니고 있습니까. 또한 집사께서 저의 조부를 뒤미처 드날린 것은 저의 조부에게 사사로운 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성대한 의열(義烈)을 알고 나서 있는 힘을 다해 말한 것입니다. 제가 성대하게 집사를 칭송하는 것은 다만 저의 조부의 의열을 찬양해 준 때문만이 아니라 집사의 이와 같은 선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칭송한 것입니다. 지금 만약 저의 조부를 찬양하는 것에 혐의를 두어서 집사의 선을 칭송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성인이 칭송하기를 즐기라는 훈계가 없고 군자가 선을 좋아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로 혐의를 피하려는 사사로운 생각일 따름이니, 어찌 공심과 직론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누누이 칭송하면서 스스로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집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전부터 우러러 존모하는 마음을 지녔으며 또 거듭 오늘날 탄복하는 진심이 우러나는데, 어찌 집사의 집에 한번 나아가 친히 안색을 받들고 말씀을 듣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부친의 연세가 높고 숙환이 위중하여 조금도 곁을 떠날 수 없어서 이에 봉함한 한통의 편지를 올려 에오라지 이 정성을 표하면서 천리를 바라보니, 다만 간절하게 정신만 달려갈 뿐입니다. 집사께서는 바라건대 모름지기 살펴주소서. 卽者初夏, 伏不審尊體若何。伏慕區區, 不任賤誠。有禎等自少時, 流落遐鄕, 竊聞執事之盛名, 久矣, 而尙未得登龍門也, 只自慕仰而已。今此請追褒祖父昔日朔方之功, 以酬其旣往之勞者, 出於意所未料, 奉見疏辭若祠志, 益切歎服于中, 而仍又得見先相國澤堂公爲評事時所記祖父倡義事蹟及感詠一絶, 則尤不勝感歎之至。先相國之於祖父, 曾無一識之分, 而旣記以功, 又詠以忠者, 豈非慨其忠而見誣, 惜其功不見酬之故也。執事繼爲評事於五十年之久, 而有感先人之慨惜, 克從壯士之宿願, 言于方伯, 許其立祠, 請聞于朝, 以發追褒之端。逮夫召還, 極言其功大莫酬抱冤莫伸之狀, 大臣因備陳於榻前, 而自上特贈崇秩以追褒之, 百年旣置之功, 一朝奄酬於泉下, 天恩罔極, 非隕結之所可報其萬一也。只自感泣而已。若非執事言於方伯, 則方伯何從而聞於朝也, 若非執事封疏以達於宸聽, 則大臣何以陳, 白聖明何以燭之乎。執事之固請追褒, 雖是爲國家酬報之義, 而在吾子孫之心, 其爲感激, 當作何如情也。夫旣往者, 人之所易忘者也, 將來者, 人之所難慮者也。惜其忠義功烈之泯滅, 不以其事在旣往, 而必欲追揚之者, 德義之至厚也。念夫國家邊患之有時, 慮未然於將來, 必欲聳動人心者, 意慮之深遠也。知其大者, 先此急務, 執事之於國事, 眞可謂知所先矣。人之作事也, 有所爲而爲之者, 多矣, 執事此擧, 只以其事理之當然而已, 豈謂其有所爲而爲之。張南軒曰: "有所爲而爲之者, 利也。無所爲而爲之者, 義也。" 執事之制是事也, 其惟以義乎。公之一字, 做君子樣子也。執事之欲表章忠義者, 公心也, 而爲國家後慮者, 公心也。程子曰: "公則一。" 執事之存心也, 其已公矣。執事之進學也, 其將惟一乎。視人猶己, 能盡此心者, 君子之忠恕也。聞人被枉, 恝視不顧者, 俗人之常情也。昔者, 曾子以爲人謀忠, 爲日省工夫, 其盡心於爲人, 可見矣。今執事盡此心於素不識之人, 明其被誣, 彰厥功烈, 執事之能盡此心者, 其必有謀忠工夫乎。夫觀人者, 只觀其心用之之處, 故見一事而足以決矣。今於此一事, 竊見執事之心用之之處, 是何有如此許多之善也。且執事之追揚吾祖者, 非私於吾祖也, 知其義烈之盛而極言之也。某之盛稱執事者, 非獨以揚吾祖之義烈也, 見執事如許之善而樂道之耳。今若嫌於揚吾祖, 而不稱道執事之善, 則是聖人無樂道之訓, 而君子無好善之心也。此固避嫌之私意而已, 亦豈公心與直論哉。故稱道縷縷, 不知自止, 執事以爲何如哉。夫以其向來慕仰之心, 而又重以今日歎服之誠, 豈不欲一進軒下, 親承顔色, 奉聞緖言乎。親年極高, 宿疾添重, 不能少離, 玆緘一書, 聊寓此誠, 瞻望千里, 只切馳神, 執事幸須垂察焉。 창의한……절구 창의한 일을 기록한 것은 〈북관지(北關志)〉를 가리키며, 감영한 한 절구는 《택당선생집》 권1의 〈경성십절(鏡城十絶)〉 가운데 제5수를 가리킨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신공이 활을 한 번 쏘아 겹겹의 포위 풀었고, 정자가 세 번 진경하여 왜적을 물리쳐 돌려보냈네. 관외의 두 충신은 해와 달처럼 우뚝하니, 부질없이 장사로 하여금 눈물 흐르게 하네.[申公一箭解重圍, 鄭子三麾破敵歸. 關外雙忠懸日月, 空令壯士涕交揮.]" 장남헌이……의이다 《근사록(近思錄)》 권7 〈출처류(出處類) 맹자변순척지분(孟子辨舜跖之分)〉의 주(註)에 "사적인 목적이 없이 하는 것이 의이고, 사적인 목적을 위하여 하는 것은 이이다.[無所爲而爲之者義也 有所爲而爲之者利也]"라는 남헌 장씨의 말이 나온다. 남헌 장씨는 주희(朱熹)의 절친한 벗으로, 주희ㆍ여조겸(呂祖謙)과 함께 동남(東南)의 삼현(三賢)으로 일컬어진 장식(張栻)을 가리킨다. 학자들이 그를 존경하여 남헌 선생이라고 불렀다. 자(字)는 경부(敬夫)이다. 정자가……된다 《근사록집해》 권1 〈도체(道體)〉에 "공정하면 하나가 되고 사사로우면 만 가지로 달라지니, 인심이 사람의 얼굴처럼 각기 다른 것은 다만 사심 때문이다.[公則一 私則萬殊 人心不同如面 只是私心]"라고 한 이천(伊川) 선생의 말이 보인다. 학문하실……충서요 일지(一之)은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준말이다. 공자(孔子)가 제자 증삼(曾參)을 불러서 "나의 도는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일을 꿰뚫고 있다.[吾道一以貫之]"라고 하자, 증삼이 "예, 그렇습니다.[唯]"라고 곧장 대답하고는, 다른 문인에게 "부자의 도는 바로 충서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설명해 준 내용이 《논어》 〈이인(里仁)〉에 나온다. 증자가……삼았으니 증자(曾子)가 자신은 하루에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한다고 하였는데 그 중에 첫 번째가 "남을 위해 도모함에 충성스럽지 않았던가?.[爲人謀而不忠乎]"라고 하였다. 《論語 學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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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재가 답한 편지 畏齋答書 북방에서 조정으로 돌아와서 상사(上舍) 첨윤(僉胤)의 내방을 받았는데, 이로 인해 그대의 소식을 알았습니다. 비록 몸씨 기쁘고 위로가 될지라도 영남은 멀고 막혀서 찾아가서 회포를 펴지 못하니 한이 됩니다. 뜻밖에 멀리서 외람되이 보낸 긴 편지를 받아 보니 사의(辭意)가 진중하여 받들어 반복해 읽어 보니 마치 의범(儀範)을 마주하여 간곡한 정을 펴는 것 같습니다. 구구한 기쁨을 마음에 다 담을 수 없습니다. 다만 고루한 저에 대해 칭송한 것을 감당하지 못하니 대단히 부끄럽습니다.선친께선 당론이 분분하던 시대에 태어나셨는데 공론을 채집하여 한 시대의 참된 시비를 결정하는 것은 평소 마음속에 생각한 것이니, 선 상국(先相國)의 공렬에 대해 힘써 기술한 것도 또한 이 때문입니다. 그 두어 종이에 기록한 문자는 화재를 당하여 유실되고 남은 것인데, 제가 북관에 가지고 들어간 것은 자못 하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그 뜻을 계승하여 세상에 드러내어 알리지 않았다면 이는 곧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의 상정(常情)으로 그만두지 못할 것이지, 단하가 특별히 선한 것이 있어서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 들으니 교대할 때 여군(呂君)이 조정에 돌아와서 임금의 앞에서 아뢰어 또한 사당에 사액이 있었다고 하니, 사람들이 의열을 좋아함이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제가 전 달에 고향에 돌아온 뒤로 보내준 편지가 인편을 통해 이르렀으나 안타깝게도 돌아가는 인편이 없어 답서가 오랫동안 지연되었습니다. 이제 답서를 보내는데 마침 병으로 인하여 짧은 폭 어지러운 초서로 회포의 만분의 일도 다 펼 수 없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그대는 존양에 힘쓰고 선열을 계승하여 멀리서 기대하는 저의 마음에 부응하여 주십시오. 삼가 바라건대 첨하(僉下)는 살펴주십시오. 自北還朝, 獲荷僉胤上舍來訪, 憑諳高居消息, 雖切欣慰, 而恨嶺嶠脩阻, 無因拜敍, 不圖遠辱長牋, 寄意珍重, 奉讀以還, 怳如奉接儀範, 款曲披展。區區欣浣, 不容于中, 第於淺陋所以稱道之者, 有不敢承當焉者, 深用愧怍。先人生於黨論之世, 採輯公議, 以定一代之眞是非者, 卽平生之所存, 其於先相國之功烈, 力加記述, 亦爲此也。其數紙文字, 見漏於回祿之餘, 而爲端夏携入北關者, 此殆天意有存, 端夏若不繼其志而有所表章, 卽非人也。此自人之常情, 有所不能已者, 非端夏特有善狀而然也。今聞交代, 呂君歸奏榻前, 又賜廟額云, 亦可見人心有同好於義烈也。僕前月下還松楸, 來書傳至, 而苦無歸便, 久稽奉謝。今始修敬, 而適因病困, 短幅胡草, 不能盡所懷之萬一。只祈僉尊, 遵養珍勉, 以紹先烈, 以副遐企。伏惟僉下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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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 상인(淳淨上人)의 시축에 제하다 題淳淨上人軸 눈처럼 흰 납의(衲衣) 산수 사이를 막 지나니156)시 주머니 함께 차고서 흰 구름처럼 돌아가네죽헌(竹軒)【시인의 호다.】의 맑은 음률 속세의 생각 깨우치니이로부터 교외의 삶 꿈 또한 한가하리 雪衲新歷山水間詩囊兼帶白雲還竹軒【詩人號】淸律開塵慮從此郊居夢也閒 지나니 원문은 '마(磨)'인데, 문맥을 살펴 '력(歷)'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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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아버지의 시에 차운하여 니산 충의 한응몽에게 주다 謹次嚴君韻贈尼山韓忠義應夢 산루에서 노성면18)을 놀라 바라보고 山樓驚見魯城面그리운 마음 전달하고파 밤에 잠 못 이루네 欲道相思無夜眠어느새 하늘은 절반도 열리지 않았는데 忽忽不曾開一半붉은 태양이 이미 새벽노을 주변을 비추네 紅輪已輾曙霞邊 山樓驚見魯城面, 欲道相思無夜眠.忽忽不曾開一半, 紅輪已輾曙霞邊. 노성면 충청남도 논산시 북부에 있는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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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서재에서 아버지를 모시는데 거문고 소리를 듣고 시를 읊어 올리다 大安書齋奉侍嚴君聽琴詠詩以獻 장마 비가 개이자 황혼이 열리고 積雨晴來暮色開남산의 신록은 뜨락의 괴목까지 이어졌네 南山新翠接庭槐촉 땅 거문고19)로 또 요지20)곡을 연주하고 蜀琴又奏瑤池曲삼천갑자 동방삭21) 되시길 바라며 술 한잔 올리네 方朔三千屬一杯 積雨晴來暮色開, 南山新翠接庭槐.蜀琴又奏瑤池曲, 方朔三千屬一杯. 촉 땅 거문고 원문의 '촉금(蜀琴)'은 한(漢)나라 때 촉 땅에서 살았던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사용하던 거문고를 말한다. 그가 거문고를 잘 연주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유우석(劉禹錫)의 〈상진주행(傷秦姝行)〉에 "촉현이 울리고 손가락은 옥 같나니, 황제의 악공이 연주하는 상가곡일세.〔蜀弦錚摐指如玉, 皇帝弟子常家曲.〕"라고 하였다. 《劉賓客文集 卷30》 요지 전설에 나오는 곤륜산의 연못으로 선녀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곳이다. 주 목왕(周穆王)이 서쪽으로 요지 가에 이르러 서왕모를 만났다고 한다. 삼천갑자 동방삭 한 무제(漢武帝) 때의 사람으로, 골계(滑稽)와 해학(諧謔)의 솜씨를 능숙하게 발휘하면서 직언(直言)을 곧잘 하여 국정을 바로잡았다.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은 덕분에 죽지 않고 장수했다고 하여 '삼천갑자(三千甲子) 동방삭'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史記 卷126 滑稽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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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로 가는 종제【해영(海英)153)】를 전송하며 送從弟【海英】應擧之京 남자의 행장은 예의 있고 마땅해야 하니한 터럭의 재주와 지혜는 기이한 것이 아니라네근래 듣건대 서울에 유자(儒者)들 많다고 하니경서(經書) 가지고서 의문 나는 점 물어야 하리두 번째비 내려 좋은 가을 씻어낸 8월의 하늘맑은 구름 다 흩어지고 물은 마치 안개 깔린 듯아름다운 이 사람 필마 타고 화양(華陽)154)의 길에 오르니걸음이 삼청(三淸)155)의 북쪽 변경 가에 가까워지네 男子行裝禮與宜一毫才智未爲奇近聞京洛多儒者須抱遺經問所疑其二雨洗良秋八月天淡雲消盡水如烟佳君匹馬華陽路行近三淸紫塞邊 해영(海英) 김해영(金海英)을 가리킨다.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다. 화양(華陽) 양(梁)나라 도홍경(陶弘景)이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숨어 살던 곳이다. 도홍경은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을 읽고 양생(養生)에 뜻을 두어 구곡산(句曲山)에 들어가 호를 화양진일(華陽眞逸)이라 하였다. 삼청(三淸) 도교에서 말하는 천상 세계로, 삼동(三洞)의 교주(敎主)가 사는 최고의 선경(仙境)인 옥청경(玉淸境), 상청경(上淸境), 태청경(太淸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임금이 있는 도성을 천상 세계에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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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대나무를 읊다 詠松竹 왕대12)는 오늘의 소무13)이고 苦竹今蘇武장송은 옛날의 백이네 長松古伯夷그윽한 집에 나보다 뛰어난 것이 많으니 幽軒多勝己어찌 선현들 뒤좇아 따르는데 마음을 쓰랴 何用費追隨 苦竹今蘇武, 長松古伯夷.幽軒多勝己, 何用費追隨. 왕대 원문의 '고죽(苦竹)'은 참대 혹은 왕대라고도 하는데, 중국이 원산지이다. 죽순의 맛이 쓰다고 해서 고죽이라 한다. 소무 한 무제 때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갔다가 흉노의 임금 선우(單于)에게 억류되었으나, 북해(北海) 가에서 양을 치며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절개를 지키다가 19년 만에 한나라로 돌아와서 전속국(典屬國)이란 벼슬에 임명되었다. 《漢書 卷54 蘇武傳》 《史略 卷2 西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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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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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언절구 七言絶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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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에게 부치다 寄舍弟 관문의 구름은 아득하고 기러기도 무정하니 關雲迢遞雁無情외로운 성 어느 곳인들 부모 형제 생각나네 何處孤城憶父兄꺼져가는 촛불 밤 깊은데 서리 맞은 잎 울리니 殘燭夜深霜葉響꿈속에서도 연못의 풀은 자랄 수가 없구나 夢中池草不能生 關雲迢遞雁無情, 何處孤城憶父兄.殘燭夜深霜葉響, 夢中池草不能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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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 중신 정상14)의 시에 차운하다 2수 次鄭提督仲愼詳韻 二首 인간세계 고뇌에서 달아난 것이 기뻐라 自喜人間苦惱逃가을바람에 붉게 물든 단풍이 봄날 복사꽃보다 낫네 秋風紅染勝春桃대나무 평상에서 다행히 아름다운 시구15)를 얻으니 竹床幸得瓊瑤句저물도록 읊조려도 피곤한 줄 모르겠네 底暮吟來不覺勞주룡해16) 굽이에서 십 년 은일하며 住龍海曲十年逃머리에 윤건17) 쓰고 손수 복숭아를 심었네 頭戴綸巾手種桃아득히 바라보니 흰 구름으로 갈 길 잃었지만 遙望白雲迷去路선경을 찾고자 수고로움 꺼리지 않네 欲尋仙境不憚勞 自喜人間苦惱逃, 秋風紅染勝春桃.竹床幸得瓊瑤句, 底暮吟來不覺勞.住龍海曲十年逃, 頭戴綸巾手種桃.遙望白雲迷去路, 欲尋仙境不憚勞. 정상 1533~1609.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신(仲愼), 호는 창조(滄洲)이다. 설재(雪齋) 정가신(鄭可臣)의 후손이다. 1574년 갑술(甲戌) 별시(別試)에 갑과(甲科)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정운(鄭運) 송희립(宋希立) 등과 함께 이순신의 휘하에서 싸웠으나 한산도대첩 때 병으로 인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이순신의 군진에 아들 정여린(鄭如麟)과 종손 정란(鄭瀾)을 시켜 쌀을 보냈다. 문집은 《창주선생일고(滄洲先生逸稿)》가 있다. 아름다운 시구 원문의 '경요(瓊瑤)'는 아름다운 시를 가리킨다. 《시경》 〈목과(木瓜)〉에 "내게 복숭아 던져 주길래 아름다운 구슬로 보답했네. 갚으려는 게 아니라 길이 좋게 지내고 싶어서지.〔投我以木桃, 報之以瓊瑤. 匪報也, 永以爲好也.〕"라고 하였다. 주룡해 전남 무안군 일로읍에 주룡(住龍)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흐르는 물가로 영산강의 줄기이다. 나덕명은 노년에 주룡 마을에 입향하고 주룡적벽(住龍赤壁) 위에 적벽정(赤壁亭)을 지었다. 윤건 푸른 실로 엮은 두건을 말하는데, 제갈량이 평소 애용하던 두건이라 하여 제갈건(諸葛巾)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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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은대(南銀臺)208)【구만(九萬)】에게 주다 贈南銀臺【九萬】 구천(九天)의 상서로운 봉황 인간 세상에 내려오니하계(下界)의 참된 반열로 이날 돌아가네병든 학 10년 동안 호남 바닷가에서 머무른 뜻슬픈 마음으로 고개 돌려 구름 사이 바라보네 九天祥鳳下人寰下界眞班此日還病鶴十年湖海志悵然回首望雲間 남 은대(南銀臺)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을 가리킨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이다. 1656년 과거에 급제하여 대사성, 함경도 관찰사, 형조 판서 등을 거치고 삼정승을 역임하였다. 1664년(현종5) 승지에 임명된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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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學徒)에게 주다 贈學徒 거친 풀 자란 밭 사이의 늙은 농부 한 명형체와 정신 적막하여 마른 소나무 같네부끄러운 것은 그대들 찾아와 따르며 배우는데잘못된 방도로 인도하여 예용(禮容)을 잃는 것이라네 荒草田間一老農形神寂寞似枯松慚却君輩來從學導率乖方失禮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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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를 띄우다238) 泛菊 흰 술 담긴 동이 앞의 흰 옷 입은 사람종일 얼큰하게 취한 채로 산속 사립문에 기대 있네술잔 가운데에 붉은 꽃술의 국화 어지러이 띄우니아래로 단전(丹田)을 물들여 색이 어우러지네239) 白酒樽前人白衣陶然終日倚山扉盃心亂泛丹心菊下染丹田色不違 국화를 띄우다 과거에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이면 국화를 술에 띄워 마시곤 하였다. 술잔……어우러지네 붉은 꽃술의 국화를 띄운 술을 마셔 단전(丹田)과 술의 색이 붉게 어우러짐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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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동작(銅雀)240)을 건너며【기축년(1649, 26세) 국상(國喪)으로 인한 장례241) 때 선생이 달려가 곡하고 돌아왔다.】 晩渡銅雀【己丑國慽仍山之時。先生奔哭而歸。】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 나그네 옷깃에 뿌리니구름 어두운 나룻가에 푸른 물결이 깊네머리 돌려 청명한 산빛을 바라보니가을해 돌아가는 이의 마음 비춤이 도리어 가련하네 濛濛微雨灑征襟雲暗津頭碧浪深回首淸明山色裏却憐秋日照歸心 동작(銅雀) 서울시 동작구 동작동 근처 한강 남안에 있던 나루터이다. 국상(國喪)으로 인한 장례 원문은 '국척잉산(國慽仍山)'이다. '잉산'은 곧 '인산(因山)'으로, 상왕, 왕, 왕세자, 왕세손과 그 비(妃)들의 장례를 말한다. 여기서는 1649년 승하한 인조(仁祖)의 장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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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權論 夫權也者。聖人言之。權不可無也。然則破權者之說。不幾於不知量乎。曰不然也。請以一轉語諭之。今有行路者。由此而進。則路坦平。由彼而進。則路崎嶇。較其先後。則崎嶇捷於坦平。捨坦平而由崎嶇。曰從我也。不從者幾希。此權之弊。所以生之本也。夫常人之情。惡範我而喜詭遇者。皆此也。然則如之何。其可也。曰破權乎。不破是權。則聖人之道。將隨是權而亡矣。古之言權也。權以得中。今之言權也。權以失中。得中則聖人之道也。失中則少人之道也。是以權之稱錘。知輕重而合義。則聖人之要。妙微密處。不可以私意得之者。而彼權變權術之論熾。而聖人之道。益寂然無聞。則將隨時權而亡者。非虛語也。況權者。孔子猶言之難。而今之賢於孔子者。往往有之。開口便說權。是天下何多事之變。而又何得權者之多也。皆不過任其自便。而必假名於權。是權字寄寓。在一箇形象。反爲無骨子矣。其爲害也。豈淺淺乎。請嘗論之。如當喪葬之家。其哀文足以盡禮不爲。曰是權也。如當祭祀之家。其供奉足以盡誠不爲。曰是權也。如當冠昏之家。其節次足以盡儀不爲。曰是權也。以至字牧之官。姑息爲計。曰是權也。閭巷之民。行事失措。曰是權也。擧天下之事。無一日非權。擧天下之人。無一心非權。甚矣一權字之害。至於斯乎。非淺淺細故可知。是權必破然後。可以存聖人之權也。聖人之權。乃不得已之中也。豈可破乎。吁破彼。所謂權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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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金生)【일장(日章)】에 대한 만사 挽金生【日章】 도산(道山)317)의 산수 전원이 좋으니소나무와 대나무, 뽕나무와 삼 옛 집에 둘러 있네서리 내린 가시나무 가지엔 외기러기 슬퍼하고가을 저무는 난초 둑엔 외로운 원앙 울어대네수레 앞 두 명의 훌륭한 아들318) 울부짖으며 상여끈 잡고깃발 아래의 빼어난 두 형제319) 곡하며 다북쑥 올리네320)인간 세상 60년 살고 나서 죽은 뒤의 일홀로 여경(餘慶)321)을 남겨 여러 자손에게 주네 道山山水好田園松竹桑麻繞古軒霜落荊枝哀隻鴈秋殘蘭塢泣孤鴛轝前二玉號攀紼旌下雙珠哭奉蘩人世六旬身後事獨留餘慶贈諸孫 도산(道山) 전설 속의 선산(仙山)으로, 옛날에 사람이 죽으면 이곳으로 돌아간다고 여겼다. 훌륭한 아들 원문은 '이옥(二玉)'이다. '옥(玉)'은 곧 '옥수(玉樹)'로, 훌륭한 남의 집 자제를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여러 자제들에게 어떤 자제가 되고 싶은지 묻자, 그의 조카인 사현(謝玄)이 대답하기를 "비유하자면 지란(芝蘭)과 옥수(玉樹)가 뜰 안에 자라는 것처럼 하고 싶습니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階庭耳]"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79 謝玄列傳》 훌륭한 두 형제 원문은 '쌍주(雙珠)'로, 출중한 두 형제를 말한다. 한(漢)나라 때 공융(孔融)이 위휴보(韋休甫)의 두 아들인 위원장(韋元將)과 위중장(韋仲將) 두 형제를 두고 지은 〈여위휴보서(與韋休甫書)〉에, "늙은 조개 속에서 진주 두 알이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不意雙珠生于老蚌]"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다북쑥 올리네 소박하지만 정성이 담긴 제수(祭需)를 올려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한다. 《시경》 〈채번(采蘩)〉에 "이에 다북쑥 캐기를 연못과 물가에서 하도다. 이것을 쓰기를 공후의 제사에 하도다.[于以采蘩 于沼于沚 于以用之 公侯之事]"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여경(餘慶) 조상이 남긴 은택으로 인해 그 후손이 누리게 되는 복을 말한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에게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게 마련이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에게 반드시 남은 재앙이 돌아오게 마련이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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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대신하여 지은 이웃 부인에 대한 만사 代人輓隣婦 곧고 조용한 규문의 의범 맹광(孟光)322)을 이었으니거안제미(擧案齊眉)를 32년여 동안 하였네서리가 옥 나무 꺾으니 산이 자줏빛을 슬퍼하고323)바람이 경지(瓊芝)를 끌어당기니 계곡이 향기 없음을 원망하네324)다섯 줄기의 향기로운 난초에 꽃이 비로소 열리고가지 하나의 계수나무 떨기에 잎이 처음 자라나네이로부터 이날의 끝없는 한 알겠으니백발의 늙은이325) 슬피 울고 봉(鳳)이 황(凰)을 잃었네326) 貞靜閨儀後孟光齊眉三十二年強霜摧玉樹山哀紫風掣瓊芝谷怨香五朶芳蘭花始茁一枝叢桂葉初長從知此日無窮恨鶴髮悲號鳳失凰 맹광(孟光) 후한(後漢)의 은사 양홍(梁鴻)의 처다. 부덕(婦德)이 훌륭하여 남편을 잘 섬겼다고 한다. 밥상을 들고 올 때에도 양홍을 감히 마주 보지 못하고 이마 위에까지 들어 올렸다는 '거안제미(擧案齊眉)'의 고사가 유명하다. 《後漢書 卷83 梁鴻列傳》 서리가……슬퍼하고 이는 여인이 이른 나이에 사망한 것에 대한 전고인 '자옥(紫玉)'의 고사를 염두에 두고 쓴 구절이다.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 〈경난후장피지섬중유중최선성(經亂後將避地剡中留贈崔宣城)〉에 "호상(胡床) 위의 자줏빛 옥피리, 도리어 푸른 구름에 앉아서 부네.[胡床紫玉笛 却坐靑雲叫]"라 하였고, 두보의 〈도죽장인(桃竹杖引)〉에, "뿌리 자르고 껍질 벗기매 자줏빛 옥과 같으니, 강비와 수선이 애석해도 어쩔 수 없어라.[斬根削皮如紫玉 江妃水仙惜不得]"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만사의 대상인 부인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바람이……원망하네 '경지(瓊芝)'는 곧 옥지(玉芝)로, 선경(仙境)에 있는 영지(靈芝)를 뜻한다. 옛 사람들은 이것을 복용하면 장생할 수 있다고 여겼다. 남조(南朝) 양(梁)나라 심약(沈約)의 〈여도홍경서(與陶弘景書)〉에, "경지(瓊芝)를 씹어 삼켜 청도(淸都)를 출입한다.[咀嚥瓊芝 出入淸都]"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즉, '바람이 경지를 끌어당긴다'는 것은 장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음을 의미한다. 백발의 늙은이 원문은 '학발(鶴髮)'이다. 두루미의 깃털처럼 희다는 뜻으로 머리가 하얗게 된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봉(鳳)은 황(凰)을 잃었네 봉황 가운데 수컷을 '봉(鳳)'이라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 한다. 남편이 부인을 잃었음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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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客說 農者天下之大本也。以之而奉吾君上。以之而養吾父母。以之而食吾妻孥。凡天下之養生送死吉凶憂樂。民生之所寄。皆由是而出。亦不越乎是。有陳良之徒者。自稱得神農之業。負耒耜。適諸胡人。以鞍馬爲家。射獵爲農。珠玉金貝爲先。無所用耒耜。於是反其國曰。以吾之學大本不能容。何也。天下之大。萬姓之衆。固有不耕而食者乎。旣而自反曰。非吾學之不利。彼胡兒之不知大本。吾無與焉。說者曰嗟哉。耕者之不識時。擧一反三。非斯歟。士之處世。不知其動。亦猶是夫今之國光造士之一也。士之無賢不肖。咸赴應擧。一人者。不在其中。蓋不敢赴。亦不欲赴。而衆謗喧起。不知所止。一日有客。自南方來。爲文而抵之曰。士之仕也。猶農夫之耕。聖訓已然。且春不耕。秋何以穫。願早負耒耜。且以子之才。耕經耘史。今幾年矣。及時而作。無負所學。可也。乃反之曰。農雖大本。非耒耜無以成。耒耜雖利。適諸胡。則無所用矣。向所謂不敢赴者。不能耕耘於經史。是耒耜之不利也。不欲赴者。以不利之耒耜。將安所適。無所適。則寧利其耒耜。以待時至耶。且問持文柄者之所先何物。所農何業。吾不可得以知之矣。不可知。則今可以止乎。客亦不復言。相視一笑。而罷臨軒分手。酒力已醒。茶烟初歇。夕陽散亂。凡坐讀大學章句數遍。遂援筆而記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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