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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2) 三稿合部序 【二】 말이라는 것은 몸의 문채(文彩)이다.18) 행동은 몸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말이 문채로써 빛난다. 중앙과 지방에서 직무를 수행할 때 진실로 곡식을 주면서 올바르게 기른다면 글에서도 도(道)를 볼 수 있다. 지금 금성 나씨의 소포·금암·금봉 삼형제의 유묵을 합편한 책을 삼가 세 번 반복해서 읽으니 감탄하고 흠모할 만한 점이 있었다. 세 분은 대개 선조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고 태어나 생장하는 동안 금호공(錦湖公)께서 독실히 지키는 떳떳한 도리의 전형(典刑)에 몸담고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기 때문에 배우지 않고도 잘할 수가 있었다.19) 곽망우(郭忘憂)20)의 훌륭한 절조를 마음으로 헤아리니 선조(宣祖)께서 군사에 대해 질문하던 날 추천을 받았고, 곤재 정개청의 정학(正學)을 가슴에 새기니 혹자는 '고명(高明)하여 경외롭다.'라고 칭송하며, 혹자는 '세간의 인물이다.'라고 칭송하였다. 이 때문에 인간의 도리를 행하고 남은 힘으로 한 학문21)은 뜻을 펼침에 뿌리가 무성해지고, 글을 지음에 기름을 부어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22) 어둠 속에서 헤아려보아도 덕스럽고 의로운 마음에서 흘러나와 시인과 문사의 구기(口氣)가 아님을 알 수 있으니 참으로 진실하다.여 시강(呂侍講)23)이 "사람이 살아가면서 안으로는 현명한 아버지나 형이 없고, 밖으로는 엄한 스승이나 벗이 없는데도 이룰 수 있는 자는 드물 것이다."라고 한 말과 《맹자(孟子)》에서 "그 시를 외고 그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한 말이 더욱 의미가 있다. 《예기(禮記)》24)에서 "선조에게 착한 일이 있는데도 모르면 현명하지 못하고, 알고도 후세에 전하지 않으면 어질지 못하다."라고 하였으니, 주옥같은 문장을 가리고 인도한 두 후손이 전전긍긍함이 있다.금암의 증손 상사(上舍) 나두동(羅斗冬)이 과거를 그만두고 서책을 읽으며 오직 선조의 일에 책임을 지고 크고 작은 것 가릴 것 없이 반드시 드러낸 뒤에 이윽고 끝마쳤다. 이에 종이25)로만 남아 있는 말과 이야기가 날마다 사라질까 두려워 어느새 남은 시문과 침식된 간찰을 대추나무에 판각하여 영원토록 하고, 닥나무 종이로 간행하여 귀하게 한 뒤 내종(內從)인 침랑(寢郞) 정중원에게 서문을 지어주기를 요청하였다.정중원 군은 본래 가학(家學)이 풍부하고 외손자의 서열로 시종일관 뜻이 크고 기개가 있으며 간절하고 진실하며 곧고 굳어 삼가 그 말이 행동과 일치하였다. 당화(黨禍, 기축옥사)와 도적들의 난[임진왜란]으로 그 글이 거의 다 망실됨을 개탄하였다. 죽은 스승의 원통함을 변론하고 아울러 뭇사람들의 억울함도 신원하며 기축년의 간사한 자들이 기회를 틈타 모함한 상황을 진술하였다. 더욱 격앙된 세 분 상소의 말은 엄정하고 뜻은 정당하여 세도(世道)와 관계되어 귀신도 질정할 수 있으니, 아! 어찌 다만 이것뿐이겠는가?소포옹께서 선산을 참배한 시와 분발하여 오랑캐를 막자는 계책은 효와 충의 모범이 되어 의리가 신명(神明)을 관통하였고, 금암옹께서 자식을 경계한 글과 금봉옹께서 형님에게 바친 제문은 의방(義方)26)과 형제간의 우애에 대한 도(道)가 인륜의 차례를 다하였으니, 큰 솥에 있는 한 점의 고기나 길광(吉光)의 조각 털27)임은 말할 것도 없다. 곧 〈촉도난(蜀道難)〉 시처럼 귀신을 울렸고28) 강을 건너며 쓴 글처럼 공경대부와 필적할 만하였으니29) 삼가 재주가 있을 따름이었다.우리들의 사업은 문장이나 공명(功名)에 있지 않으니 구구하게 그 사이에서 우열30)을 가릴 필요는 없다. 오직 때가 불행하여 일찍 재앙의 그물에 떨어졌고, 결국 낮은 벼슬에 머물러 매우 드러났던 재주와 학문을 한두 가지도 다 펼치지 못하였으니, 이 글을 보는 자 또한 남은 감회가 있을 것이다. 나는 두 사람[나두동·정중원]에 대하여 벗인데도 경외하는 것은 이런 행동이 좋아서이다. 감히 좋지 못한31) 한마디 말이라도 빌리려고 하니 대략이나마 만생(晩生)32)이 산야에서 생활하고 도를 음미하는 경회(景懷)를 드러낸다.숭정 후 두 번째 계묘(癸卯 1723)년 10월 상순 여흥(驪興) 민창도(閔昌道)33) 言者, 身之文也. 行著於身, 故言炳以文. 揆元都卒, 亶在穀貽而正養, 可以卽辭而觀道. 迺今於錦城羅氏嘯浦錦巖錦峰伯仲叔遺墨合編也, 竊有所三復而歎仰者. 盖其胚胎前光, 生長食息, 不離於錦湖公篤守天經之典刑, 耳濡目梁, 不學而能. 其推衿於郭忘憂之偉節, 被其薦剡於穆陵問帥之日, 鏤膺於鄭困齋之正學, 或稱高明可畏, 或稱間世人物. 是以行餘之學, 根茂於宣志, 膏沃於屬辭. 暗中模索, 知其流出於德肚義腸中, 非詩人文士口氣, 忱哉! 呂侍講所謂人生內無賢父兄, 外無嚴師友, 能有成者鮮矣, 與夫鄒傳所謂誦其詩讀其書, 不知其人可乎之益有味也. 若戴記所謂先祖有善而不知, 不明也, 知而不傳, 不仁也, 則有兢兢乎揀珠導玉之二裔子. 錦巖曾孫上舍斗冬, 廢擧讀書, 唯先事是任無鉅細, 必宣著後已末. 乃懼話言之寄赫蹄者, 日就陻沒, 居然使殘篇囓簡, 壽之棗而貴之楮, 要內從鄭寢郞重元弁其端. 鄭君素富家學, 以自出序列, 始卒以倜儻懇實貞確, 欽其言如其行. 以黨禍寇難, 慨其文之亡失殆盡. 以爲亡師訟寃, 兼伸群枉, 備陳己丑奸人乘機陷害狀. 益激昻, 其鼎峙三疏, 辭嚴意正, 世道所關, 神理可質, 噫噫! 豈但是哉. 浦翁拜先壟詩, 勵志禦戎策, 孝範忠模, 義貫神明, 巖翁誡子文, 峰翁祭兄文, 義方友悌, 道盡倫類, 亡論大鼎一臠吉光片羽. 卽蜀道詩之泣鬼神, 過江文之敵公卿, 祗藝焉耳. 吾人事業, 不在文章功名, 不必區區軒輊其間. 唯時不幸, 早墜禍網, 終沈下僚, 使競爽才學, 皆不克展其一二, 覽斯文者, 其亦有餘感也. 余於二君, 友而畏之, 則悅是擧也. 敢藉手不腆一言, 粗效晩生餐風味道之景懷焉.崇禎後再癸卯十月上浣驪興閔昌道. 말은이라는 …… 문채(文彩)이다. 《사기(史記)》 권39 진세가(晉世家)에 "말은 몸을 꾸미는 것입니다. 장차 몸을 숨기려 하면서 무엇 때문에 꾸미겠습니까. 만약 꾸민다면 이것은 현달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言, 身之文也. 身將隱, 焉用文之? 是求顯也.]"라는 개지추(介之推)의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선조의 …… 있었다. 한유(韓愈)의 〈청하군공방공묘갈명(淸河君公房公墓碣銘)〉에 "공은 선조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고 태어나 생장하는 동안 언제나 고전의 세계에 몸담고서 항상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왔기 때문에 굳이 배우지 않고도 잘할 수가 있었다.〔公胚胎前光, 生長食息, 不離典訓之內, 目擩耳染, 不學以能.〕"라고 한 표현을 인용하였다. 곽망우(郭忘憂) 곽재우(郭再祐, 1552~1617)를 말한다.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망우당(忘憂堂)은 그의 호이다. 조식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공을 세웠다. 인간의 …… 학문 원문은 '행유지학(行餘之學)'으로, 《논어》 〈학이〉에 "공자가 말하기를 '자제가 집에 들어가면 효도하고 밖으로 나오면 공경하며, 행동은 삼가며 말은 믿음 있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인자한 사람을 친하게 지내야 하니, 이것을 행하고도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워야 한다.'하였다.〔子曰:弟子入則孝,出則弟,謹而信,汎愛衆,而親仁,行有餘力,則以學文.〕"라고 하였다. 뜻을 …… 같았다. 한유(韓愈)의 답이익서(答李翊書)에 "그대가 장차 옛 작가의 경지에 이르려고 한다면,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대해서도 안 될 것이요, 권세와 이익의 유혹에 넘어가서도 안 될 것이다. 우선 그 뿌리를 길러서 열매 맺기를 기다리고, 기름을 부어서 광채가 나기를 기대해야 할 것이니, 뿌리가 무성하게 퍼져야 열매가 여물고 기름을 부어 닦아야 광채가 나는 것이다.〔將蘄至於古之立言者 則無望其速成 無誘於勢利 養其根而竢其實 加其膏而希其光 根之茂者其實遂 膏之沃者其光曄〕"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여 시강(呂侍講) 송나라 때 시강을 지낸 여희철(呂希哲)을 가리킨다. 《예기(禮記)》 원문의 '대기(戴記)'는 《예기(禮記)》의 다른 이름이다. 중국 한나라 때 대성(戴聖)이 편찬한 《예(禮)》 49편의 《소대례(小戴禮)》가 바로 《예기》다. 《소대기(小戴記)》라고도 한다. 종이 원문의 '혁제(赫蹄)'는 혁제(赫蹏)와 같은 말로, 고대에는 글씨를 쓰는 데 썼던 폭이 좁은 비단을 지칭하였는데 후대에 와서는 작고 얇은 종이를 가리킨다. 의방(義方) 원문의 '의방(義方)'를 정도(正道)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는 올바른 도리를 의미한다. 《춘추좌씨전》 은공(隱公) 3년 조에, 위(衛)나라 장공(莊公)의 아들 주우(州吁)가 오만 방자하게 굴자, 현대부(賢大夫) 석작(石碏)이 장공에게 "아들을 사랑한다면 그에게 올바른 도리로 가도록 가르쳐서 잘못된 곳으로 빠져들지 않게 해야 한다.〔愛子, 敎之以義方, 弗納於邪.〕"라고 나온다. 큰 솥에 …… 조각 털 원문의 '대정일련(大鼎一臠)'은 적은 양의 시문이 남았지만 소량의 시문으로 전체를 알 수 있다는 의미이고, '길광편우(吉光片羽)'은 전설상의 신마(神馬)인 길광의 털 조각처럼 남겨진 시문이 우수하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촉도난(蜀道難)〉의 …… 울렸고 시가 매우 뛰어나 귀신이 보고 탄복하여 울 것이라는 뜻이다. 두보(杜甫)의 〈기이백(寄李白)〉이란 시에서 이백(李白)의 뛰어난 시재(詩才)를 찬탄하여 "붓이 떨어지면 풍우가 놀라고, 시가 이루어지면 귀신이 울었지.[落筆驚風雨 詩成泣鬼神]" 하였다. 강을 …… 만하였으니 백거이의 〈곡황보칠낭중식(哭皇甫七郞中湜)〉 "강을 건너며 쓴 글월 한수는 곧 공경대부의 글에 필적할만하네.〔涉江文一首, 便可敵公卿.〕"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우열 원문의 '헌지(軒輊)'는 고저(高低)ㆍ경중(輕重)ㆍ우열(優劣)을 의미한다. 수레가 앞이 높고 뒤가 낮은 것을 헌(軒)이라 하고, 수레가 앞이 낮고 뒤가 높은 것을 지(輊)라고 한다. 좋지 못한 원문의 '부전(不腆)'은 좋지 않다는 뜻으로, 자기의 글재주에 대한 겸사이다. 만생(晩生) 후배가 선배에 대한 자신의 겸사(謙辭)로 쓰는 말이다. 민창도(閔昌道) 1654~1725. 자는 사회(士會), 호는 화은(化隱)이다. 1678년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고 이듬해 문과 중시(重試)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1693년(숙종19)에 대사성(大司成)에까지 올랐다가 1722년(경종2)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장수(長壽)에 유배되었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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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정자57)와 이별하며 別兪正字 부모를 떠나 대궐58)로 가는 그대 離親赴雙闕천리 밤길 조심하게 千里戒宵征어찌 공명을 귀중히 여길까 豈爲功名重벼슬길의 영광일랑 마음 두지 말게 非關宦路榮임금 부모 스승 똑같이 섬겨 於三事如一마땅히 의리와 정성 다해야지 所在義當誠쇠약하고 병들어 임천에 있으니 衰病林泉處갈림길에서 정을 감당치 못하겠네 臨岐不勝情 離親赴雙闕, 千里戒宵征.豈爲功名重, 非關宦路榮.於三事如一, 所在義當誠.衰病林泉處, 臨岐不勝情. 정자 조선 시대 홍문관(弘文館)ㆍ승문원(承文院)ㆍ교서관(校書館)에 두었던 정9품직으로 전적(典籍)이나 문장의 교정을 맡아보았다. 정원은 각 관청에 2명씩으로, 모두 문관(文官)이었다. 대궐 원문의 '쌍궐(雙闕)'은 궁전 앞 양쪽에 높이 세운 누관(樓觀)으로, 도성의 대궐을 뜻한다. 포조(鮑照)의 악부시(樂府詩)에 "잔잔한 물처럼 잘 닦인 장안 거리, 높은 궁궐이 구름 속에 떠 있는 듯.[九衢平若水, 雙闕似雲浮.]"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文選 卷28 結客少年場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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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승지의 부인에 대한 만시 尹承旨夫人輓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라 일컬으니날 낳느라 고생하시고 나를 자애롭게 길러주셔서지효녀가 함께 구천으로 돌아가 사모하니말로 다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시로 쓸 수 있으랴 乾稱爲父坤稱母生我之勞育我慈孝女同歸泉下慕不能言盡況能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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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첩 응제 春帖應製 궁전에 구름 걷히자 어좌에 앉으시니햇빛이 이제 막 만년지363)에 비치는구나임금의 은혜 본래 만물을 소생시키니끊임없이 낳고 낳는 조화옹의 묘한 공 뿐만이 아니네 金殿雲開寶座移日光初暎萬年枝王恩自是蘇羣物不獨生生造化奇 만년지 동청수(冬靑樹) 즉 사철나무다. 흔히 제왕의 만수무강이나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의미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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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와 함께 밤에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 同仲瑞夜飮子新宅 창 너머 솔바람 밤 추위를 일으키는데촛불 앞 금 술잔 흥은 가라앉지 않네이불 덮고 나란히 잠드는 것 마다하지 않으니산 밖에 돌아가는 길 눈 온 뒤라 가기 어렵겠네 隔窓松籟夜生寒銀燭金樽興未闌不辭携被連床宿山外歸程雪後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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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가 차운한 시를 부기하다 附仲瑞次韻 산중에 첫눈 내려 가벼운 한기가 도니등잔 밑에서 거문고 타고 술 마시니 밤 깊어가네편안한 침상에 향기 어려 평소 바람에 부합하니내일 이별하기 어려울까 도리어 시름겹네 山中新雪動輕寒燈下琴尊夜向闌燕寢凝香符素願却愁明日別離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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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이색의 〈천수절〉 시39)에 차운하다 次李牧隱穡天壽節韻 빼곡한 오색 깃발 찬 새벽에 나부끼고화려한 열두 굽이 난간이라금화전40)에 기라성 같은 시종신들 늘어서 있는데임금께서 따스한 은혜 내려주시니 함께 기뻐하네은덕 듬뿍 받음에 단지 임금님 장수를 축원할 줄만 아니몸을 그르친 것 유관 때문이라 말하지 말라41)조회에서 돌아오는 도성길 수양버들 늘어져 있고귓가 가득 여전히 방울 소리 들리네 簇簇霓旌拂曉寒花明十二曲闌干金華星燦羅羣從玉色春溫賜共歡飽德但知祈聖算誤身休道坐儒冠朝回紫陌垂楊路盈耳猶聞噦噦鸞 이목은……시 목은(牧隱)은 이색(李穡, 1328~1396)의 호로, 이색은 본관이 한산(韓山), 자는 영숙(穎叔)이다. 〈천수절〉 시는 《목은시고》 권2 〈천수절일에 신 색이 본국에서 표문(表文)을 올리러 온 배신과 함께 대명전에 들어가 알현하다[天壽節日, 臣穡從本國進表陪臣, 入覲大明殿]〉시로, 《동문선》 권16에는 〈천수절에 대명전에 들어가 알현하다[天壽節, 入覲大明殿]〉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대명전은 원나라 궁전 이름이다. 금화전(金華殿) 한나라 때 미앙궁(未央宮) 안에 있던 궁전으로, 성제(成帝)가 일찍이 이곳에서 《상서(尙書)》와 《논어(論語)》 등의 강론을 들었다. 후대에는 이로 인하여 경연(經筵)이나 서연(書筵)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몸을……말라 유자(儒者)로 살아가는 것을 탄식하지 말라는 뜻이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증위좌승[贈韋左丞]〉 시에 "귀족들은 굶어 죽지 않지만, 유관은 몸을 그르친 이 많네.[紈袴不餓死, 儒冠多誤身.]"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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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재의 원운을 부기하다 3수 附德哉韻【三首】 강관에 누운 두자미와 같은 신세이니226)촉산에 계신 임금님 몹시도 그립구나다행히도 원융 덕에 작은 공적이나마 바치니227)임금 위해 목숨 바치는 것 내 어찌 어끼랴상서로운 소식 있나 서관에 물으니미약한 힘으로 중임 맡지 못한다 한탄하지 말라공이 크면 헛된 비방 나돌까 염려되니도리어 공을 위한 은전 아낄까 근심하노라그 당시 죽음 바치며 용감히 변경에 들어가도리어 외로운 검으로 천산에 기댔네영토 회복의 큰 책무 훌륭한 이에게 돌아갔으니영웅에게 내리는 황제 은혜 끝내 아끼지 않았네 身如子美臥江關戀極金輿在蜀山幸賴元戎輸寸效爲君殞命我何慳紫雲消息問西關休恨蚊虻不負山功大小心成市虎却憂恩典爲公慳死綏當時勇入關却將孤釰倚天山重恢丕責歸長手帝錫賢豪竟不慳 강관에……신세이니 이성길이 조정을 떠나온 자신의 처지를 두보(杜甫)에 비긴 것이다. 자미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자이고, 강관(江關)은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 일대에 있는 옛 관문 이름이다. 두보는 48세에 관직을 버리고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에 초당을 짓고 지냈다. 원융……바치니 원융은 함경북도 병마평사(咸鏡北道兵馬評事)로서 의병을 일으킨 정문부를 가리킨다. 정문부가 종성 부사(鍾城府使), 경원 부사(慶源府使) 등과 힘을 모아 국세필 등을 참수하고 경성을 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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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묘에서 감회가 일어 夷齊廟有感 한 번 간언할 적에 군신의 분의(分義) 이미 엄격했고265)둘 다 달아났으니 형제의 덕 얼마나 겸손한가266)지금도 고죽의 맑은 풍모 남아 있어요동 변경을 청렴으로 진무하게 하였네 一諫君臣分已嚴兩逃兄弟德何謙至今孤竹淸風在可使遼東鎭撫廉 한……엄격했고 은나라 고죽군(孤竹君)의 아들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정벌하러 갈 때 무왕의 말고삐를 끌어당기며 신하로서 임금을 치는 부당함을 간언하였다. 《史記 伯夷列傳》 둘……겸손하가 고죽군이 숙제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숙제는 형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백이가 "부친의 명이다." 하고 달아나니, 숙제도 즉위하려 하지 않고 나라를 양보하고 달아났다. 《史記 伯夷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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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전267)으로 가는 길에 玉田途中 멀리 보이는 숲 아득히 산해관에 닿고변방 기러기 소리 저녁 구름 사이에 있네남쪽으로 날아가는 날개 빌릴 수 있다면천 리 떨어진 고향에 하루만에 돌아가리 遠樹微茫接海關塞鴻聲在暮雲間若爲借得南飛翼千里鄕山一日還 옥전 우리나라 사신이 연경에 갈 때 경유하던 역(驛) 가운데 하나로 풍윤현(豐潤縣)과 계주(薊州) 사이에 있다. 《대명통일지(大明一統志)》 권1에 "북평성(北平城) 서북 130리, 계주 동쪽 80리에 무종성(無終城)이 있는데, 옛날 연(燕)나라 땅으로 옥전현(玉田縣)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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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량에 대한 애사 2수 李世良哀詞【二首】 훈업에 자신이 직접 보는 것에 관계치 않으니가업을 전수받는 건 훌륭한 자손들이라다만 안타까운 건 사씨네 자제들297) 중어린 나이에 첫째가 제일 먼저 꺾였구나부인이 남편 따라 죽음을 가볍게 여겼으니하늘이 무너져 여생을 의탁할 곳 없어서지알겠도다, 두 명정이 동시에 발인하는 것은천명도 있으나 또한 오랜 맹세이기도 함을 勳業非關身見之傳家麒子與麟兒只憐謝氏庭前樹早歲先摧第一枝爲婦從夫輕一死終天無地托餘生則知雙旐同時發有命雖存亦舊盟 사씨(謝氏)네 자제들 진(晉)나라의 명사인 사안(謝安)이 여러 자제들에게 "왜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자제가 출중하기를 바라는가?" 하고 묻자, 조카 사현(謝玄)이 "이것은 마치 지란(芝蘭)과 옥수(玉樹)가 자기 집 정원에서 자라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하였다. 《晉書 卷79 謝玄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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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유고 嘯浦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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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언율시 七言四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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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태수가 월출산 소나무를 읊은 시에 차운하다 次靈岩太守詠月出山松韻 집 아래에는 긴 냇물 집 위에는 산봉우리 屋下長川屋上峰이끼 낀 사립문 적막한데 곁에는 차가운 소나무 苔扉寂寂傍寒松십 년 비바람에 밝은 달빛 감추고 十年風雨藏明月삼대의 아름다운 소리를 체종의 거문고에 맡겼네 三代徽音托遞鍾구리 기둥59) 장사 마음도 오히려 쪼개지고 녹으니 銅柱壯心猶钁鑠초당의 쇠한 백발도 이미 더벅머리가 되었구나 草堂衰髮已髼鬆궁달은 하늘에 달렸으니 나와 무슨 상관이랴 在天窮達吾何管화와 복60)을 다시 새옹61)에 맡기리 倚伏還將付塞翁 屋下長川屋上峰, 苔扉寂寂傍寒松.十年風雨藏明月, 三代徽音托遞鍾.銅柱壯心猶钁鑠, 草堂衰髮已髼鬆.在天窮達吾何管, 倚伏還將付塞翁. 구리 기둥 원문의 '동주(銅柱)'는 동으로 만든 기둥으로 국경을 표시하는 데 사용하였다. 《후한서(後漢書)》 권24 〈마원열전(馬援列傳)〉에 "교남이 모두 평정되었다.[嶠南悉平]"라고 한 내용에 대한 주석에서 《광주기(廣州記)》를 인용하여 "마원이 교지에 이르러 동주를 세워 한나라의 경계로 삼았다.[援到交阯, 立銅柱, 爲漢之極界也.]"라고 하였다. 화와 복 원문의 '의복(倚伏)'은 화와 복이 서로 원인이 되어 변천하는 것을 말한다. 《노자(老子)》에 이르기를 "화는 복이 기대어 있는 바이고, 복은 화가 숨어 있는 바이다.[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하였다. 새옹 전화위복(轉禍爲福)과 비슷한 뜻으로서 길흉화복이 갈마듦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변방에 한 늙은이가 살았는데, 하루는 그 아들이 좋은 야생마 한 필을 어디서 얻어 오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들 하례를 했다. 그러나 새옹은 그것이 나쁜 일의 빌미가 될 수도 있으니 좋아만 할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그 아들이 말을 타고 나갔다가 낙마하여 다리를 부러뜨렸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를 하러오자, 노인은 앞으로 이것이 복이 될지 아느냐며 태연해 했다. 그 후 전쟁이 나서 몸이 성한 젊은이들은 모두 전쟁터에 나가 죽었지만 노인의 아들만은 다리 병신인 까닭에 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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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축의 시에 차운하다 次詩軸韻 어진 여섯 형제 모두 兄乎弟也六賢僉우애와 충정이 늙을수록 더해가네 友愛衷情到老添큰 뜻은 모두 안연의 학문을 기약하고 大志共期顔氏學한마음으로 함께 백이의 청렴함62)을 흠모했네 一心相慕伯夷廉창랑곡63)을 마치니 어부는 웃음을 지으나 滄浪曲罷漁人笑백설음을 읊조리고 오니 영객은 싫어하네64) 白雪吟來郢客嫌노병이나 숲속에서 창수할 것을 계획하니 衰病已酬林下計초당 매화 대나무도 함께 있다고 하네 草堂梅竹亦云兼 兄乎弟也六賢僉, 友愛衷情到老添.大志共期顔氏學, 一心相慕伯夷廉.滄浪曲罷漁人笑, 白雪吟來郢客嫌.衰病已酬林下計, 草堂梅竹亦云兼. 백이의 청렴함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맹자가 백이(伯夷)의 깨끗한 절의를 칭송하며 이르기를 "백이의 풍도를 들은 자들은 완악한 지아비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지아비가 입지를 갖게 된다.[聞伯夷之風者, 頑夫廉, 懦夫有立志.]"라고 하였다. 창랑곡 《맹자》와 《초사》에 실린 노래로 즉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한 것인데, 《맹자》에서는 유자(孺子)가 한 노래로서 길흉ㆍ화복은 모두 자초(自招)하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고, 《초사》에서는 어부(漁父)가 굴원(屈原)에 대하여 부른 노래로서 세상이 태평하면 벼슬을 하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은둔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백설음을 …… 싫어하네 백설음은 초(楚)나라의 가곡(歌曲) 이름인데, 곡조가 매우 고상하여 창화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었다. 영객은 영인(郢人)과 같은 말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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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원주 목사 화보 순 에 대한 만사 權原州和甫 淳 輓 황천에서는 사귀던 때를 묻지 말라덧없는 세상의 애환은 다만 한 순간일 뿐그대와 나 나이는 곧 예순 살인데제비와 기러기처럼 돌아갈 날은 서로 다르구나290)가르침 받던291) 선친의 묘소는 지척에 있고새 무덤에 칼을 건 가지292)는 막 자라나누나응당 알겠어라, 평소 은거하려는 뜻293)을 지녔으니남은 경사는 자손에게 남겨진 것을. 休於泉路問交期浮世悲歡只片時甲乙生年將六十鷰鴻歸日有參差先塋已窄趨庭地新壠初長掛釰枝應識平生攀桂志慶餘留待子孫爲 제비와……다르구나 제비는 여름 철새이고 기러기는 겨울 철새여서 서로 만날 수가 없는 것처럼 죽을 날이 다르다는 뜻이다. 가르침 받던 '추정(趨庭)'은 자식이 부친을 뵙고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홀로 서 있을 때에 아들 백어(伯魚)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자[趨而過庭], 공자가 그를 불러 세우고서 시(詩)와 예(禮)를 배워야 한다고 가르침을 내렸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論語 季氏》 새……가지 오(吳)나라의 계찰(季札)이 왕자로 있을 때 여러 나라를 사행하는 도중 서(徐)나라에 들르게 되었다. 서나라의 왕은 계찰의 보검을 갖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고, 계찰 역시 그가 검을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행의 도중이라 주지 못하고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주리라 마음먹었다. 나중에 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나라에 들렀지만 이미 서나라의 왕이 죽은 뒤였다. 이에 계찰은 스스로 약속한 대로 검을 왕의 무덤가에 걸어 두고 왔다.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여기서는 별다른 뜻은 없고 무덤가 나무의 가지가 자랐다는 것을 말한다. 은거하려는 뜻 '반계(攀桂)'는 은자가 사는 곳을 상징한다. 《초사(楚辭)》 〈초은사(招隱士)〉에 "계수나무 가지 부여잡으며 애오라지 머무른다오.[攀援桂枝兮聊淹留.]"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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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함294)이 추향 후에 봉은사에서 노닐려고 배로 오가며 지은 시에 차운하다 4수 次李汝涵秋享後遊奉恩寺舟行往還韻【四首】 진세의 일이 사람을 얽어매어 한가롭지 못해 괴로우니근심을 견디지 못하고 추향의 반열을 바라보노라두 왕릉에 제 올리고서 절을 찾으니삼복의 찌는 더위에 억지로 성문 나서네-원문 1자 결락- 은 온통 흰 돌인 낮은 여울을 내달리고강기슭은 길게 펼쳐진 갯벌을 끼고서 반쯤은 높다란 산이어라오늘은 물길 거슬러 -원문 1자 결락- 저어 나가고내일은 물살 타고서 노 젓지 않고 돌아오리라백 길 높이로 배를 끌어올려도 나는 절로 한가로우니강기슭에 누워서 울긋불긋한 화초를 바라보노라진세 벗어나니 바야흐로 탕 임금 그물 벗어난 듯295) 상쾌하고벼슬의 굴레는 무관에 갇힌 듯296) 근심스럽구나어젯밤 가을바람 하늘에서 불기 시작하더니옅은 가을색이 숲속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어라밝은 달이 이지러지기 시작함을 싫어하지 말라인간 세상에서 임술년297)을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성을 나왔다고 어찌 이 몸이 한가로울까시구는 마음을 억눌러 머리카락 새려 하네선유(船遊)는 끝이 없으니 읊조림도 멈추지 않고모래톱 새 쌍쌍이 나니 〈관저〉편298)을 읊조리누나가까운 방초, 먼 숲이 어여쁘며맑을 제 고운 모래밭 비 올 제 숲이 사랑스러워라경치는 사람을 홀려 수응을 다하지 못하니이곳에 와서 노닐어 돌아갈 줄 모르누나태평시대 무능하여 절로 한가로우니어찌 노심초사하며 억지로 반열을 넘겨볼까벼슬길은 나에게서 삼천 리 떨어져 있고세상길은 백이관299)보다 어렵구나좋은 벗과 만나 승경을 찾아가니파란 강, 푸른 산 대단히 아름다워라소선의 적벽이 이와 어떠한가일엽편주 띄워 한번 오가는구나 塵事牽人苦未閒不禁愁鬢望秋班二陵灑掃仍尋寺三伏炎蒸強出關【缺】走淺灘渾白石岸臨長浦半危巒今辰逆浪撑【缺】去明日乘流弭棹還百丈拖船我自閒臥看江岸草花班出塵方快開湯網羈宦曾愁閉武關昨夜商颷動閶闔一分秋色在林巒莫嫌明月初生魄人世難逢壬戌還出城那得此身閒詩句關心鬢欲班不盡江流吟滾滾作雙洲鳥詠關關近憐芳草遙憐樹晴愛明沙雨愛巒物色惱人酬未了來遊此地不知還昭代無能也自閒肯勞心目強窺班名場遠我三千里世路難於百二關良友相逢仍勝地碧江殊好又蒼巒蘇仙赤壁何如此欲駕偏舟一往還 이여함 이정(李瀞, 1541~1613)의 자로 그의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함안군수 유숭인(柳崇仁)의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활약하였다. 의병을 모아 진해, 창원 등지에서 왜군을 격파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에서는 의령현감으로서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김응서(金應瑞)와 함께 왜군을 격파하였다. 탕……듯 옛날에 탕 임금이 밖에 나가다 보니, 어떤 사람이 들판에다 사면으로 그물을 쳐 놓고 축원하기를 "하늘로부터 사방에 이르기까지 모두 내 그물 안으로 들어오라."라고 하였다. 탕 임금이 "세상이 다 되었구나."라고 하고 삼면의 그물을 제거하고 나서 축원하기를 "왼쪽으로 가고 싶으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고 싶으면 오른쪽으로 가되, 나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만 나의 그물로 들어오라."라고 하였는데, 제후들이 이 말을 듣고 "탕의 덕이 지극하여 금수에까지 미쳤다."라고 하였다. 《史記 殷本紀》 진 소왕(秦昭王)이 초 회왕에게 국서를 보내어 말하기를, "진나라와 초나라가 화합하지 않으면 제후를 호령할 수 없으니, 무관(武關)에서 만나 맹약을 체결하였으면 합니다."라고 하니, 초 회왕이 사기를 당할까 봐 망설였다. 초 회왕의 아들 자란(子蘭)이 말하기를, "왜 진나라의 환심을 잃으려고 합니까?"라고 하자, 초 회왕이 무관에 가서 회합하기로 하였다. 진 소왕이 장수 한 명을 무관에 매복시켰다가 초 회왕이 도착하자, 체포하여 함양(咸陽)으로 데리고 갔다. 초 회왕이 장대(章臺)에서 진 소왕을 알현하니, 번신(蕃臣)으로 대하고 대등한 예로 예우하지 않자 초 회왕이 크게 노하였다. 진나라가 초 회왕을 억류해 놓고 무(巫)ㆍ검(黔) 땅을 떼어 달라고 요구하자, 초 회왕이 맹약부터 체결하자고 하였다. 진나라가 먼저 땅을 떼어 달라고 요구하자 초 회왕이 노하여 말하기를, "진나라가 나에게 사기를 치고, 또 나에게 땅을 떼어 달라고 강요한단 말인가?"라고 하고, 다시금 허락하지 않았다. 그 뒤에 초 회왕이 돌아가려고 도망쳤으나 실패하자 병이 나서 죽었다. 《史記 卷40 楚世家》 임술년 소식(蘇軾)이 〈적벽부(赤壁賦)〉를 지은 것은 임술년 7월 기망(旣望)이다. 관저편 《시경》 〈국풍(國風) 주남(周南)〉의 첫 번째 편인 〈관저(關雎)〉에 "관관히 우는 저구새, 하수의 모래섬에 있도다. 요조한 숙녀,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라고 하였다. 경치를 보면서 여러 시를 읊었다는 의미이다. 백이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지를 말한다. 옛날 진(秦)나라 땅이 험고(險固)하여 2만 인으로 제후의 백만 군대를 막을 수 있다[秦得百二焉]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史記 卷8 高祖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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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을 감상하다 2수 賞蓮【二首】 여러 사물 가운데 식물이 가장 하찮지만연꽃은 군자310)와 비교하여 어긋남이 없어라모란의 부귀를 어찌 내 바라리오제철 향기의 국화 너와 함께 돌아가리라연잎 위의 노니는 거북 헤엄치기 좋고연꽃 사이 희롱하는 나비 아니 날쏘냐다만 가을 강에 자라난 이유로봄빛의 요염함은 본성에 맞지 않구나연꽃은 가인 같아 운명이 기박하니한 해 봄소식과는 참으로 서로 어긋나네푸른 잎 물에 뜨기 전에 꾀꼬리 먼저 날아오고붉은 꽃잎 토하자마자 제비가 물으려 찾아오누나청향에 이슬이 맺힌 모습 대단히 사랑스러운데가을의 자태에 서리 날릴까 문득 근심스럽도다바람 맞으며 염계의 〈애련설〉을 읊조리나니다른 사람들 연꽃 비평 태반은 그르구나 凡物之中植物微蓮於君子却無違牧丹富貴寧吾願時菊馨香與爾歸葉上遊龜宜泛泛花間戲蝶莫飛飛秪緣生在秋江水春色嬌夭素性非蓮似佳人命道微一年春信苦相違未浮靑葉鶯先至纔吐朱華鷰欲歸最愛淸香疑2)露氣却愁秋色逼霜飛臨風爲誦濂溪說餘外評花太半非 연꽃은 군자 송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이다.[蓮花中之君子也]"라고 하였다. '疑'자는 '凝'의 오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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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 七夕 선인 배필 해마다 때를 맞춰 만나니영원무궁토록 아름다운 기약 바라노라짧은 시간 만나 곧바로 헤어지나니한번의 기쁨 많지 않은데 슬픔은 배가 되누나근심의 기색 어두워져 먹물 베어나는 구름을 따르고눈물의 흔적 흩어져 베틀의 실에 떨어지는 비가 되었어라머리 돌려 섬궁의 항아를 문득 부러워하니이별의 근심 홀로 알지 못함에 비교하면 어떠한가 仙匹年年會有時天長地久望佳期相逢未久還相別一喜無多倍一悲愁色暗隨雲潑墨啼痕散作雨連絲回頭却羨蟾宮女如許離憂獨不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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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을 몰래 캐서 돌아오다 偸採白蓮回 백련이 제아무리 홍련에 비해 낫다지만어찌 오나라 미녀의 옥설 같은 자태만 하랴298)훔쳐 온 한 송이 다 구경하기도 전에육랑299)이 괜스럽게 또 엿보는구나 白蓮已較紅蓮勝何似吳娃玉雪姿偸得一葩看未了六郞多事又相窺 어찌……하랴 당나라 백거이의 〈억강남(憶江南)〉 시 3수 중 제3수에 "오나라 미인이 쌍쌍이 춤추니 매혹적인 부용이로다.[吳娃雙舞醉芙蓉]"라는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육랑(六郞)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장창종(張昌宗)이라는 인물로, 육랑은 장씨(張氏)의 형제 중 여섯 번째라서 붙여진 별명이다. 연꽃같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다. 《新唐書 卷109 楊再思列傳》 여기서는 문틈으로 보이는 다른 연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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