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상 우복 정경세108)에게 올린 편지 上巡相鄭愚伏經世書 작별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떠난 지 여러 세월이 지났는데 온통 대감의 덕을 우러르는 제 마음은 감히 조금도 그치질 않습니다. 지금 늦더위로 여전히 괴로운데, 삼가 시절에 마땅히 순응하며 기거는 강녕하십니까?저는 몸조리에 어두워 질병이 번갈아 침투하였는데 다행히 조금 나아져 몸을 이끌고 역(驛)으로 돌아와 적막한 우정(郵亭 역관)에서 예전에 했던 공부를 복습하고 연구하고 있다가 지우(知遇)109)의 은혜에 감격하였으나 달리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사색하여 한 가지 어리석은 생각을 얻었는데, 만분의 일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오니, 별지에 기록한 것을 부디 한 번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바라건대 너그럽게 받아주시고 헤아려주십시오. 삼가 격식을 갖추지 못한 채 편지를 드립니다.별지지난번 그대110)에게 인사드렸을 때 합하(閤下)를 처음 뵈었습니다. 합하께서는 공문서로 일이 많아 바쁘신 중에도 주자의 서책을 읽고 의리(義理)를 궁구하며 토론하시니 이는 이른바 옛 사람이 벼슬을 하면서 여가가 있으면 학문을 한다.111)는 것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흠앙하게 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칭송하면서 우러러보게 하여 오래도록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글을 써서 즐거움을 취할 자료를 갖추어보았는데, 제가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니 바라건대 조금이라도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무릇 사람이 천지 사이에 서서 삼재(三才)112)에 참여한 까닭은 마음이 한 몸을 주재하여 온갖 변화에 수작(酬酌)하며 천지가 제자리에 위치하고 만물을 화육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113) 그러나 마음이라는 물건은 홀연히 나갔다 홀연히 들어오고, 있는 듯 하면서 없는 듯 하며, 연못에 빠졌다가도 하늘로 날아오르고,114) 불처럼 뜨겁다가도 얼음처럼 꽁꽁 얼어버리니115) 힘써 제어할 수 없고 억지로 제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오사(五事)116)를 공경히 하고 사물(四勿)117)을 지켜서 겉으로 희롱하는 것에 방탕하게 현혹되지 말고, 안으로 살펴서 구차하게 용서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動)과 정(靜)을 아울러 기르고 표(表)와 리(裏)에 간극을 없게 하며 마음을 잡아 보존하고118) 제어하여 기(氣)가 개인적인 사욕을 쫓지 않게 하며, 성찰하고 깨달아 일이 반드시 의리를 따르게 하여 수작(酬酢 응대(應對))하고 참여해 돕는다면 어찌 가는 곳마다 마땅함을 얻지 않겠습니까.그러나 사물에는 선악의 차이가 있고 일에는 옳고 그름의 구별이 있으니, 만약 학문(學問)과 사변(思辨)의 공부에 우선적으로 힘쓰지 않고 천리와 인욕의 소재를 알지 못한다면 아침저녁으로 행하는 바가 다만 지엽적인 일에 자질구레하게 얽매입니다. 비록 혹시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우연히 도리에 합치되더라도 그 과정과 근본은 진실로 성현의 모양(模樣)이 아니니 어찌 천지와 그 큼을 함께하여 사물의 마땅히 그러함을 따르겠습니까. 이 때문에 《대학(大學)》의 가르침은 반드시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을 먼저 한 뒤에 성의(誠意), 정심(正心)하고, 수신(修身)한 이후에 미루어서 제가(齊家)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미치는 것이니,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두어 글자가 결락하였다.119)】의 소재를 먼저 알게 하여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땅함으로 채워야 합니다. 삼가 그 염려하는【두어 글자가 결락하였다.120)】 마음을 항상 육체에 보존하고 몸이 한쪽으로 빠지지 않게 한 이후에 집안과 국가와 천하가 이로써 제자리에 놓이게 될 뿐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의 학문이며, 자기를 이루고 남을 이루어주는 도(道)입니다. 성인과의 거리가 비록 멀더라도 남아 있는 경전은 아직 존재하고 있으니 그 책을 읽고서 마음을 다스린다면 어찌하여 옛 사람들에게 미칠 수 없겠습니까.우리 조선 200년간 유학의 근원을 밝게 탐구하고 정주학을 계승한 이가 몇 분이나 되겠습니까? 고려 말 포은 정몽주가 성리학을 처음 열었으나 입언(立言)121)의 공은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 후 한원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 다섯 분의 선생께서 서로 계승하여 도학을 일으켜 세상에 크게 밝혔는데, 모두 때를 만나지 못하여 그 도가 크게 행하지 못하였으나 그 유풍과 남은 공렬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근세의 풍습이 경박스럽고 거짓되어 갑자기 20년 전의 규모로 변하여 예법을 천하게 여겨 버려두고 오로지 부화(浮華)한 것만을 일삼아서 말 잘하는 것은 숭상하나 덕은 숭상하지 않으며, 이익은 아나 의리는 알지 못하니, 인심이 둘로 나뉘고 시론(時論)이 분열된 것이 어찌 괴이하게 여기기에 족하겠습니까. 선배들께서 쇠락하고 다 돌아가셔서 주맹(主盟 주장(主掌))이 없으니 한 세대를 돌아보아도 인물이 묘연한데, 붕당은 나뉘어 대립하면서 오직 이익만 추구하고 세도(世道)는 오랑캐와 금수(禽獸)로 귀결되니, 오히려 어떻게 유가의 대업을 논의할 수 있겠습니까.오직 합하께서 지위가 높으신데 독서를 그만두지 않으시고, 지혜가 밝은데도 겸양의 덕에 더욱 힘쓰시며,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확고하고 세상을 붙들려는 뜻에 독실하시니, 이는 모두 부귀하고 현달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나 오직 합하께서만 능하시므로 여기에서 유래한 연원을 볼 수 있고 반드시 남다른 명성이 있습니다. 스스로 책임을 중히 여기고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으시니 거의 속세에서 견줄 바가 없어 구구한 마음으로 경탄하며 제 자신은 하루도 마음속이 석연(釋然)치 않았습니다. 이에 미치광이나 소경[妄靈]의 말로 시인에게 음식을 대접하던 정성을 대신하고, 또한 은혜로 보살펴 주신 데 대해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고자 합니다. 삼가 살펴보시고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어질고 지혜롭다고 여기지 말고 독서에 공력을 더 가하시며, 스스로 자만하지 말고 다시금 겸허함에 힘쓰시며, 의리를 살펴 사물에 처하시고, 눈과 귀를 넓혀 시비(是非)를 살피시며 사람들의 폄훼나 칭찬으로 평생의 정해진 뜻을 바꾸지 말고 자신의 이익과 해로움으로 천하의 공변된 도(道)를 폐하지 않으시면, 내 마음을 제어할 수 있어 허물이 없어지고 들릴 만한 것이 있을 것이며, 천리(天理)를 회복할 수 있어서 더 하지 않아도 자신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니, 저승에서는 반드시 말없이 도움이 있을 것이고 이승에서는 반드시 드러나는 도움이 있을 것이며, 정성으로 하늘을 감동시키고 올바름으로 사악함을 제압하며, 삼재(三才)에 참여하여 나란히 서는 책임을 거의 당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합하의 덕은 한 집안의 덕이 아니라 천하의 큰 덕이 되며, 합하의 영광은 한때의 영광이 아니라 만세토록 길이 전해지는 영광이 되리니, 원컨대 합하께서 깊이 생각하시고 유념하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拜違命席, 屢轉駒陰, 一心仰德, 不敢少置. 目今老暑猶苦, 伏惟順時之宜, 起居休吉. 某昧於攝理, 疾病軼侵, 幸得少蘇, 扶曳還驛, 寂廖郵亭, 溫繹舊學, 感蒙知遇, 稱效無他. 思以一得之愚,冀其萬一之補, 別紙所記, 幸賜一覽. 伏惟寬容以裁之. 謹狀不備.別紙向也得拜, 下風創見. 閤下於簿牒倥傯中, 讀朱子書, 窮討義理, 是所謂古人仕優之學. 令人欽聳, 不覺讚仰, 久而不能忘也. 因爲之說, 以備樂取之資. 愚不自揆, 竊冀少垂察焉. 夫人之所以立乎兩間, 而參爲三才者, 以其心能主宰一身, 酬酢萬變, 而可以位天地贊化育也. 然而心之爲物, 忽出忽入, 若存若亡, 淵淪而天飛, 焦火而凝氷, 不可以力而御, 不可以强而制. 唯能敬用五事, 守以四勿, 勿蕩眩於外玩, 勿苟恕於內省. 動靜交養。表裡無間, 操存攝伏而氣不逐於己私, 省發警悟而事必循於義理, 以之酬酢, 以之參贊, 何所往而不得其當者乎. 然而物有善惡之殊, 事有是非之別, 若不先務學問思辨之功, 而不知天理人欲之所在, 則寅夕所爲, 徒規規於事爲之末. 雖或一言一行, 偶合於道, 而其田地本領, 則固非聖賢模樣, 安能與天地同其大, 而順事物之當然乎. 是以大學之敎, 必先致知格物而后, 誠意正心, 修身而后, 推而及於齊治平者, 欲使學者, 先知【缺二三字】之所在, 而實其好惡之當. 謹其念慮【缺三字】心常存於軀殼, 身不陷於一偏而后, 家國天下以是而措之耳. 此所謂明德新民之學, 而成己成物之道也. 去聖雖遠, 遺經尙存, 讀其書以治其心, 則何古人之不可及哉. 我朝二百年間, 灼然有以探源乎洙泗, 接響乎洛建者有幾. 麗末鄭圃隱, 始闡性理之學, 而不見立言之功. 其後寒暄一蠹靜庵晦齋退溪五先生, 相繼而起道學, 大明於世, 而皆不遇時, 其道不得大行, 其遺風餘烈, 猶有存者. 近世風習澆訛, 頓變二十年前規模, 賤棄禮法, 專事浮華, 尙言而不尙德, 知利而不知義, 人心之携貳, 時論之分裂, 何足怪也. 先進凋落殆盡, 主盟無人, 顧瞻一世, 人物渺然. 朋分角立, 唯利是趨驅, 世道於夷狄禽獸之歸, 尙奚足與論儒家之大業乎. 惟閤下, 位高而不廢讀書, 智明而益懋謙德, 斷斷乎憂國之念, 眷眷乎扶世之志, 此皆貴達所不能, 而惟明公能之, 於此可以見淵源所自, 必有異聞. 自任之重, 逈出常情, 殆非流俗之所可擬. 區區敬歎, 自不能一日釋然於中也. 玆將狂瞽之言, 以代詩人授粲之誠, 且以效其恩顧之萬一. 伏願垂察留意. 不自賢智而加功讀書, 不自矜滿而更勉謙虛, 審義理而處事物, 廣聰明而察是非, 勿以人之毁譽而易平生之定志, 勿以己之利害而廢天下之公道, 則吾心可制而無過可聞, 天理可復而無已可克, 幽必有黙佑, 明必有顯比. 誠足以格天, 正足以壓邪, 參三竝立之責, 庶可塞矣. 然則閤下之德, 非一家之德而爲天下之大德, 閤下之榮, 非一時之榮而爲萬世之長榮, 願明公熟計之加之意, 千萬幸甚. 정경세 1563~1633.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임(景任), 호는 우복(愚伏), 시호는 문숙(文肅)에서 문장(文莊)으로 개시(改諡)되었다. 1586년 알성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로 등용되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수찬이 되었고, 1598년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광해군 때 정인홍과 반목 끝에 삭직되었다. 인조반정 후 발탁되어 이조판서 겸 대제학에 이르렀다.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으로 이황의 학통을 계승하였는데, 경전에 밝았고 특히 예학에 조예가 깊었다. 상주의 도남서원(道南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우복집》ㆍ《상례참고(喪禮參考)》 등이 있다. 지우(知遇) 인격(人格)이나 학식(學識)을 남이 알고서 잘 대우해 주는 것을 뜻한다. 그대 원문의 '하풍(下風)'은 자신이 상대방의 교화 아래에 있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상대방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옛 사람은 …… 한다 《논어》 〈자장(子張)〉에 "벼슬을 하면서 여가가 있으면 학문을 하고, 학문을 하고서 여가가 있으면 벼슬을 한다.[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라는 말이 나온다. 삼재(三才) 우주를 구성하는 세 가지 바탕, 곧 하늘[天], 땅[地], 사람[人]을 말한다. 천지가 …… 때문입니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에서 "중화를 이루면 천지가 제자리에 위치하고, 만물이 길러진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라 하였는데, 집주(集註)에, 이것을 일러 학문(學問)의 극공(極功)이요 성인(聖人)의 능사(能事)라고 하였다. '參天地 贊化育'은 '參贊化育'의 의미이다. 즉 천지(天地)의 화육(化育)을 돕는다는 뜻으로, 제왕(帝王)의 덕화(德化)가 자연과 부합됨을 일컫는 말이다. 연못에 …… 날아오르고 마음의 예측할 수 없음을 말한다. 《주자시집》 권4 〈재거감흥(齋居感興)〉에 "인심의 오묘함은 예측할 수 없어, 드나들 때에 기를 타고 나오네. 얼음처럼 얼었다가 불처럼 타오르며, 연못에 빠졌다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네.〔人心妙不測, 出入乘氣機. 凝冰亦焦火, 淵淪復天飛.〕"라고 하였다. 불처럼 …… 얼어버리니 《장자》에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면서 "뜨거워지면 불처럼 타올라 모든 것을 태워 버리고, 차가워지면 얼음장처럼 모든 것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其熱焦火 其寒凝冰]"고 한 말이 나온다. 희로애락 등 인간의 마음속에 이는 번뇌(煩惱)를 뜻하는 표현이다. 오사(五事) 홍범구주(洪範九疇)의 하나이다. 《서경》 〈홍범(洪範)〉에 "오사(五事)이니, 첫째는 모(貌), 둘째는 언(言), 셋째는 시(視), 넷째는 청(聽), 다섯째는 사(思)이다."라고 하였는데 외모는 공손히, 언어는 조리 있게, 보는 것은 밝아야하며, 듣는 것은 분명해야하며, 생각은 지혜로워한다고 했다. 사물(四勿) 네 가지 하지 말라는 것으로,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이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조목을 묻자,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하였는데, 이를 가리킨다. 《論語集註 顔淵》 마음을 잡아 보존하고 원문의 '조존(操存)'은 마음을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공자가 이르기를 '잡고 있으면 보존되고, 놓아 버리면 없어지며,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고, 어디를 향할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하였다."라고 한 데서 나왔다. 두어 글자가 결락하였다 《우득록(愚得錄)》 〈與崔監司書〉에 의거하여 '선악(善惡)' 두 글자가 결락한 것으로 보인다. 두어 글자가 결락하였다 《우득록(愚得錄)》 〈與崔監司書〉에 의거하여 '지발이(之發而)' 세 글자가 결락한 것으로 보인다. 입언(立言) 후세에 교훈이 될 만한 말을 하거나 저술 또는 불후의 학설을 남긴다는 말이다. 《춘추좌씨전》 양공(襄公) 24년 조에 "가장 뛰어난 것은 덕을 세움이고, 그 다음은 공을 세움이며, 그 다음은 후세에 전할 만한 말을 남겨서, 비록 오래 되어도 폐해지지 않으면 이를 일컬어 영원히 썩지 않는다고 한다.〔大上有立德, 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 雖久不廢, 此之謂不朽.〕"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