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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천치를 넘다 夜踰天峙 숲 깊어 길이 보이지 않는데 林深路不見돌에 넘어져 얼굴에 상처 입었네 石躓面傷皮묻건대 어찌하여 이 일을 하는가 此事問何以어버이 위해 지관을 찾아가는 거라오 爲親訪地師 林深路不見, 石躓面傷皮.此事問何以? 爲親訪地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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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졸의 '안중근(安重根) 의사를 추후에 애도하다' 시에 차운하다 2수 次百拙追挽安義士韻【二首】 완벽한 계책은 박랑의 행차288)와 같지 않으니 十全不似博浪行만 길의 높은 공로 태산북두와 같다오 萬丈功高垈斗平한 번 그대가 일을 성취한 뒤로 一自之君成事後삼한의 의기가 육주289)에 비꼈다오 三韓義氣六洲橫난리를 끊은 의리 용기에 지혜까지 병행하였으니 絶難義勇智幷行아주 오랜 천추토록 누가 그와 같을 수 있을까 曠幾千秋孰等平대장부라는 칭호에 다른 논의 없으니 大丈夫稱無異議그가 한 번 성내면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됨이 우습네 笑渠一怒事縱橫 十全不似博浪行, 萬丈功高垈斗平.一自之君成事後, 三韓義氣六洲橫.絶難義勇智幷行, 曠幾千秋孰等平.大丈夫稱無異議, 笑渠一怒事縱橫. 박랑(博浪)의 행차 박랑은 중국의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박랑사(博浪沙)를 가리킨다. 장량(張良)이 장사를 시켜 한(韓)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박랑사에서 철퇴로 진 시황(秦始皇)을 저격했다가 실패하였다. 《史記 留侯世家》 육주(六洲) 세계의 육대주(六大洲)로, 곧 온 세상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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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졸과 이야기하다 話百拙 올해 또 벌써 7월이 된 걸 보니 今年又見已三陰점점 깊어지는 노병에 견디기 어렵구나 叵耐駸駸老病深굶주림과 배고픔은 동시에 소나기처럼 퍼붓고 饑饉同時如驟雨가난과 곤궁은 합세하여 무성한 숲처럼 되었네 貧窮合勢作繁林살아서는 적흑의 천 가지 태도294)를 미워하고 生憎赤黑千般態죽어서는 영명의 한 조각 마음295)을 지킨다오 死守靈明一片心백졸의 시가 온갖 염려 없앨 수 있으니 百拙詩能消百慮우리들 원래 부질없이 찾지 않는다오 吾人元不謾相尋 今年又見已三陰, 叵耐駸駸老病深.饑饉同時如驟雨, 貧窮合勢作繁林.生憎赤黑千般態, 死守靈明一片心.百拙詩能消百慮, 吾人元不謾相尋. 적흑(赤黑)의……태도 온갖 요상한 기운을 말한다. 《춘추좌씨전》 소공(召公) 15년 조에 "내가 보기에 하늘에 붉고 검은 요기(妖氣)가 있으니, 이는 제사의 상서(祥瑞)가 아니라 상사(喪事)의 요기이다. 아마도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의 몸에 재앙이 있을 것이다.[吾見赤黑之祲, 非祭祥也. 喪氛也, 其在涖事乎!]"라고 한 재신(梓愼)의 말이 보인다. 영명(靈明)의……마음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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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심 어른의 영연에 곡하고 인하여 그 집에 묵으면서 짓다. 전날의 만사 시운360)을 사용하다 哭鍊心丈靈筵 因宿其家有作 用前日挽詞韻 세상 살아감에 평생 인과 의를 행하였는데 行己平生義且仁오늘 서글퍼서 길이 그 사람 그립구나 今來怊悵永懷人이승에서 끝없는 눈물을 어찌 금하랴 那禁陽界無窮淚청도361)에 있는 영령이 어둡지 않아서라오 爲有淸都不昧神버려진 원고는 형식이 우세한 폐단을 미워하였지만 棄稿應憎文勝弊넉넉한 후손은 옳은 방도가 순후함을 오히려 보았네 裕昆尙見義方淳호연히 돌아가셨지만 되려 복이 많으니 浩然長逝還多福죽지 못한 나는 재앙과 가까워 가엾구나 後死堪憐禍與隣 行己平生義且仁, 今來怊悵永懷人.那禁陽界無窮淚? 爲有淸都不昧神.棄稿應憎文勝弊, 裕昆尙見義方淳.浩然長逝還多福, 後死堪憐禍與隣. 만사(挽詞) 시운(詩韻) 《후창집(後滄集)》 권30에 실린 〈만연심전장(挽鍊心田丈)〉를 가리키는데, 거기에는 2구의 운자가 '진(珍)'으로 되어 있다. 청도(淸都) 옥황상제가 산다는 천상(天上)의 궁전을 가리킨다. 《楚辭 遠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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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156)이 기묘년(1939) 겨울에 난산으로 유산한 탓에 병이 들어 늘 안타까웠는데 작년 8월에 임신하여 오늘 사내아이를 낳았으니 지금은 근심이 풀렸다 계미년(1943) 5월 23일 ○ 2수 末媳己卯冬 以難産致敗 因以有病 恒以爲悶 自昨年八月任身 是日生丈夫子 今則可以釋慮【癸未五月二十三日○二首】 기묘년 겨울에 막내딸 일로 근심이 깊어서 少媳憂深己卯冬이 시리고 머리 센 채로 네 번의 겨울 보냈네 齒酸頭白四經冬손자가 이날 태어나 마음이 비로소 놓이니 孫生此日心初快그야말로 따뜻한 봄이 한겨울에 펼쳐진 격이로다 定有陽春殿大冬사랑스러운 손자에게 쾌손이라는 좋은 이름 주노니 愛抱嘉名錫快孫선조의 영령이 응당 후손을 보호하리라 先靈應是保雲孫인정은 다시 끝없은 소원 있으니 人情更有無窮願이를 이어 몇 명의 손자 더 낳았으면 繼此添生幾箇孫 少媳憂深己卯冬, 齒酸頭白四經冬.孫生此日心初快, 定有陽春殿大冬.愛抱嘉名錫快孫, 先靈應是保雲孫.人情更有無窮願, 繼此添生幾箇孫. 막내딸 김택술의 두 딸 중 막내로, 박진호(朴珍浩)에게 시집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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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죽남이 실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를 지어 위로하다 聞邊竹南失明 詩以慰之 뜻밖에 그대가 홀연 실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夢外聞君忽失明크게 놀라 길이 탄식하며 마음 가눌 수 없구려 大驚長歎若爲情덕과 선의 보응 어긋났으니 하늘을 믿기 어렵고 報差德善天難信간사함이 강정함을 해쳤으니 이치가 또 잘못되었네 邪犯精剛理復橫지금 세상에 어느 것인들 비관할 일 아니겠는가 今世孰非悲觀事노년에 되려 마음 기르는 방법 될 수 있다네 暮年還可養心程벗이 기분 좋게 와서 위로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게 未須朋好來相吊잠심하여 들어가면 원래 절로 다 이루어지니 入處元無不自成 夢外聞君忽失明, 大驚長歎若爲情.報差德善天難信, 邪犯精剛理復橫.今世孰非悲觀事? 暮年還可養心程.未須朋好來相吊, 入處元無不自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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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전집의 간행을 마치다. '다사' 시에 차운하다 頣齋全集刋訖 次多士韻 규성232)이 찬란하여 서쪽 하늘에 빛나니 奎星燦爛耀西天응당 이옹233)이 태어난 해이리라 應在頣翁岳降年문헌은 이미 평해234)의 집에서 받았고 文獻已承平海宅연원은 다시 훌륭한 미호235)로부터 시작하였네 淵源更自渼湖賢정밀함과 깨달음은 누가 더 뛰어나리오 精眞契悟誰居右박아함과 견문은 전에도 보기 드물었네 博雅知聞罕見前전집을 완성한 지 이제 며칠 되었으니 全集告成今有日오도가 이에 힘입어 전해지기를 기약하노라 可期吾道賴而傳 奎星燦爛耀西天, 應在頣翁岳降年.文獻已承平海宅, 淵源更自渼湖賢.精眞契悟誰居右? 博雅知聞罕見前.全集告成今有日, 可期吾道賴而傳. 규성(奎星) 이십팔수(二十八宿) 가운데 하나로, 문장(文章)과 문운(文運)을 주관하는 별이다. 이옹(頣翁)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을 가리킨다. 평해(平海) 강원도 평해군으로, 황윤석(黃胤錫)의 본관이다.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 1702~1772)의 호로, 황윤석(黃胤錫)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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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도중에 보고 느낀 것을 읊다 道中卽事 아침에 하늘 가득 비 기운 드리운 탓에 朝來雨意滿天垂약을 찾는 내 걸음 삼십 리나 지체하였네 問藥吾行一舍遲도중에 어지럽게 내린 옥 새끼 같은 비로 中道紛紜來玉索잠깐 사이에 온몸에 걸친 솜옷이 젖었네 渾身頃刻濕綿衣노년에 무슨 일로 고생을 하는가 老年底事當艱苦어려서 앓던 병이 갈수록 위태로워짐을 어이 하랴 幼抱其如轉劇危우선 마음 너그럽게 해 어딜 가든 편안하다면 且可寬懷安所遇바람 부는 정자에서도 한나절 추위와 굶주림 견뎌내리 風亭半日耐寒飢 朝來雨意滿天垂, 問藥吾行一舍遲.中道紛紜來玉索, 渾身頃刻濕綿衣.老年底事當艱苦? 幼抱其如轉劇危.且可寬懷安所遇, 風亭半日耐寒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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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부안김씨(扶安金氏) 김채상(金彩相) 등 팔고조도(八高祖圖) 고문서-치부기록류-보첩류 사회-가족/친족-족보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부안에 살고 있었던 부안김씨 김채상 등 6인의 8고조도. 부안(扶安)에 살고 있었던 부안김씨(扶安金氏) 김채상(金彩相), 김병헌(金炳憲), 김낙진(金洛震), 김면술(金冕述), 김경술(金鏡述), 김술(金述) 등 6인의 8고조(八高祖)를 각각 기록한 문서이다. 흔히 팔고조도(八高祖圖)라고 한다. 팔고조도는 한 개인의 선대를 부계와 모계 똑같이 고조대까지 거슬러올라가 계통적으로 배열한 가계도로, 그 가계도상에 나타나는 고조가 모두 8명이어서 이와 같은 이름이 생겼다. 이러한 팔고조도의 존재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친족의 범주가 오늘날에 비하여 훨씬 넓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이 팔고조도에 실린 이름 가운데, 김채상, 김병헌, 김낙진 등은 이 집안의 문서에 작성자로도 자주 나오는데, 이 문서를 통하여 김낙진의 조부가 김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김병헌이 김채상 및 김낙진과 가까운 친족이라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정확한 혈연관계는 알 수 없다. 이 문서는 각기 3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필체로 보아 동일한 인물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보이며 원본의 일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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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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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58년 선학혼시(善學婚時) 부조기(賻助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戊午二月 善學의 父 戊午二月 1858 父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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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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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상중(喪中) 서간(書簡) 서식문(書式文)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경제-토목/건축-치부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선부군의 상을 치른 뒤에 상주가 보내는 감사 인사 서식. 선부군(先父君), 즉 선친의 상(喪)을 치른 뒤에 상주(喪主)가 문상을 온 사람들에게 보내는 감사 인사 편지의 서식(書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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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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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63년 박덕유(朴德裕) 도조내역서(賭租內譯書)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癸亥十二月十四日 扶安金氏門中 朴德裕 癸亥十二月十四日 1863 扶安金氏門中 朴德裕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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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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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모년 흥성건기(興成件記)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경제-토목/건축-치부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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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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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873년 태인현감(泰仁縣監) 전령(傳令) 2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정치/행정-명령-전령 癸酉至月卄五日 官 首校 癸酉至月卄五日 泰仁縣監 首校 전라북도 태인군 官[着押] 5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19_001 1873년(고종 10) 11월 25일에 태인현감(泰仁縣監)이 수교(首校)에게 내린 전령(傳令). 1873년(고종 10) 11월 25일에 태인현감(泰仁縣監)이 수교(首校)에게 내린 전령이다. 이태한(李太漢)이 감영의 제음(題音)에도 여전히 도피하니 통탄스럽다며 지금 수교(首校)를 정해 출송(出送)하니 즉각 잡아 오라고 하였다. 독굴(督掘)하는 일에 대한 이태한의 답(答)은 관정에 들일 필요가 없이 즉각 가서 파내고 형지(形止)를 보고하라고 하였다. 한결같이 완강히 거부하면 관을 욕보이고 무고한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감영의 제음대로 즉각 굴거(掘去)하고, 만일 거행을 잘못한다면 수교도 태거(汰去)할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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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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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泰仁縣爲牒▣…▣呈議送題敎內圖形以報向事▣…▣官是齊聯次其矣狀內生昨年四月日山地買得於古阜權達鎭處白晝大葬於南村面盤龍村前麓矣後數日不知何人乘夜偸埋於生之親山龍尾上不盈尺之地卽爲呈官至今搜探矣全州宋鎭澤今稱渠之置標忽爲起訟可知非理好訟生則又昨年九月慶尙道山淸金弘健亦云渠之先山階下呈訴故更給價賣後至呈立旨別無他慮矣已過數年不意今者宋鎭澤稱以已掘處上憑藉禁葬而非但各麓各嶝金弘健塚下權達鎭墓三塚下古塚不知其數自宋鎭澤塚越金權兩人四塚下五十五步之地也越塚禁葬法典截嚴分叱除良且互相入葬之地地師若云不吉則朝用夕掘之處皆稱渠之訟掘處云故生呈訴圖形而禮吏圖形不如生之所見且宋民自知理屈▣…▣誤圖樣誣訴官庭則自官更遣座首▣…澤甥姪金民與宋民山直金民與▣…俱▣族至親同謀挾私於宋▣…密納官則官未親審之地信其座首▣▣之說終不對卞査實置生落科豈有如許冤枉之事乎且宋鎭澤誣訴營門定限納侤尤極悶鬱宋鎭澤好訟之習嚴懲座首金永斗欺罔官家之罪嚴治更爲圖形査實千萬祝手亦爲有置別定色吏更爲圖形堅封上 使爲乎乙在果此訟決處時取考兩隻文券則宋鎭澤當初用山時靑龍白虎前後左右片片嶝嶝次第買得於七人處文券昭昭用山後犯葬者呈卞掘去之四塚公文積成券軸此山一局可謂宋山而李太漢文券則不過金權兩人之數張手標先後自在輕重懸殊是乎乙遣且以置標處論之或曰宋先李後或曰李先宋後寂寞靑山…▣處分叱除良訟理曲直全不在於置標先後▣▣紙題之以奪人積功之地且不過五十步之間而入葬其能安保乎李太漢置之落科是乎乙加尼卽此李太漢狀辭中座首誤圖誤書密密納官終不對卞査實等於隱然拶逼訟官揆以民習萬萬駭然不可尋常置之乙仍于玆敢擧槪牒報 參商處分行下爲只爲合行牒呈伏請照驗施行須至牒呈者右牒呈兼巡察使同治十二年十一月十二日行縣監趙牒報[題辭]宋民之前後文軸若是昭然則李民之生臆可知卽爲督掘事刑十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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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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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855년 김태평(金太平)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정치/행정-임면-망기 乙卯八月二十二日 道溪書院 金太平 乙卯八月二十二日 1855 道溪書院 金太平 전라북도 정읍시 4.2*4.2(정방형) 흑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김태평을 도계서원의 추향 아헌관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망기. 1855년(철종 6)에 김태평(金太平)을 도계서원(道溪書院)의 추향(秋享) 아헌관(亞獻官)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망기(望記)이다. 도계서원은 전북 정읍시 이평면 도계리에 있는 서원으로, 1673년(현종 14) 지방유림의 공의(公議)로 이희맹(李希孟)·김제민(/金齊閔)·최안(崔安)·김지수(金地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1697년(숙종 23)에 김제안(金齊顔)을, 1840년(헌종 6)에 김흔(金昕)을 각각 추가 배향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며, 1962년 유림의 발의로 복원되면서 김섬(金暹)과 김습(金習)을 추가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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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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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873년 태인현감(泰仁縣監) 전령(傳令) 1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정치/행정-명령-전령 癸酉臘月十六日 官 差使 癸酉臘月十六日 泰仁縣監 差使 전라북도 태인군 官[着押] 5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19_001 1873년(고종 10) 12월 16일에 태인현감(泰仁縣監)이 차사(差使)에게 내린 전령(傳令). 1873년(고종 10) 12월 16일에 태인현감이 차사(差使)에게 내린 전령이다. 이동협(李東莢)은 선비의 신분으로 감영에서 지엄한 처분을 받았고, 감영에 고음(侤音)을 바쳤으면서도 그대로 달아났다. 그가 주인이라면 이럴 수가 없다. 산(山) 욕심이 가득해서라고 하더라도 관장(官長)을 멸시함이 극에 달했다. 독굴(督掘)하고 말 것이니 기어코 잡아 오라고 하였다. 또한 이동협 부자(父子)는 누구든지 발각되는 대로 잡아 대령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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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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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22년 김응상(金應相)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 幼學 金應相 1822 扶安縣監 金膺相 전라북도 부안군 行縣監[着押] 6.5*6.5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22년(순조 22)에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에 거주하는 김응상이 부안현에서 발급받은 준호구. 1822년(순조 22)에 부안현(扶安縣) 남하면(南下面) 둔계리(遯溪里)에 거주하는 김응상(金應相)이 부안현(扶安縣)에서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김응상의 본관은 부령(扶寧)으로, 당시 47세였다. 그는 아내 남원양씨(南原梁氏, 28세)와 아들 귀묵(貴黙, 18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기재된 문서에 의하면 외조가 2명인 것으로 보아 양씨는 후처(後妻)로 추정되며, 귀묵은 나이로 미루어 볼 때 전처(前妻) 소생으로 보이며 이때까지 전처의 부(父)는 살아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문서에는 호구단자 작성연대가 나와 있지 않았으나 김응상이 44세 때 작성한 문서에 의거하여 12년 후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데리고 살았던 노비가 1명이 있었으나 도망갔다고 나와 있다.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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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64년 김요흠(金堯欽) 등 수표(手標) 2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甲子十月初七日 金堯欽 宋鎭澤 甲子十月初七日 金堯欽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2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03_001 1864년(고종 1) 10월에 김요흠(金堯欽) 등이 송진택(宋鎭澤)에게 작성해 준 수표로 송진택 친산 근처에 쓴 무덤을 내년 2월 그믐날까지 이장하겠다는 내용. 1864년(고종 1) 10월 초7일에 김요흠(金堯欽) 등이 송진택(宋鎭澤)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연결문서를 살펴보면, 김요흠 등은 송진택 친산(親山)의 지척 거리에 무덤을 썼다가 누차 송진택으로부터 소송을 당하였다. 결국 김순흠 등은 낙과(落果, 패소)하여 지난 2월 18일에 올해 9월 그믐날까지 이장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이 문서를 작성해 주었다. 그런데 산운(山運, 묏자리 길흉의 운수)이 좋지 않아 지금까지 이장을 하지 못하였다. 이에 김요흠 등은 내년 2월 달까지 이장하겠다는 뜻으로 이 수표를 작성해 주었다. 연결문서를 살펴보면, 송진택의 친산은 당시 태인군 감산면 반룡촌에 있었다. 이곳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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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43년 김응상(金膺相)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 道光二十三年癸卯 幼學 金膺相 道光二十三年癸卯 扶安縣監 金膺相 전라북도 부안군 行縣監[着押] 6.5*6.5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43년(헌종 9)에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에 거주하는 김응상)이 부안현에서 발급받은 준호구. 1843년(헌종 9)에 부안현(扶安縣) 남하면(南下面) 둔계리(遯溪里)에 거주하는 김응상(金膺相)이 부안현(扶安縣)에서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김응상의 본관은 부령(扶寧)으로, 당시 68세였다. 그는 아내 남원양씨(南原梁氏, 49세) 및 3명의 아들과 2명의 며느리들, 1명의 손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은 큰아들 양묵(養黙, 39세) 큰며느리 개령심씨(開寧尋氏, 34세), 손자 기경(基慶, 10세), 둘째아들 천묵(天黙, 29세) 둘째며느리 전의이씨(全義李氏, 28세), 셋째아들 원묵(元黙, 20세) 셋째며느리 금성오씨(錦城吳氏, 21세) 등이다. 큰아들 양묵은 이전 관련 문서에 의하면 여러 차례 개명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데리고 살았던 노비가 4명이 있었다고 나와 있다.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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