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권3 卷三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전문 箋文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중전이 건강이 좋지 않아 죄인을 사면하는 교서를 반포하는 글 中殿失寧頒赦文 잘못이 없이 재액에 걸렸으니약을 쓰지 않는 기쁜 일1)을 점치지 않아도 알아라.선을 쌓아 넘치는 경사가 있으리니이에 사생2)의 은혜를 미뤄 넓혔어라.함께 살면서그들이 다시 시작하게 하려는 것이네.삼가 생각건대, 일찍이 건도와 짝하여끝내 곤의를 바르게 하였어라.유정한 덕3)을 드러내니모두들 천년 뒤의 태사4)라고 칭하였네.공은 사직에 남아 있으니십난 가운데 읍강5)에 부끄럽지 않아라.하늘이 명복의 반포를 시행하였고백성들이 복록의 노래를 널리 전파하였네.어찌 생각이나 했으리, 세자6)가 문안드리다가7)왕비께서 건강이 좋지 않다고 갑자기 전할 줄을.한 달 넘게 병으로 앓아산천도 규벽8)에 응하지 않았어라.그때 혹한의 날씨라인삼, 복령의 탕약도 도움이 되지 못하였네.이에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오랫동안 질곡의 고통당한 것을 생각하였어라.죄가 있건 없건 간에모두 천지에서 같은 기를 받았으니임금이 되건 백성이 되건똑같이 몸에 질병의 아픔이 있누나.만약 억울한 원망이 있다면어찌 천지에 감통하리오.이에 백성의 부모된 마음으로자제들의 허물을 기록하지 않으리.법에 오형이 있으니비록 큰 죄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였어도,여덟 가지를 따져본9) 뒤에 권도를 따라마땅히 잡범은 용서해 주어야 한다.오호라! 죄가 의심스럽거든 가볍게 처리하고공은 의심스럽거든 무겁게 처리하라10) 했으니온 삼한이 은혜를 함께 받도록 하라.어그러진 기는 재앙을 이르게 하고온화한 기운은 상서로움을 이르게 하니백성들과 함께 장수의 지경에 오르게 하노라.그러므로 이에 교시하나니마땅히 자세히 알 것이라 생각하노라. 无忘1)罹災未卜勿藥之喜積善有慶玆推肆眚之恩欲其幷生與之更始恭惟夙配乾道終正坤儀德著幽貞咸稱千載後太姒功存社稷不愧十亂中邑姜天申命服之頒民播福履之詠何圖鶴駕之問寢遽報翟幃之愆和月餘彌留山川未應於圭壁時當嚴沍湯劑無賴於蔘苓爰思囹圄之囚久被桎梏之苦有罪無罪同受氣於生成作君作民均在身之疾痛苟有冤怨何能感通肆以父母之心不錄子弟之過五刑有法雖大憝之必誅八議從權宜雜犯之見宥云云嗚呼罪疑惟輕功疑惟重擧三韓共沐恩波乖氣致灾和氣致祥與百姓同躋壽域故玆敎示想宜知悉 잘못이……일 《주역》 〈무망괘(无妄卦) 구오(九五)〉에 "아무런 까닭이 없이 걸린 병이니, 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낫는 희소식이 있으리라.[无妄之病, 勿藥有喜.]"라고 하였다. 사생 사생(肆眚)은 무의식적으로 범한 실수나 상황이 불운해서 지은 죄는 용서하여 풀어 주는 것을 말한다. 유정한 덕 유한정정(幽閑靜貞)의 준말로 곧 왕비의 정숙한 덕을 말한다. 태사 문왕의 부인이나 무왕의 어머니이다. 십난……읍강 난(亂)은 치(治)의 뜻으로, 주 무왕(周武王)에게 난신(亂臣) 10인이 있었는데, 그중에 무왕의 처 읍강(邑姜)이 들어 있다. 《書經 泰誓》 새자 '학가(鶴駕)'는 《열선전(列仙傳)》에 "주영왕(周靈王)의 태자(太子) 진(晉)이 흰 학을 타고 칠월 칠일 산봉우리에 두어 날을 머물다 떠나갔다."라고 하였는데, 뒷사람이 태자의 행차를 이르게 되었다. 여기서는 태자를 가리킨다. 세자가 문안드리다가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와 세자 광해군을 가리킨다. 규벽 신명(神明)에게 제(祭)를 올릴 때 폐백으로 쓴 것인데, 무왕(武王)이 병이 들자 주공(周公)은 규벽을 가지고 제를 지내면서, 자신이 대신 죽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였다. 여덟 가지를 따져본 형벌을 적용할 때 감안해 주는 여덟 가지 경우를 말한다. 첫째는 의친(議親)인데, 황제의 단문(袒免) 이상의 친족과 황태후의 시마(緦麻) 이상의 친족 및 황후의 소공(小功) 이상의 친족이 해당된다. 둘째는 의구(議舊)인데, 옛 친구가 해당된다. 셋째는 의현(議賢)인데, 큰 덕행이 있는 사람이 해당된다. 넷째는 의능(議能)인데, 큰 재주와 공업(功業)이 있는 사람이 해당된다. 다섯째는 의공(議功)인데, 큰 공훈이 있는 사람이 해당된다. 여섯째는 의귀(議貴)인데, 직사관(職事官)은 3품 이상, 산관(散官)은 2품 이상, 급작(及爵) 1품이 해당된다. 일곱째는 의근(議勤)인데, 큰 노고가 있는 사람이 해당된다. 여덟째는 의빈(議賓)인데, 선대(先代)의 후손으로 국빈(國賓)이 된 자가 해당된다. 《唐律疏議 名例》 죄가……처리하라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법관인 고요(皐陶)가 순(舜) 임금의 살리기 좋아하는 덕을 찬양하면서 "죄가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가벼운 쪽으로 처벌하고, 공이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중한 쪽으로 상을 주었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형법대로 집행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감수하려고 하였다.[罪疑惟輕 功疑惟重 與其殺不辜 寧失不經]"라고 하였다. '忘'은 '妄'의 오류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창원에서 역적 허균이 복주된 것을 하례하는 전문 昌原賀逆筠伏誅箋 나라의 법은 상도(常道)가 있으니역적의 죄인을 어찌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리오.이에 왕업의 큰 토대가길이 반석같이 편안한 곳에 올리어질 것이라.무릇 보고 듣는 이들은모두 발을 구르며 춤을 출 것이라.삼가 생각건대, 덕이 견고한 상성께서중흥의 운을 만났어라.11)총애하는 은전이 자주 명에서 내려와스물네 글자의 휘호를 크게 받았어라.훌륭한 업적은 선대왕보다 많아서천만 대의 크나큰 계책을 성대하게 열었네.누가 감히 그 사이에 모반의 싹을 지녀서스스로 부월의 죽임으로 나아가랴.뜻밖에도 집안의 적자가또한 나라에 난신이 되었어라.모친이 돌아가셔도 상을 지내지 않으니이것이 차마 하는 것이요.자신은 죽음을 당해도 죄는 남거늘무엇이 괴로워 배반하는가.정상은 자술서에 이미 드러났으니대중들이 버림에 처형을 어찌 늦추리오.12)《춘추》의 군친을 해하려는 마음과 한법의 대역무도13)는너에게서 나왔으니 너에게로 돌아간다14)는 것이니 처벌해야 하네.오형을 두루 논하여 삼족을 아울러 멸해야 하니꾀를 냄에 공교로우면 그 꾀에 넘어간다15)는 경우의 밝은 증험이라.비록 그의 목숨이 여우 쥐처럼 미약하다고 해도나라에 있어서 그 경사 승냥이 이리를 없앤 듯하여라.삼가 생각건대 남쪽 고을의 백수 늙은이북궐 향하여 일편단심이라네.천세 부르며 축원하는데16)원로의 반열17)에 달려가지 못하지만해는 멀리 있고 하늘은 높으니해바라기의 정성은 시들지 않아라. 邦刑有常逆竪豈容乎網漏罪人斯得丕基永措於磐安凡在瞻聆無非蹈舞恭惟德固上聖運値中興寵典屢自天朝誕膺卄四字之徽號嘉績多于先烈蔚啓千萬歲之洪圖誰敢孽芽其間自就鈇鉞之戮不意家之賊子又於國爲亂臣母歿不臨喪是可忍也身死有餘罪何苦叛乎情狀旣露於自供誅討寧緩於衆棄春秋無將漢法不道出乎爾反乎爾之通辭五刑具論三族幷夷工於謀敗於謀之明驗雖渠命本微狐鼠在國慶若除豺狼伏念白首南州丹心北闕嵩呼華祝鴛鷺之班未趨日遠天高葵藿之傾不替 중흥의 운을 만났어라 중흥은 반정(反正)을 가리키니, 여기서는 인조의 반정을 이른다. 대중들이……늦추리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사람을 시장에서 처형하여 대중들과 함께 그를 버린다.[刑人於市 與衆棄之]"라고 하였다. 춘추의……대역무도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장공(莊公) 32년조에 "장래에 군주나 부모에 대하여서는 배반하겠다고 생각만 하고 아직 실천에 옮기지 아니하였다고 하여도 용서받지 못하고 주살한다.[君親無將, 將而誅焉]'라고 하였으며, 같은 책 소공(昭公) 원년 조에 "군친(君親)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보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만약 어떻게 해보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는 반드시 복주시켜야 한다.[君親無將 將而必誅焉]"라고 하였다. 한 고조(漢高祖)가, 항우(項羽)가 의제(義帝)를 강남(江南)에서 시해하자 대역부도라고 하였다. 《史記 高祖本紀》 너에게서……돌아간다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증자가 말하기를, '경계하고 경계하라.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戒之戒之 出乎爾者 反乎爾者也]'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선과 악은 자신이 남에게 베푼 대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뜻이다. 꾀를……넘어간다 《고문진보》 〈서오대곽숭도전후(書五代郭崇韜傳後)〉에서 "모략을 좋아하는 선비는 모략에 패망하고 변론을 좋아하는 선비는 변론에 패망한다.[好謀之士, 敗於謀, 好辯之士, 敗於辯.]"라고 하였다. 축원하는데 '화축(華祝)'은 화봉인(華封人)의 삼축(三祝)을 줄인 말로,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는 말이다. 화 땅을 지키는 사람[華封人]이 요 임금에게 수(壽)와 부(富)와 다남(多男)을 축원했다는 《장자(莊子)》 〈천지(天地)〉의 일화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서는 다만 축원하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원로의 반열 '원로(鴛鷺)' 원추새와 백로인데, 이 두 새는 모습이 한아(閑雅)하고 질서가 있다 하여 조정 반열에 늘어선 백관을 비유하는 말로 곧잘 쓰인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이생(李生)【유인(有仁)】에게 주는 편지 與李生【有仁】書 누추하고 궁벽한 곳에 거듭 방문해주시고 또 지은 글을 보여 주시니, 배움에 대한 뜻이 두텁고 논의가 넓음을 흠모하고 공경합니다. 기본이 이와 같으니, 수립하는 것의 어려움을 어찌 근심하겠습니까? 몹시 탄복할 따름입니다.다만 세상에서 이 일을 하는 자는 두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마음 지키기만을 전적으로 하는 자는 문자를 천하게 여기고 언사(言辭)를 풍부하게 하는 자는 본체를 소홀히 여기니, 이는 고금의 공통되는 근심입니다. 초학자는 다만 마땅히 옛 사람이 이루어 놓은 법을 준수하고 법도를 어기지 않아 견문을 넓히고 몸소 실천하며 몸소 실천하고 마음과 몸을 밝게 한 뒤에야 말을 하고 글을 이루어 선현(先賢)들에 부합하고 후세에 모범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육경(六經)의 전술(傳述)이 천하를 두루 방문한 뒤에 이루어졌고143) 두 책의 장구(章句)가 기유년(1189년)에 지어졌던 것144)이니, 도(道)가 무르익고 덕(德)이 이루어진 때에 말을 세운 것은 도가 행해지지 않은 뒤에 지은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한 글자라도 혹 잘못되어 후세 사람을 그르칠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비루하고 못난 견해로 평소 정한 것이 이와 같기 때문에 이에 감히 대략 언급하였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어진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말에 병통이 있다면 깨우쳐 주시기를 바랍니다.그대가 지은 글 가운데 두세 군데 의문이 있는 곳에 모두 먹을 칠하여 표시하거나 각주를 달아 두었습니다. 비루한 견해가 맞는지 틀린지를 또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부지런히 찾아와 주신 데 감격하여 광망함과 경솔함이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몹시도 부끄럽습니다. 봄이 저물기 전에 혹 직접 만나서 물을 수 있겠습니까? 重臨陋僻。又辱眎所製文篇。欽尙向學意篤。論議廣博。根基若此。何患樹立之難也。傾服傾服。但世之爲此事者有二病。專內守者賤文字。富言辭者忽本軆。此古今之通患。初學但當遵守古人成法。不違繩墨。聞見博而踐履實。踐履實而心體明。然後吐言成章。可以有符於往哲。垂法於來世。是以六經傳述。成於歷聘之後。二書章句。述於己酉之年。盖以言立於道熟德成之日者。非徒不行而後作也。亦恐一字或舛。以誤後人也。鄙拙之見。素定如此。故玆敢略及。未知賢意以爲如何。其言有病。幸相箴可也。賢述文字二三所疑處。皆以墨抹以標之。或有註脚。鄙見得失。亦可回敎。感惠顧之勤。狂率至此。愧仄萬萬。春未暮。或可面扣耶。 육경(六經)의……이루어졌고 '육경(六經)'은 유가(儒家)의 여섯 가지 경서를 말한다. 곧 《시경(詩經)》‧《서경(書經)》‧《예기(禮記)》‧《악기(樂記)》‧《역경(易經)》‧《춘추(春秋)》로, 공자가 천하를 주유한 뒤인 말년에 편찬하였다고 전해진다. 두……것 주희(朱熹)가 60세 되던 1189년에 《대학장구》와 《중용장구》를 완성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희는 〈대학장구서〉와 〈중용장구서〉를 각각 1189년 2월과 3월에 작성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문생(文生)145)【사고(師古)】에게 주는 편지 與文生【師古】書 눈 속을 헤치고 찾아와 주신 일이 마치 어제의 일과 같습니다. 가르쳐 주시고 돌아봐 주시는 사이에 봄날이 이미 화창해졌는데, 이러한 때에 또 안부를 묻는 편지를 받고서 산 위의 높은 재(齋)에서 날마다 맑은 수양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저로 하여금 머리를 들고 정신이 향하도록 합니다.말씀하신 성복(成服)146)하였을 때의 제사는 예(禮)에 비록 별도로 마련된 글이 없기는 하나 조전(朝奠)은 습속을 따라 설행하더라도 정리(情理)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듯합니다.어육(魚肉)을 날것으로 쓰는 문제는 아마도 율곡(栗谷)을 따르는 것이 옛 뜻에 부합하는 것일 듯한데, 사계(沙溪)147)와 같은 분께서도 또한 습속이 오래되어 바꾸기 어렵다는 뜻을 면치 못하셨으니,148) 하물며 그 아래에 있는 자에 있어서이겠습니까?기름으로 지진 음식은 예를 따라야 함을 의심할 것이 없으니149) 예를 좋아하는 선비가 속세의 논의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누가 감히 시비하겠습니까?홀(笏)을 잡는 예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옛날에 선비는 대나무 홀을 사용하였으니 임금과 어른을 섬길 때 항상 이를 사용하였습니다.150) 지금 세속에서는 부모를 섬길 때 살아계실 적에 이미 이러한 의절(儀節)이 없으므로 율곡께서 간략함을 따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축문(祝文)을 사르는 문제는 마땅히 주자(朱子)를 따르는 것이 옳으니, 《집설(集說)》을 따라서는 안 될 듯합니다.151)어제 선친의 기일에 곡을 하였기에 병든 정신이 다 소모되고 마음이 아득합니다. 급하게 쓰느라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雪裏來訪。如昨日事。指顧之間。春日已和。此時又承存問。知山上高齋。日有淸修。令人首擡而神馳也。所喩成服之奠。禮雖無別設之文。仍朝奠從俗設行。似無大妨於情理耶。魚肉生用。恐從栗谷。爲得古意。而以沙溪亦未免習久難變之意。况出其下者耶。膏煎之物。從禮無疑。好禮之士。砥柱於俗論。則誰敢非是哉。執笏之禮。古者士用竹笏。事君事長之常用也。今俗事親。生旣無此節。故栗谷從簡耶。焚祝當從朱子爲正。集說恐不可從矣。昨哭先忌。病神頓喪。志意茫然。走草不一。 문생(文生) 문사고(文師古, 1637~1701)를 가리킨다.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부모의 상(喪)에 효성을 다하였으므로 효자로 이름이 났으며, 학문에도 힘을 쏟았다. 성복(成服) 상례에 있어서 대렴(大斂)을 마친 다음 날 복(服)에 따라 상복(喪服)을 입는 것을 말한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을 가리킨다. 사계(沙溪)는 그의 호.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희원(希元)이다. 이이(李珥)의 문인이다. 1578년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창릉 참봉(昌陵參奉)이 된 뒤 정산 현감(定山縣監), 호조 정랑, 안성 군수(安城郡守), 형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상례비요(喪禮備要)》, 《가례집람(家禮輯覽)》, 《전례문답(典禮問答)》, 《의례문해(疑禮問解)》 등의 저술을 남겼다. 어육(魚肉)을……못하셨으니 《사계전서(沙溪全書)》 〈의례문해(疑禮問解)‧시제(時祭)〉에, "《주자가례(朱子家禮)》에서 말한 어육(魚肉)은 생어육입니까? 율곡(栗谷)은 생어육을 썼는데, 이를 따라서 행해도 무방합니까?[家禮 魚肉是生魚肉否 栗谷用生 遵此行之 無妨否]"라는 송준길(宋浚吉)의 물음에 대해, 김장생이 "《주자가례》에서 이른바 어육은 생어육이 아니라 바로 어탕(魚湯)과 육탕(肉湯)이네. 율곡이 생어육을 쓴 것은 비록 《서의(書儀)》에 근거한 것이지만, 《의례》 궤식례(饋食禮)와 다르기에 일찍이 집안 어른께 질문하고 우계(牛溪)께도 질문하였더니, 답하기를, '생어육과 숙어육(熟魚肉)을 함께 섞어 쓰는 것이 비록 고례이기는 하지만, 《주자가례》에 이르러서는 주자께서, 「연기(燕器)로써 제기(祭器)를 대신하고, 상찬(常饌)으로써 조육(俎肉)을 대신한다.」라 하셨으니, 생어육을 쓰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하였네.[家禮所謂魚肉 非生魚肉也 乃魚湯肉湯也 栗谷之用生 雖本於書儀 與儀禮饋食禮不同 嘗質于家庭 問于牛溪 答曰 參用生熟 雖是古禮 至於家禮 則朱子曰 以燕器代祭器 常饌代俎肉 則不用生 明矣]"라 하여, 제사에서는 생어육을 쓰지 않는다고 답한 내용이 보인다. 다만 그가 생어육을 쓰는 문제에 대해 습속이 오래되어 바꾸기 어렵다고 한 내용에 대해서는 미상이다. 기름으로……없으니 《의례주소(儀禮注疏)》 〈기석례(旣夕禮)〉에, "전물(奠物)로 쓰는 가루음식[糗]은 모두 기름으로 지지지 않는다.[凡糗不煎]"라 하였고, 이에 대한 주에 "기름으로 지지면 지저분하게 되므로 공경하는 것이 아니다.[以膏煎之 則褻非敬]"라 한 내용이 보인다. 홀(笏)을……사용하였습니다 '홀(笏)'은 천자 이하 제후‧대부‧사가 조복을 입거나 제례 등을 올릴 때 손에 드는 판이다.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홀의 제도를 말하면서 "천자는 옥을 사용하고, 제후는 상아를 사용하며, 대부는 물고기 수염으로 꾸민 대나무를 사용하고, 사(士)는 밑을 상아로 꾸민 대나무를 사용한다.[天子以球玉 諸侯以象 大夫以魚須文竹 士竹本象 可也]"라 하였다. 축문(祝文)을……듯합니다 《주자가례(朱子家禮)》 〈통례(通禮)‧사당(祠堂)〉에, "무릇 축판은 길이가 1척, 높이가 5촌 되는 판을 사용해 만드는데, 종이에 글을 써서 그 위에 붙이고, 의식이 끝나면 떼어 내어 불에 태운다.[凡言祝版者 用版長一尺 高五寸 以紙書文 黏於其上 畢則揭而焚之]"라 하였다. '집설(集說)'은 명나라 풍선(馮善)이 지은 《가례집설(家禮集說)》을 가리키는 듯하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정처직(鄭處直)152)에게 부치는 편지 寄鄭處直帖 요즈음 평소 한가하게 지내시는 체후를 진중히 하고 계십니까? 듣건대 어제 공들이 거문고를 가지고 함께 노래 부르며 월연대(月延臺) 위에서 성대한 모임을 가지셨다고 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과연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까? 국상(國祥)153)이 바로 이 달에 있어 군부(君父)께서 아직 담복(禫服)154)을 입고 계신데, 신민(臣民)이 된 자가 높은 곳에 올라 음악을 연주한다면 온당치 못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처(私處)에 있더라도 오히려 해서는 안 될 일인데, 하물며 전패(殿牌)155)를 봉안하는 읍부(邑府)에 있어서이겠습니까? 해서는 안 될 일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공들은 평소에 원래 마음을 다하고 독실하게 행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이가 이미 연로하였으니, 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재(齋) 안의 신진(新進)으로서 배움에 뜻을 둔 사람들이 반드시 공들을 모범이 되는 선진(先進)으로 여길 것이요, 이러한 일 또한 반드시 본보기로 삼을 것이니, 이는 경계하고 두려워할 지점이 아니겠습니까? 비루한 제가 공들에 대해 소회가 있어 굳이 이와 같이 고하였으니, 바라건대 주제넘고 경솔한 점에 대해 노여워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此日雅况珍嗇。聞昨日公輩。携琴與歌。高會月延臺上云。未知果然耶。國祥未經本月。君父尙在服禫之中。爲臣民者登高作樂。無乃未安耶。在於私處。猶爲不可。况邑府殿牌奉安之地乎。决知其不可爲也。公輩平日。元非苦心篤行之人。而年已老矣。不足云矣。齋中新進向學之人。必以公輩爲先進表率之人。如此等事。亦必爲準式。則此非警懼處乎。鄙人於公輩。有懷必告如此。幸怒僭率如何。 정처직(鄭處直) 정지(鄭榰)를 가리킨다.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다. 국상(國祥) 국상(國喪)의 소상(小祥)이나 대상(大祥)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효종(孝宗)의 대상을 가리킨다. 담복(禫服) 대상(大祥)을 치른 다음 달 하순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내는 담제(禫祭) 때 입는 옷을 말한다. 전패(殿牌) 각 고을의 객사(客舍)에 봉안한 '전(殿)' 자를 새겨 세운 나무패다. 임금을 상징하는 것으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관리 전부가 모여 배례(拜禮)하였다. 훼손이나 모독하면 불경(不敬)으로 처리되어 당사자는 물론이고 수령(守令)과 그 고을까지 처벌당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영상 응제 迎祥應製 성군께서 흥기하시어 해동을 다스리시니태평성대 송축함이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똑같구나인후한 풍속 천지의 은혜에 보태지고임금의 은택 조화옹의 공에 동참했네격양가 부르는 백성들은 임금님 덕분이요봄 다투는 매화 버들은 하늘의 은혜라모든 관원 궐에서 머리 조아리니일제히 임금님 장수하시길 송축하네 聖主龍興撫海東太平歌頌邇遐同仁風添作乾坤惠睿澤同參造化工擊壤烝黎蒙帝力爭春梅柳荷天公千官稽首彤墀下齊祝堯齡等華崇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눈을 읊는데 염(鹽)자를 얻다 2수 詠雪得鹽字【二首】 적선의 시구에서 눈을 오나라 소금에 비유했는데365)우리 집 뜰에 그득 쌓이니 내가 청렴하지 않구나고을 관리가 바닷물 끓이라 재촉한다고 들었으니산야에 이미 질리도록 쌓인 줄 어찌 알랴서호에서 그 당시 팔던 상공의 소금366)천년 뒤 사람도 오히려 청렴치 않다고 비웃네오늘 밤 산에 가득 쌓여도 산이 사양치 않으니골짜기가 가장 욕심 많은 줄 비로소 알겠네 謫仙詩句比吳塩盈我中庭我不廉聞道縣官催煑海豈知山野已饜饜西湖當日相公塩千載人猶笑不廉今夜滿山山不讓始知磎壑最無饜 적선의……비유했는데 적선(謫仙)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을 가리킨다. 오(吳)나라 땅에서 생산되는 소금이 가장 희고 깨끗하였으므로 최상품의 소금을 오염(吳鹽)이라 하는데, 이백의 시에 "오나라 소금이 꽃처럼 쌓였는데 백설보다도 더 깨끗하다.[吳鹽如花皎白雪.]"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6 梁園吟》 상공의 소금 상공차(相公鹺)라고 하는데, 남송 말엽의 재상 가사도(賈似道)가 판매했던 사염(私鹽)이다. 《山堂肆考 卷194 似道販鹽》 가사도는 송 이종(宋理宗) 가귀비(賈貴妃)의 동생으로, 자는 사헌(師憲). 권세를 믿고 갖은 비행을 저지르고 황음무도한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삼짇날 박계길367)과 함께 짓다 三月三日與朴季吉共賦 협곡 어귀에 꽃샘추위로 꽃구경 더디어져짙은 꽃 빛깔이 옥 술잔에 비치게 하지 못하네노년에 강호에서 터 잡고 살려 하였는데늙도록 영로368)에 있으니 이미 기약 어겼구나 春寒峽口訪花遲不遣深紅暎玉巵白首江鄕將卜築黃昏郢路已違期 박계길 박경심(朴慶深, 1562~?)이다. 본관은 죽산(竹山)이고 계길(季吉)은 자이다. 영로 초나라의 수도인 영(郢)의 길거리로, 여기서는 도성을 뜻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권2 卷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허백당의 〈천추절〉 시51)에 차운하다 次虛白堂千秋節韻 계인52)이 파루(罷漏)를 외치자 궐문 열리니꽃 밑에 용깃발이 새벽 바람에 나부낀다백관이 찬 칼과 패옥 성대하니 그 광채 햇살에 번쩍이고금위군의 창 부딪히니 그 기개 무지개처럼 뻗었네봄이 집집마다 재촉하여 수양버들 푸르르고은혜가 천관에 두루 미쳐 취한 얼굴 붉어라외람되이 경하의 반열에 낀 못난 이 몸 부끄러우니감히 충심을 기울여 숭산에서처럼 송축할 수 있을거나53) 鷄人唱罷闢金宮花底龍旌颭曉風釰佩繽紛光耀日羽林磨戞氣成虹春催萬戶垂楊綠恩浹千官醉面紅猥厠賀班慚薄劣敢傾丹悃祝如嵩 허백당의 천추절 시 허백당(虛白堂)은 성현(成俔, 1439~1504)의 호로, 성현은 본관이 창녕(昌寧), 자가 경숙(磬叔)이다. 〈천추절〉 시는 《허백당시집》 권11 〈맹추 3일에 문화전에 나아가 천추절을 하례하다[孟秋三日, 詣文華殿, 賀千秋節]〉 시를 가리킨다. 문화전은 북경 자금성 내의 전각으로 황제의 편전과 경연 장소로 사용되었다. 계인 새벽을 알리는 일을 관장하는 벼슬아치를 말한다. 계인은 원래 주(周)나라 관직 이름으로, 국가에서 큰 의식을 거행할 때에 새벽을 알리며 백관을 깨워 일으키는 일을 관장했는데, 뒤에는 궁중의 물시계를 관리하는 사람을 일컫게 되었다. 《周禮 春官 雞人》 숭산에서처럼……있을거나 군주를 위해 송축한다는 뜻이다. 한 무제(漢武帝)가 숭산에 올랐을 때 이졸(吏卒)들이 세 번 만세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는 고사가 있다. 《漢書 武帝紀》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정씨(鄭氏)【세륜(世綸)】에게 답하는 편지 答鄭【世綸】書 그대의 나이가 아직 성동(成童)이 되지 않았는데 몸을 가다듬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부모를 섬기고, 그 부모를 섬겨 천지가 사람에게 부여한 이치에 도달하며, 더구나 부모가 질병에 걸린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책망하고 스스로 경계하여 배움을 두터이 하고 몸을 바로 세우는 근본으로 삼을 줄 아니, 기질의 아름다움과 심지(心志)의 순수함을 아름답게 여기고 훌륭하게 여길 만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이로 인하여 뜻을 세우고 배움을 부지런히 하고 힘써 행하여 원대한 데까지 이른다면, 성현(聖賢)이 되는 일은 이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요 경공(卿公)이 되는 일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힘쓰십시오.만약 이러한 자질을 가지고서 배움에 힘쓰지 않고 이러한 뜻을 가지고서 행하기를 부지런히 하지156) 않는다면 반드시 시골의 수준 낮은 사람이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라 나를 기다려 주지 않으니,157) 그대는 힘쓰십시오.마음을 평안히 하고 기운을 고르게 하여 그 자질을 고요히 기르고 책 상자를 짊어지고서 학문을 이룬 이에게 속히 의탁하기를 저는 날마다 바랍니다.임인년(1662, 39세) 12월 20일, 남교(南郊)의 병든 이는 쓰다. 爾年尙未成童。能知脩身正心以事父母。事其父母。以達於天地賦人之理。又况仍其疾病。乃知自責自警。以爲篤學立身之根本。氣質之美。心志之純。可嘉可善若此。仍此立志。勤學力行。以至遠大。則爲聖爲賢。自此可始。爲卿爲公。亦不外此矣。爾其勖哉。若有此質而學不力。有此志而行不動。則必不免鄕里下品之人。可不畏哉。日月逝矣。歲不我延。爾其勖哉。平心調氣。靜養其質。負笈擔書。速歸成學。余日望焉。壬寅十二月二十日。南郊病夫書 부지런히 하지 원문은 '동(動)'인데, 문맥을 살펴 '근(勤)'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세월은……않으니 《논어》 〈양화(陽貨)〉에,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라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日月逝矣 歲不我與]"라 하였고, 주희(朱熹)의 〈권학문(勸學文)〉에,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라 나를 기다려 주지 않으니, 아, 늙었구나, 이것이 누구의 허물인가.[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日月逝矣 嵗不我延 嗚呼老矣 是誰之愆]"라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윤군(尹君)【선삼(先三)】 및 문생(文生)【팔주(八柱)】, 조카 정씨(鄭氏)【세경(世經)】 등에게 주는 경계의 편지 與尹君【先三】曁文生【八柱】鄭侄【世經】等戒書 그대들은 시골 사람과 어울려 살고 서로 접하여 일찍이 이 일을 한 적이 없었으니, 오늘부터 시작하여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향당(鄕黨)에서는 화목함을 위주로 삼고 남을 대할 때는 공경함을 위주로 삼아야 하니, 화목하면 습속이 점차 충후(忠厚)해지고 공경하면 남들 또한 나를 공경하게 됩니다. 함께 있을 때 비록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나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노기를 얼굴에 드러내거나 말에 성난 기운을 드러내어 한 고을 안의 풍랑을 격하게 이루어서는 안 됩니다.절대로 다른 사람과 마음을 풀어놓고158) 희학(戱謔)을 일삼아서는 안 되며, 또한 다른 사람과 다름을 너무 드러내서도 안 됩니다.편지를 쓸 때는 서로 논란(論難)하기를 힘쓰고 한가할 때에는 함께 좋은 이야기를 해야 하니, 세상의 일을 언급하고 시비를 다투어 논하여 남에게 이기기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서책과 필묵 및 침구류 따위에 이르러서도 또한 각자 자신의 것을 단속해야 하니, 다른 사람들의 것과 섞어서 함께 두어 혐의의 단서를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음식이 비록 혹 극진하지 않더라도 또한 스님들을 대뜸159) 꾸짖거나 성을 내서는 안 됩니다.왕래할 때에는 고삐를 나란히 하고 채찍을 함께하여 질서정연하게 차례를 두어야지,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하여 거리가 떨어지거나 나란하지 않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이러한 몇 마디의 말은 모두 아끼는 지극한 정에서 나온 것이니, 늙고 졸렬하며 쓸모없는 사람의 헛소리라 치부하지 말고 깊이 단속하여 행한다면 그대들의 실제 행동에 또한 작은 도움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정처직(鄭處直) 군에게도 전해 드려 임인년(1662, 39세)의 일을 기억하도록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160)을사년(1665, 42세) 6월 그믐날 쓰다. 諸君與鄕人羣居相接。曾無此事。今日爲始。不可不愼。鄕黨以和爲主。接人以敬爲主。和則俗漸忠厚。敬則人亦敬我。同處之中。雖有不如意人不如意事。不宜怒形於色。言形於悖。激成一鄕中風浪。切不宜與人敬情恢謔。亦不宜表之異衆。著書則務相論難。乘閑則共打好話。不宜談及世事。爭論是非。取勝於人。至於書冊筆墨及衾枕之類。亦可各自端束。不宜與衆人相雜共置。以起嫌疑之端。飮食雖或未盡。亦不宜據加叱怒於僧輩。至於往來之際。連轡共鞭。秩然有序。不宜或先或後。間斷不齊可矣。凡此數語。皆出於相愛之至情。幸毋置之老拙無用之空談。而熟加裁制而行之。則於諸君之實行。亦不無小補云。此紙仍呈鄭君處直。記得壬寅年事否。乙巳六月晦日書。 풀어놓고 원문은 '경(敬)'인데, 문맥을 살펴 '방(放)'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대뜸 원문은 '거(據)'인데, 문맥을 살펴 '거(遽)'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이……있겠습니까 '정처직(鄭處直)'은 정지(鄭榰)를 가리킨다. 김만영은 정지가 효종의 국상(國祥)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벗들과 월연대(月延臺)에 올라 음악을 즐긴 일을 알고 편지를 보내 그를 책망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남포집》 권4 〈기정처직첩(寄鄭處直帖)〉 참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궐에서 회포를 서술하다 2수 禁中述懷【二首】 성군의 은혜 크건만 이 몸은 미천하니보답하려는 마음 지녔으나 일마다 어긋나네궐 안에서 꽃을 보니 해를 향하는 것 어여쁘고산속에서 약초를 캐니 돌아가고픈 생각 떠오르네58)노년에 시 읊조림은 가을 벌레가 울듯 괴롭고만년의 계책 저녁 새가 돌아가듯 재촉하네나월과 송운을 밤마다 꿈꾸니59)꿈꿀 땐 그곳이건만 깨고 나면 아니구나홀을 괴고 생각에 잠겨 푸른 산 마주하니60)내 어찌 세상을 등졌으랴, 세상이 나와 어긋난 게지광망(狂妄)한 뜻은 나는 나라고 자신했으나61)졸렬한 계책은 어찌하여 한번 가서 돌아오지 않는가허로는 구름이 북쪽으로 간다는 시구 읊조렸고62)소옹은 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단 말 마음으로 좇았지63)나그네 감흥은 고금에 다를 바 없으니어찌 유독 도연명만 지난날 잘못됨을 깨달았으랴64) 聖君恩重此身微欲報心將事事違禁裡看花憐向日山中採藥憶當歸老吟苦作秋蟲咽晩計催如夕鳥飛蘿月松雲夜夜夢夢時方是覺時非柱笏凝思對翠微吾何違世世吾違狂圖自信我爲我拙計云胡歸不歸許老句吟雲北去蘇翁心逐鵲南飛羈人感興無今古豈獨淵明悟昨非 궐……떠오르네 '향일규(向日葵)'라는 꽃과 '당귀(當歸)'라는 약초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나월과……꿈꾸니 꿈 속에서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나월(蘿月)은 등라(藤蘿) 사이에 뜬 달이고, 송운(松雲)은 푸른 소나무와 흰 구름으로, 고향의 풍광이나 은자의 처소를 의미한다. 홀을……마주하니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초탈한 모습을 말한다.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는 성품이 소방(疏放)하고 구속을 싫어하여, 거기장군(車騎將軍) 환충(桓沖)의 기병참군(騎兵參軍)으로 있을 때 업무를 보라는 환충에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홀(笏)로 턱을 고이고서 "서산에 아침이 오니, 상쾌한 기운이 이는구나."라고 하였다. 《世說新語 簡傲》 광망(狂妄)한……자신했으나 유하혜(柳下惠)의 고사를 인용하여, 관직 생활의 적극적 포부를 말한 것이다. 유하혜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대부로, 벼슬길에 나가서는 어짊을 숨기지 않아 반드시 그 도리를 다하였고, 버림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고 곤액을 당하여도 근심하지 않았으며,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我爲我], 네 비록 내 곁에서 옷을 걷고 몸을 드러낸들 네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孟子 公孫丑上》 허로는……읊조렸지 허로는 당나라 시인 허혼(許渾)을 가리킨다. 허혼의 〈서울에서 한가롭게 지내면서 두 도읍의 벗에게 부치다[京中閒居, 寄兩都親友]〉 시에 "만남과 이별은 때가 있으니 구름 북쪽으로 가고, 부침은 헤아릴 수 없으니 강물 동쪽으로 흘러가네.[聚散有期雲北去, 浮沈無計水東流.]"라고 하였다. 소옹은……좇았지 소옹(蘇翁)은 송나라 시인 소식(蘇軾)을 가리킨다. 삼국 시대 조조(曹操)가 〈단가행(短歌行)〉에서 "달이 밝아 별이 드문데, 까막까치 남으로 날아간다.[月明星稀, 烏鵲南飛.]"라고 하여 전란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상황을 비유했는데, 훗날 소식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달은 밝고 별은 드문데, 까막까치는 남으로 날아간다고 한 것은 조맹덕의 시가 아닌가?[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라고 하였다. 도연명만……깨달았으랴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길을 잘못 들긴 했어도 아직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으니, 지금이 옳고 지난날은 잘못된 것을 깨달았네.[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卷1》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쥐가 술동이에 들어온 것을 탄식하다 鼠入酒甕歎 큰 쥐야 큰 쥐야나의 곡식 먹지 말라곡식을 먹는 건 그래도 괜찮지만술동이 속 좋은 술은 –원문 1자 결락- 어이할꼬술동이는 네가 넘을 것이 아니요술은 네가 욕심낼 것이 아니로다네 몸은 작은 것 중에 작으나술동이 하나에 누를 끼치기 족하네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손님 저버리게 하여흰 망아지 골짝에 들이지 않네16)널 죽이더라도 남은 재앙 있을 것이요네 살을 찢더라도 진실로 속죄하기 어려우리너는 마치 등잔에 달려드는 부나방 같으니17)나는 파리가 옥 더럽힘18)을 안타까워하노라그 누가 이 허물을 책임질꼬술동이 담당한 아이종을 꾸짖노라아이종이 쥐에게 어금니 있다 하니담장 뚫린 일 송사에 비기네19)진실로 고양이 기르지 않았다면털 있는 짐승끼리 또한 서로 욕보였으리 碩鼠復碩鼠無食我苗粟食苗粟尙可奈【缺】樽中綠樽非爾可越酒非爾可欲有體微乎微累及一罇足令人負佳客白駒不入谷殺身有餘殃磔肉固難贖渠如蛾赴燈我惜蠅汚玉伊誰執此咎典守責僮僕僮言鼠有牙穿墉比訟獄苟爲不蓄猫毛蟲亦相辱 흰 망아지……않네 손님을 머물게 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시경》 〈소아(小雅) 백구(白駒)〉에 "깨끗한 저 흰 망아지가, 마당에 난 싹을 먹었다고 핑계 대고, 발을 묶고 고삐를 매어 오늘 아침을 길게 늘여서, 귀한 이 손님을, 더 놀다 가시게 하리라.……깨끗한 흰 망아지가 저 빈 골짜기에 있도다.[皎皎白駒, 食我場苗, 縶之維之, 以永今朝, 所謂伊人, 於焉逍遙.……皎皎白駒, 在彼空谷.]"라고 하였다. 등잔에……같으니 등잔불에 마구 덤벼드는 나방은 세속의 명리를 좇아 허덕이는 무리들을 비유한다. 파리가 옥 더럽힘 소인배가 군자를 무함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백벽청승(白璧青蠅)'이라 하여, 보통 백옥은 어진 사람을, 쉬파리는 참소하는 소인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시경》 〈소아(小雅) 청승(靑蠅)〉에 "앵앵거리는 쉬파리가 울타리에 앉았도다. 화락한 군자는 참소의 말을 믿지 말지어다.[營營靑蠅, 止于樊. 豈弟君子, 無信讒言.]"라고 하였다. 쥐에게……비기네 《시경》 〈소남(召南) 행로(行露)〉의 구절을 인용하여, 쥐에게 어금니가 있기 때문에 담장이 뚫린 것이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소연하는 아이종의 모습을 읊은 것이다. 《시경》 〈소남 행로〉에 "누가 '쥐가 어금니가 없으리오. 없다면 어떻게 내 담을 뚫었겠는가.'하며, 누가 '네가 실가의 예가 없으리오. 없다면 어찌 나를 송사에 불러들였겠는가.' 하건만, 비록 나를 송사에 불러들였으나 또한 나는 너를 따르지 않으리라.[誰謂鼠無牙, 何以穿我墉? 誰謂女無家, 何以速我訟? 雖速我訟, 亦不女從.]"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술에 취하여 강여관과 덕휘 두 현인에게 주다 醉贈姜汝寬德輝二賢 물이 있으나 맑은 위수가 아닌데 有水非淸渭젊은 강태공 두 사람이 오니 雙來少太公윤건을 한 늙은 제갈공명이 綸巾老諸葛초당 안으로 맞이하여 들어갔네 迎入草堂中검법을 논하니 용담70)이 말라버렸고 說劍龍潭渴병법을 말하니 호랑이 굴이 텅 비네 談兵虎穴空풍리71)가 평탄한 길을 지나가고 風驪過坦道횡운골72)이 험준한 산에서 내려오네 雲鶻下危峰나는 진실로 산속의 주인인데 余固山中主그대는 어찌 교외의 늙은이인가 君胡野外翁일천 잔 마셔도 취하지 않는데 千盃不成醉비와 눈으로 동서가 어두어지네 雨雪暗西東 有水非淸渭, 雙來少太公.綸巾老諸葛, 迎入草堂中.說劍龍潭渴, 談兵虎穴空.風驪過坦道, 雲鶻下危峰.余固山中主, 君胡野外翁.千盃不成醉, 雨雪暗西東. 용담 위험하고 흉악한 소굴로 '호혈(虎穴)'과 같은 의미이다. 풍리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주역》 팔괘(八卦)의 근원이 된 하도(河圖)를 지고 나왔다는 용마(龍馬)이다. 《王按集 益州夫子廟碑》 횡운골 천리마처럼 빨리 달리는 말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탔던 팔준마(八駿馬) 중 하나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오언배율 五言排律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친구에게 주다 贈友人 매화와 국화는 진짜 도연명73)이요 梅菊眞元氣거문고와 책은 가짜 두보74)라네 琴書僞拾遺삼대 이래의 인물 초대하여 相邀三代下함께 오호75)의 물가에 앉았네 共坐五湖湄검법을 말하던 백원76) 죽어 說劍白猿死병법을 논하던 황석77)이 슬퍼하네 談兵黃石悲누가 은둔한 이내 신세 가련히 여길까 誰憐身在遯기구한 운수를 만나 절로 애석하구나 自惜數逢奇변화의 눈물78) 어찌 뿌리리 卞淚何堪洒제나라 피리79) 불지 않으리 齊竽不肯吹푸른 산에 병든 학이 살고 靑山棲病鶴푸른 풀에 풍리80)가 누워 있네 綠草臥風驪일천 척 소나무 우뚝한데 落落松千尺계수나무 한 가지 쓸쓸하네 蕭蕭桂一枝성스럽고 밝은 시대 유유자적하며 優游聖明代태평가를 부르고 읊네 歌咏太平辭어찌 바람 앞 사초81)이겠는가 豈是風前麝골짜기 속 지초 향 희미하네 依俙谷裡芝초가집에 밤 깊은데 茅齋夜深處이끼 낀 언덕에 달빛 잠겼네 苔塢月沈時양춘곡82)을 연주하려다 欲奏陽春曲도리어 맹호연83)의 가사를 읊었네 還題孟浩詞길이 먼 곳으로 떠난84) 자가 아니라면 能非長往者어찌 고요히 생각하지 않으리 寧不靜言思 梅菊眞元氣, 琴書僞拾遺.相邀三代下, 共坐五湖湄.說劍白猿死, 談兵黃石悲.誰憐身在遯, 自惜數逢奇.卞淚何堪洒, 齊竽不肯吹.靑山棲病鶴, 綠草臥風驪.落落松千尺, 蕭蕭桂一枝.優游聖明代, 歌咏太平辭.豈是風前麝, 依俙谷裡芝.茅齋夜深處, 苔塢月沈時.欲奏陽春曲, 還題孟浩詞.能非長往者, 寧不靜言思. 도연명 원문의 '원기(元氣)' 아래에 "아마도 '亮' 자의 오류인 듯하다.〔恐亮字之誤〕"라는 소주가 붙어 있다. 문맥에 맞게 '氣'를 '亮'으로 바꿔 번역하였다. 원량(元亮)은 도연명(陶淵明)의 자이다. 두보 원문의 '습유(杜拾遺)'는 당 현종(唐玄宗) 때 우습유(右拾遺)를 지낸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오호 옛날 월나라 지역의 호수이다. 백원 춘추 시대 월인(越人) 처녀가 월왕(越王)에게 검술을 가르치려고 길을 가던 도중에 '흰 원숭이〔白猿〕'가 변신한 원공(袁公)이라는 사람을 만나, 그의 요청을 받고는 검술 시합을 하였는데, 원공이 그녀를 상대하다가 나무 위로 날아올라 다시 흰 원숭이로 몸을 바꿔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 《吳越春秋 卷9 句踐陰謀外傳》. 여기에서 유래하여 후대에 검술의 명인을 백원공(白猿公) 혹은 백원옹(白猿翁)이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황석 진(秦)나라 말기의 은사(隱士)로 황석공(黃石公)을 말한다. 장량(張良)에게 치국(治國)의 대도(大道)와 병법(兵法)을 전수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소서(素書)》라 하며, 《삼략(三略)》 또한 그가 전한 책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다만 두 책의 내용이 서로 비슷한바, 태공의 《삼략(三略)》을 황석공이 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변화의 눈물 재능을 지니고도 세상에 쓰이지 못하는 경우를 비유한 말이다. 춘추 시대 초(楚)나라 화씨(和氏) 즉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직경이 한 자나 되는 박옥을 얻어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옥을 감정하는 사람이 보고 돌이라 하여 두 발이 잘리고 말았다. 그 후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형산 아래서 박옥을 안고 사흘 밤낮을 울어 피눈물이 흘렀다. 문왕이 이 사실을 듣고 사람을 보내 "천하에 발이 잘린 사람이 많은데 그대만이 유독 이렇게 우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발이 잘린 것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 보배로운 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미치광이라 하니, 이 때문에 제가 슬피 우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옥공(玉工)을 시켜 박옥을 다듬게 하니, 직경이 한 자나 되고 티 한 점 없는 큰 옥이 나왔다 한다. 《韓非子 和氏》 제나라 피리 자격도 없는 사람이 허명(虛名)만 지니고서 자리에 끼어 있는 것을 말한다. 제 선왕(齊宣王)이 피리 연주를 좋아하여 항상 300인을 모아 합주(合奏)하게 하자, 남곽 처사(南郭處士)라는 사람이 그 자리에 슬쩍 끼어들어 국록을 타 먹곤 하였는데, 선왕이 죽고 민왕(湣王)이 즉위한 뒤에 한 사람씩 연주하게 하자 본색이 드러날까 겁낸 나머지 도망쳤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韓非子 內儲說上》 풍리 풍리는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주역》 팔괘(八卦)의 근원이 된 하도(河圖)를 지고 나왔다는 용마(龍馬)이다. 사초 사향초(麝香草)의 준말로 자술향(紫述香)의 별칭인데, 현인 군자의 아름다운 덕을 비유한다. 양춘곡 송옥(宋玉)의 〈대초왕문(對楚王文)〉이란 글에 보이는 〈양춘백설가(陽春白雪歌)〉로, 지음(知音)의 노래를 뜻한다. 어떤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처음에 〈하리파인(下里巴人)〉이란 노래를 부르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고, 다음으로 〈양아해로(陽阿薤露)〉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다음으로 〈양춘백설가〉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었던바 곡조가 더욱 높을수록 그에 화답하는 사람이 더욱 적었다 한다. 《文選 卷45》 맹호연 당나라의 시인으로, 양양(襄陽) 사람이기 때문에 맹양양(孟襄陽)이라고도 불린다. 고향 부근의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다 마흔에 진사과(進士科)에 응시했으나 실패한 뒤 평생 처사(處士)로 지냈다. 전원(田園)의 산수 경치와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의 심정을 묘사한 작품이 많다. 《新唐書 卷203 孟浩然列傳》 길이 먼 곳으로 떠난 원문의 '장왕(長往)'은 멀리 가서 영원토록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은사(隱士)들의 은거를 의미한다. 공치규(孔稚珪)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장왕했던 유인을 탄식한다.[或歎幽人長往]"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경서문대 經鋤問對 시골 농사꾼은 세상의 일에 대해 알고 힘쓰는 것이 없어 손으로 호미 들고 김매고 농사지어서 어버이 모시는 계책으로 삼고 있다. 날마다 2, 3명의 일꾼을 데리고 동쪽 언덕 아래에서 농사일하느라 체력이 다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면 호미를 놓고 언덕에 올라가 즐겁게 옛 경(經)을 읽는다. 객이 방문하여 길게 읍하고 말하기를 "무의(巫醫)·악사(樂師)·재장(梓匠)·윤여(輪輿)는 천한 기술이지만 본디 밭 갈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하물며 옛 경을 다스리는 것 또한 밭 갈면서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농부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신지(莘摯)의 뢰(耒)37)와 원량(元亮)의 서(鉏)38)를 객 또한 들어보았는가?"라고 하니, "들어봤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기를 "사군자(士君子)가 마음을 세움에 마땅히 이윤(伊尹)을 뜻 삼아 궁(窮)하여도 또한 행하며 달(達)하여도 또한 행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끝내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도연명이 지킨 절개를 지키고 사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라고 하였다.객이 발끈하여 응대하여 말하기를 "그대의 말은 응결되어 있고 사납습니다. 이윤은 성인이요, 도연명은 현인입니다. 한쪽은 성인이고 다른 한쪽은 현인이지만 성인·현인을 자처하지 않았는데 더군다나 그대가 자처하겠습니까? 그대가 어려서 학문을 좋아했다고 하지만 나이 먹어 이룬 것이 없고 하나의 뜻도 세우지 못하고 많은 허물이 운집하였으며 궁하여도 굳게 지키지 못하고 한갓 사체(四體)의 부림을 받고 있는데도 어찌 그대가 높고 크게 뜻을 세워 행동이 미치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농부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고 저 사람이 옳지 않다. 그러나 곤(鯤)이 깃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를 갈 뜻이 있고,39) 대안(岱鴈)은 털이 없는데도 천 리를 번개처럼 날아갈 마음이 있으니 군자가 담대(膽大)함을 귀하게 여기고, 자중(自重)한 것은 진실로 이 도(道)를 지극히 원대하고 여기고, 이 임무를 지극히 중하게 여겨서이다. 용도(容刀)의 배로는 바다를 건너기 부족하고, 한 척의 칼을 뽑아서는 적을 제압할 수 없으므로 옛사람이 마음에 반드시 성인이 되기로 기약했던 것은 어째서이겠는가? 나와 성인은 처음에는 조금도 다름이 없지만 진실로 그 같음을 알아서 작은 차이도 없게 하면 나 또한 한 사람의 성인일 뿐이니 우리는 무엇이 다른가? 비록 그렇지만 성인도 사람이니 사람이면서 사람을 배우면 사람이 각각 능하게 된다. 하늘에 대해서는 높고 위대함을 말로 형용할 수 없는데도 옛날 사람들이 하늘과 덕을 나란히 한자가 있다고 한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인의(仁義)일 뿐이니 그대의 말이 비루하여 자포자기에 빠진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객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습니다. 청컨대 그대의 농사짓는 즐거움을 묻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기를 "천지는 지극히 크고 만물은 지극히 많아도 도(道)가 그것들 사이에 깃든다. 천지는 부모요, 만물은 동포이니 달(達)하여 구제[濟]를 겸하는 것은 그 즐거움을 함께하는 것이요, 궁(竆)하여 검약[約]을 지킴은 함께 즐기는 것이 아니다. 나의 뜻이 나의 마음의 수고로움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천하와 그 도를 함께하는 것이요, 나의 뜻이 나의 힘의 수고로움을 행할 수 없는 것은 밭고랑 사이에서 그 분수를 스스로 즐기는 것이다. 봄에 밭 갈고 가을에 수확하는 것은 천시(天時)의 서권(舒捲)를 따르는 것이요, 행(行)을 즐기고 위(違)를 걱정하는 것은 도체(道軆)의 자연(自然)을 감당하는 것이다. 서쪽 들에서 일을 마치고 유연히 돌아오니 책상에는 책이 있어서 흔연히 함영(涵泳)하니 그 가운데에 천지가 있고 그 가운데에 만물이 있다. 부자(父子)가 갖추어져야 군신(君臣)이 갖추어지고 형제(兄弟)가 있어야 부부(夫婦)가 유별하게 된다. 희(羲)·농(農)·요(堯)·순(舜)이 호호희희(皡皡熙熙)40)하고, 공(孔)·맹(孟)·정(程)·주(朱)가 혼혼(混混)41)·원원(元元)하여 모두 거두어 함께 엮어서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니 일상생활 사이에 주옹(主翁)은 아마도 그 즐거움이 있지 않겠는가? 별안간 언덕을 지나 골짜기를 찾아서 나의 남쪽 밭을 돌보니 쭉정이가 자라지 않고 오곡이 잘 자라고 있다. 황충이 다 사라지고 때에 맞는 비가 내리니 시골의 백성과 늙은이가 모두 노래 부르고 흥얼거리고 읊조리고 손뼉 치면서 서로 얼싸안고 서로 읍하고 축하하여 한갓 덕색(德色)을 드러내고 발해(哱咳)를 드러내지 않으니, 말하고 웃는 즈음에 주옹은 아마도 그 즐거움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나의 농사짓는 즐거움이다."라고 하였다.객이 말하기를 "우리 그대의 즐거움은 이미 들었습니다. 청컨대 성인을 배우는 도를 듣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기를 "농부가 배움은 소를 채찍질하여 부지런히 밭을 가는 일뿐이다. 쟁기를 잡는 손은 실제로 리(理)를 탐구하는 손이 아니니 권농가를 부르는 입술이 어찌 도를 강론하는 입이겠는가? 성현(聖賢)의 모범(模範)이 책에 밝게 빛나 천년 만 년 빛이 해·달과 같을 것이니 진실로 바보가 아니면 누가 보고 아는 것이 불가능하겠는가? 비록 그러나 지극히 은미한 것은 드러나기 어렵고 지극히 위태로운 것은 타기[乘] 쉬우니 하나의 근본이 비록 같더라도 만 가지로 각각 달라지니42) 만 가지의 다름으로써 타기 쉬움의 위태로움에 골몰하면 동일한 하나의 근본이 더욱 은미해진다. 정주(程朱) 이후로 위아래 천년 백 년 동안 하나로 꿰뚫는 전통 위에서43) 공자·맹자를 접한 자를 아직 보지 못했다. 옷깃은 푸르고 소매는 노란 고준한 담론을 하는 자가 분분하게 함께 일어나 각각 논한 것이 달라서 대도(大道)를 잃어버렸다. 지금의 학자는 그 만 가지 다른 것을 하나로 하여 근본 하나에 함께 귀착시키고 그 지극히 위태로운 것을 눌러서 그 은미한 것을 드러내게 하니 그 요체는 치지(致知)·역행(力行)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치지(致知)의 잘못은 쉽게 박잡(博雜)한 데에 이르고 역행(力行)의 잘못은 쉽게 고루(固陋)한 데에 흐르는 것이니 박잡한 것은 구이(口耳)의 학문44)이 되고 고루한 것은 황로(黃老)의 학문45)이 된다. 이것이 이른바 '묘목을 심어놓고 김매지 않아 도리어 쭉정이만 자라고, 오동나무를 심고 가꾸지 않아 가시덤불이 되었다.'라는 것이다. 반드시 앎은 잡다한 것에 흐르지 않아야 하고, 행동은 누추한 곳에 흐르지 않아서 정일(精一)하고 택집(擇執)하고46) 먼저 박(博)하고 나중에 약(約)한 연후에 큰 근본이 세워져서 그 쓰임이 행해지게 되고 몸가짐이 약(約)하고 시행하는 것이 넓게 된다.47) 이것이 성인을 배우는 대강이다."라고 하였다.객이 말하기를 "어떻게 하여야 치지(致知)라고 할 만하며48) 어떻게 하여야 역행(力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기를 "만물·만사의 이치를 미루어 내 마음에서 이루는 것을 '치지(致知)'라고 하고, 이미 알아서 내 몸에서 행해지면 '역행(力行)'이라고 한다. 앎이 부진하면 마음이 넓지 못하여 막힌 것이 많게 되고 행동이 힘이 약하면 아는 것이 헛된 것을 갖추게 되어 무용하게 된다. 비록 그렇지만 이 마음이 경(敬)에서 먼저 세워지지 않으면 우리가 앎이 정일(精一)하고 택집(擇執)하지 못하여 잡다함에 흐르고, 우리의 행동이 굳게 지키지 못하여 누추한 데에 흐르게 된다.49) 이런 까닭에 군자는 거경(居敬)을 크게 여기고 궁리(竆理)를 귀하게 여겼다.50) 아! 후세에 한 무리의 선비가 성리(性理)를 고준하게 담론하고51) 고금(古今)을 달려가 말하여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수천 번 재잘거려 아침부터 하루를 다 하여도 아직 귀일한 자를 보지 못했으니 그가 큰 근본에 과연 세운 것이 있는가? 슬프도다!"라고 하였다.객이 말하기를 "세상의 군자는 학문(學問)·절의(節義)를 둘로 나누어 절의를 실제 행동으로 생각하고 학문을 귀히 여기지 않으니 이런 논의는 어떠한지요?"라고 하였다. 말하기를 "이런 논의가 바로 말세의 탄식이다. 중고(中古) 이전에 어찌 이런 논의가 있었겠는가? 대저 절의는 바로 학문 중에 하나의 일이니 만약 절의를 중하게 여긴다면 주공·공자는 백이(伯夷)만 못하고 육수부(陸秀夫)52)·문천상(文天祥)53)은 정주(程朱)보다 뛰어나겠지? 주공·공자가 백이에 대해서는 일지(一指)에서 견배(肩背)이고 육수부·문천상이 정주에 대해서는 근본(根本)에서 일지(一枝)이니 나란히 놓고 논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후세의 사람이 명(名)을 학문이라고 여기는 자가 있는데 군신의 큰 절의에 대해서도 도리어 범인의 아래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 때문에 말세의 논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객이 말하기를 "세상의 군자는 도를 행하는 것을 절의(節義)라고 생각하여 도를 행하지 않으면 절의가 아니라고 하는데 진실로 그러합니까?"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이것 또한 말세의 탄식이다. 중고(中古) 이전에 어찌 이런 논의가 있었겠는가? 옛날의 군자는 대본(大本)과 달도(達道)54)가 세워지지 않음을 걱정했지, 절의가 행해지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대본·달도가 이미 세워지면 절의는 논할 것이 못 된다. 만약 도를 행하는 것을 절의로 삼는다면 이부주소(伊傅周召)55) 등의 무리를 모두 절의의 선비라고 지목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독실하게 믿고 학문을 좋아한다.'56)라고 하였고, 또 '나라에 도가 없는데 부유하고 또 귀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57)라고 하였는데 이것으로써 본다면 비록 나라를 위해서 죽더라도 그 도를 선하게 하지 못하면 절의가 아니다. 비록 몸이 도덕적이라고 하더라도 도가 없는 세상에서 행해지지 않는 것을 또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사(時事)가 어떠한가를 헤아리지 못하면서 반드시 도를 행하는 것으로 뜻 삼고, 반드시 절의를 세우는 것을 뜻 삼고도 도의 선(善), 불선(不善)을 돌아보지 않으면 그 대본이 이미 잘못된 것이니 어찌 논할 것이 있겠는가? 자사(子思)는 '나라에 도가 행해질 때는 자기 뜻을 표현하여 나라에 보탬이 되게 해야 하겠지만,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는 침묵으로써 자신의 몸을 보전해야 할 것이다.'58)라고 하여 이미 명철(明哲)하게 그의 몸을 보존하였으니 사군자(士君子)의 도와 덕을 품은 자가 어찌 이 말로써 종신의 경계로 삼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객이 말하기를 "성현이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그 도가 같지 않으니 공자가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은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많았고, 증자는 명덕설(明德說)59)을 좇고, 자사는 성도설(性道說)을 좇고, 맹자는 항상 인의(仁義)를 말했습니다. 송(宋)의 선정신(先正臣)60)은 경(敬)을 위주로 했고, 횡거(橫渠)61)의 가르침은 예(禮)를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성인 문하에서 당(堂)에 올라간 자가62) 많게는 70명에 이르렀는데 성(性)과 천도(天道)는 오직 증자(曾子)·자공(子貢)만이 들을 수 있었고,63) 이미 대의(大意)를 보았던 증칠(曾漆)64) 이하는 참여하여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중용》·《대학》의 책은 근본을 맨 먼저 드러내어 미묘함을 드러내 밝혔고, 송나라의 선정신(先正臣)이 초학자를 가르치고 인도함에 반드시 본원(本源) 함양을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성리(性理)를 담론하는 학문은 그 흐름의 폐단이 정문(程門)의 고학(高學)에서 점점 선불교에 흘러 들어가는 것이 태반이어서 강서(江西)의 학문65)은 머리를 치며 울부짖는 자가 현자의 뜻을 훼손하는 자가 많았습니다. 만약 고정(考亭) 선생66)이 백 가지 지류를 막아서 동쪽으로 흘러가게 하지 않았다면 어찌 천하에 유가의 의관을 몰아서 불교의 신자에 들어가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강호(江湖)의 이설을 다 제거하지는 못해서 천 년이나 폐단이 흘러 지금까지도 끊지를 못하였습니다. 명대의 학자가 많지 않은 것은 아닌데 옛길로 함께 향하여 붉은 깃발을 이미 세우고 상제가 곁에 있어도 몽매하여 높일 줄을 모릅니다. 지금의 학자가 만약 대로를 평이하게 걷고자 한다면 거의 한쪽으로 치우치는 폐단을 면할 것이니 무슨 도를 써야 가능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농부가 머릴 긁적이며 용모를 고치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아! 우리 그대와 도를 말할 수 있겠구나. 옛날에 주공이 예를 제정하면서 문(文)으로 최상 삼았으니 빛나도다! 문(文)이여. 빈빈(彬彬)함을 상상할 수 있었는데67) 선배 야인(野人)에 미쳐서 그 혜택이 이미 끊어졌다. 후배 군자(君子)가 문(文)이 그 질(質)을 멸하여68) 무무(貿貿)69)하게 예악(禮樂)을 꾸미고 장식하여 옛 도가 이미 없어지자 이 때문에 공자께서 가르침을 설하고 먼저 말과 행동을 보고 듣고 따르게 하고 음탕한 음악과 간악한 예가 그치게 하여 귀와 눈으로 접하지 못하게 한 연후에 큰 근본이 세워질 수 있었다. 이른바 밖을 다스려서 그 가운데를 정성스럽게 하고자 한 것이므로 안자(顔子)가 우뚝 뜻을 세운 것이 극기(克己)70)·사물(四勿)71)의 뒤에 있었고 증자(曾子)의 일관충서(一貫忠恕)는 하루에 몸을 세 번 살핀 후에 있었다. 이것이 성인 문하의 가르침이니 마치 천지의 생물이 알맹이에서 움이 트고, 움이 터서 싹이 나고, 싹이 자라 가지가 되고, 가지에서 잎이 나고, 잎에서 꽃이 피고, 꽃에서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공자께서 이미 돌아가심에 미쳐서 문하의 제자들이 사방에 흩어져 각각 들은 것만을 높였으니 사문의 도가 밝지 않게 되었다. 증자(曾子)·자사(子思)가 깊이 걱정하고 염려하여 사도(師道)가 전해지지 못할까 고민하고, 구이(口耳)72)의 학문에 황홀(怳惚)해짐을 아파하여 이내 표준을 세워 본체(本體)를 직접 가르치는 것으로 발명(發明)하였으니 대개 부득이한 가르침이었다. 맹자의 법통은 대개 여기에서 얻어졌으나 선인(善人)과 신인(信人)의 사이에 위치하고, 미인(美人)·대인(大人)·성인(聖人)·신인(神人)의 아래 위치한 악정자 극(樂正子克)도73) 마침내 전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시서(詩書)는 열렬하게 불탄 나머지에 겨우 동자(董子)74)를 얻었고, 장구(章句)·문사(文辭) 가운데에서는 다행히 한공(韓公)75)이 있었는데 붓을 빼서 글자나 윤택하게 하여 한갓 조화(藻華)만을 숭상하다가 오계(五季)76)에 극에 이르렀다. 염락(濂洛)77)의 현인들이 천장(千丈)이나 우뚝 서서 한당(漢唐)을 굽어보고, 높고 오묘함을 다하여 위로는 공맹을 접하여 우리 도(道)의 소재를 깨닫고 큰 근본이 세워지지 않은 것을 개탄하였다. 이 때문에 후배를 장려하고 인솔하여 맨 먼저 하나의 근본을 세우고 만 가지 다른 것을 각각 바르게 하고 성(誠)·명(明) 둘을 끌어들여 내외(內外)를 교차하여 수양하였다. 자사·증자【한 편에서는 맹자】의 끊어진 학문이 여기에 이르러서 다시 이어졌으나 문인의 고제(高弟)가 일변에 떨어짐을 면치 못했으니 이것이 있구나! 유학의 도가 행해지기 어려움이여. 육씨(陸氏)의 형제78)가 어질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아호(鵝湖)에서 한 번 만난 것은79) 처음부터 끝까지 합당하지 않아서 마침내 천 년간 이 유가의 도에 큰 하자가 되었으니 주문공 선생의 걱정이 어찌 크지 않았겠는가?"라고 하였다.【삼가 이편을 지은 것을 고찰해보면 마땅히 갑오년(1654, 효종5) 사이인데 혹 내간(內艱)을 만나 마치지 못한 것인가? 이 아래는 생각건대, 틀림없이 동방(東方)과 관계될 터인데 도대체 선생의 깊은 뜻에 기대하는 것이 있어서 지연시킨 것인가? 당일에 선생님에게 질정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經鉏野夫。 於世上事。 無所識務。 手執鉏耰役。 以爲供親計。 一日携園丁二三。 從事於東臯之下。 力倦神疲。 舍鉏登隴。 快讀古經。 有客來過。 長揖而問曰: "巫醫樂師梓匠輪輿。 工之賤者也。 固不可耕且爲也。 况治繹古經。 亦可耕且爲歟?" 野夫笑曰: "莘摯之耒。 元亮之鉏。 客亦聞之歟?" 曰: "聞之矣。" 曰: "士君子立心。 當以尹爲志。 竆亦可行。 達亦可行矣。 倘終不遇。 以陶之所守爲守可也。" 客然應曰: "子之爲言。 癡且狷矣。 伊尹聖也。 淵明賢也。 旣聖且賢。 聖賢不居。 况吾子自居歟? 吾子少雖好學。 晩無所成。 一志未立。 衆咎蝟積。 竆未固守。 徒役四軆。 何子之立志太高而行之不逮耶?" 野夫菀爾對曰: "子言是哉? 夫夫非矣。 然鯤羽未成而有扶搖九萬之志。 岱鴈未毛而有掣電千里之心。 君子之所貴乎膽大而自重者。 誠以斯道至遠。 斯任至重。 容刀之舟。 不足以濟海。 經尺之挺。 未可以制敵。 故古人爲心。 必以聖人自期何者? 我與聖人。 初無小異。 苟知其同而使無小異。 我亦一聖人也。 吾何異哉? 雖然聖人人也。 人而學人。 人各能之。 至於天者。 巍巍惟大。 不可名狀。 而古之人。 有與天合德者。 其故何也? 仁義而已。 子之言。 無乃卑陋而流於自棄耶?" 客曰: "子之言然矣。 請問吾子經鉏之樂?" 曰: "天地至大。 萬物至衆。 而道寓於其間。 天地父母而萬物同胞也。 達而兼濟。 同其樂也。 同其樂也而守約。 不同樂也。 我志可行勞吾心。 與天下同其道也。 我志不可行勞吾力。 自樂其分於畎畝之間。 春耕秋穫。 順天時之舒捲。 樂行憂違。 任道軆之自然。 事畢西疇。 悠然而歸。 有書在床。 欣然涵泳。 其中有天地焉。 有萬物焉。 父子具而君臣備。 兄弟在而夫婦別。 羲農堯舜。 皡皡熙熙。 孔孟程朱。 混混元元。 具收幷集。 萃爲一家。 俯仰之間。 主翁其有樂乎? 俄而經邱尋壑。 睠我南畝。 稊秕未成而五穀克秋。 耗蝗遠蟄而時雨施澤。 村氓里老。 歌者謳者詠者抃者。 提携傴僂。 相揖而賀。 徒見德色。 未覩哱咳。 言笑之際。 主翁其有樂乎? 此吾經鉏之樂也。" 客曰: "吾子之樂。 旣聞命矣。 請聞學聖之道。" 曰: "農夫所學。 策牛勤耕而已。 把犁之拳。 實非探理之手。 農歌之唇。 豈是講道之口? 聖賢模範。 昭在方策。 千秋萬世。 炳若日月。 苟非昏盲。 孰不能見知? 雖然至微者難著而至危者易乘。 一本雖同而萬殊各異。 以萬殊之異。 汨易乘之危。 一本所同者。 微而又微。 程朱以來。 上下千百載。 未聞有以一貫之統上接鄒魯者。 領靑手黃。 高談者紛然並起。 各異所論而大道喪矣。 爲今之學者。 齊其萬殊者而同歸一本。 抑其至危者而使著其微。 其要不過致知力行而已。 然致知之失。 易流於博雜。 力行之失。 易流於固陋。 博雜者爲口耳之學。 固陋者爲黃老之學。 此所謂種苗不耔而反成莠。 樹梧不治而變成棘者也。 必也所知不流於雜。 所行不流於陋。 精一而擇執。 先博而後約。 然後大本立而其用行矣。 所操約而所施博矣。 此學聖之大槩也。" 客曰: "如何斯可謂之致知。 如何斯可謂之力行?" 曰: "萬物萬事之理。 推而致之吾心曰'致知'。 旣知而行之吾身曰'力行'。 知不盡則心不廣而多滯矣。 行不力則所知者爲虛具而爲無用矣。 雖然此心未能先立乎敬。 則吾之所知。 未能精擇而流於雜。 吾之所行。 未能固守而流於陋。 是故君子大居敬而貴竆理矣。 嗚呼! 後世有一種士子。 高談性理。 驟語古今。 對人談說。 喋喋累千而竟朝盡日。 未見歸宿者。 其於大本。 果有所立乎? 悲夫!" 客曰: "世之君子。 有以學問節義。 歧而爲二。 以節義爲實行。 學問爲不足貴。 此論何如?" 曰: "此論乃衰世之嘆也。 中古以上。 豈有此論哉? 大抵節義。 乃學問中一事。 若以節義爲重。 周公孔子不如伯夷。 秀夫天祥過於程朱耶? 周公孔子之於伯夷。 肩背之於一指。 秀夫天祥之於程朱。 一枝之於根本。 比而論之可乎? 後世之人。 有名爲學問。 而至於君臣大節。 反出凡人之下者。 故曰'衰世之論也'。" 客曰: "世之君子。 有以行道爲節義。 不能行道。 爲非節義。 誠然耶?" 曰: "是亦衰世之嘆也。 中古以上。 豈有此論哉? 古之君子。 以大本達道之不立爲憂。 而不憂節義之不行。 大本達道旣立則節義非所論也。 若以行道爲節義則伊傅周召之徒。 皆可目之曰'節義之士'耶? 孔子曰: '篤信好學。 守死善道'。 又曰: '邦無道富且貴焉恥也。' 以此見之。 雖死於國。 不能善其道則非節義也。 雖身抱道德。 不行於無道之世。 亦可見矣。 不度時事之如何。 而必以行道爲志。 必以立節爲意。 而不顧是道之善不善。 其大本旣誤矣。 何足論歟? 子思曰: '邦有道。 其言足以興。 邦無道。 其默足以容'。 旣明且哲。 以保其身。 士君子抱道懷德者。 盍以此言爲終身戒哉?" 客曰: "聖賢敎人。 其道不同。 孔子敎人。 多從日用行事上。 曾子從明德說。 子思從性道說。 孟子常說仁義。 宋之先正以敬爲主。 橫渠之敎以禮爲先。 聖門升堂者。 多至七十。 而性與天道。 惟曾子子貢得聞。 己見大意之曾漆以下。 不得預聞。 自庸學之書首闡根本。 發明微妙。 宋之先正敎導初學。 必以涵養本源爲先。 談說性理爲學。 其流之弊。 程門高學漸流禪佛者太半。 而江西之學拍頭叫喚者。 多損賢者之志。 若非考亭夫子障百川而東之。 豈不庶驅天下之衣冠。 盡入天竺之卒徒乎? 雖然江湖異說。 不能盡去。 而流弊千年。 訖今未斬。 皇明學者不爲不多。 而並鄕故路。 赤幟已竪。 帝在旁州。 蒙不知尊。 今之學者。 若欲平步大路。 庶免偏重之弊。 用何道而可耶?" 野夫點頭改容而對曰: "嗟乎! 吾子可與語道矣。 昔者周公制禮。 以文爲上。 郁郁文哉! 彬彬可象。 及其先進野人。 其澤已斬。 後進君子。 文滅其質。 貿貿焉粉飾禮樂。 古道已去。 是以夫子設敎。 先從視聽言動。 止淫樂慝禮。 使不接耳目。 然後大本可立。 所謂制乎外。 所以誠其中也。 故顔子之卓然有立。 在於克己四勿之後。 曾子之一貫忠恕。 在於日三省身之後。 此聖門之敎。 如天地生物。 勾而萌萌而苗苗而枝枝而葉葉而花花而實者也。 及夫子旣沒。 門弟子散在四方。 各尊所聞而斯道不明。 曾子子思深憂且慮。 悶師道之無傳。 痛口耳之怳惚。 乃立準的。 直指本體以發明之。 盖不得已之敎也。 孟子之統。 盖得乎此。 而二中四下之克。 竟未聞有傳而不絶。 豈不惜哉? 詩書烈焰之餘。 僅得董子。 章句文辭之中。 幸有韓公。 而抽毫潤墨。 徒尙藻華而極乎五季矣。 濂洛羣賢。 特立千丈而俯視漢唐。 極盡高妙而上接鄒魯。 覺吾道之所在。 慨大本之未立。 是以奬率後進。 首以一本先立而萬殊各正。 誠明兩進而內外交養。 思曾【一作孟】絶學。 至此復續。 然門人高弟往往未免落於一邊。 有是乎! 斯道之難行也。 陸氏兄弟。 非不賢矣。 鵝湖一會。 終始不合。 竟爲千秋斯道之大疵。 文公夫子之憂。 豈不大乎?"【謹按此篇之作。 當在甲午年間。 或以丁內艱而未畢耶? 此下想必係之以東方。 抑先生深意有所待而遲回耶? 恨不就質於當日函丈也。】 신지(莘摯)의 뢰(耒) 신지는 이윤을 말한다. 신(莘)은 이윤이 농사짓고 살던 신야(莘野)이며 지(摯)는 이윤(伊尹)의 이름으로, 이윤이 유신의 들판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원량(元亮)의 서(鉏) 원량은 도잠(陶潛, 365~427)의 자이다. 도잠의 또 다른 자는 연명(淵明)이며 시호는 정절이다. 팽택의 현령(縣令)이 되었으나, 80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전원으로 돌아와 문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곤(鯤)이 …… 있고 곤(鯤)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다. 《장자》 〈소요유〉에,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은 곤이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인지 모른다. 변화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은 붕이다. 붕의 등짝은 몇 천 리인지 모른다. 기운차게 떨쳐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쪽 끝의 검푸른 바다로 날아가려고 한다. 남쪽 바다란 하늘의 못이다.[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 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라고 하였다. 호호희희(皡皡熙熙) 화락(和樂)하고 자득(自得)한 모양을 말하는데, 전하여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성왕의 백성은 호호한 듯하느니라.[王者之民, 皥皥如也.]"라고 하였고, 《노자(老子)》 제20장에 "세속의 중인들 희희낙락하여, 마치 푸짐한 잔칫상을 받은 듯, 봄날의 누대에 오른 듯하네.[衆人熙熙, 如享太牢, 如登春臺.]"라고 하였다. 혼혼(混混) 혼혼은 근원이 있는 물을 말한다. 공자가 자주 물을 일컬은 뜻을 두고 무슨 뜻을 취한 것인가에 대한 서자(徐子)의 질문에 대해 맹자가 말하기를, "근원이 있는 물이 용솟음쳐서 밤낮을 쉬지 않아 구덩이에 찬 후에 나아가 바다에 이르니 근본이 있는 것이 이와 같은지라 이것을 취한 것이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라고 한 말이 있다. 《孟子 離婁下》 하나의 …… 달라지니 이일분수(理一分殊)를 설명하는 말로 이치는 한가지이지만 현상은 다르다는 의미이다. 우주의 근원은 유일(唯一)의 이치인데, 그것이 천만 가지 현상으로 분리되어 각각 다른 만물의 형태로 나타난다. 바꾸어 말하면 수많은 사물이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그 원리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에서 천 개의 달로 떠오르는 것은 하나의 이(理)를 수많은 존재들이 나눠 갖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천 개의 강마다 흐리거나 탁한 서로 다른 차이 때문에 하나의 달은 천 개의 강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나로 …… 위에서 일이관지(一以貫之)를 의미하는 말로, 공자가 제자 증삼(曾參)을 불러서 "나의 도는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일을 꿰뚫고 있다.[吾道一以貫之]"라고 하자, 증삼이 "예, 그렇습니다. [唯]"라고 곧장 대답하고는, 다른 문인에게 "부자의 도는 바로 충서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설명해 준 내용이 《논어》 〈이인(里仁)〉에 나온다. 구이(口耳)의 학문 귀로 듣고 입으로 곧장 내놓는다는 뜻으로, 되새김질해서 소화하려고는 하지 않고 얼른 밖으로 드러내어 과시하는 것을 말한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의 "소인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귀로 듣고는 곧바로 입으로 내놓는다. 입과 귀의 거리는 불과 네 치일 따름이니, 일곱 자나 되는 이 몸을 어떻게 아름답게 할 수가 있겠는가.[小人之學也, 入乎耳, 出乎口, 口耳之間則四寸耳, 曷足以美七尺之軀哉?]"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황로(黃老)의 학문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학문으로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때 발전하였다. 도가(道家)의 학설을 가리킨다. 신불해(申不害)·한비(韓非)는 법가(法家) 사상가로, 《사기(史記)》에 "신자(申子)의 학문은 황로(黃老)에 근본을 두고 형명(刑名)을 주로 한다."라고 하였고, 《사기》의 색은(索隱)에 "황로는 번화한 것을 싫어하는데, 간솔(簡率) 무위(無爲)하면 군신(君臣)이 저절로 바르게 된다. 한비는 부박한 것을 배격하고 법제(法制)는 사(私)가 없는 것이니 명실이 상부한다. 그러므로 황로로 귀결된다."라고 하였다. 《사기(史記)》 권63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제3. 정일(精一)하고 택집(擇執)하고 정일집중(精一執中)을 말하는 것으로, 정일집중은 순(舜) 임금이 우(禹) 임금에게 제위(帝位)를 물려주면서 말한 '유정유일(惟精惟一) 윤집궐중(允執厥中)'을 줄인 말로,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도(中道)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하였다. 먼저 ‥‥ 된다 박문약례(博文約禮)를 설명하는 구절로, 스승에게 배워 식견을 넓히고, 그 지(知)를 예(禮)로 요약하여 행(行)으로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안연(顔淵)이 스승인 공자의 도에 대해서 감탄하며 술회한 뒤에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사람을 잘 이끌어 주시면서, 학문으로 나의 지식을 넓혀 주시고 예법으로써 나의 행동을 단속하게 해 주셨다.[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라는 내용이 《논어》 〈자한(子罕)〉에 보인다. 어떻게 ‥‥ 만하며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설명한 구절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지극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대학장구》 경 1장에 "그 뜻을 성실히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지식을 지극히 하였으니, 지식을 지극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라고 하였다. 마음이 …… 된다 '경'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고, '의'는 행실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 이 두 가지는 성리학자들의 중요한 수행 방법에 속하는 것들이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에 "군자가 경으로 안을 곧게 하고 의로 밖을 방정하게 하여, 경과 의가 확립되면 덕이 외롭지 않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라고 하였다. 참고로 명도(明道) 정호(程顥)는 "경과 의를 서로 잡아 지키면 곧바로 올라가 천덕을 통달함이 이로부터 시작된다.[敬義夾持, 直上達天德, 自此.]"라고 하였다. 《近思錄 권2 爲學》 거경을 …… 여겼다 거경궁리(居敬窮理)를 설명하고 있다. 거경궁리는 정주학(程朱學)의 학문 수양 방법으로 '거경'은 내적 수양 방법을 가리키는 말로 《논어》 〈옹야(雍也)〉에 처음 보인다. 경(敬)이란 인간에게 품부(稟賦)된 천명(天命)으로서의 선성(善性)이 순수하고 곧게 발할 수 있도록 성(性)에 영향을 주는 의식 작용을 미연에 없애버리는 수양법을 말한다. 이것은 조용히 앉아서 모든 잡념을 끊어버리는 정좌(靜坐)의 방법을 쓰거나, 한 가지 일만을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방법을 많이 활용한다. '궁리'는 외적 수양 방법을 가리키는 말로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처음 보이는데, 인간에게 품부된 천명으로서의 선성이 이미 욕심의 영향을 받아 굴절되려고 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순수하고 곧게 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적극 노력하는 수양법으로, 격물(格物)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말한다. 후세에 …… 담론하고 육왕학(陸王學)을 가리킨다. 육왕학은 주희(朱熹)의 이학(理學)에 반대하여 심학(心學)을 제창한 송(宋) 나라 육상산(陸象山)의 학문과 이를 계승하여 양명학(陽明學)으로 집대성한 명(明) 나라 왕수인(王守仁)의 학문을 병칭하는 학술 용어이다. 육수부(陸秀夫) 1236~1279. 남송 말기 충신으로, 자는 군실(君實)이다. 육수부(陸秀夫)는 송(宋)나라 말엽의 충신이다. 육수부(陸秀夫)는 송나라가 원(元)나라에 의해 패망하자, 복주(福州)에서 익왕(益王)을 세우고 단명전 학사(端明殿學士)가 되었으며, 익왕이 죽자 다시 위왕(衛王)을 세우고 좌승상(左丞相)이 되었는데, 원나라 군사가 송의 최후 보루(堡壘)이던 애산(厓山)을 격파하자,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는 칼을 들고 처자를 바다에 빠져 죽게 한 다음 곧 위왕을 등에 업고 함께 바다에 빠져 죽었다. 《宋史 권451 陸秀夫列傳》 문천상(文天祥) 1236~1283. 중국 남송(南宋) 말기의 재상으로, 자는 송서(宋瑞) 혹은 이선(履善)이며 호는 문산(文山)이다. 1256년(이종4) 진사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아간 후 원(元)나라에 대하여 시종 강경책을 주장하고 천도(遷都)를 반대하여 면직되기까지 하였다. 1275년(공종1) 원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당시 우승상이었던 문천상은 가산(家産)을 내어 의용군을 조직, 임안(臨安)을 지켰다. 다음 해에 공종(恭宗)의 명을 받아 원나라에 강화를 청하러 갔으나 포로가 되었고 겨우 탈출하여 돌아왔다. 원나라 세조(世祖)가 벼슬하기를 간절히 권하였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았으며, 옥중에서 지은 장시(長詩) 〈정기가(正氣歌)〉를 부른 후 연산의 시시(柴市)에서 처형당하였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며, 저서에 《문산전집(文山全集)》이 있다. 《宋史 권418 文天祥列傳》 대본(大本)과 달도(達道) 대본은 하늘이 명한 성(性)을 말한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에 "희로애락이 미발한 것을 중(中)이라 하고, 발해서 다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하니, 중은 천하의 대본이요, 화는 천하의 달도다.[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라고 하였다. 주희는 이 구절에 대해 주석하기를 "대본은 하늘이 명한 성이니, 천하의 이치는 모두 여기에서 나오니 도의 체이다. 달도는 성을 따름을 말하니, 천하와 고금에 함께 행하는 것으로 도의 용이다.[大本者, 天命之性, 天下之理, 皆由此出, 道之體也. 達道者, 循性之謂, 天下古今之所共由, 道之用也.]"라고 하였다. 이부주소(伊傅周召) 이는 은탕(殷湯)의 현상(賢相) 이윤(伊尹), 부는 은 고종(殷高宗)의 현상 부열(傅說), 주는 주실(周室)의 기초를 세우고 예악 제도(禮樂制度)를 제정한 주공(周公), 소는 주공과 함께 주실을 일으킨 소공(召公)을 가리킨다. 독실하게 …… 좋아한다 《논어》 〈태백(泰伯)〉에, "독실하게 믿으면서 배우기를 좋아해야 한다. [篤信好學]"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나라에 …… 것이다 《논어》 〈태백(泰伯)〉에, "돈독하게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목숨을 걸고 착한 도를 지켜라.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문란한 나라에는 살지 않으며, 세상에 도리가 있으면 나아가 벼슬을 하고, 도리가 없으면 물러나 숨어야 한다. 나라에 도가 있는데 가난하고 비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리가 없는데 부귀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耻也, 邦無道, 富且貴焉, 耻也.]"라는 말이 나온다. 나라에 …… 것이다 자사(子思)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7장에 "나라에 도가 행해질 때에는 자신의 뜻을 표현하여 나라에 보탬이 되게 해야 하겠지만,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에는 침묵으로써 자신의 몸을 보전해야 할 것이다. 《시경》에 '현명한데다가 사려가 깊어서 자기 몸을 보전한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한 것이다.[國有道, 其言足以興, 國無道, 其默足以容. 詩曰: '旣明且哲, 以保其身,' 其此之謂與.]"라는 말이 나온다. 명덕설(明德說) 《대학장구》에 나오는 "〈강고(康誥)〉에 '능히 덕을 밝힌다.'라고 하였고 〈태갑(太甲)〉에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본다.'라고 하였고 〈제전(帝典)〉에 '능히 큰 덕을 밝힌다.'라고 하였으니, 모두 스스로 밝힌 것이다.[康誥曰: "克明德." 太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라고 한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선정신(先正臣) 고인이 된 바른 신하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주희를 가리킨다. 횡거(橫渠) 북송의 학자 장재(張載, 1020~1077)로, 자는 자후(子厚), 시호는 헌공(獻公)이다. 횡거(橫渠)는 그의 호이다. 저서에 《정몽(正蒙)》, 《장자전서(張子全書)》 등이 있다. 성인 …… 자가 단계적으로 학문의 심오한 경지에 들어갔다는 말이다. 《논어》 〈선진(先進)〉에 "자로(子路)는 마루에는 올랐으나 아직 방에는 들어오지 못했다.[由也, 升堂矣, 未入於室也.]"라고 하였다 자공(子貢)만이 …… 있었고 《논어》 〈공야장(公冶長)〉에서 자공이 "부자의 문장은 들을 수 있었지만, 부자께서 성과 천도를 말씀하시는 것은 들을 수 없었다.[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라고 한 데 대해, 주희가 주석에서 "성인의 문하에서는 가르침이 등급을 뛰어넘지 않기에, 자공이 이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공자에게 성과 천도에 대한 말씀을 듣고서 그 훌륭함에 감탄한 것이다.[蓋聖門敎不躐等, 子貢至是, 始得聞之而歎其美也.]"라고 하였다. 증칠(曾漆) 공자의 제자 증자와 칠조개(漆雕開)를 병칭한 말이다. 공자가 칠조개에게 벼슬을 권했을 때 "저는 아직 벼슬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吾斯之未能信]"라고 대답하자, 공자가 기뻐했다는 말이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나온다. 강서(江西)의 학문(學問) 송(宋) 나라의 육구연(陸九淵, 1139~1193)의 학문을 말한다. 그가 강서의 금계(金溪)에서 출생했으므로 그의 학술을 강서학파라고 한다. 육구연의 자는 자정(子靜), 호는 상산(象山)이다. 중국 남송(南宋)의 철학자로, 끊임없는 탐구와 연구를 강조한 주희(朱熹)와 달리 내면의 성찰과 자습(自習)을 중시하였다. 사람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선하여 그 선이 물욕으로 더럽혀지고 소멸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노력에 의해 다시 생성, 발전시킬 수 있고, 그러한 과정에서 도(道)의 가장 높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사상을 심학(心學)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육구연의 사상은 3세기 이후 명나라의 성리학자 왕양명(王陽明)에 의해 완성되었고, 따라서 이들을 통틀어 육왕학파(陸王學派)라고 불러 정주학파(程朱學派)와 구별하였다. 고정(考亭) 선생 고정은 남송의 철학자 주희(朱熹, 1130~1200)의 호이다. 원래는 지명으로 지금의 건양시(建陽市)이다. 주희가 63세 때인 1192년 6월에 이곳에 고정서원(考定書院)을 짓고 강학하였기 때문에 주자를 고정 선생이라고도 불렀다. 이를 기반으로 고정학파(考亭學派)가 형성되었는데, 뒤에 이를 존숭하여 민학(閩學)으로 부르게 되었다. 빈빈(彬彬)함을 …… 있었는데 문질빈빈(文質彬彬)을 설명한 말로 문채와 본바탕이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고 잘 조화된 군자라는 말이다. 문(文)이 …… 멸하여 《논어》 〈옹야(雍也)〉에 "바탕이 문채보다 지나치면 촌스럽게 되고, 문채가 바탕보다 지나치면 겉치레에 흐르게 되나니, 문채와 바탕이 조화를 이룬 뒤에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무무(貿貿) 무식하고 뒤떨어짐이다. 극기(克己) 자기의 사욕을 이기는 것을 말한다.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해서 묻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자기의 사욕을 이겨 예에 돌아가는 것이 인을 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사욕을 이겨 예에 돌아가면 천하가 인을 허여할 것이다. 인을 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으니, 남에게 달려 있겠는가?[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라고 하였다. 《論語集註 顔淵》 사물(四勿) 네 가지 하지 말라는 것으로,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이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조목을 묻자,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하였는데, 이를 가리킨다. 구이(口耳) 구이지학(口耳之學)의 준말로, 천박한 공부를 뜻한다. 선인(善人)과 …… 악정자 극(樂正子克)도 맹자는 자신의 제자 악정자(樂正子)를 평해서 선인(善人)과 신인(信人)의 사이에 위치하고, 미인(美人)·대인(大人)·성인(聖人)·신인(神人)의 아래에 위치한다고 하였다. 《孟子 盡心下》 동자(董子) 한대(漢代)의 학자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9~104)로, 서한의 사상가, 금문경학(今文經學)의 대가이다. 《춘추(春秋)》의 연구에 전력을 기울였고 《공양전(公羊傳)》을 정밀하게 연구했다. 경제 때 박사가 되었고 무제 때 현량문학지사(賢良文學之士)가 되어 강도왕(江都王)의 재상이 되었다. 후에 교서왕(膠西王)의 재상이 되었으나 얼마 안 있어 병을 이유로 관직을 그만두고 집에서 수학하며 저술하였다. 조정에 큰일이 있으면 늘 사람을 보내 그에게 자문을 구했다. 지금 전하는 그의 저술로는 《춘추번로(春秋繁露)》가 있다. 한공(韓公) 당나라 한유를 가리킨다. 오계(五季) 오대(五代)라고도 하며, 중국 역사상 가장 분열이 심하고 왕조의 교체가 짧은 기간에 자주 일어난 시기로 당(唐)나라가 망하고 송(宋)나라가 들어서기 이전의 약 50년간의 시대를 말한다. 이 시기의 왕조로는 후량(後梁, 907~923), 후당(後唐, 923~936), 후진(後晉, 936~946), 후한(後漢, 946~950), 후주(後周, 950~959)가 있다. 염락(濂洛)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頥), 낙양(洛陽)의 정호(程顥)·정이(程頥) 형제를 가리키지만, 통상 염락관민(濂洛關閩)의 준말로,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민중(閩中)의 주희(朱熹) 등 송대(宋代)의 성리학자들을 함께 지칭한다. 육씨(陸氏)의 형제 송나라 육구령(陸九齡, 1132~1180)·육구연(陸九淵, 1139~1193) 형제를 가리킨다. 아호(鵝湖)에서 …… 것은 아호는 중국 강서성(江西省) 신주(信州) 연산현(鉛山縣)에 있는 산으로, 1175년 여조겸(呂祖謙)의 주선으로 주희와 육구령(陸九齡), 육구연(陸九淵) 형제가 이 산의 아호사(鵝湖寺)에 모여 논쟁을 펼친 바 있다. 논쟁의 핵심은 학문하는 방법에 있어서 주희는 성현의 책을 널리 공부한 뒤에 요약하기를 주장하고, 육씨 형제는 사람의 본심을 발명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를 주장한 것인데, 주희는 육씨에 대하여 '태간(太簡)'이라 비판하고, 육씨는 주희에 대하여 '지리(支離)'라 비판하였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