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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물편【선생의 나이 스물두 세 살에 독서할 때 쓴 일기이다.】 玩物篇【先生年二十二三。 讀書時日記。】 내가 일찍이 《일두정선생실록(一蠹80)鄭先生實錄)》을 읽어보니 "《주자중용 장구(朱子中庸章句)》에 나온 기(氣)로써 형(形)을 이루면 리(理) 또한 그곳에 품부가 된다.'라는 말을 취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말이 있다. "어찌 기 뒤에 리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나는 '일두(一蠹)는 리기(理氣)는 알았는데 주자의 본의를 알지 못했다.'라고 생각했다. 주자가 말하기를 "본원(本原)을 논한다면 리(理)가 있고 난 뒤에 기가 있게 되지만 품부(稟賦)를 논한다면 이 기가 있고 난 후에 리가 따라서 갖추어진다."81)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주자의 본의이다. 일두의 견해는 아마도 일변에 치우친 것 같으니 학자가 알지 않으면 안 된다.또 말하기를 "비유하면 리(理)는 물과 같고 기(氣)는 기(器)와 같으니 이 기가 없으면 이 리가 붙을 곳이 없어진다."라고 하였다. 만약 이 기(器)가 없다면 이 물은 흩어져서 있지 않을 것이므로 주자가 먼저 기를 말한 이후에 리를 말했다.혹 미발(未發)과 기발(旣發)82)을 의심하여 말하기를 "성낼 때를 당하여는 기쁨의 리(理)가 미발(未發)하고 슬플 때를 당하여는 즐거움의 리가 미발하니 칠정(七情)이 서로 교대로 삼가 발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꼭 이처럼 말할 필요는 없다. 사려(思慮)가 아직 발하지 않은 곳은 미발이 되고 이미 발한 곳은 기발이 되니 이 마음이 잠깐 발동한 것이 있으면 곧 미발이 아니다. 그 가운데에 4개의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상호 발동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嘗讀一蠹鄭先生實錄。 有曰: "不取朱子中庸章句氣以成形理亦賦焉。" 曰: "安有後氣之理乎云云?" 余謂'一蠹知理氣而不知朱子本意也。' 朱子曰: "若論本原則有理然後有氣。 若論稟賦則有是氣而後理隨而具。" 此朱子本意也。 一蠹之見。 恐偏於一邊耳。 學者不可不知。 又曰: "理譬如水。 氣譬如器。 無是氣則是理無着在處。" 如無是器則是水散解而無有矣。 故朱子先言氣而後言理。或疑未發旣發曰: "當怒之時。 喜之理未發。 哀之時。 樂之理未發。 七情互相伏發否?" 余曰: "不須如此說。 思慮未動處爲未發。 旣動處爲旣發。 此心乍有發動處。 便不是未發。 非有四箇心在於其中。 互相發動。" 일두(一蠹) 일두는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호이다. 정여창은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욱(伯勗), 시호는 문헌이다. 김굉필(金宏弼)과 함께 김종직(金宗直)에게 수학하였다. 저술로는 7권의 《일두집》이 있다. 리(理)가 …… 갖추어진다 이선기후(理先氣後)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 〈이기 상(理氣上) 태극천지 상(太極天地上)〉에서 "이와 기는 본래 선후로 표현할 수 없다. 다만 논리적으로 추론할 때 이가 먼저이고 기가 나중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理與氣本無先後之可言, 但推上去時, 却如理在先, 氣在後相似.]"라고 하였다. 미발(未發)과 기발(旣發) 모든 행위를 미발(未發)의 체(體)와 이발(已發)의 용(用)으로 규정한 주희(朱熹)의 학설로, '미발의 성[未發之性]'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정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을 가리키고, '이발의 정[已發之情]'은 희로애락이 발한 것을 가리킨다. 《중용장구》 제1장에 "희로애락이 발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이르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이른다.[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희의 주에 "희로애락은 정(情)이고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은 성(性)이니 편벽되고 치우친 바가 없으므로 중이라 이르며, 발함에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은 정의 올바름이니 어그러지는 바가 없으므로 화라 이른다.[喜怒哀樂, 情也, 其未發, 則性也, 無所偏倚, 故謂之中, 發皆中節, 情之正也. 無所乖戾, 故謂之和.]"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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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태극도 人具太極圖 살펴보면 마음에는 태극(太極)83)이 있고 또한 음양동정(陰陽動靜)의 리(理)가 있다. 정(靜)한 것은 형(形)이 생(生)한 것이고 동(動)한 것은 신(神)이 발(發)한 것이니 바야흐로 그 동정(動靜)이 미형(未形)에 그 리(理)가 이미 갖추어지니 이것을 일러 '태극(太極)'이라고 한다. 한 번 동(動)하고 한 번 정(靜)하는데 미쳐서는 서로 근본이 되니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이 그곳에 갖추어진다. 인의예지의 성이 갖추어지면 인의예지의 단(端)이 그곳에서 발하게 된다. 사단(四端)이 발하여 선악이 나누어져서 만 가지 일이 나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복희(伏羲)·요순(堯舜) 이후 공맹(孔孟) 이전에 서로 전하고 서로 주고받은 심법(心法)이니 그 말이 성인의 경(經)과 현인의 전(傳) 가운데에 자세히 갖추어 실려 있다.맹씨 이후에는 정확하게 발하여 전하는 자가 없어서 천년의 뒤에는 오직 염계(濂溪) 선생만이 《역전(易傳)》 중에서 태극(太極) 두 글자를 얻어 그려서 도(圖)를 만들고 발(發)하여 설(說)을 지어84) 우리 도의 일관된 목적으로 삼았다. 우리 자양선생(紫陽先生)에 미쳐서 그 도(圖)와 그 설(說)이 또 크게 펼쳐지고 분명하게 드러나85) 삼재(三才)의 일리(一理)가 서로 합한 것이 마치 부절(符節)이 서로 들어맞는 것 같았으니 아!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주자(周子)가 편찬한 〈자양석전조절(紫陽釋傳條節)〉을 줍고 모아서 개인적으로 〈인구태극도(人具太極圖)〉를 지어 자성(自省)의 도구로 갖추어놓았으니 내가 망령된 것이 아니라 자양 주자의 뜻이다.또 살펴보건대 희(羲)·우(禹)의 도서오수(圖書五數)86)의 중(中), 요(堯)·순(舜)의 인심도심(人心道心)의 기미(幾微),87)문(文)·무(武)·주공(周公)의 건중건극(建中建極)의 묘(妙),88) 공자(孔子)의 역유태극(易有太極)·오도일관(吾道一貫)의 리(理),89) 자사(子思)의 계신공구(戒愼恐懼)90)의 전(前), 증자(曾子)의 명덕(明德)91)의 처음, 맹자(孟子)의 본선지성(本善之性)92)은 이른바 동정(動靜)이 아직 형태가 없어도 그 리(理)가 이미 갖추어진 때라는 것이다. 희·우의 오승십지후(五乘十之後), 요·순의 유정유일지시(惟精惟一之時),93)문·무·주공의 경의상승지제(敬義相勝之際), 공자의 시생양의지발(是生兩儀之發), 증자의 명명덕지지선지후(明明德止至善之後), 자사의 은미근독지중(隱微謹獨之中), 맹자의 인유사단지설(人有四端之說)은 이른바 동정이 서로 뿌리가 되어 사덕(四德)·사단(四端)에 갖추어져 발한 것이다. 여기서 그 일체(一軆)·일용(一用)은 비록 동정(動靜)의 다름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체가 세워져야만 용이 쓰임이 있게 되니 그 실제는 일본(一本)일 뿐이다.한 번 동정하여 서로 시작이 되고 끝이 되는 것은 경(敬)일 뿐이다. 또 오성(五性)의 차례는 본도(本圖)의 오행(五行) 차례와 다른 것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형(形)은 음(陰)이 하는 것이고, 신(神)은 양이 발한 것이다."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중(中)이다', '인(仁)이다.'라고 하는 것이 이른바 양이고 '정(正)이다', '의(義)이다.'라고 하는 것이 이른바 음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인례(仁禮)를 왼쪽에 두고 의(義)를 오른쪽에 두었는데 인(仁)은 사성(四性)의 처음이기 때문에 왼쪽의 머리에 두고, 의(義)는 인의 상대이기 때문에 오른쪽의 위에 두는 것이니 스스로 천착한 것이 아니다. 계신공구(戒愼恐懼)의 전에는 태극(太極)의 체(軆)를 볼 수 있고, 발하여 중절(中節)한 때에는 태극의 용(用)을 볼 수 있다. 진묘(眞妙)의 정(精)을 체득하는 것은 마땅히 야기(夜氣)가 깨끗한 아침에 얻을 수 있다. 按心有太極。 亦有陰陽動靜之理。 靜者形之生。 動者神之發。 方其動靜未形。 其理已具。 是謂太極。 及其一動一靜。 互相爲根。 則仁義禮智之性具焉。 仁義禮智之性具則仁義禮智之端發焉。 四端發而善惡分萬事出矣。 此乃伏羲堯舜以下。 孔孟以前。 相傳相受之心法。 其言具載於聖經賢傳之中。 孟氏以後。 無有的發而傳之者。 千載之下。 惟有濂溪夫子得太極二字於易傳之中。 畫而爲圖。 發而作說。 爲吾道一貫之的。 及我紫陽老先生而其圖其說。 又大暢明較著。 而三才一理之相合。 若符節之相契。 嗚呼! 無以加矣。 謹掇拾周子洎紫陽釋傳條節。 私作人具太極圖。 以備自省之具。 非愚之妄。 紫陽之意也。 又按羲禹圖書五數之中。 堯舜人心道心之幾。 文武周公建中建極之妙。 孔子易有太極吾道一貫之理。 子思戒謹恐懼之前。 曾子明德之初。 孟子本善之性。 乃所謂動靜未形。 其理已具之時也。 羲禹以五乘十之後。 堯舜惟精惟一之時。 文武周公敬義相勝之際。 孔生是生兩儀之發。 曾子明明德止至善之後。 子思隱微謹獨之中。 孟子人有四端之說。 乃所謂動靜相根。 四德具四端發者也。 是其一軆一用。 雖有動靜之殊。 必其體立而用有以行。 其實一本而已。 一動靜而相終始者。 敬而已矣。 又五性之次。 與本圖五行之次不同者。 朱子曰: "形陰之爲。 神陽之發。" 又曰: "中也仁也。 所謂陽也。 正也義也。 所謂陰也。" 故今以仁禮居左。 以義居右。 仁爲四性之首。 故居左之上。 義爲仁之對。 故居右之上。 非自鑿也。 戒愼恐懼之前。 可見太極之軆。 發而中節之時。 可見太極之用。 軆眞妙之精。 當於夜氣淸朝見得。 태극(太極) 태극은 최초의 혼돈(混沌)한 상태로 있는 기운으로 우주 만물의 근본이 된다. 《주역(周易)》 〈계사 상(繫辭上)〉에, "역에 태극이 있으니,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는다.[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라고 하였다. 태극(太極) …… 지어 주돈이(周敦頥)가 지은 《태극도설》은 그림인 〈태극도〉와 그에 대한 주돈이 자신의 해설인 〈태극도설〉로 구성되어 있다. 천지가 나누어지기 이전을 태극이라 하는데, 《주역》에 "역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음(陰)과 양(陽)을 낸다.[易有太極, 是生兩儀.]"라는 말에 근본하여, 태극도를 그리고 설명을 가한 것이다. 자양(紫陽)선생에 …… 드러나 주희(朱熹)는 주돈이의 〈태극도〉와 《태극도설》에 주석을 달았는데, 이를 각각 〈태극도해(太極圖解)〉와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라고 부른다. 《태극도해》는 그가 지은 태극도에 대한 해설서인 《태극해의(太極解義)》를 가리킨다. 《태극해의》는 도(圖)의 해설인 〈태극도해〉와 도설(圖說)의 해설인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로 구분되는데, 〈태극도해〉 또는 〈태극도설해〉라고 말하면서 책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성리대전》 권1에 수록되어 있다. 도서오수(圖書五數) 도서는 하도낙서(河圖洛書)를 말한다. 하도는 중국 전설상의 임금인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새겨진 그림으로, 1에서 10까지의 수가 반점의 형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복희씨가 이를 보고 《주역》의 팔괘(八卦)를 그렸다고 한다. 낙서는 하(夏)나라 우(禹) 임금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1에서 9까지의 수가 역시 반점의 형식으로 배열 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우 임금이 이를 보고 《서경》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지었다 한다. 기미(幾微) 《주역》 계사에 기자동지미(幾者動之微)라 하여, 군자는 미(微)도 알고 창(彰)도 안다 하였으며, 기(幾)를 아는 것은 신(神)이라 하였거니와 기미는 동정(動靜)의 은미한 데서 극치의 경지를 찾는 것이다. 건중 건극(建中建極)의 묘(妙) 중정(中定)의 도(道)를 정(定)하여 만민(萬民)의 모범적인 법칙을 세우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오도일관(吾道一貫)의 리(理) 공자가 제자 증자에게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관통하느니라.[參乎 吾道一以貫之]" 하니, 증자가 '예' 하고 대답했다. 공자가 밖으로 나간 뒤, 대화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다른 문인(門人)이 증자에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증자가 "선생님의 도는 충서일뿐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대답해 주었다. 《論語 里人》 계신공구(戒愼恐懼) 경계하고 근신하며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으로, 《중용장구》 제1장의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떠날 수가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보이지 않을 때에도 경계하고 근신하는 것이며, 들리지 않을 때에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是故, 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명덕(明德) 《대학장구》 경1장에 "대학의 도는 명명덕에 있고 신민(新民)에 있고, 지어지선(止於至善)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라고 하였다. 본선지성(本善之性) 존양(存養)은 본심(本心)을 잘 보존하고 선성(善性)을 잘 기르는 것으로, 유가(儒家) 가운데 자사(子思)와 맹자(孟子)는 사람의 성품은 본디 선하므로 이를 잘 보존하고 기르면 하늘도 섬길 수 있다고 여겼다. 유정유일지시(惟精惟一之時) 순 임금이 우(禹)에게 제위를 선양하며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고 전일해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書經 大禹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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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수장지도 中庸首章之圖 삼가 살펴보건대 《중용(中庸)》 수장(首章)의 수절(首節)은 '성도교(性道敎)'94)를 나누어 말했다. 이절(二節)은 도(道)의 떨어질 수 없음과 존양(存養)의 일을 말했다.95) 삼절(三節)은 성찰(省察)의 일을 말하고, 사절(四節)은 중화(中和)의 대본달도(大本達道)를 말했다. 마지막 절에서는 중화(中和)의 지극한 공을 말했다. 이것은 주자장구(朱子章句)에서 이미 분명하게 해석했으니 다시 어찌 터럭 하나라도 끼어들 틈이 있겠는가? 다만 '성도교(性道敎)' 세 글자는 한 장의 강령(綱領)이 되고 서로 맥락(脉絡)이 되니 그 문장이 비록 서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 뜻은 실로 서로 관통(貫通)한다.그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을 중이다.'96)라고 하고, '중(中)은 천하의 대본이다.'97)라고 말한 것은 성(性)의 대본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그 '도(道)란 잠시도 떨어질 수 없으니 떨어지면 도가 아니다.'98)라고 하고, 또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99)라고 하고, '화라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도이다.'100)라고 한 것은 도의 전체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그 '보지 않는 것에도 경계하고 삼가며 듣지 않는 것에도 두려워한다.'101)라고 한 것은 존양(存養)의 일이고 성을 따르는 법이다. 그 '숨은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작은 것보다 잘 나타나는 것이 없으므로 군자는 그 혼자 있을 때를 삼간다.'102)라고 한 것은 성찰(省察)의 일이고 도를 닦는 법이다. 그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길러진다.'103)라고 한 것은 중화(中和)의 지극한 공(功)이고 성인의 가르침이니 실로 성(性)과 도(道)에 근본 한 것이다. 삼가 조목을 나누어 도(圖)를 작성하여 잊지 않고 때때로 익히도록 갖추어놓고, 또 지혜 있는 자의 교정을 기다린다. 謹按中庸首章之首節。 分言性道敎。 二節言道之不可離及存養之事。 三節言省察之事。 四節言中和之大本達道。 終言中和之極功。 此朱子章句已分明釋之矣。 更何毫髮之可間哉? 但性道敎三字。 爲一章之綱領。 而相爲脉絡。 其文雖不相續。 其義實相貫通。 其曰: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中者天下之大本也者'。 指性之大本而言。 其曰: '道也者不可須臾離。 可離非道也'。 又曰: '發而皆中節謂之和。 和也者天下之達道也者'。 指道之全軆而言。 其曰: '戒愼乎其所不覩。 恐懼乎其所不聞者'。 存養之事而率性之法也。 其曰: '莫顯乎隱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者'。 省察之事而修道之法也。 其曰: '致中和天地位萬物育者'。 中和之極功而聖人之敎敎。 實本於性與道也。 謹條分作圖。 以備時習之不忘。 且待智者之較正焉。 성도교(性道敎) 《중용장구》 제1장에 "하늘이 명하신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성을 따름을 도(道)라 이르고, 도를 품절해 놓음을 교(敎)라 이른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라고 하였다. 참고로 이에 대한 주자(朱子)의 주에 "사람과 물건이 각기 그 성(性)의 자연을 따르면 그 일상생활 하는 사이에 각기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곧 이른바 '도(道)'라는 것이다.[人物各循其性之自然, 則其日用事物之間, 莫不各有當行之路, 是則所謂道也.]"라고 하였다. 이절(二節)은 …… 말했다. 《중용장구》 제1장에 "희로애락의 감정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중이라고 하고, 일단 일어나서 모두 절도에 맞게 되는 것을 화라고 하니, 중이란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라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도이다.[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라고 한 말을 합쳐서 동(動)할 때의 공부와 정(靜)할 때의 공부를 설명한 말이다. 희로애락이 …… 중이다 《중용장구》 제1장에 "희로애락의 감정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중이라고 한다.[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라는 말이 나온다. 중(中)은 …… 대본이다 《중용장구》 제1장에 "중은 천하의 큰 근본이다.[中也者 天下之大本也]"라는 말이 나온다. 도(道)란 …… 아니다 《중용장구》 수장(首章)에 자사가 말하기를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으니,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라고 하였다. 발하여 …… 화(和) 《중용장구》 제1장에 "일단 일어나서 모두 절도에 맞게 되는 것을 화라고 한다.[發而皆中節謂之和.]"라는 말이 나온다. 화라는 …… 도이다 《중용장구》 제1장에 "화는 천하의 공통된 도이다.[喜和也者, 天下之達道也.]"라는 말이 나온다. 보지 않는 …… 두려워한다 《중용장구》 수장(首章)에 자사가 말하기를 "군자는 보지 않는 것에도 경계하고 삼가며 듣지 않는 것에도 두려워한다.[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고 하였다. 숨은 …… 삼간다 《중용장구》 수장(首章)에 자사가 말하기를 "숨은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작은 것보다 잘 나타나는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를 삼간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고 하였다. 중(中)과 …… 길러진다 《중용장구》 제1장에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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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수장 존양성찰지도 中庸首章存養省察之圖 삼가 살펴보건대 주자가 말하기를 "계신공구(戒愼恐懼)로부터 검속(檢束)하여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편벽되고 치우친 것이 없게 되어 그것을 지켜서 잃지 않는 데 이르면 그 중을 지극히 하여 천지가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104) 근독(謹獨)으로부터 정밀하게 하여 사물을 응하는 곳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 가는 곳마다 그렇지 않음이 없는 데 이르면, 그 화(和)를 지극히 하여 만물이 생육 될 것이다."105)라고 하였다. 대개 《중용(中庸)》 수장(首章)의 조맥(條脉) 공부(工夫)는 여기에서 다 말했고, 학자가 공부하는 처음과 끝마침이 또한 여기에 다 있으니 이른바 죽도록 써도 다 쓸 수 없는 것이다.삼가 주자의 말로 인하여 조항을 나누어 도(圖)를 그려서 눈을 붙여 생각하고 살피는 도구로 삼았다. 다만 중용에서는 비록 경(敬)을 말하지 않았으나 경이 아니면 존양·성찰의 공부를 이룰 방법이 없기에 주자가 말하기를 "군자의 마음은 항상 경외(敬畏)를 보존하여 비록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더라도 또한 함부로 소홀히 할 수 없다."106)라고 하였다. 정자(程子) 또한 말하기를 "학자는 먼저 경을 얻는 방법을 이해함만 같은 것이 없으니 경에 능하면 저절로 이것을 알게 된다."107)라고 하였으니 학자는 살피지 않을 수 없다.또 살펴보면 계신공구(戒愼恐懼)는 미발(未發)의 근독(謹獨)이요, 막현막현 (莫見莫顯)은 기발(旣發)의 근독(謹獨)이니 이것이 존심(存心)·치지(致知)·체용(軆用)을 서로 닦는 법이다.존양(存養)은 아직 솔성(率性)의 전이고 성찰(省察)은 이미 수도(修道)의 뒤이다. 비록 솔성의 전이라도 천명(天命)의 성(性)은 분명하게 그대로 있다. 마땅히 이때 계구(戒懼)하여야 하니 바로 미발(未發)의 전에 존양(存養)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謹按朱子曰: "自戒懼而約之。 以至於至靜之中。 無所偏倚而其守不失。 則極其中而天地位矣。 自謹獨而精之。 以至於應物之處。 無少差謬而無適不然。 則極其和而萬物育矣。" 盖中庸首章之條脉工夫。 此言盡之。 而學者用功之成始成終者。 亦盡於此。 所謂終身用之。 有不能盡者也。 謹因朱子之言。 條分作圖。 以爲寓目思省之具焉。 但中庸雖不言敬。 而非敬則無以致存省之功。 故朱子曰: "君子之心。 常存敬畏。 雖不見聞。 亦不敢忽。" 程子亦曰: "學者莫若先理會得敬。 能敬則自知此矣。" 學者不可不察。 又按戒愼恐懼。 未發之謹獨也。 莫見莫顯。 旣發之謹獨也。 此存心致知軆用交修之法也。 存養在於未率性之前。 省察則旣修道之後也。 雖未率之前。 天命之性。 明自若也。 當戒懼於此時。 乃存養於未發之前者此也。 계신공구(戒愼恐懼)로부터 …… 것이다 《중용장구》 수장의 끝구절에서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자의 주에 "계신공구로부터 검속하여 지극히 정한 가운데 편벽되고 치우친 것이 없게 되어 그것을 지켜서 잃지 않는 데 이르면 그 중을 지극히 하여 천지가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自戒懼而約之, 以至於至靜之中, 無所偏倚而其守不失, 則極其中而天地位矣.]"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근독(謹獨)으로부터 ……것이다. 《중용장구》 제1장에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자의 주에 "근독(謹獨)으로부터 정(精)히 하여 사물을 응하는 곳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 가는 곳마다 그렇지 않음이 없는 데 이르면, 그 화(和)를 지극히 하여 만물이 생육될 것이다.[自謹獨而精之, 以至於應物之處, 無少差謬而無適不然, 則極其和而萬物育矣.]"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군자의 …… 없다. 《중용장구》 제1장 "이 때문에 군자는 그 보지 않는 바에도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듣지 않는 바에도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이다.[是故, 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는 구절에 대한 주희의 주에, "군자의 마음은 항상 '경'과 '외'를 보존하여 비록 보고 듣지 않을 때라도 또한 감히 소홀히 하지 못하니, 이 때문에 천리의 본연함을 보존하여 잠시도 도를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君子之心, 常存敬畏, 雖不見聞, 亦不敢忽, 所以存天理之本然, 而不使離於須臾之頃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학자는 …… 된다 《이정유서》 권18 〈이천선생어〉 83조에 제자가 미발 때를 동(動)이라고 해야 할지 정(靜)이라고 해야 할지에 대해 묻자, 이천은 "정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정 가운데에는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하니, 이것이 가장 어려운 곳이다. 배우는 이는 우선 경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경을 잘하면 절로 이것을 알 것이다.[謂之靜則可, 然靜中須有物始得, 這裏便一作最是難處, 學者莫若且先理會得敬, 能敬則自知此矣.]"라고 하였다. 또 경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주일만 한 것이 없다.[莫若主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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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분절변의 中庸分節辨義 삼가 생각건대 《중용(中庸)》 한 권의 책은 자사(子思)가 도를 전한 글이다. 우러러 옛날을 상고해보면 복희(伏羲)108)는 획(畫)을 긋고, 문왕(文王)은 단(彖)을 쓰고,109) 주공(周公)은 사(辭)를 쓰고, 공자(孔子)는 십익(十翼)을 지었다.110) 《시(詩)》·《서(書)》·《예(禮)》·《악(樂)》의 경(經), 《논어(論語)》·《맹자(孟子)》·《춘추(春秋)》의 책에 이르러서는 간절(切)하고 명적(明的)하고 온인(溫仁)하고 정려(正厲)한 자태가 수연(粹然)하게 성현(聖賢)의 성정(性情)을 드러내는 것이 진실로 한두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때에는 고금이 있고 풍속에는 순박함과 경박함이 달라서 그 한때의 언어가 규침(規箴)·경절(警切)의 사이에서 발한 것이 혹, 상략(詳略)의 같지 않음이 있고, 고하(高下)의 난이(難易)가 있어서, 혹 당겨도 펼쳐지지 않고, 펼쳐져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쉽게 그 단서(端緖)를 볼 수 없다. 그 체용(體用)·본말(本末)·거세(巨細)·대소(大小)를 모두 포함(包含)하여 스스로 하나의 책을 만들었는데 하나의 책 가운데에 다 포괄하여 철두철미하게 시종을 갖춘 것으로 《중용》 한 책의 상세함과 절실함만 같은 것이 아직 없다.일찍이 이 책을 읽고 자사(子思)가 앞 성인이 발하지 않은 온축된 도를 발한 것을 알았고, 또 《장구(章句)》를 읽고 주자가 앞의 현인이 발하지 않은 뜻을 발명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근본을 구하여 말에 미치게 하고, 그 흐름을 얻어서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간 것을 아침에 생각하고 저녁에 읽어도 좁은 소견[蠡測]111)에 만에 하나 없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감히 말하기를 "자사가 성도교 (性道敎) 세 글자를 한 편의 강령(綱領)으로 삼은 것은 명명덕(明明德) 세 글자를 대학의 강령으로 삼은 것과 같다. 한편 가운데에 만 가지 말과 만 가지 일이 성도교 세 가지 것의 가운데에서 벗어나지 않고, 다시 실마리가 절이 되니 뜻이 매우 분명하고 맥락(脉絡)·조리(條理)가 저절로 단서(段緖)가 있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대개 주자가 사절(四節)로 나누고 요씨(饒氏)112)가 육절(六節)로 분절한 것은 비록 차이가 있더라도 뜻과 맥락은 모두 통하니 후생 말학인 내가 어찌 입을 놀리겠는가? 다만 내 뜻에서 망령되이 성도교(性道敎) 세 글자를 미루어 한 편의 강령으로 삼고 31장 가운데에서 구하였으니 그 강령의 요지는 각각 분파가 있고 상고할 만한 분단(分段)과 입절(立節)이 있는 것 같다.가만히 생각건대 주자가 공맹과 밝음을 나란히 하여 어린 나이에 이 책을 받아 읽고 침잠(沉潛)하기를 반복하여 60세라는 오래된 이후에 《장구(章句)》를 이내 이루었으니 반드시 이 부분에 소견이 있을 것인데 끝내 상고할 수 없었다. 여기에서 나의 어리석은 견해가 과연 망령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수백 번을 읽고 3개월을 생각하였지만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그 의혹이 더욱 깊어짐을 보고는 과연 나의 의혹을 끝내 풀 수 없고, 의혹하면서도 풀 수 없어 차록(箚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이치에 박식한 군자의 질정을 기다린다. 특별히 나의 이론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고, 전에 연구해놓은 것과는 다른 이론을 구할 뿐이다. 謹惟中庸一書。 子思子傳道之文也。 仰稽于古。 羲有畫而文有彖。 周有辭而孔作翼。 至於詩書禮樂之經。 語孟春秋之書。 切明的。 溫仁正厲之態。 粹然畫出聖賢之性情者。 誠非一二言而止耳。 然時有古今。 俗異淳澆。 其一時言語。 發於規箴警切之間者。 或有詳略之不同。 高下之難易。 或引而不伸。 伸而不反。 未易見其端緖。 其體用本末巨細大小。 俱含並包。 自爲一家。 咸括於一篇之中而徹上徹下。 該始該終者。 未有若中庸一書之詳切。 嘗讀是書。 知子思發前聖未發之蘊。 又讀章句。 知朱夫子發前賢未發之意。 求其本而及之末。 得其流而泝其源。 朝思暮讀。 不能無管窺蠡測之萬一。 乃敢言之曰: "子思子性道敎三字。 爲一篇之綱領者。 若明明德三字。 爲大學之綱領。 一篇中萬言萬事。 不出於三者之中。 而更端作節。 意甚分明。 脉絡條理。 自有段緖。" 盖朱夫子四節之分。 饒氏子六節之辨。 雖有異同而意脉皆通。 後生末學。 何所容喙? 但於愚意妄以性道敎三字推之。 以爲一篇之綱領。 而求之於三十一章之中。 則其綱領旨趣。 各有分派。 似有分段立節之可考。 竊念朱夫子以並駕鄒魯之明。 受讀是書於早歲。 沉潛反復。 至於六十年之久而後。 章句乃成。 則必有所見於此。 而終無可考。 是知愚累之見。 果有妄矣。 讀之屢百遍。 思之三閱月。 愈久而愈見其惑。 則果知愚累之惑。 終莫能釋。 惑而不釋。 未免箚錄。 以待求正於博理君子。 非敢別執已論。 求異於前脩也。 복희(伏羲) 중국 삼황(三皇)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복희(宓羲), 포희(包犧), 포희(庖犧), 복희(伏戱), 여희(慮犧), 희황(犧皇), 황희(皇犧)라고도 한다. 수인씨(燧人氏)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처음 팔괘를 그리고 서계(書契)를 만들었다고 한다. 복희씨(伏羲氏) 때에 등에 1에서부터 10까지의 문양이 그려진 용마(龍馬)가 나왔는데 이것이 하도(河圖)로, 복희씨가 이를 보고 세 획으로 이루어진 팔괘(八卦)를 그렸다고 한다. 또 하(夏)나라 우(禹) 임금 때 등에 1에서 9까지의 점이 박혀 있는 거북이 나왔는데 이것이 곧 낙서(洛書)로, 우 임금이 이를 보고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고 한다. 《尙書正義 洪範, 顧命》 문왕(文王)은 …… 쓰고 상(商)나라 말기에 주(紂)의 신하 숭후호(崇侯虎)가 성인의 덕을 지닌 서백(西伯) 문왕을 시기하여 주에게 참소하여, 문왕은 유리(羑里)의 감옥에 갇혔다. 이때 문왕은 모든 죄를 자신에게 돌리면서 64개의 괘마다 단사(彖辭)를 붙였다고 한다. 《周易 繫辭》 공자(孔子)는 …… 지었다 공자의 십익(十翼)은 《주역》 가운데 공자(孔子)가 지은 〈단전 상(彖傳上)〉·〈단전 하(彖傳下)〉·〈상전 상(象傳上)〉·〈상전 하(象傳下)〉·〈계사전 상(繫辭傳上)〉·〈계사전 하(繫辭傳下)〉·〈문언(文言)〉·〈서괘(序卦)〉·〈설괘(說卦)〉·〈잡괘(雜卦)〉의 십전(十傳)을 가리킨다. 《역(易)》의 작자에 대해선 여러 이설(異說)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복희씨(伏羲氏)가 팔괘(八卦)와 64괘(卦)를 그렸으며, 문왕(文王)이 이것을 연역하여 괘사(卦辭)를 짓고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짓고, 공자가 십익(十翼)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여측(蠡測) 고둥 껍데기로 바다의 깊이를 측량하는 것처럼 자신의 국량과 식견이 천박하긴 하지만 그래도 터득한 점이 없지 않다는 뜻의 겸사이다. 한(漢)나라 동방삭(東方朔)의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고둥 껍데기로 퍼서 바닷물을 재며, 풀줄기로 종을 치는 격이다.[以管窺天, 以蠡測海, 以筳撞鍾.]"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文選 권45 答客難》 요씨(饒氏) 송나라 말기의 이학가(理學家)인 요노(饒魯)를 가리킨다. 그는 여간(餘干) 사람으로, 자가 백여(伯與), 중니(仲尼)이며, 황간(黃幹)의 문하(門下)로서 석동서원(石洞書院)을 세우고 강학하였다. 그의 학문은 주희를 근본으로 하였으나, 주희의 학설을 그대로 고수하지만은 않았다. 《오경강의(五經講義)》·《어맹기문(語孟紀聞)》·《근사록주(近思錄注)》 등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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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서 後敍 [沈啓錫] 그 글을 읽으면 마땅히 그 사람을 보아야 하고 그 사람을 보면 마땅히 그 시대를 논해야 한다. 이제 남포(南圃) 김 선생(金先生)의 유집(遺集)을 보건대, 그 시문이 모두 온후평담(溫厚平淡)하고 질직간요(質直簡要)하여 꾸미거나 답습하는 고루함이 없었다. 의리 가운데서 화락하였고 법도 안에서 거동하였으니 진실로 도가 있는 선비였다.인효(仁孝)의 성대한 세상을 당해서는 유술(儒術)을 흠모하고 훌륭한 선비를 초치하며 이를 숭상하고 양성하는 교화가 한 세상을 감동시키니, 산림과 암혈 사이에서 글을 읽고 행실을 닦는 선비들이 조정에서 드러나지 않음이 없었다. 크게는 공경(公卿)과 사부(師傅)가 되었고 작게는 추천1)하는 사례에라도 들어있었던 것이다. 선생 또한 남녘에서 몸을 일으켜 문을 닫고 강습하였는데도 재상(宰相)들이 입을 모아 말하니, 명성이 위로 알려져서 예를 갖춰 부르는 명이 누차 적막한 물가에까지 이르렀다. 아! 성대하다. 진실로 도가 있는 세상이었도다.도가 있는 선비로서 도가 있는 세상을 만나서, 마땅히 출사해 쓰이고 조정의 정사를 보필해야 할 것 같은데 숲 아래 소요하며 농사를 짓다 몸을 마치는 것은, 아마도 그 사이에 때를 만나고 못 만난 차이가 있어서 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반드시 자신을 헤아린 것이 분명했거나 스스로 지조를 지킨 것이 있었을 것이다.근세 학자들이 은거하며 뜻을 추구하지만 세상일은 겪은 적이 없으니, 사람들은 혹 알맹이 없는 빈말일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이제 유집 가운데 《경세통전(經世通典)》 한 권을 고찰해보니 안으로 관(官)의 제도와 과거 선발, 밖으로 부세(賦稅)와 역역(力役)에 이르기까지 무릇 국가를 다스리는 도구들에 대해 대강을 들고 분류를 나눠 매우 자세하고 빠뜨린 것이 없었다. 여기에서 깊이 마음을 썼고 충분히 헤아려 다듬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를 경영하는 군자가 채택하여 쓴다면 장차 《반계수록(磻溪隨錄)》2)과 더불어 나란히 반드시 전해질 불후의 글이 될 것이니, 조각난 문서와 찢어진 책 편으로 상자 속에 묻혀있겠는가? 원컨대 공의 후손들은 이를 보배처럼 중히 여기고 공경히 간직하여 뒷날을 기다릴지어다.경인년(1830, 순조30) 동짓달 하순에 면주(綿州) 외사 지제교(外史知製敎) 청성(靑城) 심계석(沈啓錫)이 삼가 쓰다. 讀其書。 當觀其人。 觀其人。 當論其世。 今見南圃金先生遺集。 其詩文皆溫厚平淡。 質直簡要。 無藻飾蹈襲之陋。 而雍容乎義理之中。 步驟乎規矩之內。 信乎其爲有道之士也。 盖當仁孝盛際。 傾嚮儒術。 招延賢俊。 崇奬培植之化。 動一世。 林樊巖穴之間。 讀書修行之士。 莫不顯揚于朝。 大則爲公卿師傅。 小猶在剡薦之例。 先生亦起身南服。 杜門講習。 而宰相交口。 名聲上達。 旌招之命。 累及於寂寞之濱。 吁! 嗟盛矣。 信乎其有道之世也。 以有道之士。 値有道之世。 宜若出而需用。 裨補朝政。 而低回林下。 耕稼沒身者。 抑或有遇不遇於其間者歟。 不然其必有自量者審而自守者存矣。 近世學者隱居求志。 未嘗經涉世務。 人或疑之以空言無實。 然而今考集中。 經世通典一卷。 內而官制科選。 外而賦稅力役。 凡所以出治之具者。 綱擧部分。 纖悉無遺。 此可見用心之苦而揣摩之熟。 若使經國之君子。 採而用之。 將與磻溪隨錄。 並爲必傳不朽之書。 其可以斷簡殘篇。 埋沒於箱衍之中乎? 願公之後孫。 寶重而敬藏之。 以俟後日焉。 庚寅至月下澣。 綿州外史知製敎靑城沈啓錫謹撰。 추천 원문의 '섬천(剡薦)'으로, 중국 섬계(剡溪) 지방에서 생산된 종이에 추천을 쓴 데에서 유래된 말이다. 반계수록(磻溪隨錄) 유형원(柳馨遠)의 저술로 전제(田制), 교선(敎選), 임관(任官), 직관(職官), 녹제(祿制) 등 다섯 분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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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언고시 七言古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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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회를 우연히 읊다 感懷偶吟 검각85)이 평지 되고 劍閣平地평지가 검각 되며 平地劍閣곤옥86)이 연석87) 되고 崑玉燕石연석이 곤옥 되네 燕石崑玉맑은 바다에 가을바람이 일어나고 淸海起秋風미친 파도가 은빛 물결88)을 몰아치네 狂濤駕銀屋이백이 고래를 탄 듯89) 李白忽騎鯨원통한 기운 푸른 하늘에 드리우네 寃氛薄蒼霄이락90)과 곡구91)에 살았던 늙은이여 居伊洛谷口翁길이 생각하여도 밤처럼 아득히 멀구나 長相思夜迢迢아득히 멀어 볼 수 없는데 迢迢不可見귀밑머리 세어 절로 쓸쓸하네 鬂雪自蕭蕭차라리 잠들어 깨고 싶지 않거늘92) 尙寐欲無訛걱정하다가 날이 새어버렸네 耿耿逮明發사람들 모두 나에게 취하길 권하지만 人皆勸我醉푸른 산 석양에 취하지 않았네 未醉靑山夕즐겁지 않다 하여 어찌 길이 근심하리오 不樂何爲長鬱悒흰 갈매기와 누런 학은 본래 무심하다네 白鷗黃鶴本無心외로운 산 정자 위 밝은 달이 남았으니 孤山亭上餘明月오솔길 가득한 한매 찾는 것이 어떠하리 一逕寒梅盍往尋 劍閣平地, 平地劍閣.崑玉燕石, 燕石崑玉.淸海起秋風, 狂濤駕銀屋.李白忽騎鯨, 寃氛薄蒼霄.居伊洛谷口翁, 長相思夜迢迢.迢迢不可見, 鬂雪自蕭蕭.尙寐欲無訛, 耿耿逮明發.人皆勸我醉, 未醉靑山夕.不樂何爲長鬱悒, 白鷗黃鶴本無心.孤山亭上餘明月, 一逕寒梅盍往尋. 검각 낙양에서 촉(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관문으로, 천 리가 잔도(棧道)로 이어지는 지극히 험한 길로 알려져 있다. 이백의 〈촉도난(蜀道難)〉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곤옥 곤륜산(崑崙山)에서 나오는 아주 좋은 옥을 가리킨다. 연석 연산(燕山)에서 생산되는 영석(嬰石)으로 옥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옥이 아닌 돌이다. 송(宋)나라의 어리석은 자가 이 돌을 얻고는 큰 보물이라 여겨 애지중지하다가 웃음거리가 된 고사가 있는데, 이후 어리석은 자 혹은 허식(虛飾)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를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太平御覽 卷51 地部16》 은빛 물결 원문의 '은옥(銀屋)'은 높은 파도를 형용한 말이다. 이백(李白)의 〈사마장군가(司馬將軍歌)〉에 "강중의 하얀 파도는 은빛 지붕 같은데, 몸은 하괴에 임하여 장막 안에 앉았도다.〔江中白浪如銀屋 身居玉帳臨河魁〕"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3》 이백이 고래를 탄 듯 두보(杜甫)의 "고래를 타고 가는 이백〔李白騎鯨魚〕"이라는 시구가 있다. 《唐才子傳 李白》 당(唐)나라 마존(馬存)의 〈연사정(燕思亭)〉이란 시에 "이백이 고래 타고 하늘로 날아 올라가니, 강남 땅 풍월이 한가한 지 여러 해라.〔李白騎鯨飛上天 江南風月閑多年〕"라는 구절이 있다. 이락 이수(伊水)와 낙수(洛水)를 지칭하는데, 명도(明道) 정호(程顥)와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이 부근에 살았다. 정호(程顥)와 정이(程頤)가 강학하던 이천(伊川)과 낙양(洛陽)을 가리킨다. 곡구 한대(漢代)의 은사(隱士) 정박(鄭樸)이 은거하던 곳이다. 정박의 자는 자진(子眞)인데, 그는 처음부터 조정의 부름을 사절하고 곡구에 은거하여 일생을 마쳤다. 《漢書 卷72 王吉傳》 차라리 …… 않거늘 《시경》 〈왕풍(王風) 토원(兎爰)〉에 "온갖 근심 모여드니, 차라리 잠이 들어 깨어나지 말았으면.〔逢此百罹, 尙寐無吪.〕"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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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으로 돌아가는 형 군문 개94)를 전송하며 送邢軍門玠還京師 황제 이십칠년95) 皇帝二十有七載장군이 무사히 도성으로 돌아가네 將軍無事還京師소국의 적은 백성을 황제께서 가엽게 여겨 小國寡民帝所憐갈림길에서 무슨 말 주고자 했나 臨歧欲贈將何詞우리 조정 이백 년 종묘사직 我朝宗社二百年예악과 문물은 중화의 의식을 따랐네 禮樂文物遵華儀황제 은혜 미치는 곳마다 천하가 맑아지니 皇恩隨處寰宇淸오래도록 태평성대 기약하였네 準擬長占昇平期지난 임진년 봄 이월을 생각하면 憶昨壬辰春二月정녕 우리 임금 치세96)였네 正是吾君垂拱時오직 현송97) 소리 상서98)에 가득한데 唯聞絃誦滿庠序어지러운 전쟁을 어찌 생각이나 하랴 紛紛兵革何思惟누가 알랴 섬나라 왜구가 황제의 교화를 막아 誰知島寇梗皇化우리나라에 참상을 입힐 줄 坐使東域生瘡痍천 척의 배 하룻밤에 바다를 날듯이 건너니 千艘一夕飛渡海순식간에 도성에 비바람이 부네 倏忽王城風雨吹조정은 장자방99)처럼 계책 낼 겨를이 없고 廟堂無暇子房籌전장에는 진평의 기묘한 계책100) 미치지 못했네 沙場未及陳平奇흉악한 칼날이 이르는 곳마다 공이가 뜰만큼 피가 흘러넘치고101) 兇鋒到處血漂杵수많은 마을은 백골로 빈 땅을 메웠네 千村白骨塡空基백성들은 생사 앞에 말조차 못 하는데 蒼生生死不可言외로운 군신들은 어디로 가는가 孑孑君臣何所之만 리 밖 의주에서 〈식미〉102)를 읊조리니 萬里龍灣賦式微눈 내린 변방 달 비친 관문 처량함만 더하네 塞雪關月堪凄悲우리 왕이 지성으로 황제 마음을 감격시켰으니 吾王至誠感帝衷어찌 진나라에서 굶던 포서의103) 신세에 이르겠는가 豈待秦庭包胥飢시서를 익힌 노련한 장수가 홀연 단에 오르니 詩書老將忽登壇범 같은 두상 원숭이 같은 팔 실로 영웅의 자태였네 虎頭猿臂眞英姿뛰어나고 우뚝한 마음으로 일만 병사를 품었으니 胸襟卓卓藏萬兵대궐의 파목104)이 공이 아니고선 누구이겠는가 禁中頗牧非公誰칼에 기대면 남산의 백호가 달아나고 倚劍南山走白額활을 쏘면 장교 아래의 이무기가 놀라네105) 彈弓橋下驚蛟螭황제께서 네가 가서 왜구106)를 정벌하고 帝曰汝往征不軌난을 평정하여 위태로운 조선을 도와라 하셨네 蕩平扶我東藩危씩씩하게107) 삼십 만 병사가 출정하니 桓桓出師三十萬햇빛에 창을 번쩍거리며 앞다투어 내달렸네 金戈耀日爭奔馳혁혁한 황제의 위엄이 구주108)에 진동하고 赫赫皇威動九州삼군109)의 씩씩한 기상이 오랑캐를 능멸하였네 三軍壯氣凌蠻夷장막 안의 훌륭한 계책110)은 극맹과 같고 嘉猷幕中有劇孟문 앞에 늘어선 용사들은 모두 범과 곰111) 같으니 列戟門前皆虎羆황소112)가 저도 모르게 걸상에서 떨어져 울 터 黃巢不覺下床泣석륵113)이 어찌 감히 금구114)를 엿보리 石勒何敢金甌窺팔 년 요망한 기운을 일시에 걷고 八載妖氛一時捲유악115)에서 신묘한 계책 베풀었네 自是帷幄神謀施마원처럼 구리 기둥으로116) 공을 자랑하지 않고 馬援休誇銅柱功한유처럼 〈평회서비〉를117) 찬술하지 않았지만 韓愈莫撰淮西碑만백성이 환호하고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萬姓歡呼拜稽首모두들 요순의 신하 고요와 기와 같다고 하였네 咸曰堯舜臣皐夔개선하면 응당 두터운 총애 입으리 旋師應荷寵渥優생각건대 화곤과 부월118)로 영화를 더하리라 想見華鉞增榮滋명성을 어찌 하인들만 알겠는가 聲名豈獨走卒知큰 공로 역사119)에 길이 전하리라 鴻功竹帛傳無虧이로부터 육로와 수로로 사해가 통하니 自此梯航通四海온 세상이 다시 화락하고 태평해졌네120) 可使一世回雍熙서생 또한 외람되이 은혜와 교화 속에서 書生亦忝恩化中춤을 추며 다시 〈청아〉121)의 시를 불렀네 舞蹈更唱菁莪詩생각건대 한 마디 말을 대궐에 아뢰었거늘 思將一言達九重황제의 조정에서 알고 계시는지 借問皇朝知不知우리 왕께서 처음부터 그 덕을 잃지 않아 我王初非失其德늦게까지 정사 살피느라122) 걱정이 많으셨네 宵衣丙枕多憂思훈육이 빈 땅을 침범하자 고공단보가 옮겨 가123) 獯鬻侵豳亶父移이는 사람이 아니라 실로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었네 不是人爲天實爲자연에 따라 성하고 자연에 따라 쇠락하니 自然而盛自然衰흥망성쇠의 권력을 누가 잡았는가 盛衰權柄其誰持옛날 요동성에서 오랑캐 기병을 물리쳤으니 伊昔遼城却虜騎우리나라에 남아가 없다고 말하지 마오 莫道吾國無男兒남산은 높고 한강은 밝아 南山峨峨漢水明예로부터 영웅호걸이 여기에서 태어났다네 古來英傑生於玆흥망 속에 시대가 바뀌고 인사도 변하나 興亡遞代人事變앞에는 을지문덕이요 뒤에는 김유신이 있네 後有庾信前乙支더구나 이제 우리 임금께서는 何況如今我主聖암혈의 현자까지 남김없이 망라하였으니 網羅巖穴賢無遺어찌 훌륭한 장수와 죽을 각오한 신하 豈無良將志死綏예리한 병기를 든 강한 병사가 무수히 따르지 않겠는가 利兵勁卒紛相隨아! 국운이 매우 어지러워 嗟嗟國運極濛厖부산의 한 번 패배로 병사들이 절로 피폐했거늘 一敗釜山兵自疲원수의 조정에 무릎 꿇은 자 하나도 없으니 屈膝讎庭無一人만약 배양하지 않았다면 이와 같겠는가 若非培養能如斯공께서 돌아가 혹시 이 뜻을 기억하실런지 公歸倘記此意否천자께서 물으시매 헛된 말이 없으리 天子有問無虛辭 皇帝二十有七載, 將軍無事還京師.小國寡民帝所憐, 臨歧欲贈將何詞.我朝宗社二百年, 禮樂文物遵華儀.皇恩隨處寰宇淸, 準擬長占昇平期.憶昨壬辰春二月, 正是吾君垂拱時.唯聞絃誦滿庠序, 紛紛兵革何思惟.誰知島寇梗皇化, 坐使東域生瘡痍.千艘一夕飛渡海, 倏忽王城風雨吹.廟堂無暇子房籌, 沙場未及陳平奇.兇鋒到處血漂杵, 千村白骨塡空基.蒼生生死不可言, 孑孑君臣何所之.萬里龍灣賦式微, 塞雪關月堪凄悲.吾王至誠感帝衷, 豈待秦庭包胥飢.詩書老將忽登壇, 虎頭猿臂眞英姿.胸襟卓卓藏萬兵, 禁中頗牧非公誰.倚劍南山走白額, 彈弓橋下驚蛟螭.帝曰汝往征不軌, 蕩平扶我東藩危.桓桓出師三十萬, 金戈耀日爭奔馳.赫赫皇威動九州, 三軍壯氣凌蠻夷.嘉猷幕中有劇孟, 列戟門前皆虎羆.黃巢不覺下床泣, 石勒何敢金甌窺.八載妖氛一時捲, 自是帷幄神謀施.馬援休誇銅柱功, 韓愈莫撰淮西碑.萬姓歡呼拜稽首, 咸曰堯舜臣皐夔.旋師應荷寵渥優, 想見華鉞增榮滋.聲名豈獨走卒知, 鴻功竹帛傳無虧.自此梯航通四海, 可使一世回雍熙.書生亦忝恩化中, 舞蹈更唱菁莪詩.思將一言達九重, 借問皇朝知不知.我王初非失其德, 宵衣丙枕多憂思.獯鬻侵豳亶父移, 不是人爲天實爲.自然而盛自然衰, 盛衰權柄其誰持.伊昔遼城却虜騎, 莫道吾國無男兒.南山峨峨漢水明, 古來英傑生於玆.興亡遞代人事變, 後有庾信前乙支.何況如今我主聖, 網羅巖穴賢無遺.豈無良將志死綏, 利兵勁卒紛相隨.嗟嗟國運極濛厖, 一敗釜山兵自疲.屈膝讎庭無一人, 若非培養能如斯.公歸倘記此意否, 天子有問無虛辭. 형 군문 개 군문은 총독군무아문(總督軍務衙門)의 약칭이다. 명나라 경략(經略) 형개(邢玠, 1540~1612)를 말한다. 형개의 자는 진백(搢伯)이며 호는 곤전(昆田)이다. 1571년(융경5)에 진사가 되어 밀운지현(密雲知縣)ㆍ어사(禦史)ㆍ순무(巡撫) 등을 지냈다. 1597년(만력25)에 풍신수길(豐臣秀吉)이 조선을 침범하자 계요 총독(薊遼總督)으로 파견되어 왜군을 크게 무찔러 병부 상서(兵部尙書)에 이르렀고, 죽은 후 태자태보(太子太保)에 추증되었다. 조선에서는 선무사(宣武祠)라는 사당을 세워 그 공을 기렸다. 황제 이십칠년 만력(萬曆) 27년으로 선조 32년, 1599년이다. 치세(治世) 원문의 '수공(垂拱)'은 무위지치(無爲之治)를 가리킨다. 《서경》 〈무성(武成)〉에 "옷을 늘어뜨리고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있어도 세상이 잘 다스려진다.[垂拱而天下治]"라고 하였다. 현송 옛날 《시경(詩經)》을 배울 적에 거문고와 비파 등 현악기에 맞추어 노래로 불렀는데 이를 현가(絃歌)라고 한다. 그리고 악기의 반주 없이 낭독하는 것을 송(誦)이라고 하는데, 이 둘을 합하여 현송이라고 칭한다. 곧 수업하고 송독하는 것을 말한다. 상서 중국 고대의 향교(鄕校) 즉 지방 학교 이름인데 후대에는 학교를 범칭한 말로 쓰인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맹자가 양혜왕에게 왕자(王者)의 다스림에 대해 논하면서 이르기를 "상서의 가르침을 삼가서 효제의 의리로써 거듭한다면 머리가 반백이 된 자가 길에서 짐을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지 않을 것입니다.[謹庠序之敎, 申之以孝悌之養, 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라고 하였다. 장자방 한(漢)나라의 개국공신 장량(張良)으로, 자방(子房)은 그의 자이다. 장량은 뛰어난 계책을 내어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으나, 천하가 평정된 뒤에 한 고조가 제(齊)나라 땅 3만 호(戶)를 봉해 주려고 하자 이를 사양하고 유후(留侯)에 봉해지는 것에 만족하였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진평의 기이한 계책 한(漢)나라 진평(陳平)이 고조(高祖) 유방(劉邦)을 위하여 올린 여섯 가지 기이한 계책을 이른다. 《사기(史記)》 권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진평에 대해 "여섯 가지 기이한 계책을 올리자 제후들이 한나라에 복종하였다.[六奇旣用, 諸侯賓從於漢.]"라고 하였다. 공이가 …… 흘러넘치고 《서경(書經)》〈무성(武成)〉의, "피가 흘러 절굿공이가 떠내려갔다.〔血流漂杵〕"라는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식미〉 《시경》 〈식미(式微)〉에 "쇠할 대로 쇠했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式微式微, 胡不歸.]"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진나라에서 굶던 포의서 신포서(申包胥)는 춘추 시대 초(楚)나라 사람으로, 소왕(昭王)의 대부(大夫)를 지냈다. 오자서(伍子胥)가 오(吳)나라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초나라 수도 영(郢)을 함락하자, 진(秦)나라의 애공(哀公)에게 7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울며 구원병을 청하였다. 《史記 卷66 伍子胥列傳》 대궐의 파목 문무를 겸비하고 재략(才略)이 탁월한 형개를 뜻하는 말이다. 파목은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명장인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을 병칭한 말인데, 당 선종(唐宣宗) 때 한림학사 필함(畢諴)이 강족(羌族)을 격파할 대책을 상세히 올리자, 황제가 "우리 조정의 시종신 중에 염파와 이목 같은 명장이 있을 줄 어떻게 생각이나 했겠는가.〔孰謂頗、牧在吾禁署!〕"라고 하고, 필함을 절도사로 임명해서 공을 세우게 했던 고사가 있다. 《新唐書 卷183 畢諴列傳》 칼에 …… 놀라네 원문의 '백액(白額)'은 남산에 사는, 이마가 희고 난폭한 호랑이를 말한다. 중국 삼국 시대 주처(周處)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주처는 젊었을 때 힘이 세고 난폭하여 마을에 해를 끼치고 다녔다. 어느 날 마을의 노인에게 "시절도 좋고 농사도 풍작인데 어찌하여 즐거워하지 않습니까?" 하고 묻자, 노인이 한숨을 쉬며, "세 가지 폐해가 없어지지 않는데 무어 즐겁겠는가?" 하였다. 주처가 그게 무어냐고 묻자, "남산에 있는 이마가 흰 호랑이〔白額虎〕와 장교(長橋) 아래에 사는 이무기와 자네라네." 하였다. 주처는 호랑이를 때려잡고 이무기를 죽였으나, 사람들이 도리어 그를 더욱 두려워하였다. 이후 주처는 열심히 학문을 닦고 자신을 다스려 훌륭한 인물이 되었으며, 진(晉)나라에서 벼슬하여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었다. 뒤에 제만년(齊萬年)의 반란에 후퇴하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晉書 卷58 周處列傳》 왜구 원문의 '불궤(不軌)'는 마땅히 좇아야 할 법이나 도리에 벗어났다는 뜻으로, 모반이나 반역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왜구를 의미한다. 한(漢)나라 가의(賈誼)의 〈과진론(過秦論)〉에 "비록 교활한 백성이 있더라도 주상을 떠난 마음이 없다면, 불궤(不軌)의 신하가 그 간사한 지혜를 꾸밀 길이 없어서 포란(暴亂)의 간사함이 그쳐집니다.〔雖有狡猾之民 無離上之心 則不軌之臣無以飾其智 而暴亂之奸弭矣〕"라고 하였다. 씩씩하게 《시경(詩經)》 〈주송(周頌) 환(桓)〉의 "씩씩한 무왕이여, 그 땅을 보전했도다.[桓桓武王, 保有厥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구주 중국 전역을 지칭하는 말이다. 《상서(尙書)》 〈우공(禹貢)〉에서는 예주(豫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양주(梁州), 옹주(雍州), 기주(冀州), 연주(兗州)를 '구주'라고 하였다. 삼군 제후국의 군사로, 중국 고대 주(周)나라의 군대 편제에서 비롯하였다. '군(軍)'은 군사의 단위로, 다섯 사람이 '오(伍)'가 되고 5오가 '양(兩)'이 되고 4양이 '졸(卒)'이 되고 5졸이 '여(旅)'가 되고 5려가 '사(師)'가 되고 5사가 '군(軍)'이 되므로 1군은 1만 2500명이고 6군은 7만 5000명이 된다. 또한 천자는 6군을 거느리고, 큰 나라는 3군을 거느리고, 작은 나라는 2군을 거느리고, 아주 작은 나라는 1군을 거느린다. 《周禮注疏 卷28 下官 司書》 훌륭한 계책 원문의 '가유(嘉猷)'는 나라를 다스리는 훌륭한 계책이라는 뜻으로, 《상서(尙書)》 〈군진(君陳)〉에 "그대에게 훌륭한 계획과 계책이 있거든 들어가 궁중에서 그대 임금에게 아뢰고 그대는 밖에서 거기에 따르라.[爾有嘉謀嘉猷, 則入告爾后于内, 爾乃順之于外.]"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범과 곰 원문 '호비(虎羆)'는 《서경》 〈목서(牧誓)〉에 "부디 굳세고 굳세어 범과 같고 비휴와 같으며 곰과 같고 큰곰과 같이 상나라 교외에서 싸워 도망하는 자들을 맞아 공격하여 서토 사람들을 노역하게 하지 말라.[尙桓桓如虎如貔, 如熊如羆于商郊, 弗迓克奔, 以役西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용감한 장병을 의미한다. 황소 820~884. 당나라 말기 반란군의 지도자로 왕선지가 난을 일으키자 그를 따르다가, 왕선지가 죽자 남은 무리를 이끌고 수도 장안(長安)을 점령하여 국호를 '대제(大齊)'라 하였으나, 뒤에 관군에게 패하여 자살하였다. 이 일로 당나라는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석륵 274~333. 중국 16국 시대 후조(後趙)의 건국자로, 상당 무향(上黨武鄕) 사람이며 갈족(羯族)이다. 유연(劉淵)에게 투항하여 대장이 되었다가 319년 후조(後趙)를 건국하고 조왕이라 일컬었다. 금구 금으로 만든 사발을 말하는데, 흠이 없고 견고하다 하여 강토(疆土)에 비유된다.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일찍 일어나 무덕각(武德閣)에 이르러 "나의 국토는 금구와 같아서 하나의 상처도 흠도 없다.[我家國猶若金甌, 無一傷缺.]"라고 말한 데서 유래하였다. 《양서(梁書)》 〈후경열전(侯景列傳)〉 유악 본래 대장의 진영에 치는 장막을 이르던 말로 전(轉)하여 임금의 곁에서 나라의 정사(政事)를 늘 함께 의논하는 참모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장악(帳幄) 안에서 계책을 운용하여 천 리 밖의 승리를 결단하는 것은 내가 자방(子房)만 못하다."라고 했던 데서 왔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마원처럼 구리 기둥으로 원문의 '동주(銅柱)'는 구리로 만든 기둥으로 국경을 표시하는 데 사용하였다. 《후한서(後漢書)》 권24 〈마원열전(馬援列傳)〉에 "교남이 모두 평정되었다.[嶠南悉平]"라고 한 내용에 대한 주석에서 《광주기(廣州記)》를 인용하여 "마원이 교지에 이르러 동주를 세워 한나라의 경계로 삼았다.[援到交阯, 立銅柱, 爲漢之極界也.]"라고 하였다. 한유처럼 〈평회서비〉에 당나라의 한유(韓愈)가 지은 글로, 헌종(憲宗) 때 회서선위초토처치사(淮西宣慰招討處置使)가 되어 오원제(吳元濟)의 반란을 평정한 재상 배도(裴度)의 공을 으뜸으로 서술하였다. 《古文眞寶後集 平淮西碑》 화곤과 부원 원문의 '화월(華鉞)'은 화곤(華袞)과 부월(鈇鉞)의 약칭이다. 여기서는 임금에게 받는 최고의 은총이라는 뜻을 말한다. 역사 원문의 '죽백(竹帛)'는 죽소(竹素)과 같은 말로, 글을 대쪽이나 헝겊에 쓴 데에서 연유하여 사서(史書)나 서책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화락하고 태평해졌네 원문의 '옹희(雍熙)'는 천하가 잘 다스려져서 화락(和樂)한 모양을 뜻한다. 요순(堯舜) 때의 정치를 찬양하는 말에서 유래한다. 진(晉)나라 장형(張衡)의 〈동경부(東京賦)〉에 "백성들이 부유함을 함께하고, 상하가 그 옹희(雍熙)를 함께 누린다.〔百姓同於饒衍 上下共其雍熙〕"라고 하였다. 〈청아〉 〈소아(小雅) 청청자아(菁菁者莪)〉로 인재를 양성함을 노래한 시이다. 《시경》 〈청청자아(菁菁者莪)〉에 "무성하고 무성한 쑥이여, 저 언덕 가운데 있도다.[菁菁者莪 在彼中阿]"라고 하였다. 늦게까지 정사 살피느라 원문의 '소의(宵衣)'는 소의간식(宵衣旰食)과 같은 말로, 임금이 새벽에 일어나고 밤늦게 밥을 먹는다는 뜻인데, 정치에 부지런히 힘쓰는 것을 의미하고, 원문의 '병침(丙枕)'은 병야(丙夜 3경(三更))에 잠자리에 든다는 뜻으로 임금이 정사를 살피다가 늦게야 잠자리에 드는 것을 말한다. 훈육이 …… 옮겨 가 고공단보(古公亶父)는 주(周) 나라 문왕(文王)의 조부(祖父)이고, 훈육은 고대 북방(北方)의 소수 민족 이름으로 중국을 자주 침범하여 포악한 짓을 일삼았다. 고공단보가 빈(豳) 땅에 살고 있을 때 훈육이 침범하자 사람들은 모두 싸우고자 하였는데, 고공단보는 차마 살상을 할 수 없다 하여 기산(岐山) 아래로 옮겨 가니 빈 땅 사람들이 모두 그를 따라갔다. 이에 비로소 주(周)라는 국호를 정하였다. 《書經 武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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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칠언사운에 차운하여 又次七言四韻 관중과 포숙이 함께 살지 않음을 꺼렸거늘 曾嫌管鮑未同居오히려 아름다운 명성 만대에 성하구나 猶自流芳萬代餘수년 동안 자리를 함께했던 그대와 나 連席數年君共我굳은 우정 훗날까지 변치 않으리 斷金他日子兼余강에 막혀 삼 년이나 이별했건만 隔江謾作三秋別아득히 사월 초에 만나기를 기약하네 會面遙期四月初서울의 수십 만 집을 돌아보지만 回首長安家十萬타향의 답답한 마음 누구에게 하소연할까 羈懷鬱鬱向誰攄 曾嫌管鮑未同居, 猶自流芳萬代餘.連席數年君共我, 斷金他日子兼余.隔江謾作三秋別, 會面遙期四月初.回首長安家十萬, 羈懷鬱鬱向誰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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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又 나그네가 남산 가까이 사는데 客寓南山近매미 우는 소리가 먼 숲에서 울리네 蟬聲咽遠林국화는 가련하게 비를 막 맞는데 菊憐新得兩사람은 오랜 친구와 이별을 한다네 人別舊知音처량한 저녁 무릎 감싼 채 읊조리며72) 抱膝吟凉夕밤늦도록 벗과 함께 앉았네 友㶊坐夜深고향으로 돌아갈 날 다다르니 桑鄕歸日迫떠남과 머무름 모두 마음쓰이네 去住摠關心 客寓南山近, 蟬聲咽遠林.菊憐新得兩, 人別舊知音.抱膝吟凉夕, 友㶊坐夜深.桑鄕歸日迫, 去住摠關心. 처량한 …… 읊조리며 제갈량(諸葛亮)의 〈포슬음(抱膝吟)〉을 차용한 것이다.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이 출사(出仕)하기 전 남양(南陽)에서 몸소 농사를 지을 때 〈양보음(梁甫吟)〉이란 노래를 지어 매일 새벽과 저녁이면 무릎을 감싸 안은 채 길게 불렀던 데서 유래한 말로, 고인(高人)과 지사(志士)가 시를 읊어 심회를 푸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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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移居 조물주가 어느 해에 작은 언덕을 잉태하여천년 동안 남겨 두고서 나의 유람을 기다렸나남아는 바위 골짜기에 깃들일 필요 없으며농사짓는 늙은이 어찌 들판 도랑을 따로 마련한 적이 있었던가산은 푸른 비녀230) 두르고서 상서로움을 바치고물은 현주(玄酒)231) 머금고서 옥구슬 연주하네아침저녁 안개와 노을로 입안을 닦으니치아와 혀 청량하여 상쾌한 기운 모이네 造物何年孕小邱却留千載待吾遊男兒不必棲巖壑農老何曾別野溝山帶碧簪呈寶瑞水含玄酒奏瓊球烟霞朝暮漱牙頰齒舌淸凉爽氣收 푸른 비녀 푸른 산봉우리를 말한다. 현주(玄酒) 물을 의미한다. 먼 옛날 아직 단술[醴酒]이 발명되기 전에 술 대신 물을 사용하였는데, 물 색깔이 검은색이므로 물을 '현주(玄酒)'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 후한(後漢)의 유학자 정현(鄭玄)은 이에 대해 설명하기를, "현주는 새로 길은 물이다. 비록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여전히 진설하는 것은 옛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玄酒 新水也 雖今不用 猶設之 不忘古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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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분위오대절 中庸分爲五大節 수장(首章)이 저절로 제일대절(第一大節)이 된다. 이 절에서는 '성도교(性道敎) '세 글자를 말하니 한 편의 강령(綱領)이 된다.중니(仲尼)의 '왈장(曰章)'으로부터 '귀신장(鬼神章)'까지가 제이대절(第二大節)이 된다. 이 절은 성도교 세 글자 중에 도(道)를 끄집어내어 말했다. 맨 먼저 '도지난행난명(道之難行難明)'을 말하고, 이어서 '지인용(知仁勇)' 세 글자를 말해 도(道)에 들어가는 문으로 삼았다. 다음으로 '군자(君子)의 도'를 말했으니 가깝게는 부부(夫婦)로부터 멀리는 천지(天地)에 이르고 '귀신 불견불문지극(鬼神不見不聞之極)'에 이른 연후에 그쳤다.'순기대효장(舜其大孝章)'으로부터 '애공문정장(哀公問政章)'까지가 제삼대절(第三大節)이 된다. 이 절은 상절(上節) '지비지은지도(至費至隱之道)'를 이어서 성인의 가르침이 또한 지비(至費)하고 지은(至隱)함을 말했다. 대개 맨 먼저 성인의 가르침은 한 가정에서 말미암고 한 가정의 가르침은 효보다 큰 게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대순(大舜)·문무(文武)·주공(周公)의 효로써 말했다. 다음으로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극치를 말했으니 성인의 가르침 또한 여기에 이르러 더할 것이 없게 된다.'성명장(誠明章)'부터 '유천하지성장(惟天下至誠章)'까지가 제사대절(第四大節)이 된다. 이 절은 상절(上節) '천도인도지언(天道人道之言)'을 이어서 '성도교(聖道敎)' 세 가지 것의 의(義)를 통론(統論)했다. 대개 천도(天道)·인도(人道)의 의(義)는 다음 장이 앞장보다 점점 고원해져서 천도를 말하면 '진기성(盡其性)'에서 시작하여 '천류돈화지극(川流敦化之極)'에서 끝마치고, 인도를 말하면 '치곡(致曲)'113)에서 시작하여 '발육만물지성(發育萬物之盛)'에서 끝마치니, '성도교(性道敎)' 세 가지 것의 의(義)는 그 안에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게 된다.말장(末章)은 저절로 제오대절(第五大節)이 된다. 이 절은 제일절(第一節)과 서로 합치된다. 다만 제일절(第一節)은 은(隱)은 말하여 비(費)에 이르고, 여기의 일절(一節)은 비(費)를 말하여 은(隱)에 이른다. 대개 수장에서 '근독지사(謹獨之事)'를 말하고 미루어 '천하평지성(天下平之盛)'에 이르고, 말장(末章)은 '화민지교(化民之敎)'의 말로 시작하여 다음으로 '덕유여모(德輶如毛)'를 말하여 솔성(率性)의 도(道)를 풀이했다. 마지막에는 '무성무취(無聲無臭)'를 말하여 천명(天命)의 성(性)을 풀이했다. 정(程) 선생의 이른바 '마지막에 다시 합하여 일리(一理)를 만들었다.'114)라는 것이 이것이다. 首章自爲第一大節。 此節言性道敎三字。 爲一篇之綱領。 自仲尼曰章至鬼神章。 爲第二大節。 此節於三字中拈出道字言之。 首言道之難行難明。 仍發知仁勇三字。 爲入道之門。 次言君子之道。 近自夫婦。 遠至天地。 以至於鬼神不見不聞之極然後已焉。 自舜其大孝章。 至哀公問政章爲第三大節。 此節承上節至費至隱之道。 言聖人之敎。 亦至費而至隱。 盖首言聖人之敎。 由於一家。 一家之敎。 莫大於孝。 故以大舜文武周公之孝言之。 次引夫子之言。 以言治天下國家之極致。 聖人之敎。 至此無以加矣。 自誠明章。 至惟天下至誠章爲第四大節。 此節承上節天道人道之言。 而統論聖道敎三者之義。 盖天道人道之義。 一章深於一章。 漸漸高遠。 言天道則始於盡其性而終於川流敦化之極。 言人道則始於致曲。 終於發育萬物之盛。 而性道敎三者之義。 無不備於其中矣。 末章自爲第五大節。 此節與第一節相合。 但第一節言隱而至於費。 此一節言費而至於隱。 盖首言謹獨之事。 推而至於天下平之盛。 末章始言化民之敎。 次言德輶如毛。 以釋率性之道。 終言無聲無臭。 以釋天命之性。 程夫子所謂末復合爲一理者此也。 치곡(致曲) 성(誠)이 미흡하여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대현(大賢) 이하의 사람들도 자기의 부분적인 선단(善端)을 확대하여 지성(至聖)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중용장구》 제23장에 "천하지성의 성인 다음가는 사람도 부분적인 선을 점차 확대해서 지성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부분적인 선단으로도 내면이 성실해질 수 있으니, 내면이 성실해지면 밖으로 금방 드러나고, 일단 드러나면 갈수록 현저해지고, 현저해지면 환히 밝아지고, 환히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이 감동을 하면 변화되고, 변화되면 동화된다. 이와 같이 오직 천하의 지성이어야만 남을 동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其次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 爲能化.]"라는 말이 나온다. 마지막에 …… 만들었다 《중용》의 체제에 대해 정자가 "《중용》은 처음에 일리를 말하고, 중간에 흩어져서 만사가 되었다가, 마지막에 다시 합하여 일리가 되었다.[其書始言一理, 中散爲萬事, 末復合爲一理.]"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중용장구》 제1장 원문 아래 주석으로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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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사우 춘추 향축문 [유명현] 楓山祠宇春秋享祝文 [柳命賢] 끊긴 전통을 끌어내어 풀고그 연원에 잠겨 노닐면서전해지지 않은 것을 얻었으니백대토록 존숭을 받으시리라이제 춘정40)을 맞아서정성스런 제사가 마땅하니삼가 희생과 폐백으로진설하여 정결히 올립니다 紬繹絶緖。 涵泳淵源。 得其不傳。 百世式尊。 玆値春丁。 精禋是宜。 謹以牲幣。 式陳明薦。 춘정(春丁) 해마다 중춘(仲春)의 달 처음 돌아오는 정일(丁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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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夫子墻) 夫子墻 夫子墻 고서-집부-총집류 정치/행정-과거-시권 고서 원문 夫子墻 성책 미상 전북대학교 한국학자료센터 윤재의(尹在義), 김치성(金致聖), 이병순(李秉淳), 이종원(李鍾遠), 황인험(黃仁驗) 등이 작성한 부(賦)를 옮겨 적은 복본(複本) 시권(試券) 조선후기의 소과 혹은 소과에 연관된 시험에 응시했던 자들이 작성한 시권(試券)을 옮겨 적은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소과나 문과 혹은 소과나 문과와 연관된 시험에 응시했던 자들의 답안지를 옮겨 적은 예가 많았는데, 이런 자료들을 편의 상 복본시권(複本試券)이라고 부르고 있다. 복복 시권을 제작하는 이유는 당연히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과나 소과를 준비하는 자들이, 본인보다 앞서 문과나 소과에 도전했던 자들이 남긴 글들을 보고 싶어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문장이 뛰어난 사람들의 글이나 혹은 소과나 문과에 성공한 사람들의 글을 주로 보고 싶어 하였는데, 복본 시권 중에는 서사가(書寫家)들이 판매를 목적으로 제작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복본 시권은 대소과를 준비하는 자가 직접 옮겨 적은 일들이 많았다. 복본 시권의 제목은 매우 다양하였다. 책문의 경우는 동책(東策), 동책정수(東策精粹), 대책(對策), 책문(策文) 등으로 적었고, 표(表)나 부(賦)나 시(詩) 등은 여문(儷文) 東表(東表), 동부(東賦), 려문(驪文), 과려(科儷), 려문(儷門), 려식(儷式), 려휘(儷彙), 병려화조(騈儷華藻), 표격(表格), 표규(表規), 표식(表式), 과문규식(科文規式), 표추(表椎), 과문(科文), 백중(百中) 벽옹(辟雍)등 매우 다양하였다. 위의 제목 중에서 식(式)이 붙은 것은 글을 짓는 형식적인 내용, 다시 말해서 표나 부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그 방식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지금 소개하는 복본 시권에는 제목이 적혀 있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는 있었는지 전래되는 과정에서 탈락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내용은 6자체의 부(賦)가 수록되어 있는데, 시권의 주인공은 대부분 18세기에서 19세기에 생존한 인물들로 추정된다. 각각의 글에는 시험장에서 제시된 부제(賦題)와 함께 그 부를 지은 사람, 그 부가 언제 어떤 시험장에서 출제되었는지, 그러니까 그 부를 언제 지었는지, 그 부를 제출하여 몇 등의 성적을 받았는지 등에 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데, 모든 글마다 그런 것은 아니다. 간단하게 답안 작성자와 성적만 적은 경우도 많다. 그런가하면 그 부가 작성된 시험장의 시험관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기록도 들어 있다. 그런데 본 복본시권에 나오는 시제(試題)들은, 소과방목이나 혹은 여타 조선시대 소과와 관련한 자료집에서는 거의 확인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소과의 초시나 복시에서 출제된 시제들이 아니라 승보시(陞補試)나 외방의 초시(初試)에서 출제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본 복본 시권에 나오는 시제들을 정리한다면 조선후기의 소과에 출제된 시제들의 성향이나 특징을 파악하는 데 그리고 그 출제되는 시제들이 시대적으로 어떤 특징을 보였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된다. 한편 부자장이라고 이름 붙인 본 시권의 분량은 표지를 제외하고 82장 164면이다. 하나의 면에 한 사람의 시권이 전사되어 있으므로, 수록된 전체 시권 수는 164개가 된다. 시권 작성자를 보면 윤재의(尹在義), 김치성(金致聖), 이병순(李秉淳), 이종원(李鍾遠), 황인험(黃仁驗)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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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말에 삼신산(三神山)232)이 모두 우리나라에 있다고 하였는데, 내가 사는 땅이 선포(仙圃)233)이다. 이에 이 시를 지어 감흥을 일으키다 有人言三神山皆在我國。吾所居地是仙圃。仍題此而起興。 부상(扶桑)234)의 푸른 바닷가에 우리 집이 있으니오색구름 깊은 곳이 바로 청구(靑邱)라오큰 붕새 나는 하늘 너머는 선계와 속세 구분 짓고푸른 학 나는 봉우리 앞엔 해와 달 떠오르네향기 나는 옥지(玉芝)235) 봄에도 시들지 않고이슬 젖은 선초(仙草) 객이 거두어 가지 않네섬돌 옆의 흰 사슴236) 한가로이 잠에서 깨어삼청동(三淸洞)237) 안으로 넘어가 노니네 家住扶桑碧海頭五雲深處是靑邱大鵬天外仙凡限靑鶴峯前日月浮香惹玉芝春不老露滋瓊草客無收階邊白鹿閒眠起跨向三淸洞裏遊 삼신산(三神山) 중국 전설에 나오는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 세 산을 가리킨다. 중국 동쪽의 발해(渤海) 가운데 있다고 한다. 선포(仙圃) 신선이 약초를 심어 놓았다는 전설 속의 밭을 말한다. 부상(扶桑) 해가 뜨는 곳에 있다는 전설상의 나무의 이름으로 흔히 동쪽 지역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우리나라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옥지(玉芝) 선경(仙境)에 있는 영지(靈芝)다. 장형(張衡)의 〈사현부(思玄賦)〉에, "서왕모를 은대로 찾아가서, 옥지를 올려 배고픔 다스리게 하네.[聘王母于銀臺兮 羞玉芝以療飢]"라 한 대목이 보인다. 흰 사슴 선계에서 노니는 동물이다. 《신선전(神仙傳)》 〈유근(劉根)〉에 선인(仙人) 한중(韓衆)이 흰 사슴이 끄는 수레[白鹿車]를 타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으며, 진(晉)나라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 권8 사보(史補)에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선도(仙道)를 좋아하였는데 당시 서왕모가 백록(白鹿)을 탄 사자(使者)를 무제에게 보내 자신이 올 것임을 알렸다는 고사가 전한다. 삼청동(三淸洞) 도교에서 말하는 천상 세계로, 삼동(三洞)의 교주(敎主)가 사는 최고의 선경(仙境)인 옥청경(玉淸境), 상청경(上淸境), 태청경(太淸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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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中庸 성인(聖人)이 성인의 손자에게 도(道)를 전하니239)만 가지 이치 분명하여 하나의 근원으로 모이네찌꺼기도 남아 있지 않아 해와 달처럼 밝고240)지극한 정성 쉼 없는 것 천지를 본받았네241)아홉 길 높이로 만든 산242) 참되게 쌓았음243)을 알겠고바다에 이르는 온갖 하천 본원이 있네염락(濂洛)과 신안(新安)244) 지금 적막하니솔개 날고 물고기 뛰어 오르는 이치245) 누가 말할 수 있으리오 聖人傳道聖人孫萬理分明總一元査滓不存昭日月至誠無息體乾坤爲山九仞知眞積達海百川有本源濂洛新安今寂寞鳶飛魚躍孰能言 성인(聖人)이……전하니 《중용(中庸)》은 공자(孔子)의 손자 자사(子思)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찌꺼기도……밝고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불순한 요소들을 깨끗하게 정화한다는 말이다. 《논어(論語)》 〈태백(泰伯)〉 8장의 주에, "사람의 성정을 함양하며 간사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털어내고 찌꺼기를 말끔히 정화시킨다.[可以養人之性情 而蕩滌其邪穢 消融其査滓]"라 하였고, 《심경부주(心經附註)》 〈예악불가사수거신장(禮樂不可斯須去身章)〉에, "자질이 아름다운 자는 밝히기를 극진히 하면 찌꺼기가 바로 완전히 변화하여 천지와 체가 같아지고, 그다음 사람은 오직 장엄하고 공경하는 자세로 붙잡아 기를 뿐이지만, 그 귀결점은 하나이다.[質美者明得盡 査滓便渾化却 與天地同體 其次惟莊敬持養 及其至則一也]"라는 정호(程顥)의 말이 나온다. 지극한……본받았네 《중용 장구》 제26장에,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으니, 쉬지 않으면 내면에 오래 간직하게 되고, 내면에 오래 간직하다 보면 밖으로 징험이 드러나게 된다. 밖으로 징험이 드러나면 이 세상에서 길이 지속되고, 길이 지속되면 넓고 두터워지게 되고, 넓고 두터워지면 높고 밝아지게 된다. [至誠無息 不息則久 久則徵 徵則悠遠 悠遠則博厚 博厚則高明]"라 한 데서 온 말이다. 아홉……산 부지런히 쌓아 올린 공을 말한다. 《서경》 〈여오(旅獒)〉에, "아홉 길 높이의 산을 쌓는데, 공이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는 데서 무너진다.[爲山九仞 功虧一簣]"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참되게 쌓았음 원문은 '진적(眞積)'이다. 학문에 대한 노력을 진실하게 쌓아 나가는 것을 말한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참되게 쌓아 가며 오래도록 노력해야만 학문의 경지에 들어서게 되는데, 학문은 죽음에 이른 뒤에야 그만두는 것이다.[眞積力久則入 學至乎沒而後止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염락(濂洛)과 신안(新安) '염락(濂洛)'의 '염'은 곧 염계(濂溪)로 송나라 주돈이(周敦頤)이가 거주하던 곳이고, '낙'은 곧 낙양(洛陽)으로 정호(程顥)‧정이(程頤) 형제가 거주하던 곳이다. 또한 '신안(新安)'은 중국 안휘성(安徽省)의 지명으로 주희(朱熹)의 관향이다. 곧 송 나라의 성리학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솔개……이치 천지에 드러난 도(道)의 오묘한 작용을 이른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2장에, "《시》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못에서 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천지의 도가 높은 하늘이나 낮은 못이나 모두 똑같이 행해지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詩云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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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맑은 강의 저물녘 흥취 春日淸江晩興 아름다운 경치 상쾌히 유람함에 풀 무성하니눈앞 가득 조화옹(造化翁)의 솜씨 아님이 없네봄 나무 그림자 푸른 시냇물에 잠겨 있고저녁노을은 붉은 석양 두르고서 돌아가네물가 부들의 싹 새벽비에 빛나고산 살구꽃 오후 바람에 날리네강가에서 낚시하는 늙은이 무슨 일이 있으리오한 가닥 낚싯줄 저물녘 안개 속에 높이 걸어두었네 淸遊佳景草芃芃滿目無非造化工春樹影潛溪水碧落霞歸帶夕陽紅渚蒲芽白朝前雨山杏花飛午後風江上釣叟何事有一絲高掛暮烟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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