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결을 세 번 들어 보이다117) 三擧玉玦 백만 군대에 이만 군사로 충분한 요새요118)바람 탄 범과 구름 몬 용이 교전하던 곳이라우레와 천둥 노한 듯이 몰아치던 사이에늠름한 위엄있는 얼굴로 연회 마주했네술통 앞 광경 다 의심할 만하니다시 옥결 들어 보인 이 어떤 사람인가포어 실은 수레 어젯밤 사구를 지나갔으니119)초나라 삼호에서 벌떼처럼 많이 일어났네120)장군이 손수 팔천 병사 지휘해 이끌고서강을 건너 서쪽으로 가니 누가 막을 수 있으랴121)신안 구덩이에 묻힌 자 반은 진나라 사람이니122)눈앞의 사슴 있지만 썩은 쥐와 같구나함곡관 이미 주머니 속 물건 되었으니먼저 들어가 종거123)를 취한 이 누구인가분기탱천하기로는 장수나 병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그 형세 금도124)를 압도하여 막기 어려웠네누가 파상에서 목숨 부지하고 있는 이로 하여금와서 홍문에서 주빈의 차례 짓게 하였나125)남아가 서로 만나 또 기쁘게 연회 즐기니만 마리 소고기 안주에 만 곡 술이로다천지가 암암리에 콧대 우뚝한 이에게 들어가니126)부월만 공연히 왕의 처소에 남아 있누나모신이 이때 간담이 찢어질 듯하였으니우리 군주의 대사 어긋남을 차마 볼 수 있었으랴힘이 없으니 목을 베어 피 뿌리지 못하고훌륭한 말 있어도 누가 말을 전하겠나허리춤에 옥결을 차고 있는 사람옥결 차고 군주 앞에서 기다리니정신은 눈에 있고 옥결은 손에 있어눈으로 신호를 보낼 적에 옥결도 들었네명칭을 통해 내포된 뜻 생각할 수 있고작은 사물이 예로부터 큰일을 깨우친다네임금의 마음 하루 안에 결정되길 어이 기다릴꼬이 기회는 하늘이 준 것임을 알아야 하거늘번거롭게도 내가 두 번 세 번 다시 들었건만어찌하여 장군은 나와 함께하지 않는가달콤한 말에 월나라 구천을 이미 믿었으니원대한 계책 세운 오자서를 누가 따르랴127)속내 감추고 나와 검무 추고도 베지 못했으니128)그 작은 인이 어찌 아녀자에게 부끄럽지 않으랴마침내 연회 끝나고 옥술잔 부서졌으니옥결 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한갓 의심만 했네129)관옥이 재물로 이간질하여버림받아 팽성에서 근심 품게 하였네130)범증 같은 사람도 제대로 쓰이지 못하거늘하물며 너는 기물이니 누가 너를 보배로 여기랴어찌하여 면목 없이 강동으로 건너가리오오강 가에서 한 자루 칼로 용감히 자결했네131) 百萬軍容百二關風虎雲龍交會處雷驚霆怒叱咜間凜凜威顔對樽俎樽前物色儘堪猜更有擧玦人何許鮑車昨夜過沙丘蜂起多從三戶楚將軍手提八千兵渡江西來孰能禦新安一坑半秦人鹿在眼中如腐鼠函關已爲囊中物先入何人取鍾衝冠怒髮將士同勢壓金刀難自沮誰敎灞上假遊魂來作鴻門賓主序男兒相見且爲歡萬牛之肴萬斛醑乾坤暗入隆準袖斧鉞徒然在王所謀臣此時膽欲裂忍見吾君大事去無力難將頸血濺有言誰憑口耳語腰間寶玦之子佩佩向君前爲延佇神惟在目玦在手目送神時玦又擧因名可思有意存小物從來可喩巨君心何待日中決此機須知天所予煩吾再三擧復擧胡乃將軍不我與甘言已信越句踐遠圖誰從吳子胥藏來舞釰亦不斷小仁能無愧兒女終然宴罷玉斗碎玦不取決徒疑阻從敎冠玉用間金受玦彭城抱憂緖人如范增不能用況汝器也誰玉汝夫何無面渡江東一釰勇決烏江渚 옥결을……보이다 홍문(鴻門)의 연회에서 유방(劉邦)을 죽이자는 암시로, 범증(范增)이 항우에게 눈짓을 하며 옥결(玉玦)을 세 번 들어 보였으나, 항우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국 유방은 번쾌(樊噲)의 도움으로 그곳을 탈출하였다. 《史記 項羽本紀》 백만……요새요 난공불락의 요새를 말한다. 《사기》 〈고조본기(高祖本紀)〉에 "진(秦)나라는 지세(地勢)가 뛰어난 나라로, 산하(山河)의 험고(險固)함을 띠고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어, 창을 가진 백만 군대를 진나라는 그 100분의 2로 막을 수 있다.[持戟百萬, 秦得百二焉.]"라고 하였다. 포어……지나갔으니 진시황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다. 진시황이 순행을 하던 도중 사구(沙丘)의 평대(平臺)에서 죽었는데, 정승 이사(李斯) 등이 진시황의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시신을 싣고 갔는데, 시체에서 썩는 냄새가 나므로 수레에 포어(鮑魚)를 실어서 냄새를 감추었다. 《史記 秦始皇本紀》 초나라……일어났네 초나라 삼호는 초나라 유민(遺民)을 뜻하는 말로, 초 회왕(楚懷王)이 진(秦)나라에 억류되었다가 3년 만에 죽은 일로 인해 초나라 사람이 진나라를 몹시 원망하여 "초나라에 비록 세 집만 남아 있어도,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분명히 초나라 사람들일 것이다.[楚雖三戶, 亡秦必楚也.]"라는 말까지 나왔다. 《史記 項羽本紀》 진시황이 죽은 뒤에, 진승(陳勝)이 오광(吳廣)과 난을 일으켜 스스로 초나라 왕이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각처에서 봉기가 일어나 진나라는 결국 멸망했다. 《史記 陳涉世家》 장군이……있으랴 항우가 강동(江東)의 자제 8천 명을 이끌고 강을 건너 진(秦)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서초 패왕(西楚覇王)이 되었다. 《史記 項羽本紀》 신안……사람이니 항우가 하북(河北)을 평정하고 진나라 관중(關中)에 들어가고자 하였는데, 진나라의 항복한 군사들이 원망하는 말을 많이 하였다. 항우는 밤에 이들을 공격하여 진나라 병졸 20여 만 명을 신안(新安)의 성 남쪽에 파묻어 죽였다. 《史記 項羽本紀》 종거 진나라 궁궐의 상징적인 기물이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 함양(咸陽)에 모은 뒤 이를 녹여서 종거(鍾鐻)와 12개의 동인상(銅人象)을 만들어 궁전 안에 놓아 두었다. 《史記 秦始皇本紀》 금도(金刀) 한나라 유방을 가리킨다. '유(劉)'를 파자(破字)하면 '묘(卯), 금(金), 도(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금도'라 한 것이다. 누가……하였는가 항우와 유방이 함양(咸陽)을 두고 쟁탈할 당시, 유방이 먼저 함양을 점령한 뒤 파상(灞上)에서 10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주둔해 있었다. 항우는 유방이 함양을 함락했단 소식을 두고 격분한 나머지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홍문에 진주하여 유방을 공격하려 하였는데, 항우의 숙부인 항백(項伯)의 조정으로 서로 화해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유방이 직접 홍문으로 찾아가서 사과하니, 항우가 연회를 베풀어 유방을 접대했다. 《史記 項羽本紀》 천지가……들어가니 천지가 한 고조 유방의 손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콧대가 우뚝한 자는 유방을 가리킨다. 《사기》 〈고조본기(高祖本紀)〉에 "고조의 위인을 보면 콧대가 우뚝하고 용의 얼굴이었다.[高祖爲人 隆準而龍顔]"라고 하였다. 달콤한……따르랴 항우가 범증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부차가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은 일에 빗댄 것이다. 춘추 시대에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배한 뒤 항복하고 오나라에서 노복으로 있을 적에, 구천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오나라의 태재(太宰) 백비(伯嚭)가 월나라와 화친할 것을 주장하였다. 오자서(伍子胥)는 부차에게 월왕 구천을 죽여야 한다고 간언했으나, 부차는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 백비의 말을 들어 구천을 놓아주었으며, 훗날 백비의 참소를 듣고 오자서를 죽였다. 이 때문에 결국 오나라는 월나라에게 멸망을 당했다. 《史記 伍子胥列傳》 숨어……못했으니 홍문의 연회에서 범증이 항장(項莊)을 시켜 검무(劍舞)를 추다가 유방(劉邦)을 찔러 죽이라고 하였다. 이에 항장이 나와 검무를 추며 기회를 노렸다. 《史記 項羽本記》 마침내……했네 항우가 범증에게 옥술잔을 주었었는데, 홍문의 연회에서 항우가 유방을 죽이지 않자 범증이 노하여 옥술잔을 깨뜨렸다. 후에 유방의 반간계(反間計)로 인해 항우가 범증을 의심하자 범증은 화가 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중도에 화병으로 등창이 나서 팽성(彭城)에서 죽었다. 《史記 項羽本紀》 관옥이……하였네 관옥(冠玉)은 유방의 책사 진평(陳平)을 가리키는 말로, 용모가 수려하여 '관옥'이라 불렸다. 항우가 진평에게 황금 4만 근을 가지고 초나라로 들어가 항우와 신하들 사이를 이간질하게 하여, 결국 항우는 범증을 의심하게 되었다. 범증은 항우의 의심에 분노하여 고향으로 떠났는데, 팽성(彭城)에 이르러 등창이 나서 죽었다. 《史記 項羽本紀》 어찌하여……자결했네 항우가 해하(垓下)의 전투에서 패한 뒤 한나라 병사에게 쫓겨 오강(烏江)에 이르자, 정장(亭長)이 배를 대주며 강동으로 건너가 권토중래하라고 권유했는데, 항우는 "내가 강동의 자제 8천명을 데리고 강을 건너 서쪽으로 왔는데, 지금 한 명도 돌아가지 못하니, 비록 강동의 부들이 불쌍이 여겨 나를 왕으로 세우더라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겠는가?[籍與江東子弟八千人渡江而西, 今無一人還, 縱江東父兄憐而王我, 我何面目見之?]"라고 말하고, 정장에게 오추마(烏騅馬)를 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史記 項羽本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