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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을 추증하는 교지 贈職敎旨 가선 대부 전주 부윤 전주진 병마 절제사(嘉善大夫全州府尹全州鎭兵馬節制使) 정문부(鄭文孚)에게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판의금부사 지경연춘추관 성균관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오위도총부 도총관(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五衛都摠府都摠管)에 추증한다.병오년(1666년) 정월 23일 품계를 뛰어 넘어 증직하라는 승전(承傳)을 받았다. 嘉善大夫全州府尹全州鎭兵馬節制使鄭文孚, 贈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五衛都摠府都摠管者。丙午正月二十三日, 超品贈職事, 承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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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렬사에 참배하다 신우상 謁彰烈祠【申禹相】 풍성에 힘써 북방 장엄하게 하려토착민들 강가에 사당 세웠네수택 굴혈의 어룡도 이름 아니모래사장의 원학107) 뼈 절로 향기롭네바쳤던 정충 일월과 빛 다투고혼백 아직 남아 관방 지키네성조의 높은 충절 지금 어떠한가심상한 나그네도 술잔을 올리네 從事風聲壯北方土人江上立祠堂魚龍澤窟名猶識猿鶴沙場骨自香已遣精忠爭日月尙留魂魄鎭關防聖朝崇節今何似行客尋常亦薦觴 원학(猿鶴) 원숭이와 학으로, 전사한 일반 장사(將士)들을 말한다. 《예문유취(藝文類聚)》 권93 주에 "주 목왕(周穆王)이 남정(南征)했을 때 군대가 전멸했는데, 장사들은 원숭이와 학이 되고 일반 백성들은 벌레와 모래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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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렬사에서 옛일을 생각하다 김시걸 彰烈祠感古【金時傑】 강개하게 슬피 노래하는 나그네바로 여기 창렬사에 찾아왔네변민은 의리 사모할 줄 알고학사는 거의한 사실 기억하네몸은 장성의 태양이 되었으니당시 절막108)에서 넋 불러오네제향109)하는 이곳이 고향이니노송은 세한의 자태 갖고 있네 慷慨悲歌客來尋彰烈祠邊民知慕義學士記興師身作長城日魂招絶漠時苾芬仍故里松老歲寒姿 절막(絶漠) 극변(極邊)으로, 삭막한 북쪽 변방을 말한다. 필분(苾芬) 향기 나는 제수(祭需)로써 제향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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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생각 秋思 가을 나뭇잎에 한밤의 원한 깃드는데 夜怨生秋葉쓸쓸하게 달이 높이 솟으려 하네 蕭蕭月欲高서로 그리워하며 만나지 못하니 相思不相見거울 속 터럭이 온통 하얗게 세었네 白盡鏡中毛 夜怨生秋葉, 蕭蕭月欲高.相思不相見, 白盡鏡中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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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려록 초 【전적 박흥종】 義旅錄抄 【典籍 朴興宗】 대략 다음과 같다."계사년(1593) 1월 26일에 단천(端川) 지역 마흘(馬屹) 경계9)에서 전투를 할 때 세 번 싸워 세 번 모두 이겼다. 마침내 길주(吉州)로 군대를 돌려 병사들과 말을 쉬게 하였다. 잠시 후 왜장이 많은 병사를 보낸다는 소식을 접하여 길주에서 그들을 맞닥뜨리니 주둔하고 있던 왜적들이 남도로 철수하여 돌아갔다. 대장수의 군대가 한편으로는 싸우고 한편으로는 추격하여 백탑교(白塔郊) 남쪽 칠목(滾木) 아래에 이르렀다. 별장(別將) 이붕수(李鵬壽)가 하나의 활을 왜장에게 쐈는데 활시위가 울리자마자 왜장이 쓰러졌으나 붕수는 대장의 말 앞에 나와 서 있다가 갑자기 날아온 탄환에 맞아 죽었다. 주을온(朱乙溫)과 만호(萬戶) 이희당(李希唐) 역시 같은 날 죽었으니 이날은 바로 28일이었다." 【본주(本註) 여섯 명의 대장과 나덕명(羅德明)이 함께 시를 지어 애도하였다.】 略曰 : "癸巳正月二十六日, 戰于端川地馬屹境, 三戰三勝, 遂還軍吉州, 休其士馬. 俄聞倭將, 遣大兵, 迎吉州, 所駐倭撤還南道. 大將帥師, 且戰且追, 至白塔郊南潻木下. 別將李鵬壽射一倭將, 應弦而倒. 鵬壽卽挺出大將馬前, 而立忽中丸死. 朱乙溫 萬戶李希唐, 亦同日死, 時則二十八日也. 【本註 六大將及羅德明, 幷爲詩以哀.】"云. 단천(端川) …… 경계 함경남도(咸鏡南道) 동북부(東北部) 지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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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에서 나극지의 시에 차운하여 증별하다 【정문부】 永興次羅克之韻因贈別 한 번 만나 마음을 알고 일산도 이미 기울였으니10) 一見知心蓋已傾재상과 장군 같은 귀한 모습이 온 성에 가득하네 相將玉貌在圍城털을 불어 도처에서 사람들은 잘못을 찾지만11) 吹毛到處人求過화살이 바위를 뚫음에 어찌 감복하지 않을까12) 沒羽如何石感誠삼천의 귀밑머리는 백발 되어 깜짝 놀라나 鬂上三千驚白髮십만의 가슴은 귀신같은 병술에 의지하네13) 胸中十萬杖神兵중흥한 이후로부터는 몸에 병이 많아 自中興後身多病돌아와 임원에 누웠자니 이런 품행 괜찮을까 歸臥林園羨此行【소포공(嘯浦公)이 애초부터 정문부(鄭文孚), 서성(徐渻), 한백겸(韓百謙) 등과 거사하여 전장을 오간 것이 전후로 거의 2년이나 되었다. 박공의 《의려록(義旅錄)》과 정공의 증별시를 보니 그의 대략을 알 수 있다. 당시 일을 도운 것이 바야흐로 소략하여 전할 만한 사람들이 있었을 터이나 세월이 오래되어 증거로 삼을 만한 것이 없다. 전쟁에서 사망한 이붕수(李鵬壽)과 이희당(李希唐)의 애사(哀詞)와 함께 이 시의 원시는 잃어버려 기록할 수 없다.】 【鄭文孚, 嘯浦公始與鄭公文孚 徐公渻 韓公百謙等, 起事出入兵間, 首尾幾二載. 觀朴公義旅錄及鄭公贈別詩, 可知其梗槪. 其時, 協贊方略, 宜有可傳者, 而久遠無徵. 戰亡人李鵬壽 李希唐哀詞幷, 此詩原韻逸不錄.】一見知心蓋已傾, 相將玉貌在圍城.吹毛到處人求過, 沒羽如何石感誠.鬂上三千驚白髮, 胸中十萬杖神兵.自中興後身多病, 歸臥林園羨此行. 일산도 …… 기울였으니 원문 '개경(蓋傾)'은 타고 가던 수레의 일산을 기울인다는 뜻으로 길을 가다가 벗을 만난 기쁨을 말한다. 《史記 卷83 鄒陽列傳》 털을 …… 찾지만 원문 '취모(吹毛)'는 '터럭을 불어 헤쳐서 흉터를 찾아낸다.〔吹毛求庛〕'의 준말로, 즉 남의 사소한 허물까지 각박하게 들춰내는 것을 말한다. 《漢書 卷53 景十三王傳》 따라서 여기서는 사람들이 공을 비난함을 뜻한다. 화살이 …… 않을까 원문 '몰우(沒羽)'는 화살을 말한다. 한대(漢代)의 명장 이광(李廣)은 본디 용력(勇力)이 매우 뛰어나, 일찍이 자기가 사는 고을에 호랑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호랑이를 쏘아 잡았고, 또 북평 태수(北平太守)로 있을 적에도 손수 호랑이를 쏘아 잡았으며, 한번은 사냥을 나갔다가 풀 속에 엎드려 있는 돌〔石〕을 보고는 잘못 호랑이로 알고 활을 쏘았더니, 화살이 돌에 꽂혀 파묻혀 버렸는데, 자세히 보니 돌이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십만의 …… 의지하네 가슴속으로 치밀한 작전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말이다. 위(魏)의 최호(崔浩)와 송(宋)의 범중엄(范仲淹)의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통 "胸中十萬兵", "胸中甲兵"의 숙어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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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지1)에게 보낸 편지 【무인년(1578)이다. 곤재 선생2)】 與羅大之書 【戊寅 困齋先生】 봄이 저물어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만물은 번창하고 있구나.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그대는 만복을 누리며 학문을 잘하며 지내고 계시는가? 나는 궁벽한 산속에 엎드린 듯 지내고 있어 소원하고 용렬함이 마치 어제처럼 게을리 지내다가 수시로 한두 학도들과 더불어 옛 경서를 강독하고 토론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느 날 다시 풍모와 위의를 갖추어 대면하고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상세히 이야기 나눌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 끝이 없다네.근래 손수 쓴 편지를 받아 보니 우리 그대가 뜻은 성현의 공부에 돈독히 하고 오로지 공부하는 것을 덕에 나아가 수양하며 마음을 가라앉혀 경전을 완미하고 일상생활에 실상을 두어야 하는 것으로 성명(性命)의 온전함을 구한다고 하니, 이른바 옛 사람들이 말한 '자기 자신을 위한 학문'으로, 공경과 감탄을 이길 수가 없겠으며 위로와 기쁨이 지극하네. 이른바 '문을 닫고 단정히 앉아 있다.'라고 말한 것은 학문을 하는 방법을 깊이 터득한 것이니 정말 훌륭하고 매우 훌륭한 것이네. 다만 자세히 묻고 밝게 변별하는 것을 벗들과 강론하고 닦지 않는다면 터득할 수가 없네. 때때로 도가 있는 분에게 나아가 질정하는 것 또한 불가한 것은 아니니 경전을 먼저하고 주를 뒤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앞선 스승들이 이미 밝혀 놓은 것으로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대저 그대의 자질은 강직하고 밝으며 보는 바가 날로 발전하니 두렵고 위로가 됨이 모두 지극하구나.나는 보잘 것 없는 사내로서 마음속에 보존하고 있는 것과 몸으로 행하는 것이 남들에게 구하여 듣고 계획된 삿된 마음 아닌 것이 없었네. 곰곰이 생각하면 일찍이 볼 낯이 없도록 부끄럽지 않은 적이 없었고 조금도 보통 사람과 비슷한 마음이 없었네.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을 우러르고 머리를 숙여 그를 공경하는 모습을 띠었는데 더군다나 자네처럼 고상하고 밝고 두려워할만한 이에게 감히 스스로를 크고 망령되이 높다고 하여 후생이 예의를 지켜 대우하는 것을 기대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예의는 노력해야 하고 말은 공손해야 한다는 것이니, 바라건대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게나. 나머지 마음에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 적기 어려워 다만 이렇게 적는다. 春令迫暮, 物華暢繁. 伏惟侍候萬福, 學履有相. 鄙人跧伏窮山, 疏庸如昨, 而時與一二學徒講討古經, 以度遣日月爾, 不知何日, 更對風儀, 細論心懷, 鬱陶斯極. 近再奉手示, 仰認尊侍, 志篤聖賢, 功專進修, 沈玩經籍, 着實日用, 以求必得, 夫性命之全, 是乃所謂古人爲己之學, 不勝敬歎, 慰悅之至. 所謂關戶端坐云云, 深得爲學之方, 甚善甚善. 但其審問明辨, 非朋友講磨, 不得. 時就有道正焉, 亦未爲不可, 先經後註, 先師之訓已明, 更何疑焉. 大抵賢侍之資稟剛明, 所見日進, 畏慰俱極. 介淸賤丈夫也, 心中所存, 身上所行, 無非求聞計獲之私. 潛思默慮, 未嘗不歉然愧怍, 少無類人之心. 是以稍見賢於己者, 不覺其抑心下首而敬貌之, 況如賢侍之高明可畏, 其敢自大而妄尊, 以待後生之禮待之乎. 此所以禮欲勤辭欲恭也, 幸勿怪焉, 餘懷難盡, 只此. 나대지 나덕준(羅德峻, 1553~1604)을 말한다. 자가 대지(大之)이고, 호는 금암(錦巖)이다. 곤재 선생 정개청(鄭介淸, 1529~1590)을 말한다. 자는 의백(義伯)이고, 호는 곤재(困齋)이며, 나주(羅州) 출신이다. 저서로 《우득록(愚得錄)》이 있다. 일찍이 나덕준의 스승이 되어 그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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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사문간찰초) 附錄(師門簡札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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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갑신년(1584)】 又 【甲申】 절하고 답하네. 봄이 저물어 막바지에 이르니 날씨가 화창하구나. 멀리서 생각건대 그대는 관아에서 부모님을 살펴 모시면서 봉양까지 겸비하여 마음으로 이해하며 성정으로 딱 들어맞아 어긋남이 있지 않을 터이니 인간세상의 무슨 즐거움이 이와 같겠는가! 나는 소원하고 용렬함이 어제와 같아 무어라 말할 것이 없네. 근심스러운 일은 쇠약함이 날로 더해 가고 학업에 뜻을 둔 것이 날로 게으르며 마음을 접촉함이 욕심을 따르는 것인데 스스로 알면서도 극복하지 못한 채 쌓인 기질은 끝내 세속을 벗어날 기약 없이 영리의 향락에 이르렀네. 그렇다면 마음이 비록 바라고 사모한다 한들 천명은 힘쓸 수가 없는 노릇이니 어찌 하면 좋겠는가. 어버이를 모시는 도리는 오직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뜻을 따르는 데 있네. 나는 진실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기에 사람들의 비방과 배척을 스스로 마땅히 감수해야 할 터이니 감히 교묘하게 피하여 바깥의 이익을 도모하려 하겠는가. 다만 마음속으로 더욱 깊이 반성한다면 보탬이 적지 않을 것이네. 곁에 어버이를 모시고 작은 집을 지었다는 소식을 보여주니 그대가 사랑으로 보호하고 인도하였던 깊은 마음에 위로가 되어 경복하고 또 경복하네.서울로 가는 일은 내 동생이 막았는데 보내준 편지의 말 또한 이와 같으니 삼가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변산(邊山)의 행차는 유정언(柳定彦)과 이미 약속한 것이니 사람 일의 좋고 나쁨 또한 기필할 수가 없다네. 인생이 억울하여도 이미 어찌할 수 없으니 바라는 것은 친구 가운데 오직 우리 두 분이 타고난 민첩한 자질로 부모님을 봉양하고 뜻을 정하여 학업에 전일하며 외물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 뿐이네.바라건대 더욱 더 옛사람의 자기를 위하는 학문에 뜻을 두어 우선 거처하는 곳에서 공손하며 일을 집행할 때는 공경히 하고 남을 대할 할 때 충심으로 하는 일에 착수하여 박약으로 나아가고 게으름과 공경 그리고 의리와 욕망의 이기고 지는 것을 깊이 살피며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이에 뜻을 오로지 하며 말세의 의로움과 이로움을 함께 행하고 두 길과 왕도와 패도를 함께 쓰는 무리가 되지 않으며 늘 만 길 높은 곳에서 우뚝 서서 홀로 천 년 전의 성현들을 벗 삼아 이름이 널리 알려 지기를 마음에 비교하며 헤아리지 않는다면 매우 다행하고도 다행한 일일 것이네. 외로운 처지에 있는 나 또한 이러한 계책으로 힘썼으나 타고난 자질이 우둔하고 어리석어 조금도 변하지 못하였으니, 애석하고 애석하네. 介淸拜覆, 春令迫暮, 風日和淑, 緬惟思吾賢省侍衙庭, 奉養備具, 會心適情, 無有拂違, 人間何樂, 可以如之. 鄙人疏頑如昨, 他無可言者. 所可憂者, 衰邁日臻, 志業目倦. 觸情從欲, 自知而不克, 氣質之累, 終無脫洒之期, 而至榮利之享, 則心雖企慕, 而命不可力, 奈如之何. 事親之道, 唯在樂心順志, 而介淸實不能焉, 人之謗斥, 自當甘受, 敢欲巧避, 以圖外利乎. 伹內省愈深, 爲益不少. 親側作小家之示, 深慰高明愛護噵引之厚意也, 敬服敬服. 京行, 家弟止之, 而來敎亦如之, 敢不敬從. 邊山之行, 與柳定彦已約, 人事好乖, 亦不可必也. 此生之枉了, 已矣無奈何, 所望者, 朋友之中, 唯吾兩賢稟賦通敏, 奉養贍足, 志定業專, 不爲外誘所搖爾. 願深加留意於古人爲已之學, 先以居處恭執事敬與人忠, 爲實下手, 而博約以進, 深察敬怠義欲之勝負, 專意於視聽言動之際, 不爲末俗義利雙行王覇幷用之流, 常伸乎落落萬仞之上, 尙友乎孑孑千載之前, 不以聞達較量心慮, 幸甚幸甚, 孤蹤亦以此策勉, 賦質頑愚, 不能少變, 可惜可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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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유사 錦湖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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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지【훗날 성지라고 자를 고쳤다.】에게 낸 편지 【무인년(1578)이다.】 與羅有之【後改誠之】書 【戊寅】 이별한 뒤로 세 번이나 문안 편지를 받고 보니 글의 뜻이 간절하고 말이 절실하여 마치 아침저녁으로 자주 만나는 날이 많은 것 같네. 이는 자네가 강직하고 우뚝한 지조가 있어 멀고 가까우나 따르고 어기는 것으로 변하는 바가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십분 감탄하고 위로가 되네.보내온 글에 《논어》를 읽고 반드시 마음으로 깨우치고 묵묵히 아는 점이 있어 저절로 가슴 속이 즐겁고 몸에 효과가 있다고 하니, 몹시 부러운 마음 이길 수가 없네.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은 무겁고 길은 멀기 때문이다'의 장(章)3)을 매우 깊이 연구하고 완미하여 장래에 자기의 임무로 삼아 굳건하게 정립하여 실천하겠다니 천 리 떨어진 곳에서 쇠약한 채 형구를 차고 있는 나의 바람에 위로가 되었다네. 그대의 타고난 자질은 진실로 강직한 것을 실행하는 데 걱정할 일이 없음을 알고는 있으나 강직함을 실천하는 일을 대단한 힘써야 바야흐로 얻을 수 있네. 대저 《논어》의 글은 성현의 문답으로 수천만의 말이 있지만 그 직접적인 요지를 구한다면 '존심(存心)'에 불과할 뿐이니, 존심이 완성되면 인(仁)은 그 가운데 있네. 대개 존심이라는 것은 마땅히 존재할 곳에서 이 마음을 얻는 데 있으니 다른 사물에게 이끌려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네. 예컨대 '배우고 때로 익힌다.'4)를 읽었다면, 어떻게 해야 배움이 될 것이며 어떻게 해야 때로 익히는 것인지를 생각하여 만약 이를 추론하고 궁구한다면 자연스럽게 마음에 다른 생각의 여지가 없을 것이네. 또 '자기 몸을 이겨 예를 회복한다.'5)를 읽었다면, 어떻게 해야 자기의 몸을 이기고 어떻게 해야 예를 회복하는지 또 몸에는 무엇이 있는지, 예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끝까지 궁구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에 돌이켜 구한다면 행하는 바와 존재하는 바가 몸이고 예일 것이네. 만약 이르지 못했다면 있는 힘을 다해 장차 나아가 천리에 합치되도록 구해야 한다네. 이와 같은 공(功)이 비록 하루 아침저녁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지런히 노력하여 세월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기질이 변화하여 내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천리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니 어찌 크게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천지에 사람이 삼재(三才)로 참여하여 오직 이에 대장부가 되었으니 그대는 반드시 힘써야 하네.나의 평소 뜻 또한 다른 데 있지 않으나 타고난 성질이 굳어 변화되기에는 어려워 노쇠한 지금에 이르렀으니, 아! 애석하다네. 바라는 바는 오직 우리 그대의 강직하고 굳은 뜻으로 천만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네. 화천정(花川正)6)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본성이 사랑스럽고 그 지조 또한 속되지 않아 더불어 큰일을 할 만한 사람이네. 자네가 때때로 맞이하여 권면할만하니 권면함이 어떻겠는가. 남과 더불어 선을 행하는 것 또한 군자가 마땅히 힘써야 할 일이라네. 別後三奉問書, 意懇辭切, 似有深於朝夕亟見之日, 是知賢侍毅貞立之操, 不以遠近從違而有所變易也, 嘆慰十分. 示諭讀論語, 其必有心悟默識, 自樂於胸中而得效於身上, 不勝健羡之至.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章, 切須深究玩味, 將來以爲己任, 立定脚跟做將去, 以慰千里衰朽之望. 賢侍之天資, 固知其不患於做毅, 而於做弘處, 大段着力, 方得. 大抵論語之書, 其聖賢問答幾千萬言, 而求其直指, 則不過曰存心. 存心之熟, 則仁在其中, 蓋存心者, 存得此心於所當存之地而不爲他物引將去之謂也. 如讀學而時習, 如何而可以爲學, 如何而可以時習, 如此推究, 自然心不暇他念. 又讀克己復禮, 如何而可以克己, 如何而可以復禮, 又窮極其己是甚底, 禮是甚底, 反求諸自家身心上, 所行所存, 是己歟禮歟. 如或未至, 則盡力克將去以求合乎天理. 若此之功, 雖非一朝一夕之見效, 循循勉勉, 積至歲月, 自然變化氣質, 從吾心之所欲, 莫非天理, 豈不大快活乎. 參三天地, 唯此爲大丈夫, 賢須勉之, 鄙人平生之志, 亦不在他, 而稟固難化, 至於衰朽, 嗚呼惜哉. 所可望者, 唯如賢侍之剛毅, 千萬努力. 花川正天稟可愛, 其志操亦不俗, 可與有爲者也, 賢侍時有引接可勸則勸之如何, 與人爲善, 亦君子之所當勉也. 선비는 …… 장(章) 원문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은 《논어》 〈자로(子路)〉에 보인다. 배우고 …… 익힌다 원문 '學而時習'은 《논어》 〈학이(學而)〉에 보인다. 자기 …… 회복한다 원문 '克己復禮'는 《논어》 〈안연(顔淵)〉에 보인다. 화천정(花川正) 이수붕(李壽鵬)을 가리킨다. 이수붕은 남이공(南以恭)과 함께 정개청에게 수학하였고, 학봉 김성일(金誠一)과 교유하였다. 또한 윤휴(尹鑴)의 숙조(叔祖) 윤전(尹烇)이 그에게서 수학하였다. 《愚得錄 卷2 論禮 答花川正壽鵬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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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삼고 발문7) 錦城三稿跋 【原無題】 우리 증조부의 형제 6인에게 육룡(六龍)이라는 호칭이 있었다. 첫째는 소포공(嘯浦公)이고, 둘째는 금암공(錦巖公)이며, 금봉공(錦峰公)이 그 다음이다. 모두 성대하게 한 시대에 명성이 있어 담론하는 자들이 영특하고 호걸하며 얽매임이 없는 것으로는 소포공을 추대하고, 독실한 학문과 훌륭한 행실로는 금암공과 금봉공을 추대하니, 아! 성대하였도다.소포공은 일찍이 저술한 것이 있으나 전사(傳寫)한 것에 섞인 글이 많아 나는 이전부터 이것을 근심으로 여겼고 또한 원고가 산실되어 잃어버려 전해지지 않을까 염려하여 편차하고 베껴 적으니 시와 부와 약간의 편지글과 상소문 총 60여 편이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금암과 금봉 두 분도 모두 약간의 글이 있어 또한 차마 사라지게 할 수가 없으므로 소포공의 글 끝에 모두 부치고 또 〈세계(世系)〉, 〈장(狀)〉, 〈녹(錄)〉 등을 실어 하나의 책으로 합쳤다. 마침내 소포공의 현손 나만운(羅晩運)과 금봉공의 증손 나두흥(羅斗興)과 함께 어떻게 출판할 것인지 협의하고 판각하는 사람에게 부쳐서 없어지지 않기를 도모하였다. 다만 정곤재의 《우득록》을 보면 금암공에게 준 편지가 많아 40여 수에 이르고 그 학문과 예에 대해 논하며 추장한 말들이 공을 예우하여 권면하는 글뿐만이 아니었으니 필시 원고가 사라져 용사(龍蛇)의 병화에서 일실되어 지금 남아있는 것이라곤 이처럼 원고가 소략하니 참으로 애석하다.아! 옛날을 회상하니 어느덧 1백여 년이 지났으나 오직 이 유문(遺文)은 사라지지 않았거늘 이제야 이 일을 실행하여 몇이라도 보존된 것이 있는 듯하니 또한 자손들에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역(工役)이 이미 완성되어 전말을 위와 같이 대략 쓴다.숭정(崇禎) 후(後) 두 번째 신축(1721) 1월 신미에 금암공의 증손인 생원 나두동(羅斗冬)이 삼가 쓰다. 惟我曾王父兄弟六人, 有六龍之稱. 其伯曰嘯浦公也, 其仲曰錦巖公, 而錦峰公又其次也. 皆蔚有聲名一時. 談論者以英傑不羈推伯氏, 以篤學修行, 推仲叔, 吁其盛矣. 嘯浦公嘗有所著而傳寫多 魚魯, 斗冬旣以是病之, 又恐其散失無傳, 爲之編次繕寫摠詩賦若書疏六十餘首也. 仍伏念錦巖 錦峰二公, 俱有若干文字, 亦不忍其湮沒, 幷附諸其下, 且載以世系狀錄合成一冊子. 遂與嘯浦公之玄孫晩運, 錦峰公之曾孫斗興, 協議經紀, 付諸剞劂氏, 以啚不朽, 而第見鄭困齋愚得錄, 則與錦巖公書多, 至四十餘首, 而其所論學論禮, 推獎之語, 不啻勤摯. 公必有所覆而逸於龍蛇病禍, 今其存者, 如是草略, 可勝惜哉. 嗚呼! 感念今昔, 焂已百有餘年, 而惟此遺文不泯, 始擧斯役, 似若有數存焉, 而亦可謂子孫幸也. 工旣訖功, 略敍顚末如右云爾. 崇禎後再辛丑正月辛未, 錦巖公之曾孫生員冬, 謹識. 금성삼고 발문 제목은 없다. 내용상 삼고(三稿)의 발문에 해당되기 때문에 역자가 임의로 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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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2) 錦湖遺事序(2) 우리 선조이신 금호공의 유사 한 권은 대개 말씀과 행실이 없어질까 염려하여 편차한 것이다. 우리 선조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효성을 타고나 일찍이 모친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에 피를 내어 생명을 살리셨다. 이 때문에 중종과 선조 두 조정에서 세 번의 표창이 있었으니 정려를 표시한 일, 발탁하여 등용한 일, 죄를 용서하여 사면한 일이 그것이다. 또 어진 스승과 벗들과 종유하면서 학문의 단서가 될 의론을 들으니, 송서교[宋贊]가 칭찬하여 “학문과 행실을 갖추었다.”라고 한 것과, 김학봉[金誠一]이 이른 ”학문으로 업을 삼았다.”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끼친 가르침이 자손에게 남아 충(忠), 효(孝), 열(烈)이 한 집 안에서 모두 나왔으니, 어찌 덕을 두텁게 하고 선을 쌓은 군자들이 아니겠는가. 아! 우뚝 솟은 정려문이 옛 마을 길가에 지금도 있어 사대부로서 그 앞을 지나는 자들은 모두 두 손을 모으고 예를 표하니 세상의 부자(父子)들은 반드시 모두 이를 보고 감동하여 권면한다.다만 남은 전적들은 세대가 멀어 남아 있는 것이 없으니 실로 훗날의 사람들에게 끝없는 유감으로, 내가 일찍이 들었던 《대기(載記)》에 “선조에게 훌륭한 점이 있어 알고도 전하지 않는다면 어질지 못한 것이다.” $주 선조에게 …… 것이다 : 《예기》 〈제통(祭統)〉에 보인다.라고 한 것과 같다. 나는 이 점을 두려워하여 이에 뜻을 다하여 수집한 뒤에 〈세계〉를 앞머리에 두고, 각 조목을 〈저술〉, 〈유묵〉, 〈포장〉, 〈사실기〉, 묘도문 순서로 하였다. 또 행적 가운데 선인들의 글에 끼어 나온 것, 여러분들과 수창한 시, 종유했던 스승과 벗들에 대한 기록을 끝에 부록하여 하나의 책자를 이루었다. 우리 선조의 언행 전말을 여기에서 증명할 수 있어 장차 판에 새겨 불후하기를 도모하니 감히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손들로 하여금 집에 간직하여 수시로 열람하여 갱장(羹墻)의 사모 $주 갱장(羹墻)의 사모 : 죽은 사람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요(堯) 임금이 죽은 뒤에 순(舜) 임금이 3년 동안이나 그를 앙모(仰慕)하여, 앉아서는 요 임금을 담장〔墻〕에서 보고, 밥을 먹을 때면 요 임금을 국〔羹〕에서 보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63 李固列傳》에 부치고자 하는 것이다.숭정(崇禎) 후(後) 두 번째 을사년(1725) 겨울 11월 하순에 현손 나두동(羅斗冬)이 삼가 쓰다. 吾先祖錦湖公遺事一通, 蓋慮言行之泯沒, 而爲之纂次者也. 吾先祖自在童幼時, 誠孝出天, 嘗値母夫人病篤, 血指蘇命, 此所以中宣兩朝, 有三褒之旨, 而旌表之, 擢用之, 寬宥之也. 且從賢師友, 得聞緖論, 宋西郊所稱學行俱備, 金鶴峯所謂學問爲業者, 有以也. 若其遺敎在子孫, 至使忠孝烈竝生於一家, 豈非厚德積善之君子人耶. 噫! 巍然旌棹之門, 見在故里路傍, 而士大夫過其前者, 咸拱式之, 則世之爲父子者, 必皆觀感激勵于斯, 而第其遺籍, 世遠無存, 實爲後人無窮之憾也. 嘗聞戴記曰 : “先祖有善, 知而不傳, 不仁也.” 斗冬有懼, 於是, 乃極意蒐集, 首錄世系, 此敍各條曰 著述也 遺墨也 襃獎也 事實記也 墓道文也. 又以行蹟之雜出於先輩文字者及諸公之所酬唱詩章, 及所從遊師友, 附諸末端, 仍成一冊子. 吾先祖言行顚末, 於此可徵, 將鋟梓圖不朽, 非敢擬示諸人也, 只欲使子孫, 家藏而時閱之, 以寓羹牆之慕云爾. 崇禎後再乙巳冬十一月下浣, 玄孫 斗冬, 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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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애집(南崖集) 2권1책 南崖集 南崖集 고서-집부-별집류 문집 표점 南崖集 洪翼鎭 석판본 남애집(南崖集) 1 半郭 有界 11行24字 註雙行 註雙行 미상 미상 조선 후기의 학자 홍익진(1766~1801)의 시문집. 현손 홍복희(洪復憙)와 홍석희(洪錫憙) 등이 편집하여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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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題正祖先皇帝御考南崖洪先生試券後 右正祖宣皇帝庚戌御考南崖洪先生應製試券也竊伏惟正廟聰明睿智廻出百王敷文至治軼漢唐而侔殷周其所以致賢養士之道莫不周到大小會試之外又設賓興之試以敦興起斯文之術巖穴之士抱經綸而望治平者莫不延頸而子來惟時先生以白面寒儒竗年應製獻賦至蒙恩批煌煌合三上之選人之榮之也比登瀛焉于此一券後之人尙可以知上洽躬行心得之餘化下慥切磋琢磨之實工也粤稽古昔韓昭侯藏弊袴以待有功者齊景公賜二桃能 致勇士之憤殞夫君上代天造命者也故有愛一嚬一笑之語以正廟之賢豈不知此道而旣熀雲漢天章於試券繼以寵賜書冊硯墨于無尺寸之功之先生恩數之異豈尋常酬勩之比哉盖睿覽文辭之宏博筆劃之勁麗知有可爲之才學而作興之以待道日益盛德日益立而爲需時之用可知也嗚呼以先生之才學使擧蓮桂榜則拾紅白可如芥易而以是年春歸湖南侍其大人石崖先生癠五六年以餘力深究性理之學及石翁捐館後三年始登才行薦 除寢郞上疏陳農政正廟嘉納優批將措施其策明年正廟賓天又明年公且歿焉道之能行果有數存焉者耶先生後孫敬藏試券者百七十餘年矣今將刊行先生遺集模刻而弁于卷首以爲對揚聖朝之恩寵因於紙面差有異同可爲惺恐者也若其立賢無方之聖德則可見於此矣其可欽敬哉甲辰小春節遺民幸州奇老章稽首拜手敬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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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李氏)【화백(和伯)】의 개장(改葬)에 대한 만사 輓李【和伯】改葬 어진 이가 어찌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하며 선한 이가 무슨 잘못인가하늘 또한 말이 없고 밝은 해만 높이 떠 있네이름난 조상의 의로운 명성 천지를 부지하였는데잔약한 자손의 유업(遺業)은 쑥대 우거진 집에 막혀 있네묵은 풀을 거듭 헤쳐 쌍혈(雙穴)을 열고다시 새로운 무덤을 향해 공뢰(共牢)로 제사 지내네296)한 명의 자식만이 상복을 입고 있으니울기를 마치고서 피눈물을 닦으며 푸른 하늘 향해 부르짖네 仁何不祐善何咎天亦無言白日高名祖義聲扶宇宙孱孫遺業滯蓬蒿重披宿草開雙穴更向新阡祭共牢惟有一孤蒙緦絰泣終抆血徹蒼號 공뢰(共牢)로 제사 지내네 부부가 함께 같은 희생을 먹는 것이다. 이화백(李和伯) 부부에게 함께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듯하다. 《예기》 〈혼의(昏義)〉에, "신부가 오면 신랑은 신부에게 읍하고 안으로 들어가 같은 적틀에 차려서 먹고 같은 술잔을 나누어 마시고 입가심을 한다. 이는 몸을 합하고 존비를 같이함으로써 친하게 하려는 까닭이다.[婦至 壻揖婦以入 共牢而食 合巹而酳 所以合體同尊卑以親之]"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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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永平) 채후(蔡侯)【충립(忠立)】에 대한 만사297) 挽永平蔡侯【忠立】 잔약한 고을의 민가 의지해 살 곳을 잃었으니두모(杜母)298)의 어진 수레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네299)정사엔 형벌을 가볍게 하였으니300) 모두 은혜를 우러르고301)옷은 관을 채울 것도 없으니 비로소 청렴함을 알겠네호산(湖山)의 역로(驛路) 거리가 천리인데적막한 혼여(魂輿)302) 깃발 하나로 표시하네저 제주(齊州)의 잔 위의 물을 따라303)만가(輓歌)를 세 번 부르며 공의 떠나가는 길 전송하네【채후를 관에 염(斂)할 때 베옷과 짧은 바지 이외에 관아에 보관해 둔 것이 없었다고 한다. 때문에 시에서 언급하였다.】 殘鄕編戶失憑生杜母仁車遽棄城政用鞭皮方仰惠衣無充棺始知淸湖山驛路修千里寂寞魂輿表一旌酌彼齊州盃上水紼謳三唱送公行【蔡侯斂棺時。布被短袴之外。衙無所藏云。故詩中及之。】 영평(永平)……만사 '채후(蔡侯)'는 채충립(蔡忠立)을 가리킨다. 사재감 주부(司宰監主簿), 황간 현감(黃澗縣監), 남평 현감(南平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이 시와 관련하여 《남포집》 〈남교일기(南郊日記)‧갑진(甲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2일 갑자.……고을 아전이, 내일이 수령 채충립(蔡忠立)의 발인이라고 고하고 돌아갔기에 찾아가 보았다. 상주가 만사를 청하기에 한 편의 율시를 지어 주었다. 채후는 성품이 질박하고 너그럽고 검소하였으나 정사에는 재주가 없었다. 때문에 백성들이 비록 그의 사납지 않은 면을 좋아하였으나 융통성이 없음을 단점으로 여겼다. 상을 당하였을 때 고을 사람 윤선갑(尹先甲)과 홍종화(洪鍾華)가 그 상을 맡아 다스렸는데, 베옷과 짧은 바지 이외에는 관아에 보관해 둔 것이 없어 관에 염(斂)을 할 수 없었다. 이에 고을 사람들이 함께 부의하여 옷과 바지를 사서 염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내가 만사의 3, 4구에서 '정사엔 형벌을 가볍게 하였으니 모두 은혜를 우러르고, 옷은 관을 채울 것도 없으니 비로소 청렴함을 알겠네'라 하였다. 또 7, 8구에서 '저 제주(齊州)의 잔 위의 물을 따라, 만가(輓歌)를 세 번 부르며 공이 떠나가는 길 전송하네'라 하였으니, 이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初二日甲子……邑吏告明日主倅蔡侯忠立旅櫬發引而歸 往見之 喪主請挽辭 爲賦一篇律語 盖蔡侯質朴寬儉 而無才於政事 故民雖愛其不猛而短其無變通 及其喪也 邑人尹先甲洪鍾華 典治其喪 布被短袴之外 衙無所藏 無以斂棺 鄕人共賻 買被與袴而斂之云 故余挽辭三四云政用鞭皮方仰惠 衣無充棺始知淸 其七八云酌彼齊州盃上水 紼謳三唱送公行云 盖記實矣]" 두모(杜母) 선정을 베푼 지방관을 뜻하는 말로, 곧 채충립을 가리킨다. 후한(後漢) 사람 두시(杜詩)가 남양 태수(南陽太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자, 남양 사람들이 "앞에는 아버지 같은 소신신이 있고 뒤에는 어머니 같은 두시가 있다네.[前有召父 後有杜母]"라 칭송한 데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卷31 杜詩列傳》 세상을 떠나셨네 원문은 '기성(棄城)'이다. 수령 채충립의 사망을 높여 표현한 것이다. 형벌을 가볍게 하였으니 원문의 '편피(鞭皮)'는 곧 숙피편(熟皮鞭)을 말한다. 제혁한 가죽으로 만든 부드러운 채찍이다. 북제(北齊) 때 최백겸(崔伯謙)이 북지 태수(北地太守)가 되어 채찍을 숙피편으로 고쳐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이는 차마 피나는 것을 볼 수 없어 그 부끄러움만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北齊書 卷46》 《北史 卷32》 우러르고 원문은 판독불가인데, 《남포집》 〈남교일기(南郊日記)‧갑진(甲辰)〉의 내용에 의거하여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혼여(魂輿) 장사(葬事) 때 죽은 이의 옷을 실은 수레를 말한다. 저……따라 이는 당(唐)나라 이하(李賀)의 시 〈몽천(夢天)〉에 "멀리 제주를 바라보니 아홉 점의 연기와 같고, 큰 바닷물도 한 잔 물을 쏟아부은 듯하네.[遙望齊州九點煙 一泓海水杯中瀉]"라 한 데서 취해 온 구절이다. '제주(齊州)'는 중주(中州) 즉 중국으로, '제주가 아홉 점의 연기와 같다'는 것은 중국의 구주(九州)도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아홉 점의 연기처럼 보임을 말한 것이다. 채충립이 세상을 떠나 그의 넋이 하늘로 올라간 상태이므로 지상에서 잔을 올리는 모습을 이와 같이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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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주잠 戒酒箴 지가 안정되면 기도 편안하고기가 혼탁하면 지도 정체된다성이 고요하면 심도 바르고심이 어두우면 성도 가려진다기는 지의 군졸이고심은 성의 성곽이다문란한 군졸은 성곽을 허는데술이 가장 심하다지를 바꾸고 성을 멸하며몸을 죽이고 나라를 엎는다이에 소자여감히 힘쓰지 않겠는가맛있는 술을 싫어하고 선을 좋아한숭백41)을 본받으라 志定氣安。 氣渾志滯。 性靜心正。 心昏性蔽。 氣爲志卒。 心作性郭。 亂卒毁郭。 惟酒斯極。 移志滅性。 喪身覆國。 惟玆小子。 其敢不勖。 惡旨好善。 崇伯是則。 숭백(崇伯) 숭백자(崇伯子)인 우(禹) 임금을 말한다. 본래 우 임금의 아버지 곤(鯀)이 숭(崇)에 봉작되었으므로 숭백(崇伯)이었다.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 2〉에 "옛날에 제녀가 의적으로 하여금 술을 만들게 하였는데 맛이 있었다. 이를 우(禹)에게 올렸는데, 우가 마셔 보니 맛이 있었다. 이에 마침내 의적을 멀리하고 맛있는 술을 끊으면서 '후세에 반드시 술 때문에 자기 나라를 망하게 할 자가 있을 것이다.' 하였다.[昔者帝女令儀狄作酒而美, 進之禹, 禹飮而甘之, 遂疏儀狄, 絶旨酒曰, 後世必有以酒亡其國者.]"라고 하였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맛있는 술을 싫어함은 숭백의 아들(崇伯子 우 임금)이 부모를 돌보고 봉양한 것이다.[惡旨酒崇伯子之顧養]"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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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색잠 戒色箴 나의 성(性)은 장수이고나의 몸은 기(氣)로 차 있는데42)형체를 품부 받고 나면형체는 사욕을 낸다여러 사욕 가운데제어하기 어려운 게 색이다눈이 가려지면그 마음도 옮겨가서나의 정기를 해치고나의 천성을 뺏는다부모가 신체를 남겨주고천지가 명을 부여했는데요사한 색에 몸을 던지고전혀 경계할 줄 모른다감히 맹렬이 반성하여확연히 주경43)하지 않으랴이 잠언을 저버린다면짐승과 같을 것이다 我性其帥。 我體其塞。 旣稟是形。 形能生慾。 衆慾之中。 難制惟色。 蔽之于目。 其中則遷。 戕我至精。 奪我眞天。 父母遺軆。 天地賦命。 投之妖巧。 渾不知警。 敢不猛省。 廓然主敬。 若負此箴。 橫首同行。 기(氣)로 차 있는데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지(志)는 기(氣)의 장수이고 기는 몸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夫志氣之帥也, 氣體之充也.]" 하였다. 주경(主敬) 주일무적(主一無適)하여 정신을 전일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송나라의 유학자인 정자(程子)나 주자(朱子) 등이 주창한 수양법(修養法)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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