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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大學 성인(聖人)의 문하인 증삼(曾參)이 그 종지(宗志)를 얻었으니246)팔조목(八條目)과 삼강령(三綱領)247)에 차례로 통달하였네천하 국가 다스림에는 근본이 있고248)소인과 군자는 도(道)가 같지 않네249)수신(修身)을 통해 신민(新民)의 공효를 볼 수 있고250)신독(愼獨)251)을 통해 비로소 입덕(入德)의 공을 알겠네252)성의관(誠意關)253)의 주인은 누구인가영대(靈臺) 위의 성성옹(惺惺翁)이라네254) 聖門參也得其宗八目三綱次第通天下國家治有本小人君子道無同修身可見新民效愼獨方知入德功誠意關中誰是主靈臺臺上一惺翁 성인(聖人)의……얻었으니 증삼(曾參)은 곧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를 가리킨다. 《대학(大學)》은 증자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팔조목(八條目)과 삼강령(三綱領) 《대학》의 기본인 세 강령과 여덟 조목을 말한다. '삼강령(三綱領)'은 명명덕(明明德)‧신민(新民)‧지어지선(止於至善)이고, '팔조목(八條目)'은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이다. 천하……있고 《대학》의 팔조목을 따르자면,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를 하기에 앞서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 등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거쳐야 한다. 소인과……않네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행실이 판이하게 다름을 말한 것이다. 《대학장구》 전(傳) 3장에, "군자는 그 현명함을 현명하게 여기고 그 친함을 친하게 여기며, 소인은 그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그 이로움을 이로워한다.[君子 賢其賢而親其親 小人 樂其樂而利其利]"라 하였다. 수신(修身)을……있고 '수신(修身)'은 《대학》의 팔강령 가운데 하나로 '몸을 닦는 것'을 말하며, '신민(新民)'은 《대학》의 삼강령 가운데 하나로 '백성을 새롭게 함'을 말한다. 신독(愼獨) 원문은 '신독(愼篤)'인데, 문맥을 살펴 '독(篤)'을 '독(獨)'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신독(愼獨)을……알겠네 '신독(愼獨)'은 홀로 있을 때에도 행동을 삼가는 것을 말한다. 《대학장구》 전 6장에,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임이 없는 것이다. 악을 미워하기는 악취를 미워하는 것과 같이 하며, 선을 좋아하기는 미인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하니, 이것을 자겸(自慊)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慊 故君子必愼其獨也]"라 하였다. 또 《대학장구》 경(經) 1장 서두에, "정자가 이르기를, '대학은 공 씨가 남긴 책으로 초학자가 덕에 들어가는 문이다.' 하였다.[子程子曰 大學 孔氏之遺書 而初學入德之門也]"라 한 대목이 보인다. 성의관(誠意關) 뜻을 성실히 하는 공부를 관문에 비유한 말이다. 주희(朱熹)는 《대학장구(大學章句)》의 〈성의(誠意)〉 장을 설명하면서 "이 관문을 통과하면 바야흐로 도를 깨달음이 확고해진다.[過此關 方得道理牢固]"라 하였다. 《朱子語類 卷16》 또 "성의는 선악관(善惡關)이니, 뜻을 성실히 하면 선해질 것이고, 뜻을 성실히 하지 못하면 악할 뿐이다. 또 성의는 인귀관(人鬼關)이니, 뜻을 성실히 하면 사람일 것이고, 뜻을 성실히 하지 못하면 귀신일 뿐이다.[誠意是善惡關 誠得來是善 誠不得只是惡 誠意是轉關處 誠意是人鬼關 誠得來是人 誠不得是鬼]"라 하였다. 《朱子語類 卷15》 영대(靈臺) 위의 성성옹(惺惺翁)이라네 '영대(靈臺)'는 신령스러운 대(臺)란 뜻으로 마음을 가리킨다. '성성옹(惺惺翁)' 역시 마음을 가리킨 것으로 깨끗한 마음은 어둡지 않고 항상 깨어 있다 하여 이러한 말로 의인화한 것이다. 《심경부주(心經附註)》 〈경이직내장(敬以直內章)〉에, 사양좌(謝良佐)가 "경은 항상 성성하는 법이다.[敬是常惺惺法]"라고 한 데 대해, 주희(朱熹)가 "서암의 중은 매일 항상 스스로 '주인옹은 성성한가?'라고 묻고는 '성성하다.'라고 스스로 대답하곤 했다.[瑞巖僧 每日間 常自問主人翁惺惺否 自答曰惺惺]"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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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論語 천지의 정기(精氣) 받아 소왕(素王)255)이 나시니옥으로 금속 악기 소리 거두어 집대성(集大成)하셨네256)예악(禮樂)과 위의(威儀) 담장 안에 갖추어지고257)전장(典章)과 문물(文物)로 방 안이 환하네258)인(仁)을 두터이하고 의(義)를 넓힘에 하늘과 사람이 바로 서고부친께 효도하고 임금께 충성함에 나라가 평안해지네하도(河圖)와 낙서(洛書) 비록 보지 못하였으나259)가을날 햇볕과 강한(江漢) 같은 덕 지금까지 맑네260) 乾坤精氣素王生玉振金聲集大成禮樂威儀墻內備典章文物室中明敦仁博義天人立孝父忠君家國平河洛圖書雖未見秋陽江漢至今淸 소왕(素王) 제왕(帝王)의 덕을 지니고도 제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성인(聖人)을 이르는 말로,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에 "공자는 왕을 하지 않았으니, 소왕의 업은 《춘추》에 있다.[孔子不王 素王之業 在於春秋]"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옥으로……집대성(集大成)하셨네 공자가 성인(聖人)의 덕을 크게 이루었음을 말한 것이다.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공자 같은 분을 두고 집대성했다고 하는 것이니, 집대성이란 금속 악기 소리[金聲]로 시작하여 옥의 악기로 소리를 거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孔子之謂集大成 集大成也者 金聲而玉振之也]"라 하였다. 예악(禮樂)과……갖추어지고 공자의 학문 수준을 표현한 말이다. 《논어》 〈자장(子張)〉에, 자복경백(子服景伯)이 숙손무숙(叔孫武叔)의 말을 빌려 자공(子貢)이 공자보다 낫다는 말을 전하자 자공이 "집에다 비유하자면 나의 담장은 어깨 높이라 나의 살림을 엿볼 수 있지만, 부자의 담장은 몇 길이라 문을 통해 들어가 보지 못하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성대함을 알 수가 없소. 그런데 그 문으로 들어가 본 이도 사실 드무니 숙손무숙의 말이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譬之宮牆 賜之牆也及肩 窺見室家之好 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百官之富 得其門者或寡矣 夫子之云 不亦宜乎]"라 하여 공자의 학문을 높은 담장에 비유한 대목이 나온다. 전장(典章)과……환하네 공자의 학문 경지를 표현한 말이다. 《논어》 〈선진(先進)〉에, "자로(子路)는 마루에는 올랐으나 아직 방에는 들어오지 못하였다.[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라 하여 학문 경지를 집 구조에 비유한 대목이 나온다. 하도(河圖)와……못하였으나 공자가 결국 세상에 도(道)를 실현하지 못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하도(河圖)'는 복희씨(伏羲氏) 때에 하수(河水)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1부터 10까지 그려져 있던 그림으로 복희씨가 이것을 보고 《주역》의 팔괘(八卦)를 그었다 하며, '낙서(洛書)'는 하(夏)나라 우왕(禹王) 때에 낙수(洛水)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1부터 9까지 그려져 있던 그림으로 우왕이 이것을 보고 《서경》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 한다. 때문에 하도와 낙서는 도를 전하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가을날……맑네 공자의 덕을 찬미한 것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증자(曾子)가 공자를 찬미하여 "선생의 덕은 강수(江水)와 한수(漢水)로 씻는 것과 같고 가을볕으로 쪼이는 것과 같아서 깨끗하고 깨끗하여 더할 수 없다.[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不可尙已]"라 한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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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왕이 한신을 대장군에 임명하는 내용으로 상정하여 지은 제서 擬漢王拜韓信大將制 먼저 관중에 들어와 차지하게 되면우리가 왕이 되어 다스릴 땅을 잃게 되네.반드시 천하를 취하려고 한다면그대를 장수 삼지 않고 그 누구리오.이에 총융으로 명하여장차 분곤의 책무18)를 맡기노라.다만 그대는 허리에 검 한 자루 찼으나가슴에는 《육도》19)가 서려 있어라.백정의 소년들이바지 아래로 나올 용기20)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성 아래의 빨래하는 유모는낚시 드리운 풍모를 일찍 알았어라. 21)군웅이 일어날 때 진에서 도망하여칠 척의 몸을 일으켜 초나라로 찾아갔네.자신을 알아주지 않아 이에 그만두었으니어린 애와는 어찌 함께 일을 꾀하랴.22)멀리서 찾아왔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과인은 원컨대 마음을 차분히 하고 가르침을 받들겠노라.지난번 항우가 맹약을 저버린 까닭에이렇게 한나라 땅이 봉지를 옮기게 되었네.남정23) 가는 길은 고향에서 점점 멀어지니진나라 변새 천 겹의 숲을 바라보누나.서쪽의 풍토는 절로 달라탕산의 오채색 구름24)을 꿈꾸누나.전사들 대부분 동으로 돌아갈 생각하고그대 또한 뒤에 있다가 서로 헤어졌구나.나를 뒤좇지 않은 탄식이 바야흐로 깊은데다행이도 왕을 위해 머문 사람들이 있구나.재상이 둘도 없는 인재25)라고 천거하니경감26)을 통해 나아간 것이 아니어라.장군의 재주를 제일로 발탁하니염파의 앞에 있는 것이 합당하네.생각건대 지금은 처음 의례를 만드는데더구나 나는 본래 거만하여 무례하지만다행이도 장인의 점괘라 길하리니27)어찌 어린아이라고 부름28)과 같게 하랴.깊이 계합하니어찌 다만 간(諫)을 들어주고 계책을 따를 뿐이겠는가.예우의 성대함은마땅히 비를 들고29) 바퀴를 밀어주는 자와 같게 하리.이에 길일로써단을 만들고 예의를 갖춰그대를 제수하여 대장군으로 삼노니그대는 답답하게 오래 머무르는 나를 불쌍하게 여겨그대의 다다익선의 능력을 바치도록 하라.풍운의 용호30)라인걸로써 귀신의 조화를 운용하였고전사와 말의 군수와 군량은천부를 이용하고 지리를 따랐어라.때를 기다려 움직이고날을 지적하여 기약하여옥루31)의 겹겹 관문을 열고서금우의 옛길32)로 나왔어라.함곡관을 다시 수리하여만전을 기하여 조룡33)의 터를 차지했으며곧바로 팽성을 공격하여목후34)의 소굴을 일거에 소탕하였어라.강중에서의 원통35)을 씻을 수 있다면천하의 바람이 돌아올 것이니그런 뒤에 조나라를 정복하고 연나라를 으르며위나라를 사로자고 제나라로 내려가서 신하라고 칭하게 할 것이며장강을 따라 내려 낙을 넘어회수를 배를 띄워 황하에 이르기까지 조공을 바치게 할 것이니그렇다면 벼슬과 상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부귀를 마땅히 그대와 나눌 것이라.억만 년 한나라 왕업천자는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는 것과 같고육백 리 초나라 땅장부가 곧 남면하여 고라고 칭하리라.나 한 사람을 보필함36)을힘쓰시라 그대여.오호라 하늘이 준 바이니군중에서 한 명의 한신을 얻었어라.감히 나를 대적할 이 없으니삼진37)도 눈 아래 없어라.이에 볼 것이니 오늘 장수로 임명하매영원토록 그 공에 의지할 것을. 先入定關中失吾當王之地必欲取天下非爾爲將而誰肆命摠戎且與分閫惟爾腰帶一釰胸蟠六鞱屠中少年豈知出桍之勇城下漂母早識垂釣之風當羣雄起而亡秦挺七尺薄言歸楚莫己知斯可已矣竪子何足與謀自遠來不亦樂乎寡人願安承敎頃緣項氏之背約有此漢地之移封南鄭之道途漸遙秦塞望千重之樹西蜀之風土自別碭山夢五彩之雲士多思歸于東爾亦相失在後方深不予追之歎賴有爲王留之人相臣薦其無雙非因景監而進將才擢爲第一合在廉頗之先念今草創之儀矧予素慢無禮幸卜丈人其吉寧若小兒之呼契合之深豈但言聽計從而已禮遇之盛當如擁篲推轂者然玆以吉日設壇具禮拜爾爲大將軍爾其悶予鬱鬱久居效爾多多益辦風雲龍虎以人傑而運神機士馬財粮用天府而因地利待時而動指日爲期開玉壘之重關出金牛之故道重修函谷萬全據祖龍之墟直擣彭城一擧蕩沐猴之窟江中之冤可雪天下之望攸歸然後仆趙愶燕擒魏下齊而稱臣沿江逾洛浮淮達河而來貢則爵賞非所惜也富貴當與共之漢業億萬年天子譬北辰之居所楚地六千里丈夫卽南面而稱孤弼予一人勖哉夫子嗚呼殆天所授得一韓於軍中莫我敢承無三秦於眼底試看今日之拜將可使永世而賴功 분곤 고대에 임금이 출정하는 장수를 보낼 때 꿇어앉아 수레바퀴를 밀며 "궐문 안은 과인이 다스리고 궐문 밖은 장군이 다스린다."라고 하였다. 《漢書 卷50 馮唐傳》 육도 중국 주(周)나라 때 태공망(太公望)이 지은 여섯 종류의 병서(兵書)라고 한다. 바지……용기 한신(韓信)이 젊어서 가난할 때 회음(淮陰) 도중(屠中)의 소년들이 그를 모멸하여 "비록 허우대는 크고 그럴듯하게 도검(刀劍)을 찼지만 마음속은 겁이 많다." 하면서 "한신아, 능히 죽일 수 있거든 나를 찌르고 죽일 수 없거든 내 가랑이 아래로 지나가라." 하니, 한신이 그들을 죽일 수 있음에도 모욕을 참고 가랑이 아래로 기어갔고, 저자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한다. 《史記 卷92 淮陰候列傳》 빨래하는……알았어라 한신이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하여 굶주린 채 회음성(淮陰城) 밑에서 고기를 낚고 있었는데, 빨래하는 부인[漂母]이 그를 동정(同情)하여 여러 날 밥을 주었다. 한신이 감사하여 "내가 성공하면 부인에게 후히 갚겠습니다."라고 하니, 부인이 "내가 왕손(王孫)인 그대를 동정한 것이지, 어찌 뒷날에 보답을 받기를 바란 것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 뒤에 한신이 초왕(楚王)이 되어 빨래하던 부인을 찾아서 금 천 근을 주었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어린……꾀하랴 원래 항우의 책사인 범증(范增)이 항우한테 한 말이다. 남정 유방이 관중에 먼저 들어갔으나, 항우는 먼저 들어간 자를 왕으로 삼는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파와 촉, 한중도 관중(關中) 땅이라고 하면서 유방을 한왕(漢王)으로 삼아 그곳의 왕이 되게 하고서 남정에 도읍하게 하였다. 탕산의 오채색 구름 한 고조(漢高祖)가 미천하였을 때 망탕산(芒碭山)에 은거하였었는데 은거한 산 위에 항상 구름 기운이 있어, 여후(呂后)가 그 구름 기운을 보고 찾았다 한다. 《史記 高祖本紀》 둘도 없는 인재 한나라 승상 소하(蕭何)가 한 고조(漢高祖)에게 한신(韓信)을 천거할 때 했던 말 가운데 "여러 장수는 얻기가 쉽지만, 한신 같은 사람은 둘도 없는 국사입니다.[諸將易得耳, 至如信者, 國士無雙.]"라고 하였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경감 상앙(商鞅) 이 처음 진(秦) 나라에 들어가서 환관(宦官) 경감(景監) 의 소개로 진왕을 만나니, 조량(趙良) 이 그의 소개자가 부정함을 비난하였다. 《史記 卷68 商君列傳》 장인의 점괘라 길하리니 《주역》 〈사괘(師卦)〉에 "사(師)는 바르니, 장인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으리라.[師貞, 丈人吉, 無咎.]" 하였다. 사(師)는 군대를 거느리는 자를 말하며, 장인은 존엄한 어른을 말한다. 전(傳)에 말하기를, "사(師)의 도는 정도(正道)를 근본으로 삼는다. 군대를 통솔하고 무리를 거느림은 사람들이 존신(尊信)하고 외복(畏服)하는 자가 아니면 어찌 인심의 따름을 얻겠는가."라고 하였다. 어린아이라고 부름 한(漢)나라 소하(蕭何)가 유방(劉邦)에게 "왕께서는 평소에 거만하고 무례하게 행동하고 계시는데, 지금 대장을 임명하면서도 마치 어린아이를 부르는 것처럼 하고 있기 때문에 한신(韓信)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떠나간 것이다.[王素慢無禮, 今拜大將如呼小兒耳, 此乃信所以去也.]"라고 충고하여 다시 예우하게 했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비를 들고 맹자가 연(燕)나라로 가자 소왕(昭王)이 빗자루를 들고 앞에서 달리며 제자의 자리에 앉아서 수업 받기를 청하였다. 《史記 卷74 孟子列傳》 풍운의 용호라 용호(龍虎)가 풍운(風雲)을 만나서 세력을 떨치듯, 명군(明君)과 현신(賢臣)이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라고 하였다. 옥루 중국의 촉(蜀) 나라 수도인 성도(成都)의 서북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금우의 옛길 전국 시대 진 혜왕(秦惠王)은 촉(蜀)을 치려 했으나 길을 알지 못하므로 돌을 깎아 다섯 마리의 소를 만들어 뒤에 금을 넣어 놓고는 이것을 촉도에 갖다 놓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는 돌소가 금똥을 눈다고 하자, 이 소문을 들은 촉왕(蜀王)은 천여 명의 군사와 다섯 명의 역사(力士)를 동원하여 성도(成都)로 운반해 갔다. 이 때문에 길이 뚫려, 진 나라는 마침내 이 길을 따라 촉을 공격하여 탈취했으므로 이 길을 금우도(金牛道)라 하였다. 조룡 조룡(祖龍)에서 조(祖)는 시(始)의 뜻이고, 용(龍)은 임금을 상징하는 말로, 시황제를 가리킨다. 《사기(史記)》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진시황 36년 가을에 사자(使者)가 화음(華陰)의 평서도(平舒道)를 지날 때 손에 벽(璧)을 쥔 사람이 사자의 길을 막으면서 "나 대신 이것을 호지군(滈池君)에게 전해 주오. 금년에 조룡이 죽을 것이오."라고 하였는데, 다음 해에 진 시황이 죽었다고 한다. 목후 항우(項羽)가 진나라 궁궐을 모두 불태우고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며 "부귀해지고 나서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비단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니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주겠는가."라고 하자, 유세하는 자가 "초나라 사람은 원숭이를 목욕시키고 갓을 씌워 놓은 것과 같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로구나.[人言楚人沐猴而冠耳, 果然.]"라고 하였는데, 항우가 이 말을 듣고는 그를 삶아 죽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7 項羽本紀》 강중에서의 원통 당시 초나라 왕인 의제를 죽인 것을 이른다. 《역대사선(歷代史選)》 〈초한기(楚漢紀)〉에서 "10월에 서초 패왕(西楚霸王) 항적(項籍)이 사람을 보내어 의제(義帝)를 재촉하여 떠나가게 하니, 그 대신(大臣)들이 점차 배반하였다. 항적은 마침내 몰래 형산왕(衡山王) 오예(吳芮), 구강왕(九江王) 경포(黥布), 임강왕(臨江王) 공오(共敖)를 시켜서 의제를 공격하여 장강(長江) 한가운데서 살해하였다."라고 하였다. 나……보필함 《서경》 〈주서(周書) 주관(周官)〉에 "소사ㆍ소부ㆍ소보를 삼고라 하니, 삼공의 다음이 되어 조화를 넓혀 천지를 공경하고 밝혀 나 한 사람을 보필한다.[少師少傅少保 曰三孤 貳公弘化 寅亮天地 弼予一人]"라고 하였다. 삼진 진나라를 가리킨다. 진나라가 망한 뒤에 항우가 관중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각기 옹왕(雍王)ㆍ새왕(塞王)ㆍ적왕(翟王)을 봉해 주었기 때문에 삼진(三秦)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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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종정경인 사뇨38)가 자신의 온 가족을 걸고 악비를 보호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상정하여 지은 제서 열여섯 살에 장난삼아 짓다. 宋宗正卿士褭請以百口保岳飛無他【十六歲作】 업적은 항상 기록되어야 하니네 글자39)에서 이미 가상하게 여김이 부족함이 없어라.감옥에 묶여 있는 것 그의 죄가 아니니온갖 방법으로 보호하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어라.죽음에 처해진 충신이 온전하기를 바라며감히 피를 토하는 충간을 아뢰었네.삼가 살펴보니 원수의 분곤에적신이 공을 방해함을 면키는 드물어라.다섯 달 의양에서감숙은 한나라를 끼고 돈다는 의논에 곤욕을 당하였고40)삼년 즉묵에서악의는 제나라 왕이 되려 한다는 참소에 걸려들었네.41)참으로 간혹 참소를 믿고 무고를 받아끝내 반드시 장수를 죽이고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네.삼가 생각건대 황제 폐하께서는한나라42)가 위태로울 때 태어나셔서쇠퇴한 주나라를 부흥시키는데 뜻을 두었어라.구묘가 비린내 나는 오랑캐에게 엎어진 것을 애통하게 여기고얼음을 안고 불을 안고서43) 게으르지 않았네.두 황제가 사막으로 파천함을 분을 내어거적 위에서 자고 창을 베는 것44)을 감히 잊으랴.이에 북 소리 듣고서 장수의 생각45) 간절하였으니부월을 하사할 적임자를 고심해서 골랐어라.돌아보고 다만 악비를 장수로 삼았으니실로 둘도 없는 국사라네.마음의 《육도》는 치밀하여귀신도 간담이 놀라고흉중의 십만 갑병은 웅건하여오랑캐도 벌벌 떠누나.어찌 다만 재략만 매우 뛰어나랴아니 또한 충절도 우뚝하여라.한과 적이 둘이 서니살아서 같은 하늘 이고 사는 게 부끄럽고쉽거나 어려움에 한 마음이니죽어서 가죽에 쌓여도46) 한스러움이 없어라.이에 〈유월장〉의 잠깐 오랑캐 친 것47)을 좇아군후를 모아서 정벌에 나섰네.깨끗하고 빛나는 정신이여큰 성공은 이윽고 파죽지세처럼 거두었고정정당당한 깃발이여진의 형세는 동이의 물을 쏟듯이 굳건하네.48)회복할 기약을짧은 시간에 기다릴 수 있어라.어찌 생각이나 했으리, 나라를 팔아먹은 매우 사악한 이가몸을 아끼지 않은 외로운 충신을 얽을 줄을.진을 함락하고 예봉을 꺾으니악야49)라고 부르기를 그치지 않거늘베틀을 내려놓고 북을 던지니증자 모친의 의혹은 더욱 깊어졌어라.50)천문에서 척적51)의 조서가 내려와감옥에서 충신이 원통한 마음 지녔네.대의는 적개심에 늠름하니신명에 질정하여도 부끄럽지 않아라.정성은 근왕에 빛나니해, 별과 함께 환하리라.이에 여러 사람의 눈을 가리기는 어려운데더구나 감히 임금의 총명52)을 속이랴.그러므로 미천한 신하가 속이지 않는 것으로 임금을 섬기니53)의리는 마땅히 그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한다 하였지만참으로 성상께서 나는 믿지 못하니삼족 모두 죄를 용서할 수 없다라고 하였네.이에 종족을 이삼하는 형벌54)을 받게 되었으니충정하여 두 마음을 지니지 않은 이를 보호하려 하였어라.한 마디 말로 임금을 깨우치지 못하여구설로 다투기 어려운 것을 참으로 알았누나.지성이면 하늘도 돌릴 수 있으니감히 골육이 연좌됨을 피하랴.더구나 이 어진 장수의 생사는실로 종사의 안위와 관련됨에랴.노련한 장군의 예봉을 꺾어정군이 날랜 용기를 가로막고55)편안함을 찾아 싸움을 잊어버리니한나라 의례가 좌임56)의 풍습으로 바뀌었네.충성을 하는데 어찌 자신을 도모하랴애석하도다! 어진이 나라를 지키려고 한 것이.신이 삼가 살피건대 강화하여 원망을 그만 두는데어진이가 죽으니 나라가 병든다는 말57)을 생각하게 되누나.특별히 십대는 용서한다58)는 공훈을 기록하여온 집안 식구의 목숨을 걸고 보존해달라는 청을 곡진히 따라 주십시오.그렇다면 만리장성이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니어찌 국경이 쪼그라드는 근심이 있으리오.다섯 길의 요성59)이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았으니영토를 회복할 업적을 기약할 수 있으리라.신은 삼가 마땅히 사사로움을 잊고 나라에 몸을 바치리니사람을 천거하여 임금을 섬깁니다.60)죽은 이를 살려주고 뼈에 살이 붙게 하는 은혜를 받았으니목숨을 바쳐서 보답할 것을 삼가 기약합니다.적을 토벌하고 원수를 갚는 의리에 의거하여괴수의 목을 바쳐서 위엄을 떨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成績紀于常四字旣勤於嘉乃在絏非其罪百口願保其無他冀全喪元之忠敢進瀝肝之說竊觀元帥之分閫罕免賊臣之妨功五月宜陽甘茂困挾韓之議三年卽墨樂毅罹王齊之讒苟或信譖而受誣終必殺將而覆國欽惟皇帝陛下生當漢厄志興周衰痛九廟覆沒腥膻抱氷握火之匪懈憤二聖播越沙漠寢苫枕戈之敢忘肆切聽鼓之思益擇授鉞之任顧惟岳飛爲將實是國士無雙密勿心上之六鞱鬼神膽破磊落胸中之萬甲戎虜心寒豈但才略之敻超抑亦忠節之卓冠漢賊兩立生有愧於戴天夷險一心死無憾於裹革爰追六月之薄伐式總羣后而徂征濯濯靈赫赫聲功已收於破竹井井旗堂堂陣勢有同於建瓴恢復之期日月可待何圖賣國之巨慝竟搆匪躬之孤忠陷陣摧鋒岳爺之呼未訖下機投杼曾母之惑滋深尺籍飛詔於天門寸忱抱冤於牢獄犬羊2)凜凜於敵愾質神明而無羞精誠耿耿於勤王與日星而同炳兹難掩乎十目矧敢誣於四聰故微臣事君勿欺義當伸其見枉苟聖上謂余不信罪罔赦於惟均肆冒宗族之夷三庸保忠貞之不二一言不能悟主固知口舌之難爭至誠庶幾回天敢避骨肉之隨坐況此良將之存沒實關宗社之安危挫銳老師鄭軍沮右抽之勇偸安忘戰漢儀易左袵之風爲忠寧自謀身惜賢所以衛國臣伏望察講和之釋怨念云亡之殄邦特錄十世宥之勳曲從百口保之請則萬里之長城不毀何有縮境之憂五丈之妖星未隳可期復疆之績臣謹當忘私徇國以人事君荷生死肉骨之恩竊期隕首而圖報仗討賊復讐之義佇見獻馘而伸威 사뇨 제안군왕(齊安郡王) 조사뇨(趙士褭)이다. 그는 악비가 옥에 갇혀 죽을 지경에 이르자 자신의 온 가족을 걸고서 악비를 구하려고 하다가 고종의 미움을 받아 건주(建州)로 쫓겨나 그곳에서 죽었다. 네 글자 악비(岳飛)는 국문(鞫問)을 받을 당시에 자신의 옷을 찢어서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고 새긴 문신을 보여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宋史 卷365 岳飛列傳》 다섯……당하였고 전국 시대 진(秦)나라 무왕(武王)이 장군 감무(甘茂)를 시켜서 한(韓)나라 의양(宜陽)을 치게 할 때, 감무가 다른 신하들의 모함을 받아 끝까지 신뢰받지 못할 것을 걱정하며 출정하려 하지 않자, 무왕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아니할 것이다. 그대와 맹세를 하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식양(息壤)에서 무왕이 감무와 맹세를 하였다. 감무가 의양을 공격했는데 5개월이 지나도록 함락하지 못하자, 무왕이 공손연(公孫衍) 등의 말을 듣고는 감무를 소환하니, 감무가 말하기를 "식양이 저기에 있습니다.[息壤在彼]" 하니, 무왕이 "맹세한 적이 있다."라 하였다. 《史記 卷71 甘茂列傳》 삼년……걸려들었네 전국 시대 연(燕)나라의 장수이다. 소왕(昭王)에게 등용되어 상장군(上將軍)으로서 조(趙), 초(楚), 한(韓), 위(魏), 연(燕) 다섯 나라 군사를 거느리고 제(齊)의 70여 성(城)을 항복받았고 거(莒), 즉묵(卽墨) 두 성만이 남았다. 마침 소왕이 죽고 평소에 악의를 언짢게 여기던 혜왕(惠王)이 즉위하자 제(齊)나라의 장수 전단(田單)이 "악의가 제나라의 왕이 되려 한다."라고 반간(反間)을 놓았는데, 혜왕이 이 말을 믿고 악의를 의심하여 기겁(騎劫)을 악의 대신 장군으로 삼고 악의를 불러들였으나, 주벌(誅罰)될 것을 염려하여 조(趙)나라로 갔다. 《史記 卷80 樂毅列傳》 한나라 여기서는 송나라를 가리킨다. 얼음을……안고서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항복한 후 그 원수를 갚으려고 괴롭고 어려움을 참고 견딘다는 뜻에서 겨울이면 얼음을 안고 여름이면 불을 잡았다고 한다. 거적……것 자식이 부모의 원수를 갚을 일념으로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항상 원수를 칠 준비를 하는 것을 말한다. 《禮記集說 卷8》 북……생각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군자가 고비의 소리를 들으면 장수의 신하를 생각한다.[君子聽鼓鼙之聲, 則思將帥之臣.]"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죽어서 가죽에 쌓여도 '과혁(裹革)'은 가죽에 싼다는 뜻으로, 전장에서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뒤 말가죽에 싸여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사나이라면 마땅히 전쟁터에서 죽어 말가죽에 시체를 싸서 돌아와 묻혀야 하니, 어찌 아녀자의 손에 죽을소냐.[男兒當以馬革裹尸還葬, 安可死於兒女手乎?]"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유월장……것 유월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주(周)나라 선왕(宣王)의 북벌을 찬미하였다. 동이의……굳건하네 병의 물을 집 위에서 쏟듯이 형세가 강하다는 비유한다. 악야 《치평요람》 〈송 고종〉에 홍호(洪皓)가 금나라에 있을 때 납서(蠟書)를 보내어 아뢰기를, "금나라 사람들이 두려워서 복종한 자는 오직 악비뿐이었고, 심지어 악야(岳爺)라고 불렀습니다. 그 뒤에 악비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여러 추장들이 술을 마시며 서로 경하하였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유준(李有駿)의 《몽유연행록(夢遊燕行錄)》에서 "북방의 풍속은 존귀한 자를 칭하여 '대인(大人)'이라 하고, 그 다음을 '노야(老爺)'라고 한다. 예컨대 금(金)나라 사람들이 '악야(岳爺)'나 '종야(宗爺)'라고 칭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베틀을……깊어졌어라 어떤 사람이 증자의 어머니에게 와서 "증삼(曾參)이 사람을 죽였다."라고 말하자, 증자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하고 태연히 베를 짰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해도 믿지 않았으나, 다시 다른 사람이 와서 똑같은 말을 하자 증자의 어머니가 북[杼]을 던지고 담을 넘어 달아났다고 한다. 즉 아무리 믿는 사람이라도 참소하는 말이 반복되면 의심하게 된다는 뜻의 고사이다. 《全國策 秦》 척적 군령(軍令)을 기록하는 문서로 병적(兵籍)을 가리킨다. 한 자[尺] 정도의 판(板)에 적었으므로 척적이라 하였다. 임금의 총명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순 임금을 칭송하면서 "사방의 문을 여시고, 사방으로 눈을 밝히시고, 사방으로부터 잘 들리도록 하셨다.[闢四門 明四目 達四聰]"라고 하였다. 속이지……섬기니 임금에게 진실을 가지고 직간한다는 뜻.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 자로가 임금을 섬기는 것을 묻자, 공자가 "속이지 말고 범하여야 된다.[子曰: 勿欺也而犯之.]" 하였다. 종족을 이삼하는 형벌 죄를 범한 본인과 함께 삼족을 멸하는 형벌. 삼족은 친계(親系)ㆍ모계(母系)ㆍ처계(妻系)이다. 정군이……가로막고 《시경》 〈정풍(鄭風) 청인(淸人)〉에 "청읍 사람이 축 땅에 있으니, 네 마리 갑옷 입힌 말이 유유자적하도다. 왼쪽 사람은 수레를 돌리고 오른쪽 사람은 칼을 뽑거늘, 중군은 아름답게 있도다.[淸人在軸 四介陶陶 左旋右抽 中軍作好]"라고 한 구절을 인용하였다. 이 편은 춘추(春秋) 시대 정 문공(鄭文公)이 신하인 고극(高克)을 미워한 나머지 그를 장수로 임명하여 군사를 주어 하수(河水) 위에 가서 적(賊)을 방어하라고 내친 뒤, 종시 그를 불러들이지 않으므로, 그에 따른 군사들이 오랜 세월에 지쳐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것을 읊은 시이다. 좌임 오랑캐의 풍속을 가리킨다.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 있는 "관중(管仲)이 없었으면 내가 오랑캐처럼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었을[左袵] 것이다."고 하였다. 어진이가……말 《시경》 〈첨앙(瞻卬)〉에서 "현인이 죽으니, 나라가 병들었네.[人之云亡 邦國殄瘁]"라고 하였다. 십대는 용서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1년조를 보면,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기해(祁奚)가 선자(宣子)를 만나 숙향(叔向)의 공과(功過)를 논하면서 "오히려 10대의 자손이라도 용서해 줄 수 있다.[猶將十世宥之]"라고 하였다. 다섯 길의 요성 《천동상위고(天東象緯考)》에서 요성은 길이가 길면 재앙도 크고 오래간다고 하였는데, 다섯 길의 요성은 재앙이 5년은 간다고 하였다. 사람을……섬깁니다 《서경(書經)》 〈주관(周官)〉의 주(註)에 "대신은 인재를 발탁하여 임금을 섬긴다.[大臣以人事君]"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저본에는 '犬羊'으로 되어 있으나, 고전번역원DB에는 '大義'로 되어 있는데, 후자가 내용상 옳기에 이에 의거하여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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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에서 올린 팔준도에 대한 전문 集賢殿進八駿圖箋 하늘에 비룡이 있으니성조가 국운을 연 것을 우러르네.응당 팔준마를 그려신물이 충성 바친 것을 생각하여야 하네.감히 새 그림을 그려전하께서 보게 하누나.삼가 생각건대, 천록(天祿)이 여말에 떠나하늘이 성인을 태어나게 하였네.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니참된 군주를 오랫동안 기다렸는데집안을 나라로 만들어마침내 큰 공훈 있는 이들을 모았네.이에 예지로 임하였으며또한 사람과 사물들의 도움에 힘입었어라.어찌 다만 용의 비늘 잡고 봉황 날개에 붙은61) 선비만앞 다퉈 전쟁터에서 공을 세웠으랴.귀한 것은 귀신처럼 내달리며 번개처럼 빠르던 말도능히 사슴을 좇는 위업을 도운 것이지.62)크고 작은 수백 번의 전투에서천만의 중군 사이로 드나들면서험지를 평지처럼 내달리니어찌 번거롭게 조보63)가 말을 몰게 하리오.오직 마음먹은 대로 향하니왕량64)이 채찍 잡을 수고가 필요 없어라.이는 사람과 한 마음이 되어서니그러므로 세 번 이기는65) 공을 거두었네.금옥의 체구는위태로운 길에서 만전을 보장하였고봉의 가슴과 용의 갈기는어찌 평범한 말과 함께 죽어 썩어가겠는가.다만 당대에 훌륭함을 칭송하였을 뿐 아니라후대에도 밝게 드러내 보여야 하네.더구나 땅의 쓰임으로 가장 뛰어나며66)또한 하늘의 운수와 관련되어 나옴에랴.그렇다면 말 위에서 세운 공업으로한나라가 사백 년 전해진 것을 알 것이니마굿간에서 비범하여67)능연각의 스물여덟 장군과 나란한 것이 마땅하도다.아름다워라, 세상에 드러낸 행위여이 계술의 나라에서 행해야 하네.이를 늦출 수 있는가대개 기다려 때가 되었어라.삼가 생각건대, 몸소 크나큰 명에 응하여커다란 계책 이룰 것을 생각하였네.가득한 것을 들고 이룬 것을 지켜68)썩은 줄로 여섯 마리 말을 모는 듯하였네.69)공덕을 숭상하여죽은 뼈를 사면서 천금을 버렸어라.70)창업의 어려움을 깊이 생각하고훌륭한 근신(近臣)을 더욱 생각하네.드디어 기린마를 그리는 날에또한 개와 말에게 수레 덮개와 휘장으로 덮는 은혜를 미뤘어라.71)이에 유신에게 명하여그림을 그리게 하였네.삼가 생각건대 신은 활과 말 타는 솜씨가 부족하고몸은 문한의 관직에 있으니전장에서 말을 타고 내달릴 때비록 사람을 쏠 때 먼저 말을 쏘는 법72)엔 어두우나성열을 그려내면서살은 그리고 뼈는 그리지 않았다는 기롱은 면할 수 있어라.외람되건대 용광은그 준마의 덕에 걸맞으니그림은 비록 화가의 손을 빌리지만기리는 노래는 큰 공을 빠트리지 않으리.혹여 한가롭게 지내실 때때로 을람73)을 주십시오.복희가 괘를 그린 것74)과 많이 들어맞으리니길이 상서로운 세상의 보배가 될 것이어라.무제가 지은 노래75)에 보태어공적을 벌여놓은 뜻을 더욱 밝히누나. 在天飛龍仰聖祖之啓運應圖駿馬思神物之效勞敢作新圖庸徹睿鑑竊惟祿去麗季天生聖人濟世安民久有待於眞主化家爲國終能集乎大勳玆因睿智之有臨亦賴人物之恊力豈但攀鱗附翼之士爭輸汗馬之功所貴神行電邁之駒能贊逐鹿之業大小數百餘戰出入千萬中軍履險若平何煩造父之爲御惟意所向不勞王良之執鞭是與人爲一心故收功於三捷金軀玉體保萬全於危途鳳臆龍鬐豈同腐於凡馬不但稱美於當世可使昭示於來今矧惟地用之良亦關天數而出則知馬上功業爲漢家四百年之傳宜乎櫪下權奇與烟閣卄八將爲列猗歟顯揚之擧屬兹繼述之朝斯可緩乎蓋有待矣恭惟躬膺駿命思纂鴻圖持盈守成用朽索而馭六馬尙功崇德買死骨而捐千金深惟創始之艱益思股肱之美遂於麒麟圖畵之日亦推犬馬蓋帷之恩爰命儒臣俾擧繪事伏念臣手乏弓馬之技身忝文翰之官馳騁戰場縱昧射人先射馬之法鋪張聖烈庶免畵肉不畵骨之譏叨此龍光稱其驥德丹靑雖倩於畵手贊咏不遺於膚公倘在燕閒時賜乙覽數叶羲皇之畫卦永爲瑞世之珍光增武帝之作歌益昭序績之意 용의……붙은 영주(英主)를 섬겨 공명(功名)을 세우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한나라 양웅(揚雄)이 지은 《법언(法言)》 〈연건(淵騫)〉의 "용의 비늘을 그러잡고 봉의 날개에 달라붙는다.[攀龍鱗附鳳翼]"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사슴을 좇는 위업 사슴을 쫓는다[逐鹿]는 말은 제왕의 자리를 다툼을 말한다. 《사기(史記)》 〈회음후전(淮陰候傳)〉에서 "진(秦)나라가 그 사슴을 잃으니 천하가 다 함께 쫓는다."라고 하였다. 조보 조보는 주(周)나라 목왕(繆王) 때 사람으로 말을 잘 몰았다. 왕이 서쪽으로 가서 수렵에 빠져 돌아오길 잊었는데, 서언왕(徐偃王)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가 왕의 말을 몰아 하루에 천 리를 달려가 서언왕을 공격하여 대파시켰다. 그 공으로 조성(趙城)을 받았다고 한다. 《史記 卷43 趙世家》 왕량 《맹자》에 보이는 말을 잘 모는 인물이다. 세 번 이기는 삼첩(三捷)은 삼전삼첩(三戰三捷)의 준말로서 《송사(宋史)》 〈우고전(牛皐傳)〉에서 "우고가 극악한 적 양진(揚進)을 노산(魯山)에서 토벌하였는데 세 번 싸워 세 번 이기자 적당이 무너져 흩어졌다."라 하였다. 땅의……뛰어나며 《사기(史記)》 권30 〈평준서(平準書)〉에 "하늘에 쓰이는 것은 용만 한 것이 없고, 땅에 쓰이는 것은 말만 한 것이 없으며, 사람에게 쓰이는 것은 거북만 한 것이 없다.[天用莫如龍 地用莫如馬 人用莫如龜]"라고 하였다. 비범하여 '권기(權奇)'는 훌륭한 말이 잘 달림을 형용한 말이다. 《한서》 권22 〈예악지(禮樂志) 천마가(天馬歌)〉에, "뜻이 호방하고 정신이 권기하다.[志俶儻精權奇]" 하였다. 가득한……지켜 《시경》 〈대아(大雅) 부예((鳧鷖)〉의 서(序)에서 "〈부예편〉은 이룬 것을 지킨 것을 말하고 있다. 태평한 군자가 능히 가득찬 것을 간직하고 이룬 것을 지킴으로써 천지신명과 조고의 영령이 그것을 안락하게 여기는 것이다.[鳧鷖 守成也 太平之君子 能持盈守成 神祇祖考安樂之也]"라고 하였다. 썩은……듯하였네 《서경》 〈오자지가(五子之歌)〉에 "내가 억조의 백성 위에 임하는 것이 마치 썩은 새끼줄로 여섯 마리의 말을 모는 것처럼 조심스럽기만 하니, 백성의 윗사람이 된 자로서 어떻게 공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予臨兆民 凜乎若朽索之馭六馬 爲人上者 奈何不敬]"라는 말이 나온다. 죽은……버렸어라 인재를 불러 모은 것을 이른다. 전국 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에게 곽외(郭隗)가 "죽은 말 한 마리의 뼈를 500금(金)에 사들였더니, 1년도 채 안 되어서 살아 있는 천리마 세 마리가 찾아왔다."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자기부터 우선 대우를 잘해 주면 천하의 현사들이 저절로 모여들 것이라고 말하자, 소왕이 연경(燕京)에 황금대를 세우고 인재를 초빙하니, 악의(樂毅)와 극신(劇辛) 등의 명사가 대거 찾아왔다는 고사가 전한다. 《戰國策 燕策》 개와……미뤘어라 견마(犬馬)도 사람에게 공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자가 옛말을 인용하여 " '해진 휘장[敝帷]'을 버리지 않는 것은 말[馬]을 묻기 위함이요, '해진 수레 덮개[敝蓋]'를 버리지 않는 것은 개[犬]를 묻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 데서 온 말로, 은혜가 하찮은 미물에까지 미침을 뜻한다. 《禮記 檀弓下》 사람을……법 두보의 〈전출새(前出塞)〉에서 "사람을 쏘려면 먼저 말을 쏘고, 적병을 사로잡으려면 먼저 임금을 사로잡는다.[射人先射馬, 擒賊必擒王.]"라고 하였다. 을람 제왕이 을야(乙夜, 22시 전후)에 하는 독서를 가리킨다. 당(唐)나라 문종황제(文宗皇帝)가 "만약 갑야(甲夜)에 정사를 살피지 않고, 을야(乙夜)에 책을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제대로 된 임금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杜陽雜編 卷中》 복희가……들어맞으리니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등에 하도를 지고 나왔다고 한다. 이것이 복희씨에 의해 《주역》 팔괘(八卦)의 근원이 되었다. 무제가 지은 노래 《한서》 권6 〈무제기(武帝紀)〉에 "태초(太初) 4년에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가 대완왕(大宛王)의 머리를 베고 한혈마를 획득하여 돌아오니, 〈서극천마가(西極天馬歌)〉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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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로 부임하는 농포에게 주어 작별하다 체소 이춘영 贈別農圃赴吉州【體素 李春英】 젊은 나이에 위엄과 명성 독차지하고가을바람에 고삐 잡고 옛 성황을 가네장백산에 이어진 오랑캐 산 보이는데거친 땅44)으로 흐르는 농수45)에 상심하네훗날 운대에서 공신 화상 그릴 때역사에 몇 사람이나 향기로운 이름 남길까늠름하게 떠나가는 저 진정한 대장부여갈림길에서 부질없이 슬퍼하지 마시오 早歲威名獨取將秋風按轡舊城隍胡山入眼橫長白隴水傷心下大荒異日雲臺圖畫出幾人靑史姓名香玆行落落眞男子不用臨岐枉斷腸 거친 땅 원문의 '대황(大荒)'은 특히 국경 밖 타국의 황량한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농수(隴水) 농수는 섬서성(陝西省) 농현(隴縣)의 서북쪽에 있는 농산(隴山)에서 발원하는 물이다. 이 지역은 중국 서쪽 변경의 요해처이기에 흔히 변경 지방에 있는 물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옛날에 행역(行役) 나간 사람들이 이 산에 올라 고향을 생각하며 슬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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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46)에서 농포의 시에 차운하다 모두 6수인데 다 기록하지 못했다. 석담 이윤우 在輸城次農圃韻【合六首而未盡記. 石潭 李潤雨】 문무의 재능 모두 갖춘 장상의 자질로이곳 변방에서 이십 년을 헛되이 보냈네마침 지금 성상께서 애타게 어진이 구하니대궐의 뜰에 오르는 모습 보게 되리라­《석담집(石潭集)》에 "자허 영공(子虛令公 정문부)이 관북에 들어간 지 지금까지 20년이 넘었다."라고 하기에 이른 것이다.­ 文武俱全將相姿卄年虛負此邊陲祗今聖上求如渴佇見飛騰上玉墀【《石潭集》曰"子虛令公入關塞, 今踰二十年"故云。】 수성(輸城) 함경북도 청진시(淸津市) 수성동(壽城洞)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역참이다. 석담 이윤우는 1612년 4월에 수성 찰방(輸城察訪)에 제수되었다. 《石潭集 年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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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孟子 호연(浩然)한 기운261) 가을 하늘과 닮았으니추(鄒)나라에서 아성(亞聖)의 자태 지닌 분 나왔다네262)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학설 힘껏 배척하고263)문왕(文王)과 무왕(武王), 요순(堯舜)의 다스림을 회복하는 데 뜻을 두었네제 선왕(齊宣王)과 양 혜왕(梁惠王)은 맹자의 말을 써 주지 않았고264)안평중(安平仲)과 관이오(管夷吾)가 한 일 하지 않기로 맹세했네265)인욕(人欲)이 이미 다함에 천리(天理)가 바루어지니지금까지 이어지는 공덕 후세 사람들이 알고 있네 浩然之氣秋天像孕出鄒邦亞聖姿力排楊朱墨翟徒志復文武唐虞治齊宣梁惠言無用平仲夷吾矢不爲人欲已消天理正至今功德後人知 호연(浩然)한 기운 천지(天地) 사이에 성대히 유행(流行)하는 정기(正氣)를 말한다. 맹자가 자신의 부동심(不動心)을 말하면서 "나는 말을 알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라 하니, 공손추(公孫丑)가 "감히 묻겠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 하는 것입니까?[敢問 何謂浩然之氣]"라고 물었다. 이에 맹자가 이르기를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그 기운 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곧음으로 길러서 해치지 않으면 천지 사이에 꽉 차게 되느니라.[難言也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乎天地之間]"라 한 데서 나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上》 추(鄒)나라에서……나왔다네 맹자는 전국 시대 추(鄒)나라 출신이며, '아성(亞聖)'은 '다음가는 성인'이라는 뜻으로 맹자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양주(楊朱)와……배척하고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은 전국 시대의 학자들로 각각 위아설(爲我說)과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는데, 맹자는 이들의 설을 극력 비판하였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양주는 자신만을 위하니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요, 묵적은 똑같이 사랑하니 이는 아비를 무시하는 것이다. 아비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면 이는 금수이다.……양주와 묵적의 도가 종식되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부정한 학설이 백성을 속여 인의(仁義)를 꽉 막는 것[楊氏爲我 是無君也 墨氏兼愛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也……楊墨之道不息 孔子之道不著 是邪說誣民充塞仁義也]"라 한 대목이 보인다. 제 선왕(齊宣王)과……않았고 제 선왕(齊宣王)과 양 혜왕(梁惠王)은 전국 시대의 제후다. 맹자는 이들의 초빙을 받아 왕도 정치를 실현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맹자집주(孟子集註)》 〈서설(序說)〉에, "도에 이미 통달한 뒤에 제나라에 가서 선왕을 섬겼으나 선왕이 쓰지 못하였고, 양나라에 갔으나 양 혜왕도 말한 바를 행하지 못하였으니, 오활하여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여김을 받은 것이다.[道旣通 游事齊宣王 宣王不能用 適梁 梁惠王不果所言 則見以爲迂遠而濶於事情]"라 한 대목이 보인다. 안평중(安平仲)과……맹세했네 '안평중(安平仲)'은 춘추 시대 제 경공(齊景公) 때의 재상 안영(晏嬰)이고, '관이오(管夷吾)'는 제 환공(齊桓公) 때의 재상 관중(管仲)으로, 모두 제후의 패업(霸業)을 도운 인물들이다. 맹자는 이들과 달리 왕도(王道)를 추구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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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린 뒤 雨後 안개비 내리는 쓸쓸한 마을 대나무 사립을 여니무성한 늙은 나무 울타리 주위를 감쌌네새 처마 속에서 지저귀고 이웃 노인 지나가며닭 정원 옆에서 울고 들판의 객 돌아가네바람이 구름 끝으로 들어가니 호연(浩然)한 기운 불어오고구름이 산봉우리에 거두어지니 희미한 빛 비치네한가한 중에 다만 뽕나무와 삼 자라남을 기뻐하니거리 밖에서 어찌 굳이 시비(是非)를 물으리오 烟雨荒村開竹扉陰陰老木護籬圍鳥呼簷裏隣翁過鷄唱園邊野客歸風入雲端吹浩氣雲收山角映暉微閒中只喜桑麻長巷外何須問是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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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렬사 병서 약천 남구만 彰烈祠【幷序 藥泉 南九萬】 경성부(鏡城府)에서 남쪽으로 1백 리에 어란리(禦亂里)가 있는데, 혹은 어랑리(漁郞里)라고도 한다. 마을에 팔경대(八景臺)가 있고 팔경대 남쪽으로 10리쯤에 무계호(茂溪湖)가 있으니, 바로 임진왜란 때 의사 이붕수(李鵬壽)가 평사 정문부(鄭文孚)를 맞이하여 의병을 일으킨 곳이다. 금상 을사년(1665, 현종6)에 평사(評事) 이단하(李端夏)가 앞장서 발의하여 무계호 가에 사당을 세워 정공을 제향하고, 함께 맹약한 이붕수 등을 배향하였으며, 또 그 옆에 촉룡서당(燭龍書堂)을 세워 유생들이 학업을 닦는 장소로 삼았다. 사당은 서쪽 봉우리 아래 높은 언덕에 있고, 앞에 작은 산이 있는데 마치 초승달이 뜬 것처럼 가로질렀고, 반쯤은 호수에 잠겼으며 푸른 산에는 초목이 울창하였다. 사면의 산들은 마치 채색 병풍이 두른 것처럼 깎아질러 서 있고 그 가운데는 편평하고 둥글게 호수를 이루어 너비가 9리쯤 된다. 연잎과 마름은 씻은 듯이 맑고 푸르며 온화하고 청려(淸麗)하여 거의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북도의 산천은 대체로 험준하여 훤히 터져 활달한 장관은 원래 쉽게 볼 수 있지만, 이곳처럼 산이 감싸고 물이 돌아 그윽하고 고요한 곳은 없다. 이는 아마도 하늘이 또한 정공의 충렬(忠烈)을 드러내려고 특별히 변방 지역에 별천지를 설치해서 그 영령을 편안히 하려는 것인 듯하다.정공의 사당 곁에 자리한 무계호에푸른 산이 호숫가에 우뚝 서있네잔잔한 구리의 호수에 잔물결 멈추고사방 겹겹의 산봉우리 병풍처럼 둘렀네당신은 변란 당하여 충절 드러내어궁벽한 변방 땅에 별천지 만들었네다시금 촉룡 서당의 기문 읽고서멀리 두 이공77) 생각에 경도를 바라보네 鏡城府南一百里, 有禦亂里, 或稱漁郞里。里有八景臺。臺南十里許, 有茂溪湖, 乃壬辰倭亂時, 義士李鵬壽邀鄭評事文孚, 起兵處也。今上乙巳, 評事李端夏倡議, 立祠于湖上, 享鄭公而以同盟人鵬壽等配之, 又作燭龍書堂于其側, 以爲儒生居業之所。祠在西峯下高阜, 而前有小山, 橫抹如新月之吐, 半浸湖水, 蒼翠蔚然。四面諸山削立如彩屛之圍, 而其中平圓成湖, 縱廣九里。芰荷、菱芡, 綠淨如拭, 蘊藉淸麗, 殆不可名言。北地山川, 大抵麤壯軒豁之觀, 則固可易得, 而山彎水環, 未有如此地之幽靜1)1) 靜 : 대본에는 '靚'으로 되어 있는데, 《약천집(藥泉集)》 권28 〈북관십경도기(北關十景圖記)〉에 근거하여 고쳤다.者, 豈天亦欲彰鄭公之忠烈, 特設別區於荒裔之域, 以妥其靈也耶!鄭公祠傍茂溪湖湖上靑峯一抹孤九里湖平纖纊息四圍巒疊畵屛紆人當板蕩彰忠節地到窮荒創別區更讀燭龍書室記遙思二李望京都 두 이공 이붕수(李鵬壽)와 이단하(李端夏)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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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83)에서 크게 이긴 것에 대한 노래 이계 홍양호 臨溟大捷歌【耳溪 洪良浩】 평사 정문부는 비범한 남자로당신 아니면 북도 백성 모두 왜놈 되었네이때 큰 고래84) 치솟는 불처럼 성난 지느러미 번득이니창해는 들끓고 동녘 하늘 붉게 물들었네삼경85)은 불타오르고 팔도는 붕괴되어임금님 멀고 먼 압록강에까지 떠나셨네가장 교활하고 두려운 우두머리 가등청정많은 군사 횡행하다 마침내 북쪽 향하네서릿발 같은 도검 혜성의 불꽃 같고우레 같은 매서운 탄환 사람의 골수 꿰뚫네장군의 대장기 철령에서 꺾였으니86)썰물처럼 밀린 삼군 감히 화살 한 발 쏘지 못했네왜구의 말과 옷87) 북녘들에 가득하고왕업 일어난 마을88)에 비린내 처참하네험준한 마천령을 팔 흔들며 지나가는데구진89)의 여러 군 멀리서 위세 보고 무릎 꿇네사나운 종 배반한 아전 다투어 항복하고곳곳마다 성 뒤집혀 고을 수령 가두었네두 왕자와 대신도 결박당했으니90)나라가 너를 어떻게 저버렸기에 잔인한가천 리 기봉91) 오랑캐가 되었으니관북에 일찍이 의사 한 명 없었겠는가이때 막부92)에서 홀홀단신으로 빠져나와산길 타고 풀숲에 숨으니 모습 초라했네갈림길에서 방황하니 누구와 함께 돌아갈꼬동지 최배천 강문우 이붕수 우연히 만났네눈물 떨구고 피 마시며 우러러 하늘에 맹세하니백 명 의병들 소매 걷어붙이고 일어섰네치마 찢어 깃발 만들고 호미로 병기 삼아백면서생 출신 장군 한 자 채찍 잡았네북 울리고 서서히 행군해 경성 들어가니환영하는 남녀 목숨 살려줄 영웅 기다렸네높이 치솟은 남쪽 누대에 대장 깃발 세우고국세필 역적 놈 목 베어 저자에 매달았네하루아침에 북로를 뒤흔드는 군의 성세배반한 적들 차례대로 사로잡아 죽였네변방 오랑캐 틈 엿봐 잠깐 난동 부려도짐승의 뿔 부러지듯93) 모두 순종하였네왜구들 소문 듣고 군사 거두어 도래하여개미 달라붙듯 육박하여 성가퀴 올랐네성 위에서 북 울리자 화살이 빗발치니해자에 가득 찬 시체에 발 돌릴 틈 없네관군이 패주한 적 추격해 길주 이르니세 번 싸워 세 번 패하여 다 흩어졌네장평94)에서 쌍포95)까지 수백 리 길에창 던지고 징 버려 얼마나 널브러졌나담력 잃은 교만한 왜구 흐느적거리고위축된 모습 토굴 속에 똬리 튼 뱀 같네단천의 대규모 병력 찾아와 맞이해한밤중 재갈 물고 남쪽으로 이동하려는데비산에 복병 심어서 퇴로를 끊어놓고앞에서는 뿔을 뒤에서는 다리를 잡았네96)백탑 언덕과 임명 들판에서 전투 벌여범과 무소 같은 건아의 용맹 자랑하네우왕좌왕 쥐 숨고 토끼 달아나듯이이따금 골통 갈라지고 팔 부러졌네늘어진 머리 맨발의 왜구 경관97)으로 되고긴 끈으로 차곡차곡 왼쪽 귀 꿰었네배 가르고 창자 빼내 탑처럼 세우니못된 놈들 놀라 돌아보니 어찌 접근하랴왜구 우두머리 통곡하며 철령 넘어갈 때머리는 붙어있으나 넋은 이미 나갔네흰 느릅 사당98)에 비로소 전운 걷히니피 묻은 칼 푸른 바닷물로 깨끗이 씻었네북방에 이십삼 개 고을이 있는데한 치 땅까지 모두 우리 땅 되찾았네가련하다 위풍당당하던 세 장사여공 세우자 말 앞에 떨어져 전사했네99)멀리 장계100) 띄워 행조에 아뢰었으니임금 표정 슬프면서도 기뻐하였네총애 받아 새서101)로 관질 올려주고여러 차례 옷과 신 내려주셨네군대 장악한 번신 자신만 지키니임금님 몽진 남일 보듯 하였네어째서 공 없는 자신 부끄러워 남의 공 있음 질시하여하찮은 실수로 죄에 빠뜨려 도리어 훌륭한 공적 덮었는가102)백 년의 공론 끝에 마침내 신원되니보낸 뇌문103) 찬란해 온 나라가 제향하네무계의 호숫가에 자리한 어랑리산천은 울창하고 옛 보루에 둘러있네옛적에 김종서와 윤관이 강토 개척해국위와 병력은 두 장군에게 의지했네공은 변란 만나 맨주먹으로 떨쳐 일어나우뚝 거센 물결 버틴 지주산104) 같았네그렇지 않았다면 두만강 이내 우리 국토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상국의 잠식 여기서부터 시작되었겠지공처럼 수립한 공훈 더욱 탁월하니천 년 전 수양105)과 함께 견줄 만하네생전의 불우와 죽을 때의 억울함 모두 한하지 마소서드높은 명성은 백두산과 나란히 높이 솟았네내가 전장터를 지나다 감개 일어나검 두드리며 길게 노래하니 변치106) 되었네검 두드리며 노래 소리 격렬해지고윙윙 부는 변방 바람소리 그치지 않네 鄭評事奇男子微爾盡黔北人齒時有長鯨怒鬣閃㸌若火熾滄海爲沸東天紫三京焚燒八路崩翠華遙遙鴨水沚其酋淸正最黠驚萬隊橫行遂北指快劒如霜彗日芒毒丸如雷洞人髓元戎旆折鐵嶺上三軍潮退未敢發一矢鳥言卉服滿朔野腥氛慘憺興王里磨天重險掉臂過九鎭諸郡望風跪桀奴叛吏爭倒戈處處翻城囚長吏王子大臣亦受縛國何汝負乃忍爾箕封千里爲戎矣關北曾無一義士維時蓮幕隻身跳山行草伏形容毁彷徨歧路誰與歸邂逅同志崔姜李揮涕飮血仰天誓一百義旅投袂起裂裳爲旂鋤爲兵白面將軍杖尺箠鳴皷徐行入鏡城士女歡迎惟命俟南樓嶪嶪建牙纛磔斮鞠豎懸街市軍聲一朝震北路叛賊次第束身死蕃胡伺釁乍蠢動若崩厥角咸率俾蠻兒聞之卷甲來肉薄登陴如附蟻城上一鼓箭如雨僵尸盈壕不旋趾官軍追奔至吉州三戰三北皆離披長坪雙浦數百里投戈棄鉦何累累驕虜膽破若無骨蝸縮蛇蟠土窟裏端川大兵自來迎半夜銜枚將南徙萆山偃旗截歸路前有角兮後有掎白塔之原臨溟野健兒賈勇如虎兕紛紛鼠竄與兎脫往往裂腦而折臂髧頭裸足化京觀長繩簇簇貫左耳刳肚擢腸立如堠醜類狂顧那嚮邇倭酋大哭走踰嶺頭雖戴矣魄已褫陣雲初霽白楡社血刃淨洗靑海水朔方二十有三州寸地皆還我疆理可憐堂堂三壯士功成身殞馬前墜蠟紙遙飛奏行在至尊動容悲且喜壐書寵嘉進官秩賜賚便蕃及衣履藩臣擁兵但自衛君父蒙塵越人視奈何恥己無功嫌人有媒孽其短反揜美公議百年竟得伸贈誄輝煌邦人祀武溪之上漁郞里山川欝欝環古壘昔日金尹拓疆土國威兵力是憑倚公遭板蕩奮空拳屹若狂瀾障一砥不然不惟豆江以內非吾有荐食上國從此始如公樹立更卓然千載睢陽可幷擬生前落拓死時煩寃俱莫恨巍巍名與白山齊高峙我過戰地起感慨彈劒長歌爲變徵彈劒歌聲激烈邊風獵獵鳴不已 임명(臨溟) 《이계집(耳溪集)》 권5 〈임명대첩가(臨溟大捷歌)〉에 "임명역(臨溟驛)은 성진(城津)과 길주(吉州) 사이에 있는데, 정 평사(鄭評事) 문부(文孚)가 임진년에 이곳에서 왜적을 크게 깨뜨렸고 승전비(勝戰碑)가 있다."라고 하였다. 큰 고래 큰 도적으로 왜적을 말한다. 삼경(三京) 시대에 따라 가리키는 지역이 다소 차이가 있다. 여기서는 서울, 평양, 개성을 말한다. 장군의……꺾였으니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말하기를, "1592년 6월에 왜장 청정이 멀리서 적을 몰아 북방을 노략질하였는데, 병마사 한극함이 마천령을 지켜 관북을 보전하고자 하였으나 군사가 궤멸하여 달아났다." 하였다. 《農圃集 記壬辰擧義事》 왜구의 말과 옷 조언(鳥言)은 새소리라는 뜻으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다. 옛날에 사방 오랑캐와 외국의 말을 가리켰다. 훼복(卉服)은 풀잎으로 짠 의복으로, 섬 오랑캐를 뜻한다. 왕업 일어난 마을 조선 태조의 고향이 함경남도 영흥(永興)이기 때문에 이처럼 말한 것이다. 구진(九鎭) 함경북도 국방의 요지에 둔 진으로, 경성(鏡城)·길주(吉州)·명천(明川)·회령(會寧)·무산(茂山)·종성(鍾城)·온성(穩城)·경원(慶源)·경흥(慶興)의 아홉 고을을 말한다. 이후 행정을 관할하는 고을이 되었다. 두……결박당했으니 1592년(선조25) 7월에 임해군과 순화군 및 그들을 수행한 김귀영, 황정욱 등이 가등청정에게 쫓겨 회령으로 들어갔는데, 회령의 국경인이 반란을 일으켜 이들을 붙잡아 왜적에게 넘기고 항복한 일을 말한다. 《農圃集 年譜》 기봉(箕封) 조선을 말한다. 주 무왕(周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했다는 말에서 나왔다. 연막(蓮幕) 막부(幕府)를 뜻한다. 남제(南齊) 때 왕검(王儉)의 막부를 연화지(蓮花池)라고 일컬은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南史 卷49 庾杲之傳》 짐승 뿔 무너지듯 짐승이 그 뿔이 무너지듯이 한다는 뜻으로, 어떤 위세나 힘에 눌리어 기를 펴지 못하고 두려워 쩔쩔매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 에 "마치 짐승이 그 뿔이 무너지듯이 머리를 조아렸다.[若崩厥角稽首]"라고 한 말이 나온다. 장평(長坪) 경성(鏡城)의 두만강 가에 있는 지명이다. 쌍포(雙浦) 길주(吉州)의 임명역(臨溟驛) 근방에 있는 냇물 이름이다. 앞에서는……잡았네 기각지세(掎角之勢)로, 사슴을 잡을 때 한 사람은 뒤에서 다리를, 한 사람은 앞에서 뿔을 잡는 것을 말한다. 인신(引伸)하여 전쟁할 때 양쪽으로 포진하여 적을 협공(挾攻)하거나 앞뒤에서 견제하는 형세를 말한다. 경관(京觀) 무공을 과시하기 위해 적의 시체를 쌓아 만든 큰 무덤을 말한다. 경구(京丘)라고도 한다. 흰 느릅 사당 분유사(枌楡社)의 약칭으로,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고향인 풍읍(豐邑)에 느릅나무를 심어 토지의 신(神)으로 삼은 데서 유래하였다. 이후로 제왕(帝王)의 고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조선 태조의 고향이 함경남도 영흥(永興)이기에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가련하다……전사했네 《농포집》 권5 〈임명대첩비명(臨溟大捷碑銘) 병서(幷序)〉에는 이 전쟁에서 이붕수(李鵬壽)·허대성(許大成)·이희당(李希唐)이 전사했다고 나온다. 납지(蠟紙) 밀랍(蜜蠟)을 표면에 바른 종이를 말한다. 여기서는 장계(狀啓)를 말한다. 새서(璽書) 임금의 옥새를 찍은 친서(親書)를 말한다. 어째서……덮었는가 함경감사 윤탁연(尹卓然)은 정문부의 공이 자기보다 뛰어난 것을 시기하고, 북도의 호란을 자기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실정을 뒤집어 그의 공을 숨기고 거짓으로 행조(行朝)에 아뢰었다. 《農圃集 年譜》 뇌문(誄文)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거나 생전의 공덕을 칭송하며 조상(弔喪)하는 말이나 글을 말한다. 죽은 사람의 시호를 내릴 때 이 뇌문을 바탕으로 해서 지었다. 지주산(砥柱山) 중국 하남성(河南省) 삼문협(三門峽)의 지주산(砥柱山)을 말하는데, 이 산이 황하(黃河)의 급류(急流) 가운데 우뚝 버티고 서서 거센 물결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 여기서는 농포 정문부가 임진왜란 때 홀로 의병을 일으켜 관북 지역을 평정한 것을 말한다. 수양(睢陽) 당나라 현종(玄宗) 천보(天寶) 14년(755)에 안녹산(安祿山)이 어양(漁陽)에서 반란을 일으켜 장안을 향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려올 때, 장순(張巡)과 허원(許遠) 두 장수가 이들을 맞아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던 곳이다. 《舊唐書 卷187 忠義列傳下》 여기서는 장순과 허원을 가리킨다. 변치(變徵) 전국 시대 연(燕)나라 태자 단(丹)이 형가(荊軻)를 극진히 대접하여 진왕을 암살하게 하였다. 《전국책(戰國策)》 〈연삼(燕三)〉에 "태자와 그 일을 알고 있는 빈객들은 모두 흰 의관 차림으로 형가를 전송하여 역수가에 이르렀다. 형가는 고점리(高漸離)가 치는 축(筑)에 맞추어 노래하고 있었는데, 변치(變徵) 소리로 불렀다. 인사들 모두가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 노래하기를 '바람 소소히 부는데 역수는 차갑고, 장사가 한 번 떠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라.[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고 했다."라고 했다. 여기서는 비분강개한 노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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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언절구 五言絶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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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랑 자정 임탁1)의 새집에서 쓰다 題林滄浪子定㤞新齋 강산이 자정을 낳고 江山生子定자정은 매화를 낳았네 子定生梅花상생2)하되 상극3)하지 않으니 相生不相克화한 기운이 절로 한 집을 이루었네 和氣自成家 江山生子定, 子定生梅花.相生不相克, 和氣自成家. 창랑 자정 임탁 1565~1610. 자정은 임탁의 자이며 호는 해옹(海翁)·죽오당(竹梧堂)·창랑이다. 임제(林悌)의 막내 동생으로, 나주 회진에 죽오당과 창랑정을 짓고 은거하였다. 권필(權韠)·허균(許筠)·조찬한(趙纘韓)·조위한(趙緯韓)·양경우(梁慶遇) 등과 교유했으나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상생 오행(五行)의 운행에 있어서 목(木)이 화(火)를 낳고, 화가 토(土)를, 토가 금(金)을, 금이 수(水)를, 수가 다시 목을 낳는다는 설로 각각 서로 다른 것을 낳는 일을 말한다. 상극 오행의 운행에 있어서 토(土)가 수(水)를 이기고, 수가 화(火)를, 화가 금(金)을, 금이 목(木)을, 목이 토를 이긴다는 설로 각가 서로 다른 것을 이기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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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장령(洪掌令)276)【종운(鍾韻)】에 대한 만사 挽洪掌令【鍾韻】 젊은 나이에 칼집277) 차고 준마에 올라타니임금을 곁에서 모신 은혜와 영광 봉지(鳳池)에 가까웠네278)세 부(府)에 수령으로 간 것은 어버이를 받들어 모시는 날이요279)양대(兩臺)에서 단정한 홀(笏) 찬 것은 바른 말을 하는 때였네280)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 바칠 것이라고 사람들이 한창 기대하였는데효성에 지나쳐 생을 마칠 줄 내 어찌 알았으리오머리 돌려 40년 속세의 일 바라보니붉은 섬돌281)에 남은 묵은 자취 탄식할 만하네 妙年龍匣駕雲螭鷄舌恩榮近鳳池三府分銅甘旨日兩臺端笏正辭時輸忠許國人方企感孝終身我豈知回首四旬塵世事可嗟陳迹在丹墀 홍 장령(洪掌令) 홍종운(洪鍾韻, 1613~1658)을 가리킨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화백(和伯)이다. 1639년 과거에 급제하여 고산 현감(高山縣監), 정언 등을 역임하고, 1654년 장령에 임명되었다. 칼집 원문은 '용갑(龍匣)'으로, 보검의 칼집을 말한다. 진(晉)나라 뇌환(雷煥)이 용천(龍泉)과 태아(太阿) 두 보검을 얻어 그중 하나를 장화(張華)에게 주었는데, 후에 장화가 주살(誅殺)당하자 그 칼의 소재를 잃었다. 뇌환이 죽고 그의 아들이 보검을 가지고 연평진(延平津)을 건널 때 갑자기 보검이 허리에서 빠져나가 물속으로 떨어졌다. 사람을 시켜 물속으로 들어가 보검을 건지도록 하였는데, 칼은 보이지 않고 몇 발이나 되는 용 두 마리가 서리어 있었다고 한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임금을……가까웠네 홍종운이 시종신(侍從臣)의 직임을 맡았음을 말한 것이다. 원문의 '계설(鷄舌)'은 향(香)의 일종으로, 한(漢)나라 때 시종신인 상서랑(尙書郞)이 임금에게 일을 아뢰거나 대답할 때는 반드시 이 향을 입에 머금어 구취(口臭)를 제거했다고 한다. 《通典 職官》 또한 '봉지(鳳池)'는 당(唐)나라의 중서성(中書省)에 있던 봉황지(鳳凰池)로 흔히 중서성의 별칭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임금의 주변'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세……날이요 홍종운이 부모 봉양의 편의를 위해 지방 수령을 세 차례 역임하였음을 말하는 듯하다. 원문의 '분동(分銅)'은 '동호부(銅虎符)를 나눈다.'는 말이다. 동호부는 한(漢)나라 때 구리로 만든 범 모양의 병부로 반쪽은 조정에 두고 나머지 반쪽은 지방관에게 주어 군사를 출동시키는 데 쓰게 하였는데, 후대에는 지방 수령의 관인(官印)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또 원문의 '감지(甘旨)'는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함을 말한다.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날이 샐 무렵에 아침 문안을 드릴 것이요, 감미롭고 맛 좋은 음식을 올려서 효심을 표시할 것이다.[昧爽而朝 慈以旨甘]"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양대(兩臺)에서……때였네 홍종운이 대간(臺諫)의 직임을 잘 수행하였음을 말한다. '양대(兩臺)'는 사헌부와 사간원을 아울러 칭하는 말로, 홍종운은 사간원 정언과 사헌부 장령을 역임하였다. 붉은 섬돌 원문은 '난지(丹墀)'다. 붉은 칠을 한 대궐의 섬돌로, 대궐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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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거지 閒居誌 시골 노인이 평소에 성질이 졸렬하고 어그러져 인간 세상에서 부앙(俯仰)할 수 없었다. 나이 40에 비로소 들판의 남쪽에 집을 지어 '남교(南郊)'라고 하고, 반무(半畝)의 채소밭을 일구어 스스로 만족하고 살면서 또 '노포(老圃)'라고 불렀다. 집 주변에 언덕이 있는데 모두 9개여서 혹자는 '구고주인(九臯主人)'이라고 불렀고, 집 뒤에 푸른 소나무를 손수 심어놓고 그 집을 '만취(晩翠)'라고 전각하였다. 작은 채는 직각으로 네모지고 겨우 무릎을 허용하였는데 그 벽에 '직재(直齋)'라고 써 놓았고, 이웃 학생이 두 개의 언덕에 서실을 지어놓고는 '양정(養正)'·'열락(悅樂)'이라고 하였다. 거처하는 곳에는 이름난 산과 아름다운 강이 없어서 바탕이 소박하기가 마치 그 사람과 같다고 하여 혹 '야옹(野翁)'이라고 칭하였다. 야옹은 일찍이 책보기를 좋아했는데 병치레가 잦아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없어서 서가에 수백 권을 꽂아두고 때때로 열람하여 단지 우리 마음의 기(氣)에 물을 대줄 뿐이었다. 나머지는 심사숙고의 뜻을 붙이지 않았는데 천연(天然)의 뜻에 병통이라고 여겼으니 대개 성품이 그러하였다.성품(性品)을 기르는 방법을 대충 깨닫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기가 거칠어서 정진(精進)할 수 없었고,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때때로 혹 참여하여 들었지만 나태하고 둔하여 실행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행동이 온통 어둡고 졸렬하여 사람들이 모두 그르다고 하고 단점으로 여겨도 효효(囂囂)34)하였으니 대개 그의 뜻이 너그럽고 느슨했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책상 정리를 하고는 묵연하게 정좌(靜坐)하여 마치 의도가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실제는 얻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침잠하여 시를 읊어 기(氣)를 펼치고 우주(宇宙)를 살펴보고는 운행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고, 고금(古今)을 통달하였어도 그 귀착점은 즐기는 것에 참여함이 없었다.봄에 채소가 채원에 가득하고 가을 곡식이 밭에 가득함에 이르러서는 혹은 대나무 지팡이와 짚신을 신고, 혹은 작은 아이와 파리한 말을 타고 풀잎에 이슬 맺힌 들녘 사이를 다니며 시를 읊으니 그의 즐거움은 농포(農圃)에 있는 것 같았다. 온화한 바람이 꽃을 재촉하고, 드러난 하늘에 달이 흘러가면 가야금 한 번 타고 술 한 잔 마셨는데 스스로 술을 따르고 스스로 가야금을 켜고 좌우에 관동(冠童)이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어서 그의 환락을 도우니 그의 즐거움은 가야금과 술에 있는 것 같았으며 혹은 맑은 강에 달이 뜨면 비록 멀더라도 반드시 가서 암학(巖壑)에서 느긋하게 소요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으니 아마도 산수를 즐기는 자가 아니겠는가? 그 사람의 즐거움은 저절로 그에 맞는 즐거움이 있으니 반드시 깊이 구별할 필요는 없다.그 마음에 대해서는 항상 그의 입으로 말하기를 "지극히 높은 것은 하늘이요, 지극히 넓은 것은 땅이지만 일원(一元)35)의 뒤에는 다 매몰되고 사라져서 그 자취 또한 청소해 버린 것처럼 될 것이니 하물며 우리 인간은 작기가 한 덩어리의 고깃덩어리라서 100년을 살지 못하고 흙과 함께 썩으니 어찌 스스로 있다·없다 할 것이 있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나에게는 또한 천지와 그 이치를 함께 하는 것이 있으니 밝고 밝은 마음의 사이에 붙어서 선을 기르고 확충해 간다면 천지만큼 높고 큼을 채워서 일원(一元)과 더불어 처음과 끝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려(思慮)가 여기에 이르면 저 뜬구름 같은 세상의 근심과 즐거움, 우연히 찾아오는[倘來]36) 비방이나 명예가 어찌 그의 즐거움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몇 가지 즐거움은 백 년의 한가로운 마음을 맡길 수 있을 것이고, 뒤에서 언급한 마음의 즐거움은 천지의 묘용(妙用)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모아서 정리하여 〈한거지(閑居誌)〉에 쓰지 않겠는가?을사년(1665, 현종6) 3월 10일 구고주인(九臯主人) 쓴다. 郊老平日。 性質拙訛。 不能俯仰於人間世。 其年四十。 始築室于郊之南。 仍號'南郊'。 半畝蔬園。 自足爲生。 又號'老圃'。 宅邊有臯凡九墩。 或稱'九臯主人'。 屋後手種蒼松。 篆其軒曰'晩翠'。 小室直而方。 僅取容膝。 題其壁曰'直齋'。 隣生葺書室于二臯。 曰'養正'曰'悅樂'。 所居無名山佳水。 質素如其人。 或稱曰'野翁'。 翁嘗好看書。 多病未能劇讀。 架有冊數百卷。 有時披閱。 只取有灌漑吾心氣而已。 餘不着意苦思。 以病其天然之志。 盖性然也。 養性之方。 非不粗覺而氣麤不能精進。 治心之法。 時或預聞而懦鈍不能力行。 是以行之多暗劣。 人皆非短之。 亦囂囂焉。 盖其志寬緩故也。 嘗淨掃庭室。 几案斯整。 默然靜坐。 若有所思。 而其實無味乎所得矣。 沉吟叙氣。 俛仰宇宙。 繹思運意。 通達古今。 而其歸無預於所樂矣。 至於春蔬滿圃。 秋糓盈疇。 或竹杖草屨。 或短童羸馬。 行吟於野田草露之間則其樂似在於農圃矣。 和風促花。 露天流月。 一琴一樽。 自酌自彈。 而左右冠童。 咏歌吟詩。 以助其歡則其樂似在於琴酒矣。 而或泛月淸江。 雖遠必臻。 優遊巖壑。 不憚其勞則無乃樂於山水者耶? 其人之樂。 自有其樂。 不必深辨。 其心常語其口曰: "至高者天。 至大者地。 而一元之後。 澌盡泯滅。 其迹如掃。 况吾人眇然一塊肉。 未及百年。 與塵土同朽者。 何足自以爲有無哉? 雖然在我者。 亦有與天地同其理者。 昭昭然寄寓於方寸之間。 善養而擴充之則可以塞天地之高大而與一元同終始矣。" 思慮之至此則彼浮世之憂樂。 倘來之毁譽。 豈足以動其樂哉? 然則前所稱數者之樂。 足以寄百年之閒情矣。 後所稱方寸之樂。 可以達天地之妙用矣。 合而收之。 書用誌哉? 乙巳暮春上浣。 九臯主人識。 효효(囂囂) 스스로 만족하여 욕심이 없는 모양을 말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어떻게 해야 효효할 수 있느냐는 송구천(宋句踐)의 질문에 맹자께서 말씀하기를 "덕을 높이고 의를 즐거워하면 효효할 수 있다.[尊德樂義, 則可以囂囂矣.]"라고 하였다. 이에 대한 조기(趙岐)의 주에 "효효는 스스로 만족하여 욕심이 없는 모양이다.[囂囂, 自得無欲之貌.]"라고 하였다. 일원(一元) 송(宋)나라 소옹(邵雍)이 주장한 '원회운세(元會運世)'의 설에 나오는 용어로, 이 세계가 생성했다가 소멸하는 1주기(周期)를 말한다. 그 학설에 따르면 30년이 1세(世), 12세가 1운(運), 30운이 1회(會), 12회가 1원(元)이니, 일원은 모두 12만 9600년이 된다. 《皇極經世書 권2 纂圖指要下》 당래(倘來) 당래(儻來)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자신의 몸에 우연히 찾아오는 것을 이른다. 《장자》 〈선성(繕性)〉의 "요즘 사람들은 높은 관직을 얻고는 뜻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몸에 속한 것이지 성명(性命)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서, 우연히 찾아와 몸에 잠깐 붙어 있는 것이다.[今之所謂得志者, 軒冕之謂也, 軒冕在身非性命也, 物之儻來寄也寄之.]"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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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1 卷之十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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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설 經義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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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기설 原理氣說 천지(天地)에는 리(理)가 있고 기(氣)가 있고 형질(形質)이 있는데 리와 기를 합하여 총언(總言)하여 '도(道)'라고 한다. 지수(至粹)한 것을 '리(理)'라고 하고 변동(變動)을 일러 '기(氣)'라고 하고 유행(流行)을 일러 '도'라고 한다. 리는 기에 깃들고 기는 형질에 깃드니 이 때문에 기가 모여서 천(天)의 형(形)이 되고 기가 그 가운데에 깃들게 된다. 기가 결합하여 지(地)의 질(質)이 되고 기가 그 가운데에 통(通)하게 되니 이 기는 천지의 가운데에 오르내려 운행이 쉬지 않는데 쉬지 않는 오묘한 이것을 일러 '리(理)'라고 한다. 리는 지정(至靜)하고 기는 지동(至動)하니 동은 스스로 동할 수 없으니 리에서 말미암고, 정은 스스로 발할 수 없으니 기에 타게 되는데 이 때문에 지정무잡(至精無雜)한 것은 리이고, 정(正)이 있고 사(邪)가 있고 통(通)이 있고 색(塞)이 있는 것은 기이다.오기(五氣)가 순포(順布)하여 사시(四時)가 정(正)을 얻고 생장(生長)을 이루니 만 가지 품물의 순성(順成)은 바름에서 기가 발하고 리가 그 바름을 탄다. 그 혹 사시(四時)·오기(五氣)가 그 상(常)을 얻지 못하고 한서(寒暑)·풍우(風雨)가 어그러져서 절기를 잃는 것은 기가 사(邪)에서 발하여 리가 사(邪)에 가려진 것이다. 사람의 생은 천지의 기이니 이 기가 응결하여 형질(形質)이 되고 기가 형질의 가운데에 깃든다. 천지의 리가 부여하여 성(性)이 되고 성이 기에 깃든다. 성이 기와 합하여 날마다 쓰임에서 유행(流行)하니 또 그것을 일러 '도(道)'라고 한다. 그 기는 구각(軀殼)의 가운데에 통행(通行)하니 발하여 한번 호흡하고 한번 내쉬니, 또 천지의 기와 더불어 상통하여 불식(不息)하니 불식의 묘리는 이것을 일러 '리(理)'라고 한다. 무릇 지각(知覺)·운동(運動)하는 것은 기이고 지각·운동의 묘리는 리이다. 이 때문에 리는 지정(至靜)하고 기는 지동(至動)하고 리는 선·악이 없고 기는 선이 있고 악이 있다.사단이 발하여 칠정(七情)이 중절(中節)을 얻은 것은 기가 선에서 발하여 리가 선에 타게 된다. 사단(四端)·칠정(七情)이 그 바름을 얻지 못하여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이 모두 사(邪)에서 나온 것은 기가 악에서 발하여 리가 악에 가려진 것이다. 대저 사람은 하나의 천지이고 천지는 하나의 큰 사람이기 때문에 짝하여 말하면 '삼재(三才)'1)라고 하니 오직 성인이 그 기가 바르고 그 리에 합당하여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되는 데에 달하니2) 사시(四時)·오기(五氣)·한서(寒暑)·풍우(風雨)로 하여 그 차례를 따르고 그 바름을 얻지 않음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주역》에서 말하기를 "천지의 도를 지나침 없이 이루고 천지의 일을 모자람 없이 돕는다."3)라고 하였으니 크도다! 성인의 이 지극함이여. 天地有理有氣有形質。 合理與氣總言之曰'道'。 至粹之謂'理'。 變動之謂'氣'。 流行之謂'道'。 理寓於氣。 氣寓於形質。 是以氣積而爲天之形而氣寓於其中。 氣結而爲地之質而氣通於其中。 是氣也。 升降於天地之中。 運行不息。 不息之妙。 斯謂之理。 理至靜氣至動。 動不能自動。 由於理。 靜不能自發。 乘於氣。 是以至精無雜者理也。 有正有邪有通有塞者氣也。 五氣順布。 四時得正。 生長遂成。 萬品順成者。 氣發於正而理乘其正者也。 其或四時五氣不得其常。 寒暑風雨乖戾失節者。 氣發於邪而理蔽於邪也。 人之生也。 得天地之氣。 是氣凝結爲形質。 而氣寓於形質之中。 天地之理。 賦而爲性。 而性寓於氣。 性與氣合而流行於日用。 又謂之道。 其氣也通行於軀殼之中。 發而爲一呼一吸。 又與天地之氣。 相通而不息。 不息之妙。 是謂之理。 凡知覺運動者氣也。 知覺運動之妙者理也。 是以理至靜氣至動。 理有善無惡。 氣有善有惡。 四端發而七情得中其節者。 氣發於善而理乘其善也。 四端七情。 不得其正。 視聽言動。 皆出於邪者。 氣發於惡而理蔽於惡也。 夫人一天地也。 天地一大人也。 故配而言之曰'三才'。 惟聖人正其氣而合其理。 以達於天地位萬物育。 使四時五氣寒暑風雨。 莫不順其序得其正焉。 故易曰: "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大哉! 聖也。 斯其至矣。 삼재(三才) 삼재는 세 가지 기본이라는 뜻으로, 천(天)·지(地)·인(人)을 말한다.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옛날에 성인이 《주역》을 지은 뜻은 장차 성명(性命)의 이치를 순히 하기 위해서였으니, 그러므로 하늘의 도를 세운 것은 음과 양이요, 땅의 도를 세운 것은 유와 강이요, 사람의 도를 세운 것은 인과 의이니, 삼재를 겸하여 둘로 하였기 때문에 역이 여섯 번 그어서 괘를 이루고, 음으로 나누고 양으로 나누며, 유와 강을 갈음하여 쓰기 때문에 역이 여섯 자리로 문장을 이룬 것이다.[昔者聖人之作易也, 將以順性命之理, 是以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 立人之道曰'仁與義', 兼三才而兩之, 故易六畫而成卦, 分陰分陽, 迭用柔剛, 故易六位而成章.]"라고 하였다. 천지가 …… 달하니 《중용장구》 제1장에 "희로애락의 정이 발하지 않은 것을 '중'이라 이르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 이르니, 중이란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란 것은 천하의 공통된 도이다. 중과 화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이다.[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라는 말이 나온다. 천지의 …… 돕는다 《주역》 태괘(泰卦) 상(象)에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통하는 것이 태괘이다. 제왕은 이로써 천지의 도를 지나침 없이 이루고 천지의 일을 모자람 없이 도와서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한다.[天地交泰, 后以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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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설 中說 천지는 지극히 크고[至大] 만물은 지극히 많으며[至衆] 일월(日月)은 지극히 밝고[至明] 산천은 지극히 넓으며[至廣] 인심은 지극히 공평하고[至公] 만사는 지극히 번잡[至煩]하다. 만물은 지극히 많으나 천지가 능히 수용할 수 있고, 산천이 지극히 넓지만 일월이 능히 비출 수 있고, 만사는 지극히 번잡하나 인심이 능히 총괄할 수 있으니 천지의 도(道)는 하나로 정해지기 때문에 그곳에 만물을 수용할 수 있고 일월의 밝음은 하나로 정해지기 때문에 산천을 비출 수 있으며 사람 마음의 신령함은 하나로 정해지기 때문에 만사를 총괄할 수 있다.여기에서 천지(天地)·일월(日月)·인심(人心)은 형이하자(形而下者)이고, 지대(至大)·지명(至明)·지공(至公)하여 하나로 정해진 것은 형이상자(形而上者)라는 것을 알 수 있다.4) 형이하자(形而下者)는 높다, 낮다, 크다, 작다 등 부르는 명칭이 비록 다른데 형이상자는 본디 피차의 구별이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 하나일 뿐이니 하나는 무엇인가? 중(中)일 뿐이다. 이 때문에 천지가 중에 맞지 않으면 만물을 수용할 수 없고 일월이 중에 맞지 않으면 산천을 비출 수 없고 인심이 중에 맞지 않으면 만사를 총괄할 수 없다. 천지의 큼과 일월의 밝음으로도 만약 중에 맞지 않으면 만물을 수용할 수 없고 산천을 비출 수 없는데 하물며 인심이 중에 맞지 않음이겠는가?천지가 상하에서 동정(動靜)하고 일월이 그 사이에서 운행하여 음양(陰陽)의 기(氣)·오행(五行)의 정(精)이 무극(無極)의 진(眞)을 합하여 양의(兩儀)의 사이에서 우리 인간에게 내려준 것이 이른바 '중(中)의 리(理)'이다. 먼저 우리 마음에 품부하여 천하의 사람들이 공적으로 전하여 얻은 것이지 나만 홀로 사사로이 소유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천지는 나의 큰 부모요 일월은 우리 부모의 이목(耳目)이다. 천하의 사람들은 곧 우리 부모의 자식이요 나의 형제이다. 이에 부모가 나에게 명하였다. 대종형(大宗兄)은 나의 군주요 계별소종(繼別小宗) 이하는 공(公)이 되고 경(卿)이 되고 대부(大夫)가 되고 사(士)가 되고, 또 그 아래는 서민(庶民)이 된다. 나는 부모의 자식으로 군주인 우리 대종형을 섬기니 충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형제의 공·경·대부·사를 섬기니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형제의 서민(庶民)에 임하니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군주에게 충성하지 않고 어른에게 공경하지 않고 서민을 아끼지 않는 자는 우리 부모의 자식에게 효도하지 않는 것이다.혹은 간사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지 않고 죽임이 소인(小人) 상(象)5)같이 동기(同氣)에 미치는 자는 추방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원악(元惡)을 품고 종자(宗子)를 모함하여 위태롭게 하는 관채(管蔡)6)같은 자는 죽이는 것이 좋다. 완악한 아버지 고수(瞽瞍)를 기뻐하게 한[底豫]7) 아름다운 순(舜) 같은 자를 천거하고, 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온전히 하여 되돌려 준8) 증삼(曾參) 같은 자에게 복을 주었으니 이와 같은 것은 어째서이겠는가? 나 또한 천지 중에서 받아서 천지의 아들을 기다리는 공적 존재일 뿐이다. 어찌 말세가 돌아와 천하의 마음이 스스로 사적인 데에 빠지게 되었는가? 지극히 바른 가운데에서 오로지 한편에 치우쳐 천지가 우리 부모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천하의 사람이 군신 상하가 되고 우리 형제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애증(愛憎)은 한 몸의 사사로움에서 말미암으니 중도(中道)가 세워지지 않으면 호오(好惡)가 천하의 공평함을 따르지 못하게 되어 이욕(利欲)이 멋대로 흘러 부모의 명을 받고 군주가 된 우리 종형이 위에서 고립되고 공경(公卿)·대부(大夫)·사(士)와 서인(庶人)이 된 형제 무리가 분연히 명분을 나누고 서로 대립하여 한집안에서 이익을 다투면 저 위에 임하고 아래에서 질정하는 우리 천지의 대부모가 우리를 효자라고 말하겠는가? 불초(不肖)한 자식이라고 하겠는가? 천지신명[天地神祗]이 밝고 울창하게 줄지어 펼쳐져서 지대(至大)·지명(至明)·지공(至公)·지중(至中)하니 내가 어찌 감히 우리 둘 중에서 우리 형제들과 우리 종자대군(宗子大君) 앞에서 둘을 의심하여 우리 천지 대부모에게 불효했다는 꾸지람을 얻겠는가? 내가 소유한 지중(至中)은 처음 하늘에서 부여받은 것으로 우리 형제의 선각자와 함께 지키기를 원하는데 우리 형제가 중을 잘 지키지 못하고 한쪽에 치우친 것을 경발(警發)하여 이에 중설(中說)을 쓴다. 天地至大。 萬物至衆。 日月至明。 山川至廣。 人心至公。 萬事至煩。 萬物至衆。 天地能容之。 山川至廣。 日月能照之。 萬事至煩。 人心能總之。 盖天地之道正于一。 故萬物容焉。 日月之明定于一。 故山川照焉。 人心之靈定于一。 故萬事總焉。 是知天地日月人心。 形而下者也。 至大至明至公而定于一者。 形而上者也。 其形而下者。 高下大小。 號名雖殊。 其形而上者。 固無彼此之別何也? 以其一而已矣。 一者何也? 中而已矣。 是故天地不中。 萬物不能容。 日月不中。 山川不能照。 人心不中。 萬事不能總。 以天地之大日月之明。 若或不中。 萬物不能容。 山川不能照。 况乎人心之不中耶? 天地動靜於上下。 日月運行於其間。 陰陽之氣五行之精。 合無極之眞。 降生吾人於兩儀之間。 所謂中之理。 先稟於吾心。 天下之人。 公傳得之。 非有我之獨私也。 然則天地卽吾大父母也。 日月卽吾父母之耳目也。 天下之人。 卽吾父母之子而於吾兄弟也。 於是父母命我。 大宗兄爲吾之君。 繼別小宗以下。 爲公爲卿爲大夫爲士。 又其下爲庶民。 吾以父母之子。 事吾大宗兄之爲君。 可不忠乎? 事吾兄弟之爲公卿大夫士者。 可不敬乎? 臨吾兄弟之爲庶民者。 可不愛乎? 是故不忠於君。 不敬於長。 不愛庶民者。 是不孝于吾父母之子也。 或有奸傲不悌。 戕及同氣若小子象者。 放之可也。 包藏元惡。 謀危宗子若管蔡者。 誅之可也。 烝烝底豫若大舜者薦之。 軆受歸全若曾參者福之。 若此者何也? 我亦受天地之中。 待天地之子。 公而已矣。 夫何叔季歸來。 天下之心。 陷溺於自私? 至正之中。 專倚於一偏。 不知天地爲吾父母。 故不識天下之人爲君臣上下者。 爲吾兄弟也。 愛憎由於一己之私。 中道不立。 好惡不循天下之公。 利欲橫流。 吾宗兄之受父母命爲吾之君者。 孤立於上。 而羣兄弟爲公卿大夫士及庶人者。 紛紛然分名角立。 爭利於一室之內。 則彼吾天地大父母臨之在上。 質之在下者。 謂吾爲克孝子耶? 爲不肖子耶? 天地神祗。 昭布森列。 至大至明至公至中。 吾何敢二吾中。 與吾羣兄弟疑貳於吾宗子大君之前。 得不孝之責於吾天地大父母乎? 我有至中。 初賦于天。 願與吾兄弟之有先覺者共守之。 以警發於吾兄弟之不能守中而倚於一偏者。 於是作中說。 여기에서 …… 있다 형이하(形而下)는 형체가 없는 추상적 존재를 말하는 '형이상(形而上)'과 대립 되는 개념으로, 형체가 있는 구체적 존재를 말한다. 이는 원래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형이상인 것을 도(道)라고 하고, 형이하인 것을 기(器)라고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인데, 이에 대하여 주희(朱熹)는 황도부(黃道夫)에게 답한 편지에서 "천지에는 이(理)와 기(氣)가 있으니, 이(理)라는 것은 형이상의 도(道)로서 만물을 낳는 근본이고, 기(氣)라는 것은 형이하의 기(器)로서 만물을 낳는 도구이다.[天地之間, 有理有氣,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라고 설명하였다. 《朱子大全 권58 答黃道夫》 상(象) 상은 순(舜) 임금의 이복동생이다. 평소에 순을 죽이려 하였으나 순은 너그럽게 대하였고 나중에 유비(有庳) 땅에 봉(封)해 주었다. 관채(管蔡) 주공의 형제인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말한다.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주공이 장차 어린 성왕에게 이롭지 못하리라."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주공은 태공(太公)과 소공(召公)에게 정치를 맡기고 낙양의 동쪽으로 피신하였다. 《史記 권35 管蔡世家》 저예(底豫) 순임금이 온 천하가 자기를 추대하였으나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오직 완악(頑惡)했던 그의 부친 고수(瞽瞍)를 극진한 효성으로 받들어 마침내 고수를 감화시켰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온 천하가 감화되어 부자 사이의 윤상(倫常)의 기본이 확정된 것을 이르는 말이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맹자가 한 말로 "순 임금이 어버이 섬기는 도리를 다하자 고수가 기뻐하게 되었고, 고수가 기뻐하게 되자 천하가 교화되었으며, 고수가 기뻐하게 되자 천하에 부자의 도가 정해졌으니, 이것을 일러 대효라고 하는 것이다.[舜盡事親之道而瞽瞍底豫, 瞽瞍底豫而天下化, 瞽瞍底豫而天下之爲父子者定, 此之謂大孝.]"라고 하였다. 《栗谷全書 권23 聖學輯要5》 부모에게서 …… 준 《효경(孝經)》 첫머리에 나오는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 "이 몸은 모두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요, 자신의 몸을 바르게 세우고 바른 도를 행하여 이름을 후세에 드날림으로써 부모님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의 마지막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는 말이 나온다. 《논어》 〈태백(泰伯)〉에서는 증자가 죽음에 임해 제자들에게 "나의 발을 들춰 보고 나의 손을 들춰 보아라. 《시경》에 '전전긍긍하여, 깊은 못 옆에 서 있는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 하였으니, 이제는 내가 훼손을 면했음을 알겠노라. 얘들아.[啓予足, 啓予手, 詩云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라고 하였고, 증자는 또 《예기》 〈제의(祭義)〉에서 "부모가 온전하게 낳아 주었으니 자식이 온전하게 돌아가야 효도라 이를 수 있다. 육체를 손상하지 않고 몸을 욕되게 하지 않아야 온전하다고 이를 수 있다.[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可謂孝矣. 不虧其體, 不辱其身, 可謂全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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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관계 冠誡 사람이 사람 되는 도를 아는가? 사람들은 항상 '천지인(天地人)'이라고 말하는 데 지극히 크고 지극히 넓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은 천지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삼재(三才)라고 칭하는 자들이 반드시 사람을 천지에 참여시켜 함께 '천지인'이라고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역(易)》에서 '사람의 도를 세워서 인과 의'9)라고 하였고, 《서경(書經)》에서 말하기를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본다.'10)라고 하였으며, 삼성자(三省子)11)는 '밝은 덕을 밝힌다.'12)라고 하였고, 성인이 찬술한 것을 전(傳)하여 말하기를 '천명지성(天命之性)'13)이라고 하였다.대저 하늘이 품성을 내리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계(傳係)14)를 하는 것과 같으니 고하(高下)·대소(大小)가 비록 현격(懸隔)하고 멀어서 서로 접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하나의 기가 유행하여 상하에 통하고 홀연히15) 틈이 없고 실제로 피차가 없기 때문에 '천지인(天地人)'이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의 몸이 중차대함에 이르러서는 천지와 틈이 없는 것을 어째서 알지 못할 까닭이 있겠는가? 태상(太上)이 덕(德)을 세우고 그 수양의 차례와 세운 법이 성현(聖賢)의 경전(經傳)에 갖추어져 있으니 사람으로 하여 순서에 따라 들어가 자득하여 위로 천덕(天德)에 도달한다면 그 말은 오묘하고 그 도는 은미해질 것이다. 지금 우선 시행해야 할 것이다. 다음이 칙행(飭行)이니, 칙행의 조목은 다섯 개가 있는데 '부자(父子)·군신(君臣)·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이며 행하는 것은 하나이니 '성(誠)'이니라. 성(誠)에 들어가는 도는 거경(居敬)에 있고 거경의 도는 숙연(肅然)하여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이다. 지기(志氣)로 하여 깨끗하고 밝아서 분분하게 멸(滅)을 일으키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용모를 바르게 하며 꾸밈을 단정히 하여 나태하고 방탕한 기가 베풀어지지 않게 하여, 일일 이내에 일심(一心) 사이에 맑은 것이 탁한 것보다 많아지고 고요한 것이 동한 것보다 많아지게 한다면 자연히 심지가 투명하여 사(事)를 보는 것이 쉽게 밝아질 것이니, 다섯 가지 조목은 만나는 것마다 어둡지 않아서 만 가지 일을 미루어 밝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몸가짐을 단속하는 것의 대략이고 하학상달(下學上達)16)의 문호(門戶)이니라. 이것으로 인하여 구한다면 하늘을 섬기고 참여하는 도 또한 멀지 않을 것이다.향당에 거처하면 자기를 바르게 하고 치우치지 않고, 몸을 세움에 먼저 실이 있게 한 뒤에 이름이 나게 하고, 사람을 접함에는 화합으로써 하고 믿게 하며, 집에 거처할 때에는 예로써 하고 공손하여야 한다. 음식·의복·성색(聲色)·화재(貨財)·명리(名利) 등의 다섯 가지 것은 사람을 함정에 빠트리는 기정(機穽)이요, 성(性)을 벌(伐)하는 도끼이니 먼저 그 큰 것이 세워지면17) 움직이지 않아도 얻어질 것이다.종질(宗侄) 이상(履相)18)은 아주 어릴 적에 고아가 되었는데 지금은 장성하게 되었다. 예(禮)는 삼가(三加)19)가 마땅하니 성인의 도는 금일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당숙(堂叔) 모(某)가 사람이 삼재에 참여하는 설을 미루어 펼쳐서 초례(醮禮) 자리의 경계20)로 삼는다. 또 명하여 말하기를 "시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슬프고 슬프다, 부모여, 나를 낳으시느라 몹시 수고하셨다.'21)라고 하였으니, 사체(四體) 중에 하나의 터럭, 하나의 머리카락을 누가 준 것인가? 몸을 돌아보고 어버이를 생각하고, 어버이를 돌아보고 몸가짐을 조심하는 것은 그 생을 주신 이[所生]에게 욕을 보이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입신양명(立身揚名)으로 부모를 드러내는 것은 효도의 시작이요, 임심리박(臨深履薄)22)의 태도로 살면서 자연의 순리에 따르다가 죽어서는 편안한 것은23) 효도의 마지막이다. 이상은 경계하여라. 나의 말은 망녕되지 않다."라고 하였다. 若知夫爲人之道乎? 人有恒言曰'天地人'。 至大至廣。 不可得以名言者。 非天地耶? 然而稱三才者。 必以人參之於天地而幷數之曰'天地人'者何哉? 在易曰'立人之道'曰'仁與義'。 在書曰'顧諟天之明命'。 三省子有言'明明德'。 述聖子傳之曰'天命之性'。 夫天之降稟於人者。 猶父之傳係於子。 高下大小。 雖若懸絶。 邈不相接。 其一氣流行。 通于上下。 然無間。 實無彼此。 故曰'天地人'。 然則吾之身。 其至重且大。 與天地無間者。 奚可不知其所以耶? 太上立德。 其修之之序立之之法。 具在聖賢經傳。 使人循序而入。 令其自得而上達天德。 則其言邃矣。 其道微矣。 今姑不暇及。 其次飭行。 飭行之目有五。 曰'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 而行之者一也曰'誠'。 入誠之道。 在於居敬。 居敬之道。 在於肅然不放。 使志氣淸明而紛紜起滅之念不生。 正容端莊而怠惰放逸之氣不施。 一日之內一心之間。 淸多於濁。 靜多於動。 則自然心志明透。 見事易曉。 五者之目。 隨遇不昧。 而推之萬事。 無不明矣。 此飭行之大略而下學上達之門戶也。 仍此求之。 事天而參之之道。 亦不遠矣。 居鄕則正己而不偏。 立身則先實而後名。 接人以和而信。 處家以禮而恭。 至於飮食衣服聲色貨財名利五者。 陷人之機穽。 伐性之斧斤。 先立其大者而不爲所動則得矣。 宗侄履相。 未孩而孤。 今其壯矣。 禮當三加。 成人之道。 式自今日。 堂叔某推人參三才之說以申之。 爲醮席之戒。 又命之曰: "'詩不云乎? 哀哀父母。 生我劬勞'。 吾之四體。 一毫一髮。 是誰之賜? 顧軆思親。 思親飭行。 所以不欲忝厥所生也。 立身揚名。 以顯父母。 孝之始也。 臨深履薄。 順生沒寧。 孝之終也。 履相戒之。 吾言不妄。" 사람의 …… 의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하늘의 도를 세움은 '음과 양'이요, 땅의 도를 세움은 '유와 강'이요, 사람의 도를 세움은 '인과 의'이니, 삼재를 겸하여 두 번 하였다.[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 立人之道曰'仁與義', 兼三才而兩之.]"라고 하였다. 하늘의 …… 돌아본다 《대학장구》 전1장에서 《서경》 〈태갑 상(太甲上)〉의 말을 인용하여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본다.[顧諟天之明命.]"라고 한 것에 대해, 주희가 "사람은 천지의 중(中)을 받아 태어난다. 그러므로 사람의 명덕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지극한 선이 보존되어있는 것이니, 그 전체와 대용이 어느 때고 발현되지 않은 적이 없다.[人受天地之中以生, 故人之明德, 非他也, 卽天之所以命我而至善之所存也, 是其全體大用, 蓋無時而不發見於日用之間.]"라고 답한 것을 이른다. 삼성자(三省子) 증자(曾子)를 가리키는 말로, 그가 "나는 하루에 세 가지 일로 자신을 반성하니, '다른 사람과 도모하면서 충실하지 못했던가? 벗과 사귀면서 미덥지 못했던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던가?' 하는 것이다.[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라고 하였다. 《論語 學而》 밝은 …… 밝힌다 '명덕을 밝힌다'는 명명덕은 《대학장구》 경1장에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선에 그침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라는 구절에 보인다. 천명지성(天命之性) 천명지성은 《중용장구》 제1장에 "하늘이 명(命)하신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성(性)을 따름을 도(道)라 이르고, 도(道)를 품절(品節)해 놓음을 교(敎)라 이른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라고 한 구절이 보인다. 전계(傳係) 재산을 누구에게 상속시킨다는 뜻을 적은 문권(文券)이다. 원문의 '然'은 문맥을 살펴 '忽然'으로 해석하였다. 하학상달(下學上達) 사람의 일을 배우고 나아가 자연의 법칙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 〈헌문(憲問)〉의 "나는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고 사람을 탓하지도 않는다. 아래로는 인간의 일을 배우고 위로는 하늘의 이치를 터득하려고 노력할 따름인데, 나를 알아주는 분은 아마도 하늘일 뿐일 것이다![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라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근사록》 〈존양(存養)〉에 "성현의 수많은 말씀도 그 요점을 살펴보면 단지 사람으로 하여 놓친 마음을 단속해서 다시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오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그 마음을 찾아서 위를 향해 나아간다면 그것이 곧 공자가 말씀하신 대로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우면서 위로 하늘의 이치를 체득하는 일이 될 것이다.[聖賢千言萬語, 只是欲人將已放之心, 約之, 使反復入身來, 自能尋向上去, 下學而上達.]"라는 정명도의 말이 나온다. 성(性)을 …… 세워지면 《시경》 〈빈풍(豳風) 벌가(伐柯)〉에 "도끼 자루를 어떻게 베어야 하나, 도끼가 아니면 하지 못한다네.[伐柯如何, 匪斧不克.]", "도끼 자루를 베나니, 그 법이 멀리 있지 않도다.[伐柯伐柯, 其則不遠.]"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법규, 본보기 등의 의미로 쓰인다. 이상(履相) 김만영의 당조카 김이상(金履相, 1639~?)을 가리킨다. 자는 사형(士亨)이다. 1675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삼가(三加) 예전에 남자가 가관례(加冠禮)를 행할 때, 처음에는 치포관(緇布冠)을 쓰고, 다음은 피변(皮弁)을 쓰고, 다음은 작변(爵弁)을 쓰던 일을 통칭하여 일컫던 말이다. 초례(醮禮) …… 경계 김만영이 종질(宗侄) 이상(履相)의 초례 자리에서 경계한 말이다. 《예기(禮記)》〈증자문(曾子問)〉에 " …… 초(醮)라는 것은 술을 따르기만 하고 수작(酬酢)함이 없는 것을 초라 하니, 예(醴)가 중하고 초가 가벼운 것은 예는 바로 옛날 술이기 때문에 중함이 되는 것이다. 초례가 예례와 다른 까닭은 관을 세 번 가한 뒤에 통틀어서 한 번 예례를 행하고, 초례는 관을 가할 적마다 한 번씩 청주로 초례를 행한다.[ …… 謂之醮者, 酌而無酬酢曰'醮', 醴重而醮輕者, 醴是古之酒, 故爲重, 醮之所以異於醴者, 三加之後, 總一醴之, 醮則每一加而行一醮也.]"라고 하였다. 부모여 …… 수고하셨다 구로(劬勞)의 가르침은 부모님이 자신을 낳고 기르느라 수고하고 애쓰시며 가르쳐 준 은혜를 말한다. 《시경》 〈육아(蓼莪)〉에 "슬프고 슬프다 부모여, 나를 낳으시느라 몹시 수고하셨다.[哀哀父母, 生我劬勞.]"라는 구절에서 연유한 말이다. 임심리박(臨深履薄) 조심하고 삼간다는 의미이다. 《시경(詩經)》 〈소민(小旻)〉에서 "마치 깊은 연못가에 다다르거나 얇은 얼음을 밟은 것처럼 조심하고 두려워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라고 하였다. 증자(曾子)가 병(病)이 위중하자, 제자들을 불러 말하기를 "이불을 걷고 나의 발을 보고 나의 손을 보아라. 《시경》에 이르기를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엷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 하였으니, 이제서야 나는 내 몸을 훼상시킬까 하는 근심에서 면한 것을 알겠구나, 소자들아![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라고 하였다. 《論語 泰伯》 《詩經 小雅 小旻》 자연의 …… 것은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살아서는 내 순응하고 죽어서는 내 편안하다.[存吾順事, 沒吾寧也.]"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참고로 주희(朱熹)는 이 구절에 대해 "효자의 몸이 살아 있으면 어버이를 섬김에 그 뜻을 어기지 않을 뿐이요, 죽으면 편안하여 어버이에게 부끄러운 바가 없으며, 인인(仁人)의 몸이 살아 있으면 하늘을 섬김에 그 이치를 어기지 않을 뿐이요, 죽으면 편안하여 하늘에 부끄러운 바가 없다."라고 풀이하였다. 《近思錄集解 권2 爲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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