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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조응호(趙應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未至月十日 趙膺鎬 丁未至月十日 趙膺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7년(헌종 13)에 조응호가 사돈에게 보낸 서간 1847년(헌종 13) 11월 10일에 조응호(趙膺鎬)가 사돈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일전에 노(奴)가 돌아오면서 가져온 답장이 아직껏 위로되고 있다며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며느리의 병은 약을 써도 낫지 않아 쾌차를 바라기는 어렵지만, 조금이라도 일어나 움직이고 살아서 시가(媤家)에 돌아온다면 정말 다행일 것이라고 하였다. 친구 권익산(權益山)을 만났더니 이미 환곡을 마감했다 하여 기뻤다고 하면서 여러 달 업무가 적어 가려고 했는데 마침 작은 일이 있어 며칠 기다렸다가 길을 나설 계획이라고 하였다. 조응호(趙膺鎬 1795~?)의 본관은 임천(林川)이며 자(字)는 명여(命汝)이고, 부는 조재의(趙在儀)이다. 1837년 식년시 진사로, 훈련주부(訓鍊主簿), 정포만호(井浦萬戶)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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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 재종손(再從孫) 김익현(金翼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未四月二十日 翼鉉 丁未四月二十日 崔翼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정미년에 재종손 김익현이 보낸 서간 정미년(丁未年) 4월 20일에 재종손(再從孫) 김익현(金翼鉉) 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지난번 올린 편지는 받았으리라 생각되건만 소식이 막힌 지 한 달이 넘었다고 하였다. 그 사이의 상대방 건강과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부모님 곁에서 그런대로 지내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돌아가는 인편에 묵(墨) 1정(丁)을 보냈는데 받았는지 물었다. 상경(上京)한 뒤에 사용해야 할 돈이 많지만, 나올 곳이 조금도 없으니 상대방 쪽에 혹 돈이 있어 한 꿰미 빌려준다면 올해 안에 갚겠다고 하였다. 재촉할 돈은 8, 9냥이니 어려운 사정을 헤아려 빌려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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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 두엽(斗燁) 한글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寅十二月卄七日 張斗燁 金生員 甲寅十二月卄七日 張斗燁 金生員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갑인년에 이질 장두엽이 김생원에게 보낸 한글 서간 갑인년(甲寅年) 12월 27일에 이질(姨侄) 장두엽(張斗燁)이 김생원(金生員)에게 보낸 한글 서간(書簡)이다. 목화 30근을 다른 사람에게 방매할 처지이나 품질이 좋아 통지하니 몸소 내려와서 보고 가져가라고 하였다. 오늘 배를 띄우니 모든 일 제쳐 두고 내려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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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조응호(趙膺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申元月七日 趙膺鎬 戊申元月七日 趙膺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8년(헌종 14) 조응호가 보낸 서간 1848년(헌종 14) 1월 7일에 조응호(趙膺鎬)가 사돈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수신자는 장암(場巖) 송대흥(宋大興)이다. 지난번에 심부름꾼이 돌아와 상대방의 편지를 보았다며 새해의 안부를 물었다. 손부(孫婦)의 환후는 속히 완쾌되어 완전해지겠는지 묻고 자신은 어제와 같고 아이들 감기가 나아지니 다행이라고 하였다. 반물완(盤物阮)의 명을 받들었으나 지금 서울 편지에 있는 일을 보니, 반직(盤直)이 추수(推輸)하여 올리라고 하기에 보고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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昨者伻回伏承下覆伏審新正靜中體度迓新萬護閤節安重何等伏賀令孫婦患候尙未奏效子嫌藥後動靜猶有未祛本誠極悶然何對速瘳就完耶伏問日間體節護安諸憂或有益勝之喜耶伏溸且念査下生省引猶昨室憂拔報而向合兒子感証有減私幸私幸盤物阮承命矣以換而定矣今見京書有悶慮之事自盤直推輸上之報云故玆以仰告考標仗卽爲出給去隷若何近來人心多有未盡信之患矣今見此報良覺脫然爲此略白不備上候禮戊申元月七日査下生趙膺鎬再拜數爲回台五十五矣日前自此標紙竝套送若何(皮封)場巖宋大興宅入納三閒上候書 謹封(別紙)錢文肆百伍拾兩出付此報事(別紙)戊申元初八日盤谷標錢文肆拾伍兩送三閒印戊申正月初三日場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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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위친계(爲親契)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乙亥十月初三日 扶安金氏門中 金大允 等 5人 乙亥十月初三日 1875 扶安金氏門中 金大允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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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顙白春間表叔歸路所付上候卽當下覽矣居然之際春盡夏屆承候無階下懷哀悵只勞耿祝伏不審辰下體候連護萬安允從安侍渾致均迪竝切伏溯無任區區之下誠春間高山 山變至今追思悚悖交至襄禮定於何地且等那間過行漠爾無聞悶㭗何已戚姪孤哀子頑極不殊終祥此迫觸目哀菀益自罔涯俯仰天地此何人斯加以稚妹以肪胱濕痰因祟成腫三朔委頓屢經危城難以時日期差私憫中儉歲契活去益罔測無於目下來頭自分塡壑塡壑外無它道理而尙延一縷亦賴天翁之公道此亦謂一細故可耳㝡是先入終祥迫在來初而祀需也變制也非敢豊備後必行爲意而菲薄之奠需迷凶之變制不得不倣禮伸情爲人子所不可已者而旣無自宮辦行之道又無因人成事之方百千閒商擧歸烏有晝宵號泣拱訴無地人理到此尙復何堪於叔主前有懷安達有急必告非止一再而情勢窮迫玆又冒沒廉偶體面敢此無隱須十分下諒三思必施下助以祭需變制之資則生死殞結幽明感服當復何以顧以罔措罔極之情勢仰恃如親父兄叔以張皇伏達幸百倍下念無抔專然懸望之情千萬伏祝此去都老卽先人同乳之人而與姪家痛癢相關便是一室之人故玆令袖書替進細達此罔措之情幸伏望細叩此稚盡領書外之旨若何 叔主以無廉却之則勢將闕祭雖某樣措劃無孤專望伏望之餘萬萬留在此牙口達荒迷不次上候疏伏乞下察丁酉巳月十七日 戚姪孤哀子 金永述永達稽顙再拜66-b戚叔主前 上展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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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이정희(李正熙)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元月旣望 李正熙 場岩 元月旣望 李正熙 場岩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某年)에 이정희가 보낸 서간. 모년(某年) 1월 26일에 기복인(朞服人) 이정희(李正熙)가 장암(場岩)에 보낸 서간(書簡)이다. 어느덧 새해가 되니 그리움이 배가 된다며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새해를 맞는 감회를 억제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도목정사(都目政事)를 보게 되었는데, 당질(堂侄)이 곤양(昆陽)에 제수되니 감축은 하지만 권속(眷屬)이 박읍(薄邑)에서 접제(接濟)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번에 가는 강우(姜友)는 마침 경락(京洛)에서 볼일이 있어 추위에도 가는 것인데, 일전에도 지나면서 상대방에게 소회를 아뢰고자 하였으나 혼담이 있으니 혐의하여 말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이번 길에 상대방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면 이 친구가 동행하면 긴 여정에 쓸쓸함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친구가 동행하고자 하는 것은 애당초 과장(科場) 안에서 문자를 파려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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居然獻發瞻詠之懷有倍常品伏惟新元靜體震艮履玆鄭重慰溯區區無任憧憧記下逢新懷緖尤難自抑得見都政則堂侄之陳拜昆陽雖曰倘來其爲感祝難以容喩第京鄕多眷以若薄邑接濟未易勢也奈何就此去姜友適有所觀事於京洛之間而寒程薄着致身擾難故有仰議于親事而不無自嫌之端日前歷拜之時欲陳其所懷而孤此自嫌欲發口而未發其掘可知所欲告者無他事也今於執事之行將欲驥附而致身則於執事不過爲一投足之勞爲姜友之地俾遂所營惠莫大焉且於執事斯中如無親近人隨往者則此友同行似免長程之孤寂至若到京後擇文取筆之際不無周旋於其間惟在默諒善處之如何耳此友之欲爲同行爲此致身之計而初無逞售其文字於場屋之間故所謂自嫌良有以也餘在此友口悉姑此不備伏惟下照謹狀上元月旣望記下朞服人李正熙拜手(皮封)場岩靜案執事嚴谷候書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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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 박만언(朴萬彦)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卯二月十五日 朴萬彦 丁卯二月十五日 朴萬彦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정묘년 2월 15일에 박만언이 사돈에게 보낸 서간 정묘년 2월 15일에 박만언(朴萬彦)이 사돈(査頓)에게 보낸 서간이다. 이전에 서로 만났다가 헤어진 지 오래되어 보고싶다고 안부를 전하고 자신도 책을 읽으면서 지낸다고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서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두 집안 사이에 한참 혼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박만언은 이 서간에서 상대방에게 혼사에 사용한 예폐(禮幣) 값 25냥을 오는 17일에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편에 상대방의 당질도 함께 보내달라고 청하였다. 끝으로 조만간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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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이도성(李度聲)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午二月一日 李度聲 扶堂邨 孝廬 庚午二月一日 李度聲 扶堂邨 孝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경오년 2월 1일에 이도성이 부안 당촌에 사는 상중의 지인에게 보낸 서간. 경오년(庚午年) 2월 1일에 이도성(李度聲)이 부안(扶安)의 당촌(堂邨)에 사는 상중(喪中)의 지인에게 보낸 서간이다. 이도성은 언즉(言卽)이라는 사람을 통해 상대방의 편지를 받고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있다. 이도성은 보내 준 2백냥을 잘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서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이도성이 중간에 다리를 놓아 상대방에게 돈을 융통해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그믐이 지불기한이어서 이미 기한을 지나친데다, 돈도 전부를 준 것이 아니어서 장차 독촉을 받게 될 자신의 처지가 매우 난감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조만간 돈을 다 올려보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선물로 보낸 황계(黃鷄) 한 마리를 잘 받았다는 인사도 올리고 있다. 한편 홍빈(弘斌) 형이 항상 불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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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 조사식(趙寫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丑三月初二夜 趙寫植 大舅主 己丑三月初二夜 趙寫植 大舅主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기축년 3월 초이틀 밤에 조사식이 장인에게 보낸 서간 기축년(己丑年) 3월 초이틀 밤에 조사식(趙寫植)이 장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사식은 이 편지에서 장인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부친은 얼마 전에 성묘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흉년에 먼길을 떠나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 안있으면 관직에 처음으로 나가게 되는데 제대로 준비를 못해서 모든 게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또한 어떻게 해서든지 말미를 내어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이 서간에서 조사식은 자신을 외생(外甥)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말은 흔히 생질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여기에서는 외구(外舅), 즉 장인에 대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곧 사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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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조재의(趙在儀)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寅陽月卄四日 在儀 壬寅陽月卄四日 趙在儀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2년(헌종 8)에 조재의가 사돈에게 보낸 서간 1842년(헌종 8) 10월 24일에 조재의(趙在儀)가 사돈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보내온 편지를 받고 상대방이 편안하니 기뻤다며 다만 손부(孫婦)가 목병으로 여러 날 아팠는데 전염병이긴 하지만 먹지 못하여 원기가 없으니 염려된다고 하였다. 낭진(廊珍)이 다시 퍼지니 더욱 걱정되는데 이 부근은 아직 그런 근심은 없지만 끝내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쇠약한 몸으로 추위를 만나 집에 칩거하고 있으며 양기가 전혀 없으니 가련하다고 하였다. 손자의 병은 멀리 떠나 있었던 증거로 체질도 취약한데 입직을 거듭하여 형해(形骸)만 보존하니 보기에 민망하고 안쓰럽다고 하였다. 손부(孫婦)의 신례(新禮)를 몇 달 물리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마음이 한시가 급한 것을 보니 더욱 서글프다고 하였다. 조재의(趙在儀)는 조응호(趙膺鎬)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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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송생원(宋生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八年戊午八月二十八日 權琦瑞 宋生員 咸豐八年戊午八月二十八日 權琦瑞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1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12_001 1858년(철종 9) 8월 28일에 송생원(宋生員)이 권기서(權琦瑞)에게 태인군 남면 반룡촌에 있는 산지와 송추를 전문 4냥을 주고 살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8년(철종 9) 8월 28일에 송생원(宋生員)이 권기서(權琦瑞)에게 산지와 송추를 매득할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권기서는 소유한 태인군(泰仁郡) 남촌면(南村面) 반룡촌(盤龍村) 전록(前麓) 고당산(高堂山)에 있는 친산(親山)의 용미(龍尾) 아래와 송추를 전문 4냥을 받고 방매하였다. 이곳에 대한 구문기를 중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 문서만으로 거래한다는 내용을 밝히고 있다. 반룡촌은 당시 태인군 남촌면 반룡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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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송진택(宋鎭澤)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玖年己未五月初九日 金洛中 宋鎭澤 咸豐玖年己未五月初九日 金洛中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1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12_001 1859년(철종 10) 5월 초9일에 송진택(宋鎭澤)이 유학 김낙중(金洛中)에게 태인군 남면 반룡촌에 있는 보리밭(麥田)을 전문 3냥을 주고 살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9년(철종 10) 5월 초9일에 유학 송진택(宋鎭澤)이 유학 김낙중(金洛中)에게 보리밭(麥田)을 매득할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대상토지는 태인군(泰仁郡) 남촌면(南村面) 반룡촌(盤龍村) 전록(前麓) 소갈산(小乫山)에 있는 보리밭으로, 규모는 4부였다. 이곳은 박여순(朴汝順)의 보리밭 아래에서 이염보(李監甫)가 새로 지은 집터까지이며, 좌로는 종산(鍾山)아래에서 오른쪽으로 장곡(長谷)까지이다. 송진택은 이곳을 산소를 쓰기 위해 매득하였다. 반룡촌은 당시 태인군 남촌면 반룡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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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송생원(宋生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八年戊午七月二十八日 權琦瑞 宋生員 咸豐八年戊午七月二十八日 權琦瑞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1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12_001 1858년(철종 9) 7월 28일에 송생원(宋生員)이 권기서(權琦瑞)에게 태인군 남면 반룡촌에 있는 산지 60여보와 송추를 전문 8냥을 주고 살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8년(철종 9) 7월 28일에 송생원(宋生員)이 권기서(權琦瑞)에게 산지와 송추를 매득할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권기서는 태인군(泰仁郡) 남촌면(南村面) 반룡촌(盤龍村) 의 전록(前麓)에 있는 산지를 여러 해 동안 수호해 오다가 지난 5월에 전주에 사는 송생원이 친산을 쓰면서 누차 소송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서로 간의 합의하여 용미 근처 청룡 60여보의 땅과 여간의 송추를 매매하게 되었고, 송생원은 그 값으로 전문 7냥을 지불하였다. 반룡촌은 당시 태인군 남촌면 반룡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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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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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배성렬(裵成烈)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八年己巳十二月十六日 裴成烈 同治八年己巳十二月十六日 裴成烈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9년(고종 6)에 배성열이 서작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9년(고종 6) 12월 16일에 배성열(裴成烈)이 서작(西作)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배성열은 이 논을 매득하여 경작해 왔지만 부친의 장례 때 진 빚을 갚을 방법이 없어서 팔게 되었다고 한다. 거래된 토지는 송자답(悚字畓)에 있는 5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0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60냥이다. 이후 자손들이 다른 말들을 하면 이 문서를 증빙자료로 관에 고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배성열(裴成烈)과 증필(證筆) 박영백(朴永白)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토지를 산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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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부안김씨(扶安金氏) 분급기(分衿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경제-상속/증여-분재기 壬午年 扶安金氏家 壬午年 扶安金氏家 奴僕 億石 전라북도 부안군 7.0*7.0(정방형)적색 7개+7.7*3.3(장방형)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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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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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690년대 노(奴) 태선(泰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鄭禮先 奴僕 太善 鄭禮先 奴僕 太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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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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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6년 송추남(宋秋男)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豊六年丙辰十月二十一日 朴億龍 宋秋男 咸豊六年丙辰十月二十一日 朴億龍 宋秋男 喪不着, [着名] 1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56년(철종 7)에 박억용이 중방후평에 있는 논을 송추남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1856년(철종 7) 10월 21일에 박억용(朴億龍)이 중방후평(中方後坪)에 있는 논을 송추남(宋秋男)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억용은 이 논을 매득하여 여러 해 경작하며 살아나가다가 긴요하게 쓸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 거래된 토지는 진자답(陳字畓) 1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2냥이다. 구문기를 중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신문기 1장을 주었다. 답주(畓主)인 박억용(朴億龍)은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못하였고, 증필(證筆) 이명숙(李明叔)만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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