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문학도 德性問學圖 《중용(中庸)》의 이 일절(一節)은 학문하는 본말공부 (本末工夫)를 다 갖추고 있어서 선유(先儒)가 이것에 삼가지 않음이 없었지만 다만 우리 자양(紫陽)115)선생만이 더욱 이것에 정밀(精密)하였다. 평소에 힘쓰는 것이 이 두 가지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116) 이에 삼가 손으로 그려서 도(圖)를 만들어 항상 마음과 눈으로 관찰하고 살피었고, 또 진서산(眞西山)117)의 《심경心經》 말장(末章)과 황돈(篁敦)이 주워 모은 전체 대용(大用)의 설을 참고하였다.118)오명중(吳明仲)119)이 나를 용두초사(龍頭草舍)로 방문하여 며칠간 머무르 면서 〈퇴계심통성정도(退溪心統性情圖)〉120)를 읽고, '이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의 말에 이르러 명중이 의심하여 말하기를 "리(理)는 본래 적연부동(寂然不動)하니 어찌 리가 먼저 발하는 이치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당연히 처음에는 그의 말을 잠시 의심하여 답을 하지 못하였다. 물러감에 미쳐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성(性)은 곧 리이니 그것이 미발(未發)을 당하여 리는 성에 갖추어져 있다. 그것이 기발(旣發)에 미쳐서 리기(理氣)가 동(動)하여 정(情)이 된다. 그렇다면 이 리의 미동(未動)은 성이 되고 기동(旣動)은 정이 되기 때문에 리는 본래 적막한 느낌이 있는데 적(寂)이라는 것은 체(軆)요 감(感)이라는 것은 용(用)이다. 이미 감(感)이라고 했다면 동(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리가 먼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다. 리의 지선(至善)은 혹 어둡고 혹 박잡한 기에 섞이지 않으니 이것이 중절(中節)의 정이 되고, 기가 발하여 리가 따르는 것은 지선의 리가 기에서 명(命)을 들으니 이것은 부중(不中)의 정이 된다.121) 어찌 리의 적연부동함이 마치 고목의 죽은 재처럼 반드시 기가 발하기를 기다린 후에 리가 따라서 발함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그 후에 황면재(黃勉齋)122)가 "사물에 감응하여 동하는 경우, 혹은 기가 동하고 리가 따르며 혹은 리가 동하고 기가 낀다. 이로 말미암아 지선의 리가 기의 명령을 들으니 이로 인하여 선악이 갈라진다."라고 말한 것을 보았다. 그런 연후에 왕성히 크게 깨달았고, 또 퇴계 리발의 설을 알았으니 나의 소견이 아니고 유래가 있는 것이다.【명중의 이름은 이정(以井)이고 한림(翰林) 희도(希道)의 아들인데 상상(上庠)123)에 올랐다가 일찍 죽었다.】주자(周子)가 말하기를 "태극(太極)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는다."124)라 하니 대개 태극은 리이다. 만약 "리는 전혀 발한 것이 없다."라고 한다면 주자가 무엇 때문에 "태극이 동한다."라고 말했겠는가? 주자(朱子) 또한 말하기를 "기에 이미 동정이 있으면 실린 리 또한 어찌 동정이 없겠는가?"라고 하였다. 대개 기란 리의 기(器)이다. 지금 기를 보니 또한 미악(美惡)이 있다. 만약 여기에서 리라고 한다면 하늘에 있고 사람에게 있는 것이 본래 선악의 다름이 없다. 혹자가 주자에게 묻기를 "성(誠)이란 이 책의 추뉴(樞紐)이고 수장(首章) 한편의 요체인데 성(誠)을 말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수장의 천명지성(天命之性)의 성(性) 자는 21장 자성명(自誠明)의 성(誠)과 동의어이고,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의 도(道) 자는 20장의 성지(性之)의 성(誠)과 서로 유사하며,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의 교(敎) 자는 25장의 성자비자성기야(誠者非自成己也)·소이성물(所以成物)의 성(誠) 자와 서로 흡사하다. 계구신독(戒懼愼獨)125) 즈음에 성(誠)이 없으면 진실로 망령되지 않을 수 없어서 존양성찰(存養省察)의 공부126)가 세워지지 않게 된다. 미발에 중정(中靜)이 성(誠)이고 기발에 화동(和動)이 성(誠)이다.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길러지는 데에 이르면 지성(至誠)의 도(道)가 천지에 참여하여 화육(化育)을 돕는 극치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장(首章)에서 비록 성(誠) 자를 말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성(誠)의 도가 그 가운데에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2장의 물건을 그릇에 담는 것에 이르러서는 담긴 물건이 움직이면 그릇이 따라서 움직이고 그릇이 움직이면 담긴 물건 또한 움직일 것이다. 리와 기가 어찌 항상 서로 떨어짐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리가 발하면 기가 따른다.'라는 것이 과연 근거가 없겠는가?"라고 하였다.매번 《중용》 수장에서 '천명을 일러 성이라고 한다.'라고 하고, 《장구》에서 '기가 형을 이루면 리 또한 그곳에 부여된다.'127)라고 하는 구절을 읽음에, 대개 자사(子思)가 다만 리를 말하고 기를 말하지 않았는데 주자(朱子)가 한 개 기(氣)자를 첨가해서 리는 허투루 행할 수 없으니 반드시 기에 깃들게 하고 기는 스스로 선할 수 없으니 반드시 리에 도움을 받도록 밝혀놓았다. 이곳이 주자장구에서 앞에 현인이 발하지 못한 것을 발하여 크게 공이 있는 곳이다. 기가 비록 혼(昏)·명(明)의 다름이 있더라도 리의 밝은 것은 본디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이미 밝은 리를 따른다면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은 즉 형을 이룬 기이니 또한 하늘의 명이고, 사람의 기질에서 미악(美惡)의 다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니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그렇지 않음이 없다.혹자가 묻기를 "《중용》은 실로 중화의 뜻을 겸했는데 기발의 뒤에 또한 중(中) 자를 썼습니까?"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그렇다. 발이중절(發而中節)의 중(中), 용기중어민(用其中於民)의 중(中), 군자시중(君子時中)의 중(中)은 기발의 중이고, 천하대본(天下大本)의 중(中), 치중(致中)의 중(中), 중립불의(中立不倚)의 중(中)은 미발의 중이다. 군자중용(君子中庸)의 중(中), 택호중용(擇乎中庸)의 중(中)은 기발·미발을 겸해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혹자가 묻기를 "수장에 또한 비은(費隱)의 도(道)가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답하기를 "12장에서 '비이은(費而隱)'을 말했고, 수장에서 '은이비(隱而費)'를 말함에 대개 비(費)와 은(隱)128)의 도는 일이 그렇지 않음이 없고, 물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크게는 천지요 은미하게는 부부(夫婦)이다. 티끌 하나의 작은 것과 만사의 광대함에도 리가 있지 않음이 없고 리에 은(隱)이 있고 비(費)가 있지 않음이 없다. 만약 수장으로 논한다면, 성(性)에서는 성 가운데에 비은(費隱)이 있으나 도(道)에서는 성(性)은 은이고 도는 비이다. 만약 오로지 도를 말하면 도 가운데 또한 비은이 있다. 교(敎)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비하여 은처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예악(禮樂)·형정(刑政)의 소이연(所以然)129)을 구한다면 또한 지극히 은(隱)한 것이 그곳에 있게 된다. 그 '잠시도 떠나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 것은 비이고, 그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은 은이다. 그 '희로애락의 미발'이라고 한 것은 은이고 그 '발하여 절도에 맞다.'라고 한 것은 비이다. '은미한 곳에서 신독한다.'는 것은 은이고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길러진다.'는 것은 비이다. 그러나 비 가운데 은이 있고, 은 가운데 또한 지극한 은이 있으니 일면을 통찰하여 숙독하고 정밀하게 탐구하면 그 맛이 무궁할 것이다. 몸가짐을 지극히 단속하고 미치는 것이 지극히 넓은 것은 비은(費隱) 두 글자가 최고일 테니 지극히 정미함을 미루고 만 가지 변화를 확대하여 비은(費隱) 위에서 공부한다면 얻는 것이 매우 넓을 것이니 학자는 마땅히 백배로 사색해야 할 곳이다."라고 하였다. 按中庸此一節。 該盡爲學本末工夫。 先儒莫不致謹於此。 而獨我紫陽老先生尤爲精密於此。 平生用力。 不外此二者。 玆謹手畫爲圖。 常常觀省于心目。 而又以心經末章及篁敦所摭全體大用之說參看。 吳明仲訪余於龍頭草舍留數日。 讀退溪心統性情圖。 至理發而氣隨之語。 明仲疑曰: "理本寂然不動。 安有理先發之理哉?" 余當初暫疑其言而不能答。 及退而自思。 以爲'性卽理也。 當其未發。 理具於性。 及其旣發。 理氣動而爲情。 然則是理之未動爲性。 旣動爲情。 故理固有寂感。 而寂者軆也。 感者用也。 旣曰感則非動而何? 故理先發而氣隨之。 理之至善。 不渾於或昏或駁之氣則是爲中節之情。 氣發而理隨之。 理之至善。 聽命於氣則是爲不中之情。 安有理之寂然不動。 如枯木死灰。 必待氣發而後理隨而發哉?' 其後見黃勉齋氏之說曰: "及其感物而動則或氣動而理隨之。 或理動而氣挾之。 由是至善之理。 聽命於氣。 善惡由之而判矣。" 然後汪然大覺。 又知退溪理發之說。 非自家所見而有自來矣。【明仲名以井。 翰林希道之子。 登上庠早歿。】 周子曰: "太極動而生陽。" 盖太極理也。 若曰'理全無所發'。 周子何以曰'太極動'云哉? 朱子亦曰: "氣旣有動靜則所載之理。 亦安得無動靜。" 盖氣者理之器也。 今觀氣亦有美惡。 若此理則在天在人。 固無善惡之殊。 或問朱子曰: "誠者此篇之樞紐。 首章一篇之軆要。 而不言誠何也?" 曰: "首章天命之性性字。 與二十一章自誠明之誠同意。 率性之謂道道字。 與二十章性之之誠相類。 修道之謂敎敎字。 與二十五章誠者非自成己也。 所以成物之誠字相似。 戒懼愼獨之際。 非誠不能眞實无妄。 而存養省察之工夫。 不能以立矣。 未發而中靜而誠也。 旣發而和動而誠也。 至於天地位萬物育則至誠之道。 可以參天地贊化育之極矣。 然則首章雖不言誠字。 誠之道貫徹於其中矣。 至於二章以物盛於器。 所盛之物動則器隨而動。 器動則所盛之物亦動。 理與氣何常有相離哉? 然則理發而氣隨者。 果無據歟?" 每讀中庸首章曰'天命之謂性'。 章句曰'氣以成形。 理亦賦焉'。 盖子思但言理而不言氣。 朱子添得一氣字。 以明理不可虛行而必寓於氣。 氣不能自善而必資於理。 此朱子章句發前賢之未發而大有功處也。 氣雖有昏明之殊。 而理之明者固自若也。 循其已明之理則可以變化氣質矣。 天命之謂性則成形之氣。 亦天之命也。 而人之氣質有美惡之殊者可見。 在天之以下無不皆然。 或問"中庸實兼中和之意。 則旣發之後。 亦下中字否?" 曰: "然。 發而中節之中。 用其中於民之中。 君子時中之中。 旣發之中也。 天下大本之中。 致中之中。 中立不倚之中。 未發之中也。 君子中庸之中。 擇乎中庸之中。 兼旣發未發而言也。" 或問"首章亦有費而隱之道歟?" 曰: "十二章言費而隱。 首章言隱而費。 盖費隱之道。 無事不然。 無物不有。 大而天地。 微而夫婦。 一塵之細。 庶事之廣。 莫不有理。 而理莫不有隱有費。 若以首章論之。 在於性則性之中有費隱。 在於道則性隱而道費。 若專言道則道之中亦有費隱。 至於敎則似若專費而無隱處。 然求其禮樂刑政之所以然則亦有至隱者存焉。 其曰: '不可須臾離者費也。' 而其曰: '不睹不聞者隱也。' 其曰: '喜怒哀樂之未發者隱也。' 而其曰: '發而中節者費也。' '愼獨於隱微者隱也。' 而天地位萬物育者費也。 然費之中有隱。 隱之中亦有至隱。 透得一面。 熟讀精探。 其味無竆。 所操至約而所及極博者。 無過於費隱二字。 推之至精。 擴之萬變。 費隱上做工夫。 所得甚廣。 學者當可百倍思索處。" 자양(紫陽) 안휘성(安徽省)에 있는 산 이름인데, 여기서는 송(宋)나라 주희를 가리킨다. 주희의 아버지 주송(朱松)이 안휘성(安徽省) 흡현(歙縣)에 있는 자양산(紫陽山)에서 독서하였는데, 주희가 그곳에 청사(廳事)를 자양서당(紫陽書堂)이라 하였으므로, 자양은 주희의 호(號)가 되었다. 후세 사람들이 흡현에 자양서원(紫陽書院)을 세웠다. 평소에 …… 않는다 《중용》에 보이는 도문학(道問學)과 존덕성(尊德性)을 말한다. 《중용장구》 제27장에 "군자는 덕성(德性)을 높이며 학문(學問)을 말미암는다.[君子尊德性而道問學.]"라고 하였다. 존덕성(尊德性)은 나에게 내재해 있는 천부(天賦)의 덕성을 지켜 가는 것으로 성의 정심(誠意正心)이 이에 해당되고 도문학(道問學)은 외재해 있는 온갖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터득해 가는 것으로 격물 치지(格物致知)가 이에 해당된다. 정주학파(程朱學派)에서는 도문학을 중시하는 한편 존덕성도 강조하였으며, 육왕학파(陸王學派)는 존덕성에 치중하였다. 진서산(眞西山) 남송(南宋)의 학자 진덕수(眞德秀, 1178~1235)로, 자는 경원(景元), 호는 서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복건성(福建省) 포성(浦城) 출신으로, 벼슬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는데 강직하기로 유명하였다. 주자의 재전제자(再傳弟子)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수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성경현전(聖經賢傳)의 긴요한 내용을 뽑아 《심경(心經)》을 편찬하여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대학연의(大學衍義)》·《서산독서기(西山讀書記)》·《문장정종(文章正宗)》·《서산문집(西山文集)》 등이 있다. 황돈(篁敦)이 …… 참고하였다 황돈은 명(明)나라의 학자 정민정(程敏政, 1445~1499)의 별호로, 진덕수(眞德秀)의 《심경(心經)》에 여러 학자의 주석을 첨부하여 해설한 《심경부주(心經附註)》를 저술하였다. 오명중(吳明仲) 오이정(吳以井, 1619~1655)으로,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명중(明仲), 호는 장계(藏溪)이다. 1639년 사마양과(司馬兩科)에 합격하고 1651년 정시(庭試)에 응하였으나, 자급(資級)이 없다는 이유로 낙방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저서로 《장계유고(藏溪遺稿)》가 있다. 〈퇴계심통성정도(退溪心統性情圖)〉 심통성정(心統性情)은 장재(張載)가 만든 개념으로서 주희가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장재의 이 개념은 심(心)과 성정(性情)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지만, 이후로 이 개념을 발전시켜서 이(理)와 기(氣), 체(體)와 용(用)의 개념을 도입하여 심(心)을 해석하려고 하였다. 퇴계 이황은 임은 정씨(林隱程氏) 정복심(程復心, 1257~1340)의 《사서장도(四書章圖)》에서 영향을 받아 〈성학십도(聖學十圖)〉를 만들었는데, 그중 제6도 해당하는 것이 〈심통성정도〉이다. 리가 …… 된다 이발기발(理發氣發)은 '이도 발하고 기도 발한다.[理氣互發]'라는 뜻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제창한 설이다. 그가 처음에 "사단은 이의 발이고, 칠정은 기의 발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라고 주장했다가,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과의 토론을 거친 끝에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이다.[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라고 수정하며 논쟁을 마무리 지은 고사가 있다. 반면에, 율곡(栗谷)은 "사단(四端)과 칠정(七情) 모두 기(氣)가 발하는데 이(理)가 이에 타는 것(주재)이다.[四端七情, 皆氣發而理乘之.]" 하여,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說)을 주장하였다. 황면재(黃勉齋) 남송(南宋)의 성리학자 황간(黃榦, 1152~1221)으로, 자는 직경(直卿), 호는 면재,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민현(閩縣) 장계(長溪) 출신으로, 주희(朱熹)와 유청지(劉淸之)에게 수학하였는데, 주자는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학문을 전수하고 사위로 삼았다.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에서 강학하였으며, 주자의 뜻에 따라 《의례경전통해속(儀禮經傳通解續)》을 편찬하였다. 저서에 《오경통의(五經通義)》, 《사서기문(四書記聞)》, 《면재집(勉齋集)》 등이 있다. 상상(上庠) 태학(太學)을 말하는 것으로 곧 성균관(成均館)이다. 소과(小科)에 급제한 자들이 들어갔으므로 초시에 합격했다는 말로도 쓰인다. 태극(太極)이 …… 낳는다 주돈이(周敦頥)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아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하고, 정하여 음을 낳아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된다.[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라고 하였다. 계구신독(戒懼愼獨)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章)에 보인다.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보이지 않아도 조심하는 것이요, 들리지 않아도 두려워하는 것이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고 하였고, 바로 뒤에 "숨겨진 것보다 잘 드러난 것이 없고 작은 것보다 잘 나타난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를 삼가는 것이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고 하였다. 존양성찰(存養省察)의 공부 정(情)이 발동하기 이전의 정시(靜時)에 마음을 보존하고 성품을 함양하는 공부와 발동한 뒤의 동시(動時)에 인욕이 싹트려는 기미에 살피는 공부를 말한다. 《중용장구》 제1장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삼가며,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한다.[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한 것은 존양공부를 가리키며 "반드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必愼其獨也.]" 한 것은 성찰 공부를 말한다. 기가 …… 부여된다 《중용장구》 제1장에 "하늘이 명하신 것을 성이라 이른다.[天命之謂性.]"라고 하였는데, 주희의 주(注)에 "하늘이 음양(陰陽)·오행(五行)으로 만물을 화생(化生)할 적에 기(氣)로써 형체를 이루고 이 또한 부여하니 명령함과 같다. 이에 사람과 물건이 태어남에 각각 부여받은 바의 이를 얻음으로 인하여 건순(健順)·오상(五常)의 덕을 삼으니, 이른바 성이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비(費)와 은(隱) 《중용장구》 제12장에 "군자의 도는 비하고 은하다.[君子之道, 費而隱.]"라고 하였는데, 그 주를 참고하면 "군자의 도는, 그 작용은 광대무변하지만 그 본체는 은미하여 알기 어렵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역시 《중용장구》 제12장 중 "《시경》에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라고 하였으니, 천지의 도가 위아래로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의 주에 "자사는 이 시를 인용하여 만물을 낳고 기르는 천지의 기운이 흐르고 퍼져서 위아래에 분명히 드러남은 모두 이 이치의 운용임을 밝혔으니, 이른바 비이다. 그러나 그리된 까닭은 보거나 들을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른바 은이다.[子思引此詩, 以明化育流行, 上下昭著, 莫非此理之用, 所謂費也. 然其所以然者, 則非見聞所及, 所謂隱也.]"라고 하였다. 소이연(所以然) 그렇게 된 원인, 즉 본체를 일컫는 말로 형이상자(形而上者)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