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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서원122) 봉안 제문 五賢書院奉安祭文 【金鶴峰誠一知州時, 創建書院於州西大谷洞, 未訖工. 任公允臣來代踵成 以萬曆丁亥十一月二十二日奉安】 【학봉 김성일이 나주 목사123) 시절 나주의 서쪽 대곡동124)에 서원을 창건하였는데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임윤신125)이 후임으로 부임하여 공사를 이어 완성하여 만력 1587년 11월 22일에 봉안하였다.126)】기자의 홍범127)이 전해지지 않아 箕範失傳문장과 충심은 실마리가 끊어졌는데 文忠絶緖오직 우리 다섯 현인들께서 惟我五賢우리나라에서 앞장서서 도를 이끄셨네 倡道東方《소학》의 글 속에서 小學書中천기128)를 신묘하게 깨달았네 【한훤당 김굉필】 妙契天機【寒暄】깊은 공부로 벗에게 도움을 주고129) 功深麗澤덕이 온전하여 효도하고 공경하였네 【일두 정여창】 德全孝悌【一蠹】그 근원이 분명하여 有的其源우리나라를 동주로 기약하였네130)【정암 조광조】 期我東周【靜庵】독실한 학문으로 경계하고 경계하며 學篤箴警간절한 뜻으로 임금께 계옥하였네131) 【회재 이언적】 志切啟沃【晦齋】성현의 깊은 도를 천명하여 闡揚聖蘊진실로 집대성 하였네【퇴계 이황】 展也大成【退溪】태어난 시대는 비록 다르지만 生雖異時도는 한가지로 귀결되니 道則同歸우리 소자132)로 하여금 俾我小子밤이 아침이 돌아오듯 하게 하네 如夜復朝진실로 선생들께서는 允矣先生만세의 법도를 만들어 萬歲作程잘 받들어133) 어긋남이 없었으니 靈承不爽마치 물이 땅 위에 흐르는 것과 같았네 如水在地이에 비로소 계획하여 爰始爰謨이 재실에 함께 배향하고자 合享斯室좋은 날과 좋은 때를 잡았으니 吉日辰良서원의 모습 벌써 엄숙해보이네 廟貌旣嚴정결한 제수134)가 향기로워 蘋藻維馨정성스러운 뜻에 감통하네 誠意感通경건히 진설하여 제수를 올리니 式陳明薦강림하여 굽어 살펴주소서 尙克鑑臨 箕範失傳, 文忠絶緖,惟我五賢, 倡道東方.小學書中, 妙契天機.【寒暄】功深麗澤, 德全孝悌.【一蠹】有的其源, 期我東周.【靜庵】學篤箴警, 志切啟沃.【晦齋】闡揚聖蘊, 展也大成.【退溪】生雖異時, 道則同歸,俾我小子, 如夜復朝.允矣先生, 萬歲作程,靈承不爽, 如水在地.爰始爰謨, 合享斯室,吉日辰良, 廟貌旣嚴.蘋藻維馨, 誠意感通.式陳明薦, 尙克鑑臨. 오현서원(五賢書院) 1583년, 유림이 상소를 올려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김굉필(金宏弼)을 모실 서원 창건을 허락받았다. 당시 나주 목사로 있던 김성일(1538~1593)이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이듬해인 1584년에 금양서원(錦陽書院)이라는 이름으로 완공되었다. 김성일에 이어 나주목사로 임윤신이 부임해오자 나덕준 등이 발의하여 1589년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등 4위를 추가로 배향하고 명칭을 오현사(五賢祠)로 바꾸었다가 정유재란 때 소실된 뒤, 1608년(광해군 원년)에 중건하고 1609년 사액서원이 되면서 '경현(景賢)'이라는 액호를 받았다. 나주 목사 김성일은 선조 1584년에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부임하였다가 1586년에 나주 사직단(社稷壇)의 화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대곡동 현재는 나주의 경현동 부근을 말한다. 임윤신 1529~1588.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경룡(景龍)이다. 1585년에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587년에 나주 목사로 부임하였다. 학봉 김성일이 …… 봉안하였다. 《일두집(一蠧集)》 부록(附錄)에 "학봉 김성일이 나주(羅州) 수령이 되어 오현(五賢)을 추모하여 주(州)의 서쪽 대곡동(大谷洞)에 경현서원(景賢書院)을 건립하였는데, 공사를 마치지 못하였다. 임윤신(任允臣)이 후임으로 부임하여 공사를 이어 마무리하고 제사를 올리고, 선비들의 학문 수양 장소로 삼았다. 〔鶴峯金誠一知羅州, 追慕五賢, 建景賢書院于州西大谷洞, 未訖而任允臣來代踵成, 設俎豆, 以爲士子藏修之所.〕"는 기록이 나온다. 기자(箕子)의 홍범(洪範) 원문의 '기범(箕範)'은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에게 전해준 《서경》 홍범구주(洪範九疇)을 가리킨다. 천기(天機) 만물 속에 내재(內在)한 하늘의 기틀, 즉 자연의 이법(理法)을 뜻한다. 벗에게 도움을 주고 원문의 '이택(麗澤)'은 붕우(朋友)가 함께 학문을 강습하여 서로 이익을 줌을 뜻한다. 《주역》 〈태괘(兌卦)〉에 "두 못이 연결되어 있는 형상이 태(兌)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붕우 간에 강습한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동주(東周)로 기약하였네 이상적인 나라인 옛 주(周)나라의 문물제도를 우리나라에 다시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이른다. 동주는 본디 동쪽 노(魯)나라에 주나라의 도(道)를 일으키겠다는 말로,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인 공산불요(公山弗擾)가 일찍이 공자를 불렀을 때 공자가 가려고 하자, 자로(子路)가 하필 공산씨(公山氏)에게 갈 것이 있느냐고 못마땅하게 여기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공연히 불렀겠는가. 만일 나를 써 주는 자가 있다면 나는 동쪽 주나라를 만들 것이다.[夫召我者 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陽貨》 계옥하였네 선도(善道)를 개진하여 임금을 인도하고 보좌한다는 뜻이다. 《서경(書經)》 〈열명(說命)〉에,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그대의 마음을 열어 나의 마음을 적셔라.〔啓乃心, 沃朕心.〕"라고 하였다. 소자(小子) 원문의 '소자(小子)'는 일반적으로 제자, 자식, 임금의 겸칭어로 사용되나, 여기에서 말하는 소자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고 후학의 의미로 보인다. 잘 받들어 원문의 '영승(靈承)'은 《서경》 〈다방(多方)〉에 "능히 백성을 잘 받들지 못하며[不克靈承于旅]"라고 한 말에 나온다. 경결한 제수 원문의 '빈조(蘋藻)'는 모두 물풀의 이름으로, 옛 사람들은 이를 채취하여 제수로 사용하였다. 《시경(詩經)》 〈채빈(采蘋)〉에 "남간의 물가에서 빈을 캐고, 저 도랑에서 조를 채취해 오네.〔于以采蘋, 南澗之濱. 于以采藻, 于彼行潦.〕"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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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김우옹 문장135)의 〈우분시〉136)에 삼가 차운하다 敬次金東岡文丈憂憤詩韻 【壬辰五月, 東岡自謫所蒙放, 赴行在所時.】 【1592년 5월 동강이 적소에서 사면되어 풀려나 행재소137)로 나아갔을 때이다.】만년에 어쩌면 이리도 기구했던지 末路一何奇보름이 거듭되어 육십 삼세 되었네 三五重七九온갖 흉악함으로 눈앞이 번잡하니 百兇叢目下내가 뒤늦게 태어남이 슬프구나 哀哉我生後왕망138) 때처럼 이미 내분이 일어나거늘 賊莽旣內訌추한 오랑캐가 밖에서 짓밟네 醜虜又外蹂어찌 생각이라도 했겠나 이백년 기업이 何圖二百基하루아침에 경계수비를 잃을 줄을 一朝失警守원대한 계책139) 세운 자 누구의 아들인지 訏謨者誰子부끄러운 그 얼굴 어찌 그리 두꺼울까 忸怩顔何厚나라의 근본에 대한 계책 일삼지 않고 不事邦本計다만 우리 임금 기만하는 것만 잘하네 徒能瞞我后백성들 오래도록 원망으로 떠들썩한데 赤子久嗷嗷부모를 받드는 일을 어찌 알겠나 焉知戴父母조정의 계획은 이전 계책을 잃어버렸으니 廟算失前籌어떻게 호랑이처럼 헌걸차게 돕겠는가 有何補虎赳임금님 수레가 홀연히 몽진을 하시니 乘輿忽蒙塵신료들은 차고 있던 인끈 벗어 던졌네 臣僚捐綰綬이리저리 흩어져 세력을 떨치지 못하니 離披勢不振의로운 군대 누가 규합할 수 있겠는가 義旅孰能糾살아있는 백성 모두 어육이 되고 生民儘魚肉남녀 모두 놀라서 달아나기만 할뿐이네 士女但驚走누가 무목140)의 마음을 품고 誰懷武穆心누가 문상141)의 손을 잡을까 孰握文相手의관이 모두 엎어지고 넘어져 衣冠盡顚倒대궐 연못142)에는 초목만 무성히 우거졌네 鳳池生灌莽당당하던 우리나라 조정이 堂堂我國朝어찌 차마 왜적에게 시달릴 줄이야 豈忍困海醜옥에 갇힌 신하는 새로운 은총을 입으나 纍臣荷新恩근심과 울분이 우두성143)을 찌르네 憂憤衝牛斗원하건대 장차 재앙을 야기한 이유를 願將階禍由양쪽을 들어서 다 말하고자 하시니144) 欲竭兩端叩간악한 자를 주벌하고 요사한 기운 쓸어내 誅奸掃氛祲우리 백성들 크게 위로하여 주소서 大慰吾黔首선생께서는 도가 서로 같으니 先生道相同충직한 단심으로 피를 토하며 忠赤垂血嘔제 몸 잊은 채 왕 계신 곳으로 가시니 忘身赴王所선택받은 그 의미145) 저버리지 마소서 不背熊魚取본분에 맞는 행위146) 이미 정해졌으니 素履已先定마음을 저버리지 마소서147) 毋令負心肘 末路一何奇, 三五重七九.百兇叢目下, 哀哉我生後.賊莽旣內訌, 醜虜又外蹂.何圖二百基, 一朝失警守,訏謨者誰子, 忸怩顔何厚.不事邦本計, 徒能瞞我后.赤子久嗷嗷, 焉知戴父母.廟算失前籌, 有何補虎赳.乘輿忽蒙塵, 臣僚捐綰綬.離披勢不振, 義旅孰能糾.生民儘魚肉, 士女但驚走.誰懷武穆心, 孰握文相手.衣冠盡顚倒, 鳳池生灌莽.堂堂我國朝, 豈忍困海醜.纍臣荷新恩, 憂憤衝牛斗.願將階禍由, 欲竭兩端叩,誅奸掃氛祲, 大慰吾黔首.先生道相同, 忠赤垂血嘔,忘身赴王所, 不背熊魚取.素履已先定, 毋令負心肘. 문장(文丈) 재주가 높고 덕이 뛰어나면서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한 존칭이다. 〈우분시〉 《동강선생문집(東岡先生文集)》에는 〈壬辰五月聞倭賊大擧入寇京城不守〉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행재소(行在所) 임금이 궁을 떠나 멀리 나들이 할 때 머무르던 곳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임진왜란 때 임금의 피난처를 가리킨다. 왕망 전한(前漢) 말기 평제(平帝)를 독살한 뒤 두 살 된 유영(劉嬰)을 추대하고, 당시 유행하던 오행참위설(五行讖緯說)을 교묘히 이용하면서 인심을 모았다. 후에 결국 유영을 몰아낸 후 국호를 신(新)이라 고치고 황제가 되었으나, 한말(漢末)의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부하에게 죽음을 당함으로써 건국한 지 15년에 멸망하였다. 원대한 계책 원문의 '우모(訏謨)'는 우모정명(訏謨定命)으로, 《시경》 〈억(抑)〉의 "원대한 계책으로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며, 장구한 계획을 세우고 때맞추어 알린다.〔訏謨定命, 遠猶辰告.〕"에서 인용한 것이다. 무목 '무목(武穆)'은 남송(南宋)의 명장 악비(岳飛, 1103~1142)로, 자는 붕거(鵬擧), 시호는 무목이다. 금(金)나라의 남하(南下)에 대항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정충악비(精忠岳飛)'라고 쓰인 사자기(四字旗)를 하사받을 정도로 고종(高宗)의 신임이 두터웠으나 진회(秦檜)의 참소로 결국 옥사(獄死)하였다. 문상(文相) 송나라의 문천상(文天祥, 1236년~1282년)을 이르는 말이다. 송(宋)과 원(元)의 전쟁 중 원나라에 사로잡혔다.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그를 이용하여 송나라의 잔당을 치려했으나 문상은 충절을 굽히지 않았고 3년 간의 옥살이 끝에 살해되었다. 대궐 연못 '봉지(鳳池)'는 위진 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에 금원(禁苑)에 파 놓았던 연못인 봉황지(鳳凰池)를 가리키는 말인데, 전하여 대궐 안의 연못을 의미한다. 우두성(牛斗星) 견우성(牽牛星)과 북두성(北斗星)을 말한다. 양쪽을 …… 하시니 《논어(論語)》 〈자한(子罕)〉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지만 비루한 사람이 나에게 묻되 그가 아무리 무식하다 하더라도 나는 그 양단을 들어서 다 말해주노라.〔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선택받은 그 의미 원문의 '웅어취(熊魚取)'는 좋은 것을 선택한다는 뜻. 《맹자》 〈고자상(告子上)〉에 "고기[魚]도 갖고 싶고 곰 발도 갖고 싶지만 두 개를 모두 가질 수 없을 때에는 고기를 버리고 곰 발을 갖는다." 하였다. 본분에 맞는 행위 소리(素履)는 본분대로 행함을 의미한다. 《주역》 〈이괘(履卦) 초구(初九)〉에 "본래의 행함으로 가면 허물이 없으리라.〔素履, 往, 無咎.〕"라고 하였다. 마음을 저버리지 마소서 원문에는 '肘(주)' 아래에 "아마도 오류의 글자가 있는 듯하다.〔恐有誤字〕"라는 소주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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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의 원운시 原韻 【東岡】 내 생애 때를 잘못 만나 고생함이          吾生苦不辰어찌 재앙148)를 만난 것 때문만일까          胡獨遭陽九하늘이 내린 죽음의 환란은 旻天降喪亂지난 일도 아니고 앞으로의 일도 아니네 不自我先後해충 같은 적들로 내홍이 일어났는데 蟊賊作內訌오랑캐의 기병마저 제멋대로 짓밟으니 戎馬恣躪蹂백성들은 원수가 되어 赤子化仇讎국경을 지킬 사람조차 없다네 疆圉無人守슬프구나 이백년 동안 哀恫二百年그 은택 얼마나 깊고 두터웠던가 恩澤何深厚하루아침에 백성을 잃었으나 一朝失丘民우리 임금을 위로하는 말이 없네149) 不云撫我后조정에는 보좌하는 신하들 있고 廟堂有相臣변방 성곽에는 헌걸찬 무인들 많으며 邊城多武赳높은 관직과 후한 녹봉에 高官與厚祿겹겹의 도장에 인끈 거듭 매었거늘 纍印若若綬좋은 책략 있단 말 들어본 적 없고 不聞籌策紆의병 모집하는 모습 본 적도 없으니 不見義旅紏어지러이 문환150)처럼 항복하고 紛紛文煥降요란스레 단공151)처럼 달아나네 擾擾檀公走칠묘152)는 타고 남은 재 되고 七廟化灰燼도성은 적들의 손에 떨어졌네 京邑付賊手임금님 수레 어디 쯤 향하실지 玉輅向何許공경대부들은 초야로 흩어졌네 公卿落草莽누가 환란을 초래하였기에 誰生禍亂階도적을 이르게 하고 오랑캐까지 불렀는가 致寇招戎醜외로운 신하 북쪽 변방에 있으니 孤臣在北塞속절없이 한 말 간담만 남아 空餘膽一斗고개 들어 서쪽 하늘 바라보고 擧頭望西方대궐 섬돌 향해 머리 조아리네 欲向螭階叩원하건대 상방검153) 빌려서 願借尙方劍아첨하는 신하 머리 단번에 참하리라 一斬佞臣首답답한 마음 누구에게 하소연 할까 腷臆誰與訴쓰라린 피를 토해내고자 하네 辛酸血欲嘔일찍이 고인의 가르침을 들으니 嘗聞古人訓물고기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한다고 했네 魚舍熊掌取바람 부는 처마에서 주자의 서책 펼쳐드니 風簷展朱書도리가 가슴에 사무치네 道理貫心肘 吾生苦不辰, 胡獨遭陽九.旻天降喪亂, 不自我先後.蟊賊作內訌, 戎馬恣躪蹂,赤子化仇讎, 疆圉無人守.哀恫二百年, 恩澤何深厚.一朝失丘民, 不云撫我后.廟堂有相臣, 邊城多武赳,高官與厚祿, 纍印若若綬,不聞籌策紆, 不見義旅紏,紛紛文煥降, 擾擾檀公走.七廟化灰燼, 京邑付賊手.玉輅向何許, 公卿落草莽.誰生禍亂階, 致寇招戎醜.孤臣在北塞, 空餘膽一斗.擧頭望西方, 欲向螭階叩.願借尙方劍, 一斬佞臣首.腷臆誰與訴. 辛酸血欲嘔.嘗聞古人訓, 魚舍熊掌取.風簷展朱書, 道理貫心肘. 재앙 양구는 음양도(陰陽道)에서 수리(數理)에 입각하여 추출해 낸 말로, 4천 5백 년 되는 1원(元) 중에 양액(陽厄)이 다섯 번 음액(陰厄)이 네 번 발생한다고 하는데, 1백 6년 되는 해에 양액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엄청난 재액(災厄)을 말할 때 쓰는 용어이다. 《漢書 律歷志 上》 우리 …… 없네 원문에는 '后(주)' 아래에 "이 아래 '무(毋)'자 운(韻)이 없으니 아마도 빠진 듯하다〔此下無毋字韻恐脫〕"라는 소주가 붙어 있다. 문환(文煥) 송말(宋末) 원초(元初) 때 사람이다. 일찍이 송나라에 벼슬하였는데 원 나라 세조의 권유로 투항, 이후 송을 공략하는 데 많은 계책을 제공하였으며 결국 송조(宋朝)의 멸망에 공헌하였다. 《新元史 列傳 74》 단공(檀公) 유송(劉宋) 때의 장군 단도제(檀道濟)를 말한다. 그는 지략(智略)이 뛰어나서 고조(高祖)를 따라 북벌(北伐)할 적에 전봉장(前鋒將)으로 누차 공을 세워 명장(名將)으로 이름이 났는데, 뒤에 남제(南齊)의 왕경측(王敬則)이 일찍이 매우 급한 때를 당하여 어떤 사람에게 고하기를, "단공(檀公)의 삼십육책(三十六策) 가운데 주(走) 자가 상책(上策)이었으니, 너희들은 응당 급히 도주해야 한다."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적과 싸우다 불리하면 도주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칠묘(七廟) 칠묘(七廟)는 종묘(宗廟)이니, 곧 태조(太祖)의 종묘와 삼소(三昭), 삼목(三穆)의 총칭이다. 상방검(尙方劍) 임금이 신하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의미에서 내려 주는 보검이다.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 주운(朱雲)이 대신들이 있는 자리에서, 황제의 신임을 믿고 정권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장우(張禹)를 베어 죽여야 하니 상방검을 내려 달라고 청하였던 고사가 있다. 《漢書 卷37 朱雲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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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운 【김부윤】 次韻 【金富倫】 그해 연방에 오른 첫 번째 사람 蓮榜當年第一人지금의 시가 정신을 새롭게 하네 只今詩句更精神술 가득 주고받는 좋은 모임 가졌으니 要將滿酌酬佳會누각 안에 취하여 토한들 나무라지 마시게나 莫問樓中醉吐茵일고여덟 손님과 벗들이 모인 백 척의 누각이요 七八賓朋百尺樓맑은 바람 밝은 달에 가을되었음을 알았다오 淸風明月認新秋가깝고 먼 일천 점 산을 보니 且看遠近山千點한 무더기 흙일뿐 흥망일랑 묻지 마소 不問興亡土一丘어찌 금성에서 옥 술잔만 날리면서 豈獨錦城飛玉盞적벽강에 함께 아름다운 배를 띄워야지 須同赤璧泛蘭舟푸른 눈동자 곳곳에 즐거움 무궁하니 靑眸到處窮歡樂인간 세상에 빼어난 놀이 있음 알겠네 方信人間有勝遊 蓮榜當年第一人, 只今詩句更精神.要將滿酌酬佳會, 莫問樓中醉吐茵.七八賓朋百尺樓, 淸風明月認新秋.且看遠近山千點, 不問興亡土一丘.豈獨錦城飛玉盞, 須同赤璧泛蘭舟.靑眸到處窮歡樂, 方信人間有勝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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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만사 【당시 만사가 반드시 이 작품에 그치지 않았겠지만 다만 이 한 편만 전해질 뿐이다.】 附挽詞 【當時挽詞, 必不止此, 而只傳此一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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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아래에서 감회가 있어 月下有懷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비록 없으나 좋은 때 있으니천심(天心)과 수면(水面)의 맑은 의미 아는 이 적으리270)맑은 기운 높은 누각에서 생겨나니 성근 기둥 곧고밝은 빛 빈 방에 들어오니 굽은 난간 위태롭네오동나무에 뜬 달이 마음 속 비추는 것이 가장 사랑스럽고버드나무 언덕 가에 바람 불어오는 것이 몹시도 정겹네271)그 사이에서 만약 참된 소식을 말한다면삼백 리에 걸쳐 중추(仲秋)의 옥거울 펼쳐질 때라네272) 光霽雖無有好期天心水面小人知淸生高閣踈楹直明透虛室曲檻危最愛梧桐懷裏照多情楊柳岸邊吹中間若道眞消息三百仲秋玉鏡時 천심(天心)과……적으리 소옹(邵雍)의 〈청야음(淸夜吟)〉에, "달이 천심(天心)에 이르고 바람이 수면에 불어올 때 일종의 맑은 의미를 짐작건대 아는 이 적으리.[月到天心處 風來水面時 一般淸意味 料得少人知]"라 한 데서 취해 온 구절이다. 오동나무에……정겹네 소옹(邵雍)의 〈수미음(首尾吟)〉에, "오동나무에 뜬 달은 가슴속을 비추고,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얼굴로 불어온다.[梧桐月向懷中照 楊柳風來面上吹]"라 한 데서 취해 온 구절이다. 삼백……때라네 '옥거울'은 수면을 빗댄 표현으로, 한가을의 수면이 넓게 펼쳐져 있음을 말한 것이다.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에, "경호 삼백 리에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네. 오월에 서시가 연밥을 따면 구경하는 사람들 약야계에 넘치는데, 달뜨기도 전에 배를 돌려서 월왕의 궁궐로 돌아가네.[鏡湖三百里 菡蓞發荷花 五月西施採 人看隘若耶 回舟不待月 歸去越王家]"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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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辟雍) 辟雍 辟雍 고서-집부-총집류 정치/행정-과거-시권 고서 원문 辟雍 성책 미상 전북대학교 한국학자료센터 신시권(申始權), 이희제(李熙濟), 라효언(羅孝彦), 서유간(徐有幹), 이병조(李秉祚) 등이 지은 부(賦)를 옮겨 적은 복본(複本) 시권(試券) 조선 후기의 소과 혹은 문과 그리고 소과 혹은 문과와 연관된 시험에 응시했던 자들이 작성한 시권(試券)을 옮겨 적은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소과나 문과 혹은 소과나 문과와 연관된 시험에 응시했던 자들의 답안지를 옮겨 적은 예가 많았는데, 이런 자료들을 편의상 복본시권(複本試券)이라고 부르고 있다. 복본 시권을 제작하는 이유는 당연히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과나 소과를 준비하는 자들이, 본인보다 앞서 문과나 소과에 도전했던 자들이 남긴 글들을 보고 싶어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문장이 뛰어난 사람들의 글이나 혹은 소과나 문과에 성공한 사람들의 글을 주로 보고 싶어 하였는데, 복본 시권 중에는 서사가(書寫家)들이 판매를 목적으로 제작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복본 시권은 대·소과를 준비하는 자가 직접 옮겨 적은 일들이 많았다. 복본 시권의 제목은 매우 다양하였다. 책문의 경우는 동책(東策), 동책정수(東策精粹), 대책(對策), 책문(策文) 등으로 적었고, 표(表)나 부(賦)나 시(詩) 등은 여문(儷文) 東表(東表), 동부(東賦), 려문(驪文), 과려(科儷), 려문(儷門), 려식(儷式), 려휘(儷彙), 병려화조(騈儷華藻), 표격(表格), 표규(表規), 표식(表式), 과문규식(科文規式), 표추(表椎), 과문(科文), 백중(百中) 벽옹(辟雍)등 매우 다양하였다. 위의 제목 중에서 식(式)이 붙은 것은 글을 짓는 형식적인 내용, 다시 말해서 표나 부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그 방식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지금 소개하는 복본 시권에는 제목이 적혀 있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는 있었는지 전래되는 과정에서 탈락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내용은 6자체의 부(賦)가 수록되어 있는데, 시권의 주인공은 대부분 18세기에서 19세기에 생존한 인물들로 추정된다. 각각의 글에는 시험장에서 제시된 부제(賦題)와 함께 그 부를 지은 사람, 그 부가 언제 어떤 시험장에서 출제되었는지, 그러니까 그 부를 언제 지었는지, 그 부를 제출하여 몇 등의 성적을 받았는지 등에 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데, 모든 글마다 그런 것은 아니다. 간단하게 답안 작성자와 성적만 적은 경우도 많다. 그런가하면 그런데 본 복본시권에 나오는 시제(試題)들은, 소과방목이나 혹은 여타 조선시대 소과와 관련한 자료집에서는 거의 확인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소과의 초시나 복시에서 출제된 시제들이 아니라 승보시(陞補試)나 외방의 초시(初試)에서 출제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본 복본 시권에 나오는 시제들을 정리한다면 조선후기의 소과나 문과 혹은 소과나 문과와 연계된 시험들의 시제를 이해하는 데, 그리고 그 출제되는 시제들이 시대적으로 어떤 특징을 보였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된다. 한편 벽옹(辟雍)이라고 이름 붙인 본 시권의 분량은 표지를 제외하고 109장 218면이다. 대략 하나의 면에 한 사람의 시권이 전사되어 있으므로, 수록된 전체 시권 수는 218여 개가 된다. 시권 작성자를 보면 신시권(申始權), 이희제(李熙濟), 라효언(羅孝彦), 서유간(徐有幹), 이병조(李秉祚)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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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읽고 읊다 4수 詠史【四首】 초나라 땅 푸른 산 중에 구의산 있거늘회왕은 무슨 일로 장의를 믿어버렸나344)상오 육백 리를 끝내 떼어 받지 못했으니상수는 덧없이 흐르고 슬픔 끝이 없구나초나라에 세 집만 있어도 진나라는 망한다 하니남공의 그 예언 꼭 온당하지는 않도다345)한번 무관에 들어가자 백성 희망 끊기니잔약한 후손은 무슨 일로 또 회왕 되었는가346)-이상은 초 회왕(楚懷王)을 읊은 것이다.-조서 받들어 회군하니 사람들 의심하였는데송나라 멸망 실로 천명인 줄 절로 알았네347)가령 황제가 금패를 내려주지 않았더라면별이 떨어져서야348) 위수의 깃발 돌렸으리악무목의 순수한 충심 초목도 아니묘 앞의 송백 모두 남쪽 향해 가지 뻗네고종의 능에는 나무하여 남은 나무 없고부질없이 슬픈 바람 북쪽에서 불어오네-이상은 악무목(岳武穆 악비(岳飛))을 읊은 것이다.- 楚地靑山有九疑懷王何事信張儀商於六百終難割湘水空流不盡悲楚雖三戶亦秦亡未必南公說得當一入武關民望絶孱孫何事又懷王奉詔班師人或疑自知亡宋實天爲假令不下金牌字星落應回渭水旗武穆精忠草木知墓前松栢盡南枝高宗陵上樵無樹空有悲風自北吹 초나라……믿어버렸나 구의산(九疑山)은 중국 호북성(湖北省)에 있는 산 이름으로, 아홉 개의 봉우리가 비슷하게 생겨 구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구의(九疑)'라는 명칭이 붙었는데, 의심스럽거나 모호한 상황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전국 시대에 진(秦)나라 재상 장의(張儀)가 초나라와 제나라의 우호 관계를 끊기 위해, 초 회왕(楚懷王)에게 상오(商於)의 땅 600리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였다가 나중에 6리로 번복하여 초 회왕을 속인 고사가 있다. 《史記 張儀列傳》 초나라에……않도다 전국 시대에 초 회왕이 진(秦)나라에 들어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하자 초나라 사람들이 진나라를 원망하였다. 초나라 음양가 남공(南公)이 "초 나라는 세 집만 있어도 진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楚雖三戶 亡秦必楚也]"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일종의 도참설(圖讖說)로 뒤에 초의 항우가 삼호진(三戶津)을 건너와서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史記 項羽本紀》 한번……되었는가 초 회왕이 무관의 회합에 나갔다가 진 소왕(秦昭王)의 간계에 빠져서 진나라에 억류되어 병으로 죽었다. 훗날 회왕의 후손인 웅심(熊心)이 항우에 의해 초 회왕으로 옹립되었다가 살해당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의제(義帝)이다. 《史記 項羽本紀, 楚世家》 조서를……알았네 송나라 충신 악비(岳飛)가 금나라와의 전투에서 대승하여 영토를 거의 회복할 단계까지 갔는데, 진회(秦檜)가 고종(高宗)에게 "악비의 외로운 군대를 오래 머물러 둘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회군하도록 하기를 청하였다. 진회의 말을 들은 고종이 금패를 내려 회군을 명하자, 결국 악비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宋史 岳飛列傳》 별이 떨어져서야 훌륭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여기서는 악비의 죽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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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아낙 懶婦 귀뚜라미 헛되이 가을밤에 베 짜라 재촉하고315)자란 누에는 아낙과 함께 봄 낮잠을 자네모르겠구나, 낭군은 무슨 연유 때문인지사람 만나 늘 어진 아내와 이별했다 하네 蛩寒虛促秋宵織蠶老同爲春晝眠不識郞君緣底事逢人常道別妻賢 귀뚜라미……재촉하고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가 마치 베 짜는 소리와 같아, 가을에 사람에게 베를 짜라고 재촉하는 듯하여, 귀뚜라미를 촉직(促織)이라 불렀다. 여기서는 귀뚜라미 우는 가을이 되어도 게으른 아낙은 베를 짜지 않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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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포 시에 차운하다 2수 次釜浦韻【二首】 맑은 바람 강물 일렁이고 달이 가을 감싸니어부와 시인이 한 배에서 술에 취했구나발을 씻든 갓끈을 씻든 안될 것 없으니316)살아가며 서로 만나면 곧 함께 놀아보세황금빛 달 비추고 옥빛 머금은 가을에반짝이는 만경창파에 일엽편주 떠 있구나임술년 몇 번 돌아와도 강물 다하지 않으니동파 신선 떠난 뒤에 또 여기서 노니네317) 淸風弄水月籠秋漁父騷人醉一舟濯足濯纓無不可人生相見卽同遊黃金浴月玉涵秋萬頃波光一葉舟壬戌幾回江不盡蘇仙去後又玆遊 발을……없으니 상황에 맞게 살아가면 된다는 말로, 〈어부사(漁父辭)〉를 인용한 것이다. 초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하였다. 임술년……노니네 동파 신선은 송나라 시인 소식(蘇軾)으로, 적벽선유(赤壁船遊)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소식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임술년 가을 7월 기망에 소자(蘇子)가 객과 함께 배를 띄워 적벽강 아래에서 노니, 맑은 바람은 서서히 불어오고 파도는 일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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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형【진영(震英)】에 대한 만사 挽從兄【震英】 우리 형의 심사 내가 알고 있으니구천(九泉)에서 어느 해에나 눈을 감으련가늦가을의 저물녘 하늘엔 참죽나무 늙으려 하고282)봄 푸른 난실(蘭室)엔 혜초(蕙草) 시든 듯하네283)생전에 일찍이 왕상(王祥)의 한 품었고284)죽은 뒤엔 끝내 등자(鄧子)의 슬픔 품었네285)무엇보다도 형제286)에 대한 무한한 아픔에묵묵히 말없이 눈물만 흘리네 吾兄心事我知之九地何年暝目時秋晩暮天椿欲老春靑蘭室蕙如衰生前夙抱王祥恨身後終懷鄧子悲最是鴒原無限痛默然無語淚漣洟 참죽나무 늙으려 하고 '참죽나무'는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나무로, '참죽나무가 늙으려 한다.' 는 것은 곧 종형 김진영이 세상을 떠났음을 의미한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초나라 남쪽의 명령은 5백 년을 봄으로 삼고 5백 년을 가을로 삼으며, 상고 시대의 대춘(大椿)은 8천 년을 봄으로 삼고 8천 년을 가을로 삼는다.[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爲春 五百歲爲秋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以八千歲爲秋]"라 하였다. 봄……듯하네 난초와 혜초는 모두 향초(香草)로, 흔히 현자(賢者)의 고결한 인품이나 높은 지조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내 이미 난초를 구원에 심었고, 또 혜초를 백묘에 심었노라.[余旣滋蘭之九畹兮 又樹蕙之百畝]"라는 대목이 보인다. 생전에……품었고 '왕상(王祥)'은 진(晉)나라 때의 효자(孝子)다. 자기에게 모질게 대하는 계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했는데, 계모가 한겨울에 잉어회를 먹고 싶어 하자 강가로 내려가 얼음을 깨려 하니 얼음이 저절로 깨지면서 잉어가 뛰어 올라왔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33 王祥列傳》 김진영이 생전에 그 모친을 제대로 봉양하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죽은……품었네 '등자(鄧子)'는 진(晉)나라 등유(鄧攸)를 가리킨다. 등유는 건흥(建興) 연간에 하동 태수(河東太守)가 되었는데, 석륵(石勒)의 병란 때에 아들과 조카를 데리고 피난하다가 둘 다 보호할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는 자기 아들은 버려두어 죽게 하고 먼저 죽은 동생의 아들을 대신 살렸다. 그러나 그는 이후로 끝내 후사를 얻지 못해 제사를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晉書 卷90 鄧攸列傳》 김진영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음을 말한 것이다. 형제 원문은 '영원(鴒原)'이다. 들판에 있는 할미새라는 뜻으로, 우애 있는 형제를 뜻할 때 쓰는 말이다.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들판에 있는 할미새처럼, 급하고 어려울 땐 형제들이 돕는다네. 좋은 벗이 매양 있다 해도, 그저 길게 탄식할 뿐이라오.[鶺鴒在原 兄弟急難 每有良朋 況也永歎]"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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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봉(羅雲峯)287)【염(袡)】에 대한 만사 挽羅雲峯【袡】 베푼 덕이 기반이 되어 대대로 두터우니남은 경사 길이 전하여 여러 자손에게 주네288)두 난초 한 줄기에 함께 자라 금우(金友)라 칭해지고두 개의 옥 진귀함을 나란히 하여 옥곤(玉昆)의 모습 보이네289)사람들은 준마가 낮은 고을에 침체되어 있는 것 안타까워하였는데하늘은 신선의 신발290) 거두어 운문(雲門)으로 돌아가네아우만 홀로 무궁한 아픔을 품고 있으니울음으로 부모님 모시느라 은연중에 넋이 끊어진다오 種德爲基世有敦永傳餘慶贈諸孫雙蘭共蔕稱金友二璧連珍見玉昆人惜良騏沉下邑天收仙舃返雲門季方獨抱無窮痛泣奉晨昏暗斷魂 나운봉(羅雲峯) 나염(羅袡, 1611~?)을 가리킨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자상(子尙)이다. 나위소(羅緯素)의 아들이다. 1642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은진 현감(恩津縣監), 공조 정랑(工曹正郞), 태인 현감(泰仁縣監), 금구 현령(金溝縣令), 의금부 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베푼……주네 나염(羅袡)의 선조가 덕을 쌓아 그 후손에게 경사가 있게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에게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게 마련이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에게 반드시 남은 재앙이 돌아오게 마련이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라 하였다. 두 난초……보이네 '금우(金友)'와 '옥곤(玉昆)'은 합하여 '옥곤금우(玉昆金友)'라는 말로 쓰인다. 양(梁)나라 때 왕전(王銓)‧왕석(王錫) 형제가 모두 문명(文名)이 있는 데다 효행 또한 똑같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왕전‧왕석 형제는 옥곤, 금우라 이를 만하다.[銓錫二王 可謂玉昆金友]"라 한 데서 온 말이다. 《南史 卷23 王彧傳 王銓王錫》 다른 사람의 형제를 칭찬할 때 흔히 사용된다. 신선의 신발 원문은 '선석(仙舃)'이다. 신선이 신는 신발로, '부석(鳧舃)'이라고도 한다. 흔히 지방 수령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후한(後漢) 사람 왕교(王喬)가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매월 초하루 보름이면 반드시 궁궐에 조회를 하고 나갔는데 뒤따라 온 거기(車騎)도 없었다. 그를 이상히 여긴 황제가 태사(太史)에게 밀령을 내려 지켜보게 하였더니, 그가 올 때쯤에 동남쪽에서 오리 두 마리가 날아오고 있을 뿐이었다. 이에 그물을 던져 잡았더니 속에 오직 신발 한 짝이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方術傳》 나염이 지방 수령을 여러 차례 역임한 바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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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를 놓아주다 放鴈 북쪽 변방엔 눈 서리 일찍 내리는데강남에는 구름과 물이 많네오가는 것 안 될 것 없지만끝내 그물을 어찌 하리오 塞北雪霜早江南雲水多往來無不可終奈網羅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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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對策集) 對策集 對策集 고서-집부-총집류 정치/행정-과거-시권 고서 원문 對策集 성책 미상 전북대학교 한국학자료센터 이장후(李章垕), 이존수(李存秀), 임제원(林濟遠), 이가환(李家煥), 서영보(徐榮輔), 박제가(朴齊家), 김희조(金熙朝), 유득공(柳得恭), 이덕무(李德懋), 조상진(趙尙鎭), 김희주(金熙周), 권대관(權大觀), 강이천(姜彝天), 심옥현(沈玉賢), 김달순(金達淳)(2건), 김희순(金羲淳) 등 16인의 대책(對策)을 모아 놓은 성책. 조선 후기의 소과 혹은 문과 그리고 소과 혹은 문과와 연관된 시험에 응시했던 자들이 작성한 시권(試券)을 옮겨 적은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소과나 문과 혹은 소과나 문과와 연관된 시험에 응시했던 자들의 답안지를 옮겨 적은 예가 많았는데, 이런 자료들을 편의상 복본시권(複本試券)이라고 부르고 있다. 복본 시권을 제작하는 이유는 당연히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과나 소과를 준비하는 자들이, 본인보다 앞서 문과나 소과에 도전했던 자들이 남긴 글들을 보고 싶어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문장이 뛰어난 사람들의 글이나 혹은 소과나 문과에 성공한 사람들의 글을 주로 보고 싶어 하였는데, 복본 시권 중에는 서사가(書寫家)들이 판매를 목적으로 제작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복본 시권은 대·소과를 준비하는 자가 직접 옮겨 적은 일들이 많았다. 복본 시권의 제목은 매우 다양하였다. 책문의 경우는 동책(東策), 동책정수(東策精粹), 대책(對策), 책문(策文) 등으로 적었고, 표(表)나 부(賦)나 시(詩) 등은 여문(儷文) 東表(東表), 동부(東賦), 려문(驪文), 과려(科儷), 려문(儷門), 려식(儷式), 려휘(儷彙), 병려화조(騈儷華藻), 표격(表格), 표규(表規), 표식(表式), 과문규식(科文規式), 표추(表椎), 과문(科文), 백중(百中) 벽옹(辟雍)등 매우 다양하였다. 위의 제목 중에서 식(式)이 붙은 것은 글을 짓는 형식적인 내용, 다시 말해서 표나 부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그 방식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소개하는 복본 시권에는 제목이 적혀 있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는 있었는지 전래되는 과정에서 탈락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내용은 앞서 언급한 대로, 책문(策問)과 함께 그 책문에 대한 대책(對策)이 실려 있다. 책문의 작성자를 보면 이장후(李章垕), 이존수(李存秀), 임제원(林濟遠), 이가환(李家煥), 서영보(徐榮輔), 박제가(朴齊家), 김희조(金熙朝), 유득공(柳得恭), 이덕무(李德懋), 조상진(趙尙鎭), 김희주(金熙周), 권대관(權大觀), 강이천(姜彝天), 심옥현(沈玉賢), 김달순(金達淳)(2건), 김희순(金羲淳) 등 16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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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서 여름에 송지제와 이별하며 지은 시에 차운하다 次江夏別宋之悌韻 고향가는 길은 어찌 이리도 먼가변경에 소식 끊겼네-이하 결락- 鄕國路何遠關塞信不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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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약의 시에 차운하다 次審藥韻 오랫동안 병중에 있어 좋은 약 필요하니연인 이어진 술자리에서 큰 잔을 겁냈노라흰머리가 점점 방초 따라 자라나니노쇠한 얼굴 활짝 핀 예쁜 꽃 마주하기 부끄러워라진령에 구름 비껴 있는데 석양이 다 저물고호산에 눈 그치자 봄물이 흘러오네저물녘 외로운 성에서 자주 서글피 바라보니향수는 술로도 달랠 수 없구나 經年病裏須良藥連日樽前怯大盃華髮漸隨芳草長衰顏羞對好花開雲橫秦嶺夕陽盡雪罷胡山春水來日暮孤城頻悵望鄕愁無賴酌金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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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령 객사에서 차운하다 次富寧客舍韻 음산 북쪽에 눈보라 몰아치고발해 가에 풍파가 이네북방 하늘은 끝이 없는데고향 달은 몇 번이나 보름달 되었는가나그네 꿈에 넋 오히려 괴로우니향수로 뚫어져라 바라보노라해가 지나도 말 위의 객인데오늘은 술을 마시는 신선이구나 雨雪陰山北風濤渤海邊胡天無盡處漢月幾回圓旅夢魂猶苦鄕愁眼欲穿經年馬上客今日飮中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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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재의 원운을 부기하다 附德哉韻 어가는 하늘 서쪽 끝에 있고외로운 신하는 북쪽 변방에 있네티끌이 맑아지니 나라가 다시 일어서고바다가 넓어지니 달이 다시 둥글어지네칼을 던지니 뜬구름 걷히고안장에 오르니 허벅지 살 쓸리는구나공 이루어져도 만호를 사양하고적송자의 신선술을 배워야 하리 鳳駕天西極孤臣地北邊塵淸邦再造海闊月重圓擲釰浮雲決跨鞍脾肉穿功成辭萬戶須學赤松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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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회포를 적다 抱川道中 書懷 장정 비바람 부는 저녁에돌아가는 길 동서 방향을 잃었네내려온 기러기 갈대 물가에서 방황하고굶주린 까마귀는 버들 둑에서 우네안개가 외로운 주막에 피어나 습하고하늘이 먼 산에 닿아 낮아지누나자리 가득 고향 떠난 객들이니시름겨운 얼굴 마주하며 슬퍼하누나 長亭風雨夕歸路失東西落鴈迷蘆渚飢烏噪柳隄烟生孤店濕天接遠山低滿座離鄕客愁顔對慘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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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에 이르러 말 위에서 읊조리다 到淮陽 馬上有吟 북로의 어려움 옛사람이 말했는데지금 와서 겪어보니 전에 들은 바와 꼭 같구나벼랑 따라 난 좁은 길에 푸른 산 아스라이 멀고땅을 쪼갠 깊은 시내에 넓은 들이 나뉘어지네숲 뚫고 가는 새는 천 봉우리 날아가고허공 걷는 사람은 반 공중의 구름을 밟는다이 몸은 해를 따르는 기러기81) 배우지 못했으니-1구 결락- 【一句缺】 北路之難古所云今來經過愜前聞緣崖細逕蒼山遠坼地深川廣野分穿樹鳥飛千嶂錦步虛人踏半天雲此身不學隨陽鴈 해를 따르는 기러기 기러기는 철마다 태양을 따라 따듯한 고장으로 옮겨 다니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서경》 〈우공(禹貢)〉에 "팽려에 물이 모여 흐르니, 양조가 사는 곳이다.[彭蠡旣豬, 陽鳥攸居.]"라고 하였는데, 한나라 공안국(孔安國)의 전(傳)에 "태양을 따라다니는 새로, 큰기러기·기러기 따위이다.[隨陽之鳥, 鴻雁之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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