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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에서 발을 씻다 石橋濯足 맑은 창가는 독서하기에 좋으니발 씻는 이 어찌도 이리 늦게 왔는가184)속진에서 보낸 십 년 자취흐르는 물에 다 씻지 못하였네 晴窓宜讀書濯足來何晩塵土十年踪臨流不盡浣 발……왔는가 어부사의 고사를 차용한 것이다. 초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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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루에서 달을 감상하다 西樓賞月 서늘한 기운 높은 누대에 가득하고평야에 한 줄기 가랑비 내리네유인은 밤에 쉬 잠들지 못하고달이 뜨자 까마귀 나무 흔드네 凉意滿高樓平蕪一霎雨幽人夜眠遲月出鴉翻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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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운한 시를 부기하다 권응인 附次韻 權應寅 사면은 온통 맑은 가을이요하늘과 땅에 이제 막 비 갰어라깊은 밤에 물은 더욱 밝아지고거울 같은 둥근 달 높은 나무에 걸렸네 四面盡淸秋乾坤初霽雨夜深水益明圓鏡掛高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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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재를 희롱하다228) 3수 이덕재에게 방아(房兒)가 있는데, 이름은 경옥(瓊玉)이다. 戲德哉 【三首 德哉有房兒名瓊玉】 전생에 비경 선녀가 가지고 논 옥이었는데이생에 와서 무산의 꿈속 사람229) 되었네남아의 창자 끊어지는 곳 따로 있으니버들 허리 가늘어 봄을 이기지 못하네사내는 쏜 화살 처럼 쉬이 이별하는데여인은 바람에 날리는 꽃처럼 버텨내지 못하누나이별한 뒤에 아득히 정한 끝이 없으니달 밝은 제 객창에 외로이 기대 있네기나긴 겨울밤에 깊숙한 방문 닫으니박산로 묵은 향 연기 모두 사라지네주인은 술에 취해 미인과 함께 자니예쁜 눈썹 -원문 2자 결락-230) 飛瓊弄玉是前身來作巫山夢裡人別有男兒腸斷處柳腰纖細不勝春郎如去箭易相離妾似飄花不自持別後悠悠無限恨客窓孤倚月明時寒夜曼曼掩曲房宿烟消盡博山香阿郞醉伴靑娥宿眉黛羞痕【二字缺】光 이덕재를 희롱하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농포집》 후쇄본에는 제목이 〈덕재를 희롱하다. 방아가 밤에 병이나다[戲德哉, 房兒夜病]〉로 되어 있다. 국립도서관 소장 후쇄본에는 3수 중에 제1수만 실려 있다. 무산의 꿈속 사람 무산(巫山)은 신녀가 사는 곳으로, 초 회왕(楚懷王)이 고당(高唐)에서 노닐며 낮잠을 자다 꿈속에서 무산의 신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는 고사가 있다. 《文選 卷19 高唐賦》 원문 2자 결락 원문의 문제로 '羞痕'과 '光'은 번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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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체147) 박계길의 시에 차운하다 演雅體 次朴季吉韻 기린각에 제일의 명성 얻는 것 관계치 않으니누추한 집 또한 평생을 보내기에 충분하여라평생 호랑이 그렸건만148) 재주 어찌도 이리 졸렬한가세월이 빨리도 흘러가 귀밑털 벌써 셌네예전에 다리 기둥에 사마상여의 뜻을 써두었는데149)지금은 포의로 밭갈며 지낸 와룡을 배우네150)부디 그대는 작은 새장에 매였다151) 한탄하지 말라큰 기러기 반드시 하늘에 갈 터이니152) 麟閣非關第一名蝸廬亦足過平生平生畵虎才何拙歲月催駒鬢已驚橋柱舊題司馬志布衣今學臥龍耕憑君莫恨鶉籠繫鴻鵠雲霄會有程 연아체(演雅體) 시체(詩體)의 하나로,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새·짐승·곤충 등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소재로 삼아 각 구절마다 한두 종류의 동물 이름을 직접 혹은 중의적으로 넣어서 짓는 것이 특징이다. 호랑이 그렸건만 고원한 일에 뜻을 두었으나 끝내 성취가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후한의 마원(馬援)이 조카 마돈(馬敦)에게 경계의 뜻을 담은 글을 보내 "두보(杜保)는 호협(豪俠)한 사람이므로 그를 본받다가는 천하의 경박한 자가 될 것이니 이른바 '범을 그리다가 이루지 못하면 도리어 개같이 되어 버리는[畫虎不成, 反類狗]' 격이다."라고 하였다. 《後漢書 馬援列傳》 다리……써두었는데 웅대한 포부를 품었다는 뜻이다. 한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고향인 성도(成都)를 떠나 장안(長安)으로 갈 때 승선교(升仙橋)를 지나면서 다리 기둥에 "사마가 끄는 수레를 타지 않고는 다시 이 다리를 건너지 않겠다."라고 써서 기필코 공명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蒙求集註 卷下》 포의로……배우네 은거하고자 한다는 뜻이다. 와룡(臥龍)은 삼국 시대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으로, 유비(劉備)에게 발탁되기 전에 은거하며 농사를 짓고 있어 '와룡'이라 일컬어졌다. 훗날 제갈량이 쓴 출사표(出師表)에서 "신은 본래 포의로서 남양에서 몸소 농사를 지었습니다.[臣本布衣, 躬耕於南陽.]"라고 하였다. 작은 새장에 매였다 현자가 난세를 만나 용납되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초사(楚辭)》 〈애시명(哀時命)〉에 "봉황이 매추라기의 새장에 깃듦이여, 날개를 거두더라도 용납되지 않네.[爲鳯凰作鶉籠兮, 雖翕翅其不容.]"라고 하였다. 큰……터이니 포부를 펼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기러기는 하늘에 높이 날아오르길 잘 하므로, 포부가 원대한 사람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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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 皇都 하늘에선 별이 기성과 미성226) 궤도에 있고땅에선 경계가 기주와 청주227)에 닿아 있네산을 이불로 삼고 바다를 옷깃으로 삼으니 황도 장엄하고성자와 신손이 계승하여 왕업이 이어지네태평성대에 노래하니 지금 만력 연간이요전장에 모래와 눈 날리니 옛날의 변경이라진나라 성 한나라 요새로 무력 함부로 쓴 곳인데문물과 의관 제정된 지 이백 년이 되었구나228) 天上星辰箕尾躔寰中彊界冀靑連被山襟海皇都壯聖繼神承寶籙綿壽域謳歌今萬曆戰場沙雪古三邊秦城漢塞窮兵地文物衣冠二百年 기성과 미성 기성(箕星)과 미성(尾星)은 모두 동쪽 방위에 속하는 별자리로, 중국의 요동 일대와 연경 및 우리나라가 위치한 곳에 해당한다. 기주와 청주 기주(冀州)와 청주(靑州)는 중국 고대의 구주(九州) 가운데 하나로, 중국의 요동 일대에 해당한다. 문물과……되었구나 명나라가 건국된 지 약 200여 년이 지났다는 뜻이다. 명나라가 건국된 것은 1368년인데, 정문부가 사은부사로서 북경에 간 것은 1610년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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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의 제시에 차운하다 次矗石樓韻 임진년 전쟁이 팔도를 휩쓸 때어앙314)은 이 성루가 가장 처참했다오바위는 굴러가지 못해 그대로 촉석이 되었지만강물은 무슨 마음으로 절로 흘러가는가황폐한 누대 중수하려 신명은 사람과 힘을 합하니능허당315)은 하늘과 땅이 함께 떠 있어라모름지기 알아야 하니, 막부의 경영하는 솜씨는장려하니 다만 한 고을 다스릴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龍歲兵焚捲八區魚殃最慘此城樓石非可轉仍成矗江亦何心自在流起廢神將人共力凌虛天與地同浮須知幕府經營手壯麗非唯鎭一州 어앙 춘추 전국 시대에 송(宋) 나라 지중어(池仲魚)라는 사람이 사는 곳이 성문에 가까웠는데, 한 번 성문에 불이 일어나자 그의 집까지 번져 중어가 죽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송 나라 성문에 불이 났는데, 연못물을 길어다 불을 끄느라, 연못물이 말라서 고기가 죽었다고 한다.《藝文類聚》 여기서는 백성이 도륙된 것을 이른다. 능허당 촉석루의 동각(東閣)이었는데, 중건할 때 함옥헌(涵玉軒)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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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록【당시 선생이 《심경(心經)》에 대해 질문한 내용을 덧붙임】 別錄【附時先生以心經質問】 전에 여쭌 몇 가지 조목에 대해서는 곡진하게 내려주신 정성스러운 가르침을 삼가 받들었습니다.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신 것이 마치 나침반이 남쪽을 가리키는 것과 같이 정확하였으니, 감사드리는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 사이에 한두 가지 다시 여쭐 것이 있어 감히 번거롭게 해 드립니다.내려주신 성대한 가르침에서 '경(經) 1장은 비록 성현(聖賢)의 지극한 논의와 격언을 말하였으나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는 별도의 요지가 없다.'라 하셨으니, 이 부분은 참으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후학들이 융통성 있게 보지 못하여 혹 격치(格致)와 성정(誠正) 밖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요지를 별도로 구할까 두려우니, 이는 작은 병통이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그 깊은 부분에 나아가 논하자면, '명덕(明德)'이라는 것은 곧 《중용(中庸)》에서의 '하늘이 명한 성(性)'126)이요, '명명덕(明明德)'이라는 것은 곧 '성을 따르는 것'127)을 말함이며, '신민(新民)'은 곧 '도(道)를 품절(品節)해 놓은 가르침'128)의 효험이고, '격치'라는 것은 곧 성찰(省察)하는 일로서 순(舜) 임금이 말한 '유정(惟精)'이요, '성정'이라는 것은 곧 존양(存養)하는 공부로서 순 임금이 말한 '유일(惟一)'입니다.129) 또 《중용》의 '중(中)과 화(和)의 지극한 경지를 이루면 천지가 제자리를 찾고 만물이 제대로 길러진다.'는 것130)은 곧 《대학(大學)》의 '평천하(平天下)'의 지극한 공입니다. 그러니 경 1장의 마음을 다스리는 요지가 《중용》 첫 장과 일체 차이가 없어 위로 요순(堯舜)의 뜻에 부합하는 것을 이와 같이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서산(西山)131)이 취사한 뜻에 우연히 의문 나는 점이 있었으므로 지난번에 우러러 여쭈었던 것인데 내려주신 성대한 가르침에 "별도의 요지가 없다."고 말씀하셨으니, 저의 의혹이 한층 깊어짐을 더욱 면치 못하겠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있는 큰 근본이 밝지 못하여 이치를 살필 때에 보는 것이 투철하지 못하므로 이와 같이 의아해 하는 병통이 있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가르침을 내려 저의 어리석은 의혹을 해소해 주심이 어떻겠습니까?내려주신 성대한 가르침에, "순 임금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아셨기 때문에132) '집중(執中)'이라는 두 글자를 가지고 전하셨으나, 우(禹) 임금은 배워서 이치를 아신 성인(聖人)133)이기 때문에 공력(功力)을 쓰는 차례를 가지고 전하신 것이다.134)"라 하신 말씀은 참으로 이전 사람들이 밝히지 못하였던 바이니, 몹시도 흠앙하고 탄복합니다. 다만 '집중'이라고 한 것이 또한 '선(善)을 택하여 굳게 지킨다.'는 말 뒤에 있으니,135)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고하신 것136)은 유독 공력을 쓰고 힘써 행하는 일이 아닙니까?근래 생각을 거듭하여 또 하나의 설을 얻었으니,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천도(天道)의 지극히 정성스러움은 곧 성(性)의 큰 근본이요 전체입니다. 이른바 미발(未發)하였을 때의 혼연한 하나의 이치는 실로 힘쓰기를 생각하고 공력을 쓴다고 해도 미칠 수 없는 곳이므로 성인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막 발(發)한 뒤에 이르러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기미가 이에 나누어지니, 이른바 '정일(精一)'과 '집중(執中)'의 공력이 여기에 이르러 베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순이 발하여 움직이는 때의 공력을 쓰는 처음을 따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저 성인이 학문을 말씀하실 적에 발하여 움직이는 곳을 따라 공력을 더한 부분이 많으니, 공자(孔子)가 안자(顔子)에게 '극기복례(克己復禮)'로 고해 주신 부분137)이 또한 그 증거입니다. 깊이 생각하여 이와 같은 견해에 이를 수 있었는데, 이러한 설에 과연 병통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그 본뜻에 가깝겠습니까?또 생각건대, 주자(朱子)께서는 "《대학》의 도는 비록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아신 옛날 대성인(大聖人)이라도 또한 여기에서 배우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요순이 제위를 서로 주고받을 적에 '정밀하고 전일해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것이다.[惟精惟一允執厥中]'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라 하셨습니다.138) 이를 통해 미루어보건대, 비록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알아 편안히 행하는139) 성인이라 하더라도 또한 일찍이 선(善)을 택하여 굳게 지키는 학문에 마음을 쓰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입니까?내려주신 성대한 가르침에, "애공(哀公)이 정사(政事)를 물은 것은 대개 치도(治道)가 어떠해야 하는지 물은 것이었고 공자의 대답 또한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방법을 가지고 말한 것이니,140) 어찌 안연(顔淵)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물은 것141)을 보지 않는가?"라 하셨으니, 이는 참으로 그러합니다. 다만 안자의 물음에 대해서는 다스림의 대개가 이와 같음을 범범하게 논하셨을 뿐이니, 군신(君臣) 간의 정사에 대한 문답의 경우에는 이와 같이 범범하게 논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과인(寡人)은 실로 고루하여 이것을 행하기에 부족합니다."142)는 등의 말뜻을 통해 보건대 당시에 행할 만한 일로 고하였음을 더욱 알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前者所稟數條。謹承曲加勤誨。開發聾瞽。的若盤鍼之指南。感佩何量。但其間有一二更稟者。敢瀆焉。盛敎曰經一章雖云聖賢至論格言。而於治心之法。別無要旨云云。此一欵固然矣。然後學不能活看。恐或於格致誠正之外。別求治心之要旨則不是細病。未知如何。盖卽其奧而論之。其曰明德。卽中庸天命之性也。其曰明明德。卽率性之謂也。新民卽修道之敎之效也。其曰格致。卽省察之事而舜之所謂惟精也。其曰誠正。卽存養之功而舜之所謂惟一也。中庸之致中和位育。卽大學平天下之極功。則經一章治心要旨。與中庸首章。一體無間。上而合乎堯舜之旨者。明的可見如此。而西山取舍之意。偶有所疑。故頃發仰稟之端。而盛敎以別無要旨爲喩。則尤未免賤惑之愈深焉。此不過在我之大本未明。見理之際。看得不透。故有如此疑訝之病。伏惟垂敎。以破愚惑如何。盛敎曰舜旣生知。故以執中二字傳之。而禹乃學而知之聖。故以用工次第傳之云者。實前人之所未發。欽服欽服。但執中云者。亦在擇善固執之後。則堯之告舜。獨非用工勉行底事歟。近者思索。又得一說。以爲天道之至誠者。乃性之大本也全軆也。所謂未發之前。渾然一理。固思勉用工之所不及處也。故聖人不言之。及其纔發之後。人心道心之幾。於是焉分。則所謂精一執中之工。至此可施。故堯舜從其發動之際用工之始以言之矣。大抵聖人言學。多從發動處加工。孔子之告顔子以克己復禮。亦其驗也。竆思得到如此見解。未知此說果無病。而或庶幾於其本旨歟。又按朱子曰大學之道。雖古之大聖人生而知之者。亦未有不學乎此者。堯舜相授。惟精惟一。允執厥中者此也云云。以此推之。雖生知安行之聖。亦未嘗不用意於擇善固執之學歟。盛敎曰哀公之問政。槩問治道之如何。孔子之對。亦以治天下國家答之。胡不看顔淵之問爲邦云云。是固然矣。但顔子之問。是泛論爲治之大槩如斯而已。至於君臣爲政問答。恐不可如是之泛論。以寡人實固。不足以行之等語意見之。尤可見其以當日可行之事告之矣。未審如何。 《중용(中庸)》에서의……성(性) 《중용장구》 제1장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天命之謂性]"라 하였다. 성을 따르는 것 《중용장구》 제1장에 "성(性)을 따름을 도(道)라 이른다.[率性之謂道]"라 하였다. 도(道)를……가르침 《중용장구》 제1장에 "도(道)를 품절(品節)해 놓음을 교(敎)라 이른다.[修道之謂敎]"라 하였다. 격치라는……'유일(惟一)'입니다 '성찰(省察)'은 자신의 사욕을 살펴 이를 막는 것을 이르며, '존양(存養)'은 마음을 보존하여 성을 기르는 것[存心養性]을 이른다. 《중용장구》 제1장에, "군자는 보지 않는 데에도 삼가며, 듣지 않는 데에 두려워한다.[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 하였는데 이는 정(靜)할 때의 존양공부를 말한 것이며, "숨겨진 것보다 드러남이 없으며 작은 일보다 나타남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만 아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삼가는 것이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 하였는데 이는 동(動)할 때의 성찰공부를 말한 것이다. 주희(朱熹)는 이 부분을 "존양성찰의 요점[存養省察之要]"이라 해석하였다. 또 '유정(惟精)'과 '유일(惟一)'은 정밀하게 살피고 전일하게 행해야 한다는 뜻으로, 순 임금이 우(禹)에게 제위를 선양하며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고 전일해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書經 大禹謨》 《중용》의……것 《중용장구》 제1장에 "중과 화의 지극한 경지를 이루면 천지가 제자리를 찾아 편안하고 만물이 제대로 길러질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라 하였다. 서산(西山) 송나라 학자 진덕수(眞德秀, 1178~1235)를 말한다. 서산(西山)은 그의 호. 자는 경원(景元),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심학(心學)의 요지가 되는 성현의 격언을 모아 《심경(心經)》을 편찬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때문에 원문은 '생지(生知)'다.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아는 성인(聖人)의 자질을 말한다. 《중용장구》 제20장에, "어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알고, 어떤 이는 배워서 알고, 또 어떤 이는 많은 노력을 한 뒤에야 안다.[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배워서……성인(聖人) 원문은 '학이지지성(學而知之聖)'이다. 배움을 통해 이치를 깨달아 성인(聖人)의 경지에 오른 인물을 말한다. 순 임금은……것이다 '집중(執中)'은 중도(中道)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순 임금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안 성인이기 때문에 요(堯) 임금이 그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집중(執中)'이라는 말만을 전수하였고, 우 임금은 배워서 이치를 안 성인이기 때문에 순 임금이 그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공력을 쓰는 차례를 가지고 전수한 것이라 말한 것이다. 《중용장구》 서문에, "경(經)에 보이는 말 중에 '진실로 그 중(中)을 잡으라.'라 한 것은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전수(傳授)해 주신 것이요,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隱微)하니, 정밀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을 잡을 수 있다.'라 한 것은 순 임금이 우 임금에게 전수해 주신 것이다. 요 임금의 한 마디가 지극하고 극진한데 순 임금이 다시 세 마디를 보탠 것은, 요 임금의 한 마디는 반드시 이와 같이 한 뒤에야 실천할 수 있음을 밝히기 위함이다.[其見於經 則允執厥中者 堯之所以授舜也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者 舜之所以授禹也 堯之一言 至矣盡矣 而舜復益之以三言者 則所以明夫堯之一言 必如是而後可庶幾也]"라 한 대목이 보인다. 집중이라고……있으니 《중용장구》 서문에, "천명(天命)‧솔성(率性)이라 말씀하신 것은 도심(道心)을 이름이요, 택선(擇善)‧고집(固執)이라 말씀하신 것은 정일(精一)을 이름이요, 군자(君子)‧시중(時中)이라 말씀하신 것은 집중(執中)을 이른다.[其曰天命率性 則道心之謂也 其曰擇善固執 則精一之謂也 其曰君子時中 則執中之謂也]"라 하여, '집중'을 '선(善)을 택하여 굳게 지킨다[擇善固執]'는 말 뒤에 둔 것을 말한다. 요 임금이……것 요 임금이 순에게 제위를 선양하며, "아, 너 순아, 하늘의 역수(曆數)가 너의 몸에 있다. 진실로 중(中)을 잡을지어다. 사해가 곤궁하면 하늘의 복록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咨爾舜 天之曆數在爾躬 允執其中 四海困窮 天祿永終]"라 한 것을 말한다. 《論語 堯曰》 공자(孔子)가……부분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이르기를 사욕을 극복하여 예로 회복하는 것이 인을 행함이니, 하루라도 사욕을 극복하여 예로 회복한다면 천하가 그 인을 허여할 것이다.[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라 한 것을 말한다. 《論語 顔淵》 주자(朱子)께서는……하셨습니다 《회암집(晦庵集)》 권13 〈계미수공주차 일(癸未垂拱奏劄一)〉에 나오는 대목이다. 편안히 행하는 원문은 '안행(安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알아 편안한 마음으로 행하는 성인(聖人)의 자질을 말한다. 《중용장구》 제20장에, "어떤 이는 편안히 행하고, 어떤 이는 이롭게 여겨서 행하며, 어떤 이는 억지로 행하지만, 공을 이루는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或安而行之 或利而行之 或勉强而行之 及其成功 一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애공(哀公)이……것이니 《중용장구》 제20장에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정사(政事)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한 내용이 보인다. 안연(顔淵)이……것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안연(顔淵)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물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하나라의 달력을 사용하며 은나라의 수레를 타며 주나라의 면류관을 쓴다.' 하였다.[顔淵問爲邦 子曰 行夏之時 乘殷之輅 服周之冕]"라 한 부분을 말한다. 과인(寡人)은……부족합니다 《중용장구》 제20장 주석에,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애공(哀公)이 말하기를 '선생의 말씀이 아름답고 지극하나, 과인은 실로 고루하여 이것을 이루기에 부족합니다.' 하였다.[公曰 子之言 美矣至矣 寡人實固 不足以成之也]"라는 부분이 인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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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원(李士元)【문석(文碩)】에게 주는 편지 贈李士元【文碩】書 완성(完城) 이사원(李士元)이 남쪽 고을에 수령으로 온 부친85)을 모시며 나를 따라 쑥대와 초목 우거진 곳에서 종유한 것이 몇 년이었는데, 일찍이 밤낮으로 경계하고 반성하는 도구로 삼을 만한 한 마디 말을 청하였다. 나는 "부족하고 못난 자라 아는 것이 없어 자신도 오히려 돌보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남을 위해 도모하겠습니까? 그러나 현공(賢公)과는 정(情)과 의리가 오랫동안 서로 부합한 사이라 또한 감히 도외시하여 끝내 부탁을 저버릴 수 없으니, 감히 한 마디 말을 하겠습니다."라 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인심(人心)이 바른 길로 가기를 좋아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온 세상에 유자(儒者)의 옷을 입고 유자의 관을 쓴 자가 얼마나 많겠습니까마는, 천하 사람들을 이끌고 어지럽고 화려한 명리(名利)의 길에 함께 달려갈 뿐 저쪽에서 나와 이쪽으로 들어오는 자는 천백에 한둘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현공은 조급히 벼슬에 나아가는 데 담담하게 마음을 끊고 탄탄하고 긴 길 위에 바른 걸음을 세우고자 하니, 제가 비록 어리석고 망령되지만 감히 들은 것을 가지고 기꺼이 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비록 그러하나 현공의 자질을 보면 순수하나 유약하고 현공의 기운을 살펴보면 맑으나 연약하니, 순수하면 의(義)를 듣고서 반드시 따르지만 유약하면 외물에 의해 옮겨 가기 쉽고, 맑으면 이치를 보는 것이 반드시 정밀하지만 연약하면 오래도록 지키기에 어렵습니다. 무릇 사람의 본성은 선하지 않음이 없으나 기질에 병통이 있으면 본성이 그에 따라 가려지게 되니, 반드시 먼저 기질 위에 있는 병통을 고치고 새롭게 한 뒤에야 비로소 학문하는 것을 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부자(夫子)께서 학문을 논하실 적에 지(知)‧인(仁)‧용(勇) 세 가지를 학문하는 절도로 삼고서, "아무리 유약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강해지고,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현명해진다."라는 말로 결론지으신 것입니다.86)지금 현공은 자질이 순수하고 기운이 맑으니 지(知)의 공부에 있어 바랄만한 점이 있을 듯하나, 유약하고 연약한 병통이 있으니 이른바 '인(仁)의 지킴'과 '용(勇)의 강함'이라는 것에 대해 용감하게 나아가고 확고하게 지키기를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유약함을 변화시켜 강하게 만들고 연역함을 변화시켜 굳세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정신을 온전하게 길러 외물이 다가와도 빼앗기지 않는다면 유약함이 거의 변하여 강함이 되고, 의(義)를 모아 확충하여87) 부지런히 힘쓰고 쉬지 않는다면 연약함이 또한 변하여 굳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가지를 합하여 그 요점을 말하자면 아마도 '경(敬)'일 것입니다. 경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외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단정하고 엄숙한 태도를 지니는 것[莊整齊肅]88)이 이것이요, 내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마음을 전일하게 하고 언제나 깨어 있는 것[主一惺惺]89)이 이것입니다. 단정하고 엄숙한 태도를 지니며 마음을 전일하게 하고 언제나 깨어 있어 안팎이 서로 바르고 동(動)할 때나 정(靜)할 때나 어긋나지 않아, 하루 이틀 사이에도 끊어짐이 없고 함께 거처하든 홀로 거처하든 가는 곳마다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면 앞에서 말한 기질의 병통을 어찌 근심하겠습니까? 기질이 이미 변하였다면 현공의 맑고 밝은 자질로 순(舜) 임금처럼 되기를 바라건 안연(顔淵)처럼 되기를 바라건90) 어디를 간들 얻을 수 없겠습니까? 바라건대 현공은 힘쓰십시오. 저 또한 이로부터 스스로 경계하고 살필 것입니다. 서로 돈독히 허여한 사이인지라 주제넘고 경솔함이 여기에까지 이르렀으니, 몹시도 부끄럽고 죄송합니다."경자년(1660, 37세) 4월 하순 남촌(南村)의 농사짓는 늙은이는 절하고 쓰다. 完城李士元。陪嚴府之倅于南。從余遊於蓬蒿草棘之間有年矣。嘗請一言以爲日夕箴省之具。余謂拙劣者無所知。自身猶不恤。何暇爲人謀耶。然於賢公情義久相孚。亦不敢自外。竟孤所囑。則敢有一說。曰人心不好正路而行者久矣。擧一世衣儒冠儒者何限。而率天下同趍於紛華聲利之途。出彼入此者。千百未見其一二矣。今賢公湛然絶意於躁進。欲立正步於坦衢長途之上。愚雖昏妄。敢不樂告以所聞哉。雖然看贒之質粹而弱。察賢之氣淸而軟。粹則聞義必從。而弱則易爲物遷。淸則見理必精。而軟則艱於久守。凡人之性無不善。而氣質有病則性從而蔽。必也先從氣質上病痛革新之然後。方可以論爲學。故昔者夫子之論學。以知仁勇三者。爲爲學之節度。而結之曰雖柔必強。雖愚必明。今賢質粹而氣淸。則於知上工夫。似有可望。而有弱與軟之病則所謂仁之守勇之強。難保勇進而確守也。然則如之何而變弱爲強。變軟爲剛歟。完養精神。物來而不爲奪則弱庶變爲強。集義櫎充。勉勵而不息則軟亦可變爲剛矣。二者合而言其約則其敬乎。夫敬者何謂也。從外而言。莊整齊肅是也。從內而言則主一惺惺是也。莊整齊肅。主一惺惺。內外交正。動靜不差。一日二日。無所間斷。羣居獨處。無往不敬。則何憂乎前所謂氣質之病乎。氣質旣變則以賢淸明之資。希舜希顔。何往而不可得耶。惟賢君勖之哉。吾亦從此自警省焉。相與之厚。僭率至此。慚罪慚罪。庚子淸和下浣。南村農老拜稿。 남쪽……부친 이문석의 부친 이정(李晸)을 가리킨다. 이정은 1656년 남평 현감(南平縣監)에 제수되었다. 《承政院日記 孝宗 7年 閏5月 12日, 6月 11日》 옛날……것입니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0장에 "학문을 좋아함은 지에 가깝고, 힘써 행함은 인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앎은 용에 가깝다.[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라 하였고,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해야 하니, 과연 이 도리를 능히 한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현명해지고, 아무리 유약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강해진다.[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라 하였다. 확충하여 원문은 '황(櫎)'인데, 문맥을 살펴 '확(擴)'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단정하고……것 경(敬)을 행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회암집(晦菴集)》 〈답방경도뢰(答方耕道耒)〉에, "정부자(程夫子)께서 말씀하신 '경(敬)'이라는 것 또한 '의관(衣冠)을 바루고 생각을 전일(專一)하게 하며, 단정하고 엄숙한 태도를 지니고 속이지 말고 태만하지 말라.'고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若程夫子所謂敬者 亦不過曰正衣冠 一思慮 莊整齊肅 不慢不欺而巳]"라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마음을……것 경(敬)의 개념을 풀이한 말이다. 《이정수언(二程粹言)》 권상(卷上)에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을 '경(敬)'이라 하고,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감이 없는 것을 '일(一)'이라 한다.[主一之謂敬 無適之謂一]"라고 한 정이(程頤)의 말이 나오고, 《심경부주(心經附註)》에 "경은 마음이 언제나 깨어 있게 하는 법이다.[敬是常惺惺法]"라고 한 사량좌(謝良佐)의 말이 나온다. 순(舜) 임금처럼……바라건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본받아서 행하기만 하면 또한 그와 같이 될 수 있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고 한 안연(顔淵)의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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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愼氏)91)【성필(聖弼)】에게 답하는 편지 答愼【聖弼】書 장암(塲巖)에서 한번 모셨을 때는 몹시도 경황이 없었는데, 헤어진 뒤에 고요히 조섭하시는 체후는 어떠하십니까? 이전 편지에서 말씀드린 예(禮)에 대한 의문점은 비록 직접 뵌 자리에서 대략 논하였습니다만, 끝내 결론을 내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상세히 생각해보니,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신 "비록 6, 7대라도 현재의 종자(宗子)와 상의하여 결정한다."라는 것92)은 장방(長房)으로 체천(遞遷)한 종자93)가 여전히 장방의 별묘(別廟)에서 주인이 됨을 말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말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대종자(大宗子)가 되었으면 비록 고조(高祖)의 사당이 헐려서 6, 7대에 이르렀더라도 온 집안이 모두 종통(宗統)으로 받들어 종법(宗法)을 그에게 부친다고 말씀하신 것인 듯합니다. 주자(朱子)께서 말씀하신 "고조의 사당이 헐리면 다시 종통으로 받들지 않는다."라는 것94)은 고조의 신주가 이미 봉사(奉祀) 대수가 다하지 않은 방(房)으로 옮겼다면 봉사 대수가 아직 다하지 않은 손자 가운데서 그 종통을 별도로 세우고 대종(大宗)의 봉사 대수가 다한 자는 다시 종통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뜻으로 보건대 정자의 설은 종법의 총론(統論)이요 주자의 말은 제법(祭法)의 세목으로, 각기 주장하는 바가 있지만 장방이 제사를 주관하는 데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대개 5대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예에 있어 참람된 것이니 지금 마땅히 신주를 묻어야 합니다. 그러나 방계(傍系) 손자의 봉사 대수가 아직 다하지 않아 차마 제사를 지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제사를 대신 주관하는 것입니다. 종자된 자는 복(服)이 다하고 정(情)이 다하여 감히 그 사당에서 참람되이 제사를 지낼 수 없으니, 또한 어찌 감히 참람되이 방친(傍親)의 사당에서 주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인정(人情)과 천리(天理)로 볼 때 분명하여 의심할 것이 없을 듯한데,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고명하신 그대의 뜻은 어떠하십니까?대저 예라는 것은 천리의 절문(節文)95)이니, 천리가 분명하지 않으면 절문이 상세하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평소 큰 근본을 세우고 의리를 밝히지 못하여 미발(未發)하였을 때 전체(全體)가 중(中)에 맞지 않고 이발(已發)한 뒤에 대용(大用)이 조화롭지 못하여96) 범상한 일에도 아는 것이 모호하니, 세세하고 정미한 절문과 의도(儀度), 지극히 정밀한 성현(聖賢)의 말뜻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밝게 헤아려 지극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우리들이 해야 할 오늘날의 급선무는 모두 '경(敬)에 처하여 근본을 세우고, 이치를 궁구하여 앎을 지극히 한다.[居敬立本窮理致知]'라는 여덟 글자에 있습니다. 여덟 글자의 지름길이 종이 위에 있으니 말하는 자가 마음 위의 길에서 돌이켜 구하여 종이 위와 마음 위를 합쳐서 하나로 만든다면, 이것을 천지만물에까지 미루어 어디를 가든 천리의 절문에 합치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고금의 예설(禮說)에 대한 책은 책상 문서 위에 겹겹이 쌓여 한갓 뜻을 상하게 하는 완물(玩物)97)이 될 뿐일 것입니다.비루한 저는 이러한 점에 대해 견해가 있으나 아직 미치지는 못한 사람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이에게 질정을 구하고자 하므로 이전 편지의 질문으로 인하여 아울러 언급하는 것이니, 그대98)는 다시 상세히 궁구하여 만약 합치되지 않는 점이 있다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塲巖一奉。殊甚草草。未知別後靜養何似。前書禮疑。雖略面論。終未歸宿。更詳思之。程子所謂雖六世七世。計會今日之宗子者。恐非謂遞遷長房之宗子。尙爲主人於長房之別廟也。細看語意。似謂旣爲大宗子。則雖高祖廟毁而至於六七世。一家皆宗之而宗法寓焉者也。朱子所謂高祖廟毁。不復相宗者。高祖之主。旣遷於親未盡之房。則別立其宗於親未盡之孫。而大宗親盡者不復爲宗也。作此意看之。程子之說。宗法之統論也。朱子之言。祭法之細目也。各有所主。而不害其爲長房之主祭矣。盖祭及五世。在禮爲僭。今當埋主而支傍之孫親旣未盡。不忍不祭。故遞主其祭。爲宗子者。服盡情盡。不敢僭祀於其廟。則亦安敢僭爲主人於傍親之廟哉。人情天理。的似無疑。未知於高意如何。大抵禮者。天理之節文也。天理未明則節文未詳。吾輩平日不能立大本明義理。未發之前。全體未中。旣發之後。大用未和。尋常事爲。所見糊塗。則至於節文儀度之纖悉深微。聖賢言意之至精至密。以何者而照鑑得至歟。是以吾輩今日急務。全在於居敬立本竆理致知八字上矣。八者蹊徑。在於紙上。說話者反而求之心上路脉。紙上心上合渾爲一。則以此推之天地萬物。無往而不合於天理之節文矣。不然則古今禮說簡冊。堆疊於案牘。徒爲喪志之玩物矣。鄙人有見於此而未及者也。欲求正於同志。故仍前書之問而幷及之。汝賚更加詳究。如有不合者。幸許相敎。 신씨(愼氏) 신성필(愼聖弼)을 가리킨다. 자는 여뢰(汝賚), 호는 경암(敬庵)이다. 감사를 지낸 신희남(愼喜男)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신광익(愼光翊), 형은 참봉 신성윤(愼聖尹)이다. 정자(程子)께서……것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7에, "무릇 소종(小宗)은 5대로 법을 삼아 봉사(奉祀) 대수가 다하면 친족은 흩어진다. 만약 고조(高祖)의 아들이 아직 살아있어서 그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면, 현재 종자(宗子)가 된 자가 비록 6, 7대라도 또한 모름지기 현재의 종자와 상의하여 결정하고, 그런 뒤에 그 아버지의 제사를 지낸다. 이는 종자에게 군주의 도가 있기 때문이다.[凡小宗以五世爲法 親盡則族散 若高祖之子尙存 欲祭其父 則見爲宗子者 雖是六世七世 亦須計會今日之宗子 然後祭其父 宗子有君道]"라 하였다. 장방(長房)으로 체천(遞遷)한 종자 '체천(遞遷)'은 봉사(奉祀) 대수(代數)가 다한 선조의 신주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보통 최장방(最長房)의 집으로 옮기는데, 최장방은 4대 이내의 자손 가운데 항렬이 가장 높은 연장자를 말한다. 주자(朱子)께서……것 《회암집(晦庵集)》 권51 〈답동숙중(答董叔重)〉에, "고조의 사당이 헐리면 이 사당을 함께 하는 자는 단문(袒免)의 친척이 되니, 다시 종통으로 받들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5대가 되면 옮긴다.'는 것이다.[高祖廟毀 則同此廟者 是爲袒免之親 不復相宗矣 所謂五世而遷也]"라 하였다. 천리의 절문(節文) 《논어》 〈학이(學而)〉에 "예를 적용할 때는 차분하고 각박하지 않게 하는 것이 귀중하다.[禮之用 和爲貴]"라 하였는데, 주희(朱熹)는 이를 해설하면서 "예라는 것은 천리에 의해 차등적으로 매겨진 등급이자 인간사에서 마땅히 준수해야 할 법칙이다.[禮者 天理之節文 人事之儀則也]"라 하였다. 전체(全體)가……못하여 《대학장구(大學章句)》 전 5장에, "대학에서 처음 가르칠 때 반드시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모든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 그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가지고 더욱 궁구해서 그 지극함에 이르는 것을 구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힘쓰기를 오래해서 하루아침에 돌연히 관통하게 되면 모든 사물의 표리와 정조가 이르지 않음이 없게 되고 내 마음의 전체(全體)와 대용(大用)이 밝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니, 이것을 '격물(格物)'이라 이르며, 이것을 '지지지(知之至)'라 이른다.[大學始敎 必使學者 卽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至於用力之久 而一旦豁然貫通焉 則衆物之表裏精粗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 此謂物格 此謂知之至也]"라 한 데서 온 말이다. 뜻을……완물(玩物) 쓸데없는 물건을 가지고 노는 데에 몰두한 나머지 소중한 자기의 본심을 잃어버린다는 뜻의 '완물상지(玩物喪志)'에서 취한 말이다. 《서경(書經)》 〈여오(旅獒)〉에,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하찮게 여기면 덕을 잃고, 좋아하는 사물에 빠지면 뜻을 잃는다.[玩人喪德 玩物喪志]"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그대 원문은 '여뢰(汝賚)'다. 신성필의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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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愼氏)【성필(聖弼)】에게 답하는 편지 答愼【聖弼】書 겨울에 칩거하며 병을 다스린 것이 마치 호흡을 멈춘 거북99)과 같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정다운 안부를 전해주는 인편이 이르렀으니, 상을 나란히 하고 조용히 이야기 나누면서 마음의 곡절을 세세히 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 가운데 '거경(居敬)' 한 대목은 벗들과 떨어져 쓸쓸히 지내는100) 저의 비루함을 계발(啓發)해 주며, '이치를 궁구하며 단정히 앉는다.'는 말씀은 은연중에 못난 저의 병통에 들어맞으니, 도와주고 깨우쳐주는 어진 마음으로 성대하게 가르침을 내려주신 데 깊이 감사드립니다.다만 도수(度數)를 깊이 연구하는 것이 또한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라는 말씀101)은 정자(程子)의 뜻의 외면적인 부분을 대략 살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자(程子)께서는 경(敬)을 위주로 하는 공부가 《소학(小學)》에서 빠진 것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는 말102)을 가지고 보자면 격물치지(格物致知)하기 전에 어찌 근본을 세우는 공부가 전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자사(子思)는 존양(存養)을 성찰(省察)의 앞에 두었고 덕성(德性)을 문학(問學)의 앞에 두었으니,103) 그 뜻이 어찌 얕겠습니까? 우리 어진 그대와 다시 이 뜻을 궁구하기를 바랍니다.천박하고 고루함을 헤아리지 않고 말이 문득 이러한 데까지 이르렀으니, 몹시도 두렵고 부끄럽습니다. 하나의 양(陽)이 처음 생겨나는 이때104)에 고요하고 묵묵하게 단정히 수양하시어 복이 끝없이 이어지기를 우러러 바랍니다. 凍蟄調病。若閉息之龜。此時情問便至。何異連床靜對。細論心曲。其中居敬一款。起發索居之陋。而竆理端坐之語。暗中拙者之病。輔警之仁。深荷盛賜。但硏竆度數之亦爲竆理。程子之意。非不粗窺其皮毛。而以程子主敬工夫可以當小學云云之語看之。格致之前。豈容專無立箇根本之工歟。子思以存養居省察之前。以德性在問學之首。其意豈淺淺哉。願與吾賢更究此旨。不揆淺陋。言忽至此。悚愧悚愧。一陽初生。仰惟靜默端養。延福無極。 호흡을 멈춘 거북 도가(道家)에서는 호흡을 거북처럼 하면 먹고 마시지 않고도 장생(長生)할 수 있다고 한다. 일설에는 거북은 잠잘 때 숨을 귀로 내뱉는데, 이로 인하여 장생하는 것이라 한다. 벗들과……지내는 원문은 '삭거(索居)'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자하(子夏)가 "내가 벗을 떠나 쓸쓸히 홀로 산 지가 오래이다.[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도수(度數)를……말씀 송나라 유학자 정이(程頤)는 학문에 있어 특히 '거경궁리(居敬窮理)'를 강조하였는데, '거경'은 내적 수양 방법으로서 마음을 성찰하여 성실하게 기거동작(起居動作)을 절제하는 것을 말하며, '궁리'는 외적 수양 방법으로서 널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정확한 지식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신성필이 보낸 편지 가운데, 도수(度數)를 깊이 연구하는 것이 곧 '궁리'의 방법이 된다고 한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자(程子)께서는……말 《소학집주(小學集註)》 〈총론(總論)〉에,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정자께서는 경(敬)을 위주로 하는 공부가 《소학(小學)》에서 빠진 것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경을 위주로 하면 방심(放心)을 거두어 큰 근본을 세울 수 있으니, 큰 근본이 이미 선 뒤에 대학(大學) 공부도 순서를 따라 나아가면, 가는 곳마다 통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陳氏曰 程子說主敬工夫 可以補小學之闕 蓋主敬 可以收放心而立大本 大本旣立 然後大學工夫循序而進 無往不通]"라 한 대목이 보인다. 자사(子思)는……두었으니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에, "군자는 그 보지 않는 바에도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듣지 않는 바에도 두려워한다.[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 하고, "숨겨진 것보다 드러남이 없으며 작은 일보다 나타남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만 아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삼가는 것이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 하였는데, 주희(朱熹)는 이를 "존양성찰의 요점[存養省察之要]"이라 해석하여 '존양'을 '성찰'의 앞에 두었다. 또 《중용장구》 제27장에는 "군자는 덕성을 높이며 문학을 말미암는다.[君子尊德性而道問學]"라 되어 있어, 덕성을 문학의 앞에 두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이때 동지(冬至)를 가리킨다. 《주역》 〈복괘(復卦)〉의 공영달(孔穎達) 소(疏)에, "동지에 하나의 양이 생기니, 이는 곧 양은 움직여서 용사하고 음은 고요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冬至一陽生 是陽動用而陰復於靜也]"라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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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愼氏)【성필(聖弼)】에게 부치는 편지 寄愼【聖弼】書 사도(斯道)가 불행하여 성암(惺菴) 문장(文丈)105)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으니, 부고를 듣고서 저도 모르게 신위(神位)를 설치하여 통곡하고 이어서 애도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문하(門下)이자 지친(至親)으로서 은혜와 의리가 모두 지극하시니, 도(道)를 위해서든 정(情)을 위해서든 무너지고 찢어지는 마음을 어찌 감당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돌아보건대 이 외로운106) 몸은 병으로 궁벽한 들판에 버려진 탓에 비록 함장(函丈)107)의 사이에서 계속해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였지만 만년에 사우(師友)의 교분으로 외람되이 지극한 기대를 받았는데, 어찌 오늘날의 흉한 소식이 전해질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몹시도 애통하고 슬픕니다.지난번 집안 조카 문봉의(文鳳儀)가 받들어 전해준 정다운 안부 편지108) 가운데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근래의 상태는 어떠하십니까? 저 또한 숙질(宿疾)이 여름에 다시 발생하였습니다. 가을 초에 날씨가 시원해져 혹 병이 낫게 된다면 성암의 상차(喪次)109)에 달려가 곡하고 이어 모시고서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병으로 인해 할 말을 모두 적지 못합니다. 斯道不幸。惺菴文丈奄棄經學。聞訃不覺設位而痛哭。繼之以悼念。伏惟師門至親。恩義備盡。爲道爲情。摧裂何堪。顧此孤露之生。病廢竆原。雖未能源源際晤於函丈之間。晩歲師友之託。猥有至望。豈意今日凶聞經至哉。痛悼痛悼。頃者家甥文鳳儀奉傳情問書中。有愆度之眎。未知近况如何。某亦宿疾夏中更作。秋初氣爽。倘得蘇歇。當哭惺庵喪次。仍擬奉展。病不備悉。 성암(惺菴) 문장(文丈) 이수인(李壽仁, 1601~1661)을 가리킨다. 성암(惺菴)은 그의 호.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안(幼安)이다. 1633년 과거에 급제하여 전적, 병조좌랑,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642년 재차 전적에 제수되었으나 사은한 뒤 바로 전리(田里)로 내려갔으며, 이후로도 여러 차례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문장(文丈)'은 재주가 높고 덕이 뛰어나면서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한 존칭이다. 외로운 원문은 '고로(孤露)'다. 어릴 때 부모를 잃어 의지할 데가 없는 것을 말한다. 함장(函丈) 한 길[丈]을 용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스승과 강론하는 자리를 의미하며, 스승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만약 음식을 대접하는 손님이 아니고 스승과 강론하는 자리이면 자리를 펴되 한 길쯤 되는 공간을 띄운다.[若非飮食之客 布席 席間函丈]"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집안……편지 《남포집(南圃集)》 〈남교일기(南郊日記)‧신축(辛丑)〉에, 1661년 5월 25일에 집안 조카 문봉의(文鳳儀)가 영암(靈巖)에서 돌아와 신성필(愼聖弼)의 편지를 전해주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상차(喪次) 상중에 상주가 거처하며 집상(執喪)하는 곳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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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愼氏)【성필(聖弼)】에게 답하는 편지 答愼【聖弼】書 일전에 소은공(素隱公)110)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소미성(小微星)이 빛을 숨기는 아픔111)을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혹서와 질병으로 인해 아직까지 편지 한 통을 올려 위로를 드리지 못하였는데, 이렇게 손수 쓰신 편지를 먼저 받게 되니 열어서 읽고 난 뒤 부끄러운 마음 끝이 없습니다. 하늘이 어찌 유독 우리 호남에만 이렇게까지 액운을 내리신단 말입니까? 학문이 우리나라에 크게 행해진 뒤로 훌륭하고 뛰어난 재사(才士)들이 호남에 많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가법(家法)을 마음에 둔 사람은 존재(存齋)112) 한 분 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 사이에 다행히 성암(惺菴)113)이 나왔으니, 후학들의 기대가 어떠하였습니까? 그러나 우러러볼 곳을 잃은 아픔114)이 농부가 가을 추수를 바라는 듯이 하는 날에 갑자기 일어났으니, 이른바 하늘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또 생각건대 선생께서 의발(衣鉢)을 전해주신 것이 불행히도 더욱 드무니, 마음으로 전하신 뜻을 계승하여 선생의 명성을 영원히 실추시키지 않을 자는 또한 현공(賢公) 형제 중에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 현공께서 자임(自任)하실 중임은 평소 함장(函丈)115)을 가까이서 모실 때와 크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현공께서는 힘쓰십시오.보내주신 편지를 자세히 읽어 보니, 슬프고 애통하며 간절하고 애처로운116) 말에서 저를 비루하다고 하여 외면하시지 않는 뜻을 충분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제넘고 경솔하게 이러한 점을 언급하였으니, 도리어 두렵고도 부끄럽습니다.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日前聞素隱公捐館之音。不任小微隱光之痡。顧以酷炎病苦。尙稽一奉書以慰。玆承以手書先之。開讀之餘。愧騂無極。天何獨厄於我南湖一至於此歟。自b036_382a斯學之大行於鰈邦。豪才傑士。非不多於南湖。而至以程朱家法存心者。存齋一人而已。而百年之間。幸得惺菴之出。則後學之望如何如何。而安仰之痛。遽發於如農望秋之日。所謂天者不可諶矣。且念先生衣鉢之傳。不幸又鮮。紹述心傳之旨。永不墜門墻之聲者。亦不在於賢公伯仲間耶。自此賢公自任之重。有大異於平日跬步函丈間也。惟賢公勖之。細讀來書。悲哀懇測之辭。足見不以卑鄙爲外之意。僭率及此。還覺悚愧。伏惟情諒。 소은공(素隱公) 신천익(愼天翊, 1592~1661)을 가리킨다. 소은(素隱)은 그의 호.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백거(伯擧)다. 1612년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정자, 이조 참의를 지냈는데, 광해군의 실정을 보고 사직하여 전라남도 영암에 은거하였다. 인조반정 후 홍문관‧사간원의 요직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54년에 다시 나와서 홍문관 부제학, 대사간, 이조 참의, 이조 참판, 한성부 우윤 등을 역임한 뒤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소미성(小微星)이……아픔 '소미성(少微星)'은 처사(處士)를 상징하는 별이다. 이 별이 희미해지거나 떨어지면 인간 세상의 처사(處士)가 죽는다고 한다. 진(晉)나라 사부(謝敷)는 자가 경서(慶緖)인데, 성품이 맑고 욕심이 없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태평산(太平山)에 10여 년 동안 은거하였다. 하루는 달이 소미성을 범하자 점치는 사람이 "처사가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당시 명망이 높았던 대규(戴逵)가 죽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사부가 죽었다고 한다. 《晉書 卷94 隱逸列傳 謝敷》 존재(存齋)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을 가리킨다. 존재(存齋)는 그의 호.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명언(明彦), 다른 호는 고봉(高峯)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58년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수찬, 병조 좌랑, 이조 정랑, 사헌부 지평, 홍문관 교리, 사헌부 헌납 등을 역임하였고, 1567년 선조가 즉위하자 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에 대한 추증을 건의하였다. 이후 대사성, 대사간, 공조 참의 등을 지낸 뒤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던 도중에 고부(古阜)에서 객사하였다.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발췌하여 《주자문록(朱子文錄)》을 편찬하는 등 주자학에 정진하였다. 이황과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논란을 편 일이 유명하다. 성암(惺菴) 이수인(李壽仁, 1601~1661)을 가리킨다. 성암(惺菴)은 그의 호.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안(幼安)이다. 1633년 과거에 급제하여 전적, 병조좌랑,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642년 재차 전적에 제수되었으나 사은한 뒤 바로 전리(田里)로 내려갔으며, 이후로도 여러 차례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우러러볼……아픔 원문은 '안앙지통(安仰之痛)'이다. 훌륭한 스승이 죽은 데 대한 슬픔을 말한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태산이 무너지는구나. 대들보가 꺾이는구나. 철인이 시드는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 노래하였는데, 자공(子貢)이 이 노래를 듣고는 "태산이 무너지면 우리가 장차 어디를 우러러보며, 대들보가 꺾이고 철인이 시들면 우리가 장차 어디에 의지하겠는가.[泰山其頹 則吾將安仰 梁木其壞 哲人其萎 則吾將安放]"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함장(函丈) 한 길[丈]을 용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스승과 강론하는 자리를 의미하며, 스승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만약 음식을 대접하는 손님이 아니고 스승과 강론하는 자리이면 자리를 펴되 한 길쯤 되는 공간을 띄운다.[若非飮食之客 布席 席間函丈]"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애처로운 원문은 '측(測)'인데, 문맥을 살펴 '측(惻)'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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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언(李正言)117)【수인(壽仁)】에게 답하는 편지 答李正言【壽仁】書 신군(愼君) 형제118)가 연이어 방문하여 이를 통해 훌륭한 소식을 가득 얻었으니, 조금이라도 만나서 조용히 이야기 나누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천금과 같이 귀한 편지를 멀리 텅 빈 골짜기119)로 보내주실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로 인하여 도(道)를 닦으시는 체후가 맑고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몹시 마음이 확 트입니다.다만 생각건대 선진(先進)이 후진(後進)을 이끌어 나아가게 하는 데 있어서는, 차근차근 순서를 두어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에 이르고 낮은 곳에서부터 높은 곳에 이르러 발꿈치를 세워 정하고서120) 실제적인 힘을 점차 쓰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보내주신 말씀 가운데 '남쪽 너머에서 우뚝하다', '도의(道義)를 창도하였다'는 등의 몇 마디 말은 비록 초학자를 격동시켜 광대한 전지(田地)에 나아가게 하고자 하는 두터운 뜻이지만, 비루한 저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몇 마디 말들은 비록 노사(老師)나 숙유(宿儒)에게 해당시키더라도 반드시 두려워하며 움츠리고 물러나 감히 자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비루하고 못난 저와 같은 사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편지지를 앞에 두고서 망연(茫然)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영악(靈岳)에서의 기이한 유람은 평소 꿈에 그리던 것이었으며 도(道)가 높으신 분을 받들어 모시는 것 또한 하나의 성대한 일이니, 한 번에 두 가지를 획득하는 것은 좀처럼 얻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속세의 번거로움에서 깨어나지 못하여 잡다한 일로 인해 기회를 잃고 말았으니, 마시고 쪼아 먹는 데에도 또한 운수가 있음을 비로소 알겠다. 남쪽을 바라봄에 서글픈 마음이 지극하였다.】 愼君兄弟相繼來尋。是用飽得蘭聞。思欲少奉從容而不可得也。何意千金珍札。遠投虗牝。仍審道履淸迪。伏豁伏豁。第念先進之引進後進。當旋旋有序。自近及遠。由下至高。使之立定脚跟。漸用實力。來喩南表之特道義之倡數語。此雖激動初學。使之進步於廣大田地之厚意。然鄙意以爲此數等語。雖使老師宿儒當之。必慄慄退縮而不敢處也。况陋劣者耶。不勝臨紙憮然。【靈岳奇遊。夙日夢想。承接道宇。亦一盛事。一發兩獲難得之擧。而塵煩未幻。冗故有奪。始知飮喙亦有數也。南望悵然之至。】 이 정언(李正言) 이수인(李壽仁, 1601~1661)을 가리킨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안(幼安), 호는 성암(惺菴)이다. 1633년 과거에 급제하여 전적, 병조좌랑,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642년 재차 전적에 제수되었으나 사은한 뒤 바로 전리(田里)로 내려갔으며, 이후로도 여러 차례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신군(愼君) 형제 김만영과 교유하던 신성필(愼聖弼) 형제를 가리키는 듯하다. 신성필은 성균관 생원 신광익(愼光翊)의 아들로, 형은 신성윤(愼聖尹), 아우는 신성망(愼聖望)이다. 텅 빈 골짜기 원문은 '허빈(虗牝)'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텅 빈 골짜기를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자신이 은거하는 곳을 가리킨다. 한유(韓愈)의 〈증최립지평사(贈崔立之評事)〉 시에, "가련하다. 쓸데없이 정신만 허비할 뿐, 황금을 텅 빈 골짜기에 던지는 것과 같도다.[可憐無益費精神 有似黃金擲虛牝]"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韓昌黎集 卷4》 발꿈치를 세워 정하고서 원문은 '입정각근(立定脚跟)'이다. '각근'은 기초‧기본‧근저를 의미하는 말로, '발꿈치를 세워 정한다'는 것은 곧 학문의 기초‧기본을 튼튼히 다진다는 뜻이다. 《소학집주(小學集註)》 총론에서 주희(朱熹)가 "지금은 모두 소학의 공부를 놓치고 지나쳐 버려 다시 돌아가 공부할 수 없으니, 다만 지금의 처지에 의거하여 곧바로 머물러 발꿈치를 세워 정하고 공부해야 한다. 30세에 깨달았다면 곧 30세부터 발꿈치를 세워 정하고 공부를 하며 곧 나이 8, 9십 세에 깨달았다면 또한 마땅히 현재 처한 상황에서 공부해야 한다.[今都蹉過了 不能更轉去做 只據而今地頭 便劄住立定脚跟做去 如三十歲覺悟 便從三十歲立定脚跟做去 便年八九十歲覺悟 亦當據現在劄住做去]"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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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한(李典翰)【수인(壽仁)】에게 답하는 편지 答李典翰【壽仁】書 삼가 생각건대 산재(山齋)가 깨끗하고 밝으며 지금의 날씨가 맑고 화창하여 보중(保重)하시는 가운데 도(道)를 음미하시는 일이 날로 참다울 것이니, 우러러 바라보는 마음이 어느 날인들 간절하지 않겠습니까? 연전에 나아가 뵈었을 때 올 봄에 산방(山房)에 조용히 나아가겠다는 뜻으로 말씀하셨으니, 기대한 지 오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번에 듣건대 거듭 병을 앓으시어 성상의 소명(召命)이 여러 차례 이르렀음에도 달려가지 못하셨다고 하니, 예사로운 산방의 모임을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저 또한 평소 앓던 풍현(風眩)121)이 봄이 되자 다시 일어나 여름 전에 한 번 인사드리는 일을 점칠 수 없을 듯하니, 우러러보며 서글퍼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덕이 높은 분을 외람되이 모시고 깨우침과 가르침을 받드는 일을 이미 쉽게 이룰 수 없게 되었으니, 편지 한 통을 올려 지극한 가르침을 받기를 원하여 고질적인 병통을 바로잡는 도구로 삼고자 생각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주제넘고 비루하다고 하여 굳게 거부하지 마시고 답장을 보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저는 어린 나이 때부터 비루하고 못난 자질을 헤아리지 않고 망령되이 이 일에 뜻을 두었으나 어리석어 힘을 쓸 방도를 알지 못하였으니, 마침내 이 학문의 본말과 오묘함이 지극히 심오하고 지극히 높아서 아득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발꿈치를 하학(下學)의 일상적인 곳에 두지 않아122) 성정(性情)이 고원하여 행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서로 치달려 저도 모르게 물외(物外)에 마음을 풀어놓는 노장(老莊)이나 텅 비고 적막한 데에서 마음을 노니는 불가(佛家)로 점차 흘러 들어갔습니다. 옆길과 굽은 길을 지나느라 발이 부르트고 허벅지에 알이 배겨 10여 년의 정력(精力)을 허비하고 강건한 시절을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점차 연로해지고 기운이 점차 쇠약해짐에 이른 뒤에야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는 탄식123)이 일어 비로소 병주(竝州)는 실로 나의 고향이 아님을 깨닫고서124) 머리와 발걸음을 돌린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밝은 스승과 힘이 있는 벗으로서 앞장서서 지휘해 줄 사람이 없어 묵은 서적과 해진 종이만을 고집스레 지키고서 얻는 바가 없으니, 한밤중에 스스로 생각함에 저도 모르게 등에서 땀이 흐릅니다.일찍이 듣건대 배움이 넓지 못한데 먼저 자기 몸을 단속한다면 선가(禪家)로 흐르고, 자기 몸을 단속하지 않고서 한갓 널리 배우기만 한다면 잡학(雜學)으로 흐른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여러 책을 널리 배우고 여러 이치에 모두 이르고자 하는데 총명함이 미치지 못하고 법도가 서지 않아 어지러운 생각이 쌓여 본원(本源)이 도리어 거칠어지니, 이러한 폐단을 징치(懲治)하여 실제적인 곳에 귀결시켜 지극히 고요한 경계에 오로지 힘을 쓰고자 한다면 체(體)는 있으나 용(用)은 없는 데로 흘러가기 쉬울까 염려스럽습니다. 어떻게 하면 잡학에 빠지지 않고 또 자기 몸을 단속하기만을 고수하지 않아 동정(動靜)이 서로 길러지고 본말이 서로 의지하여 전날의 더러운 습관을 통렬히 씻어내고 날로 새로워지는 걸음에 넉넉히 들어가 중도에서 헤매다가 알려지지 못하고 죽는 일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한 마디 번뜩이는 밝은 말125)을 내려서 중요한 길을 열어 보여주신다면 종신토록 마음에 새겨 두겠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먼저 병통에 걸린 이유를 안 뒤에 증상에 맞는 약제를 내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때문에 전후로 구구절절 숨김없이 다 말씀드린 것입니다. 살펴 헤아려 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伏惟山齋淨明。時日淸和。保練之中。味道日眞。瞻望之懷。何日不馳。年前晉拜之時。敎以今春穩就山房之意。企待久矣。頃聞重致愆和。未赴聖召之稠至。則等閑山房之會。安可爲也。萬英亦素患風眩。當春更發。夏前一拜。似未可卜。瞻悵之情。難以名言。叨陪德宇。獲承警誨。旣未易辦。則思奉一書。願得至敎。以爲砭刺痼病之具。伏惟毋以僭陋堅拒。而辱覆之如何。萬英盖自幼少之年。不揣其質之陋劣。妄有意於此事。而昏不知施力之方。遂意此學之源委要妙。至玄至高。而在冥冥難測之中。於是脚跟未住於下學平常之地。而情性交馳於高遠難行之上。不自覺其駸駸然流入於放懷物表之莊老。游心虛寂之幻釋。傍蹊曲徑。足腁股胝。而枉費十許年精力。送了強壯中日月。至於年漸向老大。氣漸垂凋弊然後。有日暮道遠之歎。而始覺並州實非我故鄕。回頭反踵。有餘年矣。而旣無明師疆輔先路而指揮。陳編敗紙。膠守而無得。中夜自思。不覺背汗矣。盖嘗聞之。學不博而先約則流於禪。不約而徒博則流於雜。今欲博學羣書。該格衆理則聰明不及。權度不立。亂想委積而本源反荒。欲懲是弊而歸宿於實地。專用力於至靜之界則恐易流於有軆無用之歸。何以則旣不失乎雜。又不固於約。動靜交養。本末相須。而痛湔前日之染。優入日新之步。以免倀倀中塗。無聞而死也。幸垂一轉明言。開示要路則當終身服膺焉。雖然必先知受病之由然後。當下對症之劑。故前後縷縷。悉陳而無隱。伏惟鑒裁。 풍현(風眩) 몸이 허한 때에 풍사(風邪)가 머리에 침습하여 생기는 어지럼증의 일종이다. 발꿈치를……않아 원문의 '각근(脚跟)'은 기초‧기본‧근저를 의미하는 말로, '발꿈치를 하학(下學)의 일상적인 곳에 두지 않았다.'는 것은 곧 학문의 기초‧기본을 튼튼히 다지는 데 힘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소학집주(小學集註)》 총론에서 주희(朱熹)가 "지금은 모두 소학의 공부를 놓치고 지나쳐 버려 다시 돌아가 공부할 수 없으니, 다만 지금의 처지에 의거하여 곧바로 머물러 발꿈치를 세워 정하고 공부해야 한다. 30세에 깨달았다면 곧 30세부터 발꿈치를 세워 정하고 공부를 하며 곧 나이 8, 9십 세에 깨달았다면 또한 마땅히 현재 처한 상황에서 공부해야 한다.[今都蹉過了 不能更轉去做 只據而今地頭 便劄住立定脚跟做去 如三十歲覺悟 便從三十歲立定脚跟做去 便年八九十歲覺悟 亦當據現在劄住做去]"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날은……탄식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사기(史記)》 권66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 초나라 사람 오자서가 자신의 가혹한 복수를 질책하는 신포서(申包胥)에게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기에 내가 어쩔 수 없이 일을 거꾸로 행하며 하늘의 뜻에 반하는 일을 하였다.[吾日莫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병주(竝州)는……깨닫고서 당(唐)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도상건(渡桑乾)〉에, "병주의 나그네살이 십 년이 지나도록, 밤낮으로 고향 함양에 돌아가고 팠어라. 무단히 다시금 상건수 물을 건너니, 돌아보매 병주가 바로 고향처럼 느껴지더라.[客舍幷州已十霜 歸心日夜憶咸陽 無端更渡桑乾水 却望幷州是故鄕]"라 하였다. 본래 타향이라도 오래 살아 정이 들면 고향처럼 느껴짐을 비유할 때 흔히 인용되는 대목인데, 여기서는 자신이 해 오던 학문 방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말 원문은 '일전명언(一轉明言)'으로, 곧 '일전어(一轉語)'를 뜻한다. 일전어는 선가(禪家)에서 유래한 말로, 깨달음의 계기를 제공해 주는 한마디의 번뜩이는 어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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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의 시축에 차운하다 次僧軸韻 산에 사는 산승이 시축에 시 쓰니청려장 짚고 찾아갈 고생할 필요 없네앉아서 선경을 전부 볼 수 있으니절반은 봉우리요 절반은 계곡이라 山在山僧軸上題不須辛苦費携藜坐來收得仙區盡一半峰巒一半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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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노첨 동망231)을 희롱하다 戲崔魯詹 東望 전생엔 제갈량이요 후생엔 그대이니옛사람과 지금 사람을 구분짓지 말라예로부터 〈양보음〉 읊기 좋아했으니지금도 여전히 따뜻한 봄을 만나길 원하네232) 諸葛前身子後身莫將分作古今人從古好爲梁甫詠至今猶願見陽春 최노첨 동망 최동망(崔東望, 1557∼?)으로,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노첨(魯瞻), 호는 재간(在澗)이다. 최립(崔岦)의 아들이다. 예로부터……원하네 〈양보음(梁甫吟)〉은 초나라 지방의 악부곡으로, 제갈량(諸葛亮)이 출사하기 전에 즐겨 읊었던 노래이다. 또 당나라 이백(李白)의 〈양보음〉 시에 "길게 양보음을 부르노니, 어느 때나 양춘을 볼거나.[長嘯梁甫吟, 何時見陽春.]"라고 하여, 지사(志士)가 임금의 지우를 입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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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문268)에 머물며 무지개를 보다 留薊觀虹 한쪽에는 석양 비치고 한쪽에는 비 내리는데갑자기 긴 무지개가 푸른 하늘에 걸렸누나옥황상제가 내 사행길 힘든 줄 아시고는특별히 공중에 무지개다리 놓아 주었구나 一邊殘照一邊雨忽有長虹掛碧霄玉皇知我乘槎苦特許空中架彩橋 계문(薊門) 북경의 덕승문(德勝門) 밖의 지역으로, 북경으로 들어가는 관문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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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어머니를 생각하다 2수 憶慈親【二首】 편지를 써서 어머니께 알려드리니나랏일 마쳐야 이 아들 비로소 돌아갑니다세밑에서야 집에 돌아갈까 걱정 마소서행장에 그래도 촘촘히 꿰맨 옷 있습니다269)해가 긴 여름 오월에 막 객이 되었는데보름달 뜬 중추절에도 아직 돌아가지 못했네이르노니, 서풍이여 급히 불지 말라추워져도 다시 겨울옷 받지 못하니 裁書爲報慈親道王事休來兒始歸莫畏還家落歲暮行裝猶有密縫衣日長夏五初爲客月望中秋尙未歸爲報西風吹莫急寒來不復授寒衣 행장엔……있습니다 어머니가 먼 길을 떠나는 자식을 위하는 마음을 형용한 것이다. 당나라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시에 "자애로운 어머니 손안의 바느질한 실올은,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의 몸에 걸칠 옷이라오. 떠나갈 때에 임하여 촘촘히 꿰매신 것은, 마음속에 더디 돌아올까 염려해서이네.[慈母手中線, 遊子身上衣. 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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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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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조 참의에 대한 만시 趙參議輓 그대 형님은 나에게 장인뻘이요그대 아우는 나보다 한 살이 많지옛날 호서에서 사별할 때 흘닌 눈물 생각나니지금 또 옷깃 적실 줄 어찌 알았으랴 令兄爲我丈人行賢季於吾一歲强憶昔湖西死別淚豈知今日又霑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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